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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경판 -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ABC_IT_K0549_T_012 URL복사 통합뷰어 014_0609_c_01L대지도론 제12권 014_0609_c_01L大智度論釋初品中檀波羅蜜法施之餘卷第十二 통합뷰어 용수 지음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014_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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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智度論釋初品中檀波羅蜜法施義第二十

20. 초품 중 단바라밀의 법시(法施)를 풀이함 ①

問曰。云何名法布施。

  [문] 무엇을 법보시라 하는가?

答曰。有人言。常以好語有所利益。是爲法施。復次有人言。以諸佛語妙善之法。爲人演說。是爲法施。復次有人言。以三種法敎人。一修妬路二毘尼三阿毘曇。是爲法施。復次有人言。以四種法藏敎人。一修妬路藏二毘尼藏三阿毘曇藏四雜藏。是爲法施。復次有人言。略說以二種法敎人。一聲聞法二摩訶衍法。是爲法施。

  [답]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항상 좋은 말로써 남을 이롭게 하면 이를 법보시라 한다” 하고,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부처님들의 말씀을 묘하고 착한 가르침으로써 남에게 연설해 주면 이를 법보시라 한다” 하고,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세 가지 법으로써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니, 첫째는 수투로(修?路)42)요, 둘째는 비니요, 셋째는 아비담이다. 이것을 법시라 한다” 하고,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네 가지 법장(法藏)으로써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니, 첫째는 수투로장이요, 둘째는 비니장이요, 셋째는 아비담이요,  넷째는 잡장(雜藏)이다. 이것을 법시라 한다” 하고,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간략히 말하자면 두 가지 법으로써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니, 첫째는 성문의 법[聲門法]이요, 둘째는 보살의 법[菩薩法]이다. 이것을 법시라 한다” 했다.

問曰。如提婆達呵多等。亦以三藏四藏聲聞法摩訶衍法敎人。而身入地獄是事云何。

  [문] 제바달(提婆達)과 가다(呵多)43) 등도 3장(藏)ㆍ4장(藏)ㆍ성문법ㆍ마하연법으로 사람을 교화했거늘 지옥에 들어갔다. 그 일은 어째서인가?

答曰。提婆達邪見罪多。呵多妄語罪多。非是爲道淸淨法施。但求名利恭敬供養。惡心罪故提婆達生入地獄。呵多死墮惡道。

  [답] 제바달은 삿된 소견의 죄가 많고 가다는 거짓말의 죄가 많다. 이는 도를 위한 청정한 법보시가 되지 못하고, 다만 명예와 공경과 공양만을 구하는 일이다. 악심을 품은 죄로 인해 제바달은 산 채로 지옥에 들어갔고 가다는 죽어서 악도(惡道)에 빠졌다.

復次非但言說名爲法施。常以淨心善思。以敎一切是名法施。譬如財施不以善心不名福德法施亦爾。不以淨心善思則非法施。

  말로써 설명하는 것만을 일러 법보시라 하지는 않는다. 항상 맑은 마음과 착한 생각으로 일체를 교화하는 것을 법보시라 한다. 비유하건대 재물보시는 착한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복덕이라 할 수 없듯이, 법보시도 그와 같아서 맑은 마음과 착한 생각으로 하지 않는다면 법보시가 되지 못한다. 

  

復次說法者。能以淨心善思讚歎三寶。開罪福門示四眞諦。敎化衆生令入佛道。是爲眞淨法施。

또한 법을 설하는 이가 능히 맑은 마음과 착한 생각으로 능히 3보(寶)를 찬탄하고 죄와 복의 문을 열며, 4제를 내보이고 중생을 교화하여 불도에 들어가게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청정한 법보시이다.

復次略說法有二種。一者不惱衆生善心慈愍。是爲佛道因緣。二者觀知諸法眞空。是爲涅槃道因緣。在大衆中興愍哀心說此二法。不爲名聞利養恭敬。是爲淸淨佛道法施。

간략히 말하건대 법에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중생을 괴롭히지 않고 착한 마음으로 가엾이 여기는 것이니, 이는 불도에 드는 인연이다. 둘은 모든 법이 참으로 공함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는 열반에 이르는 인연이다. 대중에 대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이 두 가지 법을 말하되 명예나 이익이나 공경과 공양을 위하지 않으면 이는 청정한 불도의 법보시가 된다.

如說。阿輸伽王一日作八萬佛圖。雖未見道於佛法中少有信樂。日日請諸比丘入宮供養。日日次第留法師說法。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아수가(阿輸伽)44) 왕은 하루에 8만 개의 탑[佛圖]45)을 세웠으며, 비록 도를 깨닫지는 못했으나 불법에 대하여 조그만치의 신심이 있어 날마다 비구들을 궁중으로 청해 다가 공양하고, 날마다 차례로 법사를 남겨 두어 법을 설하게 했다.

有一三藏年少法師。聰明端正次應說法。在王邊坐。口有異香。王甚疑怪謂爲不端。欲以香氣動王宮人。

  이때 3장에 통달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젊은 법사로서 총명하고 단정했다. 설법할 차례가 되어 왕의 곁에 앉았는데 입에서 이상한 향취가 나거늘 왕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 생각했다. 

  “점잖지 못하게도 향기로써 궁녀들의 마음을 흔들려 하는구나.” 

語比丘言。口中何等開口看之。卽爲開口了無所有。與水令漱香氣如故。

  그는 비구에게 물었다.

  “입에 무엇이 들었는가? 입을 열어 보라.”

  즉시에 입을 열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물을 주어 양치질을 하게 하였으나 향취는 여전했다.

王問。大德新有此香舊有之耶。比丘答言。如此久有非適今也。又問有此久如。比丘以偈答言。

  왕은 다시 물었다.

  “대덕이여, 새로 이런 향취가 생긴 것이요, 아니면 원래부터 있던 것이오?”

  비구가 대답했다. 

  “이와 같은 지가 오랩니다. 요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 지가 얼마나 되는 것이오?”

  비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迦葉佛時  集此香法

  如是久久   常若新出

  가섭부처님 시절에

  이 향기로운 법을 모았으니

  이와 같이 오래도록

  항상 새로 나는 듯하네.

王言。大德略說未解。爲我廣演。

答言。王當一心善聽我說。我昔於迦葉佛法中作說法比丘。常在大衆之中歡喜演說。迦葉世尊無量功德諸法實相。無量法門慇懃讚歎敎誨一切。自是以來常有妙香從口中出。世世不絶恒如今日。而說此偈。

 

  왕이 말했다. 

  “대덕이시여, 그렇게 대략 말씀하셔서는 알 수 없으니, 나를 위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오.”

  비구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일심으로 내 말씀을 잘 들어 보십시오.

나는 옛날 가섭부처님의 법 가운데 설법하는 비구가 되어 항상 대중 가운데에서 환희하고 연설하며, 

  가섭 세존의 한량없는 공덕과 모든 법의 실상과 한량없는 법문을 정성껏 찬탄해서 일체 중생을 가르쳐 깨우쳤습니다. 이때부터 항상 묘한 향이 입에서 나와 세세에 끊이지 않으니, 항상 오늘과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게송을 읊었다. 

 草木諸華香  此香氣超絶

 

 能悅一切心  世世常不滅

  모든 초목과 꽃의 향기보다

  이 향취가 훨씬 뛰어나니

  능히 일체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세세에 항상해 멸하는 일 없네.

 

于時國王愧喜交集。白比丘言。

未曾有也。說法功德大果乃爾。

  그때에 국왕이 부끄러움과 기쁨이 엇갈려 비구에게 말했다.

  “처음 보는 일이로소이다. 설법하는 공덕의 큰 과보가 이러하다니 말입니다.”

比丘言。此名爲華。未是果也。

  비구가 말했다. 

  “이는 꽃이라고는 할지언정 아직 과보는 아닙니다.”

王言其果云何願爲演說。

答言。果略說有十。王諦聽之。卽爲說偈言。

  왕이 물었다. 

  “그 과보란 어떤 것입니까? 부디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구가 대답했다.

  “간략히 말해 과보에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그리고는 곧 게송을 말했다. 

 大名聞端政  得樂及恭敬

 

 威光如日月  爲一切所愛

  큰 명예와 단정함과

  즐거움과 공경을 얻고,

  위광(威光)이 일월 같아

  모두에게 사랑 받는다. 

 

 辯才有大智  能盡一切結

 苦滅得涅槃  如是名爲十

  변재에 큰 지혜까지 있고

  일체의 번뇌 능히 다하며

  괴로움이 멸하고 열반 얻으니

  이것이 모두 열 가지라오.

 

王言。

大德。讚佛功德云何而得如是果報。爾時比丘以偈答曰。

  왕이 물었다.

  “대덕이시여,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한다면 어찌해서 이러한 과보를 얻습니까?”

  그러자 비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讚佛諸功德  令一切普聞

 

 以此果報故  而得大名譽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여 

  모두가 두루 듣게 하였으니

  이러한 과보 있는 까닭에

  커다란 명예를 얻는다네.

 

 讚佛實功德  令一切歡喜

 以此功德故  世世常端正

  부처님의 진실한 공덕 찬탄하여

  모두가 기뻐하게 하였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세세에 항상 단정하다네.

 

 爲人說罪福  令得安樂所

 以此之功德  受樂常歡豫

  남에게 죄와 복을 말하여

  편안하고 즐거움을 얻게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즐거움 누리고 항상 기쁘다네.

 

 讚佛功德力  令一切心伏

 以此功德故  常獲恭敬報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여

  모두의 마음을 굴복시켰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항상 공경 받는 과보를 얻네.

 

 顯現說法燈  照悟諸衆生

 以此之功德  威光如日曜

  설법의 등불을 밝게 드러내

  중생들을 비추어 깨우쳤나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위광이 해처럼 밝다네.

 

 種種讚佛德  能悅於一切

 以此功德故  常爲人所愛

  갖가지로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여

  모두를 기쁘게 하였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항상 남의 사랑 받는다네.

 

 巧言讚佛德  無量無窮已

 以此功德故  辯才不可盡

  묘한 말로 부처님을 찬탄하여

  그 덕이 한량없고 끝없다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변재(辯才)가 다하는 일 없네.

 

 讚佛諸妙法  一切無過者

 以此功德故  大智慧淸淨

  부처님의 묘한 법을 찬탄하여

  아무도 지날 이 없다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큰 지혜 있고 청정하다네.

 

 讚佛功德時  令人煩惱薄

 以此功德故  結盡諸垢滅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할 때 

  사람들의 번뇌 얇아지게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번뇌가 다하고 모든 때가 멸하네.

 

 二種結盡故  涅槃身已證

 譬如澍大雨  火盡無餘熱

  두 가지 번뇌가 다하였기에

  열반의 몸 이미 증득했으니

  마치 소나기가 퍼부은 뒤에

  불은 꺼져 열기조차 없듯이.

 

重告王言。若有未悟今是問時。當以智箭破汝疑軍。

王白法師。我心悅悟無所疑也。大德福人善能讚佛。如是等種種因緣說法度人。名爲法施。

  다시 법사가 왕에게 말했다.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 있거든 지금이 바로 물을 때입니다. 지혜의 화살로 그대의 의혹의 군사를 무찔러 드리겠습니다.”

  왕이 말했다.

  “법사여, 나는 마음이 기꺼우며 깨달아 의심이 없습니다. 커다란 복덕을 지닌 이께서는 부처님의 공덕을 잘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갖가지 인연으로 법을 설해서 사람을 제도하는 것을 법보시라 한다. 

問曰。財施法施何者爲勝。

  [문] 재물보시와 법보시에서 어느 것이 수승한가?

答曰。如佛所言二施之中法施爲勝。所以者何。財施果報在欲界中。法施果報或在三界。或出三界。復次口說淸淨深得理中。心亦得之故出三界。復次財施有量。法施無量。財施有盡。法施無盡。譬如以薪益火其明轉多。復次財施之報淨少垢多。法施之報垢少淨多。復次若作大施必待衆力。法施出心不待他也。復次財施能令四大諸根增長。法施能令無漏根力覺道具足。復次財施之法。有佛無佛世間常有。如法施者唯有佛世乃當有耳。是故當知法施甚難。云何爲難。乃至有相辟支佛不能說法。直行乞食飛騰變化而以度人。復次從法施中能出生財施。及諸聲聞辟支佛菩薩及佛。復次法施能分別諸法。有漏無漏法。色法無色法。有爲無爲法。善不善無記法。常法無常法。有法無法。一切諸法實相淸淨不可破不可壞。如是等法略說則八萬四千法藏。廣說則無量。如是等種種。皆從法施分別了知。以是故法施爲勝。是二施和合名之爲檀。行是二施願求作佛。則能令人得至佛道。何況其餘。

  [답]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보시 가운데서 법보시가 수승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재물보시의 과보는 욕계에 있지만, 법보시의 과보는 삼계에 있거나 혹은 삼계를 벗어나기도 하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입으로 말함이 청정해서 깊이 도리가 통함을 얻는다면, 마음도 역시 그것을 얻는 까닭에 삼계를 벗어나게 된다.

  재물보시는 한량이 있거니와 법보시는 한량이 없으며, 재물보시는 다함이 있거니와 법보시는 다함이 없다. 

  비유하건대 장작을 불 위에 덮으면 그 광명이 점점 많아지는 것과 같다.

  또한 재물보시의 과보는 청정함이 적고 때가 많으며, 법보시의 과보는 때가 적고 청정함이 많다.

  또한 만일 큰 보시를 하려면 반드시 대중의 힘을 기다려야 하지만, 법보시는 마음으로 나오니 남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또한 재물보시는 능히 4대와 모든 근(根)을 키우며, 법보시는 능히 무루의 근(根)ㆍ역(力)ㆍ각도(覺道)46)를 갖추게 한다.

  또한 재물보시의 습관[法]은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세상에 항상 있지만, 법보시는 부처님이 계신 세상에만 있다. 그러므로 법보시가 매우 어려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찌하여 어려운가? 형상을 지닌 벽지불에 이르기까지도 설법은 하지 못

  하고 다만 다니면서 걸식하고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변화하여 사람들을 제도할 뿐이다.

  또한 법보시로부터 능히 재물보시가 나오며, 성문ㆍ벽지불ㆍ보살들에 이르고 부처에 이른다.

  또한 법보시는 능히 모든 법의 유루와 무루, 물질의 법과 물질이 없는 법, 유위와 무위의 법, 착한 법과 착하지 못한 법과 무기의 법, 항상한 법과 무상한 법, 있음의 법과 없음의 법 등 온갖 법의 진실한 모습과 청정하여 파괴할 수 없음을 잘 분별하나니, 이런 법을 간략히 설명하면 8만 4천이 되거니와 자세히 말하면 한량이 없다. 

  이러한 갖가지 법이 모두가 법보시에 의하여 분별해서 밝게 알 수 있으니, 그러므로 법보시가 수승하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보시를 합쳐서 단(檀)이라 한다. 이 두 가지 보시를 행하여 부처가 되기를 원하면 능히 사람들로 하여금 불도에 이르게 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것이겠는가.

 

問曰。四種捨名爲檀。所謂財捨法捨無畏捨煩惱捨。此中何以不說二種捨。

  [문] 네 가지 버림[捨]을 단(檀)이라 하나니, 이른바 재물의 버림과 법의 버림과 두려움 없음의 버림[無畏捨]과 번뇌의 버림이다. 여기에서는 어째서 두 가지 버림은 설명하지 않는가?

答曰。無畏捨與尸羅無別故不說。有般若故不說煩惱捨。若不說六波羅蜜。則應具說四捨。

  [답] 두려움 없음의 버림은 시라(尸羅)47) 바라밀과 다르지 않으므로 설명하지 않았고, 반야바라밀이 있으므로 번뇌의 버림[煩惱捨]을 설명하지 않았다. 만일 6바라밀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의당 네 가지 버림을 다 설명했어야 할 것이다.

 

大智度論釋初品中檀波羅蜜法施之餘 (卷第十二)

20. 초품 중 단바라밀의 법시(法施)를 풀이함②

 

【論】問曰。云何名檀波羅蜜滿。

  [문] 어떤 것을 단바라밀1)의 원만함이라 하는가?

答曰。檀義如上說。波羅(秦言彼岸)蜜(秦言到)是名渡布施河得到彼岸。

  [답] 단(檀)의 뜻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바라밀(波羅蜜)이란 ‘보시의 강을 건너 피안에 이름을 말한다.

問曰。云何名不到彼岸。

  [문] 어떤 것을 피안에 이르지 못했다 하는가?

答曰。譬如渡河未到而還。名爲不到彼岸。如舍利弗。於六十劫中行菩薩道。欲渡布施河。時有乞人來乞其眼。舍利弗言。眼無所任。何以索之。若須我身及財物者當以相與。答言。不須汝身及以財物。唯欲得眼。若汝實行檀者以眼見與。爾時舍利弗。出一眼與之。乞者得眼。於舍利弗前嗅之。嫌臭唾而棄地。又以脚蹋。舍利弗思惟言。如此弊人等難可度也。眼實無用而强索之。旣得而棄又以脚蹋。何弊之甚。如此人輩不可度也。不如自調早脫生死。思惟是已。於菩薩道退迴向小乘。是名不到彼岸。若能直進不退。成辦佛道。名到彼岸。復次於事成辦亦名到彼岸。(天竺俗法凡造事成辦皆言到彼岸)

  [답] 비유하건대 강을 건너다가 도중에 돌아오는 것을 일러 ‘피안에 이르지 못했다’ 한다.

