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45- 내시의 이상한 사모 (有一內侍)

반씨(潘氏) 성을 가진

한 내시가 있었다.

그는 돼지가죽으로

새 모자 집1)을 하나 만들어,

사모(紗帽)를 보관해 두었다.

1)모자 집:갓이나 모자를 넣는 가방.

2)사모(紗帽 : 예복에 쓰는 모자.

때는 바야흐로 유월이었는데,

반씨는 조정의 강향(降香)3) 명령을 받들어

함길도 안변부(安邊府)로

향을 가지고 가게 되었다.

3)강향(降香) : 임금이 지방으로 제사 향을 내려 보내는 일.

이에 길을 떠나면서

돼지가죽으로 만든

모자 집 속에

사모를 넣어 가지고 갔다.

한데 가는 동안

내리 사흘을 비가 내려

모자 집이 흠뻑 젖어 버리니,

가죽이 물에 불어 물렁물렁해졌다.

그러고 날이 개면서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니,

이번에는 빗물에 불었던 모자 집이

갑자기 마르면서 바싹 오므라들어,

안에 든 사모와 돼지가죽이

엉겨 붙는 바람에

한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한데 반씨는 이런 줄도 모르고

안변부에 도착하니,

임금의 하사 향을 받기 위해

관아의 모든 관속들이

예의를 갖춰

정문 양편에 늘어서 있었다.

이 때 반씨 또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예복을 입고 사모를 꺼내려 하니,

돼지가죽으로 된 모자 집과 엉겨 붙어

도저히 사모만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이에 별 수 없이

모자 집이 붙은 사모에

연각(軟角)4)만 겉에 붙인 채

그대로 쓰고 들어갔다.

4)연각(軟角) : 사모 뒤에 붙은 옆으로 뻗은 날개.

그러자 도열해 있던 관속들이

반씨의 이상한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하고

서로 쳐다보며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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