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80화 - 석고로 빚은 말을 타다 (乘泥塑馬)
사람이 죽으면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영혼이 남아 활동한다는 것이
헛된 말이 아님을 입증하는
중국의 이야기 한 토막이 전해진다.
중국의 북송(北宋) 말,
신흥 세력인 원나라가
황제인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을
인질로 잡아 죽이면서
북송을 압박할 무렵이었다.
뒷날 남송(南宋)의 첫 황제가 된 고종이
당시에는 북방의 강왕(康王)으로 나가 있었는데,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몰래 도망쳐
말도 없이 걸어서 남쪽으로 달아났다.
이 사실을 안 원나라는
그를 잡으라고 급히 추격병을 보냈다.
이때 강왕은 달아나다 지쳐
최부군(崔府君)의 묘 아래에서
잠시 쉬는 동안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크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속히 말에 오르라!
추격병이 가까이 오고 있다."
호통 소리에 잠을 깬
강왕은 말이 없으니,
엉겁결에
'말이 어디 있어야 타지.'
하고 중얼거렸다.
그랬더니 또다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네 옆에 말을 준비해 놓았으니
속히 타도록 하라."
이 소리에 강왕은 얼른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과연 근처에 말 한 필이 있어,
급히 타고는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
7백 여리를 내려왔다.
그렇게 남쪽으로 내려와서는
말이 꼼짝을 하지 않아 살펴보자,
최부군의 사당 안에 세워 놓은
소마(塑馬)1)였더라 한다.
1)소마(塑馬) : 석고로 빚어 만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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