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48- 시골 의원의 탕제 (權止齋奉使)

조선 초기의 학자

지재(止齋) 권제(權踶, 1387년 ~ 1445)가

조정의 명을 받들어

상주(尙州)로 내려갔는데,

등에 종기가 나서 매우 불편했다.

그리하여 의원에게 처방을 묻자,

의원은 별로 생각지도 않고

말하는 것이었다.

"마땅히 대금음자(貸金飮子)1)를 복용해야 합니다."

1)대금음자(貸金飮子) : 술을 많이 마셔 체했거나 소화 불량으로 인한 복통에 먹는 탕약.

"대금음자라고?

그건 어느 방문(方文)에 나와 있는 처방이오?"

이렇게 지재가 의아해 하면서 물으니,

의원은 설명했다.

"약을 짓는 화제(和劑)를 보면,

대금음자의 효험을 증명하는 글로

'치제질 무불유(治諸疾 無不癒)'2)라고

나와 있으니,

종기라고 어찌 낫지 않겠습니까?"

2)치제질 무불유(治諸疾 無不癒) :모든 병을 다스림에 낫지 않는 것이 없다.

 

또 근래 김씨 성을 가진 한 조관이

조정의 명령을 받들어

김해에 도착했는데,

열증(熱症)에 의해

대변이 잘 나오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이에 그 곳 의원을 찾아가 물었다.

"순기산(順氣散)이란 약이 있습니까?"

"예,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에 함께 넣어 달이는

인자(引子)3)도 있는지요?"

3)인자(引子) : 탕제에 함께 넣는 보조 약재.

"예, 물론 있습니다."

"그러면 대황(大黃)4)도 물론 있겠네요?"

4)대황(大黃) : 건위제나 설사약.

"예, 있습니다."

"그러면 좋습니다.

'순기산'에 '인자'를 첨가하고

'대황' 3전(錢)을 넣어 달여 주십시오."

5)전(錢) : 무게 단위.

약재들이 모두 있다는 의원의 말에,

조관은 이렇게

탕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의원은 밖으로 나가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 '대황'이라는 것이

뭔지 모르겠구나. 그게 뭐냐?"

"아, 그야 두말 할 것 없이

'대변(大便)' 아닙니까?"

"대변이라고?

네가 어찌 '대황'을

'대변'으로 알고 있느냐?"

"아, 그야 당연하지요.

대변은 색깔이 노랗고 뜨거우니,

'열증'에 마땅히 효험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의원은 곧

순기산에 대변 3전을 넣고,

대추와 새앙을 첨가해 달여 올렸다.

한데 조관이 마시려 하자

악취가 심해 먹을 수 없으니,

다시 의원을 불러 물었다.

이에 의원은 사실대로

대변을 넣었다고 말해주니,

조관은 소리 내어 크게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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