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42- 과거 답안은 간명하게 (有一生嘗言)

한 선비가 과거 공부를 하면서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과거 답안 문장은 마땅히

간명하게 요점만 나타내야 하고,

진부한 설명을 길게

늘어놓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독서에 열중하여,

마침내 과거를 보러 갔다.

그리고 걸린 제목을 보니 다음과 같았다.

'允釐百工 庶績咸熙'1)

(윤리백공 서적함희)

1)이는 '서경'에 나오는 말로,

진실로 여러 일을 맡아하는 사람을 다스려 많은 업적이 모두 빛난다. 는 뜻임.

이 제목으로

크고 작은 항목을 설정하고,

다른 자료를 인용해 가면서 논증하여

답안지를 작성해야 하는데,

선비는 간명하게 써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으니,

 

旣告以釐百工 : 이미 백공들을 다스림으로써 고했으니)

(기고이리백공)

又告以庶績咸熙 : 또한 여러 업적이 모두 빛났다는 것으로써 고하노라)

(우고이서적함희)

하니, 이는 요전(堯典)2) 제8장의 글이로다.

라고 작성하여 제출했다.

2)요전(堯典 : '서경' 중 한편의 이름.

 

한데 방이 붙는 날 가보니

낙방하였기에,

돌아오면서 이렇게 탄식했다.

"내 문장이 너무 번잡하여

과거 답안으로는 합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이를 뜨거운 징험(徵驗)으로 삼아야겠다."

이후로 선비는

더욱 간략하게 쓰는 방법을 공부하여,

다시 과거를 보러 갔다.

그리고 제목을 보니,

이번에도

'서경'에 있는 글귀를 출제하였는데 이러했다.

 

‘地平天成'

(지평천성)

땅은 평평하게 하고, 하늘은 만물을 생성시킨다.

 

이에 선비는 파제(破題)3)하여,

다음과 같이 매우 간략하게 답안을 작성했다.

3)파제(破題 : 제목을 파헤쳐 논술함.

 

'坤平하여 故乾成 이라.

(곤평) (고건성)

땅이 평평하니 그러므로 하늘이 이루어진다.

平則成은 理之然也

(평즉성) (이지연야)

평평하면 곧 이루어짐은 이치의 당연함이로다.

 

이렇게 작성하여

제출하고 나온 선비는

친구들에게 큰 소리를 치면서 자랑했다.

"금년 과거에는

내 문장을 매우 간요(簡要)하게

작성해서 제출했으니

반드시 급제할 것이로다."

 

이 말을 들은 친구들은

너무 어이가 없어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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