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던 한 양반 가문이
가세가 기울어 먹고 살 방도가 없자,
신주(神主)를 잘 챙겨
산골 마을로 이사를 갔다.
한데 그 마을은 모두
넉넉하게 살았지만,
글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뿐더러,
예의범절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 양반이 이사를 온 며칠 후,
마침 이웃집에서 소상(小祥) 제사가 있었다.
이에 음식을 많이 마련해 놓은
노인이 생각하기를,
'다른 지역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제사 때는 반드시
신주를 앞에 모셔 놓고
제를 올린다고 하던데,
우리 마을에는 아무도
신주를 모시고 지내는 집이 없으니
한심하지 않은가!
얼마 전 이사 온 양반 집에는
신주를 받들고 온 것 같으니,
그 신주를 좀 빌려다가
제사를 모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라고 혼자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
곧 노인은 아들을 시켜,
양반 집에 가서
신주를 좀 빌려 오라고 했다.
이에 아들이 양반 집으로 가서,
소상 제사를 모시려고 하는데
신주가 없으니
좀 빌려 달라고 간청하자,
양반은 속으로 웃으면서
신주함을 내주었다.
그리하여 아들이 신주함을 빌려 오니,
노인에서부터 형제들이며 친척 사람들이
모두 신주함을 처음 보는 터라,
서로 돌려가며
기이하게 생겼다고 구경을 했다.
그리고는 어느 쪽이 위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뾰족한 쪽이 위라는 사람,
납작한 판이 붙은 데가
위라는 사람 등
각각 의견이 다른 데다,
모두 자기 뜻을 주장해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한동안 옥신각신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이 집 노인이
신주함을 뺏어 쥐면서 소리치기를,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모두 갓을 쓰는 법이다.
여기 판자가 덮힌 부분이
갓을 쓴 것처럼 보이니
아마도 위가 되고,
뾰족한 끝이 아래가 분명한 것 같다."1)
하고 유권 해석을 내리는 것이었다.
주1)신주함은 위쪽이 뾰족하게 되어 있고,
아래쪽은 안정적으로 서 있도록 받침 판자가 받쳐져 있는데,
이를 갓으로 본 것임.
이렇게 소상 제사를 모시면서
신주함의 뾰족한 끝을
아래로 하여 세우려니
가만히 서 있지 않자,
여러 가지 궁리를 하다가
마침내 시루떡에
깊이 꽂아 놓고 제사를 모셨다.
그리고 신주함을 돌려주면서
이렇게 인사를 했다.
"신주를 빌려 주셔서
소상 제사를 잘 모셨습니다.
내년 대상 때에도
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양반은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하고
신주를 받아보니,
그 뾰족한 끝에 시루떡 팥고물이
많이 묻어 있었다.
이를 본 양반은
신주를 바로 세워 놓으면서 말했다.
"아버님, 소자 가난하여
근래 제대로 대접도 해드리지 못했는데
오늘 포식을 하셔서 다행이옵니다.
명년 이 날이 돌아오면
또한 떡을 많이 드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후로 이 집에서는
매년 양반 집 신주를 빌려가서
제사를 모시는 것이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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