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54화 - 아내의 질투에 대응하기 (有金翁者)
김씨 성을 가진 한 노인이 있었다.
그 아내는 자못 투기가 심한 편이었는데,
노인은 아내 몰래 백자(栢子)라는 여의(女醫)와 통간하며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어 문제가 없었다.
이 때 이웃에 사는 짓궂은 늙은이가 있어,
김씨의 어린 아들을 꾀어 매일 떡이며 과자를 주면서
말을 잘 듣도록 유도했다.
김씨의 아들은 이제 겨우 말을 할 정도의 나이로
소견이 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웃집 늙은이는 아이에게,
'김씨 노인이 백자를 좋아하여 사랑에 빠졌다.'는 말을
노래처럼 부르게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이는 떡과 과자를 얻어먹으며 매일 이 말을 외우니,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래로 잘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이웃집 늙은이는 아이에게 시켰다.
"오늘부터는 집에 있을 때,
엄마 아빠 앞에서 이 노래를 계속 부르도록 해라."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엄마 아빠 앞에서 이 노래를 계속 불러대니,
아내는 눈치를 채고 백자가 누구냐며 추궁하고 대들었다.
이 때 김씨는 끝까지 모른다고 숨긴 채 실토하지 않으니,
아내는 더욱 흥분하여 소리쳤다.
"당신처럼 보잘 것 없는 소남자(小男子)를 대체 어디다 쓰겠소?
그러니 당신과는 결코 백년해로는 할 수 없소."
이러면서 방으로 들어가 노끈으로 목을 매는 것이었다.
이에 김씨가 급히 들어가 노끈을 풀고 위로하니,
아내는 화가 조금 풀어졌다.
그러고 나서 한참 세월이 흐른 뒤,
아내는 또다시 백자를 질투해 소란을 피웠다.
이에 김씨는 아내의 마음을 떠보려고 짐짓 크게 화를 내며 꾸짖었다.
"대장부가 어찌 아녀자에게 짓눌리며,
이렇게 답답한 생활을 할 수 있겠소?
그러니 내 차라리 죽어버리겠소."
이러면서 노끈을 찾아 후원으로 가서 나무에 목을 매는 척했다.
그런데 그러면 금방 달려와 말릴 줄 알았던 아내가 끝내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 후, 김씨가 노끈을 가지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소중한 것이거늘,
내가 죽는다고 하는데도 당신은 어찌 돌아보지도 않고
그리 괄시를 하는가?"
이러면서 씩씩거리니 아내는 쳐다보지도 않았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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