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7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9. 정도와 사도[邪正品]

이 때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위에서 말한 네 종류 사람들에게 마땅히 의지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선남자야, 나의 말과 같이 의지하여야 하나니 왜냐 하면 네 가지 마군이 있는 연고니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마군이 말한 경전과 계율을 받아 가지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마군과, 마군의 말한 것과 부처님의 말한 것을 저희들이 어떻게 분별하오며, 어떤 중생이 마군의 행을 따르는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지, 그런 무리를 어떻게 압니까?”
“가섭이여, 내가 열반한 지 7백 년 뒤에 마왕 파순이 점점 나의 법을 혼란케 하리니, 마치 사냥꾼이 몸에 가사를 입듯이 마왕 파순도 그와 같이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모양을 가장하기도 하고, 또 수다원의 몸과 아라한의 몸과, 내지 부처님의 몸을 꾸미되 마왕의 유루한 형상으로 무루한 몸을 가장하고, 나의 바른 법을 파괴하며 파순이 바른 법을 파괴하면서 말하기를 ‘보살이 옛날에 도솔천에서 없어지고 이 가비라성의 정반왕궁에 올 적에 부모의 애욕으로 접촉함을 의지하여 이 몸을 낳아 기른 것이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에 나서 모든 세간의 인천 대중에게 공경을 받는다고 말한다면 있을 수 없다’고 하며, 또 말하기를 ‘옛적에 고행할 때에 머리와 눈과 골수와 나라와 처자까지 여러 가지로 보시한 까닭으로 지금에 불도를 이루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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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그런 인연으로 천상 사람·세간 사람·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의 공경을 받는다’ 하리라. 만일 이런 말을 한 경전이나 계율이 있으면 마군의 말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만일 경과 율에 말하기를, ‘여래는 벌써부터 불도를 이루었건만 지금 성불하는 일을 보이는 것은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부모의 애욕으로 인하여 났으며, 세상을 따르기 위하여 이렇게 나타난다’고 하면, 이런 경과 율은 참으로 여래의 말인 줄을 알지니, 만일 마군이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요, 부처님의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니라. 또 말하기를, ‘여래가 처음 났을 적에 10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하면 그는 마군의 말이요, 여래가 세상에 나서 10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은 것은 여래의 방편으로 보인 것이라고 말하면 이것은 여래가 말씀한 경전과 율이니, 만일 마군이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요 부처님이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니라. 만일 말하기를 ‘보살이 탄생한 뒤에 부왕이 사람으로 하여금 태자를 데리고 천신의 사당에 갔을 적에 천신들이 보고 내려와서 예경하였으므로 부처님이라 한다’고 하고, 다시 논란하여 말하기를 ‘천신은 먼저 났고 부처님께서는 나중 났는데 어찌하여 천신이 부처님께 예경하였으랴’ 하면, 그것은 파순의 말인 줄을 알 것이니라. 경에 말하기를 ‘부처님이 천신의 사당에 갔을 적에 마혜수라천·대범천왕·제석천왕들이 모두 부처님 발에 합장하고 예경하였다’ 하면 이런 경과 율은 부처님이 말씀한 것이니, 마군이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요, 부처님이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즉시 보살이니라.
어떤 경이나 율에 ‘보살이 태자로 있을 적에 음욕으로 말미암아 사방에서 아내를 맞아 궁중에 두고 5욕으로 즐기며 기뻐하였다’고 말하였으면, 그러한 경과 율은 마군의 말이요, 만일 ‘보살은 이미 오래전에 탐욕과 처자의 생각을 여의었으며, 내지 33천의 훌륭한 5욕락도 침 뱉듯이 버렸거늘 하물며 인간의 욕락이리요.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도를 닦았느니라’고 말하였으면 그런 경과 율은 부처님의 말씀이니 마군의 경과 율을 따르면 마군의 권속이요, 부처님의 경과 율을 따르면 곧 보살이니라.