  예컨대 사리불은 60겁 동안 보살도를 행하면서 보시의 강을 건너려했는데 어떤 걸인(乞人)이 와서 그의 눈을 달라고 했다. 이에 사리불이 말했다. 

  “눈을 맡기다니 이는 승낙할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내 몸이나 재물이 필요하다면 주겠다.”

  걸인이 대답했다.

  “그대의 몸이나 재물은 필요치 않다. 오직 눈을 얻고자 하니, 그대가 진실로 보시를 행한다면 눈을 달라.”

  그때 사리불이 눈알 하나를 뽑아 주니, 걸인은 그 눈을 받아들고 사리불의 앞에서 냄새를 맡았다. 그러더니 싫은 냄새가 난다고 하면서 침을 뱉어 땅에    버리고는 발로 밟아 비볐다.

  사리불이 생각했다.

  “이렇게 포악한 사람은 제도할 길이 없겠구나. 눈이 실제로 필요치도 않은데 기어코 달라더니 침을 뱉어 버리고 또한 발로 밟아 버렸다. 어찌 이다지도 포악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람은 제도할 수 없다. 차라리 스스로 닦아 신속히 생사를 벗어나느니만 못하겠도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보살도에서 물러나 소승으로 회향하였으니, 이것이 곧 피안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만일 곧장 나아가서 물러나지 않고 불법을 끝내 성취하였다면 ‘피안에 이르렀다’ 하리라.

復次此岸名慳貪檀名河中。彼岸名佛道。復次有無見名此岸。破有無見智慧名彼岸。懃修布施是名河中。

復次檀有二種。一者魔檀二者佛檀。若爲結使賊所奪憂惱怖畏。是爲魔檀。名曰此岸。若有淸淨布施。無結使賊無所怖畏得至佛道。是爲佛檀。名曰到彼岸。是爲波羅蜜。如佛說毒蛇喩經中。有人得罪於王。王令掌護一篋。篋中有四毒蛇。王勅罪人令看視養育。此人思惟。四蛇難近。近則害人。一猶叵養。而況於四。便棄篋而走。王令五人拔刀追之。復有一人口言附順。心欲中傷而語之言。養之以理此亦無苦。其人覺之馳走逃命。至一空聚有一善人方便語之。此聚雖空是賊所止處。汝今住此必爲賊害愼勿住也。於是復去至一大河。河之彼岸卽是異國。其國安樂坦然淸淨無諸患難。於是集衆草木縛以爲栰進。以手足竭力求渡。旣到彼岸安樂無患。王者魔王。篋者人身。四毒蛇者四大。五拔刀賊者五衆。一人口善心惡者。是染著空聚是六情。賊是六塵。一人愍而語之是爲善師。大河是愛。栰是八正道。手足懃渡是精進。此岸是世間。彼岸是涅槃。度者漏盡阿羅漢。菩薩法中亦如是。若施有三礙。我與彼受所施者財。是爲墮魔境界未離衆難。如菩薩布施三種淸淨無此三礙得到彼岸。爲諸佛所讚。是名檀波羅蜜。以是故名到彼岸。此六波羅蜜能令人渡慳貪等煩惱染著大海到於彼岸。以是故名波羅蜜。

  또한 어떤 일을 완성하여 끝내는 것을 ‘피안에 이르렀다’ 한다. 

  또한 이쪽 언덕이란 인색함이요, 보시란 강이요, 피안이란 불도를 말한다.

  또한 있다 없다 하는 소견은 이쪽 언덕이요, 있다 없다 하는 소견을 깨뜨린 지혜는 피안이요, 부지런히 보시를 닦는 것은 강 복판에 있는 것을 말한다.

  또한 보시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마(魔)의 보시요 둘은 부처의 보시이다.

  만일 보시하되 번뇌[結使]의 도적에게 끄달려 근심하고 걱정한다면 마의 보시이니, 일컬어 이쪽 언덕[此岸]이라 한다. 만일 청정하게 보시하여 번뇌의 도적이 없고 두려움이 없이 불도에 이른다면 이것은 부처의 보시이니, 일컬어 피안에 이르렀다 한다.

  이것이 바라밀이다. 

  『불설독사유경(佛說毒蛇喩經)』2)에 이런 말씀이 있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죄를 짓자 왕은 그에게 광주리를 하나 맡기면서 잘 간직하라 분부했다.

  그 광주리 안에는 뱀 네 마리가 있었는데 왕이 죄인에게 잘 보살펴 기르라 하니, 이 죄인은 생각했다. 

  ‘네 마리의 뱀은 가까이하기가 어렵다. 가까이하면 사람을 해친다. 한 마리도 기르기 어렵거늘 하물며 네 마리이겠는가.’

  그리고는 광주리를 버리고 달아났다. 

  왕은 다섯 사람을 시켜 칼을 뽑아들고 좇아가게 했다.

  도망가던 중 어떤 사람이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나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품고 말했다. 

  “이치에 맞게 기르면 괴로울 리가 없다.”

  하지만 죄인은 그 말의 뜻을 눈치 채고는 서둘러 달아나 목숨을 부지했다.

  다시 어느 빈 마을에 이르렀는데, 거기에 착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그에게 방편을 부려 말했다. 

  “이 마을은 비록 비었으나 도적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대가 여기에 머문다면 반드시 도적에게 해를 입을 것이니, 행여나 머물지 말라.”

  이에 그대로 달아나서 어느 큰 강가에 이르렀다. 그 강의 저쪽은 다른 나라였는데, 그 나라는 안락하고 평탄하고 청정하여 아무런 근심거리가 없는 곳이었다.

  그는 온갖 초목을 모아 묶어서 뗏목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손과 발로 저어 건너서 피안에 이르니, 안락하고 근심이 없어졌다.

  여기에서 왕이라 함은 마왕이요, 광주리라 함은 사람의 몸이요, 네 마리의 독사라 함은 4대(大) 요, 칼을 뽑아 든 다섯 사람이라 함은 5중(衆)이요, 입으로는 착하고 마음은 악한 사람이라 함은 물들고 집착됨[染著]이요, 빈 마을이라 함은 6정(情)이요, 도적이라 함은 6진(塵)이요, 가엾이 여겨 말해 준 사람이라 함은 좋은 스승이요, 큰 강이라 함은 애욕이요, 뗏목이라 함은 8정도요, 손과 발로 애써 건넜다 함은 정진이요, 이쪽 언덕이라 함은 세간이요, 피안이라 함은 열반이요, 건넌 자라 함은 누(漏)가 다한 아라한을 말한다.

  보살의 법에도 이와 같아서 보시에 세 가지 장애, 즉 주는 나와 베푸는 바를 받는 자와 재물이 있게 되면 이는 마의 경계에 떨어지고, 아직 온갖 환란을 여의지 못한 것이 되고 만다.

  보살의 보시는 세 가지가 모두 청정하여 이러한 세 가지 장애가 없어야 피안에 이르며, 부처님들에게 칭찬받는다. 이것을 보시[]바라밀이라 한다. 이런 까닭에 피안에 이른다고 한다.

  이 6바라밀은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인색함 등의 번뇌에 물든 바다를 건너 피안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바라밀이라 한다. 

問曰。阿羅漢辟支佛亦能到彼岸。何以不名波羅蜜。

  [문] 아라한과 벽지불도 능히 피안에 이르는데 어찌 바라밀이라 하지 않는가?

答曰。阿羅漢辟支佛渡彼岸。與佛渡彼岸。名同而實異。彼以生死爲此岸。涅槃爲彼岸。而不能渡檀之彼岸。所以者何。不能以一切物一切時一切種布施。設能布施亦無大心。或以無記心或有漏善心。或無漏心施無大悲心。不能爲一切衆生施。菩薩施者知布施不生不滅無漏無爲。如涅槃相。爲一切衆生故施。是名檀波羅蜜。復次有人言。一切物一切種內外物盡以布施不求果報。如是布施名檀波羅蜜。復次不可盡故名檀波羅蜜。所以者何。知所施物畢竟空如涅槃相。以是心施衆生。是故施報不可盡。名檀波羅蜜。如五通仙人。以好寶物藏著石中。欲護此寶磨金剛塗之。令不可破。菩薩布施亦復如是。以涅槃實相智慧磨塗之布施。令不可盡。復次菩薩爲一切衆生故布施。衆生數不可盡故。布施亦不可盡。復次菩薩爲佛法布施。佛法無量無邊。布施亦無量無邊。以是故阿羅漢辟支佛雖到彼岸。不名波羅蜜。

  [답] 아라한과 벽지불이 피안에 이르는 것은 부처님이 피안에 이르는 것과 이름은 같으나 실제는 다르다. 저들은 생사로써 이쪽 언덕을 삼고 열반으로써 피안을 삼거니와 보시바라밀의 피안으로 건너가지는 못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온갖 물건과 온갖 때와 온갖 종류로 베풀지 못하며, 설사 베풀더라도 큰 마음이 없거나 무기심(無記心)3)이거나 유루의 선심(善心)이다. 혹은 무루의 마음으로 보시하더라도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어서 온갖 중생을 위하여 베풀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살의 보시란, 베푸는 일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무루이고 무위이어서 열반의 모습과 같음을 알아 온갖 중생을 위하여 보시하나니, 이를 단바라밀이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물건을 종류를 막론하고 안팎으로 모두 보시하고도 과보를 구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것이 단바라밀이다” 한다. 

  또한 다함이 없으므로 단바라밀이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보시한 물건은 끝내 공하여 열반의 모습과 같음을 알고, 그러한 마음으로 중생에게 베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시의 과보 역시 다할 수 없으니, 이것을 단바라밀이라 한다. 

  5신통력을 갖춘 선인이 있었는데, 그는 훌륭한 보물을 돌 속에 감추어 두고는 이 보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금강을 갈아 발라서 깨뜨릴 수 없게 만들었다. 보살의 보시도 그와 같아서 열반의 실상을 아는 지혜로써 갈아 발라서 그 보시가 다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또한 보살은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베푸는데, 중생의 수효가 다할 수 없으므로 보시 역시 다할 수가 없다. 

  또한 보살은 불법을 위하여 베푸는데, 불법이 한량없고 끝이 없으므로 보시 역시 한량없고 끝이 없다.

  그러므로 아라한이나 벽지불은 비록 피안에 이르기는 하였으나 바라밀이라 부르지는 못한다.

問曰。云何名具足滿。

  [문] 어떤 것을 ‘갖추고 원만히 했다’ 하는가?

答曰。如先說。菩薩能一切布施內外大小多少麤細著不著用不用。如是等種種物一切能捨。心無所惜。等與一切衆生。不作是觀大人應與小人不應與。出家人應與不出家人不應與。人應與禽獸不應與。於一切衆生平等心施。施不求報。又得施實相。是名具足滿。亦不觀時無晝無夜無冬無夏無吉無衰。一切時常等施心無悔惜。乃至頭目髓腦施而無悋。是爲具足滿。復次有人言。菩薩從初發心乃至菩提樹下三十四心。於是中間名爲布施具足滿。復次七住菩薩得一切諸法實相智慧。是時莊嚴佛土敎化衆生。供養諸佛得大神通。能分一身作無數身。一一身皆雨七寶華香幡蓋化作大燈。如須彌山。供養十方佛及菩薩僧。復以妙音讚頌佛德。禮拜供養恭敬將迎。復次是菩薩。於一切十方無量餓鬼國中雨種種飮食衣被令其充滿。得滿足已。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復至畜生道中。令其自善無相害意。除其畏怖隨其所須各令充足。得滿足已。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於地獄無量苦中。能令地獄火滅湯冷。罪息心善除其飢渴。得生天上人中。以此因緣故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若十方人貧窮者給之以財。富貴者施以異味異色令其歡喜。以此因緣故。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若至欲天中令其除却天上欲樂。施以妙寶法樂令其歡喜。以此因緣故。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若至色天中除其樂著。以菩薩禪法而娛樂之。以此因緣故。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如是乃至十住是名檀波羅蜜具足滿。復次菩薩有二種身。一者結業生身。二者法身。是二種身中檀波羅蜜滿。是名具足檀波羅蜜。

  [답]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보살은 능히 온갖 것으로써 베푼다. 곧 안팎의 것, 크고 작은 것, 많고 적은 것, 거칠고 고운 것, 애착되고 애착되지 않는 것,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 등 이런 것 모두를 보시하여 아까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균등하게 일체 중생에게 주되 어른에게는 주지만 애들에게는 주지 않는다거나 출가한 사람에게는 주지만 출가치 않은 사람에게는 주지 않겠다거나 인간에게는 주지만 새?짐승에게는 주지 않겠다 하지는 않는다. 곧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베풀며, 베풀고는 보답을 구하지도 않는다. 

  또한 보시의 실상을 얻는 것을 ‘갖추고 원만히 한다’고 한다. 또한 낮과 밤, 겨울과 여름, 길한 때와 쇠퇴한 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항상 평등하게 베풀되 마음으로 후회하거나 아까워하는 일이 없으며, 나아가서는 머리?눈?골수까지도 베풀되 인색하지 않으니, 이것을 ‘갖추고 원만히 한다’고 한다. 

  또한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보살이 초발심으로부터 보리수 하의 서른네 가지 마음[三十四心]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의 것을 일컬어 ‘보시를 구족하고 원만히 했다’고 한다.”

  또한 7주(住)의 보살은 온갖 법의 실상을 아는 지혜를 얻는데, 이때에 불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교화하며, 부처님들께 공양하여 큰 신통을 얻는다. 곧 능히 한 몸을 나누어 무수한 몸을 짓고 낱낱 몸에서 모두 7보의 꽃과 향과 번기와 일산을 비 내리며, 수미산같이 큰 등을 변화해 만들어 시방의 부처님과 보살에게 공양한다. 또한 묘한 음성을 내어 부처님의 공덕을 찬송하고 예배하고 공양하고 공경하여 맞이한다.

  또한 이 보살이 시방의 한량없는 아귀 국토에 갖가지 음식과 의복을 비 내려 충만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두 만족하게 한 뒤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한다.

  또한 축생의 갈래에 들어가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착해져서 서로 해치려는 의도를 없애 그들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며, 그들이 제각기 구하는 바를 만족하게 하고, 그러한 뒤에는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한다. 

  지옥의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 무리 가운데서는 지옥의 불은 꺼지게 하고 끓는 물은 차게 하며, 죄는 그치게 하고 마음은 착하게 하여 그들의 기갈을 제거해주며, 하늘이나 인간에 태어나게 한다. 이런 인연으로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된다.

  가령 시방의 인간 가운데 빈궁한 이에게는 재물을 주고, 부귀한 이에게는 특이한 맛과 모양[色]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기쁘게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된다.

  가령 욕계의 하늘에 이르러서는 그들로 하여금 하늘의 욕락을 버리게 하고 묘한 보배인 법락(法樂)을 베풀어 그들을 기쁘게 만드나니, 이런 인연으로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된다.

  가령 색계의 하늘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쾌락에의 집착을 제거해 주고 보살의 선법(禪法)을 즐기게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된다.

  이렇게 하여 10주(住)까지 이르니, 이를 ‘보시바라밀을 갖추고 원만히 했다’고 한다.

  또한 보살에게는 두 가지 몸이 있으니, 하나는 업에 매여 나는 몸이요, 둘은 법의 몸[法身]이다. 이 두 가지 몸으로 단바라밀을 채우는 것을 일컬어 ‘단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한다.

 

 

問曰。云何名結業生身檀波羅蜜滿。

[문] 어떤 것을 일컬어 ‘업에 매여 나는 몸으로 단바라밀을 원만히 한다’고 하는가?

答曰。未得法身結使未盡。能以一切寶物頭目髓腦國財妻子內外所有。盡以布施心不動轉。如須提拏太子(秦言好愛)以其二子布施婆羅門。

  [답] 아직 법신을 얻지 못하고, 번뇌가 아직 다하지 않았지만 능히 온갖 보물과 머리?눈?골수?뇌?나라?재산?처자 등 안팎의 모든 것을 베풀고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예컨대 수제나(須提拏)4)란 태자는 그의 두 아들을 바라문에게 보시하고,  다음은 아내를 보시하고도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또한 살바달(薩婆達)5) 왕은 적국에 나라를 빼앗기자 깊은 숲 속에 숨어 있는데 먼 나라의 바라문이 와서 구걸을 했다. 그러나 자신은 나라도 패망한채 몸 하나 숨어 살건만 그가 얼마나 아쉽기에 멀리에서 왔거늘 아무것도 얻지 못함을 보고는 가엾이 여겨 바라문에게 말했다.

