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八十四
屈原賈生列傳第二十四
굴원가생열전 제24
2.賈誼列傳 01
賈生名誼,[一]雒陽人也。
年十八,以能誦詩屬書聞於郡中。
가생의 이름은 의(誼)니 락양사람이다.
나이 18세에 시를 외고 글을 짓는 데 능숙하다고 하여
온 고을 안에 알려졌다.
注[一]索隱名義。漢書並作「誼」也。
吳廷尉為河南守,聞其秀才,[二]
召置門下,甚幸愛。
오정위는 하남태수가 되어 그의 뛰어난 재능을 듣고
문하에 불러두고 매우 사랑했다.
注[二]正義顏云:「秀,美也。」應劭云:「避光武諱改『茂才』也。」
孝文皇帝初立,
聞河南守吳公[三]治平為天下第一,
故與李斯同邑而常學事焉,乃徵為廷尉。
효문황제가 즉위하여 하남태수 오공이
고을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평안케 함이 천하 제일이고
전에 이사(李斯)와 한 고을에 사면서 이사에게서 배웠다는 말을 듣고
이사를 불러 정위를 삼았다.
注[三]索隱按:吳,姓也。史失名,故稱公。
廷尉乃言賈生年少,頗通諸子百家之書。
文帝召以為博士。
정위는 가생이 연소하면서도
제자백가서에 능통하였다고 아뢰니
문제는 그를 불러 박사를 삼았다.
是時賈生年二十餘,最為少。
每詔令議下,諸老先生不能言,賈生盡為之對,
人人各如其意所欲出。諸生於是乃以為能,不及也。
이 때 가생은 20여세로 가장 연소했다.
조령(詔令)이 자문을 구할 때마다
여러 노선생들은 말할 수 없었지만
가생은 다 응대하여
사람마다 각기 그의 뜻이 나오는 바와 같이 하니
제생들은 이에 가생에게 미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孝文帝說之,超遷,
一歲中至太中大夫。
효문제가 기뻐하여 차례를 뛰어넘어 승진시키니
일년 안에 태중대부에 이르렀다.
賈生以為漢興至孝文二十餘年,
天下和洽,而固當改正朔,易服色,
法制度,定官名,興禮樂,
가생은 한나라가 일어나서 효문제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천하가 화평하니 진실로 정삭을 고치고 복색을 바꾸고
제도를 법제화하고 관명을 정하고
예악을 일으켜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乃悉草具其事儀法,
色尚黃,數用五,[一]為官名,悉更秦之法。
이에 그의 일이 의례와 법제에 관한 일을 초안하였다.
색은 황색을 숭상하고 수는 5를 쓰며
관명을 지어 진나라 때의 법제를 모두 바꾸었다.
注[一]正義漢文帝時黃龍見成紀,故改為土也。
孝文帝初即位,謙讓未遑也。
諸律令所更定,及列侯悉就國,
其說皆自賈生發之。
효문제는 즉위 초인데다
겸양한지라 거기까지는 손이 미칠 겨를이 없었다.
모든 율령을 개정하고
열후들이 모두 제 자리에 나아가게 한 것은
모두 가생이 발의한 것들이었다.
於是天子議以為賈生任公卿之位。
이에 천자는 가생은 공경(公卿)의 지위를 맡을 만하다고 논의했다.
絳﹑灌﹑東陽侯﹑馮敬之屬盡害之,[二]
乃短賈生曰:
강, 관, 동양후, 풍경의 무리들은 그를 싫어하여
가생의 단점을 말했다.
注[二]正義絳﹑灌,周勃﹑灌嬰也。東陽侯,張相如。馮敬時為御史大夫。
「雒陽之人,年少初學,專欲擅權,紛亂諸事。」
“낙양인은 나이가 연소하고 학문이 일천하며
오로지 정권을 천단하여 모든 일을 분란케 합니다.“
於是天子後亦疏之,不用其議,
乃以賈生為長沙王太傅。
이에 천자도 그 뒤로는 그를 소외시키고
그의 건의를 채용하지 않았으며
이에 가생을 장사왕의 태부로 삼았다.
賈生既辭往行,
聞長沙卑溼,自以壽不得長,
又以適去,[一]意不自得。
가생은 이미 하직하고 길을 떠났다.
장사는 지대가 낮고 음습하다고 들었다.
그는 스스로 수가 길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또한 귀양가는 길이라 마음도 언짢았다.
