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공손축(公孫丑) 상(上)
1. 관중안자(管仲晏子)
公孫丑問曰夫子當路於齊
(공손축문왈부자당로어제)하시면
: 공손추가 물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제나라에서 요직에 처하시게 되면
管仲晏子之功
(관중안자지공)을 : 관중, 안자의 공적을
可復許乎
(가복허호)잇가 : 다시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孟子曰子誠齊人也
(맹자왈자성제인야)로다 : 맹자가 대답해 말하기를, 자네야 말로 참으로 제나라 사람이구나.
知管仲晏子而已矣
(지관중안자이이의)오니 : 관중과 안자를 알 뿐이니,
或
(혹)이 : 어떤 사람이
問乎曾西曰吾子與子路孰賢
(문호증서왈오자여자로숙현)고 : 증서에게 자네와 자로는 누가 어진고 하고 물으니
曾西蹴然曰吾先子之所畏也
(증서축연왈오선자지소외야)니라 : 증서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하기를, 우리 선친께서도 두려워하던 바이다.
曰然則吾子與管仲孰賢
(왈연칙오자여관중숙현)고 : 또 묻기를 그렇다면 자네와 관중은 누가 더 어진고
曾西艴然不悅曰爾何曾比予於管仲
(증서불연불열왈이하증비여어관중)고 : 증서가 얼굴을 붉히며 불유쾌해서 말하기를 네가 어떻게 나를 관중에다 비기느냐
管仲得君
(관중득군)이 : 임금의 신임을 얻기를
如彼其專也
(여피기전야)며 : 저렇듯이 전적으로 했으며
行乎國政
(행호국정)이 : 국정을 행하기를
如彼其久也
(여피기구야)로되 : 저렇듯이 오래 했지만
功烈
(공열)이 : 공적은
如彼其卑也
(여피기비야)하니 : 저와 같이 낮으니
爾何曾比予於是
(이하증비여어시)오하니라 : 자네가 어떻게 나를 이런 사람에게 비교하는가 라고 하였는데
曰管仲
(왈관중)은 : 그렇게 말한다면, 관중은
曾西之所不爲也
(증서지소불위야)어늘 : 증서조차 비교하려 하지 않는데
而子爲我願之乎
(이자위아원지호)아 : 자네는 나를 관중과 비교하려고하는 것이냐
曰管仲
(왈관중)은 : 공손추가 말하기를, 관중은 자기
以其君覇
(이기군패)하고 : 임금이 패자가 되게 하고
晏子
(안자)는 : 한자는
以其君顯
(이기군현)하니 : 자기 임금으로 하여금 이름을 나타나게 했는데
管仲晏子
(관중안자)도 : 관중과 안자는
猶不足爲與
(유불족위여)잇가 : 그래도 같이 할기에 족하지 않습니까
曰以齊王
(왈이제왕)이 : 맹자가 말하기를 제나라로서는 왕자가 된다는 것은
由猶反手也
(유유반수야)니라 : 손을 뒤집는 것과 마찬가지이니라.
曰若是則弟子之惑
(왈약시칙제자지혹)이 : 공손추가 말하기를, 이렇게 되면 제자의 의혹이
滋甚
(자심)이니이다 : 더욱더 커집니다.
且以文王之德
(차이문왕지덕)으로 : 또, 문황의 덕을 가지고도
百年而後崩
(백년이후붕)하시되 : 백 년 후에 죽었지만
猶未洽於天下
(유미흡어천하)하여 : 오히려 천하에 흡족하지 못했었고
武王周公
(무왕주공)이 : 무왕과 주공이
繼之然後
(계지연후)에 : 계승한 뒤에야
大行
(대행)이어늘 : 었크게 행해졌는데
今言王若易然
(금언왕약역연)하시니 : 이제 말씀하기시기를 왕자 되는 것이 쉬운 듯이 하시니
則文王
(칙문왕)은 : 그렇다면 문왕도
不足法與
(부족법여)잇가 : 본받을 만하지 못한 것입니까.
曰文王
(왈문왕)을 : 맹자가 말씀하시기를 문왕이야
何可當也
(하가당야)리오 : 어떻게 당할 수 있겠느냐
由湯
(유탕)으로 : 탕으로부터
至於武丁
(지어무정)히 : 무정에 이르기까지
賢聖之君六七(현성지군육칠)이 : 어질고 성스러운 임금이 6, 7명이나
作(작)하여 : 일어나
天下歸殷
(천하귀은)이 : 천하가 은나라로 돌아간 지가
久矣
(구의)니 : 오래이니
久則難變也(구칙난변야)라 : 오래 되면 변하기 어려운 것이다.
