고금소총 제170화 - 소낙비가 맺어준 인연 (豪雨結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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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가세가 기울어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못 든 노총각과 청상과부가

각자 자기네들 밭에 나가 김을 매다가

갑자기 억수같이 퍼붓는 소낙비를 피하여

가까운 정자로 같이 뛰어들게 되었다.

 

그런데 노총각이 가만히 살펴보니

청상과부의 얇은 모시옷이

소낙비에 젖어 살에 착 달라붙어

속살이 아른아른 비쳐 보이는데

그 자태가 심히 요염하여

노총각의 애간장을 녹여 태우게 했다.

 

참을 수 없는 욕정의 불길이 치밀자 노총각은,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면서

청상과부를 끌어안고 엎드렸다.

깜짝 놀란 청상과부가,

"아, 이런 짓을 하고서 하늘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요!"

하니 노총각이,

"그러니까 이렇게 나는 엎드려 땅을 보고,

아주머니는 하늘을 못 보게 내가 가려주지 않소?"

그리하여 마침내 노총각과 청상과부 간에 불이 붙고 말았다.

 

그 후 서로 나이가 엇비슷한 두 남녀는

살림을 합쳐 자식을 낳고 해로(偕老)하였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소낙비가 맺어준 연분이라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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