注[一]集解徐廣曰:「適,竹革反。」韋昭曰:「謫,譴也。」索隱韋昭云:「適,譴也。」字林云:「丈反。」
及渡湘水,為賦以弔屈原。其辭曰:
상수를 건너며 부를 지어 굴원을 애도했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조굴원부]
恭承嘉惠兮,[一]俟罪長沙。
삼가 천자의 은혜를 입어
장사에서 죄를 기다렸네.
側聞屈原兮,自沈汨羅。
어렴풋이 들으니 굴원은
멱라수에 빠져 죽었다네.
造託[二]湘流兮,敬弔先生。
상수의 흐름에 부치어
삼가 선생의 신령을 조상하노라.
注[二]索隱造音七到反。
遭世罔極兮,乃隕厥身。
더할 수 없이 무도한 세상을 만나
그 몸을 떨어뜨렸도다.
嗚呼哀哉,逢時不祥!
아, 슬프도다.
상서롭지 못한 때를 만남이여.
鸞鳳伏竄兮,[三]鴟梟翶翔。
난새와 봉황새는 엎드려 숨어 버리고,
부엉이와 올빼미가 높이 나는구나.
*난봉(鸞鳳) - 봉황새, 즉 군자와 현인.
*치조(鴟鳥) - 잔인하고 흉악한 올빼미류의 악조,
注[三]索隱竄音如字,又七外反。
闒茸尊顯兮,[四]讒諛得志;
어리석고 돼먹지 않은 소인배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고
아첨하는 이들은 뜻을 얻었네.
*(闒茸,탑용)-어리석고 부재불초(不才不肖)함.
注[四]索隱闒音天臘反。茸音而隴反。案:應劭﹑胡廣云「闒茸不才之人,無
六翮翔之用而反尊貴」。字林曰「闒茸,不肖之人」。
賢聖逆曳兮,方正倒植。[五]
성현(聖賢)은 정도(正道)에 따르지 않는 결과로 초야에 묻히고,
방정(方正)한 인물이 정당한 위치에 서지 못하는 거꾸로 된 세상이다.
*逆曳(역예)-정도(正道)에 따르지 않음.
注[五]索隱胡廣云:「逆曳,不得順隨道而行也。倒植,賢不肖顛倒易位也。」
世謂伯夷貪兮,謂盜跖廉;[六]
세상에서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탐욕하다고 하고,
춘추시대의 대도인 도척을 청렴하다고 하며,
注[六]索隱案:漢書作「隨﹑夷溷兮跖﹑蹻廉」,一句皆兼兩人。隨,卞隨也。
夷,伯夷也。跖,盜跖也。蹻,莊蹻也。
莫邪為頓兮,[七]鉛刀為銛。[八]
오나라의 명검인 막사(莫邪)는 둔하다고 하고
납으로 만든 칼은 날카롭다고 한다.
注[七]集解應劭曰:「莫邪,吳大夫也,作寶劍,因以冠名。」瓚曰:「許慎曰
莫邪,大戟也。」索隱應劭曰:「莫邪,吳大夫也。作寶劍,因名焉。」吳越春
秋曰:「吳王使干將造劍二枚,一曰干將,二曰莫邪。」莫邪﹑干將,劍名也。
頓,鈍也。
注[八]集解徐廣曰:「思廉反。」駰案:漢書音義曰「銛謂利」。索隱鉛者,錫
也。銛,利也,音纖。言其暗惑也。
于嗟嚜嚜兮,生之無故![九]
아, 선생은 묵묵히
까닭없이 이 화를 입으셨네.
注[九]集解應劭曰:「嚜嚜,不自得意。」瓚曰:「生謂屈原也。」
斡棄周鼎兮 寶康瓠,[一0]
주실의 보정(寶鼎)을 버리고
강고를 보배라 하였으며
注[一0]集解如淳曰:「斡,轉也。爾雅曰『康瓠謂之甈』,大瓠也。」應劭曰:
「康,容也。斡音筦。筦,轉也。一曰康,空也。」索隱斡,轉也,烏活反。
爾雅云「康瓠謂之甈」。甈音丘列反。李巡云「康謂大瓠也」。康,空也。晉灼
云「斡,古『管』字也」。
騰駕罷牛兮 驂蹇驢,[一一]
파리한 소에게 수레를 멍에하고
절름발이 나귀를 준마라 하니
注[一一]正義罷音皮。
驥垂兩耳兮 服鹽車。[一二]
준마는 두 귀를 늘어뜨린 채
소금 수레를 끌어야 하네.
