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11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19. 거룩한 행[聖行品] ①

이 때에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 대반열반경에 대하여 전일한 마음으로 다섯 가지 행을 생각하여야 하나니, 무엇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거룩한 행[聖行]이요, 둘째는 청정한 행[梵行]이요, 셋째는 하늘의 행[天行]이요, 넷째는 아기의 행[嬰兒行]이요, 다섯째는 병 고치는 행[病行]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항상 이 다섯 가지 행을 닦아야 하며, 또 한 가지 행이 있으니 그것은 여래의 행, 곧 대승 대반열반경이니라.
가섭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닦아야 하는 거룩한 행인가. 보살마하살이 성문에게서나 보살에게서나 이 대반열반경을 듣고, 듣고는 믿는 마음을 내고, 믿고는 생각을 하되, ‘부처님 세존께서는 위없는 도가 있고, 크고 바른 법과 대중의 바른 행이 있으며, 또 방등 대승경전이 있으니, 내가 이제 대승경전을 좋아하고 구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처자와 권속과 살고 있는 집과, 금과 은과 보배와, 미묘한 영락과 향과 꽃과 풍류와 종과 심부름꾼과 남자·여자와, 코끼리·말·수레·소·양·닭·개·돼지 따위를 버리리라’ 하며, 또 생각하기를 ‘사는 집이 비좁고 시끄럽기가 감옥과 같아 온갖 번뇌가 생기는 것이니 출가하여 높고 고요하기가 허공과 같으면, 온갖 선한 법이 자라날 것이며, 집에 있으면서는 몸이 마치도록 깨끗한 행을 닦을 수 없으니, 이제 나는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리라’ 하며, 또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결정코 출가하여 위없고 진정한 보리의 도를 닦으리라’ 하여 보살이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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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하려는 때에, 천마인 파순이 그 고통을 느끼어 말하기를, ‘이 보살이 또 나와 더불어 큰 싸움을 일으키려는구나’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런 보살이 어찌하여 다른 이와 싸움을 일으키리요. 이 때에 보살이 곧 승방에 이르러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들이 위의가 구족하고 모든 근(根)이 고요하며 마음들이 화평하고 깨끗하며 고요함을 보고는, 그곳에 가서 출가하기를 청하고, 머리를 깎고 세 가지 가사를 입으며, 이미 출가하고는 계율을 지키고 위의가 아름답고 행동이 점잖으며 죄를 범하는 일이 없고, 작은 죄를 저지르고도 두려운 생각을 내어 계율을 수호하려는 마음이 금강같이 견고하리라.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구명부대[浮囊]를 몸에 달고 바다를 건너려 할 때에, 바다 속에 있던 나찰이 이 사람에게 구명부대를 달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듣고 생각하기를 ‘이것을 주면 나는 반드시 물에 빠져 죽을 것이다’ 하였다. 대답하기를 ‘네가 차라리 나를 죽일지언정 구명부대는 줄 수 없다’ 하였더니, 나찰이 또 말하기를 ‘그대가 만일 전부를 내게 줄 수 없거든, 반이라도 갈라 달라’고 하였다. 그래도 그 사람이 주지 않으려 하였다. 나찰은 또 ‘그대가 반도 줄 수 없거든 3분의 1이라도 달라’ 하였으나, 그래도 주지 아니하였다. 나찰은 또 ‘그것도 줄 수 없거든, 손바닥만큼 달라’하나 그것도 주지 아니하니, 나찰은 다시 말하였다. ‘그대가 만일 손바닥만큼도 줄 수 없으면, 내가 배가 고프고 고통이 심하니, 티끌만큼이라도 달라’ 하였다. 그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네가 달라는 것은 얼마 되지는 않는다만, 내가 지금 바다를 건너가려 하는데 앞길이 얼마나 먼지 모르는 터에, 조금이라도 네게 준다면 거기에서 기운이 점점 새어나올 것이니, 드넓은 바다를 어떻게 건너가며 물에 빠져 죽는 일을 면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두호하고 지니는 것도 그와 같아서 바다를 건너가는 사람이 구명부대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이 이렇게 계율을 수호할 적에 번뇌라는 나쁜 나찰이 따라다니면서 말하기를 ‘너는 나를 믿으라. 속이지 아니하리니, 4중금은 깨뜨리고 다른 계행만을 잘 보호하여 지니더라도 그 인연으로 편안하게 열반에 들게 되리라’ 한다. 그 때에 보살은 이렇게 대답하리라.
‘나는 차라리 이런 계율을 지키다가 아비지옥에 떨어질지언정, 계율을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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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천상에 나려 하지 않노라.’
번뇌 나찰은 또 말하기를 ‘네가 만일 네가지 계율을 파할 수 없거든, 승잔(僧殘)죄만이라도 파하면 그 인연으로 편안하게 열반에 들게 되리라’고 하나, 보살은 그 말도 듣지 아니하리라. 나찰은 또 달래기를 ‘그대가 승잔죄도 파할 수 없거든, 투란차(偸蘭遮)죄만이라도 범하라. 그 인연으로 편안하게 열반에 들게 되리라’고 하나 그 때에도 보살은 허락하지 아니하리라.
나찰은 또 ‘그대가 투란차죄를 범할 수 없으면, 사타(捨墮)죄를 범하라. 그 인연으로도 편안하게 열반에 들 수 있으리라’ 한다. 그래도 보살은 허락하지 않으리라. 나찰은 또 ‘그대가 사타죄도 범할 수 없으면, 바야제(波夜提) 죄를 범하라. 그 인연으로도 편안히 열반에 들 수 있으리라’ 한다. 보살은 그 때에도 허락하지 아니할 것이다. 나찰은 또 말하기를 ‘그대가 바야제를 범하지 못하겠거든 돌길라(突吉羅) 계를 파하라. 그 인연으로도 편안하게 열반에 들 수 있으리라’ 한다. 보살이 이 때에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돌길라를 범하고 털어놓고 참회하지 아니하면, 생사 바다의 저 언덕까지 건너가서 열반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한다. 보살이 이 조그만 계율에까지도 견고하게 수호하려는 마음이 금강과 같으며, 보살마하살이 4중금이나 돌길라까지를 소중하게 여기고 견고하게 생각함이 차별이 없으며, 보살이 만일 이렇게 굳게 가지면 곧 다섯 가지 계율을 구속하리니, 이른바 보살의 근본의 업인 청정한 계율과, 앞뒤의 권속인 다른 청정한 계율과, 나쁜 깨달음이 아닌 각(覺)의 청정한 계율과, 바른 생각을 수호하여 지니는 생각의 청정한 계율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회향하는 계율이니라.
가섭이여, 이 보살마하살이 또 두 가지 계율이 있으니, 첫째는 세상의 가르치는 계율을 받음이요, 둘째는 바른 법의 계율을 얻음이니라. 보살이 바른 법의 계율을 얻은 이는, 마침내 나쁜 짓을 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계율을 받는 이는 백사갈마(白四羯磨)한 뒤에야 얻느니라. 또 선남자야, 두 가지 계율이 있으니, 첫째는 성품이 중한 계율[性重戒]이요, 둘째는 세상의 혐의를 쉬는 계율[息世議嫌戒]이니라. 성품이 중한 계율은 네 가지 계율을 이름이요, 세상의 혐의를 쉬는 계율은 장사하면서 가벼운 저울이나 작은 말로 사람을 속이거나, 다른 이의 세력으로 인하여 남의 재물을 뺏는 것이나, 해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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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는 마음으로 결백하고 성공할 것을 파괴하거나, 불을 켜놓고 눕는 것이나, 집과 전장을 마련하고 곡식과 나무를 심거나, 살림을 유지하려고 가게를 내는 일을 하지 아니하며, 코끼리·말·수레·소·양·약대·나귀·닭·개·원숭이·공작·앵무·공명조(共命鳥)·구기라(拘枳羅)·늑대·이리·범·표범·고양이·살쾡이·돼지 따위의 나쁜 짐승을 기르지 아니하며, 사내아이·계집아이·남자·여자·노비·아이종 따위를 두지 아니하며, 금·은·폐유리·파리·진주·자거·마노·산호·옥·보패 따위와 구리·백통·주석 따위로 만든 그릇과, 담요·전·털붙이 옷이나, 온갖 곡식·쌀·밀·보리·콩·기장·조·벼·삼이나, 날로 먹고 익혀 먹는 기구를 받지 아니하고, 하루에 한번 먹고 두 번 먹지 아니하며, 걸식하거나 대중에서 먹는 것으로 만족하고, 따로 청함[別請]을 받지 아니하며, 고기를 먹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고 5신채(辛菜)를 모두 먹지 아니하므로, 몸에 더러운 냄새가 없어서 천상 사람과 세상 사람들의 공경하고 공양하며 존중하고 찬탄함을 받으며 적당하게[趣足] 먹고 풍족하게 받지[長受] 말며, 의복은 몸을 가리울 만하고 출입할 때는 항상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다녀서 여의지 말기를 새의 두 날개와 같이 하며, 뿌리로 나는 것[節子], 꼭지에서 나는 것[接子], 종자로 나는 것[子子]들을 저축하지 말고, 보배 광[寶藏]·금·은·음식·고방·몸 치장할 의복 따위를 쌓아 두지 말며, 높고 넓은 큰 침상이나, 상아나 금으로 꾸민 평상이나, 각색 빛으로 훌륭하게 짠 자리에 앉거나 눕거나 하지 말며, 여러가지 보드라운 자리를 쌓아 두지 말며, 온갖 코끼리 자리[象薦]·말 자리[馬薦]에 앉지 말며, 보드랍고 묘하고 훌륭한 천과 옷을 평상 위에 깔지 말며, 눕고 쉬는 평상에 두 가지 베개를 놓지 말며, 훌륭한 단침(丹枕)을 받아 두거나, 황목침(黃木枕)을 놓지 말며, 코끼리 싸움·말 싸움·수레 싸움·군대 싸움이나, 남자·여자·소·양·닭·꿩·앵무 따위의 싸움을 구경하지 말며, 군대의 진중에 가서 구경하지도 말며, 소라 불고 북치고 나팔 불고, 거문고 타고, 저 불고, 퉁소 불고, 공후 타고, 노래하고 춤추고 풍류하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하나니, 부처님께 공양하는 일은 제외할 것이며, 투전[樗蒲]·바둑·파라색 노름·사자 노름·상투(象鬪)·탄기(彈碁)·팔도행성(八道行成) 따위의 온갖 노름을 모두 하지도 구경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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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며, 손금보고 관상보지도 말며, 조경(爪鏡)·지초(芝草)·양지(楊枝)·발우(鉢盂)·촉루(髑髏) 따위로 점치지 말며, 허공의 별들을 쳐다보지도 말아야 하거니와, 잠을 깨우는 것은 제외할 것이며, 국왕의 사신이 되어 오고 가면서, 이것을 저에게 말하고 저것을 여기에 말하지 말며 아첨하고 정당치 못하게 살아가지 말며, 임금·신하·도적과 싸움과 음식과 국토와 흉년 들고 풍년 들고 공포(恐怖)하고 안락한 것들을 선전하여 말하지 말지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세상의 혐의를 쉬는 계율’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들은 이러한 제한한[遮判] 계율을 가지되, 성품이 중한 계율과 평등하게 여기어 차별함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계율을 받아 지니고는 서원을 세우되 ‘차라리 이 몸을 맹렬하게 타는 큰 불구렁에 던질지언정, 지나간 세상·오는 세상·지금 세상의 여러 부처님의 제정한 계율을 파하면서, 찰리나 바라문이나 거사들의 여인과 더불어 부정한 짓을 하지 않겠나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서원을 세우되 ‘차라리 뜨거운 무쇠로 이 몸을 두루두루 얽을지언정, 파계한 몸으로 신심 있는 시주의 의복을 받지 않겠나이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또 보살마하살이 원을 세우되 ‘차라리 이 입으로 끊는 철환을 삼킬지언정, 파계한 입으로 신심 있는 시주의 음식을 먹지 않겠나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원을 세우되 ‘차라리 이 몸으로 뜨거운 무쇠 위에 누울지언정, 파계한 몸으로 신심 있는 시주의 침상과 좌복을 받지 않겠나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원을 세우되 ‘차라리 이 몸으로 3백 자루의 창을 받을지언정, 파계한 몸으로 신심 있는 시주의 의약을 받지 않겠나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서원을 세우되 ‘차라리 이 몸을 쇳물이 끓는 가마솥에 던질지언정, 파계한 몸으로 신심 있는 시주의 집이나 방을 받지 않겠나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서원을 세우되 ‘차라리 쇠망치로 이 몸을 부수어서 머리에서 발까지를 모두 가루를 만들지언정, 파계한 몸으로 찰리·바라문·거사의 공경과 예배를 받지 않겠나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원을 세우되 ‘차라리 뜨거운 쇠꼬챙이로 두 눈을 뽑을지언정, 음란한 마음으로 다른 이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않겠나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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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보살마하살이 또 원을 세우되 ‘차라리 송곳으로 온몸을 빈틈없이 찌를지언정, 음란한 마음으로 좋은 음성을 듣지 않겠나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또 원을 세우되 ‘차라리 잘 드는 칼로 코를 벨지언정, 음란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향기를 맡지 않겠나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원을 세우되 ‘차라리 잘 드는 칼로 혀를 찢을지언정, 음란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맛을 탐하지 않겠나이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또 원을 세우되 ‘차라리 잘 드는 도끼로 몸을 찍을지언정, 음란한 마음으로 보드라운 촉감을 탐하지 않겠나이다’ 하나니, 왜냐 하면 이런 인연이 수행하는 이로 하여금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게 하는 연고니라.
