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59화 - 흔들리는 배에는 이중탕 (用理中湯)
서울 노량진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데,
너무 많은 사람과 가축을 실었다.
이에 강 중간쯤 오니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
배가 흔들리면서
물이 넘쳐 들어와
뒤집힐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아우성을 치는데,
마침 배 안에는
스님과 무당, 맹인, 의원도 타고 있어
각기 자신들의 노력으로
배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이에 스님은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하고,
무당은 성조풀이1)를 하는가 하면,
1)성조풀이:(민간에서 무당이 성주받이를 할 때 복을 빌어 부르는 노래.
맹인은 옥추경(玉樞經)을 외우고,
의원은 이중탕(理中湯)을 조제하여
계속 부르짖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바람이 진정되고
배는 무사히 나루에 닿았다.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면서
환호를 지르는데,
앞서 배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던
네 사람은
서로들 자기의 노력에 의해
무사히 건넜다며 공을 다투었다.
먼저 맹인이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가 무사히 강을 건너게 된 것은,
모두 내가 옥추경을
열심히 외운 덕분이라오."
하면서 뽐내니,
스님이 나서며 말했다.
"나무관세음보살!
무사히 강을 건넌 것은
내 염불 덕이랍니다."
이러고는 계속 염불을 하면서
목탁을 두드렸다.
이에 무당이 나서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니오, 모두들 아니랍니다.
배가 흔들린 것은 귀신의 장난이니,
내 성조풀이에 의해
귀신이 쫓겨간 까닭이라오."
이와 같이 무당이
자기의 덕이라고 우기니,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의원이 나서면서
천천히 말했다.
"모두들 잘 들어 보시오.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 음식을 잘못 먹어
배가 울렁거리고
쿨쿨 소리를 내면서 아플 때에는
이중탕으로 다스리는 법이랍니다.
곧 사람의 배나
한강에 떠 있는 배나
모두 같은 '배'니까,
내 이중탕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지요."
이에 듣고 있던 사람들이
그 말이 맞는다고 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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