次以妻施其心不轉。又如薩婆達王(秦言一切施)爲敵國所滅。身竄窮林。見有遠國婆羅門來欲從己乞。自以國破家亡一身藏竄。愍其辛苦故。從遠來而無所得。

 

語婆羅門言。我是薩婆達王。新王募人求我甚重。卽時自縛以身施之。送與新王大得財物。亦如月光太子出行遊觀。癩人見之要車白言。我身重病辛苦懊惱。太子嬉遊獨自歡耶。大慈愍念願見救療。

  “나는 살바달 왕이다. 새 왕은 사람들을 모아 나를 찾아다니고 있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결박해 그에게 주어 새 왕에게 끌려가니, 그는 많은 재물을 얻었다.

  또한 월광 태자(月光太子)6)가 길을 가는데 나병에 걸린 사람이 그를 보고는 수레를 기다리고 있다가 말했다.

  “나는 무거운 병에 걸려 몹시 괴로운데 태자께서는 혼자만 즐겁게 노니십니까? 자비한 마음으로 가엾이 여기사 구제해 주십시오.”

太子聞之以問諸醫。醫言當須從生長大無瞋之人血髓。塗而飮之。如是可愈。太子念言。設有此人貪生惜壽何可得耶。自除我身無可得處。卽命旃陀羅。令除身肉破骨出髓以塗病人以血飮之。

  태자가 이 말을 듣고 의원들에게 물으니, 그들이 말했다.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성낸 적이 없는 사람의 피와 골수를 뽑아 바르고 또한 마시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에 태자는 생각했다.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 한들 살기를 원하지 죽기를 바라진 않으리라. 그러니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내 몸을 제하고는 얻을 수가 없으리라.”

  그리고는 곧 전다라(?陀羅)에게 명하여 몸의 살을 베어내고 뼈를 부수어 골수를 뽑아내게 했으며, 그것을 병자에게 바르게 하고 또한 마시게 했다.

如是等種種身。及妻子施而無悋如棄草木。觀所施物知從緣有。推求其實都無所得。一切淸淨如涅槃相。乃至得無生法忍。是爲結業生身行檀波羅蜜滿。

  이와 같이 갖가지로 몸과 처자를 베풀되 인색함이 없었으니, 마치 초목을 버리는 것과 같이 했다. 보시한 물건은 인연 따라 있었던 것임을 알고, 그 실체를 구하여도 도무지 얻을 수 없고 일체가 청정해서 모두가 열반의 모습과 같음을 알았으며, 마침내는 무생법인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업에 매여 나는 몸으로 보시바라밀을 행하여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云何法身菩薩行檀波羅蜜滿。

  어떤 것이 법신 보살이 보시바라밀을 행하여 원만히 하는 것인가?

菩薩末後肉身得無生法忍。捨肉身得法身。於十方六道中。變身應適以化衆生。種種珍寶衣服飮食給施一切。又以頭目髓腦國財妻子內外所有盡以布施。

곧 보살이 마지막 몸으로 무생법인을 얻고는 육신을 버리고서 법신을 얻고는 시방의 6도(道) 가운데서 몸을 변화하여 중생을 교화하되 갖가지 보물과 의복과 음식으로 모두에게 보시하기도 하고 또한 머리?눈?골수?뇌?나라?재산?처자 등 안팎의 모든 것을 보시하는 것이다.

譬如釋迦文佛。曾爲六牙白象。獵者伺便以毒箭射之。諸象競至欲來蹈殺獵者。白象以身捍之。擁護其人愍之如子。諭遣群象徐問獵人。何故射我。

  예컨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일찍이 여섯 어금니의 흰 코끼리이셨을 때, 사냥꾼이 틈을 엿보아 독약을 바른 화살을 쏘니 코끼리들이 화가 나서 달려와 그 사냥꾼을 밟아 죽이려 했다. 이에 흰 코끼리는 몸으로써 그들을 막아 사냥꾼을 보호하여 자식같이 가엾이 여기면서 코끼리들을 타일러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사냥꾼에게 천천히 물었다.  

“무엇 때문에 나를 쐈는가?”

答曰。我須汝牙。卽時以六牙內石孔中血肉俱出。以鼻擧牙授與獵者。雖曰象身用心如是。當知此象非畜生行報。阿羅漢法中都無此心。當知此爲法身菩薩。

사냥꾼이 대답했다.   “나는 그대의 어금니가 필요하다.”  그는 곧 여섯 어금니를 바위 구멍에 넣고 흔들었다. 그러자 피와 살과 함께 흘러나오자 코로 어금니를 집어 사냥꾼에게 주었다.

  비록 코끼리의 몸을 받았으나 마음씨가 이와 같았느니, 이 코끼리는 축생의 과보가 아님을 알 수 있다.7) 아라한에게는 도무지 이런 마음이 없으니, 이는 반드시 법신 보살임을 알 수 있다. 

有時閻浮提人不知禮敬。耆舊有德。以言化之未可得度。

是時菩薩自變其身。作迦頻闍羅鳥。是鳥有二親友。一者大象二者獼猴。共在必鉢羅樹下住。自相問言。我等不知誰應爲長。

또한 한때 염부제 사람들은 나이든 이나 유덕한 이에게 인사할 줄을 몰랐는데, 말로써 교화해도 제도할 수 없었다.

  이때 보살은 스스로 그 몸을 변화하여 가빈사라(迦頻?羅)8) 새가 되었다.

  그 새에게는 친한 벗이 둘 있었으니, 하나는 큰 코끼리요, 또 하나는 원숭이였다. 그들은 다 같이 필발라9)나무 아래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렇게 상의했다.

象言。我昔見此樹在我腹下。今大如是以此推之我應爲長。

 “우리들 사이에는 누가 어른이 되어야 할까?”   코끼리가 말했다.   “내가 옛날에 보니, 이 나무는 내 배 밑에 있었는데 이제 이렇게 컸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내가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이다.”

獼猴言。我曾蹲地手挽樹頭以是推之我應爲長。鳥言。我於必鉢羅林中食此樹果。子隨糞出此樹得生。以是推之我應最長。鳥復說言先生宿舊禮應供養。卽時大象背負獼猴。鳥在猴上。周遊而行。一切禽獸見而問之。何以如此。

  원숭이가 말했다.  “나는 어릴 적에 땅에 웅크리고 앉아 이 나무 끝을 휘어잡고 놀았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내가 어른이 되어야 마땅하다.”

  새가 말했다.   “내가 다른 필발라 숲에서 나무 열매를 따먹었는데, 씨가 똥에 묻어나와 이 나무가 자라나게 되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내가 당연히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새는 다시 말했다. 

  “먼저 태어난 어른에게는 마땅히 예를 갖추어 공양해야 한다.”

  그러자 즉시 큰 코끼리는 등을 낮춰 원숭이를 태우고, 새는 원숭이 위에 앉아 숲 속을 돌아다니니, 다른 새와 짐승들이 보고는 이상히 여기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왜들 그러는가?”

答曰。以此恭敬供養長老。禽獸受化皆行禮敬。不侵民田不害物命。

  그들이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어른을 공경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이 말에 다른 새와 짐승들이 감화를 받아 모두가 예절을 지키고 민가의 밭을 침범하거나 생명 있는 것들[物]의 목숨을 해치지 않게 되었다.

衆人疑怪一切禽獸不復爲害。獵者入林見象負獼猴獼猴戴鳥。行敬化物物皆修善傳告國人。人各慶曰。時將太平鳥獸而仁。人亦效之。皆行禮敬。自古及今化流萬世。當知是爲法身菩薩。

  이때 사람들은 새와 짐승들이 모두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궁금히 여겼다. 그런데 어느 사냥꾼이 숲에 들어왔다가 코끼리가 원숭이를 지고, 다시 원숭이는 새를 이고 다니면서 공경을 행해 동물들을 감화시키니, 이로 인해 동물들이 모두 선을 닦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나라 사람들에게 알리니, 사람들은 모두가 경사스럽게 여기면서 말했다.   “시절이 크게 태평해지려고 한다. 새와 짐승들조차 어질어지고 있다.”

  사람들 역시 그것을 본받아서 예의와 공경을 다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교화의 힘이 흘러 만 세대에 이르니, 이것이 법신 보살이다. 

  復次法身菩薩一時之頃。化作無央數身。供養十方諸佛。一時能化無量財寶給足衆生。能隨一切上中下聲一時之頃。普爲說法。乃至坐佛樹下。如是等種種名爲法身菩薩行檀波羅蜜滿。

  또한 보살의 법신은 잠깐 사이에 한량없는 몸으로 변화하여 시방의 부처님께 공양하고, 일시에 능히 한량없는 재물과 보배를 변화해 내어 중생들에게 공급하며, 능히 일체의 상?중?하의 음성에 따라 잠깐 사이에 모두에게 두루 법을 설하며, 나아가서는 보리수 밑에 앉는다. 이러한 갖가지를 일컬어 법신 보살이 단바라밀을 행하여 원만히 한다고 하는 것이다.

復次檀有三種一者物施二者供養恭敬施。三者法施。云何物施。珍寶衣食頭目髓腦。如是等一切內外所有盡以布施。是名物施。恭敬施者。信心淸淨恭敬禮拜。將送迎逆讚遶供養。如是等種種名爲恭敬施。法施者爲道德故。語言論議誦讀講說除疑問答授人五戒。如是等種種爲佛道故施。是名法施。是三種施滿。是名檀波羅蜜滿。

또한 단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재물보시요, 둘째는 공양과 공경의 보시요, 셋째는 법보시이다.   어떤 것이 재물보시인가? 곧 진귀한 보배나 의복?음식?머리?눈?골수 등 이러한 온갖 안팎의 것을 모두 베푸는 것이니, 이를 재물보시라 한다.   공경의 보시라 함은 신심이 청정하여 공경하고 예배하며, 맞이하고 전송하고 찬탄하고 주위를 돌며(繞?) 공양하는 등 이러한 갖가지를 공경의 보시라 한다.  법보시란, 도덕을 위하여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외우고 읽고 강설하고 의혹을 제하기 위하여 문답하며, 남에게 5계를 일러주는 등 이렇듯 갖가지를 불도를 위하는 까닭에 베푸는 것을 법보시라 한다.  이 세 가지 보시가 원만해지는 것을 단바라밀의 원만함이라 한다.

復次三事因緣生檀。一者信心淸淨。二者財物。三者福田。心有三種。若憐愍。若恭敬。若憐愍恭敬。施貧窮下賤及諸畜生。是爲憐愍施。施佛及諸法身菩薩等。是爲恭敬施。若施諸老病貧乏阿羅漢辟支佛。是爲恭敬憐愍施。施物淸淨非盜非劫以時而施。不求名譽不求利養。或時從心大得福德。或從福田大得功德。或從妙物大得功德。第一從心如四等心念佛三昧。以身施虎如是名爲從心大得功德。

또한 세 가지 인연으로 보시가 생겨나니, 첫째는 신심이 청정함이요, 둘째는 재물이요, 셋째는 복밭[福田]이다.  마음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가엾이 여김과 공경함과 가엾이 여기면서 공경함이다

  빈궁하고 하천한 이나 축생들에게 베푸는 것은 가엾이 여기는 보시요, 부처님이나 법신 보살 등에게 베푸는 것은 공경하는 보시요, 늙고 병들고 가난한 아라한이나 벽지불에게 베푸는 것은 공경하면서 가엾이 여기는 보시이다.

  보시하는 물건이 청정하다고 함은 훔치거나 겁탈한 것이 아니며, 때에 맞추어 베풀되 명예를 구하거나 이양을 바라지도 않는 것이다.   혹은 마음에 의해 복덕을 많이 얻기도 하고, 혹은 복밭에 의해 공덕을 많이 얻기도 하고, 혹은 묘한 물건에 의해 공덕을 많이 얻기도 한다. 

 첫째의 마음에 의한다 함은 4등심(等心)10)이나 염불삼매에 의하여 굶주린 범에게 몸을 보시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은 것을 ‘마음에 의해 공덕을 얻는다’ 한다.

福田有二種。一者憐愍福田二者恭敬福田。憐愍福田能生憐愍心。恭敬福田能生恭敬心。如阿輸伽(秦言無憂)王以土上佛。復次物施中。如一女人酒醉沒心誤以七寶瓔珞布施迦葉佛塔。以福德故生三十三天。如是種種名爲物施。

  복밭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가엾이 여기는 복밭이요, 둘째는 공경하는 복밭이다. 가엾이 여기는 복밭이라 함은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는 것이요, 공경하는 복밭이라 함은 공경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 마치 아수가(阿輸伽)11)[진나라 말로는 무우(無憂)이다.] 왕이 국토를 부처님에 바친 것과 같다.

  또한 재물보시에 대하여 말하자면, 어떤 여자가 술에 취하여 7보의 영락으로 가섭불의 탑에 보시했는데 그 복덕으로 삼십삼천에 태어난 일이 있다. 이러한 갖가지 일을 재물보시라 한다.

問曰。檀名捨財。何以言具足無所捨法。

  [문] 단이란 재물을 버리는 일이라 하거늘 어찌하여 말하기를 “버릴 바 없는 법을 구족한다” 말하는가?

答曰。檀有二種。一者出世間。二者不出世間。今說出世間檀無相。無相故無所捨。是故言具足無所捨法。復次財物不可得故。名爲無所捨。是物未來過去空。現在分別無一定法。以是故言無所捨。復次以行者捨財時心念。此施大有功德。倚是而生憍慢愛結等。以是故言無所捨。以無所捨故無憍慢。無憍慢故愛結等不生。

  [답] 단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세간을 벗어난 것이요, 또 하나는 세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지금은 세간을 벗어난 보시의 특징 없음[無相]을 말하고 있다. 특징이 없으므로 버릴 바가 없다. 그러므로 ‘버릴 바 없는 법을 구족한다’고 한다.

  또한 재물은 얻을 수 없으므로 ‘버릴 바가 없다’고 한다. 이 물건이란 미래와 과거는 공하고, 현재의 분별에는 일정한 법이 없다. 그러므로 ‘버릴 바가 없다’고 한다.

  또한 행자가 재물을 희사하면서 마음속으로 ‘이 보시로 인하여 공덕이 많으리라’고 생각함으로써 교만함과 애결(愛結) 등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버릴 바가 없다 하나니, 버릴 바가 없으므로 교만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으므로 애결 등이 생기지 않는다.

復次施者有二種。一者世間人二者出世間人。世間人能捨財不能捨施。出世間人能捨財能捨施。何以故。以財物施心俱不可得故。以是故言具足無所捨法。復次檀波羅蜜中。言財施受者三事不可得。

  또한 보시하는 자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세간 사람이요, 또한 하나는 세간을 벗어난 사람이다. 세간 사람은 재물은 버리나 보시는 버리지 못한다. 세간을 벗어난 사람은 능히 재물을 버리고 능히 보시를 버린다. 왜냐 하면, 재물도 보시하는 마음도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버릴 바 없는 법을 구족한다’고 한다.

  또한 보시바라밀에 대해 말하기를 “재물과 베푸는 자와 받는 자, 이 세 가지는 얻을 수 없다” 했다.

問曰。三事和合故名爲檀。今言三事不可得。云何名檀波羅蜜具足滿。今有財有施有受者。云何三事不可得。如所施疊實有。何以故。疊有名則有疊法。若無疊法亦無疊名。以有名故應實有疊。復次疊有長有短麤細白黑黃赤。有因有緣有作有破有果報隨法生心。十尺爲長五尺爲短。縷大爲麤縷小爲細。隨染有色有縷爲因。織具爲緣。是因緣和合故爲疊。人功爲作人毁爲破。御寒暑弊身體名果報。人得之大喜失之大憂。以之施故得福助道。若盜若劫戮之都市。死入地獄。如是等種種因緣。故知有此疊是名疊法。云何言施物不可得。

  [문] 세 가지 일이 화합함으로써 보시라 말한다. 그런데 이제 말하기를 ‘세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어찌 보시바라밀을 갖추고 원만히 한다 하겠는가? 이제 재물도 있고, 보시하는 이도 있고, 받는 이도 있거늘 어떻게 세 가지를 얻을 수 없는가?

  마치 보시한 방석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그것은 왜냐하면 방석이란 이름이 있으면 방석이란 법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방석이란 법이 없으면 방석이란 이름도 없겠지만 이름이 있으므로 실제로 방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방석에는 길고 짧음, 거칠고 고움, 희고 검고 누렇고 붉음 등이 있으며, 인과 연, 지음과 깨짐, 결과와 과보가 있어서 그 특성[法]을 좇아 마음이 생겨난다. 곧 열 자는 길고 다섯 자는 짧으며, 올이 크면 거칠고 올이 가늘면 고우며, 물들임에 따라 빛깔이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올이 있음은 인(因)이요 짜는 기계가 있음은 연(緣)이 되나니, 이런 인연이 화합하기에 방석이 된다. 사람이 공을 들이면 지음이 있고, 사람이 훼손하면 깨뜨림이 있으며, 추위와 더위를 막거나 몸을 가리면 과보라 한다.

  사람들은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몹시 근심함이 있으니, 그러한 것으로써 보시한다면 복을 받고 도(道)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훔치거나 혹은 겁탈해서 그것을 저자거리에서 깐다고 해도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이 있는 까닭에 이 방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방석의 법이라 하거늘 어찌 보시할 물건을 얻을 수 없다 하는가?

