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에 한 상주가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이 상주는 마당가에 빈소를 따로 지어
사방을 짚으로 둘러놓았다.
그리하여 빈소 안에는
짚을 얽은 새끼줄들이
군데군데 늘어져 있었다.
때는 마침 여름이라,
한낮이 되니
뙤약볕이 무섭게 내리쪼여
빈소 안은 마치 찜통 같았다.
이에 상주는,
'이렇게 더운데
설마 문상객이 오진 않겠지?'
라고 생각하여,
입고 있던 상복과 허리에 두른 띠며
머리에 쓴 두건 등을 벗어
빈소의 늘어진 새끼줄에 걸어 두고,
얇은 속옷만 입은 채
부채질을 하며 쉬고 있었다.
그러나 상주의 생각은
그만 빗나가고 말았다.
한 손님이 이런 대낮에
땀을 뻘뻘 흘리며
문상을 하러 온 것이었다.
곧 상주는 그 사람을
잠시 머물게 하고는,
급히 상복을 입고 허리에 띠를 두른 뒤
머리에는 두건을 썼다.
이러는 과정에서
그만 빈소에 늘어뜨려 놓았던 새끼줄이
띠와 함께 휩쓸려
허리에 둘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상주는 이것을 전혀 모른 채
문상객과 함께 곡을 한 뒤
마주 서서 절을 하는데,
마치 뒤에서 누눈가가 잡아당기는 듯하여
도저히 허리를 굽힐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상객은 이미 바닥에 엎드려
머리가 땅에 닿으려 하니,
상주는 당황하여
허리를 힘껏 당기면서
급히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뒤에 매여 있던
새끼줄이 끊어지면서,
잡아당기는 허리의 힘에 의해
몸이 앞으로 쏠려,
그 머리가 문상객을 향해 돌진한 것이다.
이 때 마침 문상객은
절을 하고 머리를 드는 순간이라,
곧 상주의 머리에 받쳐
이마가 부어올랐다.
하지만 새끼줄에 매여
이렇게 된 줄을 모르는 문상객은,
상주가 고의로 머리를
걷어찼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상주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하고 돌아가는데,
마침 문상하러 오는
다른 한 친구를 만났다.
이에 문상을 하고 나온 친구가 말했다.
"자네 문상하러 가거든 조심하게나.
상주가 미쳤는지
문상객을 발로 걷어차니,
그거 정말 어이가 없더구먼."
이에 그 친구는 문상하러 가서
신주 앞에 곡을 하고 절을 한 뒤
상주를 살피니,
머리를 숙이고 절을 하려 하기에
이 친구는 물러나 앉으면서 말했다.
"이보게, 난 상주에게
발로 차일 사람은 아니라네."
이 말에 상주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면서
매우 미안해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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