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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34)주서(周書)(31)금등편(金縢篇)(3) 주공이 동생들과 무경의 모함을 받다.

             <서경(書經)>(134) 주서(周書)(31)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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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공이 동생들과 무경의 모함을 받다. 

 

   乃卜三龜(내복삼구) 一習吉(일습길)

   이윽고 세 거북에게 복점을 치자, 한결같이 거듭 길함이었고,

   啓籥見書(계약견서)

   죽간으로 된 책을 펼쳐 점의 징조를 쓴 글을 보니,

   乃幷是吉(내병시길)

   역시 모두 길함이었다.

   公曰(공왈) : 이에 주공이 말했다.

  (체) 王其罔害(왕기망해)

   "조짐은, 왕께서 재난이 없으리라는 것이오.

   予小子新命于三王(여소자신명우삼왕)

   이 소인은 방금 세 왕으로부터 명을 받았소.

   惟永終是圖(유영종시도)

   왕께서는 이 나라가 언제까지나 번영하리라는 계획을 도모하실 것이니,

   玆攸俟(자유사)

   이제 바로 이곳에서 기다려 봅시다.

   能念予一人(능염여일인)

   선왕들께서 이몸을 생각하여 주실 것이오"

   公歸(공귀) 乃納冊于金縢之匱中(내납책우금등지궤중)

   주공이 돌아와, 죽간으로 된 기도문을 쇠줄로 묶은 상자 안에 넣었는데,

   王翼日乃瘳(왕익일내추)

   무왕은 이튿날 병이 낳았다.

   武王旣喪(무왕기상) 管叔及其群弟(관숙급기군제)

   뒤에 무왕이 죽은 뒤에, 관숙과 그 여러 동생들이,

   乃流言於國曰(내류언어국왈)

   나라에 헛소문을 퍼뜨리며 말하였다.

   公將不利於孺子(공장불리어유자)

   "주공은 장치 어린 왕에게 불리한 짓을 할 것이다"

   周公乃告二公曰(주공내고이공왈)

   주공은 이에 태공과 소공에게 말하였다.

   我之弗辟(아지불벽)

   "내가 만일 회피하지 않으면,

   我無以告我先王(아무이고아선왕)

   나는 우리 선왕들에게 고하지 못하게 될 것이오"

   周公居東二年(주공거동이년)

   주공이 동쪽으로 가서 산 지 2년 만에, 

   則罪人斯得(즉죄인사득)

   죄인들이 잡혀 오게 되었다.

   于後公乃爲詩以貽王(우후공내위시이이왕)

   이후 주공은 한 수의 시를 지어 왕에게 바치니,

   名之曰鴟鴞(명지왈치효)

   이름을 치효(鴟鴞)라고 하였는데,

   王亦未敢誚公(왕역미감초공)

   성왕 역시 감히 주공을 책망하지 못하였다.   

 

   *관숙과 채숙, 그리고 곽숙이 옛날 은나라의 서쪽과 남쪽 땅에 책봉되었음은 이미 언급한 바가 있다. 본

    래 이들 세사람은 무경을 감시하라고 그 주위의 땅에 봉했던 것인데, 결국은 무경(武庚)과 한편이 되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이에 호응하여, 동쪽의 엄[奄: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과, 포

    고[浦姑: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박흥현(博興縣)]의 제후들과, 서이[徐夷:지금의 강소성(江蘇省) 북부]

    와 회이[淮夷: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북부]의 오랑캐 부족들도 합세를 하였다.  주나라는 천하에 군림

    한 지 채 10년도 못되는 기간에 이와 같은 타격을 받은 것이어서, 자못 험악 하였으며 인심도 흉흉해 졌

    다. 이에 주공은 확고한 신념으로 친히 동정(東征)의 길에 나섰다. 3년 간의 고전을 치르고 마침내 승리

    하여 무경과 관숙은 주살하고, 채숙은 유배를 보냈다. 따라서 엄(奄)등의 50이나되는 제후의 나라를 평

    정시켜 주나라의 세력은 더욱 동쪽으로 팽창하여, 황하의 하류와 회수의 유역에 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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