가섭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계행을 수호하여 가지는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이런 여러 가지 계행을 가지고는, 그것을 온갖 중생들에게 베풀어 주고, 그 인연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엄금하는 계율을 수호하여 지니며, 청정한 계, 선한 계, 모자라지 않는 계, 꺾이지 않는 계, 대승계, 물러가지 않는 계, 따라가는 계[隨順戒], 끝까지 계를 얻어서 바라밀계를 구족히 성취하게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청정한 계율을 지닐 때에, 곧 첫 부동지(不動地)에 머물게 되나니, 어떤 것을 ‘부동지’라 하는가. 보살은 이 부동지 가운데 머물러서는, 동요하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물러가지 않고 흩어지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수미산은 수람(隨藍)이란 폭풍이 동요하게도 떨어지게도 물러가게도 흩어지게도 하지 못하는 것같이, 보살마하살이 이 부동지 가운데 머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빛이나 소리나 냄새나 맛에 동요하지 아니하며, 지옥·축생·아귀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물러가지 아니하며, 이상한 소견이나 삿된 바람에 흩어져서 잘못된 생활[邪命]을 짓지 아니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동요하지 않는다 함은 탐욕·성냄·어리석음에 동요하지 않는 것이요, 떨어지지 않는다 함은, 네 가지 중대한 범죄에 떨어지지 않음이요, 물러가지 않는다 함은, 집으로 물러가지 않음이요, 흩어지지 않는다 함은 대승경전을 거역하는 이의 해산하고 깨뜨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다시는 모든 번뇌 마군의 동요되지 아니하며, 5음 마군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도량의 보리나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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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 앉아서 비록 천마가 있더라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가게 하지 못하며, 죽는 마군의 해산이나 깨뜨림이 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닦아 익히는 성스러운 행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성스러운 행이라 하는가. 성스러운 행이라 함은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행하는 것이므로 성스러운 행이라 하느니라. 부처님이나 보살을 어찌하여 성인이라 하는가. 이런 이들은 성인의 법이 있는 연고며, 모든 법의 성품이 고요함을 항상 관찰하는 연고니, 이런 뜻으로 성인이라 하며, 성스러운 계행이 있으므로 성인이라 하며, 성스러운 선정과 지혜가 있으므로 성인이라 하며, 믿음·계율·남 부끄러움[慚]·제 부끄러움[愧]·많이 알음·지혜·버림의 일곱 가지 성스러운 재물이 있으므로 성인이라 하며, 일곱 가지 성스러운 깨달음이 있으므로 성인이라 하나니, 이런 뜻으로 거룩한 행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성스러운 행이라 함은 몸을 살펴보건대 머리로부터 발까지에 다만 머리카락·털·손톱·발톱·이·부정한 것·더러운 때·가죽·살·힘줄 뼈·지라[脾]·콩팥·염통·허파·간·쓸개·창자·위부·생장(生藏)·숙장(熟藏)·대변·소변·콧물·침·눈물·지방·뇌·막·골수·고름·피·혈관 따위가 있을 뿐이니, 보살이 이렇게 전심으로 관찰할 적에 어느 것이 나겠는가. 나는 무엇에 소속되었으며, 어디 있으며, 무엇이 나에게 소속되었는가. 또 생각하기를 뼈가 나겠는가, 뼈를 떠나서 나가 있겠는가. 보살이 이 때에 가죽과 살을 제외하고 백골만을 관찰하면서, 또 생각하기를 백골 빛이 제각기 달라서 푸른 빛·누른 빛·흰빛·잿빛이니 이런 백골도 나가 아닐 것이다. 왜냐 하면 나란 것은 푸른 빛·누른 빛·흰빛·잿빛이 아닌 까닭이다. 보살이 이렇게 마음을 써서 관찰할 적에 온갖 색욕을 끊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뼈란 것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니, 발뼈를 인하여 복사뼈를 받치고, 복사뼈를 인하여 정강이뼈를 받치고, 무릎뼈를 인하여 넓적다리뼈를 받치고, 넓적다리뼈를 인하여 엉치뼈를 받치고, 엉치뼈를 인하여 허리뼈를 받치고, 허리뼈를 인하여 등골뼈를 받치고, 등골뼈를 인하여 갈빗대를 받치고, 또 등골뼈를 인하여 위로 목의 뼈를 받치고, 목의 뼈를 인하여 턱뼈[領骨]를 받치고, 턱뼈를 인하여 이빨을 받치고, 위로는 두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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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치고, 또 목의 뼈로 어깨뼈를 받치고, 어깨뼈를 인하여 팔뼈를 받치고, 팔뼈를 인하여 손목뼈를 받치고, 손목뼈를 인하여 손바닥뼈를 받치고, 손바닥뼈를 인하여 손가락뼈를 받치었도다.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할 때에, 몸에 있는 뼈들이 모두 나뉘어 떨어졌으며, 이런 관찰을 하고는 세 가지 욕망을 끊나니, 하나는 형체의 욕망, 둘은 자태(姿態)의 욕망, 셋은 보드랍게 닿는 욕망[細觸欲]이니라.
보살마하살이 푸른 빛의 백골을 관할 때에, 이 땅의 동·서·남·북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가 모두 푸른 모양이며, 푸른 빛을 관하는 것같이, 누른 빛·흰빛·잿빛을 관함도 그와 같으며, 보살이 이런 관을 할 때에 양미간에서 푸른빛 ·누른 빛·붉은 빛·흰빛·잿빛 광명을 놓거든, 보살이 이 낱낱 광명 속에서 부처님 형상이 있음을 보았으며, 보고는 묻기를 ‘이 몸은 부정한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온데, 어찌하여 안고 일어나고 다니고, 서고 구부리고 펴고 굽히고 우러러보고 깜짝이고 헐떡거리고 숨쉬고 슬퍼하고 울고 기뻐하고 웃고 합니까? 그 가운데 주재가 없거늘, 누가 그렇게 시킵니까?’라고 물으니, 광명 속의 부처님들이 문득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또 생각하기를 ‘혹 알음알이[識]가 나이므로 부처님들로 하여금 나에게 말하지 않게 하는가’ 하고, 또 관하니 이 알음알이가 차례로 났다 없어졌다 함이 마치 흐르는 물과 같으니, 역시 내가 아니라 하였고, 또 생각하기를 ‘만일 알음알이가 나가 아니라면 내쉬고 들이쉬는 숨이 나겠는가’ 하고, 또 생각하되 ‘내쉬고 들이쉬는 숨은 바로 바람의 성품이요, 바람의 성품은 곧 4대니, 4대 중에서 어느 것이 나겠는가, 지대의 성품이 내가 아니니, 수대·화대·풍대의 성품도 내가 아니리라’ 하고, 또 생각하되 ‘이 몸의 온갖 것에 모두 나라 할 것이 없고, 마음과 바람이 인연으로 화합하여 가지가지 짓는 업을 나타내는 것이 마치 주력(呪力)이나 환술로 짓는 것 같고 공후가 뜻을 따라함이 여러 가지 인연을 빌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어느 곳에 탐욕을 내며, 설사 욕설을 듣는다 한들, 어느 곳에 성을 내겠는가. 이 몸은 36가지가 모두 부정하고 더럽거늘, 어느 곳에 욕설을 들을 것이 있겠는가’ 하느니라. 만일 꾸짖는 말을 듣거든, 곧 생각하기를 ‘어느 음성으로 꾸짖는 것인가, 낱낱 음성이 꾸짖지 못한다면 한 음성이 꾸짖지 못하듯이 여러 음성도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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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라’ 하리니, 이런 이치로 성을 낼 것이 아니리라.
만일 다른 이가 와서 때리거든, 또 생각하되 ‘이렇게 때리는 이는 어디서 왔는가’ 하느니라. 또 생각하되 ‘손과 칼과 방망이와 내 몸을 말미암아서 때린다고 하는 것이니, 내가 왜 다른 이를 노여워하랴. 이것은 내 몸이 스스로 이 허물을 불러오는 것이며, 내가 5음으로 된 몸을 받은 연고이다. 마치 과녁이 있으므로 화살을 맞는 것같이 내 몸도 그러하여 몸이 있으므로 때리는 일이 있나니, 내가 이것을 참지 못하면, 마음이 산란할 것이고, 마음이 산란하면 바른 생각[正念]을 잃을 것이고, 바른 생각을 잃으면 선하고 선하지 않은 이치를 관찰하지 못할 것이고, 선하고 선하지 않음을 관찰하지 못하면 나쁜 법을 행할 것이고, 나쁜 법을 행한 인연으로는 지옥·축생·아귀에 떨어질 것이다’ 하느니라.
보살이 이러한 관을 하고는 4념처(念處)를 얻고, 4념처를 얻고는 곧 참는 지위[堪忍地]에 머물 것이며, 보살마하살이 이 참는 지위에 머물면, 탐욕·성냄·어리석음을 참고 견딜 것이며, 역시 추위·더위·굶주림·목마름을 참으며, 모기·등에·벼룩·이·폭풍·나쁜 촉각·여러 가지 전염병·욕설·악담·때리는 것 따위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참고 견딜 것이므로, 참는 지위에 머물렀다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부동지(不動地)에 머물지 못하고서, 계율을 깨끗하게 가지다가도, 어떤 인연으로 파계하는 일이 있습니까?”
“선남자야, 보살이 부동지에 머물지 못하였을 적에는, 인연이 생기면 파계할 수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그런 인연입니까?”
“가섭이여, 만일 보살이 파계하는 인연을 가지고 다른 이로 하여금 대승경전을 받아 지니고 좋아하게 하며, 또 그로 하여금 대승경전을 읽고 외우고 통달하고 쓰게 하여 다른 이에게 선전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가지 않게 할 줄을 안다면 이런 인연으로 파계하게 되는 것이니, 그 때에 보살이 생각하기를 ‘내가 차라리 한 겁이나 한 겁이 조금 못 되는 세월에 아비지옥에 들어가서 그 죄보를 받을지언정, 이 사람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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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리라’ 하느니라. 가섭이여, 이런 인연이면 보살마하살이 깨끗이 지키던 계율을 깨뜨릴 수 있느니라.”
그 때에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이 이런 사람을 붙들어 보호하며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서 계율을 깨뜨리고 아비지옥에 떨어진다면 옳지 않겠나이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문수보살을 칭찬하셨다.
“문수사리여,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대의 말과 같느니라. 내가 오랜 옛날에 염부제에서 큰 나라 임금이 되었으니 이름이 선예(仙預)였으며, 대승경전을 사랑하고 공경하여 마음이 순일하고, 나쁜 생각·시기하는 마음·아끼는 생각이 없었으며, 입으로는 사랑하는 말, 착한 말만을 하였고, 몸으로는 빈궁하고 고독한 사람들을 거두어 보호하였으며, 보시하고 정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으나, 그 때에는 부처님이나 성문이나 연각이 없었으므로, 나는 대승 방등경전을 좋아하면서도 12년 동안에 바라문을 섬기면서 필요한 것을 공양하였고, 12년 동안 보시하기를 마치고는, ‘당신들은 이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십시오’라고 말하였더니, 바라문이 대답하되 ‘대왕이여, 보리의 성품은 있는 것이 아니며, 대승경전도 역시 그러하거늘, 대왕이 어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허공과 같게 하려 합니까’ 하였다. 선남자야, 내가 그 때에 대승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서, 바라문이 방등경을 비방함을 듣고는, 즉시에 그 목숨을 끊었노라. 그러나 선남자야, 그 때부터 이런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지지는 아니하였으니라. 선남자야, 대승을 옹호하고 붙드는 것은 이렇게 한량없는 세력이 있느니라.
가섭이여, 또 거룩한 행이 있으니, 성인의 네 가지 참된 이치인 고(苦)·집(集)·멸(滅)·도(道)니라. 가섭이여, ‘고’라 함은 못살게 구는 것[逼迫相]이요, ‘집’이라 함은 나고 자라게 하는 것[能生長相]이요, ‘멸’이라 함은 고요한 것[寂滅相]이요, ‘도’라 함은 대승을 말함[大乘相]이니라. 또 선남자야, 고는 현상(現相)이요, 집은 전상(轉相)이요, 멸은 제한 것[除相]이요, 도는 능히 제하는 것[能除相]이니라. 또 선남자야, 고에는 세 가지 모양이 있으니, 괴로운 이 몸에 괴롭고 시끄러움이 생기는 것[苦苦相]과,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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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므로 괴로움이 생기는 것[行苦相]과, 파괴되어서 괴로움이 생기는 것[壞苦相]이며, 집은 25유요, 멸은 25유를 멸하는 것이요, 도는 계율·선정·지혜를 닦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유루법(有漏法)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인과 과요, 무루법(無漏法)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인과 과니라. 유루법의 과는 고요, 유루법의 인은 집이며, 무루법의 과는 멸이요, 무루법의 인은 도니라. 또 선남자야, 여덟 가지를 고라 하나니, 나는 고, 늙는 고, 병나는 고, 죽는 고,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는 고[愛別離苦], 미운 것이 모이는 고[怨憎會苦], 구하여 얻지 못하는 고[求不得苦],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고[五陰盛苦]니라. 이 여덟 가지 고를 내는 것을 집이라 하고, 이 여덟 가지 고가 없는 데를 멸이라 하고, 10력(力), 4무소외(無所畏), 3념처(念處), 대비(大悲)를 도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나는 고’라 함은 내는 모양[出相]으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 나는 것[初出], 나중까지 가는 것[至終], 자라는 것[增長], 태에서 나오는 것[出胎], 종류에 나는 것[種類生]이니라. 어떤 것을 늙는다 하는가? 늙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찰나찰나 늙는 것[念念老]과 종신토록 늙는 것[終身老]이며,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자라면서 늙는 것[增長老]과 없어지면서 늙는 것[滅壞老]이니, 이것을 늙는 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병난다 하는가? 병이라 함은 독사 같은 4대가 서로 조화하지 못함으로 두 가지가 있으니,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이며, 몸의 병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물을 인한 것, 바람을 인한 것, 열을 인한 것, 잡병(雜病), 객병(客病)이며, 객병에 넷이 있으니, 첫째는 분한이 아닌 것을 억지로 하는 것[非分强作], 둘째는 잘못 하여서 떨어지는 것[忘誤墮落], 셋째는 칼·작대기·기왓장·돌멩이에 맞은 것이고, 넷째는 귀신 들린 것[鬼魅所著], 마음의 병에도 넷이 있으니, 뛰노는 것[踊躍], 무서워하는 것, 수심하는 것, 어리석은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몸과 마음의 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업보요, 둘째는 악한 상대를 여의지 못함[不得速離惡對]이요, 셋째는 시절이 바뀜[時節代謝]으로 이런 인연과 이름과 받는 분별[受分別]을 내는 것이니, 병의 인연은 바람 따위의 병이요, 이름이라 함은 가슴이 답답하고 허파가 부풀고 상기되고 해소로 구역질하고 마음이 놀라고 이질이 나는 것들이요, 받는 분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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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함은 두통·수족 등의 아픔이니, 이런 것을 병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죽는다 하는가. 죽는다 함은 받았던 몸을 버리는 것이며, 받았던 몸을 버리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명이 다하여 죽는 것과, 바깥 인연으로 죽는 것이다. 명이 다하여 죽는 데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명이 다하였으나 복이 다한 것 아니요, 둘째는 복이 다하였으나 명은 다하지 않은 것이요, 셋째는 복과 명이 모두 다한 것이며, 바깥 인연으로 죽는 데도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분한이 아닌데 스스로 해롭게 하여 죽는 것이고, 둘째는 횡수로 다른 이 때문에 죽는 것이고, 셋째는 두 가지로 함께 죽는 것이며, 또 세 가지 죽음이 있으니, 첫째는 방일하여 죽는 것이고, 둘째는 파계하고 죽는 것이며, 셋째는 목숨을 파괴하여 죽는 것이니라. 무엇이 방일하여 죽음인가. 대승 방등 반야바라밀을 비방하는 것은 방일하여 죽음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파계하고 죽음인가. 과거·미래·현재의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을 범하는 것은 파계하고 죽음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목숨을 파괴하여 죽음인가. 5음으로 된 몸을 버리는 것은 목숨을 파괴하고 죽음이라 하나니, 이런 것을 죽는 고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는 고라 하는가. 사랑하던 물건이 파괴되거나 흩어지는 것이니라. 사랑하던 물건이 파괴되고 흩어지는 데도 두 가지가 있으니, 인간의 5음이 파괴되는 것과, 천상의 5음이 파괴되는 것이니라. 이러한 인간 천상의 사랑하는 5음을 분별하여 계산하면 한량없는 종류가 있거니와, 이것을 사랑하는 것이 이별하는 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미운 것이 모이는 고라 하는가. 사랑하지 않는 것과 함께 모이게 되는 것이니라. 사랑하지 않는 것과 함께 모이게 되는 것에도 세 가지가 있으니, 지옥과 아귀와 축생이라. 이런 세 갈래를 분별하여 계산하면 한량없는 종류가 있거니와, 이것을 미운 것이 모이는 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구하여 얻지 못하는 고라 하는가. 구하여 얻지 못하는 고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희망하는 것을 구하여 얻지 못함과, 힘을 많이 쓰고도 과보를 얻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런 것을 구하여 얻지 못하는 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고라 하는가.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고라 함은 나는 고·늙는 고·병나는 고·죽는 고·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는 고·미운 것이 모이는 고·구하여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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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하는 고 따위들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고라 하느니라. 가섭이여, 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이 일곱 가지 고통이 있으니, 늙는 고와 나아가 다섯 가지 음으로 성하는 고니라.