注[一二]索隱戰國策曰:「夫驥服鹽車上太山中阪,遷延負轅不能上,伯樂下車哭之也。」
章甫薦屨兮,[一三]漸不可久;[一四]
잔보를 신발 밑에 깔았으니
점차로 오래 갈 수 없게 되네.
注[一三]集解應劭曰:「章甫,殷冠也。」
注[一四]集解劉向別錄曰:「因以自諭自恨也。」
嗟苦先生兮,獨離此咎![一五]
아, 괴로워라 선생이
홀로 이 화난에 걸리셨네.
注[一五]集解應劭曰:「嗟,咨嗟。苦,勞苦。言屈原遇此難也。」
은나라 탕(湯)왕이 현인 변수(卞隨)에게 양위하려고 하니,
천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며 거절했던 변수,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597?category=486097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추가분입니다. 아래 인용 글의 작품에 연결되는 '迅'은 要點을 추려서 거듭 앞의 말을 되풀이하는 '亂'과 뜻이 같습니다.
訊曰:
已矣,國其莫我知,獨堙郁兮其誰語?
鳳漂漂其高遰兮,夫固自縮而遠去。
襲九淵之神龍兮,沕深潛以自珍。
彌融爚以隱處兮,夫豈從螘與蛭螾?
所貴聖人之神德兮,遠濁世而自藏。
使騏驥可得系羈兮,豈云異夫犬羊!
般紛紛其離此尤兮,亦夫子之辜也!
瞝九州而相君兮,何必懷此都也?
鳳皇翔于千仞之上兮,覽德惪而下之;
見細德之險(微)〔徵〕兮,搖增翮逝而去之。
彼尋常之汙瀆兮,豈能容吞舟之魚!
橫江湖之鱣鱏兮,固將制於蟻螻。
요지에서 말하였다:
두어라, 나라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홀로 우울한 심사 누가 위로해주겠는가?
봉황새는 훨훨 날아 높이 날아가니 스스로 물러나 멀리 떠나버리는도다.
깊은 못에 몸을 사리고 있는 신룡은 깊이 잠겨 스스로 몸을 진중히 여기는구나.
밝은 빛을 멀리하여 숨어 지내니 어찌 개미나 거머리 지렁이 따위와 어울리겠는가?
귀하게 여기는 바는 성인의 신성한 덕이니 혼탁한 세상을 멀리하여 스스로 숨었도다.
천리마를 묶어 굴레를 씌운다면 어찌 개나 양과 다르다고 말하겠는가!
어지러운 세상에서 화를 면하지 못한 것 또한 선생의 잘못이었구나!
구주를 두루 다녀 밝은 임금 섬겨야지 하필 이 초나라 도성만을 생각했는가?
봉황은 천 길의 하늘을 날다가 성군의 덕이 빛남을 보고서 그 곳에 내려오고
덕이 없는 험악한 조짐이 보이면 다시 날개를 쳐 멀리 가버린다네.
저 작고 더러운 웅덩이에 어찌 배를 삼킬 큰 물고기를 담을 수 있겠는가!
강과 호수를 가로지를 만한 상어나 고래라도 진실로 땅강아지나 개미에 눌리게 되리라.”
[출처] 84-4/5[史記列傳(사기열전)] 권84 屈原賈生列傳(굴원가생열전) (4/5)|작성자 swings81
賈生為長沙王太傅三年,有鸮飛入賈生舍,止于坐隅。楚人命鸮曰“服”。賈生既以適居長沙,長沙卑溼,自以為壽不得長,傷悼之,乃為賦以自廣。其辭曰:
單閼之歲兮,四月孟夏,庚子日施兮,服集予舍,止于坐隅,貌甚閒暇。異物來集兮,私怪其故,發書占之兮,筴言其度。曰“野鳥入處兮,主人將去”。請問于服兮:“予去何之?吉乎告我,兇言其菑。淹數之度兮,語予其期。”服乃嘆息,舉首奮翼,口不能言,請對以意。
萬物變化兮,固無休息。斡流而遷兮,或推而還。形氣轉續兮,變化而嬗。沕穆無窮兮,胡可勝言!禍兮福所倚,福兮禍所伏;憂喜聚門兮,吉兇同域。彼吳彊大兮,夫差以敗;越棲會稽兮,句踐霸世。斯游遂成兮,卒被五刑;傅說胥靡兮,乃相武丁。夫禍之與福兮,何異糾纆。命不可說兮,孰知其極?水激則旱兮,矢激則遠。萬物回薄兮,振蕩相轉。雲蒸雨降兮,錯繆相紛。大專槃物兮,坱軋無垠。天不可與慮兮,道不可與謀。遲數有命兮,惡識其時?
