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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 무성편(武成篇)(1)
무성(武成)은 무훈(武勳)을 이룩하였다는 뜻이다. 곧 무왕이 하늘의 명을 받고 일어 나서 추진한 천하통
일 사업이 은나라를 멸함으로써 완수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편 역시 <위고문상서>에 속하는데, 이
편의 내용은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이 상(商)을 쳐서 멸하고 돌아와서 소와 말들을 방목시키는 등, 나
라를 잘 다스린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편의 체재는 다른 편들과 달라서 문맥조차도 혼란한
상태이다. 글이 이와 같이 된 것은 아마 옛날의 죽간(竹簡)으로 되어 있는 책이 중간에 잘못되어 순서가
뒤바뀌었거나, 탈락이 되어서 그런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뒤에 채침(蔡沈)은 유폐(劉敝)·왕안석(王
安石)·정이(程頤)등이 바로잡은 차례를 다시고찰하여 <금고정부성(今考定武成)>을 지었다. 그리고 <한
서(漢書)>율력지(律曆志)에 무성편 원본의 일부로 추정되는 82자가 수록되어 있음도 밝혀 둔다.
[1] 하늘과 산천에 무훈(武勳)을 고하다.
惟一月壬辰旁死魄(유일월임진방사백)
1월 임진일(壬辰日) 달빛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며,
越翼日癸巳(월익일계사)
그 다음날인 계사일(癸巳日) 아침에,
王朝步自周于征伐商(왕조보자주우정벌상)
무왕은 주나라를 떠나서 상나라 정벌길에 올랐다.
厥四月哉生明(궐사월재생명)
그 4월에 달이 밝아올 때,
王來自商至于豐(왕래자상지우풍)
무왕은 상나라에 있는 풍(豐) 땅에 이르렀다.
乃偃武修文(내언무수문)
이에 무기를 눕혀 무(武)를 정리하고 문(文)을 닦은 후에,
歸馬于華山之陽(귀마우화산지양)
말을 화산(華山)의 기슭으로 돌려 보내고,
放牛于桃林之野(목우우도림지야)
소는 도림(桃林)의 들녘에서 방목하게 하여,
示天下弗服(시천하불복)
군마(軍馬)등을 다시 사용하지 않을 것을 천하에 보였다.
丁未祀于周廟(정미사우주묘)
정미일(丁未日)에 주(周)나라 종묘에 제사를 지내니,
邦甸侯衛(방전후위)
경기(京畿) 땅과 전복(甸服)·후복(侯服)·위복(衛服)의 제후들이,
駿奔走(준분주) 執豆籩(집두변)
준마를 타고 달려와서 분주히, 제기등을 잡고 날랐다.
越三日庚戌(월삼일경술)
3일이 지난 경술일(庚戌日)에,
柴望(시망)
하늘에 시제(柴祭)를 지내고 산천에 망제(望祭)를 모시어,
大告武成(대고무성)
무훈(武勳)이 이룩되었음을 크게 고하였다.
旣生魄(기생백)
달빛이 이지러지기 시작할 때,
庶邦冢君曁百工(서방총군기백공) 受命于周(수명우주)
제국의 대군과 백관이 정식으로, 주나라의 명에 복종하였다.
*무왕은 상(商)을 멸망시킨 후에 덕(德)으로 다스리겠다는 의미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쓰이는 무기를 거
두고 말과 소들을 놓아 주었다. 그런다음 주나라의 선조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하늘과 산천에 대해서도
제사를 올리고, 무훈이 이루어 졌음을 알리고 동시에 새로운 체제를 갖추었다. 이리하여 모든 제후들도
이제는 주나라에 복종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절에서의 내용이다. 이제 천하는 희씨(姬氏)의 주(周)나라
가 다스리게 되었다. 때문에 새로운 국가로 면모를 일신하고 새로운 정교(政敎)도 펴야했다. 이 가운데
가장 특이한것이 봉건제도의 시행이었다. 봉건제도는 무왕의 아들인 성왕(成王)대에 이르러 무왕의 동
생이며 성왕의 숙부인 주공(周公)에 의해서 확립되지만, 무왕이 먼저 이를 시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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