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171화 -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다 (一言千兩債蕩減)
http://blog.joins.com/kghkwongihwan/10467573
시골에 사는 남씨(南氏) 성을 가진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 말년에 일만금의 부자가 되었는데,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기한이 되면 종을 보내
철저히 독촉해 받아오도록 했다.
하루는 새벽에 종이 돈 천냥 받을 집으로 가니
그 집 부부는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있었다.
그래서 종은 할 수 없이 문밖에 서서 한참동안 기다리고 있는데,
부부는 언제 잠을 깼는지 어느새 아침 정사(情事)를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종이 호기심에 가만히 들창 밑으로 가서 방안을 넘어다보니,
남자가 한창 열을 올려 행사를 하는데
부인이 남자의 허리를 껴안으면서 어리광을 부리듯 말하기를,
"여보! 우리 이럴 때 너무 좋지요?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네요.
몸이 둥둥 떠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아요."
부인의 이 말에 남편은, 계속하던 허리운동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도 좋소? 그렇다면 다행이요.
나는 오늘 큰 걱정이 있어 별로 좋은 줄을 모르겠소."
"여보! 평소에는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오늘은 이상하네요.
왜 좋지 않다고 하나요?"
이에 남편은 양물이 말을 듣지 않는 듯 옆으로 내려와
번듯이 누우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오늘이 남씨 영감 집에서 천 냥 빚을 받으러 오는 날인데,
아직 돈이 마련되지 않았으니 그 무서운 종에게 시달릴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하나도 좋은 줄 모르겠소."
이런 광경을 본 남씨의 종은 그만 빚 독촉을 할 생각이 나지 않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주인에게 그 부부의 얘기를 들려주면서 아뢰기를,
"나으리! 소인 비록 종놈이지만 그런 정황에서
아무리 인정사정 모르는 막된 놈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들어가서 돈을 내놓으라고 빚 독촉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냥 돌아와 버렸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종의 이야기를 들은 남씨는 무릎을 탁 치면서 한탄한 후에
한참동안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가,
궤짝 문을 열고는 모든 빚 문서를 꺼내 불태우면서 말하기를,
"대저 남녀의 잠자리는 인간 최고의 향락이거늘,
내 어찌 돈 때문에 여인들의 그 즐거워하는 행복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여인들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는데,
내 그동안 여인들의 원망을 많이도 샀도다.
여봐라! 이제 다시는 빚 받는 일을 하지 않겠으니
모두들 마음껏 잠자리를 즐기라고 널리 알려라."
이러고 주인 남씨는 부인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서는
무엇을 하는지 문을 닫고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하여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라는 속담이 연유하게 되었더라 한다.
'고전문학 > 국역고금소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73화 - 어리석은 남편과 음탕한 아내 (0) | 2015.04.01 |
---|---|
제172화 - 엎드려 잠을 잔 것이 유죄 (0) | 2015.03.26 |
제170화 - 소낙비가 맺어준 인연 (0) | 2015.03.26 |
제169화 - 이왕이면 새것하고(同價新物) (0) | 2015.03.26 |
제168화 - 내 병 다 나았소 (0) | 2015.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