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13- 서모를 빌려 달라 (請借庶母)

한 선비가 떡을 무척 좋아하여,

수시로 아내에게

떡을 사오라고 해서 먹었다.

그 날도 문득 떡이 먹고 싶어

사오라고 했으나 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아내에게

직접 만들어 보자고 제의하자,

아내는 난색을 표시하며 말했다.

"집에 체가 없어

쌀가루를 만들 수 없으니

어려운 일입니다."

이에 선비는 친구 집에서

체를 빌려 보겠다고 하며,

편지를 쓰기 위해

붓과 벼루와 종이를 준비했다.

한데 막상 쓰려고 하니,

'체'라는 한자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선비는 한참 동안

붓을 잡고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자,

마침내 다음과 같이

연구하여 편지를 썼다.

'집에서 떡을 만들어 먹으려 하니,

여러 가지 기구 중에

없는 것이 있어

좀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 걸세.

우리 집에 없는 기구는

'서모(庶母)'이니,

그것을 빌려 주면

사용한 후에

잘 돌려주도록 하겠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이.'

이 편지를 사람을 시켜서

친구의 집으로 보냈다.

그러나 이 '서모'라는 기구를

친구가 알 리 없었다.

'체' 중에서 바닥을 엮은 눈이

엉성한 것을 '어레이'라고 한다.

한자어로 '서모(庶母)'는

부친의 첩이나

계모를 뜻하는 말이나,

우리말로 번역하면

'여러 어미'가 되어

붙여서 빨리 발음해 보면

'여레이'. 곧 '어레미'와

비슷한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이에 선비는 '체'라는

한자어가 생각나지 않아,

체 중에서 엉성한 체인

어레미를 빌려달라고 하면서,

한자로 번역해 '庶母'로 써서

보낸 것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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