且夫天地為鑪兮,造化為工;陰陽為炭兮,萬物為銅。合散消息兮,安有常則;千變萬化兮,未始有極。忽然為人兮,何足控摶;化為異物兮,又何足患!小知自私兮,賤彼貴我;通人大觀兮,物無不可。貪夫徇財兮,烈士徇名;誇者死權兮,品庶馮生。述迫之徒兮,或趨西東;大人不曲兮,億變齊同。拘士系俗兮,攌如囚拘;至人遺物兮,獨與道俱。眾人或或兮,好惡積意;真人淡漠兮,獨與道息。釋知遺形兮,超然自喪;寥廓忽荒兮,與道翺翔。乘流則逝兮,得坻則止;縱軀委命兮,不私與己。其生若浮兮,其死若休;澹乎若深淵之靜,氾乎若不系之舟。不以生故自寶兮,養空而浮;德人無累兮,知命不憂。細故遰葪兮,何足以疑!
초사(楚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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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사(楚辭, 초나라 노래)』는 기원전 3세기부터 2세기사이에 만들어진 소(騷) 스타일의 시선집이다. 이 작품들은 가장 영향력 있고 최초로 쓰인 왕일(王逸)의 해설을 토대로 편찬되었다. 『초사』는 1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몇 작품들을 보면:
1. 「이소(離騷)」는 374구의 긴 서정시이다. 저명한 서양학자들은 「이소」가 “어두운 은유”가 만연해 있는 “복잡한” 시라고 말해왔다. 고대의 중국 독자들은 어떻게 정적들에 의해 모략에 빠지고, 그의 군주에게 조정으로부터 버려진, 은유적으로 “미인(美人)”으로 묘사된 영웅이 덕이 높은 군주를 찾아 천상의 여행을 하는 지를 서술한 이야기를 하는 시로 어려움을 당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드라마틱한 독백 속에서 그 영웅은 정적들의 비열함과 이전 동반자들의 양면성 그리고 그의 군주의 파멸에 애통해 한다. 그는 성인인 순(舜)임금 앞에서 슬퍼해 한 후, 완벽한 “여인”을 찾기 위해 몇몇의 매파를 고용하려 한다. 이 중개인들이 적절하지 않고, 신뢰할 수 없음을 깨달은 뒤, 그는 유명한 두 무당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 무당들은 굿을 한 뒤 스스로 그 “여인”을 찾으라고 조언해준다. 영웅은 그 조언에 힘을 얻어 쿤룬산맥으로의 천상의 비행을 재개한다.
陟升皇之赫戱兮, 내가 하늘의 찬란한 빛 속으로 오르자
忽臨睨夫舊鄕. 문득 아래에 나의 옛 고향을 볼 수 있었네.
仆夫悲余馬懷兮, 수레를 끄는 마부는 슬퍼하고
蜷局顧而不行. 슬픔에 찬 내 말들은 앞으로 차오르며 나아가려 않네.
독자들로 하여금 자유로이 상상할 수 있게끔 시는 매우 애매모호한 말로 끝맺는다. 예를 들면 그 영웅이 (1)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지 (2) 더 가치 있는 군주를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 이어 갈 것인지 (3) 은자처럼 은둔생활을 할 것인지 (4) 자살을 할 것인지.
2. 「구가(九歌)」는 어느 학식 있는 작가가 주술적 의례에서 나온 민간의 노래들을 개작한 것이다. 이 노래에서 무당은 먼저 자신을 정화시키고, 향수와 꽃으로 치장하고, 춤과 노래로 무아지경에 빠뜨리고, 이성의 신을 찾아 하늘로 신비로운 여정을 떠나서 귀신과 성적 관계를 가지고 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왕일(王逸)에 따르면, 「구가」는 군주와 신하와의 관계를 신과 무당의 관계로 보여주듯이, 다양한 관점에서 은유적 모티브를 사용했다고 보았다.
