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46- 점괘에 빠진 선비 (斯文老先生)

나이 많은 배리(裵理)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담명설(談命說)1)을

지나치게 믿었다.

1)담명설(談命說) : 점쟁이의 운명 관련설.

하루는 점쟁이가 점을 쳐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명운(命運)은

몇 년 몇 월 며칠에 매우 흉합니다."

그러자 선비는

점쟁이가 일러 준 그 날,

관을 만들어 그 속에 누운 뒤

운명하기를 기다리면서

처자들에게 미리 곡을 하라고 일렀다.

한데 그 날이 다 가고

밤중이 지나도록 죽지 않으니,

선비는 우연히 그 해는

넘긴 것뿐이라고 여기면서,

스스로 계책을 쓴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뒷날 점쟁이가

다시 앞서 그랬던 것처럼,

어느 해 어느 달 며칠에

흉하다고 하면서,

다만 출가(出家)를 하면

그 액을 면할 수 있다는

처방을 덧붙여 주었다.

2)출가(出家) : 집을 나가 승려나 신선이 되는 것.

이에 선비는

그 흉하다는 날,

머리를 깎고 수염만 남긴 채

집안을 들락거리니

역시 죽지 않는 것이었다.

이를 본 선비의 친구들이

그를 비난하며

이렇게 의논했다.

"저 친구 배리는 우리가 신봉하는

유학(儒學)을 배반한 채

머리를 깎고 석씨(釋氏)를 따르니,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마땅히 우리가 함께 꾸짖어

비판해야겠다."

이 소문을 들은 선비는,

 

削髮逃妻子 머리 깎고 처자를 떠났으나

(삭발도처자)

有髥表丈夫 수염은 남겨 두어 장부임을 표했노라.

(유염표장부)

 

라는 시구를 지어 자기의 입장을 변명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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