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337화 - 다리 밑에는 방이 붙지 않았다 (橋榜不出)
옛날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머리가 모자라는 편이라
열심히 독서를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러나 부친의 기대가 크니,
과거를 보러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에 늘 과거장에 들어가기는 하나,
답안지는 전혀 채울 수 없으니
늘 백지만 바라보고 앉았다가,
마감시간이 되면
그대로 둘둘 말아 들고 나왔다.
해질 무렵 선비는
말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리를 건너는 순간,
들고 나온 답안지를
저 아래 물속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이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부친께 시험을 잘 치르고 왔노라고 고했다.
그러나 선비를 말에 태우고
과거장에 다녀온 종은
그 모습을 죄다 보았으니,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며칠 후,
과거 급제자를 알리는 방(榜)이 나붙었다.
당시에는 실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급제하지 못했을 경우의 실망 때문에
직접 가보지 않고,
대신 종을 보내서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이에 선비도 종을 시켜
확인해 보라고 일렀다.
종은 답안지를 다리 밑에 버리고
제출하지 않았으니
가볼 필요가 없다고 여겼지만,
그래도 상전의 체면을 생각해 집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후 집으로 돌아온 종은
이렇게 아뢰었다.
"도련님, 다리 밑의 방은
아직 나붙지 않았습니다요."
이 말에 선비는 부끄러워하는데,
그의 부친은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후에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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