答曰。汝言有名故有是事。不然。何以知之。名有二種有實有不實。不實名。如有一草名朱利。(朱利秦言賊也)草亦不盜不劫實非賊而名爲賊。又如免角龜毛。亦但有名而無實疊雖不如免角龜毛無。然因緣會故有。因緣散故無。如林如軍是皆有名而無實。譬如木人雖有人名不應求其人法。疊中雖有名亦不應求疊眞實。疊能生人心念因緣。得之便喜失之便憂。是爲念因緣。

  [답] 그대가 말하기를 “이름이 있으므로 그 일이 있다” 했는데, 이는 옳지 못하다.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이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사실[有實]과 사실이 아님[有不實]이다.

  사실이 아닌 이름이란, 마치 어떤 풀의 이름이 주리(朱利)[진나라 말로는 도적(賊)이다.]이지만, 풀 자체는 훔치거나 겁탈하지 않아 실제로는 도적이  아니거늘 도적이라 불리는 것과 같다.

  또한 토끼의 뿔이나 거북의 털처럼 다만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없는 것과도 같다. 방석은 토끼의 풀이나 거북의 털같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인연이 모이기 때문에 있고, 인연이 흩어지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숲이라든가 군대도 모두 이름은 있으나 실제에는 없다.

  비유하건대 나무 사람이 비록 사람이란 이름은 있으나 사람의 특성[法]을 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방석 역시 이름은 있으나 방석의 실체는 구할 수 없다.

  방석이란 사람의 마음을 내게 하는 인연이 되나니,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근심한다. 이것이 생각의 인연이다.

  心生有二因緣。有從實而生。有從不實而生。如夢中所見如水中月。如夜見杌樹謂爲人。如是名從不實中能令心生。是緣不定。不應言心生有故便是有。若心生因緣故有。更不應求實有。如眼見水中月。心生謂是月。若從心生便是月者則無復眞月。

마음이 생기는 데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실제로부터 생기는 것과 실제가 아닌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꿈속에서 본 것과 같고, 물속에 비친 달과 같고, 밤에 말뚝을 보고 사람이라 여기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것들은 일컬어 ‘실제가 아닌 것에서 능히 마음을 낸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이란 일정치 않으니, 마음으로 생겨나 존재하기에 곧 있는 것이라 해서는 안 된다.

  만일 마음으로 생겨나는 인연 때문에 존재하고, 다시 실제의 존재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면, 이는 마치 눈으로 물속의 달을 보고는 생각을 일으켜 ‘이것은 달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만약에 마음을 좇아 이 달이 생겨났다면 진짜 달은 없어야 한다.

復次有三種。一者相待有。二者假名有。三者法有。相待者如長短彼此等。實無長短亦無彼此。以相待故有名。長因短有短亦因長。彼亦因此此亦因彼。若在物東則以爲西。在西則以爲東。一物未異而有東西之別。此皆有名而無實也。如是等名爲相待有。是中無實法。不如色香味觸等。假名有者。如酪有色香味觸四事因緣合故假名爲酪。雖有不同因緣法有。雖無亦不如免角龜毛無。但以因緣合故假名有。酪疊亦如是。復次有極微色香味觸故。有毛分。毛分因緣故有毛。毛因緣故有毳。毳因緣故有縷。縷因緣故有疊。疊因緣故有衣。若無極微色香味觸因緣。亦無毛分。毛分無故亦無毛。毛無故亦無毳。毳無故亦無縷。縷無故亦無疊。疊無故亦無衣。

  또한 있음[有]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상대해서 있음[相待有]이요, 둘째는 거짓 이름으로 있음[假名有]이요, 셋째는 법답게 있음[法有]이다.

  상대해서 있다고 함은 마치 길고 짧음이나 너와 나[彼此]같이 실제로는 길고 짧음이 없고 너와 나가 없건만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이름이 있게 된다. 길다 함은 짧은 것에 인하여 존재하고, 짧다 함은 또한 긴 것으로 인하여 존재한다. 너라는 것은 나를 인하고, 나라는 것 역시 너를 인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물건의 동쪽에 있으면 그로써 이쪽은 서쪽이 되지만, 서쪽에 있다면 동쪽이 된다. 한 물건은 다름이 없는데 동쪽?서쪽의 차별이 생기는 것  이다.

  이들은 모두가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없다. 이러한 것들을 ‘상대해서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실재하는 법은 없으니, 빛?냄새?맛?닿임 등과는 같지 않다.

  거짓 이름으로 있다고 함은 마치 소락[酪]이 빛?냄새?맛?닿임 등 네 가지 일이 있어 인연이 합하는 까닭에 거짓으로 소락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다.

  비록 있다고 하나 인연의 법으로 있는 것과는 같지 않고, 없다고 하나 토끼의 뿔이나 거북의 털이 없는 것과도 같지 않다. 다만 인연이 합하는 까닭에 거짓으로 ‘있다’ 할 뿐이다. 소락이나 방석의 경우도 그러하다.

  또한 극미(極微)12)의 빛?냄새?맛?닿임이 있으므로 털의 요소[毛分]가 있고, 털의 요소의 인연으로 털이 있고, 털의 인연으로 털솜[?]이 있고, 털솜의 인연으로 털실이 있고, 털실의 인연으로 비단이 있고, 비단의 인연으로 옷이 있다.

  만일 극미의 빛?냄새?맛?닿임의 인연이 없으면 또한 털의 요소도 없고, 털의 요소가 없는 까닭에 털솜도 없고, 털솜이 없는 까닭에 털실도 없고, 털실이 없는 까닭에 비단도 없고, 비단이 없는 까닭에 옷도 없다.

 

問曰。亦不必一切物皆從因緣和合故有。如微塵至細故無分。無分故無和合。疊麤故可破。微塵中無分。云何可破。

  [문] 일체의 존재[物]가 반드시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미진(微塵)은 지극히 미세하므로 나눌 수 없고, 나눌 수 없으므로 화합할 것이 없다.

  방석, 즉 비단은 거칠기 때문에 쪼갤 수 있지만 미진은 나눌 수조차 없거늘 어떻게 쪼개겠는가?

 

 

答曰。至微無實强爲之名。何以故麤細相待。因麤故有細。是細復應有細。復次若有極微色。則有十方分。若有十方分是不名爲極微。若無十方分則不名爲色。復次若有極微則應有虛空分齊。若有分者則不名極微。復次若有極微。是中有色香味觸作分。色香味觸作分。是不名極微。以是推求微塵則不可得。如經言。色若麤若細若內若外。總而觀之無常無我。不言有微塵。是名分破空。復有觀空。是疊隨心有。如坐禪人。觀疊或作地或作水或作火或作風。或靑或黃或白或赤或都空。如十一切入觀。如佛在耆闍崛山中。與比丘僧俱入王舍城。道中見大水。佛於水上敷尼師壇坐。告諸比丘。若比丘入禪心得自在。能令大水作地卽成實地。何以故。是水中有地分故。如是水火風。金銀種種寶物卽皆成實。何以故。是水中皆有其分。復次如一美色。婬人見之以爲淨妙心生染著。不淨觀人視之種種惡露無一淨處。等婦見之妬瞋憎惡目不欲見以爲不淨。婬人觀之爲樂。妬人觀之爲苦。行人觀之得道。無豫之人觀之無所適莫。如見土木。若此美色實淨。四種人觀皆應見淨。若實不淨。四種人觀皆應不淨。以是故知。好醜在心。外無定也。觀空亦如是。復次是疊中有十八空相故觀之便空。空故不可得。如是種種因緣財物空。決定不可得。云何施人不可得。如疊因緣。和合故有。分分推之疊不可得。施者亦如是。四大圍虛空名爲身。是身識動作來往坐起。假名爲人。分分求之亦不可得。復次一切衆界入中我不可得。我不可得故施人不可得。何以故。我有種種名字。人天男女施人受人受苦人受樂人畜生等。是但有名而實法不可得。

  [답] 지극히 미세해서 실체가 없거늘 억지로 이름붙인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거칠음과 미세함은 상대적인 것으로 거칠음을 인하기 때문에 미세함이 있거니와 이 미세함에는 다시 미세함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극미의 물질[色]이 있다면 시방의 요소가 있을 것이다. 시방의 요소가 있다면 이것을 극미라 부를 수 없고, 시방의 요소가 없다면 물질이라 부를 수 없다.

  또한 극미가 있다면 허공과의 경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 경계[分]가 있다면 극미라 할 수 없다. 

  또한 극미가 있다면 거기에는 빛?냄새?맛?닿임의 경계가 있어야 하는데, 빛?냄새?맛?닿임의 경계가 있다면 이를 극미라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따지면 극미의 실체를 얻을 수 없게 되니, 경에 말씀하시기를 “물질은 거칠거나 곱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통틀어 관찰하건대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이니 미진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셨다. 이를 나누어 깨뜨리는 공[空破空]이라 한다. 

  또한 공을 관하는 경우[空觀]가 있다. 곧 이 방석이 마음을 따라 생긴 것이로되 어떤 좌선하는 사람은 방석을 땅, 혹은 물, 혹은 불, 혹은 바람으로 관하고, 혹은 청색ㆍ황색ㆍ백색ㆍ적색이나 혹은 온통 빈 것으로 관한다. 열 가지 일체의 입(入)에 대한 관찰과 같다.

  예컨대 부처님께서 기사굴산에서 비구무리와 함께 계실 적에 왕사성에 들어가시다가 길가에서 큰물을 보셨다. 부처님께서는 물 위에다 니사단(尼師壇)13)을 펴시고 앉으셔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선정에 들어 자재(自在)를 얻으면 큰물로 하여금 땅이 되게 하기도 하는데 그때에는 곧 실제의 땅이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물속에는 땅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물?불?바람?금?은 등 갖가지 보물들도 모두 즉시에 실제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물속에는 모두 그들의 요 소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름다운 여인이 있는데, 음인(淫人)이 보면 맑고 묘하다 하여 마음으로 염착을 일으킨다. 관(觀)을 닦는 사람이 보면 갖가지 악(惡)이 드러나서 한 곳도 깨끗한 데가 없다 한다. 비슷한 여자가 보면 질투와 미움으로 증오하고 눈을 흘기며 보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더럽다 한다.

  음란한 사람이 보면 즐거워지고, 질투하는 사람이 보면 괴로워지고, 수행하는 사람이 보면 도를 얻고, 관심 없는 사람이 보면 아무런 느낌도 없어서 마치 초목같이 여긴다. 

  이 예쁜 모습이 실로 깨끗하다면 네 종류의 사람이 다 깨끗하게 보아야 할 것이요, 실제로 더러운 것이면 네 종류의 사람이 다 더럽게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좋고 나쁨은 마음에 있고 밖에서 정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공을 관함도 역시 이와 같다.

  또한 이 방석에는 열여덟 가지 공한 모습이 있는 까닭에 그것을 관하면 공해지니, 공한 까닭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으로 재물은 공하여 결정코 얻을 수 없다. 

  어찌하여 보시하는 사람을 얻을 수 없다 하는가? 마치 방석이 인연이 화합하므로써 있거니와 부분부분 분석하면 방석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보시하는 사람도 그리하여서 4대(大)가 허공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몸이라 하는데, 이 몸의 의식이 동작하고 왕래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것을 거짓으로 사람이라 하거니와 부분으로 그것을 구하면 역시 얻을 수 없다. 

  또한 일체의 온[衆]?처(處)?계(界)에서 나를 얻을 수 없나니, 나를 얻을 수 없으므로 보시하는 사람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나에게는 갖가지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곧 인간?하늘?남자?여자?베푸는 사람?받는 사람?괴로운 사람?즐거운 사람?축생 등인데, 이들은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요 실다운 법은 얻을 수 없다.

 

問曰。若施者不可得。云何有菩薩行檀波羅蜜。

  [문] 만일 보시하는 이를 얻을 수 없다면 어떻게 보살이 단바라밀을 행하겠는가?

答曰。因緣和合故有名字。如屋如車實法不可得。

  [답]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이름이 있으니, 집이나 수레 등과 같이 실다운 법을 얻을 수는 없다. 

問曰。云何我不可得。

  [문] 어찌하여 나를 얻을 수 없는가?

答曰。如上我聞一時中已說。今當更說。佛說六識。眼識及眼識相應法共緣色。不緣屋舍城郭種種諸名。耳鼻舌身識亦如是。意識及意識相應法。知眼知色知眼識。乃至知意知法知意識。是識所緣法皆空無我生滅故。不自在故。無爲法中亦不計我。苦樂不受故。是中若强有我法。應當有第七識識我。而今不爾。以是故知無我。

  [답] 앞에서 ‘어느 때 내가 들었다’를 풀이하면서 이미 설명했거니와 이제 다시 설명하리라.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6식(識)을 설명하셨다.

  “눈의 의식과 눈의 의식에 서로 응하는 법은 함께 색을 반연하고, 집이나  성곽 등 갖가지 이름을 반연하지 않나니, 귀?코?혀?몸의 의식도 이와 같다. 뜻의 의식과 뜻의 의식에 서로 응하는 법으로는 눈과 색과 눈의 의식을 알며, 나아가서는 뜻과 법과 뜻의 의식까지를 안다.”

  이 의식이 반연하는 법은 모두가 공하여 나가 없나니, 그것은 생멸하기 때문이며,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위의 법에서는 나가 있다고 계교할 수 없나니,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태여 나라 할 법이 있다면 응당 제7식(識)이 있어서 나를 식별해야 할 터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問曰。何以識無我。一切人各於自身中生計我。不於他身中生我。若自身中無我。而妄見爲我者。他身中無我亦應於他身而妄見爲我。復次若內無我。色識念念生滅。云何分別知是色靑黃赤白。復次若無我今現在人識。漸漸生滅。身命斷時亦盡。諸行罪福誰隨誰受。誰受苦樂誰解脫者。如是種種內緣故。知有我。

  [문] 어떻게 나가 없음을 알겠는가? 모든 사람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서 나라는 계교를 내고, 다른 이의 몸에서 나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만일 자기 몸에 나가 없는데 헛되이 보고는 나라 여기는 것이라면 남의 몸에서의 나 없음에 대하여서도 헛되이 보아 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만일 안으로 나가 없어서 색과 의식이 생각생각 사이에 생멸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이 빛이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것을 분별해 알겠는가.

  또한 만일 나가 없다면 지금 살아있는 사람의 의식이 차츰차츰 생멸하다가 목숨이 다할 때엔 역시 다하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행위의 죄와 복은 누가 따르고 누가 받으며, 누가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으며, 누가 해탈을 얻겠는가.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하므로 나가 있음을 알겠다. 

答曰。此俱有難。若於他身生計我者。復當言。何以不自身中生計我。復次五衆因緣生故空無我。從無明因緣生二十身見。是我見自於五陰相續生。以從此五衆緣生故。卽計此五衆爲我。不在他身以其習故。復次若有神者可有彼我。汝神有無未了而問彼我。其猶人問免角。答似馬角。馬角若實有可以證免角。馬角猶尙未了。而欲以證免角。復次自於身生我故便自謂有神。汝言神遍亦應計他身爲我以是故不應言自身中生計我心於他身不生。故知有神。復次有人於他物中我心生。如外道坐禪人。用地一切入觀時。見地則是我我則是地。水火風空亦如是。顚倒故於他身中亦計我。復次有時於他身生我。如有一人受使遠行。獨宿空舍。夜中有鬼擔一死人來著其前。復有一鬼逐來瞋罵前鬼。是死人是我物。汝何以擔來。先鬼言是我物我自持來。後鬼言是死人實我擔來。二鬼各捉一手爭之。前鬼言此有人可問。後鬼卽問。是死人誰擔來。是人思惟。此二鬼力大。若實語亦當死。若妄語亦當死。俱不免死何爲妄語。語言。前鬼擔來。後鬼大瞋。捉人手拔出著地。前鬼取死人一臂拊之卽著。如是兩臂兩脚頭脇擧身皆易。於是二鬼共食所易人身拭口而去。其人思惟。我人母生身眼見二鬼食盡。今我此身盡是他肉。我今定有身耶。爲無身耶。若以爲有盡是他身。若以爲無今現有身。如是思惟。其心迷悶。譬如狂人。明朝尋路而去。到前國土見有佛塔衆僧。不論餘事但問己身爲有爲無。諸比丘問。汝是何人。答言。我亦不自知是人非人。卽爲衆僧廣說上事。諸比丘言。此人自知無我易可得度。而語之言。汝身從本已來恒自無我。非適今也。但以四大和合故計爲我身。如汝本身與今無異。諸比丘度之爲道斷諸煩惱。卽得阿羅漢是爲有時他身亦計爲我。不可以有彼此故謂有我。復次是我實性決定不可得。若常相非常相自在相不自在相作相不作相色相非色相。如是等種種皆不可得。若有相則有法。無相則無法。我今無相則知無我。若我是常不應有殺罪。何以故身可殺非常故。我不可殺。常故。

  [답] 여기에는 양쪽 모두에 모순이 있다. 만일 남의 몸에 대하여 나라는 계교를 낸다면 마땅히 “어찌하여 자기의 몸에 대하여는 나라는 계교를 내지 않는가”라고 말해야 한다.