가섭이여, 쇠하여 늙는 일이 온갖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니, 부처님과 하늘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없고, 인간에는 일정치 아니하여,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느니라. 가섭이여, 삼계에 몸을 받는 이가 나지 않는 이는 없으나, 늙음은 반드시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온갖 것은 나는 것이 근본이 되느니라. 가섭이여, 세간의 중생들은 뒤바뀜이 마음을 덮어서 나는 것은 탐하고 늙고 죽는 것은 싫어하거니와,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처음 나는 것을 볼 적에 이미 근심을 보느니라.
가섭이여, 어떤 여인이 다른 이의 집에 들어갔는데, 그 여자의 몸매가 단정하고 용모가 아름답고 좋은 영락으로 몸에 장엄하였으므로 주인이 보고 묻기를 ‘그대의 성명은 무엇이며 누구에게 소속되었는가?’ 하였다. 여인이 대답하되, ‘나는 공덕천입니다’ 하였다. 주인은 또 묻기를 ‘그대는 가는 곳마다 무슨 일을 하는가?’라고 하였다. 공덕천이 대답하되 ‘나는 가는 곳마다 가지각색 금·은·폐유리·파리·진주·산호·호박·자거·마노·코끼리·말·수레·노비·하인들을 줍니다’라고 하였다. 주인이 듣고 환희한 마음으로 즐거워 뛰놀면서, ‘나는 복덕이 있어서 그대가 나의 집에 온 것이다’ 하면서, 향을 사르고 꽃을 흩어서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배하였다.
또 문밖에 다른 한 여인이 있는데, 형상이 누추하고 의복이 남루하고 더럽고 때가 많고 피부가 쭈그러지고 살빛이 부옇게 되었다. 주인이 보고, 묻기를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며 누구에게 소속되었는가?’ 하였다. 여인이 대답하되 ‘나의 이름은 검둥이입니다’ 하였다. ‘왜 검둥이라고 이름하였는가?’라고 물었다. 여인이 대답하되 ‘나는 간 데마다 그 집 재물을 소모하게 합니다’ 하였다. 주인이 그 말을 듣고는 칼을 들고 말하기를 ‘그대가 빨리 가지 아니하면 목숨을 끊으리라’ 하자 여인이 대답하되 ‘그대는 왜 그렇게 어리석고 지혜가 없습니까?’ 하였다. 주인이 묻기를 ‘어째서 나를 어리석고 지혜가 없다고 하는가?’ 하였다. 여인이 대답하되 ‘그대의 집에 들어간 이는 나의 언니요, 나는 언제나 언니와 거취를 같이하는 사람이니, 그대가 나를 쫓아내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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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나의 언니도 쫓아내야 합니다’ 하였다.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서 공덕천에게 물었다. ‘밖에 어떤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그대의 동생이라 하니 사실인가?’ 공덕천이 대답하기를, ‘그는 분명히 나의 동생입니다. 나는 항상 동생과 행동을 같이하였고, 한번도 떠난 적이 없으며, 가는 곳마다 나는 좋은 일을 하고 동생은 나쁜 짓을 하였으며, 나는 이로운 일을 하고 동생은 손해나는 일을 하였습니다. 만일 나를 사랑하거든 그도 사랑하여야 하고, 나를 공경하려면 그도 공경하여야 합니다’ 하였다. 주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그렇게 좋은 일도 나쁜 짓도 한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으니, 모두 마음대로 가시오.’ 두 여인이 서로 팔을 끌고 살던 데로 가고, 주인은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환희하여 한량없이 뛰놀았다. 그 때에 두 여인은 손에 손을 잡고 가난한 집에 이르렀다. 가난한 사람이 보고는 기쁜 마음으로 ‘지금부터 그대들은 나의 집에 항상 있으라’고 청하였다. 공덕천이 말하되, ‘우리들은 어떤 사람에게 쫓겨오는 터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더러 있으라고 청합니까?’하자, 가난한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가 지금 나를 생각하기에 내가 그대를 위하여서 저 사람을 공경하며, 그래서 둘 다 나의 집에 있으라고 청하는 것이오’ 하였다.
가섭이여,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천상에 태어나기를 원하지 아니하나니, 나면 반드시 늙고 병나고 죽음이 있는 까닭으로 모두 버리고 조금도 받을 마음이 없거니와,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은 늙고 병나고 죽음의 걱정을 알지 못하는 연고로 나고 죽는 두 가지 법을 받으려고 탐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바라문의 어린아이가 굶주림에 쪼들리다가, 사람의 똥 속에 암마라 열매가 있는 것을 보고 집어 들었더니 어떤 지혜 있는 이가 보고 꾸짖되, ‘네가 바라문의 청정한 집 자손으로서 어찌하여 똥 속에 있는 더러운 과실을 집느냐?’ 하니, 아이가 듣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대답하기를, ‘나는 먹으려는 것이 아니요 깨끗하게 씻어서 도로 버리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지혜 있는 이가 말하되 ‘너는 퍽 어리석은 아이다. 도로 버릴 것을 무엇하러 집느냐’ 하였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이 나는 일을 받지도 않고 버리지도 아니함은 지혜 있는 이가 아이를 꾸짖음과 같고, 범부들이 나는 것을 기뻐하고 죽는 것을 싫어함은 저 아이가 과실을 집었다가 도로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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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과 같으니라.
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네거리에서 빛과 냄새와 맛이 훌륭한 밥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팔고 있었는데, 멀리서 오던 사람이 허기가 나서 그 먹음직한 밥을 보고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밥 파는 이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빛과 냄새와 맛이 훌륭한 밥이요, 이 밥을 먹으면 기운이 충실하고 피부가 좋아지고 기갈이 소멸하여 천상 사람들을 볼 수 있소. 그러나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목숨이 마치게 되는 것이오’ 하였다. 오던 사람이 듣고 생각하기를 ‘나는 피부가 좋아지는 것도 기운이 충실하는 것도 천상 사람을 보는 것도 쓸데가 없고, 또 죽을 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고는 말하였다.
‘이 밥을 먹고 만일 목숨이 마친다면, 그대는 어째서 여기서 파는가?’
밥장수의 대답이 이러하였다.
‘지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사지 않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줄은 모르고 값을 많이 주고 사서 먹소.’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천상에 나서 피부가 좋아지고 기운이 충실하고 천상 사람을 보는 일을 원하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모든 고통을 면치 못할 줄을 아는 까닭이거니와, 범부는 어리석어서 어디나 태어나는 것을 좋아하나니, 늙고 병나고 죽음을 보지 못하는 연고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독한 나무는 뿌리도 사람을 죽이고, 줄기·가지·마디·껍질·잎·꽃·열매도 사람을 죽임과 같이, 선남자야, 25유에 태어나면서 받은 5음도 그와 같아서, 모든 것이 능히 죽이느니라. 또 가섭이여, 똥은 많거나 적거나 구린 것이니, 선남자야, 나는 것도 그와 같아서, 8만 년을 살거나 열 살을 살거나 모두 고통을 받느니라. 또 가섭이여, 어떤 위험한 언덕 위에 풀이 덮여 있고 그 언덕가에는 감로가 많이 있는데, 그것을 먹으면 천년이나 살면서 병이 영원히 소멸되고 쾌락하게 살게 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맛만 탐하여, 밑에 깊은 구렁이 있는 줄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 집어 먹으려다가 발이 미끄러지며 구렁에 떨어져 죽거니와, 지혜 있는 사람은 미리 그런 줄을 알고 피하여 가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천상의 훌륭한 음식도 받고자 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인간의 음식이리요. 그러나 범부들은 지옥에서 철환을 먹는 것도 사양치 않거늘, 하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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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아름다운 음식을 어찌 먹지 않겠는가. 가섭이여, 이런 비유나 그 외에 한량없는 비유로 보아서, 남[生]이 실로 큰 괴로움임을 알지니라. 가섭이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승 대반열반경에 머물러서 나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가섭이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 대반열반경에서 늙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는가? 늙는다는 것은 해소가 생기고 상기가 일어나며, 용기와 기억력과 앞으로 나아가는 힘과 쾌락과 교만과 잘난 체하는 마음과 편안하고 자재함을 꺾어버리는 것이며, 허리가 구부러지고 게을러지고 기운이 없어져서 남의 업신여김을 받느니라. 가섭이여, 마치 연못에 연꽃이 만발하여 곱게 성하면 매우 사랑스럽다가 우박이 내리면 모두 부서지듯이 선남자야, 늙는 것도 그와 같아서 장성하던 기색이 모두 소멸되느니라. 또 가섭이여, 어떤 나라 임금에게 지혜 있는 신하가 있어 병법을 잘 아는데, 적국의 왕이 거역하고 공순하지 아니하면, 이 신하를 보내어 토벌하고 그 대적의 왕을 사로잡아 이 나라 임금에게 끌어오듯이, 늙음도 그와 같아서, 장성한 기색을 사로잡아 죽음이란 왕에게 끌어가느니라. 또 가섭이여, 마치 꺾어진 굴대는 다시 쓸 수 없듯이, 늙음도 그와 같아서 다시 쓸 수 없느니라. 또 가섭이여, 어떤 부잣집에 금·은·폐유리·산호·호박·자거·마노 따위의 보배가 있더라도, 도적의 떼가 그 집에 들어가면, 남기지 않고 모두 빼앗아 가듯이, 선남자야, 장성하던 기색도 그와 같아서, 늙음이란 도적의 빼앗음이 되느니라. 또 가섭이여, 마치 가난한 사람이 훌륭한 음식과 화려한 의복을 탐하여 희망하더라도 얻을 수 없듯이 선남자야, 늙음도 그와 같아서 비록 탐심이 있어 부귀와 쾌락을 받으면서 5욕락을 마음껏 즐기려 하여도 될 수 없느니라. 또 가섭이여, 뭍에 있는 거북이 마음으로 항상 물을 생각하듯이,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노쇠하여 쭈그러지더라도 마음으로는 장성하였을 적에 5욕락을 즐기던 일을 생각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초가을에 피는 연꽃을 모든 사람이 보기를 좋아하지만 시들고 쇠잔하면 모두들 천히 여기듯이 선남자야, 장성한 때의 훌륭하던 기색도 그와 같아서, 모든 사람이 사랑하다가도 늙어지면 모두들 싫어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사탕무도 즙을 짜고 나면 찌꺼기는 맛 없듯이, 장성한 때의 훌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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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색도 그와 같아서, 늙음에 짜이면 세 가지 맛이 없어지나니, 출가하는 맛, 경을 외우는 맛, 참선하는 맛이니라. 또 가섭이여, 마치 보름달이 밤에는 빛이 찬란하다가도 낮이 되면 그렇지 못하듯이, 선남자야, 사람도 그러하여, 장성하였을 적에는 얼굴이 단정하고 몸매가 아름답다가도, 늙으면 얼굴이 쭈그러지고 전신이 혼미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어떤 왕이 바른 법으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며 진실하고 자비하여 보시를 좋아하다가, 적국에게 패하여 창황하게 도망하여 다른 나라에 가면, ‘대왕께서 지난날에는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더니,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리니,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노쇠에 패하여지고는 항상 장성하였을 적에 행하던 일을 찬탄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마치 심지는 기름만을 의지하는 것이어서, 기름이 끊어지면 불이 오래 있을 수 없나니,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장성한 기름을 의지하는 것이므로, 장성한 기름이 다하면 노쇠의 심지가 어찌 오래 있겠느냐.