또 ‘부처님이 사위성 기타정사에 계실 적에 비구들에게 종·하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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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코끼리·말·나귀·노새·닭·돼지·고양이·개·금·은·폐유리·진주·파리·자거·마노·산호·호박·보패·보석·구리·가마·솥·쟁반 따위를 받아 두라 허락하였고, 밭 갈고 나무 심고 장사하고 곡식을 쌓아 두는 일들을 부처님이 자비심으로 중생을 사랑하여 허락하였다’고 말하였으면 그런 경과 율은 모두 마군의 말이요, ‘부처님이 사위성 기타정사의 나리루(那梨樓) 귀신 있는 곳에 계실 적에 여래께서 바라문 고저덕(羖羝德)과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은 금·은·폐유리·파리·진주·자거·마노·산호·호박·보패·보석·종·하인·동남·동녀와 소·양·코끼리·말·나귀·노새·닭·돼지·고양이·개 따위의 짐승과 구리·가마·솥·쟁반 따위와, 가지각색의 평상·포단과 살림에 필요한 집 따위를 받아 두지 말라 하였고, 밭 갈고 나무 심고 무역하고 손수 음식 만들고 방아 찧고 맷돌질하는 것과 몸을 다스리는 주술과 매를 길들이는 방법과 천문 보고 역서 만들고 점치고 남녀의 상보고 해몽하고 남자다 여자다 남자 아니다 여자 아니다 하는 따위의 64능(能)과 사람을 의혹케 하는 18주술과 여러 가지 공교한 일을 하지 말라 하였으며, 혹 세간의 한량없는 세속 일을 말하되, 흩는 향·가루향·바르는 향·쐬는 향·꽃다발·화만·머리 빗는 방법을 숭상하거나, 간사하고 아첨하여 이양을 탐내거나, 복잡하고 분주한 데를 좋아하며, 희롱하고 웃고 이야기하거나, 고기 생선을 즐겨 먹거나, 독약을 만들거나 향유를 짜거나 일산 받고 갖신 신고 부채 만들고 상자 만들고 화상 그리고 쌀·곡식·밀·보리·콩·과실 따위를 저축하거나, 국왕·왕자·대신이나 여인들을 가까이하거나 소리를 높여 웃거나 잠잠하거나, 법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잘하고 못하고 좋고 나쁘고 선하고 악하고 좋은 신 좋은 옷을 부질없이 이야기하거나, 가지가지 부정한 물건을 시주들의 앞에서 칭찬하거나, 술집·기생집·놀음판 따위의 부정한 곳에 출입하는 사람은 비구들 중에 섞이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런 이는 마땅히 비구를 그만두고 속세로 돌아가서 국민의 구실을 극진히 할 것이니, 마치 돌피와 가라지를 뽑아버리듯 하라’ 하였으면, 이런 경과 율을 제정한 것은 모두 부처님의 말이니라. 마군의 말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요, 부처님의 말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니라.
만일 말하되, 보살이 천신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천신의 사당에 들어갔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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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그 천신은 범천·대자재천·위타천·가전연천이라. 들어간 까닭은 모든 하늘들을 조복하기 위함이니,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거나, 만일 말하기를 보살이 외도들의 잘못된 언론에 들어가서 그의 위의와 문장과 기예(技藝)를 알지 못하여 하인들의 투쟁을 화합하지 못하며 남녀·국왕·대신의 공경을 받지 못한다 하거나, 또 말하기를 여러 가지 약을 화합할 줄을 모르나니, 모르는 까닭으로 여래라 하거니와, 만일 안다면 나쁜 소견을 가진 무리라 하거나, 또 말하기를 여래는 원수나 친한 이에게 마음이 평등하여서, 칼로 몸을 베거나 향으로 바르거나 그런 두 사람에게 이익하고 해롭다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중도에 머물러 있으므로 여래라고 일컫는다 하면, 이런 경과 율은 마군의 말인 줄을 알 것이며, 만일 말하기를 보살이 일부러 천신의 사당에 들어갔고, 외도의 법에서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서 그의 위의와 예절을 알기도 하고 모든 문장과 기예를 이해도 하며, 글방과 재주를 배우는 곳에 일부러 들어가서 하인들의 투쟁을 잘 화합하며, 여러 대중과 동남·동녀와 후궁·후비와 백성·장자·바라문·국왕·대신과 빈궁한 사람들 중에 가장 높으시며 또 그들의 공경을 받아서 이러한 일들을 나타내기도 하며, 비록 여러 가지 소견 속에 있더라도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함이 연꽃에 티끌이 묻지 않는 듯하며,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서 이런 방편을 행하여 세상 법을 따른다고 말하면, 이러한 경과 율은 여래의 말씀인 줄을 알아야 하나니, 마군의 말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요,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이는 대보살이니라.