  또한 5중(衆)의 인연으로 생겼기 때문에 공하여 나가 없거니와 무명의 인연으로 스무 가지 신견(身見)이 생기는데 이 나라는 견해는 원래 5음(陰)에 대해서 상속되어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게 5음의 인연에서 생겼기 때문에 이 5음을 나라고 계교한다. 남의 몸에 있지 않으니 그것은 습관 때문이다. 

  또한 신(神)14)이 있다면 너와 나가 있다 하겠지만 그대는 아직 신이 있고 없음을 명료히 하지 못하면서 나를 묻는다. 이것은 마치 토끼의 뿔을 묻는데 말의 뿔 같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말의 뿔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그로써 토끼의 뿔을 증명할 수 있겠지만 말의 뿔조차 아직 명료히 하지 못하면서 토끼의 뿔을 증명하려 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의 몸에 대하여 나라는 소견을 내는 까닭에 신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대가 말하기를 “신이 두루하다”고 한다면 남의 몸도 내몸이라고 계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몸에 대하여는 나라고 계교하는 생각이 나거니와 남의 몸에서는 생기지 않으므로 신이 있는 줄 알겠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떤 사람은 남의 물건에 대하여 나의 것이란 생각을 내는데, 마치 어떤 외도가 좌선을 하면서 일체를 땅으로 보는 관법에 들어갔을 때 땅이 나요, 내가 땅이 되는 것과 같다. 물?불?바람에 대해서도 그러하니, 전도된 까닭에 남의 몸에 대해서 내 것이라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또한 어떤 때는 남의 몸에 대하여 내 것이라는 생각을 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남의 심부름으로 멀리 가서 빈방에 혼자 머무는데 밤중에 귀신이 송장 하나를 메고 와서 그의 앞에 던졌다. 이내 뒤를 이어 다를 귀신 하나가 따라와서 앞의 귀신을 꾸짖되 “이 시체는 나의 것인데 어찌하여 네가 메고 왔느냐” 하니, 앞의 귀신은 대꾸하기를 “이것은 나의 것이므로 내가 가져 왔다” 했다.

  그러니 나중의 귀신이 말하기를 “이 시체는 실로 내가 메고 왔다” 하여, 마침내 두 귀신은 제각기 시체의 팔 하나씩을 잡고 다투다가 먼저 귀신이 이렇게 제의했다. 

  “여기 인간이 하나 있으니, 그에게 물어보자.”

  그러자 즉시 나중의 귀신이 물었다. 

  “이 시체는 누가 메고 왔는가?”

  그 사람은 생각했다.

    ‘이 두 귀신은 힘이 센데 사실대로 말하면 내가 죽음을 당할 것이요, 거짓으로 말해도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죽음을 면하지 못할 텐데 거짓말을 해서 무엇하랴.’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앞의 귀신이 메고 왔다.”

  이 말에 나중의 귀신은 화가 나서 그 사람의 팔을 뽑아 땅에 던져버리니, 먼저 귀신은 시체의 팔 하나를 뽑아다가 그에게 붙여 주었다.

  이와 같이, 두 팔?두 다리?머리?허리 등 온몸이 모두 바뀌어버렸다. 여기에서 두 귀신은 함께 바뀌어버린 사람의 몸을 다 먹고는 입을 닦으면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때 그 사람은 생각했다. 

  “나는 부모가 낳아 주신 몸을 눈앞에서 몽땅 두 귀신에게 먹히고, 나의 이 몸은 남의 몸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몸이 있는 것인가, 몸이 없는 것인가? 몸이 있다고 하자니 이것은 모두 남의 몸이고, 없다고 하자니 지금 이렇게 몸이 있지 않는가?”

  이렇게 걱정하기를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이튿날 아침에 길을 떠나 가다가 목적한 국토에 이르니, 그곳 불탑에 승려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몸이 있는가, 없는가’만을 물었다.

  비구들이 “그대는 누구인가?”고 물으니, 그는 “나 역시 스스로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소”라고 대답하고는 승려들에게 지난 일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그러자 비구들은 “이 사람은 나 없음의 도리를 잘 알아서 제도하기 쉬울 것이오”라고 서로 얘기한 뒤 그에게 말했다. 

  “그대의 몸은 본래부터 항상 나가 없었다.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다만 4대가 화합하기 때문에 ‘내 몸’이라는 계교를 내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대 본래의 몸은 지금의 것과 다름이 없다.”

  비구들이 그를 제도해 주니, 그는 도를 닦아 번뇌를 끊고 곧 아라한을 이루었다. 

  이 몸을 존재[有]로 삼는 때는 남의 몸에 대하여서도 나라고 계교하지만, 

  너와 나가 있다 하여 나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이 나의 실다운 성품은 결정코 얻을 수 없다. 항상한 모습?항상치 않은 모습?자재한 모습?자재치 않은 모습?짓는 모습?짓지 않는 모습?빛의 모습?빛 아닌 모습 등 이러한 갖가지 모습은 모두 얻을 수 없다.

  만일 형상이 있다면 법(法)이 있고 형상이 없으면 법도 없다. 나는 이제 형상이 없으니 곧 나가 없음을 아는 것이다.

  만일 나가 항상한 것이라면 살생의 죄가 없어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몸은 죽일 수 있고 항상치 않기 때문이며, 나는 죽일 수 없고 곧 항상하기 때문이다.

 

 

問曰。我雖常故不可殺。但殺身則有殺罪。

  [문] 나가 항상한 까닭에 비록 죽일 수 없지만 단지 몸을 죽이기만 해도 곧 살생의 죄가 있게 된다.

答曰。若殺身有殺罪者。毘尼中言。自殺無殺罪。罪福從惱他益他生。非自供養身自殺身故有罪有福。以是故毘尼中言。自殺身無殺罪。有愚癡貪欲瞋恚之咎。若神常者不應死不應生。何以故汝等法神常。一切遍滿五道中。云何有死生。死名此處失。生名彼處出。以是故不得言神常。若神常者亦應不受苦樂。何以故苦來則憂樂至則喜。若爲憂喜所變者則非常也。若常應如虛空雨不能濕熱不能乾。亦無今世後世。若神常者示不應有後世生今世死。若神常者則常有我見。不應得涅槃。若神常者則無起無滅。不應有妄失。以其無神識無常故。有忘有失。是故神非常也。如是等種種因緣可知神非常相。

 

若神無常相者亦無罪無福。若身無常神亦無常。二事俱滅則墮斷滅邊。墮斷滅則無到後世受罪福者。若斷滅則得涅槃。不須斷結亦不用後世罪福因緣。如是等種種因緣可知神非無常。

  [답] 가령 몸을 죽이면 살생의 죄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비니(毘尼)에서는 말하기를 “자살에는 살생의 죄가 없다. 죄와 복은 남을 괴롭히고 이익되게 하는 데서 생긴다”고 하며, 다시 비니에서 말하기를 “자신을 죽이면 살생의 죄는 없고, 어리석음?성냄의 허물이 있다”고 했다.

  만일 영혼[神]이 항상하다면 죽지도 않고 나지도 않아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그대들의 법에 의한다면 영혼은 항상하여 일체의 5도(道)에 두루 차 있다. 그러니 어찌 생사가 있겠는가. 죽음이란 여기에서 없어진다는 말이요, 남이란 저기에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항상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만일 영혼이 항상하다면 고락을 받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괴로움이 오면 근심하고 즐거움이 오면 기뻐하는데 근심과 즐거움에 따라 변한다면 항상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항상하다면 허공과 같아서 비도 적시지 못하고, 열기로도 말리지 못하며, 또한 금생과 내생도 없을 것이다.

  만일 영혼이 항상하다면 후생에 태어나거나 금생에 죽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다시 영혼이 항상하다면 항상 아견(我見)이 있어서 열반을 얻지 못할 것이며, 영혼이 항상하다면 일어남도 멸함도 없으며, 잊거나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혼은 없고 식(識)은 무상하기에 잊는 일이 있고 잃어버리는 일이 있다.

  그러므로 신식은 항상치 않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해 영혼은 항상한 모습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若神自在相作相者。則應隨所欲得皆得。今所欲更不得。非所欲更得。若神自在。亦不應有作惡行墮畜生惡道中。復次一切衆生皆不樂苦。誰當好樂而更得苦。以是故知神不自在。亦不作。又如人畏罪故自强行善。若自在者。何以畏罪而自强修福。又諸衆生不得如意。常爲煩惱愛縛所牽。如是等種種因緣。知神不自在不自作。

  만일 영혼이 무상한 모습이라면 또한 죄도 없고 복도 없다. 만일 몸이 무상하다면 영혼도 무상하다. 두 가지가 모두 사라지면 단멸의 극단에 떨어지고, 단멸에 떨어지면 후생에 이르러 죄와 복을 받을 이도 없게 된다.

  만일 단멸 그대로가 열반을 얻는 것이라면 번뇌[結]를 끊을 필요도 없고, 또한 후생의 죄와 복의 인연도 필요치 않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하여 신식이 항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신식이 자재한 것이라면 얻고자 하는 것은 모두 얻어져야 하는데 이제 희망하는 것은 얻어지지 않고 희망치 않는 것은 얻어지는 일이 있다. 또한 신이 자재하다면 나쁜 짓을 하고도 축생이나 나쁜 길에 떨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또한 중생은 모두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나니, 누가 즐거움을 좋아하면서도 괴로움을 차지하려 하겠는가. 이런 도리에 의하여 신은 자재하지 못하며, 짓는 이[作者]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죄를 두려워해서 억지로 선을 행하는데 만일 자재하다면 어찌 죄를 두려워해서 억지로 복을 닦겠는가.

  또한 중생들이란 항상 뜻대로 이루지 못한 채 항상 번뇌에 속박되어 끄달린다. 이런 갖가지 인연에 의해 영혼이 자재하지 못하고, 스스로 짓는 이도 아님을 알 수 있다. 

若神不自在不自作者。是爲無神相。言我者卽是六識更無異事。復次若不作者。云何閻羅王問罪人。誰使汝作此罪者。罪人答言。是我自作。以是故知非不自作。

  만일 영혼이 자재하지 않고 스스로 짓는 이도 아니라면 이는 영혼의 모습이 없는 것이다. 보통 말하는 나란 6식(識)일 뿐 별것이 아니다.

  또한 짓는 이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염라왕이 죄인들에게 “누가 너로 하여금 이런 죄를 짓게 하였는가?”고 물으며, 죄인들은 대답하기를 “내 스스로가 지었소”라고 하는가? 이것으로 미루어 스스로 짓지 않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若神色相者是事不然。何以故。一切色無常故。

만일 영혼이 물질[色]의 모습이라 한다면 이는 옳지 못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물질은 무상하기 때문이다.

 

問曰。人云何言色是我相。

  [문] 사람들은 어찌하여 “물질이 나의 모습이다”라고 말하는가?

答曰。有人言。神在心中微細如芥子。淸淨名爲淨色身。更有人言如麥。有言如豆。有言半寸。有言一寸。初受身時最在前受。譬如像骨及其成身如像已莊。有言大小隨人身。死壞時此亦前出。如此事皆不爾也。何以故。一切色四大所造。因緣生故無常。若神是色色無常神亦無常。若無常者如上所說。

  [답]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영혼은 마음속에 있어서 미세하기가 겨자씨 같고 청정한 것을 일컬어 맑은 색신(色身)이라 한다”고 했다.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보리쌀과 같다”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콩알과 같다”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크기가 반 치[半寸]이다”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크기가 한 치인데, 처음 몸을 받을 때 가장 먼저 받는다. 마치 등상[像]의 골격 같다가 몸을 이루면 등상과 같이 이미 가지런히 이루어진다” 한다. 다시 어떤 이는 말하기를 “크고 작음이 사람의 몸에 따라 다르나, 죽어 무너질 때엔 이것이 또한 앞서 나간다” 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모두가 옳지 못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일체의 물질은 4대로 이루어지고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이기에 무상하기 때문이다. 만일 영혼이 물질이라면 물질이 무상하므로 영혼 역시 무상할 것이다. 만일 무상하다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問曰。身有二種。麤身及細身。麤身無常細身是神。世世常去入五道中。

  [문] 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거친 몸과 미세한 몸이다. 거친 몸은 무상하지만, 미세한 몸은 영혼[神]이어서 세세에 항상하여 5도에 든다.

答曰。此細身不可得。若有細身應有處所可得。如五藏四體。一一處中求皆不可得。

  [답] 이 미세한 몸이란 얻을 수 없다. 미세한 몸이 있다면 처소가 있어야 하는데 5장(藏)과 4체(體) 등 낱낱 처소에서 구하여도 모두 얻을 수 없다.

問曰。此細身微細。初死時已去。若活時則不可求得汝云何能見。又此細身非五情能見能知。唯有神通聖人乃能得見。

  [문] 이 미세한 몸은 미세하여서 처음 죽으려 할 때엔 이미 떠났고, 살아있을 때엔 찾을 수 없거늘 그대가 어떻게 능히 보겠는가?

  또한 이 미세한 몸은 5정(情)으로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으니, 오직 신통을 얻은 성인이라야 볼 수 있다.

答曰。若爾者與無無異。如人死時。捨此生陰入中陰中。是時今世身滅受中陰身。此無前後滅時卽生。譬如蠟印印泥。泥中受印印卽時壞。成壞一時亦無前後。是時受中陰中有。捨此中陰受生陰有。汝言細身卽此中陰。中陰身無出無入。譬如然燈生滅相續不常不斷。佛言一切色衆。若過去未來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皆悉無常。汝神微細色者。亦應無常斷滅。如是等種種因緣可知非色相。神非無色相。無色者四衆及無爲。四衆無常故。不自在故。屬因緣故。不應是神。三無爲中不計有神。無所受故。如是等種種因緣。知神非無色相。如是天地間若內若外。三世十方求我不可得。但十二入和合生六識。三事和合名觸。觸生受想思等心數法。是法中無明力故身見生。身見生故謂有神。是身見見苦諦苦法智及苦比智則斷。斷時則不見有神。汝先言若內無神。色識念念生滅。云何分別知色靑黃赤白。汝若有神亦不能獨知。要依眼識故能知。若爾者神無用也。眼識知色色生滅。相似生相似滅。然後心中有法生名爲念。是念相有爲法。雖滅過去是念能知。如聖人智慧力。能知未來世事。念念亦如是。能知過去法。若前眼識滅生後眼識。後眼識轉利有力。色雖暫有不住。以念力利故能知。以是事故雖念念生滅無常。能分別知色。又汝言今現在人識新新生滅。身命斷時亦盡。諸行罪福誰隨誰受。誰受苦樂誰解脫者。今當答汝。今未得實道。是人諸煩惱覆心。作生因緣業。死時從此五陰相續生五陰。譬如一燈更然一燈。又如穀生。有三因緣地水種子。後世身生亦如是。有身有有漏業有結使。三事故後身生。是中身業因緣不可斷不可破。但諸結使可斷。結使斷時雖有殘身殘業可得解脫。如有穀子有地無水故不生。如是雖有身有業。無愛結水潤則不生。是名雖無神亦名得解脫。無明故縛。智慧故解。則我無所用。

  [답] 만일 그렇다면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마치 사람이 죽을 때 이 몸[生陰]을 버리고 중음(中陰)으로 들어가는데 이때 이 세상의 몸이 멸하고 중음의 몸을 받는다. 여기에는 앞뒤가 없어서 멸할 때에 곧 생겨난다.

  비유하건대 밀랍도장[蠟印]을 진흙에 찍으면 진흙에 도장이 찍히면서 밀랍도장은 이내 망가져 버리는 것과 같다. 곧 이루어짐과 무너짐이 동시여서 앞뒤가 없는 것이다.

  이때 중음 가운데 몸을 받았다가 그 중음의 몸을 버리면 다시 이 몸[生陰]의 존재를 받는데, 그대가 말하는 미세한 몸이란 곧 이 중음을 말한다. 

  중음의 몸은 출입이 없다. 비유하건대 등불을 켜면 나고 멸함이 상속하여 항상함도 아니고 없어짐도 아닌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일체의 물질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이거나 안팎이거나 거칠거나 곱거나 모두 무상하다. 그대의 영혼이 미세한 물질이라면, 이 역시 무상하여 단절되고 없어지리라.”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하여 물질의 모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영혼은 물질의 특성이 없는 것[無色相]도 아니라고 했는데, 무색이란 4중(衆) 및 무위(無爲)를 말한다. 4중은 무상하고 자재롭지 못하고 인연에 속하기 때문에 영혼이 될 수 없다. 세 가지 무위15)[택멸ㆍ비택멸ㆍ허공]에는 신이 있다고 계교할 수 없으니, 받아들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 때문에 영혼은 물질의 특성이 없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천지 사이의 안팎과 3세(世)와 시방에서 나를 구하여도 얻을 수 없나니, 오직 12입(入)이 화합해서 6식(識)을 낳는다. 3사(事)16)[근ㆍ경ㆍ식의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을 촉(觸)이라 하고, 촉은 수(受)?상(想)?사(思) 등의 마음에 속하는 법[心數法]을 내며, 이 법 가운데 무명의 힘 때문에 신견(身見)이 생겨나고, 신견이 생기므로 영혼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신견은 고제(苦諦)의 고법제(苦法諦)와 고비지(苦比知)를 본다면 곧 끊어지나니, 끊어진다면 곧 영혼이 있음을 보지 않게 된다. 그대가 먼저 말하기를 “만일 안에 영혼의 물질[色]이 없다면 식은 생각마다 생멸하거늘 어떻게 빛의 청?황?적?백을 분별해 알겠는가” 했으며, 또한 그대는 말하기를 “만약에 영혼이 있더라도 혼자서 아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눈의 의식에 의지해서야 안다”고 했다. 만일 그렇다면 영혼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눈의 의식으로 색을 아니, 색의 생멸은 생을 닮기도 하고 멸을 닮기도 한 것이다. 그런 연후에 마음속에 어떤 법이 생겨남을 일컬어 생각[念]이라 한다. 이 생각의 모습은 유위의 법이어서 비록 멸하여 과거가 되나 이 생각으로 능히 아는 것이다. 마치 성인이 지혜의 힘으로 미래의 일을 아는 것과 같

  다. 생각[念念]도 그와 같아서 능히 과거의 법을 안다.

