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62- 관공의 말재주 (冠工利口)

옛날에 머리에 쓰는 관을

잘 만드는 관공(冠工) 총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정에서 승지(承旨)가 불러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너는 여러 가지 관을

잘 만드는 것으로 이름나 있으니,

우리 전하께서 쓰실 왕관 하나를

정성 들여 제작하도록 하라."

이에 관공은

임금의 머리 치수를 받아 가지고 물러나

열심히 왕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승지 앞에 나타나 왕관을 바치니,

승지는 그것을 받아서

내전으로 들어가

전하께 아뢰고 머리에 맞는지

써보시라고 했다.

왕관을 살펴본 임금은

매우 훌륭하게

잘 만들었다고 칭찬한 다음,

머리에 써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관은 매우 정교하게 잘 만들었으나,

내 머리가 커서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구나.

다시 가지고 나가서,

둘레를 조금만

크게 늘려 보라고 이를지어다."

그러자 승지는

곧 관을 받들어 가지고 나와서

관공에게 건네며 다시 명령했다.

"이 관은 매우 잘 만들었다고

전하께서 칭찬하시었느니라.

하지만 둘레가 약간 작으니

가지고 가서 좀더 넓혀 오도록 하라."

이에 관공은 왕관을 받아들고 돌아서서

자기 머리에 쓰고 나가는 것이었다.

이를 본 승지는 화를 내면서

그를 다시 불러

왕관을 빼앗아 들고는,

"이 놈아! 전하께서

한번 옥체에 맞추어 보신 관이거늘,

네 놈이 감히 머리에 쓰고 가다니

그런 불경스러운 행동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당연히 두 손으로 받들어

들고 가야 했느니라."

"예, 황송하옵나이다.

소인, 이 왕관은 전하께서 쓰실 관이기에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하나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겨드랑이에 끼고 가도 안 될 것 같고,

들고 가도 안 될 것 같고,

안고 가도 안 될 것 같았사옵니다.

그래서 이고 가야겠다고

생각하였사온데,

왕관을 무엇으로 이겠습니까?

뒤집어서 이겠습니까?

할 수 없이 바로 이다보니

저절로 머리에 쓴 것처럼 되었사오며,

소인이 쓰려고 해서

쓴 것이 아니옵나이다."

이에 승지는 참으로

재치있는 말이라고 하면서,

화를 풀고 웃으며

받들어 들고 가라고 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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