武丁(무정)이 : 따라서 무정이
朝諸侯有天下
(조제후유천하)하되 : 제후들의 조공을 받고 천하를 점령하는 것이
猶運之掌也
(유운지장야)하시니 : 소바닥을 움직이는 것같이 하였다.
紂之去武丁
(주지거무정)이 : 주와 무정과의 간격이
未久也
(미구야)라 : 오래되지 않아서
其故家遺俗
(기고가유속)과 : 오랜 가문에 남은 풍속과
流風善政
(유풍선정)이 : 흘러 내려오는 전통과 착한 정사가
猶有存者
(유유존자)하며 : 아직도 남은 것이 있었고
又有微子微仲王子比干箕子膠鬲
(우유미자미중왕자비간기자교격)이
: 또 미자와 미중과 왕자 비간과 기자와 교력이
皆賢人也
(개현인야)니 : 다 어진 사람들로서
相與輔相之
(상여보상지)라 : 서로 도왔다
故
(고)로 : 그래서
久而後
(구이후)에 : 오랜 뒤에야
失之也
(실지야)하니 : 나라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니
尺地
(척지)도 : 한 자 되는 땅도
莫非其有也
(막비기유야)며 : 그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고
一民
(일민)도 : 한 사람의 백성도
莫非其臣也
(막비기신야)어늘 : 그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거늘
然而文王
(연이문왕)이 : 그러나 문왕이
猶方百里起
(유방백리기)하시니 : 오히려 백 리의 땅을 가지고 일어났으니
是以難也
(시이난야)니라 : 이런 까닭으로 어려운 것이니라.
齊人有言曰雖有知慧
(제인유언왈수유지혜)나
: 제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하여도
不如乘勢
(불여승세)며 : 형세를 잘 이용하는 것만 같지 못하며,
雖有鎡基
(수유자기)나 : 비록 농기구가 있다 할지라도
不如待時
(불여대시)라하니 : 농사철을 기다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는데
今時則易然也
(금시칙역연야)니라 : 지금 이때야말로 그렇게 하기 쉬우니라
夏后殷周之盛
(하후은주지성)에 : 하나라와 은나라 주나라가 전성할 적에
地未有過千里者也
(지미유과천리자야)하니 : 땅이 천 리를 넘지 못했으나
而齊有其地矣
(이제유기지의)며 : 제나라는 그만한 땅을 가지고 있고
谿鳴狗吠
(계명구폐)가 :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가
相聞而達乎四境
(상문이달호사경)하니 : 서로 들려서 사방에 다 통하는데
而齊有其民矣
(이제유기민의)니 : 제나라는 그만한 백성을 가지고 있으니
地不改辟矣
(지불개벽의)며 : 땅이 더 넓지 아니하고
民不改聚矣
(민불개취의)라도 : 백성이 더 많아지지 않더라도
行仁政而王
(행인정이왕)이면 : 인한 정치를 행하고 왕정을 베풀면
莫之能禦也
(막지능어야)리라 : 막아낼 사람이 없으니라
且王者之不作
(차왕자지불작)이 : 또, 왕자가 일어나지 못한 것이
未有疏於此時者也
(미유소어차시자야)하며 : 이때와 같이 오랜 적이 없으며
民之憔悴於虐政
(민지초췌어학정이) : 백성들이 사나운 정사에 시달림을 받은 것이
未有甚於此時者也
(미유심어차시자야)하니 : 이때와 같이 심한 적이 없었으니
飢者
(기자)에 : 굶주린 사람에게
易爲食
(역위식)이며 : 사를 대접하기 쉽고
渴者
(갈자)에 : 식목마른 사람에게
易爲飮
(역위음)이니라 : 마실 것을 대접하기가 쉬우니라
孔子曰德之流行(공자왈덕지유행)이
: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덕의 흘러 퍼져나가는 것이
速於置郵而傳命
(속어치우이전명)이라하시니 : 파발을 두고 명을 전달하는 것보다 빠르다 하니,
當今之時
(당금지시)하여 : 금 이때에 이르러서
萬乘之國
(만승지국)이 : 지만승의 나라가
行仁政
(행인정)이면 : 인한 정치를 행하면
民之悅之猶解倒縣也
(민지열지유해도현야)리니 : 백성들이 반가워하는 것이 거꾸로 매달린 것을 풀어놓아 주는 것과 같이 여긴다
故 事半古之人
(고사반고지인)이요 : 그래서 일은 옛날 사람의 절반밖에 안 되고
功必倍之
(공필배지)는 : 효과는 반드시 갑절이나 늘어나는 것은
惟此時爲然
(유차시위연)하니라 : 오늘 이때만이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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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정치와 패도정치는 제왕이 나라를 통치하던 왕조시대(王朝時代)의 두 정치사상이다. 공자와 그 제자인 유가(儒家)가 왕도정치를 이상적 정치 모델로 삼았다면, 법가(法家)와 최고 권력자 계층은 패도정치를 지지하였다.