  만일 앞의 눈의식이 멸하고 뒤의 눈의식이 생긴다면 뒤의 눈의식은 더욱 예리하고 힘이 있게 된다. 색은 비록 잠시 있을 뿐 머물지 않으나 생각의 힘이 예리한 까닭에 능히 아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비록 생각마다 생멸하여 무상하나 능히 색을 분별하여 아는 것이다.

  또한 그대가 말하기를 “현존하는 사람의 의식이 새록새록 생멸하고, 몸의 목숨이 끊어질 때 역시 다한다면, 모든 행의 죄와 복은 누구를 따르고 누가 받으며, 누가 고락을 받고 누가 해탈하리오” 했는데, 이제 대답하리라.

  그대는 아직 진실한 도를 얻지 못했다. 이런 사람은 모든 번뇌가 마음을 덮고, 인연의 업을 지어 태어난다. 죽을 때엔 이로부터 5음이 상속되어 5음을 낳는다.

  비유하건대 한 등잔으로 다시 한 등잔을 켜는 것과 같으며, 또한 곡식이 나는데 땅?물?종자 등 세 인연이 있어야 되는 것과 같다. 뒷세상의 몸이 나는 것도 그와 같아서 몸과 유루의 업과 번뇌[結使]의 이 세 가지가 있어야 뒷몸이 생긴다.

  여기에서 몸과 업의 인연은 끊을 수도 없고 깨뜨릴 수도 없거니와 단지 모든 번뇌만은 끊을 수 있다. 번뇌가 끊어질 때엔 비록 남은 몸, 남은 업이 있으나 해탈 할 수가 있다. 마치 곡식이 땅은 있어도 물이 없으면 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록 몸과 업만 있고 애욕 번뇌의 물이 축여주지 않는다면 나지 못하나니, 이를 일러 ‘비록 영혼은 없으나 역시 해탈을 얻는다’고 한다.

  무명 때문에 속박되고 지혜 때문에 벗어나니, 곧 영혼이란 쓸모가 없는 것이다.

  復次是名色和合假名爲人。是人爲諸結所繫。得無漏智慧爪解此諸結。是時名人得解脫。如繩結繩解。繩卽是結。結無異法。世界中說結繩解繩。名色亦如是。名色二法和合假名爲人。是結使與名色不異。但名爲名色結。名色解受罪福亦如是。雖無一法爲人實。名色故受罪福果。而人得名。譬如車載物。一一推之竟無車實。然車受載物之名。人受罪福亦如是。名色受罪福而人受其名。受苦樂亦如是。如是種種因緣神不可得。神卽是施者。受者亦如是。汝以神爲人。以是故施人不可得。受人不可得。亦如是如是種種因緣。是名財物施人受人不可得。

또한 이 이름과 모양[色]이 화합한 것을 거짓으로 사람이라 하는데, 이 사람은 모든 번뇌에 얽매였으나 무루지혜의 손톱을 얻어 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풀면 이는 해탈을 얻은 사람이라 한다.

  마치 노끈을 맺고 노끈을 푸는 일과 같다. 노끈이 곧 매듭이니, 매듭이란 다른 특징[法]이 없어서 세간에서는 노끈을 맺는다거나 노끈을 푼다고 말할  따름이다.

  이름과 모양도 이와 같아서 이름과 모양의 두 법이 화합한 것을 거짓으로 사람이라 한다. 이 번뇌는 이름이나 모양과 다르지 않아서 단지 일컫기를 ‘이름과 모양이 맺어지고, 이름과 모양이 풀렸다’고 할 뿐이다.

  죄와 복을 받는 것도 이와 같아서 비록 한 법도 사람이란 실체가 없지만 이름과 모양 때문에 죄와 복의 결과를 받으며, 게다가 사람이란 명칭을 얻는다.

  비유하건대 수레에 물건을 싣는 것과 같으니, 하나하나 추궁하면 끝내 수레의 실체는 없지만 수레는 물건을 싣는다는 명칭을 받는다.

  사람이 죄와 복을 받는 것도 이와 같아서 이름과 명칭이 죄와 복을 받으며 게다가 사람이 그 이름을 받을 뿐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도 이와 같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해 영혼은 얻을 수 없다.

  영혼은 곧 베푸는 이요, 받는 이라 함도 이와 같나니, 그대는 영혼을 사람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베푸는 사람도 얻을 수 없으며, 받는 사람도 얻을 수 없음도 또한 이와 같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해 이것을 일컫기를 ‘베푸는 물건과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問曰。若施於諸法是如實相無所破無所滅無所生無所作。何以故。言三事破析不可得。

  [문] 보시란 모든 법 가운데서도 실다운 모습이어서 깨뜨리거나 멸하거나 나거나 지을 수 없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세 가지[三事]를 타파하여 얻을 수 없다 하는가?

答曰。如凡夫人。見施者見受者見財物。是爲顚倒妄見。生世間受樂福盡轉還。是故佛欲令菩薩行實道得實果報。實果報則是佛道。佛爲破妄見故。言三事不可得。實無所破。何以故。諸法從本已來畢竟空故。如是等種種無量因緣不可得。故名爲檀波羅蜜具足滿。

  [답] 범부들은 베푸는 이와 받는 이와 베푸는 물건을 보나니, 이는 뒤바뀌고 허망한 소견이다. 세간에 태어나서 즐거움을 받다가 복이 다하면 다시 윤회의 길로 굴러간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보살들로 하여금 진실한 도를 행하여 진실한 과보를 얻게 하시려 하였으니, 진실한 과보란 곧 불도이다.

  부처님은 허망한 소견을 깨뜨리고자 세 가지 일을 얻을 수 없으며 실로 깨뜨릴 바 없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본래부터 끝내 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갖가지 한량없는 인연은 얻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일컬어 ‘단바라 밀을 구족해 원만히 한다고 하는 것이다.

復次若菩薩行檀波羅蜜。能生六波羅蜜。是時名爲檀波羅蜜具足滿。云何布施生檀波羅蜜。檀有下中上。從下生中從中生上。若以飮食麤物軟心布施。是名爲下。習施轉增能以衣服寶物布施。是爲從下生中。施心轉增無所愛惜。能以頭目血肉國財妻子盡用布施。是爲從中生上。如釋迦牟尼佛初發心時。作大國王名曰光明。求索佛道少多布施。轉受後身作陶師。能以澡浴之具及石蜜漿。布施異釋迦牟尼佛及比丘僧。其後轉身作大長者女。以燈供養憍陳若佛。如是等種種名爲菩薩下布施。

  또한 보살이 단바라밀을 행하여 능히 6바라밀을 내면 이때를 일러서 ‘단바라밀을 구족해 원만히 했다’고 한다.

  어찌하여 보시가 단바라밀을 낳는가? 단에는 상?중?하가 있는데, 하품에서 중품이 생기고, 중품에서 상품이 생긴다.

  만일 음식 등 거친 물건을 가지고 연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이를 하품이라 한다. 보시를 익히고 더욱 늘려서 능히 의복이나 보물을 가지고 보시하면 이것은 하품에서 중품을 낳은 것이 된다.

  보시할 마음이 더욱 늘어나서 아낌없이 머리?눈?피?살?나라?재물?처자를 모두 보시한다면 이것은 중품에서 상품을 낳은 것이 된다.

  전생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하셨을 때 광명이라 불리는 국왕이셨는데, 불법을 구하기 위하여 적건 많건 모두 보시하였더니 윤회해서 뒷몸을 받자 옹기장이가 되었다. 그는 목욕하는 도구와 꿀물로써 지금과는 다른 석가모니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공양하였더니, 다시 몸을 바꾼 뒤에 큰 장자의 딸이 되었다. 다시 등불로써 교진야불(?陳若佛)에게 공양하였으니, 이러한 갖가지를 보살의 하품의 보시라 한다.

如釋迦文尼佛。本身作長者子。以衣布施大音聲佛。佛滅度後起九十塔。後更轉身作大國王。以七寶蓋供養師子佛。後復受身作大長者。供養妙目佛上好房舍及七寶妙華。如是等種種名爲菩薩中布施。

  또한 석가모니부처님은 전생에 장자의 아들이었는데, 옷으로써 대음성불(大音聲佛)17)에게 공양하였으며, 그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는 90개의 탑을 일으켰다. 뒤에 다시 몸을 바꾸어서는 큰 국왕이 되었는데, 7보의 일산으로 사자불(師子佛)18)에게 공양했다. 나중에 다시 몸을 바꾸어서는 큰 장자가 되어 묘목불(妙木佛)19)에게 가장 좋은 방사(房舍)와 7보의 묘한 꽃으로 공양했다. 

  이러한 갖가지를 보살의 중품의 보시라 한다. 

 

如釋迦牟尼佛本身。作仙人見憍陳若佛端正殊妙便從高山上自投佛前。其身安隱在一面立。又如衆生喜見菩薩。以身爲燈供養日月光德佛。如是等種種不惜身命供養諸佛。是爲菩薩上布施。是名菩薩三種布施。若有初發佛心布施衆生亦復如是。初以飮食布施。施心轉增能以身肉與之。先以種種好漿布施。後心轉增能以身血與之。先以紙墨經書布施。及以衣服飮食四種供養供養法師。後得法身爲無量衆生。說種種法而爲法施。如是等種種從檀波羅蜜中。生檀波羅蜜。

  또한 석가모니부처님은 전생에 선인(仙人)이셨다. 교진야불의 상호가 단정하시고 수묘(殊妙)하심을 뵙고는 문득 높은 산 봉우리에 올라가서 부처님 앞으로 몸을 던졌는데 그 몸이 무사하게 한쪽에 서 있었다. 

  또한 중생희견보살(衆生喜見菩薩)20)이 몸으로 등불을 만들어 일월광덕불(日月光德佛)께 공양했다. 

  이렇게 갖가지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부처님들께 공양했으니, 이것은 보살의 상품의 보시이다.

  이것을 보살의 세 종류의 보시라 한다. 

  어떤 이가 처음으로 불심(佛心)을 내어 중생에게 보시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처음에는 음식으로 보시하다가 보시할 마음이 차츰 늘어나서 몸이나 살로써 베풀게 된다. 먼저는 갖가지 좋은 음료수를 보시하다가 나중에 그 마음이 차츰 늘어나서 몸의 피를 베풀며, 먼저는 종이나 먹으로 된 경서를 보시하거나 의복?음식 등 네 가지 공양구로 법사에게 공양하다가 나중에는 법신을 얻어 한량없는 중생에게 갖가지 법을 말해 주는 법시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단바라밀에서 단바라밀이 생겨나는 것이다.

 

云何菩薩布施生尸羅波羅蜜。菩薩思惟衆生不布施故。後世貧窮。以貧窮故劫盜心生。以劫盜故而有殺害。以貧窮故不足於色。色不足故而行邪婬。

어떤 것이 보살의 보시에서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이 생겨나는 것인가?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중생들은 베풀지 않는 까닭에 후세에 빈궁해진다. 빈궁하기 때문에 훔치려는 생각을 내고, 훔치기 때문에 죽이고 해하게 된다. 또한 빈궁하기 때문에 색(色)에 있어서 충족하지 못하고, 색이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삿된 음행을 한다. 또한 빈궁하기 때문에 남보다 하천하게 되고, 하천해지면 두려워하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又以貧窮故爲人下賤。下賤畏怖而生妄語。如是等貧窮因緣故。行十不善道。若行布施生有財物。有財物故不爲非法。何以故五塵充足無所乏短故。如提婆達。本生曾爲一蛇。與一蝦蟆一龜在一池中共結親友。其後池水竭盡。飢窮困乏無所控告。時蛇遣龜以呼蝦蟆。蝦蟆說偈以遣龜言。

  이렇게 빈궁한 인연 때문에 10불선도(不善道)를 행하거니와 만일 보시를 행하면 태어났을 때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기 때문에 법답지 못한 짓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왜냐하면 5욕(欲)이 충족되어 결핍됨이 없기 때문이다. 

  제바달다(提婆達多)는 전생에 뱀이었는데, 두꺼비와 거북과 함께 한 못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후에 그 못이 말라버리자 굶주림이 극에 달하고 견디기 어렵게 되었건만 구할 곳이 없었다. 이때 뱀은 거북을 보내어 두꺼비를 불렀다. 두꺼비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대답했다. 

 若遭貧窮失本心  不惟本義食爲先

 

 汝持我聲以語蛇  蝦蟆終不到汝邊

  빈궁하다고 본심을 잃으면

  의리보다 음식을 중히 여긴 것이니

  그대는 나의 말을 뱀에게 전하라

  두꺼비는 끝내 그대 곁에 가지 않으리니.

 

若修布施後生有福無所短乏。則能持戒無此衆惡。是爲布施能生尸羅波羅蜜。復次布施時能令破戒諸結使薄。益持戒心令得堅固。是爲布施因緣增益於戒。

  만일 보시를 닦았다면 후생에 복이 있어 모자람이 없으니, 곧 능히 계를 지니어 이러한 악한 일들이 없게 된다.

  이것이 ‘보시는 능히 시바라밀을 낳는다’는 것이다.

  또한 보시할 때엔 능히 계를 파하는 일이나 모든 번뇌가 얇아지게 되고, 계행을 지키려는 마음은 더욱 견고해진다. 이것이 보시한 인연으로 계행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다.

復次菩薩布施。常於受者生慈悲心。不著於財自物不惜。何況劫盜。慈悲受者何有殺意。如是等能遮破戒。是爲施生戒。若能布施以破慳心。然後持戒忍辱等易可得行。如文殊師利。在昔過去久遠劫時。曾爲比丘入城乞食。得滿鉢百味歡喜丸。城中一小兒追而從乞不卽與之。乃至佛圖手捉二丸而要之言。汝若能自食一丸。以一丸施僧者當以施汝。卽相然可。以一歡喜丸布施衆僧。然後於文殊師利許受戒發心作佛。如是布施能令受戒發心作佛。是爲布施生尸羅波羅蜜。

또한 보살은 베풀되 언제나 받는 이에게 자비한 마음을 내어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자기의 물건에 대하여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하물며 겁탈하거나 훔치겠는가. 받는 이를 자비로써 대하거늘 어찌 해칠 생각이 있겠는가.

  이러한 일들은 능히 파계를 막으니, 이것이 보시가 계행을 낸다는 것이다.

  만일 능히 보시한다면 그로써 인색한 마음을 깨뜨리며, 그 뒤에 지계ㆍ인욕 등을 행함이 쉬워진다.

  문수사리는 아주 오랜 옛날에 한 비구였을 때에 성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다가 백 가지 맛을 내는 환희환(歡喜丸)21)을 발우 가득히 얻었다.

  이때 성안에 있던 어떤 아이가 따라오면서 달라고 하였는데 주지 않고 절[佛圖]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손으로 환희환 두 개를 집어 들고는 그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이 한 알은 네가 먹고 한 알은 스님들께 보시하겠다면 주겠다.”

  아이는 곧 그렇게 하겠다 하고는 환희환 한 알을 승려들에게 보시했다. 그 뒤 문수사리에게 계를 받고는 부처를 이루리라고 발심했다.

  이와 같이 보시는 능히 계를 받고 성불할 마음을 내기까지 하게 하나니, 

  이것이 보시가 시라바라밀을 내는 것이다.

復次布施之報得四事供養好國善師無所乏少。故能持戒。又布施之報其心調柔。心調柔故能生持戒。能生持戒故從不善法中能自制心。如是種種因緣。從布施生尸羅波羅蜜。

  또한 보시의 과보로 네 가지 공양과 좋은 나라와 좋은 스승을 얻어 모자람이 없게 되기 때문에 계율을 지킬 수 있다.

  또한 보시의 과보는 그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니, 마음이 부드러운 까닭에 능히 계율을 지니게 되고, 계율을 지니게 되는 까닭에 착하지 못한 법에서 능히 스스로의 마음을 제어한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해 보시로부터 시라바라밀이 생기는 것이다.

