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332화 - 세배는 한식에 한다 (寒食歲拜)
어느 시골 마을의 한 아전이
관아로 들어가려고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
마침 저쪽에서 급히 달려오던
동료 아전을 만나니 쳐다보면서 물었다.
"자네는 지금 어디를 갔다가
그리 급하게 달려오는고?"
"아, 나 말인가?
오늘이 곧 단오 아닌가?
그래서 향청(鄕廳)의 노인들에게
세배하러 갔다 오는 길이라네."
동료 아전의 말을 들은 이 사람은
웃으면서 대꾸했다.
"아니, 이 사람아!
그 무슨 말인가?
단오에 세배를 하다니.
세배는 추석에 하는 예절이 아닌가?
그런데 단오에 세배를 다녀온다니,
그거 정말 이상하네그려."
이러면서 관아로 들어가 관장 앞에 엎드렸다.
그런데 조금 전에 만난 아전이
단오에 세배를 하고 왔다는 그 말이
하도 우스워 속으로 웃다가,
그만 참지 못하고 밖으로 터져 나왔다.
이에 관장은 화를 내면서 꾸짖었다.
"아니, 너는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렇게 실없이 웃는단 말이냐?
무엄하구나!
여봐라, 이 놈을 당장 끌어내
태장을 치도록 하라."
"사또! 소인, 큰 죄를 지었사옵니다.
하오나 관아로 들어오다
너무 우스운 일이 있어,
참다가 저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사옵니다.
동료 아전 아무개가
추석에 세배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늘 단오에 세배를 다녀온다기에
하도 우스워서 그만 그리 되었사옵니다.
헤아려 주시옵소서."
이에 관장은
의자 뒤로 몸을 기대면서
갑자기 손뼉을 치고 크게 웃더니
천천히 말했다.
"너희들 모두 참으로 어리석구나.
세배는 단오나 추석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한식날 행하는 예절인 줄
여태껏 모르고 있었단 말이냐?
이 어리석은 것들아."
여기에 야사씨는
다음과 같은 평을 붙이고 있다.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아는 체하는 것은
군자가 비난하는 바로다.
하물며 이 관장과 같은 경우는
두말할 것이 있겠는가?
다른 날 또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문답을 할 것 같으면,
청명(淸明)과 상사일(上巳日)에
무슨 예절이 있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로다.
(출전:명엽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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