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재343화 - 신통한 스님의 조화 (神僧藁俵)
한 마을에 부인이 있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아이도 없이 혼자 수절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정절을 생명처럼 여겼고,
행동 또한 정숙해
인근에 널리 소문이 났다.
하루는 부인이 저녁밥을 먹고 집에 있으니,
바랑을 진 스님 한 분이
석장(錫丈)을 짚고 찾아와서
하룻밤 재워 줄 것을 청하는 것이었다.
이에 부인이 나가서
정중히 합장 배례를 하고는,
"저의 집은 여자 혼자 사는데다
방 또한 하나뿐이니,
스님을 재워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하옵니다."
라고 거절을 하자,
스님도 합장 배례를 하면서 간청했다.
"해가 진 지 이미 오래되어
사방이 어두우니,
다른 데로 찾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룻밤 자고 가게 해주시면
큰 은혜이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이에 부인은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
스님을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비록 보리밥에 나물국이지만
정결하게 밥상을 차려 올리니,
스님은 배가 고프던 참이라고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그런 뒤 부인은
따뜻한 아랫목을 스님에게 내주고,
자신은 윗목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밤중이 되자,
스님이 몸부림을 치면서
다리를 들어
부인의 배 위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이에 부인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들어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얼마 뒤, 스님은 또다시
몸부림을 치면서
이번에는 손을 들어
부인의 가슴에 걸쳐 놓았다.
이 때 역시 부인은
두 손으로 스님의 손을 들어
방바닥에 내려놓으면서 중얼거렸다.
'대사께서 온종일 돌아다니시느라
피곤하신 게로다.'
이윽고 첫닭이 울고 새벽이 되니,
부인은 일어나 정성껏 밥을 짓고
또 담박한 반찬을 만들어
아침상을 들이는 것이었다.
이에 아침밥을 먹고 난 스님은
부인을 불러 말했다.
"짚 몇 단만 구해다 주시겠습니까?
내 좀 만들어야 할 물건이 있습니다."
부인이 그것을 마련해 주자,
스님은 잠깐 사이에 짚을 엮어
작은 섬 하나를 만들어 주면서,
"후한 대접에 보답하고자 만들었습니다."
라고 말한 뒤,
돌아서서 소매를 떨치며 떠나갔다.
이에 부인은 작은 섬 안을 들여다보자,
놀랍게도 쌀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 쌀을 뒤주로 옮겨 담으니,
작은 섬 속은 금방 다시 쌀로 가득 찼다.
이리하여 쌀을 퍼내면 다시 차고
퍼내면 가득 차니,
부인은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다.
가난하게 살던 부인이 갑자기 부자가 되자,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몰려와서 물었다.
그리하여 사실대로 얘기하고
작은 섬을 보여 주니,
모두들 신기해하면서
부인의 착한 행실에 대한 보답이라고 칭송했다.
그런데 이웃 마을에 사는
욕심 많고 시기심 강한 과부 하나가
그 얘기를 듣고 샘이 나서,
자기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벼르면서
스님이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한 노승이 바랑을 지고
석장을 짚은 채 대문에 나타나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이에 과부는 반갑게 맞이하고는
푸짐한 저녁 밥상을 차려 대접했다.
그리고는 스님이 청하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한방에 자자고 하면서 누웠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스님이 다리를 올려놓지 않으니,
자신이 직접 다리를 들어
스님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이에 스님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다리를 들어
내려놓는 것이었다.
조금 뒤,
과부는 역시 몸부림을 치는 척하면서
자신의 팔을 스님의 가슴 위에 얹어 놓았다.
이 때도 스님은 역시 두 손으로
과부의 팔을 들어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날이 밝았다.
과부는 아침밥을 짓고,
좋은 반찬을 만들어 스님께 올렸다.
이에 아침 식사를 마친 스님은
앞서 부인에게 한 것처럼
짚 몇 단을 구해 달라고 했다.
과부는 쌀이 나오는
작은 섬을 마련해 주겠거니 생각하고
기뻐하면서 짚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자 스님은
부인의 집에서 본 것과 똑같은
작은 섬을 하나 엮어 건네주고는,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가 버렸다.
이에 과부는 당연히
쌀이 들었을 것으로 알고 좋아하면서
섬 안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남자의 양근만 가득 들어찬 채
벌떡거리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과부는 어쩔 줄을 모르다가,
가마솥에 쏟아 붓고
뚜껑을 닫은 뒤
불을 때서 삶아 버리려고 하니,
어느새 그 양근이
가마솥에 가득 차 있었다.
과부는 더욱 놀라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그것을 모두 우물 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물물에 불어서
밖으로 뛰어나오더니,
뜰에서 펄떡거리는 것이었다.
이에 과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이들을 바라보면서 크게 후회했다.
"내 욕심이 지나치니,
스님께서 신통한 조화를 부려
경계하려는 것이로다.
내 지난날을 크게 후회하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이러면서 과부는 욕심 많았던 과거를 뉘우쳤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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