만일 말하기를, 여래께서 나에게 경과 율은 해설할 적에, 나쁜 법 중에서 가볍고 무거운 죄와 투란차(偸蘭遮)의 성질이 중대한 것은 우리의 율문에서 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내가 오래전부터 그런 법을 익혀 왔는데, 너희들이 믿지 않거니와, 내가 어찌 우리 율을 버리고 너희의 율을 따르겠느냐. 너희의 율은 마군이 말한 것이고 우리의 경과 율은 부처님이 제정한 것이다. 여래께서 먼저 아홉 가지 법인(法印)을 말하고 그 아홉 가지 인으로 우리의 경과 율을 인가하였으며, 당초부터 방등경전이라고는 한 구절 한 글자도 듣지 못하였으며, 여래가 말씀한 한량없는 경과 율에 방등경이 어디 있느냐. 그런 중에서 열 가지 경이란 이름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만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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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것은 조달(調達)이 지었을 것이며, 조달은 나쁜 사람으로 선한 법을 없애려고 방등경을 지은 것이니, 우리는 믿을 수 없으며, 그런 경전은 마군의 말이니 왜냐 하면 불법을 파괴하고 시비하려는 것이므로 그런 말이 너희의 경에만 있고 우리의 경에는 없으며, 우리의 경과 율에는 여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열반한 후 나쁜 세상에 반드시 부정한 경과 율이 있을 것이니, 소위 대승 방등경전이며, 오는 세상에는 이런 나쁜 비구가 있으리라’고 말하였다. 나는 또 말하기를 아홉 가지 경전보다 뛰어난 방등경전이 있으니 어떤 사람이나 그 뜻을 아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경과 율을 바르게 아는 이로서 온갖 부정한 것을 멀리 여의고 미묘하고 청정하기가 보름달 같으리라. 만일 말하기를, 여래가 비록 낱낱 경과 율에서 이치를 연설하기를 항하의 모래와 같다 하더라도 우리의 율에는 없으니 없는 줄을 알아야 하고, 만일 있다면 어째서 여래께서 우리의 율에서는 말하지 아니하였으랴. 그래서 나는 믿을 수 없노라 하면 그 사람은 죄를 얻을 것이며, 그 사람이 또 말하기를 ‘이런 경과 율을 내가 받아 지닐 것이니, 그 이유는 나를 위하여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함을 알게 하였으며 번뇌를 끊고 지혜와 열반의 좋은 법의 인연을 지은 까닭이라’ 하리니, 이렇게 말하는 이는 나의 제자가 아니요, 만일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려고 방등경을 말하였다 하면, 이런 사람은 진정한 나의 제자려니와, 방등경을 배우지 않는 이는 나의 제자가 아니며 불법을 위하여 출가한 것이 아니고, 잘못된 소견을 가진 외도들의 제자니라. 이러한 경과 율은 부처님이 말한 것이요, 이렇지 아니한 것은 마군의 말이니, 마군의 말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요, 부처님의 말을 따르는 이는 곧 보살이니라.
또 선남자야, 만일 말하기를, ‘여래는 한량없는 공덕으로 성취한 바가 아니므로 무상하고 변역하는 것이며, 공한 법을 얻어서 내가 없다고 하고 세상을 따르지 않는다’ 하면 이런 경과 율은 마군이 말한 것이요, 만일, 여래의 정각은 헤아릴 수 없으며 한량없는 아승기 공덕으로 성취하였으므로 항상 머물고 변역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런 경과 율은 부처님이 말한 것이니, 마군의 말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요 부처님의 말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니라.
