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58화 - 주지를 원하는 스님 (淸凉寺僧)
청량사(淸凉寺) 상좌 스님 설중(雪中)은
주지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부처님 앞에 복을 빌면서,
늘 이렇게 기원하는 것이었다.
"원하옵건대,
평생 주지가 되게 해주소서."
이에 하루는 예불이 끝난 뒤,
부처님을 향해 간절히 청원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이시여!
겨울에 옷도 입지 않은 채,
모자도 없고 버선도 없으며
이불도 없이 얼마나 추우십니까?
게다가 오래도록 서 있기만 하고
앉지도 못하고
걸어 다니지도 못하니,
매우 고단하시지요?
또한, 하루에 밥 한 주발뿐이고
맛있는 국도 고기구이도 없으며,
더구나 술도 없으니
배가 많이 고프시지요?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깊숙한 방안에만 있고
문밖에는 나가 보지도 못하며
저잣거리 구경 한번 못하고,
아름다운 기생들 또한
만나보지 못하니
얼마나 적막한지요?
제가 주지가 되면
겨울에 털모자와 담비 겉옷에
비단 이불과 베버선 등을
모두 갖추어 드릴 것이고,
때때로 황금 장식의 가사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식사는 하루 세 끼를 드리되,
매 끼니마다
밥 한 주발과 국수 한 그릇,
떡 한 그릇과 과일 한 그릇을 드리고,
나아가 7가지 국과 7가지 고기 구이 등
1백 가지 맛있는 향찬(香饌)을
물리도록 올릴 것이며,
맛좋은 술로써
흥취가 일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대때로 별장 깊숙한
밀실에 들어가
짙은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아름다운 눈썹에 하얀 이로
교태를 부리는 예쁜 여인과 노닐 때,
술과 고기 안주를 푸짐하게 올려
밤새도록 즐길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이어서 온갖 비단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하여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할 수 있게 하고,
구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구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스님은
한참 동안 줄줄 외운 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이시여!
당신께서도
저 세상에서는
주지가 되어 태어난다면
크게 만족할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끝을 맺으니,
옆에서 듣던 사람들이
우스워서 배를 움켜쥐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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