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24화 - 욕정을 이룬 선비 (冒辱貪色)

 

한 고을에 나이가 지긋한

양반 선비가 있었는데,

여색을 매우 밝히는 편이었다.

 

그 선비의 집 이웃에는

한 젊은 농부가

노모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농부의 아내는

나이 스무 살 남짓에

매우 부지런하고 얼굴이 고왔으며,

상냥하고 탐스러워 보였다.

이 농부의 아내가 물동이를 이고

우물로 물을 길으러 다닐 때는,

항상 그 선비가 거처하는

사랑채 앞을 지나다녀야 했다.

그래서 선비는 늘 사랑방에 앉아

농부의 아내가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을

내다보고 있었다.

 

시골 여인들이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을 보면,

양팔을 위로 올려

두 손으로

물동이의 양옆에 달린

손잡이를 잡게 되는데,

이 때 저고리가

위로 당겨 올라가면서

가슴이 노출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선비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농부의 아내의

그 예쁜 얼굴과 관련하여

야릇한 정감을 느끼면서,

온갖 상상으로

몸이 달아오르곤 했다.

그래서 선비는

일부러 사랑방에 앉아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다가,

농부의 아내가

물동이를 이고 지나가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이상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면 상대방도 간혹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는 때가 있었다.

이에 선비는 곧 그 마음을

한번 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한적한 어느 날,

농부의 아내가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서

가슴이 노출된 채

사랑방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 때 선비가 재빨리 뛰어나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는,

두 귀를 잡아끌어

살짝 입을 맞추고

얼른 들어와 버렸다.

그러자 그녀는

소리를 지르면서 걸음을 재촉해,

얼른 자기 집으로 달려 돌아갔다.

 

얼마 후 그녀의 시어머니가

화를 내면서 뛰어나와

선비 집 사랑에 와서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무슨 놈의 양반 선비란 게

남의 여자를 희롱한단 말이냐?" 하면서

한참 동안 욕을 퍼붓고는 돌아갔다.

 

또한 저녁때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의 남편이 달려와서,

선비를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

 

이후로 선비는 부끄러워

사랑방 문도 열지 못한 채

농부의 아내가 지나가는 것도

내다보지 못하고,

후회하면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에 그녀의 남편은

선비가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것을 보고서는

더욱 기가 살아 욕설을 퍼붓다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자

이튿날 관아로 달려가

선비를 고발했다.

 

남의 아내를 농락했다는

고발을 접한 관장은

선비와 농부를

함께 관아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관장은 먼저 선비에게

그런 사실이 있느냐고 심문했다.

 

이에 선비는,

"늘 물동이를 이고

가슴이 노출된

채 집 앞을 지나가기에,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고

그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라고 순순히 시인했다.

 

그러자 관장은

선비를 향해 꾸짖었다.

"명색이 글공부를 한 양반이

상인(常人)의 부인에게

입을 맞추어 농락하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오."

"사또! 내 일시적인 실수로

그런 죄를 범했으니

합당한 벌을 받겠소이다.

그 대신 저 농부 모자(母子)가

차례로 우리집에 와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갔으니.

양반에게 심한 욕설을 한 죄를

물어야 하지 않겠나이까?"

 

그러자 관장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마침내 형리를 불러

이렇게 분부하는 것이었다.

"형리는 들어라!

대전통편(大典通編)을 가지고 와서,

양반이 상인의 처에게

입을 맞춘 죄가 어떠한지 아뢰어라."

"예, 형방 아뢰옵나이다.

율문에 그런 조항은 없나이다."

 

"그렇다면 상인이 양반에게

욕을 한 죄는 어떠한고?"

"예, 아뢰옵나이다.

그 죄는 3차에 걸친

형문(刑問)을 실시한 다음,

먼 곳으로 귀양을 보내도록

율문에 나와 있나이다."

 

이에 관장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리는 것이었다.

"선비의 죄는

율법에 물을 규정이 없어 석방하니

집으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상인은

역시 율법의 명문에 따라

3차례 형문부터 시행할 것이니,

옥에 가두도록 하라."

이와 같은 판결에 따라

농부는 옥에 갇히고,

선비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농부의 모친이

울면서 따라 들어오며

선비에게 애걸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무식하여

양반의 소중한 위엄을 알지 못하고

법을 어기었으니,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고

귀양가는 일을 면할 수 있도록

사또나리께 잘 좀

말씀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선비는 돌아서면서,

"너의 모자가

양반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우리 집에 와서

듣기 거북한 욕설을 하여

양반을 모독했으니

벌을 받아야 마땅하니라.

또한 사또나리의 판결을

내 어찌 할 수 없으니,

시끄럽게 하지 말고

물러가도록 하라."

라고 말한 뒤 냉담하게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농부의 모친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 자부에게 말했다.

"내 간절히 빌었지만

들어주지 않으니,

필시 네 남편이

귀양을 면치 못할 것 같다.

그러니 이번에는

네가 저 선비에게 가서 매달리며

간절히 빌어 보도록 해라."

 

시어머니의 말에

농부의 아내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울면서 선비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뜰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이렇게 애걸했다.

"소녀의 남편이 본래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온데,

그 날은 들에서 술을 먹고 취해

망언을 한 것이옵니다.

결코 양반을 몰라보고

욕을 한 것이 아니오니

널리 용서해 주소서."

 

"그런 일을

네가 뜰에서 아무리 빌어 봤자

내가 들어 주겠느냐?

방안에 들어와서 빌어도

들어줄까 말까 한 일이니라."

이에 농부의 아내는

역시 부끄러워하면서

방으로 들어가

선비 앞에 엎드려

간절하게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선비는 곧 엎드려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가까이 앉히고,

전날처럼 역시,

두 손으로 머리를 잡아 당겨서

입을 맞춘 다음,

"네가 이같이 간절하게 애걸하니,

내 특별히 용서하겠노라."

하면서 그녀의 허리를 잡아

무릎에 앉힌 다음 옷을 벗겼다.

이리하여 눕혀 놓고 호합하니,

그녀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전혀 싫어하는 기색이 없고,

오히려 강렬한 정감을 느끼며

호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바탕 황홀한 작업이 끝나니,

농부의 아내가 옷을 입고 나가면서

선비를 돌아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선비어른!

어찌 이런 만남이

그렇게도 늦었단 말입니까?"

 

이에 선비는 곧 관장을 찾아가

절을 올리고 조용히 말했다.

"사또! 그 농부의 일차

형문이 끝났으니,

충분히 징계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만 석방하심이 어떨는지요?"

 

"뭐라? 석방을 하라고?

아마도 선비가 이제 뜻을 이룬 게로구먼,

알았도다. 내 곧 석방하리라."

관장은 선비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고는,

형방을 불러 그 농부를

석방하라고 명령하였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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