또 만일 말하기를, 어떤 비구가 바라이(波羅夷) 죄를 범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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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사람이 모두 이르되 바라이 죄를 범하여 다라나무를 끊은 것이 같다고 하더라도, 이 비구는 실상 범한 것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내가 항상 말하기를 4바라이에서 한 가지만 범하여도 쪼갠 돌을 다시 붙일 수 없음과 같다고 하였거니와, 만일 남보다 지나가는 법을 얻었노라고 스스로 말하면 그것은 바라이를 범한 것이니, 그 이유는 실지로는 얻은 것이 없으면서 겉으로 얻은 듯이 꾸미는 것이므로 이런 사람은 사람 되는 법을 잃은 것이어서 바라이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며 깨끗이 계행을 가지면서 고요한 곳[阿練若]에 있는 것을 임금이나 대신이 보고서 이 비구가 아라한과를 얻은 줄 생각하고 앞에 나아가 찬탄하고 공경하고 예배하면서 말하기를, ‘이 스님은 이 몸을 버리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하거든, 비구가 듣고 임금께 말하기를, ‘나는 참으로 사문의 도과(道果)를 얻지 못하였으니 대왕은 나에게 도과를 얻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바라건대 대왕은 나에게 만족함을 모르는 법을 말하지 마소서. 만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더라도 잠자코 듣거니와, 내가 이제 잠자코 듣는다면 부처님들의 꾸중을 받게 되나이다. 만족함을 아는 행실은 부처님이 칭찬하는 것이오매 나는 몸이 맞도록 즐거운 마음으로 만족함을 아는 행을 닦으려 하나이다. 또 만족함을 안다는 것은 도과를 얻지 못한 줄을 스스로 아는 것이니, 대왕께서 나더러 도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내가 그대로 받지 아니하여야 만족함을 아는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대답하기를, ‘스님은 참으로 아라한과를 얻어서 부처님과 다름이 없다’ 하면서 널리 선전하여서, 나라 안팎의 사람들과 중궁의 후비들로 하여금 모두 사문과를 얻은 줄 알게 하였으므로, 들은 이들이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내어 공양하고 존중하였다 하면 이 비구는 참으로 범행이 청정한 사람이니, 이런 인연으로써 여러 사람들이 큰 복덕을 얻게 되었으므로 이 비구는 바라이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환희한 마음을 내어 찬탄하고 공경한 것이니 이 비구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 이 사람이 죄를 얻으리라고 말한다면 이런 것은 마군의 말이니라.
또 어떤 비구가 부처님의 비밀하고 깊은 경전을 말하면서,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으며, 이 성품이 있으므로 한량없는 억천의 번뇌를 끊고 아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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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니 일천제(一闡提)는 제할 것이라 하였다.
임금이나 대신들이 말하기를, ‘스님은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불성도 있습니까?’라고 하자, 비구가 대답하되 ‘나의 몸에는 불성은 결정코 있지만 부처가 되고 안 되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되 ‘스님이 만일 일천제가 아니라면 부처가 될 것은 의심이 없으리라’고 하자, 비구가 말하되 ‘진실로 왕의 말씀과 같습니다’ 하였다. 이 사람이 결정코 불성이 있다고 말하였으나, 바라이 죄를 범한 것은 아니니라. 또 어떤 비구가 출가할 적에 생각하기를 ‘내가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리라’ 하였다면, 이 사람이 비록 위없는 도과는 이루지 못하였더라도 복을 얻은 것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 헤아릴 수 없으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바라이 죄를 범하였다 하면 모든 비구들도 모두 범하였을 것이니, 왜냐 하면 내가 옛날 80억 겁 전에 모든 부정한 물건을 항상 여의고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위의가 성취되어 여래의 위없는 법장을 닦으면서 이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알았으므로, 지금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 부처라 하며 대자비가 있다 하느니라. 이와 같은 경과 율은 부처님의 말씀이니, 이러한 것을 따르지 못하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요, 따르는 이가 있으면 곧 대보살이니라.
또 말하기를 4바라이·13승잔(僧殘)·2부정법(不定法)·30사타(捨墮)·91타(墮)·4참회법(懺悔法)·중다학법(衆多學法)·7멸쟁(滅諍) 등도 없고, 투란차와 다섯 역적죄와 일천제도 없거늘, 만일 비구가 이런 것을 범하고 지옥에 떨어진다면 외도들은 천상에 날 것이니, 왜냐 하면 외도들은 범할 계율이 없는 까닭이니라. 이것은 여래가 일부러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 위하여 이런 계율을 말한 것이라 하며, 또 부처님 말씀에 비구들이 음행을 하려면 법복을 벗고 세속 옷을 입은 뒤에 음행을 하라고 하였으니, 음행할 인연을 생각하더라도 나의 허물이 아니며, 여래가 세상에 계실 때에도 비구가 음행을 하고 해탈을 얻은 이가 있으며, 혹은 목숨이 마친 뒤에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였으니, 옛날이나 지금에 있는 일이라, 나만이 하는 일이 아니며, 혹은 네 가지 중대한 죄를 범하고 혹은 다섯 가지 중대한 계를 범하며 혹은 온갖 부정한 일을 행하고도 진정한 해탈을 얻었으며, 여래의 말씀에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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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라(突吉羅) 죄를 범하면 도리천의 세월로 8백만 년을 지옥에 떨어진다 하였으나 역시 여래께서 사람을 공포케 하는 말이며, 또 바라이로부터 돌길라까지의 가지가지 죄가 가볍고 중대한 차별이 없건만, 율사들이 부질없이 이런 말을 지어내어 부처님이 제정하였다고 하지만 필경에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님을 알 것이라 하면, 이런 말은 마군의 경과 율이니라. 또 말하기를 모든 계율에서 작은 계율을 범하나 내지 하잘것없는 것이라도 괴로운 과보를 한없이 받을 것이니 이렇게 알고 내 몸을 방비하되 거북이 여섯 군데 감추듯 하라 하였거늘, 어떤 율사가 ‘무슨 계를 범하더라도 아무 죄보도 없다’고 하면, 이런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한 법만을 그저 지나도