(1) 왕도정치
맹자에 따르면 왕도정치는 인(仁 : 사랑)과 의(義 : 올바름)를 통해 백성을 교화하고 천하를 다스리는 정치이다. 패도정치는 천하를 장악하기 위해 권세와 무력을 사용하나, 맹자의 관점에서는 인정(仁政)이야말로, 그러한 권세와 무력에 비교되지 않는 강력한 힘이었다.
“천하에 올바른 도(道)가 행해지면 덕(德)이 없는 사람이 덕(德) 있는 사람을 섬기고, 현명하지 않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을 섬긴다. 반면 천하에 올바른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면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고,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를 섬기게 된다. 이 두 가지는 자연의 이치로서, 이것을 따르는 자는 존속하나 그렇지 않은 자는 멸망한다.” - 맹자, 『맹자』 「이루 상」편
순자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패도정치를 비판하고 왕도정치를 이상적 통치 원리로 간주하였다. 그에 따르면 패자는 강한 무력을 동원하여 이웃 나라를 정벌하려 하나, 이 과정에서 민심을 잃고 다른 제후들의 원망을 얻는다. 즉 힘만으로 강대국이 되려 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며 위험하기까지 한 것이다. 패자보다는 왕자가 더 강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 왕자의 수단은 힘이 아닌 인(仁) 의(義), 위엄이다. 인과 의로 사람을 대하므로 모든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돌릴 수 있으며, 위엄을 통해 싸움 없이 상대의 굴복을 얻어낼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왕도정치를 무너뜨린 패도정치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권세와 무력으로 세상을 다스리려 한 패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춘추오패(春秋五覇), 즉 제환공, 진문공, 진목공, 초장왕, 월부차이다. 맹자는 이 오패의 패도정치 자체를 입에 담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겼으며 그들을 혼란과 분쟁의 장본인으로만 여겼다. 맹자보다 더 혼란스런 시대를 살았던 순자는 그만큼 더 오패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2) 패도정치
패도정치를 주장한 대표적 인물로는 법가의 상앙과 한비자가 있다. 이들은 인의(仁義)를 강조하는 왕도정치로는 천하의 통치가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힘에 의한 통치를 주장했다.
상앙에 따르면 통치자가 아무리 인과 의로 사람들을 대하더라도 결국 모든 사람이 인과 의를 따르게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통치자에게 중요한 것은 오히려 힘과 무력, 부국강병이다. 그리고 부국강병을 위해 백성 모두가 농사와 전쟁에 전념하게 하려면 인의에 의한 통치보다는 법(法)에 의한 통치가 요구된다.
한비자(韓非子) 역시 왕도정치의 무용성을 지적하고 천하의 모든 일이 힘에 의해 다스려짐을 역설하였다.
“상대 국가와 비슷한 힘을 가진 나라의 통치자는 상대편이 자기 나라의 도의(道義)를 떠받든다고 해도, 상대 국가를 굴복시켜 신하로 삼기 어렵다. 그러나 속국(屬國)의 제후라면 비록 종주국(宗主國)의 통치자가 하는 일에 반대한다 해도, 반드시 공물(貢物)을 가지고 들어오게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쪽의 힘이 강하면 사람들은 이쪽으로 굽혀 들어오고, 이쪽의 힘이 약하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람을 보내 굽히게 된다. 그래서 현명한 통치자는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 한비자, 『한비자』 「현학(顯學)」편
실제로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은 왕도정치보다는 이러한 패도정치를 선호했다. 예를 들면 위(魏)나라(양나라)의 혜왕(惠王)이나 제(齊)나라의 선왕(宣王) 모두 맹자를 만났을 때 패도정치에 대해서 먼저 관심을 보였고 그에 대해 물었다. 그만큼 당대는 침략과 정복전쟁으로 인한 혼란기였다. 한비자는 이런 점에서 인의를 국가 통치에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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