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머리에 쓰는 관을
잘 만드는 관공(冠工) 총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정에서 승지(承旨)가 불러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너는 여러 가지 관을
잘 만드는 것으로 이름나 있으니,
우리 전하께서 쓰실 왕관 하나를
정성 들여 제작하도록 하라."
이에 관공은
임금의 머리 치수를 받아 가지고 물러나
열심히 왕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승지 앞에 나타나 왕관을 바치니,
승지는 그것을 받아서
내전으로 들어가
전하께 아뢰고 머리에 맞는지
써보시라고 했다.
왕관을 살펴본 임금은
매우 훌륭하게
잘 만들었다고 칭찬한 다음,
머리에 써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관은 매우 정교하게 잘 만들었으나,
내 머리가 커서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구나.
다시 가지고 나가서,
둘레를 조금만
크게 늘려 보라고 이를지어다."
그러자 승지는
곧 관을 받들어 가지고 나와서
관공에게 건네며 다시 명령했다.
"이 관은 매우 잘 만들었다고
전하께서 칭찬하시었느니라.
하지만 둘레가 약간 작으니
가지고 가서 좀더 넓혀 오도록 하라."
이에 관공은 왕관을 받아들고 돌아서서
자기 머리에 쓰고 나가는 것이었다.
이를 본 승지는 화를 내면서
그를 다시 불러
왕관을 빼앗아 들고는,
"이 놈아! 전하께서
한번 옥체에 맞추어 보신 관이거늘,
네 놈이 감히 머리에 쓰고 가다니
그런 불경스러운 행동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당연히 두 손으로 받들어
들고 가야 했느니라."
"예, 황송하옵나이다.
소인, 이 왕관은 전하께서 쓰실 관이기에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하나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겨드랑이에 끼고 가도 안 될 것 같고,
들고 가도 안 될 것 같고,
안고 가도 안 될 것 같았사옵니다.
그래서 이고 가야겠다고
생각하였사온데,
왕관을 무엇으로 이겠습니까?
뒤집어서 이겠습니까?
할 수 없이 바로 이다보니
저절로 머리에 쓴 것처럼 되었사오며,
소인이 쓰려고 해서
쓴 것이 아니옵나이다."
이에 승지는 참으로
재치있는 말이라고 하면서,
화를 풀고 웃으며
받들어 들고 가라고 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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