이를 망어(妄語)라고 이름하나니
뒷세상 보지 않으면
짓지 않을 죄가 없으리.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나의 부처님이 이렇게 청정하거늘 하물며 투란차 죄를 범하거나 승잔 죄·바라이 죄를 범한 것이 어찌 죄가 아니랴. 그러기에 이런 법들을 매우 깊이 방비하고 수호할 것이니, 만일 수호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계율이라 하겠는가. 나의 경전 중에도 말하기를 4바라이나 내지 미세한 돌길라를 범하더라도 마땅히 엄하게 다스리라 하였나니, 중생이 계율을 수호하여 지니지 않고서야 어떻게 불성을 보겠는가. 모든 중생에게 비록 불성이 있다 하지만 계행을 잘 지니고 볼 것이며, 불성을 보고서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느니라. 아홉 가지 경에는 방등경이 없으므로 불성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거니와, 경에는 말하지 않았더라도 참말 있는 줄을 알아야 하리니, 이런 말을 하는 이는 참으로 나의 제자니라.”
“세존이시여, 앞에서 말씀한 대로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말을 아홉 가지 경전에서는 듣지 못하였거늘 만일 있다고 말하오면 어찌하여 바라이 죄를 범함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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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그대의 말과 같아서 실로 바라이 죄를 범함이 아니니라. 선남자야, 마치 어떤 이가 말하기를 바다에 일곱 가지 보배만 있고 여덟 가지는 없다 하여도 이 사람은 죄가 없듯이, 아홉 가지 경전 가운데 불성이 없다고 하여도 죄가 없나니, 왜냐 하면 나는 대승의 지혜 바다에 불성이 있다고 말한 것이고, 2승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 없다고 하여도 죄가 없으며, 이런 경지는 부처님들이 아는 것이고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미칠 바가 아니니라.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여래의 깊고 비밀한 법장을 듣지 못하였으면 어떻게 불성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어떤 것이 비밀한 법장인가. 방등 대승경전이니라.
선남자야, 외도들은 혹은 내가 항상하다 말하고 혹은 내가 아주 없다 말하거니와,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내가 있다고도 말하고 내가 없다고도 말하나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라. 만일 부처님이 중도를 말할 적에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건만 번뇌가 가리워서 알지도 보지도 못하나니, 그러므로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서 번뇌를 끊어야 한다고 하였다 하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4바라이를 범함이 아니고, 이런 말을 하지 않는 이가 바라이 죄를 범한 것이며, 만일 내가 이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였으니 그 이유는 불성이 있는 까닭이다. 불성이 있는 이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니, 이 인연으로 내가 이제 보리를 성취하였노라 하면 이 사람은 바라이 죄를 범하였다 하리라. 왜냐 하면 비록 불성이 있더라도 좋은 방편을 닦지 못한 연고로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보지 못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한 것이니, 이러므로 부처님 법이 깊고 깊어서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임금이 묻기를 ‘어떤 것이 비구가 과인법(過人法)에 떨어짐인가?’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어떤 비구가 이익과 음식을 위하여 모든 아첨과 간사와 거짓말을 꾸미되 ‘어찌하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참말 비구인 줄을 알게 하며 그 인연으로 내가 많은 이익과 큰 명예를 얻게 되랴’ 하면, 이 비구는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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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연고로 밤낮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실로 네 가지 사문의 과를 얻지 못하였지만,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도과를 얻은 줄로 알게 하며, 어떻게 하면 모든 우바새·우바이들이 나를 보고 이 사람의 복덕은 참말로 성인이라고 하게 하리요’ 하고는 법은 구하지 않고 이익만 구하면서 그 때부터 다닐 때마다 점잖을 빼고 가사와 발우를 가지며 위의를 차리고 참말 아라한처럼 고요한 곳에 혼자 앉아 있어 사람들이 보고는 이 비구는 가장 거룩한 이며 고행을 부지런히 하여 적멸(寂滅)한 법을 닦는다고 칭찬하도록 하여, 이런 인연으로 나의 제자들이 많아지고, 사람들도 의복·음식·포단·탕약 등으로 공양할 것이며, 여러 여인들도 나를 존중하고 애경하리라 생각하나니, 이런 일을 하는 비구·비구니는 과인법(過人法)에 떨어지느니라.