 

云何布施生羼提波羅蜜。菩薩布施時受者逆罵。若大求索若不時索。或不應索而索。是時菩薩自思惟言。

  어떤 것이 보시에서 찬제바라밀이 생기는 것인가? 보살이 보시할 때에 받은 이가 도리어 꾸짖거나 지나치게 달라거나 때에 맞지 않게 구하거나 바라지 않을 것을 바라거나 한다면, 이때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我今布施欲求佛道。亦無有人使我布施。我自爲故云何生瞋。如是思惟已而行忍辱。是名布施生羼提波羅蜜。  

  “내가 지금 보시를 해서 불도를 구하고자 한다. 아무도 나에게 보시를 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내 스스로가 한 것이다. 어찌 화를 내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인욕을 행하나니, 이것이 보시에서 찬제바라밀이 생겨나는 것이다.

復次菩薩布施時。若受者瞋惱。便自思惟。我今布施內外財物。難捨能捨。何況空聲而不能忍。若我不忍所可布施則爲不淨。譬如白象入池澡浴。出已還復以土坌身。布施不忍亦復如是。如是思惟已行於忍辱。如是等種種布施因緣生羼提波羅蜜。

  또한 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 받는 이가 성을 내고 괴롭힌다면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지금 안팎의 재물을 모두 보시하여 버리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버렸다. 그러니 하물며 빈 소리를 참지 못하겠는가. 만일 내가 참지 못한다면 보시한 것은 더러워지고 만다. 마치 흰 코끼리가 못에 들어가서 깨끗이 목욕을 하고 나와서는 다시 흙을 몸에 묻히는 것과 같다. 베풀고서 참지 못함도 또한 이와 같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인욕을 행하나니, 이러한 갖가지 보시의 인연에서 찬제바라밀이 생겨난다.

 

菩薩布施時常行精進。何以故。菩薩初發心時功德未大。爾時欲行二施充滿一切衆生之願。以物不足故。懃求財法以給足之。如釋迦文尼佛本身。作大醫王療一切病不求名利。爲憐愍衆生故。病者甚多力不周救。憂念一切而不從心。懊惱而死卽生忉利天上。自思惟言。我今生天。但食福報無所長益。卽自方便自取滅身。捨此天壽生婆迦陀龍王宮中爲龍太子。其身長大父母愛重。欲自取死就金翅鳥王。鳥卽取此龍子。於舍摩利樹上呑之。父母嘷咷啼哭懊惱。龍子旣死生閻浮提中。爲大國王太子。名曰能施。生而能言。問諸左右。今此國中有何等物。盡皆持來以用布施。衆人怪畏皆捨之走。其母憐愛獨自守之。語其母言。我非羅刹衆人何以故走。我本宿命常好布施。我爲一切人之檀越。母聞其言以語衆人。衆人卽還母好養育。及年長大自身所有盡以施盡。至父王所索物布施。父與其分復以施盡。見閻浮提人貧窮辛苦。思欲給施而財物不足。便自啼泣問諸人言。作何方便當令一切滿足於財。諸宿人言。我等曾聞有如意寶珠。若得此珠則能隨心所索無不必得。菩薩聞是語已白其父母。欲入大海求龍王頭上如意寶珠。父母報言。我唯有汝一兒耳。若入大海衆難難度。一旦失汝我等亦當何用活爲。不須去也。我今藏中猶亦有物當以給汝。兒言。藏中有限。我意無量。我欲以財充滿一切令無乏短。願見聽許。得遂本心使閻浮提人一切充足。父母知其志大。不敢制之。遂放令去。是時五百賈客。以其福德大。人皆樂隨從。知其行日集海道口。菩薩先聞婆伽陀龍王頭上有如意寶珠。問衆人言。誰知水道至彼龍宮。有一盲人名陀舍。曾以七反入大海中具知海道。菩薩卽命共行。

  또한 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 받는 이가 성을 내고 괴롭힌다면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지금 안팎의 재물을 모두 보시하여 버리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버렸다. 그러니 하물며 빈 소리를 참지 못하겠는가. 만일 내가 참지 못한다면 보시한 것은 더러워지고 만다. 마치 흰 코끼리가 못에 들어가서 깨끗이 목욕을 하고 나와서는 다시 흙을 몸에 묻히는 것과 같다. 베풀고서 참지 못함도 또한 이와 같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인욕을 행하나니, 이러한 갖가지 보시의 인연에서 찬제바라밀이 생겨난다.

  어떤 것이 보시에서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이 생기는 것인가? 보살은 보시할 때 항상 정진을 행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보살이 처음 발심할 때엔 공덕이 크지 못하니, 이때는 두 가지 보시를 행하여 모든 중생의 소원을 채워 주고자 하건만 재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물과 법을 간절히 구하여 그로써 베푸는 것이다.

  마치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전생에 큰 의원이셨는데, 일체의 병을 고쳐 주되 명예나 이익을 구하지 않았으니,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었다. 병자는 매우 많은데 두루 다 구제하지 못해서 모두를 위해 근심하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깊이 근심했다. 죽어서 곧 바로 도리천(?利天)22)에 태어나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하늘에 태어났으나 복의 갚음을 누릴 뿐 길이 이익되는 바가 없도다’라고 하고는 곧 방편을 써서 몸을 마쳤다. 

  이 하늘의 수명을 버리고는 사가타(娑伽陀)용왕23)의 궁에 태어나 용의 태자가 되니, 그 몸이 훤칠함에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 

  다시 죽음을 당하기 위하여 금시조 왕에게 갔더니, 새는 곧 이 용의 태자를 집어서는 사마리(舍摩利)나무 위에 올라가 먹어버렸다. 부모는 애통해하면서 깊이 근심했다.

  용의 태자는 죽어서 염부제에 태어났는데 큰 나라의 태자가 되어 능시(能施)라 불렸다.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였는데 좌우의 사람들에게 묻기를 “지금 이 나라에 어떤 물건이 있는가? 모두 가지고 오라. 보시에 쓰리라” 하니, 사람들이 듣고 모두가 괴이하게 여기고 두려워하면서 그를 버리고 달아났다. 

  그러나 어머니만은 가엾이 여겨 혼자 지키고 있노라니, 그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나는 나찰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나를 버리고 달아납니까? 나는 본래부터 보시하기를 좋아했으니, 나는 모든 사람의 단월(壇越)24)이 되겠습니다.”

  어머니가 이 말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니 사람들은 다시 돌아왔다. 어머니는 그를 잘 양육해 차츰 장성해지자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보시해 버리고는 다시 부왕에게 가서 재물을 요구해 보시했다. 아버지가 자기의 몫을 주었는데 역시 모두 보시에 써 버렸다.

  다시 염부제 사람들이 빈궁하고 고달파하는 것을 보고는 보시해 주고 싶었으나 재물이 부족했다. 문득 울면서 사람들에게 묻기를 “어떤 방편을 써야 모두를 만족하게 할 재물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여러 노숙[宿人]들이 대답했다.

 “우리들이 이전에 듣건대 여의주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얻기만 하면 마음속에 구하는 것 모두를 반드시 얻는다 합니다.”

  보살이 이 말을 듣자 부모에게 말하기를 “바다에 들어가서 용왕의 머리 위에 있는 여의주를 구해오겠습니다” 하니, 부모는 만류했다.

  “우리에게 자식이라고는 너 하나뿐이다. 바다에 들어가면 온갖 환난을 건너기가 어렵거늘 자칫 너를 잃는다면 우리는 어찌 살아가겠느냐. 갈 필요가 없느니라. 지금 우리 창고에는 아직 재물이 남았으니 그것을 너에게 주겠다.”

  아들이 말했다. 

  “창고에 있는 것은 한정이 있지만 저의 뜻은 끝이 없습니다. 저는 재물로써 일체를 충족시켜주어 모자람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본래의 뜻을 이루어 염부제의 사람들 모두가 풍족하게 되도록 하여주옵소서.”

  부모는 그의 뜻이 원대함을 알고는 더 이상 말리지 못한 채 결국 그를 떠나게 했다. 

  그때 5백 명의 상인이 있었는데 그의 복덕이 위대했기에 그들은 모두 그를 따라가기를 희망했다. 그들은 그가 떠나는 날을 알고는 포구[海道]로 모여 들었다. 

  보살은 먼저부터 사가타(娑伽陀)용왕의 머리 위에 여의보주25)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이므로 사람들에게 물었다.

  “누가 그 용궁으로 가는 물길을 아는가?”

  타사(陀舍)라는 맹인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일곱 번이나 바다에 들어갔던 터라 바닷길을 잘 알고 있었다. 보살은 그에게 함께 가기를 청하니 그가 대답했다.

  “나는 이미 나이가 늙었고, 두 눈마저 멀었습니다. 비록 전에는 자주 드나들었으나 지금은 갈 수 없습니다.”

  보살이 다시 간청했다. 

答曰。我年旣老兩目失明。曾雖數入今不能去。菩薩語言。我今此行不自爲身。普爲一切求如意寶珠。欲給足衆生令身無乏。次以道法因緣而敎化之。汝是智人何得辭耶。我願得成豈非汝力。陀舍聞其要言。欣然同懷語菩薩言。我今共汝俱入大海我必不全。汝當安我尸骸著大海之中金沙洲上。行事都集斷第七繩。船去如駝到衆寶渚。衆賈競取七寶各各已足。語菩薩言。何以不取。菩薩報言。我所求者如意寶珠。此有盡物我不須也。汝等各當知足知量無令船重不自免也。是時衆賈白菩薩言。大德。爲我呪願令得安隱。於是辭去。陀舍是時語菩薩言。別留艇舟當隨是別道而去。待風七日。博海南岸至一險處。當有絶崖棗林枝皆覆水。大風吹船船當摧覆。汝當仰板棗枝可以自濟。我身無目於此當死。過此隘岸當有金沙洲。可以我身置此沙中。金沙淸淨是我願也。卽如其言。風至而去。旣到絶崖。如陀舍語。菩薩仰板棗枝得以自免。置陀舍屍安厝金地。於是獨去如其先敎。深水中浮七日。至壘咽水中行七日。壘腰水中行七日。壘膝水中行七日。泥中行七日。見好蓮華鮮潔柔軟。自思惟言。此華軟脆當入虛空三昧。自輕其身行蓮華上七日。見諸毒蛇念言。含毒之虫甚可畏也。卽入慈心三昧。行毒蛇頭上七日。蛇皆擎頭授與菩薩令蹈上而過。過此難已見有七重寶城。有七重塹。塹中皆滿毒蛇有三大龍守門。龍見菩薩形容端政相好嚴儀。能度衆難得來至此念言。此非凡夫必是菩薩大功德人。卽聽令前逕得入宮。龍王夫婦喪兒未久猶故哀泣。見菩薩來龍王婦有神通。知是其子。兩乳汁流出。命之令坐。而問之言。汝是我子。捨我命終生在何處。菩薩亦自識宿命。知是父母而答母言。我生閻浮提上。爲大國王太子。憐愍貧人飢寒勤苦不得自在故。來至此欲求如意寶珠。母言。汝父頭上有此寶珠以爲首飾。難可得也。必當將汝入諸寶藏。隨汝所欲必欲與汝。汝當報言。其餘雜寶我不須也。唯欲大王頭上寶珠。若見憐愍願以與我。如此可得。卽往見父。父大悲喜歡慶無量。愍念其子遠涉艱難乃來至此。指示妙寶隨意與汝須者取之。菩薩言。我從遠來願見大王。求王頭上如意寶珠。若見憐愍當以與我。若不見與不須餘物。龍王報言。我唯有此一珠常爲首飾。閻浮提人薄福下賤不應見也。菩薩白言。我以此故。遠涉艱難冒死遠來。爲閻浮提人薄福貧賤。欲以如意寶珠濟其所願。然後以佛道因緣而敎化之。龍王與珠而要之言。今以此珠與汝。汝旣去世當以還我。

答曰。敬如王言。菩薩得珠飛騰虛空。如屈伸臂頃到閻浮提。人王父母見兒吉還。歡悅踊躍抱而問言。汝得何物。答言。得如意寶珠。問言。今在何許。白言。在此衣角裏中。父母言。何其泰小。白言。在其神德不在大也。白父母言。當勅城中內外掃灑燒香。懸繒幡蓋持齋受戒。明日淸旦以長木爲表以珠著上。菩薩是時自立誓願。若我當成佛道度脫一切者。珠當如我意願出一切寶物。隨人所須盡皆備有。是時陰雲普遍雨種種寶物。衣服飮食臥具湯藥。人之所須一切具足。至其命盡常爾不絶。如是等名爲菩薩布施生精進波羅蜜。

云何菩薩布施生禪波羅蜜。菩薩布施時能除慳貪。除慳貪已因此布施而行一心漸除五蓋。能除五蓋是名爲禪。復次心依布施入於初禪。乃至滅定禪。云何爲依。若施行禪人時心自念言。我以此人行禪定故。淨心供養。我今何爲自替於禪。卽自歛心思惟行禪。若施貧人念此宿命。作諸不善不求一心不修福業今世貧窮。以是自勉修善一心以入禪定。如說。喜見轉輪聖王八萬四千小王來朝。皆持七寶妙物來獻。王言我不須也。汝等各可自以修福。諸王自念。大王雖不肯取。我等亦復不宜自用。卽共造工立七寶殿。殖七寶行樹作七寶浴池。於大殿中造八萬四千七寶樓。樓中皆有七寶床座。雜色被枕置床兩頭。懸繒幡蓋香熏塗地。衆事備已。白大王言。願受法殿寶樹浴池。王黙然受之。而自念言。我今不應先處新殿以自娛樂。當求善人諸沙門婆羅門等先入供養。然後我當處之。卽集善人先入寶殿。種種供養微妙具足。諸人出已王入寶殿登金樓坐銀床。念布施除五蓋攝六情却六塵受喜樂入初禪。次登銀樓坐金床入二禪。次登毘琉璃樓坐頗梨寶床入三禪。次登頗梨寶樓坐毘琉璃床入四禪。獨坐思惟終竟三月。玉女寶后與八萬四千諸侍女俱。皆以白珠名寶瓔珞其身。來白大王。久違親覲。敢來問訊。王告諸妹。汝等各當端心。當爲知識勿爲我怨。玉女寶后垂淚而言。大王何爲謂我爲妹。必有異心願聞其意。云何見勅當爲知識勿爲我怨。王告之言。汝若以我爲世因緣。共行欲事以爲歡樂。是爲我怨。若能覺悟非常知身如幻。修福行善絶去欲情。是爲知識。諸玉女言敬如王勅。說此語已各遣令還。諸女出已王登金樓坐銀床行慈三昧。登銀樓坐金床行悲三昧。登毘琉璃樓坐頗梨床行喜三昧。登頗梨寶樓坐毘琉璃床行捨三昧。是爲菩薩布施生禪波羅蜜。

云何菩薩布施生般若波羅蜜。菩薩布施時。知此布施必有果報而不疑惑。能破邪見無明。是爲布施生般若波羅蜜。復次菩薩布施時能分別知。不持戒人若鞭打拷掠閉繫。枉法得財而作布施。生象馬牛中。雖受畜生形負重鞭策羇靽乘騎。而常得好屋好食。爲人所重以人供給。又知惡人多懷瞋恚。心曲不端而行布施當墮龍中。得七寶宮殿妙食好色。又知憍人多慢瞋心布施。墮金翅鳥中。常得自在。有如意寶珠以爲瓔珞。種種所須皆得自恣無不如意。變化萬端無事不辦。又知宰官之人。枉濫人民不順治法而取財物。以用布施墮鬼神中。作鳩槃茶鬼。能種種變化五塵自娛。又知多瞋佷戾嗜好酒肉之人。而行布施墮地夜叉鬼中。常得種種歡樂音樂飮食。又知有人剛愎强梁。而能布施車馬代步。墮虛空夜叉中。而有大力所至如風。又知有人妬心好諍。而能以好房舍臥具衣服飮食布施故。生宮觀飛行夜叉中。有種種娛樂便身之物。如是種種當布施時能分別知。是爲菩薩布施生般若。復次布施飮食得力色命樂瞻。若布施衣服得生知慚愧。威德端正身心安樂。若施房舍則得種種七寶宮觀。自然而有五欲自娛。若施井池泉水種種好漿。所生則得無飢無渴五欲備有。若施橋船及諸履屣。生有種種車馬具足。若施園林則得豪尊。爲一切依止。受身端政心樂無憂。如是等種種。人中因緣布施所得。若人布施修作福德。不好有爲作業生活。則得生四天王處。若人布施。加以供養父母及諸伯叔兄弟姊妹。無瞋無恨不好諍訟。又不喜見諍訟之人。得生忉利天上焰摩兜術化自在他化自在。如是種種分別布施。是爲菩薩布施生般若。若人布施心不染著。厭患世間求涅槃樂。是爲阿羅漢辟支佛布施。若人布施爲佛道爲衆生故。是爲菩薩布施。如是等種種布施中分別知。是爲布施生般若波羅蜜。復次菩薩布施時。思惟三事實相。如上說。如是能知是爲布施生般若波羅蜜。復次一切智慧功德因緣。皆由布施。如千佛始發意時。種種財物布施諸佛。或以華香或以衣服。或以楊枝布施而以發意。如是等種種布施。是爲菩薩布施生般若波羅蜜。

  “나의 이 길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두루 일체의 중생을 위한 것입니다. 여의주를 얻어서 중생들에게 베풀어 그 몸에 궁핍함이 없게 하려는 것이며, 그리고는 도법의 인연으로써 그들을 교화하려는 것입니다. 그대는 지혜로운 사람이거늘 어찌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그 어찌 그대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타사는 그의 간곡한 말을 듣자 흔연히 생각이 같아져서 보살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그대와 함께 바다에 들어가겠는데 나는 분명 온전치 못할 것이오. 그대는 나의 시체를 바다 안의 금모래 섬에 묻어 주시기 바라오.”

