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336화 - 예기 경서에 글이 있다 (文以禮經)
박순(朴淳 : 1523~1589)은 호가 사암(思庵)이었다.
그는 잘생기고 의젓했으며,
성품 또한 청렴 결백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나,
여색을 밝히는 편이라
밤이면 부인이 잠든 사이
여종들의 방을 두루 돌면서
그들과 잠자리를 즐기곤 했다.
그 가운데 옥(玉)이란
이름을 가진 여종이 있었는데,
별로 예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돌아보지 않았으나,
유난히 박순은
그 여종을 좋아하고 사랑하여
늘 가까이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사실을 알고,
"저렇게 못난 여종을 아끼고 사랑하다니,
참으로 이상한 취미를 가졌구먼.
내 도무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네."
하면서 놀려댔다.
이에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 아이는 못생겼다고 해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으니
정말 가련하지 않은가?
얼굴 못생긴 것이 자기 죄가 아닌데 말일세.
나라도 사랑해 주어야 살맛이 나지 않겠나?"
이와 같이 말하여 친구들을 웃겼다.
마침 그의 처가에서 장인 장모가 늙어,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하게 되었다.
이에 딸에게도 돌아갈 재산이 있으니
오라는 연락이 왔다.
이 때 그는 부인을 친정에 보내지 않았고,
일체의 문건도 받지 못하게 했다.
하루는 이런 일을 알게 된 친구가 놀러 왔다.
"이 사람아!
자네는 재산에 있어서는
그렇게 초연하게 굴면서,
저 못생긴 여종은 버리지 않고
끝까지 애정을 베푸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 이유를 모르겠네그려."
그 옥이라는 여종은
부인이 시집을 오면서 데려온 몸종이었다.
이에 그는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 옥을 사랑함은 경서에 있는 내용에
충실하려 하기 때문일세.
자네도 예기(禮記)를 읽었겠지만,
글 중에 ‘군자옥불거신(君子玉不去身)’1)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내 저 '옥'을 버리지 않는 것이라네."
이에 듣는 사람들이 한바탕 크게 웃었더라 한다.
주(註) 1)'군자옥불거신(君子玉不去身 : 군자는 옥을 몸에서 떼놓지 않는다.
'군자옥불거신(君子玉不去身)'이란 군자는 항상 옥으로 만든 장식품을 몸에 지니고,
걸음을 걸을 때 그 옥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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