또 어떤 비구가 위없는 바른 법을 세우기 위하여 고요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라한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보고는 이 스님은 ‘아라한이다, 좋은 비구다, 착한 비구다, 고요한 비구다’라고 생각하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심을 내게 되면, 이 인연으로 한량없는 비구들을 권속으로 삼게 될 것이며, 이 일로 말미암아 파계한 비구와 우바새들로 하여금 계행을 가지게 하면, 그 인연으로 바른 법을 세우고 여래의 위없이 훌륭한 이치를 빛낼 것이며 방등의 대승법으로 교화함을 나타내고 많은 중생들을 해탈케 하여, 여래가 말씀한 경과 율에 대하여 가볍고 무거운 뜻을 이해하게 하리라 하며, 다시 말하기를 ‘나에게도 불성이 있고, 여래비장(如來秘藏)이라는 경이 있는데 이 경에서 마땅히 부처님 도를 이루어 한량없는 번뇌의 결박을 끊으리라’ 하면서, 한량없는 우바새들을 위하여 ‘너희들도 모두 불성이 있으니 나와 네가 함께 여래의 경지에 머물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 한량없는 번뇌의 결박을 끊으리라’ 한다면, 이 사람은 과인법(過人法)에 떨어진다고 이름하지 않고 보살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돌길라 죄를 범하면 도리천의 세월로 8백만 년 동안에 지옥에 떨어져 모든 죄보를 받는다 하였거늘, 하물며 일부러 투란차 죄를 범함이랴. 대승법 중에 투란차 죄를 범한 비구가 있으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나니, 어떤 것이 대승경 중의 투란차 죄인가. 만일 장자가 절을 짓고 화만으로 부처님께 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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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적에 어떤 비구가 꽃을 꿴 실을 보고 묻지 않고 가지면 투란차 죄라 하나니, 알거나 모르거나 범죄가 되는 것이며, 만일 탐내는 마음으로 부처님 탑을 파괴하면 투란차 죄를 범하는 것이니 이런 사람은 친근하지 말아야 하며, 국왕이나 대신이 탑이 낡은 것을 보고 중수하며 사리에 공양할 적에 탑 속에서 보배를 얻어 비구에게 맡긴 것을 비구가 제 마음대로 사용하면 이런 비구는 부정이라 하며, 많은 투쟁을 일으키게 되리니, 선한 우바새들은 그 비구에게 친근하거나 공경하거나 공양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또 이런 비구는 근(根)이 없다, 근이 둘이다, 근이 일정치 않다 하나니, 근이 일정치 않다는 것은 여자를 탐하려는 때는 몸이 여자가 되고, 남자를 탐하려는 때는 몸이 남자가 되는 것이매, 이런 비구는 나쁜 근[惡根]이라 하여 남자라 하지도 않고 여자라 하지도 않으며, 출가라고도 않고 재가(在家)라고도 않나니, 이런 비구는 친근하거나 공양하거나 공경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부처님 법에는 사문의 법이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들을 어루만져 기르는 것이며, 내지 개미 따위라도 두려움 없는 보시를 하는 것이 사문의 법이요, 술을 마시거나 냄새를 맡는 것까지 여의는 것이 사문의 법이며 거짓말을 하지 말며 꿈에서도 거짓말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사문의 법이며, 애욕의 마음을 내지 말고 꿈에서까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사문의 법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비구가 꿈에 음행을 하면 범계가 됩니까?”
“아니다. 음욕에 대하여 더럽다는 생각을 하고 잠깐이라도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하며, 여인을 사랑하는 번뇌를 멀리 여읠 것이니, 만일 꿈에 음욕을 행하면 깨어서 뉘우칠 것이니라. 비구가 걸식하다가 공양을 받을 적에는 흉년에 아들의 고기를 먹는 생각을 하여야 하며 만일 음욕을 내었으면 빨리 버려야 하나니, 이런 법문은 부처님이 말한 경과 율이라, 마군의 말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요, 부처님의 말을 따르는 이는 이름이 보살이니라.
