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씨(閔氏) 성을 가진
한 협객(俠客)이 있었다.
이 사람은 집안이 넉넉하여,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돈을 많이 주고서라도 꼭 손에 넣었다.
하루는 시장에 가서 백천금(百千金)을 주고
아주 좋은 말이라는
시장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
자류마(紫류馬)1) 한 필을 사 왔다.
1)자류마(紫류馬) : 밤색 빛이 나는 털을 가진 말.
그러고서 자랑을 하며 타고 다니자,
한 호사자(好事者)가 보고서
그 말을 깎아내리는 듯
이렇게 얘기했다.
"좋은 말이란
몸뚱이는 검고 이마에 흰 점이 있으며,
네 발이 흰털로 덮여 있어야
정말 좋다고 할 수 있소.
자류마 같은 것은
격이 매우 낮아,
전혀 알아주지도 않는다오."
이에 협객은 화가 나서,
다시 많은 돈을 걸고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그 조건을 갖춘 말을 널리 구했다.
그러나 좀처럼 찾을 수 없었는데,
마침 검은 몸통에 네 발은 하얗지만
이마에 흰 점이 없는 말을
누가 가지고 왔다.
이에 협객은 찾다 못해
할 수 없이 이 말을 샀는데,
호사자는 다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마를 하얗게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라오.
본디 말의 상처 입은 피부에
참기름을 발라 두면,
상처가 나으면서
그 자리에 흰털이 난다오.
그러니 이 방법을 써보는 게 어떻겠소?"
그러자 협객은
말의 이마에 칼로 상처를 내고,
그 자리에 참기름을 발라 두었다.
헌데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흰털은 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흰 개를 잡아
그 껍질을 벗겨낸 뒤,
아교를 칠해서
말의 이마가 벗겨진 곳에 붙였다.
이러고서 며칠을 다녔는데,
하루는 비를 맞으니 개가죽이 떨어져
상처 난 말의 이마가
보기 싫게 드러나고 말았다.
이 때 마침 기생집에 가게 되니,
말의 이마를 보고 깔깔대며
크게 웃는 것이었다.
이에 화가 난 협객은
화살로 쏘아 말을 죽여 버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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