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ko.wikipedia.org/wiki/%EC%9E%90%EC%9E%AC%EC%95%94

 

자재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https://ko.wikipedia.org/wiki/%EC%9B%90%ED%9A%A8

 

원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원효일본 교토 고산사의 원효 진영법명원효(元曉)출생617년신라 금성 불지촌(佛地村) 율곡(栗谷)입적686년 4월 28일(음력 3월 30일) (70세)혈사(穴寺)속명설사(薛思)아명(兒名) : 서당(誓幢) · 신당(新幢) · 모(毛)저작《금강삼매경론》《대승기신론소》《해심밀경소》《열반경종요》외칭호소성거사(小性居士, 小姓居士) · 복성거사(卜性居士) · 서곡사미(西谷沙彌) · 백부논주(百部論主) · 해동법사(海東法師) · 해동종

ko.wikipedia.org

 

https://ko.wikipedia.org/wiki/%EC%9A%94%EC%84%9D%EA%B3%B5%EC%A3%BC

 

요석공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요석공주(瑤石公主)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보희부인(寶姬夫人)의 딸로 김흠운(金歆運)과 원효(元曉)의 아내이자 설총(薛聰)의 어머니이다. 삼국사기와 화랑세기에서는 원효와 만나기 전에 김흠운(金歆運)에게 시집 갔으나 김흠운이 655년 백제의 조천성(助川城, 현재의 옥천)을 공략하다 전사하여 일찍 과부가 되었으며 소생으로 두 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둘째 딸이 자신의 누이이자 신라 30대 국왕인 김법민(金法敏)의 큰

ko.wikipedia.org

결혼 생활[편집]

하루는 마음이 들떠 거리에 나가 노래하기를,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느냐,

내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로다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라고 하니 사람들이 듣고 그 뜻을 몰랐으나, 태종무열왕이 이를 듣고

"대사가 귀부인을 얻어 슬기로운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此師殆欲得 貴婦産賢子之謂 爾國有大賢 利莫大焉)"라며

요석궁의 홀로된 둘째 공주(요석공주)를 짝되게 하니, 과연 공주가 아이를 배어 설총[8] 을 낳았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A4%EC%B4%9D

 

설총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직책}}} 신상정보 국적 신라 출생일 658년? 출생지 경상북도 경산시 사망일 미상 학력 한림 부모 원효 / 요석공주 배우자 단초 유씨, 이름 미상 별명 자는 총지, 호는 빙월당, 소성거사, 작호는 홍유후 종교 불교->유교 웹사이트 설총 설총(薛聰, 658년? ~ ?)은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자는 총지(聰智), 호는 빙월당(氷月堂)이다.[1] 중국 한자를 신라어로 치환, 해석한 이두를 창시하였다. 처음 불

ko.wikipedia.org

설총(薛聰, 658년? ~ ?)은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는 총지(聰智), 호는 빙월당(氷月堂)이다.[1] 

중국 한자를 빌어 우리말인 신라어 를 표기한 이두를 창시하였다. 삼국유사의 향가는 모두 이두로만 표기되었다.

 

https://kydong77.tistory.com/18026

 

양주동 선생님/ 향가 25수 해석

아래 포스트에서 고려가요 정리한 것을 보니 향가연구로 일세를 풍미한 양주동 선생님을 회억한 글이 생각나 재구성해 올립니다. http://kydong77.tistory.com/18023 소창진평이 시작한 향가 연구의 오류를..

kydong77.tistory.com

 

 

 

 

 

10/9(수) 오르산우회에서 회원 12명이 소요산 자재암에 가다.

흔히 산신각이라 부르는 전각이 사찰마다 존재한다. 불교가 전래하던 민간신앙을 유지해 온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무당이라면 덮어놓고 미신이라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상 진짜 무당은 제사장의 전통을 계승한 분들이다. 말하자면 단군은 제사장이셨다. 한자 표기에서 檀이 아니라 제단 壇이 바른 표기다. 제사장은 노자가 말하는 하늘의 이치, 곧 '大道'를 터득한 분이시다. 통치자는 데모꾼들 모아 민의라 떠벌릴 게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여 이에 걸맞게 통치하는 것이 바른 통치다. 단군조차 부정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통일에 대한 체제 논의를 하겠다는 건지 그것이 알고 싶다.

참고로, 산신각 그림의 맨우측 그림의 하단에 '산신님'이라 쓴 분이 단군님이시다. 칠성전 그림은 인간이 삼태성에서 생명을 부여 받아 칠성판을 덮으면 그 사람은 근원지로 회귀한다. 독성전이라 쓴 그림의 설산 수도상이 인상적이었다. 아래 조각보다는 형상화가 부족하지만.

 

https://kydong77.tistory.com/18704

 

壇君/ 弘益人間

https://www.youtube.com/watch?v=eGIqes-kVOU 祭司長 壇君은 인간 세상 사람들의 福祉와 利益을 기도했다. 이것이 弘益人間의 본질이다. https://kydong77.tistory.com/8033 단군신화 해설 壇君神話 해설 [은자..

kydong77.tistory.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