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log.daum.net/thddudgh7/16535032?category=1425252

 

<서경>(118)주서(周書)(15)무성편(武成篇)(4) 한번 갑옷을 입어 천하가 안정되다.

             <서경(書經)>(118) 주서(周書)(15)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blog.daum.net

 

 

 [4] 한번 갑옷을 입어 천하가 안정되다.

 

   旣戊午(기성오) 師渡孟津(사도맹진)

   무오일에, 군대는 맹진 나루를 건넜고,

   癸亥(계해) 陳于商郊(진우상교)

   계해일에, 상의 근교인 목야(牧野)에 진을 치고서,

   俟天休命(사천휴명)

   천명을 기다렸다.

   甲子昧爽(신자매상)

   갑자일 새벽에,

   受率其旅若林(수솔기려고림)

   상왕(商王) 수(受)는 숲을 이룬듯한 그의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

   會于牧野(회우목야) 罔有敵于我師(망유적우아사)

   목야(牧野)에서 싸웠으나, 그들은 우리 군사들을 대적하지 못하였는데,

   前徒倒戈(전도도과)

   앞의 무리들은 창을 거꾸로 들고서,

   攻于後以北(공우후이북)

   자기 편인 뒤쪽을 향해 공격하며 달아나니,

   血流漂杵(혈류표저)

   피가 흘러 절굿공이가 떠다닐 정도였다.

   一戎衣(일륭의) 天下大定(천하대정)

   한번 갑옷을 입어, 천하가 크게 안정이 되니,

   乃反商政(내반상정) 政由舊(정유구)

   이에 상나라의 정치를 바로 잡아, 옛날의 정치를 되살렸다.

   釋箕子囚(석기자수) 封比干墓(봉비간묘)

   갇혀있던 기자를 석방시키고, 비간의 무덤에 봉분을 하였으며,

   式商容閭(식상용려)

   상용(商容)의 읍(邑)에 정려(貞閭)를 세워 경의를 표하였다. 

   散鹿臺之財(산록대지재)

   또한 녹대(鹿臺)에 쌓였던 재물을 흩어 나누어 주고,

   發鉅橋之粟(발거교지속)

   거교(鉅橋)의 창고에 저장된 곡식을 방출하여,

   大賚于四海(대뢰우사해) 而萬姓悅服(이만성열복)

   천하에 크게 베풀어 주니, 모든 백성들이 기뻐하며 따랐다.

   列爵惟五(열작유오) 分土惟三(오토유삼)

   작위는 5등으로 나누었고, 봉토는 셋으로 나누었으며,

   建官惟賢(건관유현) 位事惟能(위사유능)

   관직에는 어진 이를 등용하고, 일을 시킴에는 능력에 따랐으며, 

   重民五敎(중민오교)

   오륜을 중히 여기게 하고,

   惟食喪祭(유식상제)

   먹는 것과 장사지내는 것과 제사를 모시는 일을 중히 여기게 하였다.

   惇信明義(돈신명의) 崇德報功(숭덕보공)

   믿음을 두텁게 하고 의를 밝혔으며, 덕을 높이고 공있는 자를 보상하니,

   垂拱而天下治(수공이천하치)

   팔짱을 끼고서 편히 앉아 있어도 천하는 잘 다스려졌다.   

 

   *이 절에서는 무왕이 상왕(商王)인 수(受)를 쳐서 이기고 난후, 상(商)의 도읍지였던 조가(朝歌)에서 행

    한 일과, 나라가 새로운 모습을 갖추도록 행한 정치적 조치들을 말하고 있다. 요컨대 천하가 잘 다스려

    졌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무왕의 덕을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이 무성편(武成篇)은 주왕실에서 천하

    의 대권을 잡아, 새로운 체제를 갖추기 까지의 경과를 간단히 서술한 것이다. 여기의 ‘열작유오(列爵惟

    五) 분토삼(分土三)’은 곧 봉건제도의 시행을 말하는 것이다. 봉건제도는 토지를 바탕으로 성립된 소작

    인과 지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 정치, 경제적인 조직인 것이다. 봉건의 원시적인 의미는 땅을

    봉해 주어서 번방(藩邦), 곧 제후로 세운 다음에 각기 책봉 된 땅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원래 제후의

    기원은 아래와 같이 나눌수가 있다. 첫째는 고성왕(古聖王)들의 후예, 둘째는 왕업을 이룩한 종친과 이

    를 도운 신하들, 셋째는 예전부터 부족의 추장으로서 제후가 된 이들이다. 그리고 천자만을 왕(王)이라

    일컬을 수 있으며, 작위를 내릴수 있도록 한것인데, 이미 언급한 바와같이 공(公)·후(侯)·백(伯)·자(子)·

    남(男)의 다섯 등급이다. 따라서 제후는 천자를 배알하여야 하고, 지방의 특산물을 공물로 바치는 등의

    의무가 있었다.이 봉건제도는 뒤에 주공(周公)이 동정(東征)을 한후에 크게 시행되지만, 무왕은 상(商)

    을 멸한후에 당시에 제후들이 많고 또한 요지(要地)를 점유하고 잇음을 보고, 후세에 반드시 화근이 되

    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새로이 나라를 일으켰다는 구실로 제후의 나라를 멸하고, 세습제도를 폐지

    한 다음, 자신이 직접 제후를 봉하여 제후들의 기세를 꺾고, 제후는 반드시 왕실에 의해 책봉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