또 가섭이여, 마른 개천은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이나 새나 짐승을 이익케 할 수 없나니,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늙음의 마름이 되면, 온갖 사업을 이익케 할 수 없느니라. 또 가섭이여, 강 언덕에 위태롭게 선 나무가 폭풍을 만나면 넘어지나니,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늙음의 언덕에 다다랐을 적에, 죽음의 폭풍이 불면 오래도록 서 있을 수 없느니라. 또 가섭이여, 수레의 굴대가 꺾어지면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없나니, 선남자야, 늙음도 그와 같아서, 온갖 선한 법을 받아 지닐 수 없느니라. 또 가섭이여, 어린아이는 사람마다 업신여기나니, 선남자야, 늙음도 그와 같아서, 항상 모든 무리의 업신여김을 받느니라. 가섭이여, 이런 비유와 그 외에 한량없는 비유로 보아서, 늙는 일이 큰 고통 되는 줄을 알지니라. 가섭이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서 늙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가섭이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서 병나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는가. 병이라 함은 모든 편안하고 즐거운 일을 깨뜨리는 것이니, 마치 우박이 곡식의 모를 상하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또 가섭이여, 사람이 원수가 있으면 마음이 항상 근심스러우며 두려운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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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나니, 선남자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항상 병나는 고통을 두려워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품느니라. 또 가섭이여, 어떤 사람이 용모가 단정하여 왕후가 애욕을 품고 사람을 보내어 억지로 불러다가 간통한 것을, 임금이 체포하여 놓고 사람을 시켜 한 눈을 뽑고 한 귀를 베고 한 손과 한 발을 끊으면, 이 사람의 용모가 흉악하게 변하여 사람들이 천히 여기나니,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처음은 단정하고 귀와 눈이 구족하였으나, 병에 걸리어 시달리면 모든 사람이 천히 여기느니라. 또 가섭이여, 마치 파초나 대나무나 노새는 씨가 맺거나 새끼를 배면 죽는 것이니, 선남자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병이 들면 죽느니라. 또 가섭이여, 전륜왕은 군대를 맡은 대신이 앞에서 길을 잡고, 왕은 뒤에 따라가는 것이며, 또 물고기 왕과 개미 왕과 메뚜기 왕과 소의 왕과 장사 물주가 앞을 서서 가면, 다른 무리들이 모두 따라가고 뒤떨어지지 않나니, 선남자야, 죽음이란 전륜왕도 그와 같아서 항상 병이란 신하를 따르고 여의지 아니하며, 물고기·개미·메뚜기·장사 물주라는 병의 왕도 그와 같아서, 항상 죽음의 무리들이 따라다니느니라.
가섭이여, 병의 인연은 괴로움과 시끄러움과 근심과 슬픔으로 몸과 마음이 불안한 것이니, 혹은 원수와 도적의 핍박도 되고, 구명부대를 깨뜨리고 다리를 무너뜨리며, 바르게 생각하는 근본을 겁탈하는 것이며, 또 장성한 기색과 기운과 안락을 파괴하고 부끄러움을 버리게 하며, 몸과 마음을 뜨겁고 번민하게 하나니, 이런 비유와 그 외에 한량없는 비유로 보아서, 병나는 일이 큰 고통되는 줄을 알지니라. 가섭이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서, 병나던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가섭이여, 어떤 것을 대승의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서 죽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는가. 죽음이라 함은 태워 없애는 것이니라. 가섭이여, 화재가 일어나면 온갖 것을 태워버리거니와 2선천(禪天)은 제외하나니 힘이 미치지 못하는 연고니라. 선남자야, 죽음이란 화재도 그와 같아서, 온갖 것을 태워 없애거니와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 있는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연고니라. 또 가섭이여, 수재(水災)가 일어나면, 온갖 것이 물 속에 빠지거니와, 3선천은 제외하나니, 힘이 미치지 못하는 연고니라. 선남자야, 죽음이란 물도 그러하여 온갖 것을 빠뜨리거니와, 대승의 대반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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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머물러 있는 보살만은 제외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풍재가 일어나면 온갖 것을 불어서 날려버리거니와, 4선천은 제외하나니 힘이 미치지 못하는 연고니라. 선남자야, 죽임이란 바람도 그러하여 모든 있는 것을 불어 없애거니와,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문 보살만은 제외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4선천은 무슨 인연으로 풍재도 불어 날리지 못하고, 수재도 빠뜨리지 못하고 화재도 태우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4선천은 안에 걱정과 밖에 걱정이 모두 없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초선천의 걱정은 안으로 관찰하여 생각함[覺觀]이 있고 밖으로 화재가 있으며, 2선천의 걱정은 안으로 환희함이 있고 밖으로 수재가 있으며, 3선천의 걱정은 안으로 헐떡이는 숨이 있으므로 밖으로 풍재가 있거니와, 선남자야, 4선천은 안팎 걱정이 모두 없으므로 모든 재앙이 미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면 안팎 걱정이 모두 없나니, 그러므로 죽음의 왕이 미치지 못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금시조가 모든 용과 금·은 따위의 보배를 먹고 소화하지만 금강은 소화하지 못하나니, 선남자야, 죽음이란 금시조도 그와 같아서, 온갖 중생들을 먹고 소화하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문 보살마하살만은 소화하지 못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마치 강가에 있는 풀과 나무는 홍수가 나면 물에 떠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가거니와, 버드나무는 제외하나니, 부드러운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모두 흐름을 따라서 죽는 바다에 들어가거니와,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문 보살은 제외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나라연이 모든 역사를 모두 굴복시키지만 바람은 제외하나니, 왜냐 하면 걸림이 없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죽음이란 나라연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꺾어 굴복시키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문 보살은 제외하나니, 왜냐 하면 걸림이 없는 까닭이니라. 또 가섭이여, 어떤 사람이 원수들에게 친근한 듯이 가장하고,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님은 틈을 타서 죽이려고 함이거니와, 저 원수가 조심하여 굳게 방비하므로 그 사람이 죽이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죽음이란 원수도 그러하여 항상 중생들의 틈을 엿보아 죽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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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문 보살마하살은 죽이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보살들은 방일하지 않는 까닭이니라. 또 가섭이여, 금강 소나기[金剛瀑雨]가 갑자기 퍼부어서 약초·나무·산림·흙·모래·기왓장·돌과 금·은·유리의 모든 물건을 파괴하더라도, 금강 보배는 파괴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죽음이란 금강 소나기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모두 파괴하지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문 금강 보살은 제외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저 금시조가 모든 용을 잡아먹지만 삼귀의를 받은 용은 먹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죽음이란 금시조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중생들을 모두 잡아 먹지만, 세 가지 선정에 머문 보살은 제외하나니, 세 가지 선정은 공(空)한 것, 모양이 없는 것[無相], 원이 없는 것[無願]이니라. 또 가섭이여, 마라(摩羅) 독사는 물리기만 하면, 아무리 훌륭한 주문과 좋은 약이라도 어찌할 수 없거니와, 오직 아갈다(阿竭多) 별의 주문으로만 독을 없애나니, 선남자야, 죽음의 독사에 물림도 그와 같아서, 온갖 방문과 약이라도 어찌할 수 없지만, 오직 대승의 대반열반의 주문에 머문 보살은 제외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사람이 왕의 노함을 받으면 그 사람이 부드럽고 좋은 말을 하며 훌륭한 보배를 바쳐 면할 수 있거니와, 선남자야, 죽음의 왕은 그렇지 아니하여, 아무리 부드럽고 좋은 말을 하며 훌륭한 보배를 바쳐도 면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죽음이란 것은 험난한 길에 노자가 없는 것이며, 갈 곳은 먼데 동무가 없으며, 밤낮으로 줄곧 가지만 끝을 알지 못하며, 깊고 어두운데 등불이 없으며, 들어갈 문은 없는데 처소만 있으며, 비록 아픈 데는 없으나 치료할 수 없으며, 가도 끝이 없고 이르러도 벗어날 수 없으며, 파괴함은 없지만 보는 이마다 근심하며, 험악한 빛깔은 아니나 사람들을 무섭게 하며, 내 몸에 있지만 깨닫지 못하느니라. 가섭이여, 이런 비유와 그 외에 한량없는 비유로 보아서 죽는 일이 참으로 큰 괴로움인 줄을 알지니, 가섭이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에 머물러서 죽는 고통을 관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가섭이여, 어떤 것을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에 머물러서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는 고통을 관한다 하는가.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는 고통은 모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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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 근본이 되나니, 이런 게송이 있느니라.

사랑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있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공포 생기니
사랑하는 애정만 떼어 버리면
근심은 무엇이며 공포는 무엇

사랑하는 인연으로 근심이 있고 근심하는 고통으로 중생들이 늙는 것이니,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는 고통은 말하자면 목숨이 마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이별하는 연고로 가지가지 미세한 고통이 생기는 것을, 이제 그대에게 분별하여 보여주리라. 선남자야, 지나간 세상 사람의 목숨이 한량없던 때에 한 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선주(善住)였다. 그 왕이 동자로 있으면서 태자 일을 보던 때와 왕이 되었을 때가 각각 8만 4천 년이었는데, 그 때에 왕의 정수리에 살혹이 났었다. 그 혹은 부드럽기가 도라솜 같고 말랑하기가 겁패천 같은 것이 점점 자랐으나 걱정될 정도는 아니더니, 열 달이 차서는 혹이 터지면서 아기가 나왔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기이하기 짝이 없으며, 몸매가 훌륭하여 사람으로는 제일이었다. 아버지 임금이 기뻐서 정생(頂生)이라고 이름지었다. 그 때에 선주왕이 곧 나라 일을 정생에게 맡기고 궁전과 처자 권속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서, 8만 4천 년 동안을 도를 배우고 있었다.
그 때에 정생은 어느 보름날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를 받았더니, 마침 동방에 금륜 바퀴가 있는데, 바퀴살[輻]이 천 개요 속바퀴와 덧바퀴가 구족하였으며, 장인[工匠]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저절로 만들어져서 왔다. 정생왕이 생각하기를 ‘내가 예전에 5통(通) 선인의 말을 들으니, 만일 찰리왕이 보름날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를 받았을 적에, 바퀴살이 천 개요 속바퀴와 덧바퀴가 구족한 금륜 바퀴가, 장인의 손을 거친 것이 아니고, 저절로 만들어져 온다면, 그런 임금은 전륜성왕이 된다고 하더라’ 하였고, 또 생각하되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고, 왼손으로는 금륜 보배를 받들고 오른손으로는 향로를 들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서원을 세워 말하기를 ‘이 금륜 보배가 참으로 사실이라면, 지난 세상의 전륜성왕의 하던 도법(道法)과 같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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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하였더니, 그 금륜보배가 허공으로 날아 올라가서, 시방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돌아와서 정생왕의 왼손에 머물렀다. 이 때에 정생왕이 환희한 마음으로 수없이 뛰놀고, 다시 말하기를 ‘내가 지금 전륜성왕이 되었구나’ 하였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모양이 단정하기가 백련화와 같은 코끼리 보배가 일곱 가지[七支]로 땅을 디디고 있었다.
정생왕이 그것을 보고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예전에 5통 선인의 말을 들으니, 전륜왕이 보름날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를 받았을 적에, 코끼리 보배가 모양이 단정하기 백련화와 같은 것이 일곱 가지로 땅을 디디고 오면 그 임금은 전륜성왕이 된다더라’ 하였고, 다시 생각하되 ‘내가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였다. 그리고 향로를 받들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서원을 세우기를, ‘이 코끼리 보배가 참으로 사실이라면, 지난 세상의 전륜성왕이 행하던 도법(道法)과 같아지이다’ 하였더니, 그 코끼리 보배가 아침부터 저녁까지에 팔방을 두루 다니며 바닷가에까지 갔다가 본곳으로 돌아왔다. 이 때에 정생왕은 환희한 마음으로 한량없이 뛰놀고, 다시 말하기를 ‘내가 이제는 전륜성왕이 되었구나’ 하였더니, 그 뒤에 오래지 아니하여, 말 보배가 왔는데 색은 검붉고 갈기는 금빛이었다.
정생왕이 그것을 보고 다시 생각하기를 ‘예전에 5통 선인의 말을 들으니, 전륜성왕이 보름달 높은 누각에서 목욕하고 재를 받았을 적에, 말 보배가 색이 검붉고 갈기가 금빛 같은 것이 와서 응하면, 그 왕은 전륜성왕이 된다더라’ 하였고, 다시 생각하되 ‘내가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고, 향로를 받들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서원을 세우기를 ‘이 말 보배가 참으로 사실이라면, 지난 세상의 전륜성왕이 행하던 도법과 같아지이다’ 하였다. 그러자 그 말 보배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팔방을 두루 다니며 바닷가에까지 갔다가 본곳으로 돌아왔다. 이 때에 정생왕이 환희한 마음으로 한량없이 뛰놀고, 다시 말하기를 ‘내가 이제는 분명히 전륜성왕이 되었다’ 하더니, 그 뒤에 오래지 아니하여 여자 보배[女寶]가 있으니, 얼굴이 단정하고 아름답기가 제일이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며, 몸에 있는 털구멍마다 전단 향기가 나고, 입에서 나오는 기운은 향기롭고 깨끗하기가 청련화 같고, 눈은 한 유순까지 멀리 보고, 귀로 듣는 것, 코로 맡는 것도 그와 같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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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는 넓고 커서 얼굴을 덮을 수 있으며, 몸의 빛깔은 보드랍고 얇아서 붉은 구리 빛 같고, 정신은 총명하여 큰 지혜가 있으며, 중생들에게는 항상 부드러운 말을 하였고, 이 여인이 손으로 왕의 옷을 잡으면, 왕의 몸이 편안한지 병환이 있는지 알며,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데까지 알았다. 이 때에 정생왕은 다시 ‘만일 여인으로서 왕의 마음을 알면 곧 여자 보배다’ 하던 일을 생각하였고, 그 뒤에 오래지 아니하여 왕의 궁전 안에는 보배 마니주가 저절로 있었으니, 순전히 푸른 폐유리로 된 것이 수레의 속바퀴 같이 크고, 어두운 데서는 한 유순까지 비치며, 하늘에서 굴대 같은 비가 오더라도 이 마니주가 큰 우산이 되어 한 유순까지 덮어서 큰 비가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 때에 정생왕은 또 이렇게 생각하기를 ‘만일 왕으로서 마니주 보배를 얻으면 반드시 전륜성왕이다’ 하였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서 고방차지 대신[主藏臣]이 저절로 나왔으니, 재물이 많아져서 풍부하기가 한량없고, 고방에 가득 차서 넘치어 모자라는 일이 없으며, 과보로 얻은 눈이 땅 속에 있는 모든 보배를 사무쳐 보고, 왕의 생각하는 대로 모두 마련하여 내었다. 정생왕은 그를 시험하여 보려고 배를 함께 타고 큰 바다에 들어가서 고방차지 대신에게 묻기를, ‘나는 지금 신기한 보배를 얻고자 하노라’ 하였더니, 고방차지 대신이 듣고는 두 손으로 바닷물을 저으니 열 손가락 끝에서 열 개의 보배가 나와서 임금에게 받들며 여쭈기를 ‘대왕께서 필요하신 것을 마음대로 쓰십시오. 남은 것은 바다 속에 던지겠나이다’ 하였다. 이 때에 정생왕은 마음이 기뻐서 한량없이 뛰놀고, ‘나는 이제 결정코 전륜성왕이다’라고 생각하였다.
