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334화 - 거짓 무당 행세를 하다 (宋幕皆中)

 

백호 임제(林悌,1546-1579)는 호남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혼자 서울 구경을 왔다가

시골로 내려가면서,

날이 저물어 하룻밤 쉬어 가려고

한 여관에 들어갔다.

다른 손님이 없어 혼자 방에 있으려니,

안주인이 분주하게 움직여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자세히 살피니

제사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밤이 깊어지자

안주인은 제삿상을 차려 놓고

크게 한탄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임제가 물었다.

"왜 그렇게 제삿상을 차려 놓고

한탄만 하고 있는지요?"

"예, 남편의 제삿날이라

이렇게 준비는 해놓았습니다만,

오기로 한 무당이 나타나지 않아

망자의 영혼을 불러낼 수 없으니,

이렇게 애를 태우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아, 그런 일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자 안주인은 매우 기뻐하면서

영혼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임제가 막상 제삿상 앞에 꿇어앉아

주문을 외우려고 하니,

아무 것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그는 대학(大學)의 서문을 낭송하기 시작했다.

도중에 '즉기막불여(則旣莫不與)’1)는 부분을 외우니,

옆에 꿇어앉아 합장을 하고 있던 안주인이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1)즉기막불여(則旣莫不與) : 곧 이미 더불어 하지 않음이 없다.

 

"맞습니다.

제 남편이 움막에 불이 나서

세상을 떠났으니 '막불'이 맞습니다.

그 말을 하는 걸 보니.

남편의 혼령이 내려와 좌정한 듯하옵니다."

이러면서 슬피우는 것이었다.

 

임제가 낭송했던 말 중에서 '막불(莫不)'이라는 소리를 듣고,

남편이 '움막(幕)의 불' 곧 '막불'에 의해 사망한 것을

신령을 통해 안 것으로 이해하여,

신통하게 생각하고 한 말이었다.

 

이어서 ‘송덕융성(宋德隆盛)’2) 이란

부분을 낭송하니,

역시 안주인은 소리를 치면서 말했다.

2‘송덕융성(宋德隆盛)’): 송나라의 덕이 융성하다.

 

"그도 맞는 말씀입니다.

제 어릴 때 이름이 '송덕'이었지요.

남편 혼령이 제 이름을 부르며

잊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영험하십니다.

어찌 그리도 남편 혼령을

잘 불러내 주시는지요.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렇게 안주인은 감탄을 하면서 울부짖고,

제삿상을 향해

여러 번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제사가 끝나니

안주인은 푸짐하게 음식상을 차려주고,

두둑한 노자도 챙겨 주었다.

 

이튿날 아침,

임제는 안주인의 인사를 받으며

웃음을 머금고

유유히 그 여관을 떠나갔더라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