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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 태갑중(太甲中)(1)
이편 역시 이윤이 탕왕의 손자인 태갑에게 훈계한 글이다. 태갑이 왕위에 올랐으나, 탕왕의 덕을 지키려
하지 않고 행실이 극히 밝지못한 점이 많았다. 이때의 재상은 이윤이었는데, 누차 태갑을 훈계하였으나,
태갑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윤은 태갑이 탕왕의 덕을 그르친다고 하여 태갑을 동(桐)이란 곳, 즉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 서남쪽으로 내쫓고 스스로 섭정(攝政)을 하게되었다. 태갑이 자
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윤의 훈계를 받아 들여 근신 하기를 3년, 이윤은 태갑을 박으로 다시 맞아 들이
고 정권을 넘겨주었다. 이윤은 다시 예전처럼 태갑을 보필하였으며, 태갑을 훈계하여 지은 것이 바로 이
태갑인 상·중·하편이다. 태갑은 이후 조부(祖父)의 유덕(遺德)을 받드는데 힘써서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태종(太宗)"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이 태갑 3편 역시 <위고문상서>
에만 수록이 되어 있다.
[1] 태갑이 죄를 뉘우치자 이윤이 다시 맞아 들이다.
惟三祀(유삼사) 十有二月朔(시유이월삭)
태갑 3년, 12월 초하룻날에,
伊尹以冕服(이윤이면복) 奉嗣王歸于亳(봉사왕귀우박)
이윤은 면복(冕服)을 입고 가서, 사왕인 태갑을 모시고 박으로 돌아 왔다.
作書曰(작서왈)
그리고 글을 지어 말했다.
民非后(민비후) 罔克胥匡以生(망극서광이생)
"백성들은 왕이 아니면, 서로 바로잡아 가면서 살 수가 없고,
后非民(후비민) 罔以辟四方(망이벽사방)
임금은 백성들이 아니면, 세상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皇天眷佑有商(황천권우유상)
황천이 돌보시고 보호하시어 상나라가 있게 하시고,
俾嗣王克終厥德(비사왕극종궐덕)
뒤를 이은 왕께서 끝내 왕덕을 갖추게 하시니,
實萬世無疆之休(실만세무강지휴)
실로 만세토록 한량없는 경사입니다"
王拜手稽首曰(왕배수계수왈)
왕은 손으로 땅을 짚고 절하며 말하였다.
予小子不明于德(여소자불명우덕)
"이 보잘것 없는 사람이 덕이 밝지 못하여,
自底不類(자저불류)
스스로 어리석어 그렇지를 못하였습니다.
欲敗度(욕패도) 縱敗禮(종패례)
욕망으로 법도를 망치고, 방종함에 예의를 망쳐,
以速戾于厥躬(이속려우궐궁)
죄가 빨리 이 몸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天作孽猶可違(천작얼유가위)
하늘이 내린 화는 오히려 피할 수가 있으나,
自作孽不可逭(자작얼불가환)
스스로 만든 재앙으로부터는 달아날 수가 없습니다.
旣往背師保之訓(기왕배사보지훈)
이전에는 스승과 보호자의 훈계를 저버리고,
弗克于厥初(불극우궐초)
처음에는 잘하지 못하였으나,
尙賴匡救之德(상뢰광구지덕)
바로잡아 구해 주시는 덕을 더욱 의지하여,
圖惟厥終(도유궐종)
끝까지 잘 다스려 보고자 합니다"
*태갑중편은 태갑이 진실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덕을 갖추게되자, 이윤이 태갑을 도읍지인 박땅으로
다시 모셔와서 다시 좋은말로 타이르고, 태갑역시 자신의 허물을 책하고 앞으로의 다짐을 말하는 대목
이다. 태갑상편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태갑은 그의 숙부인 중인의 뒤를 이어서 왕위에 오른 탕의
손자이다. <상서>에서는 상고사의 유일한 쟈료라고 말할 수 있으나, <위고문상서>에 실린 각 편은 그
신빙성이 희박한 것인만큼 역사를 전혀 도외시할 수가 없다. 때문에 대륙의 상고사에는 태갑이 즉위한
후 3년 동안 탕왕의 법을 지키지 않아서 이윤이 동(桐) 땅으로 보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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