또 오래지 아니하여 군대차지 신하[主兵臣]가 자연히 나타나니, 용맹하고 지략이 많아 지모가 제일이며, 네 가지 군대를 잘 알아서, 싸움을 감당할 만한 이는 성왕에게 뵙게 하고, 싸움을 감당하지 못할 것은 물리치고 나타나지 못하게 하며, 아직 굴복하지 아니한 것은 굴복케 하고 이미 굴복한 것은 잘 지키고 보호하였다. 그 때에 전륜왕은 생각하기를 ‘만일 전륜왕으로서 이 군대차지 신하를 얻으면 결정코 전륜성왕이 되리라’고 하였다.
이 때에 정생 전륜왕이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자세히 생각하라. 이 염부제는 안락하고 풍족한데, 나는 지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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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寶)가 있고 1천 아들을 구족하였으니, 다시 무슨 일을 하면 좋겠는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대왕이시여, 동쪽의 불바제(弗婆提)가 아직 대왕의 덕화에 귀순하지 아니하였사오니, 대왕께서 가시는 것이 좋을까 하나이다.’
그 때에 전륜성왕이 7보와 모든 시종들을 거느리고 허공으로 날아서 동쪽의 불바제에 이르니, 그 지방의 백성들이 즐겁게 귀화하였다.
정생 전륜왕이 또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염부제와 불바제가 모두 풍족하고 안락하며 백성이 치성하여 모두 귀화하였으며, 7보를 성취하고 1천 아들을 구족하니,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대왕이시여, 서쪽의 구타니(瞿陁尼)가 아직 덕화에 귀순하지 않았나이다.’
전륜성왕이 다시 7보와 시종들을 일으켜 거느리고, 허공으로 날아서 서쪽의 구타니로 향하여 그곳에 도착하니, 그 지방의 백성들도 모두 귀순하여 복종하였다.
전륜왕이 또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우리의 염부제와 불바제와 구타니가 이미 안락하고 풍족하며 백성들이 치성하여 모두 귀화하였으며, 7보가 이루어졌고 1천 아들이 구족하였으니, 이제 또 무엇을 할 것인가?’
여러 신하들이 말하였다.
‘그러하나이다. 대왕이시여, 북쪽의 울단월(鬱單越)은 아직 귀화하지 않았나이다.’
전륜성왕이 다시 7보와 모든 시종들을 거느리고 허공으로 날아서 북쪽의 울단월로 향하여 그곳에 당도하니, 그 지방의 백성들도 환희하여 귀순하였다.
왕이 또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이제는 4천하가 모두 편안하고 풍족하여 백성들이 치성하고 덕화에 귀순하였는데, 지금 7보가 이루어졌고 1천 아들이 구족하였으니,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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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이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성왕이시여, 33천은 수명이 매우 길고 쾌락 태평하여, 저 하늘 사람들의 형상이 단정하고 사는 궁전이나 앉는 평상이나 이부자리들이 모두 7보로 되었으며, 천상의 복락을 믿고 와서 귀화하지 아니하오니, 이제 한번 가서 평정하여 항복받음이 좋을까 하나이다.’
그 때에 성왕이 다시 7보와 온갖 시종들을 거느리고 허공으로 날아 올라가 도리천에 이르니, 한 나무가 있는데 빛이 매우 푸르고 훌륭하였다. 성왕이 대신들에게 이것이 무슨 빛깔이냐고 물었다.
‘이것은 파리질다라(波利質多羅) 나무인데, 도리천에서는 여름 석 달에는 이 나무 아래서 즐기고 있나이다.’
또 흰 구름처럼 흰빛을 보고, 이것은 무슨 빛이냐고 대신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선법당(善法堂)이온데, 도리천 사람들은 그 속에 모여서 인간과 천상의 일을 의논하나이다.’
이 때에 도리천 임금 제석천왕이 정생왕이 온 줄을 알고, 친히 나와 맞으며 서로 처음 보는 인사를 하고는 손을 잡고 선법당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때에 두 임금이 얼굴이나 몸매는 평등하여 별로 차별이 없으나, 다만 눈을 깜박이는 것이 같지 아니하였다. 이 때에 성왕이 이런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저 왕을 퇴위시키고 여기 있어서 천왕이 되어볼까’ 하였다.
선남자야, 이 때에 제석천왕은 대승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열어 보이고 분별하여 다른 이에게 연설하였으나, 깊은 이치는 통달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고 분별하여 다른 이에게 연설한 인연의 힘으로, 큰 위덕이 있었다. 선남자야, 이 정생왕이 제석천왕에 대하여 나쁜 마음을 내고는, 문득 타락되어 염부제로 돌아오고, 사랑하던 천인과 이별하게 되어 큰 고통을 받았으며, 또 나쁜 병을 만나서 죽고 말았으니, 그 때의 제석이 곧 가섭불이었고, 전륜왕은 내 몸이었느니라. 선남자야, 이렇게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는 것은 대단한 고통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지난 세상에서 이렇게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던 고통도 기억하거늘, 하물며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에 머물러 있으면서, 지금 세상에서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는 고통을 관찰하지 아니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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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서 원망함과 미운 것과 모이는 고통을 관찰한다 하느냐. 선남자야, 이 보살마하살이 지옥·축생·아귀·인간·천상에 모두 이런 원망함과 미운 것과 모이는 고통이 있음을 관찰하나니, 마치 사람이 감옥에 갇히고 큰칼을 쓰고 족쇄에 채이고 고랑을 차는 것을 보고는 큰 고통을 삼는 것같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다섯 갈래[五道]에 태어나는 모든 것이 모두 미운 것과 모이는 고통인 줄로 관찰하느리라. 또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원수나 큰칼 쓰는 것, 족쇄 채는 것, 고랑 차는 것 따위를 무서워하여, 부모와 처자와 권속과 보배와 살림을 버리고 멀리 도피하는 것처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일이 무서워서 육바라밀을 구족하게 수행하여 열반에 들어가느니라. 가섭이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을 수행하면서 미운 것과 모이는 고통을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을 수행하면서 구하여 얻지 못하는 고통을 관찰한다 하느냐. 구한다 함은 모든 것을 다 구하는 것이며, 다 구한다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한 법을 구함이요, 다른 하나는 나쁜 법을 구하는 것이니라. 선한 법은 얻지 못함이 고통이요, 나쁜 법은 여의지 못함이 고통이니라. 이것이 5음으로 성하는 고통을 대강 말한 것이니, 가섭이여, 이것을 ‘고’라는 참된 이치라 하느니라.”
이 때에 가섭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하신 5음으로 성하는 고통[五盛陰苦]이 이치가 그렇지 않사오니, 왜냐 하면 부처님이 예전에 석마남(釋摩男)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색이 고통이라면 모든 중생이 색을 구하지 아니할 것이며, 구하는 이가 있다면 고통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하셨으며, 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 가지 받음[三種受]이 있으니 괴로운 받음, 즐거운 받음,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받음[不苦不樂受]이니라’ 하였으며, 또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사람이 선한 법을 닦으면 즐거움을 받는다’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좋은 갈래에서는 여섯 가지 촉(觸)으로 즐거움을 받나니, 눈으로 좋은 빛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요, 귀·코·혀·몸·뜻으로 좋은 법을 듣거나 생각함도 그와 같다’ 하셨나이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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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이런 게송을 말씀하였나이다.

계행을 가지는 것 즐거움이니
몸으로 모든 고통 받지 않으며
잠을 잘 때 편안을 얻게도 되고
깨고 나면 마음이 환희하나니.

의복이나 음식을 받았을 때와
경전 읽고 외우며 거닐 적에나
산림 속에 고요히 앉아 있는 것
이것이 가장 좋은 즐거움이니.

누구나 중생들을 대할 적마다
밤낮으로 자비심 항상 닦으면
이런 일로 즐거움 얻게 되리니
다른 이를 괴롭히지 않는 연고라.

욕심 없어 만족함을 알면 즐겁고
많이 듣고 분별함도 즐거움이며
고집함이 없어진 아라한들도
즐거움을 받는다 이름하나니.

시방세계 여러 보살마하살
필경에 열반 언덕 이르러 가서
여러 가지 할 일을 마치고 나면
그것을 가장 좋은 낙이라 하네.

세존이시여, 모든 경전에 말씀하신 즐거움이란 뜻이 이러하옵거늘, 부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어떻게 하면, 이 이치와 맞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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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그대는 여래에게 이 뜻을 잘 물었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이 하품(下品) 고통에서 즐거운 생각을 잘못 내는 것이므로, 지금 내가 말하는 고통의 모양이 본래 말한 것과 다르지 아니하니라.”
“부처님의 말씀하심과 같이, 하품 고통에서 즐거운 생각을 낸다 하오면, 하품(下品) 나는 것, 하품 늙는 것, 하품 병나는 것, 하품 죽는 것, 하품 사랑하는 것을 이별하는 것, 하품 구하여 얻지 못하는 것·하품 미운 것이 모이는 것, 하품 5음으로 성하는 것 따위의 고통에서도 즐거움이 있겠나이다. 세존이시여, 하품 나는 것은 3악도요, 중품 나는 것은 인간이요, 상품 나는 것은 천상일 것이오며, 또 어떤 사람이 묻기를 ‘만일 하품 즐거움에 괴로운 생각을 낸다면, 중품 즐거움에는 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은 생각을 낼 것이며, 상품 즐거움에는 즐거운 생각을 낼 것이겠나이다’ 하면, 어떻게 대답하겠나이까? 세존이시여, 하품 고통에서 즐거운 생각을 낸다면, 혹시라도 천번 벌을 받을 사람이, 천 번 벌을 받을 적에는 즐거운 생각을 내어야 할 것이오며, 만일 내지 않는다면 어찌 하품 고통 속에서 즐거운 생각을 낸다 하오리이까?”
“가섭이여, 그대의 말과 같으니라. 그런 뜻으로 즐거운 생각이 없으련만, 마치 그 사람이 마땅히 1천 벌을 받을 것이로되, 첫째 한 번을 받고 면할 수 있다면, 그 때에는 그 사람이 즐거운 생각을 내나니, 그러므로 즐거움이 없는 데서 허망하게 즐거움을 내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한 번 벌을 받으므로 즐거운 생각을 내는 것이 아니옵고, 면할 수 있으므로 즐거운 생각을 내는 것입니다.”
“가섭이여, 그러므로 내가 예전에 석마남에게 ‘5음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고 말한 것이 헛된 것이 아니니라. 가섭이여, 세 가지 받음과 세 가지 괴로움이 있으니, 세 가지 받음이라 함은 즐거운 받음·괴로운 받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받음이요, 세 가지 괴로움이라 함은 괴로운데 괴로움과, 변천하는 괴로움과, 파괴되는 괴로움이니라. 선남자야, 괴로운 받음이라 함은 세 가지 괴로움이니, 괴로운데 괴로움과 변천하는 괴로움과 파괴되는 괴로움이요 다른 두 가지 받음은 변천하는 괴로움과 파괴되는 괴로움이니라. 선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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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인연으로 나고 죽는 속에 실로 즐거운 받음이 있거니와, 보살마하살은 괴로움과 즐거움의 성품이 서로 여의지 아니하므로, 모든 것이 모두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나고 죽는 속에는 진실로 즐거움이 없건만, 부처님과 보살들이 세상을 따르느라고 즐거움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과 보살들이 만일 세상을 따르느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허망한 것입니까? 부처님 말씀대로 선한 것을 수행하는 이는 즐거운 과보를 받고 계행을 가지면 편안하여 몸에 괴로움을 받지 아니하고, 내지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그것이 가장 좋은 낙이라면 그런 경전에 말한 즐거운 받음이란 허망한 말일 것이며, 만일 허망하다면, 부처님 세존께서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기겁 동안 보리도를 닦아서 허망한 말을 여의었거늘 지금 이렇게 말씀함은 무슨 뜻입니까?”
