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90- 헛소리라고 둘러대기 (談語粧撰)

어떤 시골 생원이 먼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한 주막에 들렀다.

행장을 풀고 뜰에 나와 보니

마구간 옆에

새로 만들어진 작두가 있는데,

매우 좋아 보여

슬그머니 탐이 났다.

1)작두 : 소나 말에게 먹일 풀이나 짚을 써는 기구.

그리하여 날이 어두워지자

생원은 측간에 들어가

문을 닫고 앉아서,

자기를 따라온 종을 불러

측목(厠木)2)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2)측목(厠木) : 옛날에는 휴지가 없어 측간에 작은 나무 토막을 마련해 놓고 일을 본 뒤 그것을 항문에 대고 살그머니 돌려 닦았는데, 이 막대기를 말함.

얼마 후 측간 앞에 발소리가 나더니,

문이 조금 열리면서 손만 내밀어

측목을 전해 주는 것이었다.

곧 생원은 자기 종인 줄 알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마구간 옆에 보니

좋은 작두가 있더구나.

나중에 몰래 그것을 가져다가

우리 짐 속에 감춰 두도록 해라.

집에 가져가면

아주 요긴하게 쓰일 것 같구나."

그런데 측목을 가져온 사람은

자기 집 종이 아니라

주막집 주인이었으니,

 

주인 역시 작은 목소리로,

"손님, 소인 집에도

다만 그 작두 하나뿐인데,

가져가시면 끊임없이 드나드는

저의 집 손님의 말 먹이를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그 작두는

가져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갑자기 들리는

주인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생원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너희 주막 측간에는

무슨 귀신이 있단 말이냐?

내 공연히 헛소리가 나오니

이 무슨 괴이한 일이냐?"

이에 주막집 주인은

웃음을 참으며 물러났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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