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57- 초요경과 최유강 (楚腰輕)

이원(梨園)에 초요경(楚腰輕)이란 기생이 있어서,

널리 이름이 났었다.

또한 역관(譯官) 중에는 최유강(崔有江)이란 사람이 있어,

중국어를 잘해 사신을 따라 중국을 왕래하다 보니

그곳에 까지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정씨 성을 가진 한 선비가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아니,

사신을 따라 중국에 들어갔다.

이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을 보러 나가고 방에 혼자 있는데,

중국 선비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리하여 잠시 앉아 이야기를 하던 중에  중국 선비가,

"최유강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라고 안부를 물었다.

일찍이 최유강이 역관으로 중국에 왔을 때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눈 사이라 안부를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정씨의 서툰 중국어로 듣자니

꼭 '초요경'으로 들리는지라, 잘 있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 중국 선비가 가고 얼마 후 우리 역관 이씨가 들어오자, 정씨가 말했다.

"초요경은 한낱 기생이나 그 명성이 중국에도 알려져

내게 안부까지 묻는 사람이 다 있으니,

역시 우리나라 절색 미인임을 가히 알만 하구려."

이에 역관 이씨는 머리를 흔들며 설명했다.

"아닐 것이오. 중국 선비가

천한 여자 이름을 알고 있을 리 만무하오.

아마도 잘못 들어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소."

"아니, 꼭 그렇게 말할 것도 아닙지요.

옛날 중국 황제의 부인 모모(姆母)라든가,

제나라 선왕의 부인 무염(無鹽) 같은 여자는

얼굴이 추하게 생겨 그 이름이 만고에 전해지고 있으니,

초요경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중국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지는 게

어찌 의심할 일이라 하겠소이까?"

정씨는 결코 자신이 잘못 들었거나 오해한 일이 아니라고 우겼다.

 

뒷날 역관 이씨는 정씨와 이야기한 그 중국 선비를 만나 물었다.

"듣자하니, 대인께서는 우리나라의 보잘 것 없는 기생

초요경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아시는지요?'

이에 중국 선비는 크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물은 것은 역관 최유경이지 초요경이 아닙니다.

아마도 정씨 관인(官人)이 초요경을 사랑해서,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어 그렇게 들었나 봅니다.

역사적인 사실에도 '풍성학려(風聲鶴唳)'

즉 바람소리나 학 울음소리가 

적국인 진나라 군사들의 외침 소리로 들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면서 두 사람은 마주보며 웃었더라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