“선남자야, 위에 말한 즐거움을 받는다는 게송은 곧 보리도의 근본이며,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기르는 것이니, 그런 이치로 먼저의 경전에 즐거운 모양이라고 말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세간에서 필요한 살림거리가 즐거움의 원이 되므로 즐거움이라 이름하나니, 이른바 여색을 즐기는 것, 술을 마시는 것, 훌륭한 음식, 맛있는 음식, 목마를 적에 물을 만나는 것, 추울 적에 불을 만나는 것, 의복·영락·코끼리·말·수레·노복·하인·금·은·폐유리·산호·진주·창고·곡식 따위가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어서, 즐거움의 원인이 되므로 즐겁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이런 것들도 괴로움을 내나니, 여인으로 인하여 남자가 괴로움을 내어 근심하고 걱정하고 울고 내지 목숨을 끊으며, 맛있는 술이나 내지 창고와 곡식을 인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걱정을 내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온갖 것이 모두 괴로움이요, 즐거운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 8고(苦)에 대하여 괴로움에 괴로움이 없는 줄을 알거니와 선남자야, 모든 성문과 벽지불들은 즐거움의 원인인 줄을 알지 못하므로,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하품(下品) 고통 속에 즐거움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오직 보살만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이와 같이 괴로움의 원인과 즐거움의 원인을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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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12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19. 거룩한 행 ②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집의 참된 이치[集諦]를 관찰한다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 집의 참된 이치가 음(陰)의 인연이라고 관찰하나니, 집(集)이라 함은 도리어 유(有)를 사랑하는 것[受]이니라. 사랑에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자기의 몸을 사랑함이요, 다른 하나는 소용 있는 것을 사랑함이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5욕락을 얻지 못하였을 적에는 마음을 두어 오로지 구함이요, 얻고 나서는 견디어 가면서 오로지 집착함이니라.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욕계의 사랑·색계의 사랑·무색계의 사랑이니라.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업의 인연으로 사랑함과 번뇌의 인연으로 사랑함과 고의 인연으로 사랑함이니라. 출가한 사람에게는 네 가지 사랑이 있으니, 넷이라 함은 의복과 음식과 좌복과 탕약이니라. 또 다섯 가지가 있으니, 5음을 탐하는 것이니라. 소용되는 것을 따라 온갖 것을 애착함을 분별하여 헤아리면 한량이 없고 끝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사랑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한 사랑이요, 다른 하나는 선하지 못한 사랑이니라. 선하지 못한 사랑은 어리석은 범부가 구하는 것이요, 선한 사랑은 보살이 구하는 것이니라. 선한 법을 사랑하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선하지 못한 것과 선한 것이니라. 2승을 구함은 선하지 못함이라 하고, 대승을 구함은 선함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범부의 사랑은 집이라 이름하고 참된 이치라 이름하지 아니하며, 보살의 사랑은 참된 이치라 이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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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집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태어나는 것이요, 사랑을 위하여 태어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른 경전에서는, 중생들에게 업이 인연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혹 교만을 말하고 혹 6촉(觸)을 말하고 혹 무명을 말하여 5음의 인연이 된다고 말씀하시더니, 지금에 무슨 뜻으로 4성제(聖諦)를 말씀하시면서, 사랑의 성품만이 5음의 인연이 된다고 말씀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찬탄하시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그대 말대로 모든 인연이 인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5음은 반드시 사랑을 인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임금이 나가 다니려면 대신과 권속이 모두 따라다니듯이 사랑도 그와 같아서, 사랑이 가는 곳에는 모든 번뇌들이 따라다니느니라. 마치 끈끈한 옷에는 티끌이 와서 닿는 대로 붙나니, 사랑도 그와 같아서 사랑하는 곳을 따라서 업과 번뇌도 머무느니라. 또 선남자야, 축축한 땅에는 모든 싹이 잘 나는 것처럼, 사랑도 그러하여 모든 업과 번뇌의 싹을 내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사랑을 깊이 관찰하는 데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빚을 갚는 데 나머지가 있는 것 같고, 둘째는 나찰의 딸로 아내를 삼은 것 같고, 셋째는 아름다운 꽃 가지에 독사가 감긴 것 같고, 넷째는 식성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먹는 것 같고, 다섯째는 음란한 여자와 같고, 여섯째는 마루가(摩樓迦)의 씨와 같고, 일곱째는 부스럼 속에 군살[瘜]과 같고, 여덟째는 푹풍과 같고, 아홉째는 살별과 같으니라.
어찌하여 빚을 갚는 데 나머지가 있는 것 같다 하느냐. 선남자야, 어떤 가난한 사람이 남에게 빚을 졌을 적에, 아무리 갚으려 하였어도 남은 빚이 있으므로 옥에 갇히어 있으면서 풀려나지 못하는 것처럼 성문이나 연각도 그와 같이 사랑의 남은 버릇[習氣]이 있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하나니,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빚을 갚는 데 나머지가 있는 것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나찰의 딸로 아내를 삼은 것 같다 하느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나찰의 딸을 데려다가 아내를 삼았더니, 그 나찰의 딸이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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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는 대로 잡아먹고, 아이를 모두 잡아먹고는 또 남편까지 잡아먹었느니라. 선남자야, 사랑이란 나찰의 딸처럼, 중생들이 선근의 아이를 낳으면 낳는 대로 잡아먹고, 선근의 아이가 끝나면 또 중생까지 잡아먹어서, 지옥·축생·아귀에 떨어지게 하거니와 보살은 제외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나찰의 딸로 아내를 삼은 것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아름다운 꽃 가지에 독사가 감긴 것 같다 하느냐.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사랑하는 성질이 있는데, 꽃 가지에 독사가 있는 것을 보지 않고 나아가서 꽃을 잡았더니, 잡는 동시에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 모든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5욕락의 꽃을 탐내어 애욕의 독사가 걱정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문득 취하면 애욕의 독사에게 물리고는 죽어서 3악도에 떨어지거니와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아름다운 꽃 가지에 독사가 감긴 것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식성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는 것이라 하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식성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고는 복통이 생기고 설사가 나서 죽는 것이니, 사랑이란 음식도 그와 같아서 다섯 갈래 중생들이 탐하는 욕심으로 억지로 먹고는 그 인연으로 3악도에 떨어지거니와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식성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음란한 여자와 같다 하는가.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음란한 여자와 정을 통하면, 그 여자는 가지각색 아리따운 태도를 부리며 친절한 모양을 나타내어, 이 사람의 가진 재산을 몽땅 빼앗고, 재산이 없어지면 마침내 쫓아내나니, 사랑이란 음녀도 그와 같아서 지혜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 사귀어 통하면, 사랑이란 음녀는 그 사람의 가진 모든 선한 법을 몽땅 빼앗고, 선한 법이 없어지면 쫓아내어 3악도에 떨어지게 하거니와,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음란한 여자와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마루가(摩樓迦) 씨와 같다 하는가. 마치 마루가 씨를 새가 먹으면 똥에 섞이어 땅에 떨어지거나 바람에 불리어 나무 밑에 떨어지게 되면 문득 싹이 트고 자라서 니구라나무에 감기고 얽히어,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말라 죽게 하나니, 사랑이란 마루가 씨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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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있는 선한 법을 얽어서 자라지 못하고 말라 없어지게 하며, 말라 없어지고는 죽어서 3악도에 떨어지게 하거니와,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루가 씨와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부스럼 속에 있는 군살[瘜]과 같다 하는가. 마치 사람이 부스럼이 오래되어 군살이 박히면, 그 사람이 부지런히 다스리고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거니와, 만일 내버려 두면 군살이 점점 커져 벌레가 생기고 창질이 되어, 그 인연으로 필경엔 죽게 되느니라. 어리석은 범부의 5음 부스럼도 그와 같아서, 사랑이 그 속에서 군살이 되거든 마땅히 부지런히 사랑의 군살을 다스려야 하나니, 만일 다스리지 아니하면, 죽어서 3악도에 떨어지거니와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부스럼 속의 군살과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폭풍과 같다 하는가. 거센 폭풍은 산을 흔들고 천지를 진동하며 깊이 박힌 뿌리를 뽑나니, 애욕의 폭풍도 그와 같아서 부모에게도 나쁜 마음을 내며, 지혜 많은 사리불 등의 깊이 박힌 보리의 뿌리를 뽑거니와 보살은 제외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폭풍과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살별과 같다 하는가. 마치 살별이 나타나면 천하의 모든 백성들이 흉년과 병에 쪼들리며 모든 고통에 얽히나니, 사랑이란 살별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선근의 종자를 끊어 버리며, 범부들로 하여금 곤궁한 흉년을 만나고 번뇌란 병에 얽히어, 나고 죽는 데서 헤매면서 온갖 고통을 받게 하거니와 보살만은 제외하나니, 이것을 살별과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이러한 아홉 가지 사랑의 결박을 관찰하느니라. 선남자야, 이런 이치로 범부들은 괴로움만 있고 참된 이치는 없으며, 성문이나 연각은 괴로움도 있고 참된 이치도 있으나 진실한 것은 없으며, 보살들은 괴로움에서 괴로움이 없음을 아나니, 그러므로 괴로움은 없고 진실한 참된 이치가 있다 하느니라. 범부들은 집(集)만 있고 참된 이치는 없으며, 성문이나 연각은 집도 있고 참된 이치도 있으며, 보살들은 집에서 집이 없음을 아나니, 그러므로 집은 없고 진실한 참된 이치가 있다는 것이며, 성문이나 연각은 멸이 있으나 진실한 것이 아니며, 보살마하살은 멸도 있고 진실한 참된 이치도 있다는 것이며, 성문이나 연각은 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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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진실하지 않거니와, 보살마하살은 도도 있고 진실한 참된 이치도 있다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멸도 보고 멸의 참된 이치도 본다 하는가. 이것은 온갖 번뇌를 끊어 버리는 것이요, 만일 번뇌가 끊어지면 항상하다 하고, 번뇌의 불을 멸하면 적멸이라 하고 번뇌가 없어지므로 즐거움을 받게 되고, 부처님과 보살은 인연을 구하므로 깨끗하다는 것이고, 다시 25유(有)를 받지 아니하므로 세상을 뛰어났다 하며, 세상을 뛰어났으므로 나라고 이름하며, 빛이나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부딪힘이나, 남자·여자나 나고 머물고 없어짐이나 괴로움이나 즐거움이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아니함에 모양새를 취하지 아니하므로 끝까지 적멸한 참된 이치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렇게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멸의 참된 이치를 관찰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도라는 성인의 참된 이치를 관찰한다 하는가. 선남자야, 마치 어두운 가운데서는 등불로 인하여 크고 작은 물건을 보게 되나니,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8성도를 인하여 온갖 법을 보나니, 항상한 것과 무상한 것과 함이 있는 것, 함이 없는 것과, 중생과 중생 아닌 것과 물건과 물건 아님과 괴로움과 즐거움과 나와 내가 없음과 깨끗함과 깨끗하지 않음과 번뇌와 번뇌 아닌 것과 업과 업 아님과 진실함과 진실하지 않음과, 승(乘)과 승 아님과 알음알이와 알음알이 없음과 다라표(陀羅驃)와 다라표 아님과 구나(求那)와 구나 아님과 견(見)과 견 아님과 색과 색 아님과 도와 도 아님과 풀림과 풀리지 아니함이니, 보살이 이와 같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도라는 성인의 참된 이치를 관찰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8성도(聖道)가 도라는 성인의 참된 이치[道聖諦]라면, 뜻이 서로 응하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 혹은 믿는 마음을 도라고 말씀하셨으니, 모든 번뇌를 제도하는 까닭이며, 혹은 방일하지 않는 것이 도라고 말씀하셨으니, 모든 부처님이 방일하지 아니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역시 보살의 도를 돕는 법인 까닭이며, 어떤 때에는 정진함이 도라고 말씀하셨으니,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부지런히 정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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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고 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몸의 염처[身念處]를 관찰함이 도라고 말씀하셨으니, 마음을 두어 몸의 염처를 부지런히 닦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바른 정[正定]이 도라고 말씀하셨으니, 마하가섭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른 정이 참으로 도이고, 바르지 아니한 정은 도라고 하지 아니하나니, 바른 정에 들면 5음의 나고 없어짐을 생각할 수 있거니와, 바른 정에 들지 아니하고는 생각할 수 없느니라’ 하였으며, 혹은 한 법이라 말씀하시되 ‘만일 사람이 닦아 익히면 중생들을 청정케 하고, 모든 근심과 시끄러움을 멸하고 바른 법을 얻게 되리니, 곧 염불삼매니라’ 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무상한 생각을 닦음이 도라고 하셨으니, 비구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무상한 생각을 많이 닦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하였으며, 혹은 ‘고요한 절간 같은 데 홀로 앉아 곰곰히 생각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이루리라’고 말씀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사람에게 법문을 연설함이 도라고 말씀하시면서 ‘법문을 들으면 의심이 끊어지고 의심이 끊어지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말씀하였나이다.
어떤 때에는 계행을 가지는 것이 도라고 말씀하셨으니,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계율을 부지런히 닦아 지니면 그 사람이 나고 죽는 고통에서 제도되리라’ 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선지식을 친근함이 도라고 말씀하셨으니,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선지식을 친근하는 이는 깨끗한 계율에 안정된 것이며, 어떤 중생이나 나에게 친근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되리라’ 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말씀하시기를 ‘자비를 닦는 것이 도이니 자비를 닦는 이는 번뇌를 끊고 흔들리지 않는 곳을 얻으리라’ 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지혜가 도라고 말씀하셨으니, 예전에 부처님이 파사파제(波闍波提) 비구니에게 이르시기를 ‘그대는 성문들처럼, 지혜의 칼로 모든 종류의 번뇌를 끊으라’ 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보시가 도라고 말씀하셨으니 부처님이 예전에 바사닉 왕에게 이르시기를 ‘대왕은 이런 줄을 아십시오. 내가 지나간 옛적에 보시를 많이 행한 인연으로 오늘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노라’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8성도가 도의 참된 이치라 하오면, 이런 경전은 허망함이 아니겠나이까. 만일 저 경전들이 허망함이 아닐진댄, 저 경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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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무슨 인연으로 여덟 가지 도라는 성인의 참된 이치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저 경전에서 말씀하지 아니하셨다면 여래께서 그 때에는 어찌하여 잘못하시었나이까? 그러나 저는 결정코 부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잘못을 여의신 줄을 아나이다.”
그 때에 세존이 가섭보살을 찬탄하여 말씀하시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그대는 지금 보살 대승의 미묘한 경전에 있는 비밀을 알고자 하여 이렇게 묻는 것이로다. 선남자야, 그러한 모든 경전이 모두 도라는 참된 이치에 들어갔느니라. 선남자야, 내가 먼저 말한 것처럼 믿는 이가 있으면, 그렇게 믿는 것이 신심의 근본이며 보리의 도를 돕는 것이니, 그러므로 나의 말한 것이 잘못됨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한량없는 방편을 잘 알고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이렇게 가지가지로 법을 말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훌륭한 의원이 중생들의 가지각색 병의 원인을 알고, 그 병환을 따라 약을 지으며 금기할 것을 잘 알거니와, 물은 금기하는 데 들지 아니하였으니, 혹 생강 물·감초 물·세신(細辛) 물·흑설탕 물·아마륵 물·니바라(尼婆羅) 물·발주라(鉢晝羅) 물을 먹기도 하고, 혹 찬물·더운 물·포도 물·안석류(安石榴) 물을 먹기도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와 같이 훌륭한 의원이 중생들의 병환을 잘 알며 가지각색 약에 금기가 많지만 물은 금기에 들지 않는 것처럼, 여래도 그러하여 방편을 잘 알고서 한 가지 법에서도 중생을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과 모양을 분별하여 말하거든, 저 중생들이 말하는 대로 받아 지니고, 받고는 닦아 익히면 번뇌를 끊게 되나니, 마치 병난 사람이 의원의 가르침을 따르면, 병환이 낫는 것 같으니라.