3. 「천문(天問)」은 초기 중국의 역사와 신화에 대해 질문하는 장편의 시이다. 이 작품은 간결하고, 아리송한 형식과 거의 알 수 없는 광범위한 훼손 때문에 문학적 가치는 낮다. 왕일은 굴원이 초나라의 묘당(廟堂)에 있는 선조의 벽화를 묘사하기 위해 「천문」을 썼다고 믿었다. 이것은 전국시대 말의 중요한 문학 장르로 알려진 수수께끼류의 남상과 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4. 「원유(遠遊)」는 기원전 1세기 초의 작품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이소」처럼 천상의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이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한다. 비록 「이소」에서 상당부분을 가지고 왔지만, 이 작품은 초기시의 샤머니즘적인 경향을 한(漢)나라 도교의 신비주의로 변환시켰다.
5. 「어부(漁父)」는 굴원과 어부의 대화 시이다. 후자가 직위에서 물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전자의 결단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어부의 마지막 충고는 어진 관리가 역경에 대응하는 전형적인 전범이 되었다.
滄浪之水淸兮, 창랑수의 물이 맑으면
可以濯吾纓. 내 갓끈을 씻으련만
滄浪之水濁兮, 창랑수의 물이 흐리니
可以濯吾足. 내 발이나 씻을 수 있으리
6. 「구변(九辯)」은 기원전 3세기에 초나라 관리였던 송옥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이 선집에서 최고의 시들을 구성하는 뛰어난 문장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일련의 시편들이 시작하는 가을의 감성적인 묘사들은 가을의 우울함을 담은 후기 중국시의 전형적인 구절이 되었다.
7. 「초혼(招魂)」, 「대초(大招)」, 「초은사(招隱士)」는 서로 분리 되어있지만, 주제상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 작품 속에서 무속의식에서 유교적 암시까지의 발전을 한 번 더 엿볼 수 있다. 「초혼」과 「대초」는 병든 왕의 치유를 위해 치러지는 굿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초은사」에서는 은거하고 있는 덕이 높은 선비를 “다시 불러내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초사』의 문장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구가」로 대표되는 가요체는 한 구당 성조가 있는 5자의 실사와, 세 번째와 네 번째 음절 사이에 “혜(兮)”자로 구성된다. 대이비드 호크스(David Hawkes)는 가요 형식의 두 구를 다음과 같이 도식화 했다.
○○○兮○○, ○○○兮○○.
현대중국어에서 “시(兮)”로 발음 도는 개사가(아마 고대 중국에서 “아”라고 발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됨) 『초사』의 모든 시에서 가장 특징적인 문체상의 특징이다. 둘째로 소(騷)라도 하는 스타일에서 “혜(兮)”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구를 나누고, 강세가 없는 조사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음절에서 중간휴지 역할을 한다.
○○○◎○○兮, ○○○◎○○.
이 소체(騷體)는 『초사』에 이 운률을 사용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 「이소」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마도 더 오래 되고, 더 기본적인 형식인 가요형식을 통해 이 두 형식의 친연성은 명백하다. 『시경』의 사언(四言) 운율과 다른 이 운율들은 남방 『초사』의 음악적 배경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초사』의 독특한 리듬은 선집의 기원이 초나라에 있고, 초나라는 제도적으로 샤머니즘을 행해왔다는 사실과 확실히 연관되어 있다. 대부분의 단어와 『초사』의 이미지들이 무속의식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이소」와 다른 작품들의 저자로 추정되는 굴원이 초나라 왕의 무당이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일의 주석에는, 무속적 모티브는 유교의 가치를 지지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은유화 되었다. 그래서 전통적 독자들도 그렇게 이해했다.
유가적 가치를 담고 있는 시선집인 『시경』 때문에 『초사』는 언제나 두 번째 자리에 위치했다. 『시경』은 전통방식으로 읽었을 때 관리들의 낙관적이고, 긍정적 삶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덕이 높은 군주는 관리의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조언을 따르고, 그래서 나라가 번영한다. 반면에, 『초사』는 주로 뚜렷한 「이소」의 지위 때문에, 관직에서 쫓겨난 관리의 목소리로, 군주에게로의 접근은 “소인배들”의 중상모략에 차단되었다. 언제나 정통 경학(經學) 밖에서 정당하게 남아있지만 『초사』는 벼슬살이의 어두운 측면이다. 그리고 남방으로 유배된 한 관리의 개인적인 위안의 근원으로서, 문학적 모델로서 『초사』의 강렬한 호소는 『초사』를 초기의 중국 문학의식의 최전선에 유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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