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56- 준마의 조건 (一俠客閔姓者)

민씨(閔氏) 성을 가진

한 협객(俠客)이 있었다.

이 사람은 집안이 넉넉하여,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돈을 많이 주고서라도 꼭 손에 넣었다.

하루는 시장에 가서 백천금(百千金)을 주고

아주 좋은 말이라는

시장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

자류마(紫류馬)1) 한 필을 사 왔다.

1)자류마(紫류馬) : 밤색 빛이 나는 털을 가진 말.

그러고서 자랑을 하며 타고 다니자,

한 호사자(好事者)가 보고서

그 말을 깎아내리는 듯

이렇게 얘기했다.

"좋은 말이란

몸뚱이는 검고 이마에 흰 점이 있으며,

네 발이 흰털로 덮여 있어야

정말 좋다고 할 수 있소.

자류마 같은 것은

격이 매우 낮아,

전혀 알아주지도 않는다오."

이에 협객은 화가 나서,

다시 많은 돈을 걸고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그 조건을 갖춘 말을 널리 구했다.

그러나 좀처럼 찾을 수 없었는데,

마침 검은 몸통에 네 발은 하얗지만

이마에 흰 점이 없는 말을

누가 가지고 왔다.

이에 협객은 찾다 못해

할 수 없이 이 말을 샀는데,

 

호사자는 다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마를 하얗게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라오.

본디 말의 상처 입은 피부에

참기름을 발라 두면,

상처가 나으면서

그 자리에 흰털이 난다오.

그러니 이 방법을 써보는 게 어떻겠소?"

 

그러자 협객은

말의 이마에 칼로 상처를 내고,

그 자리에 참기름을 발라 두었다.

헌데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흰털은 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흰 개를 잡아

그 껍질을 벗겨낸 뒤,

아교를 칠해서

말의 이마가 벗겨진 곳에 붙였다.

이러고서 며칠을 다녔는데,

하루는 비를 맞으니 개가죽이 떨어져

상처 난 말의 이마가

보기 싫게 드러나고 말았다.

이 때 마침 기생집에 가게 되니,

말의 이마를 보고 깔깔대며

크게 웃는 것이었다.

이에 화가 난 협객은

화살로 쏘아 말을 죽여 버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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