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말을 잘 알면서 대중 가운데 있었더니, 그 대중이 갈증을 견디지 못하여 외쳐 말하기를 ‘나 물 좀 주시오. 나 물 좀 주시오’ 하거든 이 사람이 냉수를 가지고 그 종류를 따라서 ‘물’이라고 하고, 혹은 ‘파니(波尼)’ 혹은 ‘울특(鬱特)’이라 혹은 ‘사리람(사利藍)’이라 혹은 ‘바리’라 혹은 ‘바야(婆耶)’라 혹은 ‘감로’라 혹은 ‘우유’라 하여, 한량없는 물의 이름으로 대중에게 말하는 것처럼, 선남자야, 여래도 그와 같아서, 한 가지 성인의 도로써 여러 성문을 위하여 ‘믿는 근본[信根本]’으로부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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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8성도까지 여러 가지로 말하였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금장이가 한 가지 금으로써 여러 가지 영락을 마음대로 만드나니, 목걸이·금사슬·가락지·팔찌·비녀·귀고리·천관(天冠)·비인(臂印) 따위로서, 여러 가지가 다르지만 모두 금이 아닌 것은 아니니, 선남자야, 여래도 그와 같아서 한 가지 부처님의 도이지만 중생들을 따라서 가지가지로 분별하여 말할 적에 혹 한 가지로 말하니, 부처님들은 한 가지 도요 둘이 없다 하며, 혹 두 가지로 말하니 선정과 지혜며, 세 가지로 말하니 소견과 지혜와 슬기며, 네 가지로 말하니 견도(見道)·수도(修道)·무학도(無學道)·불도(佛道)며, 다섯 가지로 말하니 믿고 행하는 도[信行道]·법대로 행하는 도[法行道]·믿고 해탈하는 도[信解脫道]·보고 이르는 도[見到道], 몸으로 증하는 도[身證道]며, 여섯 가지로 말하니 수다원도·사다함도·아나함도·아라한도·벽지불도·불도며, 일곱 가지로 말하니 염각분(念覺分)·택법(擇法)각분·정진(精進)각분·희(喜)각분·제(除)각분·정(定)각분·사(捨)각분이며, 여덟 가지로 말하니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이며, 아홉 가지로 말하니 여덟 성인의 도와 믿음이며, 열 가지로 말하니 10력(力)이며, 열한 가지로 말하니 10력과 대자(大慈)며, 열두 가지로 말하니 10력과 대자와 대비며, 열세 가지로 말하니 10력과 대자와 대비와 염불삼매며, 열여섯 가지로 말하니 10력과 대자와 대비와 염불삼매와 부처님이 얻으신 3정념처(正念處)며, 또 스무 가지로 말하니 10력과 4무소외(無所畏)와 대자와 대비와 염불삼매와 3정념처니라. 선남자야, 도는 하나이지만 여래가 예전에 중생들을 위하여 가지가지로 분별하였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불은 하나이지만 타는 것을 말미암아 가지가지 일음이 있어 장작불·짚불·겻불·밀기울불·소똥불·말똥불 하는 것같이, 선남자야, 불도도 그러하여 하나요 둘이 없건만 중생을 위하므로 가지가지로 분별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한 가지 식(識)을 여섯 가지로 분별하여, 눈에서는 안식이라 하고, 내지 뜻에서는 의식이라 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도란 것도 그와 같아서 하나요 둘이 없건만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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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지로 분별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한 가지 색(色)이지만, 눈으로 보는 것은 빛이라 하고 귀로 듣는 것은 소리라 하고, 코로 맡는 것은 냄새라 하고 혀로 맛보는 것은 맛이라 하고, 몸으로 깨닫는 것은 촉이라 하는 것처럼 선남자야, 도도 그와 같아서 하나요, 둘이 아니건만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느라고 가지가지로 분별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8성도를 이름하여, 도라는 성인의 참된 이치[道聖諦]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 4성제를 부처님 세존이 차례로 말씀하였으니, 이런 인연으로 한량없는 중생이 나고 죽는 데서 제도되었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부처님께서 어느 때에 항하의 언덕 시수림(尸首林) 속에 계실 때에 작은 나뭇잎을 드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손에 잡은 잎이 많으냐, 모든 땅에 있는 풀과 나무의 잎이 많겠느냐’ 하시니, 비구들이 ‘세존이시여, 모든 땅에 있는 풀과 나뭇잎은 많아서 헤아릴 수 없사오나, 여래의 잡으신 잎은 적어서 말할 나위도 없나이다’ 하였으며, 여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이여, 내가 깨달은 모든 법은 땅에 난 초목의 잎과 같고, 내가 중생을 위하여 말한 법은 손에 잡은 잎과 같으니라’ 하였나이다. 세존께서 그 때에 이렇게 말씀하였사온데, 여래의 깨달으신 한량없는 법이 만일 4제(諦)에 들었사오면 이미 말씀하신 것이요, 만일 들지 아니하였으면 5제(諦)가 있겠나이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야, 그대가 지금 물은 것은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케 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하리라. 선남자야, 이러한 모든 법은 모두 4성제 안에 들었느니라.”
“그러한 법이 4제 안에 들어 있다면, 여래께서 어찌하여 말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선남자야, 비록 그 안에 들었지만 말하였다고 이름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4성제를 아는 데 두 가지 지혜가 있으니, 하나는 중품 지혜요, 다른 하나는 상품 지혜니라. 중품은 성문·연각의 지혜요, 상품은 부처님과 보살의 지혜니라. 선남자야, 모든 음(陰)이 고통인 줄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모든 음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모양이 있는 것이 모두 고통인 것은 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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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모든 입(入)이란 것을 문(門)이라 하고 고통이라 하는 줄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모든 입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모양이 있는 것이 모두 고통인 것은 성문·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모든 계(界)란 것을 분(分)이라 하고 성품이라 하고 고통이라 하는 줄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모든 계를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모양이 있는 것이 모두 고통인 것은 성문·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색(色)이 파괴되는 모양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모든 색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모양이 있는 것이 모두 고통인 것은 성문·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수(受)로 깨닫는 모양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모든 수를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깨닫는 모양이 있는 것은 성문·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상(想)으로 취하는 모양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이 생각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취하는 모양이 있는 것은 성문·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행음[行]으로 짓는 모양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행음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짓는 모양이 있는 것은 성문·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식음[識]으로 분별하는 모양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식음을 분별하는 데 한량없는 아는 모양이 있는 것은 성문·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선남자야,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사랑의 인연으로 5음을 내는 줄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한 사람의 사랑을 일으킴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줄은 성문·연각으로는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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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는 것이니, 온갖 중생이 일으키는 이러한 사랑을 아는 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번뇌를 멸함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번뇌를 분별함을 헤아릴 수 없고 멸함도 그와 같아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성문·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도라는 모양이 번뇌를 여의는 줄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도라는 모양을 분별함이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여의는 번뇌도 한량없고 그지없는 것은 성문·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세제(世諦)를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세제를 분별함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성문·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온갖 행(行)이 무상하고, 모든 법이 내가 없고, 열반이 고요한 것이 제일의(第一義)인 줄을 아는 것은 중품 지혜라 하고, 제일의가 한량없고 끝이 없어 헤아릴 수 없는 줄을 아는 것은 성문·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 이것은 상품 지혜라 하거니와, 이러한 뜻은 내가 저 경전에서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 때에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시는 세제와 제일의제의 뜻이 어떠하나이까? 세존이시여, 제일의제 가운데 세제가 있나이까? 세제 가운데 제일의제가 있나이까? 만일 있다면 한 제[一諦]일 것이옵고, 없다면 여래의 허망한 말씀이 아니겠나이까?”
“선남자야, 세제란 것이 곧 제일의제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두 제가 아니겠나이다.”
“선남자야, 좋은 방편[善方便]이 있어서, 중생들을 따라서 두 제가 있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말만을 따른다면 두 가지가 있나니, 하나는 세간법이요 둘은 출세간 법이니라. 선남자야, 출세간 사람의 알 것은 제일의제라 하고, 세간 사람의 알 것은 세제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5음(陰)이 화합한 것을 아무라 하거든, 범부 중생이 그 일컫는 대로 따르는 것은 세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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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5음에도 아무라는 이름이 없고, 5음을 여의고도 아무라는 이름이 없음을 알지니, 출세간 한 사람이 그 성품과 모양과 같이 아는 것은 제일의제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혹 어떤 법은 이름도 있고 실상도 있으며, 혹 어떤 법은 이름은 있으나 실상이 없나니, 선남자야, 이름은 있으나 실상이 없는 것은 곧 세제요, 이름도 있고 실상도 있는 것은 제일의제니라. 선남자야, 나·중생·수명, 알고 보는 것, 기르는 것, 장부(丈夫), 짓는 이, 받는 이, 더울 때의 아지랑이, 건달바 성, 거북의 털, 토끼의 뿔, 불 바퀴, 5음, 18계, 6입 등은 세제라 이름하고, 고·집·멸·도는 제일의제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세간법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명사(名詞) 세간이요, 둘째는 구절(句節) 세간이요, 셋째는 속박(束縛) 세간이요, 넷째는 법 세간이요, 다섯째는 집착(執着) 세간이니라. 명사 세간이란 남자·여자·옹기·옷·수레·집 등의 물건을 명사 세간이라 하느니라. 또 구절 세간이란, 네 글귀가 한 게송이라 하는 따위의 게송을 구절 세간이라 하느니라. 또 속박 세간이란, 걷어 합하는 것, 얽어매는 것, 속박·합장 따위를 속박 세간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법 세간인가. 종을 쳐서 대중을 모으며, 북을 울려 군대를 준비 시키며, 소라를 불어 시간을 알리는 것 따위를 법 세간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집착 세간이라 하는가. 물든 옷 입은 사람이 멀리 있는 것을 보고는, 저는 사문이요 바라문이 아니라 생각하고, 노끈을 맺어서 몸에 가로 찬 사람을 보고는, 저는 바라문이요 사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따위는 집착 세간이니라. 선남자야, 이런 것을 다섯 가지 세간법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이런 다섯 가지 세간법에 대하여 잘못된 마음이 없어, 사실대로 아는 것은 제일의제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타거나 베거나 죽거나 파괴함은 세제라 하고, 타는 일이 없고 베어지지 않고 죽는 일이 없고 파괴됨이 없는 것은 제일의제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여덟 가지 괴로운 모양은 세제라 하고, 나는 일도 없고, 늙음도 없고, 병도 없고, 죽음도 없고, 사랑을 이별함도 없고, 미운 이를 만남도 없고, 구하여 얻지 못함도 없고, 5음이 성함도 없음은 제일의제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한 사람이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서, 뛸 때에는 뛰는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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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거둘 때에는 거두는 이라 하고, 음식을 장만할 때에는 식모라 하고, 재목을 다룰 때에는 목수라 하고, 금·은을 다룰 때에는 은장이라 하듯이,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 것같이, 법도 그러하여 실상은 하나이지만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 것이니, 부모의 화합으로 인하여 나는 것은 세제라 하고, 12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은 제일의제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진실한 이치[實諦]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뜻이 어떠하나이까?”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 함은 이름이 참된 법이니, 선남자야, 법이 참되지 않으면 진실한 이치라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 함은 뒤바뀜이 없음이니, 뒤바뀜이 없는 것을 진실한 이치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 함은 허망이 없는 것이니, 허망이 있으면 진실한 이치라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 함은 이름이 대승이니, 대승이 아니면 진실한 이치라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 함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마군의 말이 아니니, 만일 마군의 말이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은 진실한 이치라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진실한 이치라 함은 한 가지 도가 청정하고 둘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항상하고 즐겁고 내가 있고 깨끗한 것을 진실한 이치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참된 것으로 진실한 이치라 할진댄 참된 법은 여래와 허공과 불성이온데, 만일 그렇다면 여래와 허공과 불성이 차별이 없겠나이다.”
“문수사리여, 괴로움[苦]이 있고 이치가 있어 진실이 있으며 집(集)이 있고 이치가 있어 진실이 있으며, 열반[滅]이 있고 이치가 있어 진실이 있으며, 도[道]가 있고 이치가 있어 진실이 있거니와, 선남자야, 여래는 괴로움이 아니고 이치도 아니어서 진실한 것이며, 허공은 괴로움이 아니고 이치도 아니어서 진실한 것이며, 불성은 괴로움이 아니고 이치도 아니어서 진실한 것이니라. 문수사리여, 괴로움이라 말함은 무상한 모습이며 끊을 모습이어서 진실한 이치가 되는 것이고, 여래의 성품은 괴로움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고 끊을 모습도 아니므로 진실이 되는 것이니, 허공과 불성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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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집이라 말함은 5음으로 하여금 화합하여 생기게 하는 것이매, 괴로움이라고도 하고 무상이라고도 하고 끊을 모습이라고도 하여서, 진실한 이치가 되거니와, 선남자야, 여래는 집의 성품도 아니고 음(陰)의 원인도 아니고 끊을 모습도 아니므로 진실이라 하나니, 허공과 불성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열반이라 말함은 번뇌가 없어짐을 이름하는 것으로, 항상하다고도 하고 무상하다고도 하나니, 2승들이 얻는 것은 무상이라 하거니와 부처님이 얻는 것은 항상하다고 하며 증득한 법이라고도 하므로, 진실한 이치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여래의 성품은 열반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나 번뇌를 없애며 항상함도 무상도 아니며, 증득하여 안다고도 이름하지 아니하며, 항상 머물러서 변함이 없으므로 진실이라 하나니, 허공과 불성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도라고 말함은 능히 번뇌를 끊으며,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며, 닦아야 할 법이므로 진실한 이치라 하거니와, 여래는 도가 아니로되 번뇌를 끊으며 항상함도 무상도 아니며, 닦아야 할 법도 아니며,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아니하므로 진실이라 하나니, 허공과 불성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또 선남자야, 진실이라 말함은 곧 여래요 여래는 곧 진실이며, 진실이라 함은 곧 허공이요 허공은 곧 진실이며, 진실이라 함은 곧 불성이요 불성은 곧 진실이니라. 문수사리여,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의 원인이 있고 괴로움의 다함도 있고 괴로움을 상대함도 있거니와, 여래는 괴로움이 아니며 내지 괴로움을 상대함도 아니니라. 그러므로 진실이라 말하고 이치라 말하지 아니하나니, 허공과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괴로움이란 것은 함이 있고 번뇌가 있을 즐거움이 없거니와, 여래는 함이 있음이 아니고 번뇌가 아니고 고요하여 안락하므로 진실이요 이치는 아니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뒤바뀌지 아니한 것을 진실한 이치라 이름한다 하오니, 그렇다면 네 가지 이치 가운데 네 가지 뒤바뀜이 있나이까? 만일 있을진댄 어찌하여 뒤바뀜이 없는 것을 진실한 이치라 이름하고 온갖 뒤바뀜이 있는 것은 진실이라 이름하지 않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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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여, 모든 뒤바뀐 것은 모두 괴로운 이치에 들어가나니, 모든 중생에게 뒤바뀐 마음이 있으므로, 뒤바뀌었다고 이름함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부모와 존장의 가르침을 받지 않거나, 받고도 수행하지 아니하면 이런 사람들을 뒤바뀌었다 하나니, 이렇게 뒤바뀐 것이 괴로움 아님이 없으므로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부처님의 말씀하신 것이 허망하지 않사오면 곧 진실한 이치일 것이옵고, 만일 그렇다면 허망한 것은 진실한 이치가 아니겠나이다.”