  준비가 모두 끝나고 일곱째 닻줄을 끊으니, 배는 달리듯 뭇 보배가 있는 갯벌에 이르렀다. 장사꾼들은 앞 다투어 보배를 주워 제각기 만족한 뒤에 보살에게 말했다.

  “어째서 보물을 캐지 않으십니까?”

  보살이 대답했다.

  “내가 구하는 것은 여의보주이다. 이 다함이 있는 물건은 내게 필요치 않다. 그대들은 각각 만족함을 알고 분량을 알아서 배가 무거워 견디기 어렵게 하지 말라.”

  이때 장사꾼들이 보살에게 말했다.

  “대덕(大德)께서는 우리들이 평안히 돌아가도록 축원을 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하직하고 물러갔다.

  이때 타사가 보살에게 말했다.

  “따로 배 한 척을 남겨 이 별도(別道)를 따라 가도록 하십시오. 바람이 7일 동안 분 뒤에 바다 남쪽 기슭으로 밀리어 어느 험한 곳에 이르면, 절벽이 있고 대추숲[棗林]이 있는데 가지가 온통 물을 덮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큰 바람이 불어 배를 뒤집을 것이니, 그대는 대추나무 가지에 매달리면 구제될 것이나 나는 눈이 없으니 거기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이 기슭을 지나면 황금 모래섬이 있을 터이니, 내 몸을 이 모래 가운데 묻어주시오. 금모래는 청정할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그의 말대로 바람이 이르렀다 가니 이미 절벽에 닿아 있었다. 사타의 말대로 보살은 대추나무 가지를 휘어잡아 환난을 면할 수 있었다. 사타의 시체는 금모래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는 혼자 찾아가서 그가 미리 일러 준대로 7일간을 깊은 물에 떠있고, 7일간 목까지 차는 물에 다니고, 7일간 허리까지 차는 물에 다니고, 7일간 무릎까지 차는 물에 다니고, 7일간 진흙밭을 다녔다. 드디어 예쁜 연꽃이 곱고 부드럽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생각했다. 

  “이 꽃이 부드럽고 약하니, 허공삼매(虛空三昧)에 들어야 되겠구나.”

  스스로 몸을 가볍게 하여 연꽃 위를 다니기를 7일, 독사들을 보고 생각했다. 

  ‘독을 품은 벌레는 참으로 무섭도다.’

  곧 자심삼매(慈心三昧)에 들어 독사의 머리 위로 다니기를 7일, 독사들을 모두 머리를 들어 보살로 하여금 밟고 지나가게 했다. 

  이런 난관을 지나자 일곱 겹의 보배성이 나왔는데, 주변에는 일곱 겹의 구덩이[塹]가 있고, 구덩이 가운데에는 독사가 가득했으며, 세 마리의 큰 용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용들은 보살의 용모가 단정하고 상호에 위엄이 있으며, 그 어려운 난관들을 지나서 거기까지 온 것을 보고 생각했다. 

  “이는 범부가 아니다. 반드시 보살의 대공덕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는 지름길로 나아가 용왕의 궁전에 들어가도록 허용했다. 

  이때 용왕 부부는 아들을 잃은 지 오래지 않았다. 때문에 아직도 눈물을 흘리며 울다가 보살이 오는 것을 보았다. 용왕 부인은 신통으로 자기의 아들이었음을 알자 두 젖에서는 젖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곧 앉으라고 분부하면서 물었다.

  “너는 내 아들이었는데 나를 버리고 죽어서 어디에 태어났느냐?”

  보살 또한 숙명통[宿命識]으로 부모임을 알고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나는 염부제에 태어나 큰 나라의 태자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춥고 배고프고 고달파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고 여의보주를 구하기 위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버지 머리 위에 그 여의보주가 있기는 하나 머리장식이므로 얻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너를 데리고 보물창고에 들어가서 네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가져가라 하시리니, 너는 대답하기를 ‘그런 잡된 보물은 제가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대왕의 머리 위의 보주만을 원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그것을 저에게 주옵소서’ 하라. 그러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곧 아버지에게로 가니, 아버지는 슬픔과 기쁨이 한없이 복받쳤다. 그 아들이 험난한 길을 거쳐 멀리 온 것을 가엾이 여겨 묘한 보물이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주리라. 필요한 것이 있다면 가지거라.”

  이에 보살이 말했다.

  “제가 멀리 온 뜻은 대왕을 뵙고 대왕의 머리 위에 놓인 여의보주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거든 마땅히 그것을 주시옵소서. 만일 주지 않으신다면 다른 것은 필요치 않습니다.” 

  용왕이 대답했다.

  “나는 오직 이 보주 하나만으로 머리장식을 삼고 있다. 염부제 사람들은 복이 얇고 천박해서 여의주를 볼 수 없느니라.”

  보살이 다시 말했다.

  “저는 그 때문에 멀리서 험난한 길을 지나서 죽음을 무릅쓰고 온 것입니다. 염부제 사람들이 복이 얇고 빈천하기 때문에 여의보주를 가지고 그들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뒤에 불도의 인연으로 교화하려 합니다.”

  마침내 용왕은 보주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보주를 너에게 주노니, 네가 세상을 뜨게 되거든 나에게 돌려주어야 하느니라.”

  보살이 대답했다.

  “공경히 대왕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보살은 보주를 받아들고는 허공으로 날아올라 팔을 한번 굽혔다 펴는 사이에 염부제에 이르렀다. 

  인간 왕의 부모는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는 기뻐 어쩔 줄 모르며  껴안고 물었다

  “너는 무엇을 얻었느냐?”

  보살이 대답했다.

  “여의보주를 얻어왔습니다.”

  “어디에 있느냐?”

  “이 옷자락 속에 있습니다.”

  “어찌 그리 작으냐?”

  “신비한 공덕은 커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부모에게 말했다.

  “마땅히 성에 명을 내려 성의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향을 사루고, 비단 번과 일산을 달고, 가지런히 계를 지녀야 합니다.”

  다음날 아침 긴 장대를 세우고 보주를 끝에 달아 표시를 하고는 보살은 스스로 서원을 세웠다.

  “제가 불도를 이루어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면, 마땅히 제가 원하는 대로 여의보주에서 일체의 보물이 나와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바를 좇아 모두가 충족되게 하소서.”

  이때 구름이 온 하늘을 두루 덮으면서 갖가지 보물과 의복?음식?와구?탕약 등을 비처럼 내렸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모두 구족되니, 그들의 수명이 다하기까지에 항상 갖추어져 끊어지는 일이 없었다.

  이와 같은 것을 일컬어 ‘보살의 보시가 정진바라밀26)을 낸다’ 한다. 

  어떻게 해서 보살의 보시가 선정바라밀을 내는가? 보살이 보시할 때 능히 인색함과 탐냄을 제거한다. 인색함과 탐냄을 제한 뒤에는 이 보시에 의하여 일심으로 행한다면, 점차 5개(蓋)27)를 제하게 된다. 능히 5개를 제한다면, 이것을 일컬어 선(禪)이라 한다.

  나아가 마음은 보시에 의해 초선(初禪) 내지는 멸정선(滅定禪)28)에 든다. 어떻게 보시에 의지하는가? 만일 선을 닦는 사람에게 베풀 때에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이 사람이 선정을 닦는다 하여 맑은 마음으로 공양한다. 그런데 어찌 내가 지금 선에서 물러서려 하는가’ 하고는 생각을 거두어 모우고 사유해 선정을 닦는다.

  만일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할 때에는 이 사람의 숙명을 생각하기를 ‘전생에 온갖 착하지 못한 짓을 하였고, 마음을 한결 되게 구하지 않았고, 복스러운 업을 닦지 않아서 금생에 빈궁하다’ 하고는 이 까닭에 스스로 힘써 선(善)을 닦아 마음을 한결같이 해서 선정에 든다. 

  설해지는 바에 의하면, 희견전륜성왕(喜見轉輪聖王)29)에게는 8만 4천의 작은 왕이 조공하러 오되 모두가 7보의 묘한 물건을 가지고 와서 바쳤다. 그러자 왕이 말하기를 “나는 필요치 않으니, 그대들 각자 가지고 가서 제각기 복을 닦으라” 했다. 

  여러 작은 왕들은 생각하기를 ‘대왕께서 받지 않으신다 하여도 우리들 또한 사사로이 쓸 수는 없다’ 하고는 다 같이 7보의 궁전을 세우고, 7보의 정자나무[行樹]를 심고, 7보의 못을 만들었다. 궁전 안에는 8만 4천 개의 7보 누각을 세우고, 누각 안에는 모두 7보의 평상을 마련하였으며, 갖가지 색깔의 이부자리와 목침을 평상의 양쪽에 두고,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고, 향훈을 땅에 바르는 등 모든 일을 갖춘 뒤에 대왕에게 말했다.

  “바라옵건대 법전(法殿)?보배 나무?목욕터를 받아주시옵소서.”

  왕은 잠자코 받아들이고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이 새 궁전에 먼저 들어가서 스스로 즐길 것이 아니라 먼저 착한 사람들, 즉 사문이나 바라문들을 찾아 먼저 들어가게 하여 공양한 뒤에야 머물러야 하리라.”

  그리고는 곧 착한 사람들을 모아 먼저 보배 궁전에 들게 하여 갖가지로 공양하고 미묘하게 구족하게 했다. 

  여러 사람들이 나온 뒤에 왕은 보배 궁전에 들어가서는 금 누각에 올랐다. 

  그리고 은 평상에 앉아 보시를 억념해 5개(蓋)를 제하고, 6정(情)을 거두고, 6진(塵)을 물리쳐 기쁨과 즐거움을 감수하는 초선(初禪)에 들었다. 

  다음은 은 누각에 올라 금 평상에 앉아 2선에 들었다.

  다음은 비유리 누각에 올라 파리 보배 평상에 앉아 3선에 들었다.

  다음은 파리 보배 누각에 올라 비유리 평상에 앉아 4선에 들었다.

  홀로 앉아 사유하기 석 달에 이르니, 옥녀(玉女) 보후(寶后)가 8만 4천의 시녀들과 함께 모두 흰 구슬과 이름난 보배로 그 몸을 장식하고는 대왕에게 와서 말했다.

  “오랫동안 뵙지 못해서 감히 문안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왕이 시녀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제각기 마음을 단정히 하여 선지식이 될지언정 나의 원수가 되지는 말라.”

  옥녀 보후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대왕이시여, 어찌하여 저를 누이라 하시는지요. 반드시 딴 생각이 있으실 터이니, 그 뜻을 듣기를 소원합니다. 어찌하여 ‘선지식이 될지언정 원수가 되지 말라’ 하시옵니까?”

  왕이 말했다.

  “너희들이 나를 세상의 인연으로 여기어 음욕의 일을 함께 행하면서 즐긴다면 이는 나의 원수가 되는 것이요, 만일 덧없음을 깨닫고, 몸이 환(幻) 같음을 알고, 복을 닦고 선을 행하며 욕정을 끊어버린다면 이는 선지식이 되느니라.”

  옥녀들이 대답했다.

  “삼가 왕의 말씀대로 하겠나이다.”

  그리고는 이 같은 말이 끝나자 각자 여자들을 돌려보냈다. 

  여자들이 떠난 뒤에 왕은 금 누각에 올라 은 평상에 앉아 자삼매(慈三昧)를 행했다. 다시 은 누각에 올라 금 평상에 앉아 비삼매(悲三昧)를 행하고, 비유리 누각에 올라 파리 평상에 앉아 희삼매(喜三昧)를 행하고, 파리 보배 누각에 올라 비유리 평상에 앉아 사삼매(捨三昧)를 행했다. 이것이 곧 보살의 보시가 선바라밀을 낳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보살의 보시가 반야바라밀을 낳는가? 보살이 보시할 때, 이 보시에는 반드시 과보가 있음을 알아 의심치 않으며 능히 삿된 소견과 무명을 깨뜨린다. 이것이 곧 보시가 반야바라밀을 낳는 것이다.

  또한 보살이 보시할 때는 능히 이런 일을 분별해 안다. 곧 계를 지니지 않는 사람이 채찍으로 때리거나 고문하거나 가두고, 법을 어기고 재물을 얻었지만 보시를 짓는다면 코끼리ㆍ말ㆍ소로 태어나나니, 비록 축생의 모습을 받아 무거운 짐을 지고 채찍을 맞고 굴레에 얽매이고 사람을 태우지만 항상 좋은 우리와 좋은 먹이를 받으며,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고 사람들의 시중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

  또한 악인으로서 성냄을 품는 일이 많고 마음은 굽어 단정치 못하지만 보시를 행한다면 용의 무리에 태어나서 7보의 궁전과 좋은 음식과 좋은 모양을 얻는다는 것을 안다.

  또한 교만한 사람이 교만한 생각과 성내는 마음이 많더라도 보시를 한다면 금시조 가운데 태어나 항상 자재하고 여의보주로 몸치장거리를 삼으며, 구하는 것 모두가 얻어지고 하고자 하는 일은 뜻대로 되며, 변화가 만 가지이어서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안다. 

  또한 높은 벼슬에 있는 사람이 백성들을 함부로 침해하여 치법(治法)을 따르지 않는다 해도 재물을 거두어 보시에 쓴다면 귀신 가운데 태어나 구반다귀(鳩槃茶鬼)30)가 되어 갖가지로 5진(塵)을 변화해 스스로 즐기게 될 것을 안다.

  또한 심술이 많고 술과 고기를 즐기는 사람일라도 보시를 행한다면 땅에서 사는 야차귀 가운데 태어나서 항상 갖가지 환락과 음악과 음식을 얻게 될 것을 안다. 

  또한 성질이 강하고 포악한 사람일지라도 수레나 말을 보시하여 걸음을 덜어 준다면 날아다니는 야차 가운데 태어나며, 큰 힘이 있어 가는 곳마다 바람과 같음을 안다.

  또한 질투하는 마음으로 다투기를 좋아하면서도 좋은 방이나 침구나 의복

  이나 음식으로 보시하는 까닭에 궁전이나 누각을 날아다니는 야차 가운데 태어나서 갖가지 노리개와 장식품을 갖게 될 것을 안다.

  이와 같이 갖가지 보시할 때에 대해 잘 분별해 아나니, 이것이 곧 보살의 보시가 반야를 낳는다는 것이다.

  또한 음식을 보시하면 힘과 목숨과 혈색이 보기 좋은 과보를 얻으며, 의복을 보시하면 태어날 적마다 부끄러움을 알고, 위덕 있고 단정하며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된다.

  방과 집을 보시하면 갖가지 7보를 얻고 궁전이 저절로 나타나 5욕을 마음껏 즐기게 된다.

  우물이나 샘이나 갖가지 좋은 음료수를 보시하면 태어나는 곳마다 주림과 목마름이 없고 5욕이 구족하게 된다.

  다리나 배나 신발을 보시하면 태어날 적마다 갖가지 거마(車馬)가 구족하게 된다.

  공원이나 숲을 보시하면 호귀하고 존귀함을 얻어 일체의 의지처가 되며, 몸이 단정하고 마음은 즐거워 근심이 없게 된다.

  이러한 갖가지들은 인간의 인연으로 보시에 의해 얻는 바이거니와 어떤 사람이 보시하면서 복덕의 업을 짓고, 유위의 업을 짓는 일과 생활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사천왕처(四天王處)에 태어난다. 

  어떤 사람이 보시하면서 부모나 삼촌이나 형제?자매에게 공양하며,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다투기를 좋아하지 않고 다투는 일을 보기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도리천?야마천?도솔천?화자재천?타화자재천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분별해서 보시하니, 이것이 곧 보살의 보시가 반야를 낳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보시를 행하되 마음이 물들지 않고 세간을 싫어하여 열반의 즐거움을 구한다면 이는 벽지불과 아라한의 보시가 된다. 어떤 사람이 보시를 행하되 불도를 위하거나 중생을 위해서라면 이는 보살의 보시가 된다.

  이렇게 갖가지 보시 가운데 분별해 아니, 이것이 곧 보시가 반야바라밀을 낳는 것이다.

  또한 보살이 보시할 때에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세 가지 참모습을 깊이 생각하는데, 이처럼 안다면 이것이 곧 보시가 반야바라밀을 낳는 것이다.

  또한 일체의 지혜와 공덕의 인연은 모두가 보시를 말미암는다. 천(千) 부처님이 처음 발심하실 때에도 갖가지 재물로 여러 부처님께 보시하나니, 혹은 꽃이나 향 혹은 의복 혹은 이쑤시개[楊枝]를 보시해 그로써 뜻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보시하니, 이것이 곧 보살의 보시가 반야바라밀을 낳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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