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62화 - 계책으로 과부를 얻다 (設計取寡)
옛날 어느 시골에 한 부인이
나이 서른에 과부가 되어 혼자 수절하며 살고 있었다.
남편이 죽기 전에 이루어 놓은 농토가 있어
일꾼을 데려다 농사를 지으니,
비록 힘은 들어도 살림은 넉넉해
별 어려움은 없었다.
마침 그 마을에는
나이 마흔을 넘긴 사람이
홀아비가 되어 가난하게 혼자 살면서
늘 그 과부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이 사람이 꾀를 내어
과부를 속이기로 마음먹고 절친한 친구를 찾아갔다.
"이 사람아, 내 어떻게 다시 아내를 얻을 길이 없어
저 과부를 꾀려고 한 가지 계책을 마련했는데 좀 도와주게나.
내일 새벽에 과부가 아침밥을 지으러 나온 사이,
내 몰래 과부방에 들어가
옷을 벗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을 테니,
자네가 아침 일찍 그 집으로 오면
과부는 부엌에 있을 게 아닌가?
그 때 자네는 지금 내가 일러 주는 대로
해줄 수 있겠나?"
"뭐라고? 아니, 이 사람아.
그 과부는 살림살이도 넉넉하고
절개 또한 굳은 사람인데, 그게 어찌 될 말인가?
잘못하면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질 텐데,
어쩌려고 그런 소릴 하나?"
"아, 그런 건 염려 말고 그저 내가 부탁한 대로만 해주게."
"알았네. 자네에게 좋은 계책이 있다면야 그렇게 해주지."
그리하여 이 사람은 친구에게 자신의 계책을 자세히 설명하고,
단단히 약속한 다음 헤어졌다.
이튿날 새벽,
이 사람이 과부의 집으로 가서 동정을 살피니
아침 일찍 부엌에 나와 소죽을 끓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 사람은 곧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
과부의 방에 옷을 벗어 놓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서 기다렸다.
이윽고 날이 훤히 밝자 약속한 대로 친구가 나타났다.
이에 과부는 부엌에서 나오며 이른 아침이라 의아해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오셨는지요?"
"아, 예. 오늘 밭을 갈아야겠는데
소를 좀 빌릴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이 때 과부가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이 사람이 베갯머리에 있는 작은 문을 열어 젖히고,
이불 속에서 머리만 내민 채 헛기침을 크게 한번 하면서
응대하는 것이었다.
"어어, 안 되지.
오늘은 우리도 논을 갈아엎어야 하니
소를 빌려 줄 수 없네.
다른 집으로 가서 빌리게."
"아니, 이 사람아.
자네가 어찌 그 방에 누워 있는가?"
"뭐? 내가 내 집 방안에 누워 있지,
그럼 어디서 누워 있나?"
"자네 집이라고?
이 집은 저 과수댁 혼자 살고 있는 걸
온 동네 사람이 다 아는데 자네 집이라니,
그 무슨 소린가?"
"이 사람아, 여기가 내 집이 아니라면
어찌 내가 이렇게 방안에 누워서 있겠는가?
내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괜히 남의 일 가지고 참견하지 말고
그만 물러가서 자네 일이나 하게."
이렇게 하여 친구가 멋쩍은 듯 물러나니,
과부는 이 광경을 보고
한마디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한편 과부 집에서 나간 친구는
약속한 대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소문을 퍼뜨리니,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몰려와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일부러 문을 열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는,
이불 속에서 담뱃대를 비스듬히 문 채
능청스럽게 말했다.
"웬 사람들이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전에
이리 몰려와서 소란을 피우는 게요?"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손뼉을 치면서
그 친구 말이 맞다고 하면서 흩어져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이 사람은 옷을 입고 부엌으로 나가
멍청하게 서 있는 과부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말했다.
"이보시오, 과수댁!
우리네 한평생은 바람에 날리는 먼지와
연약한 풀잎과도 같은 것이랍니다.
그대가 아직 젊은 나이로 무엇 때문에 혼자
이 고생을 하면서 살 것입니까?
일이 이쯤 되었으니 아무리 변명해도
사람들이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고,
송사를 한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피차 혼자이니 함께 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 말에 과부는 한참을 생각하다 별 도리가 없자,
크게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고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 후로 두 사람은 아들 딸 낳고 해로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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