“선남자야, 온갖 허망한 것은 모두 괴로운 이치에 들어가나니, 어떤 중생이 남을 속이면, 그 인연으로 지옥·축생·아귀에 떨어지며, 이런 법들을 허망이라 이름하나니, 이러한 허망은 고통 아님이 없으므로 괴로움이며, 성문·연각이나 부처님 세존은 멀리 여의고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므로 허망이라 이름하나니, 이러한 허망을 부처님이나 2승은 끊어 버리는 것이므로, 진실한 이치라 이름하느니라.”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부처님 말씀과 같이 대승이 진실한 이치라면, 성문이나 벽지불승은 진실치 못함이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문수사리여, 2승들은 진실하기도 하고, 진실하지 않기도 하니, 성문·연각이 모든 번뇌를 끊은 것은 진실이라 이름하고, 무상하고 머물러 있지 아니함은 변역하는 법이므로 진실하지 않다고 이름하느니라.”
“부처님의 말씀과 같사오니, 부처님의 말씀을 진실하다 할진댄 마군의 말은 진실한 것이 아니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마군이 말한 것이 성인의 이치에 들겠나이까?”
“문수사리여, 마군이 말한 것은 두 가지 이치에 소속하나니, 괴로움과 집이니라. 무릇 이런 것은 법도 아니고 계율도 아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지 못하며, 종일토록 말하여도 한 사람도 괴로움을 보고 집을 끊으며, 열반을 증득하려고 도를 닦는 이가 없으므로, 허망하다 하는 것이며, 이렇게 허망한 것을 마군의 말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가지 도가 청정하고 둘이 없다 하였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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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들도 말하기를 ‘내게 있는 한 가지 도는 청정하고 둘이 없다’ 하나니, 만일 한 가지 도가 진실한 이치라면, 저 외도들과 더불어 무슨 차별이 있나이까? 만일 차별이 없다면, 한 가지 도가 청정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남자야, 모든 외도는 괴로움이란 참된 이치와 집이란 참된 이치만 있고, 열반이란 참된 이치와 도라는 참된 이치는 없느니라. 열반이 아닌데 열반이라 생각하고, 도가 아닌 것을 도라 생각하고, 과(果)가 아닌 것을 과라 생각하고, 인(因)이 아닌 것을 인이라 생각하나니, 이러한 뜻으로 저들에게는 ‘한 가지 도가 청정하고 둘이 없다’는 것이 없느니라.”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항상하고 내가 있고 즐겁고 깨끗한 것을 진실한 이치라 한다’ 하오면, 모든 외도에게 진실한 이치가 있고, 부처님 법에는 없겠나이다. 왜냐 하면 외도들도 말하기를 ‘모든 행(行)이 항상한 것이다. 어찌하여 항상하다 하는가. 뜻에 맞든지 뜻에 맞지 않든지 간에, 모든 업보를 잃어버리지 않고 받는 연고니라’ 하나이다. 뜻에 맞는 것은 10선업의 과보요 뜻에 맞지 않는 것은 10업의 과보니, 만일 모든 행이 무상하다면, 업을 지은 이는 여기서 없어졌는데, 누가 저기서 과보를 받겠나이까? 이런 뜻으로 모든 행이 항상하다 하나이다. 살생하는 인연으로 항상하다 하나니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행이 무상하다면, 죽인 것과 죽은 것이 둘이 모두 무상한 것이며, 만일 무상하다면 누가 지옥에서 죄의 갚음을 받겠나이까? 만약 결정코 지옥에서 과보를 받는다면 모든 행이 무상한 것이 아님을 알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음을 두어 오로지 생각함도 항상하다 할 것이오니, 가령 10년 전에 생각하던 것을 백년이 되어도 잊어버리지 아니하므로, 항상하다 하겠나이다. 만일 무상하다면, 본디 생각하던 일을 누가 기억하고 생각하겠나이까? 이런 인연으로 온갖 행이 무상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온갖 기억도 항상하다 할 것이오니 어떤 사람이 먼저 보았던 다른 이의 손·발·머리·목 등의 모습을 오랜 뒤에 보고는 문득 기억하게 되나이다. 만일 무상하다면 본디 보던 모습이 없어졌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러 가지 지어야 할 업을 오래오래 익혔으면 처음 배우던 때로부터 3년을 지나거나 5년을 지나서도 잘 아는 것이므로 항상하다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셈하는 법이 하나로부터 둘이 되고, 둘로부터 셋이나 내지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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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 되나이다. 만일 무상하다면 첫 번의 하나가 없어질 것이며, 첫 번 하나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둘이 되겠나이까. 언제든지 하나뿐이고 둘이 될 수 없건만 하나가 없어지지 아니하므로 둘이 되고 내지 백천이 되나니, 그러므로 항상하다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교법을 외울 적에 한 아함(阿含)을 외우고 두 아함에 이르며, 내지 세 아함과 네 아함에 이르거니와, 만일 무상하다면 외우는 일이 4아함에 이를 수 없나니, 이와 같이 외우는 것이 점점 많아지는 인연으로, 항상하다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옹기나 옷이나 수레나 남의 빚을 지는 것이나 땅의 현상·산·강·나무·숲·약초·잎새·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일 따위가 모두 항상한 것도 그와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모든 외도들이 다 말하기를 ‘모든 행이 항상하다’ 하오니, 만일 항상하다면, 곧 진실한 이치라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즐거움이 있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 받는 이가 뜻에 맞는 과보를 얻는 까닭이다’라고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즐거움을 받을 이는 결정코 그것을 얻으니, 이른바 대범천왕·대자재천·제석천왕·비뉴천과 모든 천인들이 그러합니다. 이런 이치로 결정코 즐거움이 있다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즐거움이 있나니, 중생들로 하여금 소망을 구하게 하는 까닭이다. 굶주린 이는 밥을 구하고 목마른 이는 물을 구하고 추운 이는 더움을 구하고 더운 이는 서늘함을 구하고 피곤한 이는 쉬기를 구하고 병난 이는 낫기를 구하고 애욕이 있는 이는 색을 구하나니, 만일 즐거움이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구하겠는가. 구하는 것이 있으므로 즐거움이 있는 줄 안다’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보시하면 즐거움을 얻나니, 세상 사람들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빈궁하고 곤란한 이에게 의복·음식·와구·의약·코끼리·말·수레·가루향·바르는 향·집·의지할 데·등불 따위로 즐거이 보시한다. 이렇게 갖가지로 보시함은 내가 후세에 좋은 과보를 받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결정코 즐거움이 있는 줄을 안다’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인연이 있으므로 즐거움이 있는 줄을 아나니, 즐거움을 받는다 함은 인연이 있으므로 낙을 느끼는 것이며, 만일 낙이 없으면 어찌 인연이 있으리요. 토끼 뿔은 없는 것이므로 인연이 없거니와, 낙의 인연이 있으므로 낙이 있을 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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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상품·중품·하품으로 낙이 있음을 아나니, 하품의 낙은 제석천왕이요, 중품의 낙은 대범천왕이요, 상품의 낙은 대자재천왕이라, 이러한 상품·중품·하품이 있으므로 즐거움이 있는 줄을 안다’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깨끗함이 있다. 왜냐 하면 깨끗함이 없으면 탐욕을 일으키지 아니하려니와, 만일 탐욕을 일으킨다면 깨끗함이 있을 것이다’ 하오며, 또 말하기를 ‘금·은·보배·유리·파리·자거·마노·산호·진주·구슬·옥·냇물·연못·음식·의복·꽃·향·가루향·바르는 향·등촉 따위들이 모두 깨끗한 것이며, 또 깨끗한 것이 있으니, 5음은 곧 깨끗한 것이며, 또 깨끗한 그릇에 깨끗한 물건을 담은 것으로서, 세간 사람·천상 사람·신선·아라한·벽지불·보살·부처님들이니, 이런 뜻으로 깨끗한 것이다’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은 또 말하기를 ‘내가 있나니, 보는 일이 있으며 짓는 일이 있는 까닭이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옹기장이 집에 들어가서, 비록 옹기장이의 몸을 보지 못하였더라도, 옹기장이의 물레와 노끈을 보고는 그 집에 옹기장이가 있을 줄을 아는 것처럼, 나란 것도 그와 같아서 눈으로 색을 보고는 반드시 내가 있는 줄을 알지니, 만일 내가 없으면 누가 색을 보리요. 소리를 듣거나 닿임과 법진을 앎도 그와 같으니라. 또 내가 있나니, 어떻게 아는가. 모양으로 인하여 아느니라. 무엇을 모양이라 하는가. 숨쉬고 눈 깜짝이고 목숨이 있고 마음을 쓰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탐내고 성내는 따위가 모두 나의 모양이니, 그러므로 결정코 내가 있음을 아느니라. 또 내가 있으니, 맛을 분별하는 까닭이니라. 사람이 과실을 먹으면 맛을 아나니, 그러므로 내가 있음을 아느니라. 또 내가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도구를 들고 업을 짓는 까닭이니라. 낫을 들고 풀을 베며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으며 병을 들고 물을 길으며 수레를 잡고 말을 모는 따위가, 모두 내가 도구를 들고 짓는 것이므로 결정코 내가 있는 줄을 아느니라. 또 내가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갖 났을 적에 젖을 먹고자 함은 익힌 버릇이니, 그러므로 내가 있는 줄을 결정코 아느니라. 또 내가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화합하여 다른 중생을 이익케 하는 연고니라. 마치 병이나 옷이나 수레·밭·집·산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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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끼리·말·소·양 따위들이 화합하면 이익케 하나니 속에 있는 5음도 그러하여, 눈 따위의 근이 화합하였으므로 나를 이익케 하나니, 그러므로 결정코 내가 있는 줄을 아느니라. 또 내가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부인(否認)하는 법이 있는 까닭이니, 물건이 있으므로 부인함이 있거니와, 물건이 없으면 부인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부인함이 있으면 내가 있음을 알지니, 그러므로 내가 있는 줄을 아느니라. 또 내가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짝하고 짝하지 아니하는 까닭이니, 친한 것과 친하지 아니한 것은 짝이 아니고 바른 법과 삿된 법은 짝이 아니고, 지혜 있고 지혜 없는 것은 짝이 아니며, 사문과 사문 아닌 이, 바라문과 바라문 아닌 이, 아들과 아들 아닌 이, 낯과 낯 아닌 것 밤과 밤 아닌 것, 나와 나 아닌 것 따위는 짝하거나 짝하지 아니하므로, 반드시 내가 있는 줄을 안다고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이 가지가지로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와 깨끗함이 있다고 말하므로 결정코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와 깨끗함이 있음을 아나이다. 세존이시여, 이런 뜻으로 외도들도 나에게 참된 이치가 있다고 말하나이다.”
“선남자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 항상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깨끗함이 있고, 나란 것이 있다는 이는 사문이 아니며 바라문이 아니니, 왜냐 하면 나고 죽는 데 미혹되어 온갖 지혜인 대도사를 여읜 연고며, 이와 같은 사문·바라문들은 탐욕에 빠져서 선한 법이 감한 연고며, 이 외도들이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의 옥에 갇혀서 참고 좋아하는 연고니라. 이 외도들이 업과 과보를 제가 짓고 제가 받는 줄을 알지만 나쁜 법을 여의지 못하며, 이 외도들이 바른 법과 바른 생활[正命]로 살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지혜의 불이 없어서 소멸하지 못하는 연고며, 이 외도들이 비록 훌륭한 5욕락을 탐구하려 하지만 선한 법이 부족하여 부지런히 닦지 않는 연고며, 이 외도들이 비록 바른 해탈에 이르고자 하지만 계율 가지는 일이 성취되지 못하는 연고며, 이 외도들이 비록 즐거움을 구하지만 즐거움의 인연을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이 외도들이 비록 온갖 고통을 미워하지만 그의 행하는 일이 고통의 인연을 여의지 못하며, 이 외도들이 4대의 독사에게 얽혀 있으면서도, 방일한 짓만 행하고 조심하지 못하며, 이 외도들이 무명에 덮이어서 선한 벗을 멀리 여의고, 무상한 삼계의 불 속에 있으면서 나오지 못하며, 이 외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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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기 어려운 번뇌의 병을 만나고도 지혜 있는 용한 의원을 구하지 아니하며, 이 외도들이 오는 세상에서 그지없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것이로되, 선한 법의 양식으로 장엄하여야 할 줄을 모르며, 이 외도들이 항상 음욕이란 재앙의 해침을 받을 터이건만, 도리어 5욕락의 독함을 안고 있으며, 이 외도들이 성내는 마음이 치성하면서도 도리어 나쁜 동무를 가까이하며, 이 외도들이 항상 무명의 가리움이 되면서도 도리어 나쁜 법을 구하며, 이 외도들이 항상 삿된 소견에 속으면서도 도리어 그 속에 친근한 생각을 내며, 이 외도들이 맛있는 과실을 먹으려 하면서도 쓴 종자를 심으며, 이 외도들이 번뇌의 캄캄한 방에 있으면서도 도리어 지혜의 횃불을 멀리 여의며, 이 외도들이 번뇌의 목마름을 걱정하면서도 도리어 짠 물을 마시며, 이 외도들이 나고 죽는 끝없는 바다에 빠졌으면서도 도리어 훌륭한 뱃사공을 여의며, 이 외도들이 미혹하고 전도되어 모든 행이 항상하다 말하거니와 모든 행이 항상할 수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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