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338화 - 그림 속의 폭포를 베로 인식하다 (畵瀑認布)
어떤 사람이 그림을 잘 알지도 못하고,
또한 그릴 줄도 모르면서
도화서별제(圖畵署別提) 자리에 오르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그림을 잘 그리고
또 잘 알아본다면서 소문을 내고 다니니,
사람들은 그가 정말
그림을 잘 아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그렇게 많은 식견이 있는 것으로
자랑하고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도화서제조(圖畵書提調)를 찾아가 알현하여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이에 제조는 소문을 들어
그가 정말 그림에 대해 잘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일단 시험을 해 보기로 했다.
곧 제조는 여산폭포도(廬山瀑布圖) 한 폭을 내건 뒤,
평을 해보라고 했다.
한데 이 사람은
그 그림에 대해 알지 못하니
자세한 내용은 지적하지 않고,
그저 잘 그렸다는 칭찬만 늘어놓았다.
제조가 들어보니
틀리게 말하는 부분이 없어,
정말 그림을 잘 안다고 생각해
별제로 임명할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제조의 속마음을 눈치 채고
기분이 매우 좋아 흥분하면서,
'그래, 이쯤에서 새로운 의견을 내놓고
제조의 환심을 사서,
더욱 확고하게
나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여,
다시 그 그림 속의 폭포를 가리키며,
"이 그림은 전반적으로 잘 그렸지만,
특히 여기 베를 씻어
햇볕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모습은
정말 일품입니다.
이 그림의 묘미는 진정
하얗게 널린 베에 있습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대체로 그림 속 폭포의 모습이
하얀 베처럼 보이기도 했으니,
씻어서 볕에 쪼이려고 펼쳐 놓은
베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 말에 제조가 비로소
그가 그림을 전혀 모르는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웃으면서 그를 그대로 돌려보냈다.
이 때 옆에 있던 사람들이
너무 웃어 허리가 잘룩해졌더라 한다.
'고전문학 > 국역고금소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40화 - 배를 그림으로 그려 성씨를 기억하다 (畵梨記姓) (0) | 2016.08.10 |
---|---|
제339화 - 글자를 더하여 잘못되게 짓다 (添字誤作) (0) | 2016.08.09 |
제337화 - 다리 밑에는 방이 붙지 않았다 (橋榜不出) (0) | 2016.08.09 |
제336화 - 예기 경서에 글이 있다 (文以禮經) (0) | 2016.08.08 |
제335화 - 거짓 꿈 이야기로 떡을 포식하다 (說夢飽餠) (0) | 2016.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