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335화 - 거짓 꿈 이야기로 떡을 포식하다 (說夢飽餠)
어떤 절에 한 주지 스님이 있었는데,
그 성품이 매우 인색했다.
이에 그 스님을 모시는 동자승이
항상 불만을 갖고 있었다.
어느 해 상원일(上元日 : 정월 초하루)을 맞아
동자승은 주지 스님을 속이려고 마음먹었다.
마침 주지 스님이 동자승과 함께
원병(圓餠 : 둥근 모양의 떡) 세 그릇을 만들었는데,
동자승이 보니
두 그릇의 떡은 크게 만들고,
한 그릇은 적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동자승이 평소
주지 스님의 성품을 잘 아는지라,
저 혼자 추측하여 생각했다.
'분명 주지 스님이 큰 떡 두 그릇은
자신이 먹으려는 것이고,
작은 떡 한 그릇을
내게 주려는 거겠지.
그렇다면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큰 떡 두 그릇을 뺏어 먹어야겠다.'
이렇게 작정하고 있는데,
주지 스님은 곧 동자승에게
떡 상을 차려오라고 했다.
그리하여 동자승은 떡상을 사이에 두고
주지 스님과 마주앉아,
머리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스님! 이 산인(山人)이
성찬(盛饌)을 대하니
감개가 무량하옵니다.
아마도 어젯밤 길몽이
이와 같은 떡상을 받게 해준 것 같사오니,
먼저 그 길몽을 말씀드리고
떡을 먹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응, 그래? 무슨 좋은 꿈을 꾸었는지
어디 한번 말해 보도록 해라."
이에 동자승은 주지 스님을 속이기 위해
그럴 듯하게 꾸며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꿈에 주지 스님께서 높은 단상에 올라가
경을 외고 계셨습니다.
그 때 소생은 석탑에 기대 앉아 있다가
슬며시 잠이 들었사온데,
비몽사몽간에
한 선녀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녀는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천녀(天女)로 보였습니다.
나이는 이팔 정도였고,
눈은 가을 물결처럼 고왔으며,
두 볼은 연지를 머금은 듯했습니다.
입에는 붉은 빛 안개가 어린 것 같았고,
머리는 푸른 구름이 엉겨 있는 듯 아름다웠지요.
게다가 허리는 가는 수양버들 같았으며,
손은 부드러운 파 속처럼 희고 고왔사옵니다."
이렇게 동자승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선녀의 모습을 그대로 꾸며
이야기하면서 곁눈으로 살피니,
주지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황홀한 꿈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였다.
곧 동자승은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선녀는 곧바로
경을 외우고 계시는
주지 스님 곁으로 올라가,
그 옆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스님께서는 선녀에게
어떤 낭자가 왔느냐고 물으셨고,
낭자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자신은 하늘 위의 선녀이며,
스님은 도솔 금선으로 삼생의 인연이 있어서
이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그 선녀의 아름다운 목을 끌어안으셨고,
빙설 같은 하얀 살결을
서로 맞대었사옵니다.
그 모습은 마치 꽃을 찾아다니는 벌과 나비,
곧 탐화봉접(探花蜂蝶)이었으며
하늘을 나는 공작새와
녹수에 노는 원앙새로도
비유되기 어려웠사옵니다."
이에 주지 스님은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입가로 침을 흘리고
손으로 무릎을 문지르면서,
"기이하구나, 네 꿈이여!
기이하도다, 네 꿈이여!
내 너의 꿈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배가 불러
떡을 먹을 수가 없구나.
그러니 이 떡 세 그릇은
모두 네가 먹도록 해라."
라고 말하고는
한참 동안 꿈속을 헤매는 듯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에 동자승은
떡 세 그릇을 혼자서 다 먹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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