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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시라도 편안하고 태만하려 하지 마십시오.
伊尹拜手稽首(이윤배수계수) 曰(왈)
이윤은 큰 절을 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修厥身(수궐신) 允德協于下(윤덕협우하)
"몸으로 닦아, 진실한 덕으로 백성들과 화합을 한다면,
惟明后(유명후)
오직 명철한 임금이 될 것입니다.
先王子惠困窮(선왕자혜곤궁)
선대의 탕왕께서는 곤궁한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셨으니,
民服厥命(민복궐명) 罔有不悅(망유불영)
그분의 명에 복종하였으며,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並其有邦(병기유방) 厥鄰乃曰(궐린내왈)
그분과 더불어 나라를 다스리던 제후국의, 이웃 백성들도 말하기를,
徯我后(혜아후)
‘우리 임금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后來無罰(후래무벌)
임금이 오시면 벌을 받는 일이 없어진다’고들 하였습니다.
王懋乃德(왕무내덕) 視乃厥祖(시내궐조)
임금께서는 스스로의 덕에 힘을 쓰시고, 조부를 본받으시어,
無時豫怠(무시예태)
한시라도 편안하고 태만하고자 하지 마십시오.
奉先思孝(봉선사효)
선조를 받듦에 있어서는 효도를 생각하시고,
接下思恭(접하사공)
신하를 대함에 있어서는 공손함을 생각하소서.
視遠惟明(시원유명) 聽德惟聰(청덕유총)
멀리 보시면서 확실하게 보시고, 덕있는 말에 귀를 밝게 하소서.
朕承王之休無斁(짐승왕지휴무역)
이몸은 임금의 훌륭함을 받드는 데 있어서 싫어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 절에서는 이윤이 왕의 치하에 답함과 아울러, 당부를 하고 있다. 태갑의 조부인 탕왕은 사랑으로 불
쌍한 백성들을 대하셨으므로, 마백성들이 그를 따랐다는 사실을 상기 시키고, 조부인 탕왕의 덕을 본받
게 하였다. 이윤의 이러한 간곡한 정성이 열매를 맺어 태갑이 임금으로서 덕을 갖추게 되었음을 우리는
이 편을 통하여 느낄 수가 있다. 태갑은 재위 33년간 이윤의 당부에 어긋나지 않게, 힘써 덕을 닸았으며
그 후에 제후들과 백성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태갑은 상(商)나라 5대 군주로, 태어날 때의 이름은 자지(子至)라고 한다. 탕의 손자이며, 중임(中壬)의
조카에 해당한다고 하며, 또한 탕의 뒤를 곧바로 있었다는 설도있다. 그러나 <죽서기년>에서는 중임이
죽은 뒤에 이윤이 태갑을 동쪽으로 추방하고 스스로 천자가 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7년 후 이윤이 태
갑에게 살해를 당하고, 다시 태갑이 천자가 되었다고도 한다.이때 태갑은 이윤의 아들인 이척과 이분에
게 가문을 잇게 했다고 한다. 이들 역사서에는 모두 태갑이 12년 간 재위했으며, 그 아들인 옥정이 뒤를
이은 상나라의 3대 군주였다고 하며, 태갑(太甲)이라는 시호가 주어졌으며, 그 아들인 복병(卜丙)이 뒤
를 이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사기>에서는 탕이 죽고나서, 탕의 아들인 태자인 태정(太丁)이 즉위하
지 못한채 일찍 죽어서, 그의 동생인 외병(外丙)이 즉위하여 2대 군주가 되고, 그가 3년만에 죽자, 외병
의 동생인 중임(中壬)이 즉위하여 3대 군주가 되었으나, 그 역시 4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아윤이 일찍
죽은 태정(太丁)의 아들인 태갑(太甲)을 죽위시켜 4대 군주가 되었다고 나온다. 그리고 태갑이 죽자 그
의 아들 옥정(沃丁)이 자리에 올라 5대군주로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가운데, 은허(殷墟)에
서 발굴된 갑골문에 따르면 태갑은 아버지인 태정(太丁)의 뒤를이은 상(商)나라 3대군주였다고 기록되
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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