만일 여래가 비구에게 한 다리를 항상 들고 있으며 잠자코 말하지 아니하며 못에 빠지며 불에 뛰어들며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며 험한 데를 피하지 아니하며 독약을 먹으며 밥을 썩히며 재나 먼지 위에 누우며 제 손발을 결박하고 중생을 살해하는 방법과 주문을 허락하였다 하며, 전다라들과 근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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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을 둘 가진 이, 근이 일정치 않은 이, 몸이 불구한 이들이 출가하여 수도하는 일을 여래가 허락하였다 하면 이는 마군의 말이며, 다섯 가지 우유와 유밀(油蜜)과 교사야(명주·비단)옷과 가죽신 따위를 여래가 먼저 허락하였고, 그 밖에 마하릉가(摩訶楞伽)를 입으며 모든 종자를 저축하며 풀이나 나무 따위도 목숨이 있다고 허락하였으며. 이런 말을 하고 열반에 들었다 하면 그런 말을 적은 경과 율은 마군의 말이니라. 나는 한 다리를 항상 들라고 허락하지 않았으며, 법을 위하여 가고 머물고 앉고 누움을 허락할 뿐이며, 독약을 먹고 밥을 끊고 다섯 가지 뜨거움으로 몸을 태우고 손발을 결박하고 중생을 살해하는 방법과 주문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옥이나 상아로 가죽신을 단장하고 종자를 저축하고 초목도 목숨이 있고 마하릉가를 입으라고 허락하지 않았거늘, 만일 세존이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하는 이는 외도의 권속이고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나는 다만 다섯 가지 우유와 유밀 따위를 먹고 교사야옷을 입을 것을 허락하였을 뿐이요, 4대는 목숨이 없다고 말하였으니, 만일 경과 율에 이런 말을 적은 것은 부처님의 말이니, 부처님이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나의 참 제자려니와 부처님의 말을 따르지 않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의 경과 율을 따르는 이는 대보살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마군의 말과 부처님의 말의 다른 것을 지금 그대에게 자세히 베풀어 말하였노라.”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에야 마군의 말과 부처님의 말이 서로 다름을 알았으니 이것으로 부처님 법의 깊은 이치에 들어갈 수 있나이다.”
“그렇다. 선남자야, 그대가 이처럼 분명하게 분별하니, 매우 지혜롭다.”

10. 네 가지 진리[四諦品]

부처님께서 또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운 것[苦]을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라 이름하지 않나니, 무슨 까닭이냐. 만일 괴로운 것을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면, 온갖 축생과 지옥 중생에게도 성스러운 진리가 있으리라.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여래의 깊고 깊은 경계가 항상 머물고 변치 않는 비밀한 법신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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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고 밥 먹는 몸[食身]이요, 법신(法身)이 아니라 하면, 이는 여래의 도덕(道德)과 위력을 모르는 것이니, 그것을 괴로움이라 이름하느니라. 왜냐 하면 알지 못하므로 법을 법이 아니라 보고, 법 아닌 것을 법이라고 보는 연고니, 이 사람은 나쁜 갈래[惡趣]에 떨어져 생사에 헤맬 것이며, 번뇌[結]가 많아져서 여러 가지 고뇌(苦惱) 받으려니와, 만일 여래가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아니함을 알거나, 혹은 항상 머문다는 말을 들어 귀에 한번 지나가면 천상에 태어날 것이요, 뒤에 해탈을 얻을 때에 여래의 항상 머물고 변치 않는 이치를 증득할 것이며, 증득하고 말하기를 ‘내가 옛날에 이런 이치를 들었더니 이제 해탈을 얻어 증득하여 알았노라. 나는 당초에 이 이치를 몰라서 생사에 헤매면서 그지없이 돌아다녔더니, 오늘에야 참 지혜를 얻었노라’ 하면, 이렇게 아는 것은 참으로 괴로움을 닦는 것이어서 이익이 많으려니와, 만일 알지 못하면 아무리 부지런히 닦아도 이익이 없으리니, 이것은 괴로움을 아는 것이며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하겠지만, 만일 이렇게 닦지 못하면 괴로움이라고는 하려니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아니니라.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苦集諦]란 것은 참 법 가운데서 참 지혜를 내지 못하고 종과 하인 따위의 부정한 것을 받으며, 잘못된 법을 바른 법이라 하고 바른 법을 끊어버리어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법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므로 생사에 헤매면서 많은 고통을 받고, 천상에 나거나 바른 해탈을 얻지 못하는 것이요, 만일 깊은 지혜가 있어 바른 법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그 인연으로 천상에도 나고 바른 해탈을 얻으려니와, 만일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알지 못하여, 바른 법이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고 모두 없어지는 법이라 하면, 이 인연으로 한량없는 세월에 생사에 헤매면서 모든 고통을 받나니, 만일 법이 항상 머물고 변하지 않는 줄을 알면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을 아는 것이며,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하련만, 만일 이와 같이 닦지 못하면 괴로움의 발생이라고는 하려니와,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아니니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진리[苦滅諦]란 것은 설사 공한 법을 많이 닦아도 그것은 선하지 못한 것이니, 왜냐 하면 온갖 법을 없애는 연고며 여래의 참 법장을 무너뜨리는 연고니라. 