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51화 -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 (衿陽有朴乙孫者)
금양(今陽) 고을에
박을손(朴乙孫)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이 사람은 미질(迷疾)에 걸려,
하나를 말하면 둘을 잊어버리고
둘을 말하면 셋을 잊어버리며,
동서남북의 방향을 분별하지 못했고,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아침과 저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낚싯대 반 길이만큼 남았을 때,
행장을 꾸려 먼 길을 나섰다.
이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지금 떠나는 것은 옳지 않도다."
라고 하면서 말리니,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듣지 않았다.
"아침 해가 겨우 산에서 올라오는데
어찌 나를 속이느냐?"
그리고는 얼마 못 가서
날이 어두워지니,
길을 잃고 도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해가 솟아 올라왔을 때
사람들이 지금 길을 떠나면
좋다고 말해 주니,
그는 또 반대되는 얘기를 했다.
"어제 해가 바로
저 위치에 있을 때 떠났는데,
금방 날이 어두워져
길을 잃고 돌아오지 않았느냐?"
이렇게 말하면서 방안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마침 박을손 집에서 기르는 암캐가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다.
이에 자랑을 하면서 그 숫자를 세어,
누렁이 세 마리와 얼룩이 두 마리라며
손가락 다섯 개를 꾸부렸다.
그러고는 조금 있다가 두 마리는
이미 이웃에 사는
허씨에게 주기로 약속했다면서,
꾸부렸던 다섯 손가락 중에서
두 개를 펴는 것이었다.
이러고 한참 동안 손을 들여다보더니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 집 강아지는
본래 다섯 마리였는데,
지금 내 손가락을 보니
이상하게도 일곱 마리로 늘었구먼.
두 마리를 더했으니 벌었도다."
그러면서 믿기지 않는 듯
돌아가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미질에 걸린 그에 대해
어떤 사람이 시를 지었다.
兩曜倒看無朝暮 뜨고 지는 해 거꾸로 봐 아침저녁을 모르니
(양요도간무조모)
恒沙巧曆只安排1) 항사는 교력만이 다만 정리 잘하리라.
(항사교력지안배)
憑君好是存迷疾 그대에게 미질을 그대로 둠이 좋겠노라
(빙군호시존미질)
五箇狗兒數七枚 다섯 마리 강아지가 일곱 마리로 계산되나니.
(오개구아수칠매)
이와 같이 시로 읊어 그를 조롱했더라 한다.
[註1)] 위 시에서 '항사(恒沙)'는 인도 항강의 모래로 그 수가 매우 많음을 뜻하고, '교력(巧曆)'은 달력과 같은 수를 잘 계산하는 사람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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