이렇게 닦는 것은 공한 법을 닦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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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괴로움의 소멸을 닦는 것은 모든 외도들과는 어기는 것이거늘, 공한 법을 닦는 것으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 한다면, 모든 외도들은 공한 법을 닦으니 역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가 있다고 하리라. 만일 말하기를 여래장(如來藏)이 있음을 보지 못하더라도 온갖 번뇌를 없애 버리면 들어갈 수가 있다 하면, 잠깐 동안 이 마음을 낸 인연으로 모든 법에 자재함을 얻으려니와, 만일 여래의 비밀한 법장은 내가 없고 공적하다고 닦는 이가 있으면, 이런 사람은 한량없는 세월에 생사 중에 헤매면서 고통을 받을 것이요, 그렇게 닦지 않는 이는 번뇌가 있더라도 빨리 멸할 수 있으리라. 왜냐 하면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아는 까닭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이름할 것이며, 이렇게 괴로움의 소멸을 닦아 익히는 이는 나의 제자라 하려니와, 이렇게 닦지 못하면 공한 법을 닦는다 할지언정,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아니니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道聖諦]라 함은 불보·법보·승보와 바른 해탈을 말함이니, 어떤 중생이 뒤바뀐 마음으로 삼보와 바른 해탈은 없고, 생사에 헤매는 것이 환술과 같다고 말하며 그런 소견을 익히면, 그 인연으로 삼계에 헤매면서 오래오래 고통을 받으리라. 만일 바른 마음을 내어 부처님이 항상 머물러 변치 아니하며, 법보·승보와 바른 해탈도 그러함을 보면, 이 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한량없는 세월에 자재한 과보를 마음대로 얻으리라. 왜냐 하면 내가 지난 옛적에 네 가지 뒤바뀐 마음으로 법 아닌 것을 법이라 여기고, 한량없는 나쁜 업의 과보를 받았거니와, 지금 그런 소견을 없애었으므로 부처님의 정각을 이루었으니,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삼보가 무상하다 말하면서 그런 소견을 닦으면 그것은 허망하게 닦는 것이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며, 법이 항상 머문다고 닦는 이는 나의 제자니라. 진실한 소견으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닦는 것을 4성제(聖諦)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에야 깊고 깊은 성인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닦을 줄을 알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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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네 가지 뒤바뀜[四倒品]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 가지 뒤바뀜이라 함은 괴로움이 아닌데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을 뒤바뀜이라 하나니, 괴로움이 아니라는 것은 여래요,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여래가 무상하고 변이(變異)한다는 것이니라. 여래가 무상하다고 말함은 큰 죄와 괴로움이요, 여래가 이 괴로운 몸을 버리고 열반에 드는 것이 마치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는 것과 같다고 하면, 그것은 괴로움이 아닌데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므로 뒤바뀜이라 하느니라. 내가 만일 여래가 항상하다고 말하면 곧 나라는 소견[我見]이니, 나라는 소견으로는 한량없는 죄가 있는 것이므로, 여래가 무상하다고 말하여야 하며, 이렇게 말하면 내가 즐거움을 받는다 하거니와, 여래의 무상함이 괴로움이니, 만일 괴로움이라면 어떻게 즐거움을 내겠는가. 괴로운데 즐겁다는 생각을 냄으로써 뒤바뀜이라 하는 것이며, 즐거운데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뀜이라 하나니, 즐겁다는 것은 여래요, 괴롭다는 것은 여래가 무상하다는 것이니라. 만일 여래가 무상하다고 말하면 이는 즐거운데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여래의 항상 머무는 것이 즐거운 것이거늘, 만일 내가 말하기를 여래가 항상하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열반에 들며, 만일 여래가 괴로움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몸을 버리고 열반을 취한다 하는가. 즐거운데 괴롭다는 생각을 냄으로써 뒤바뀜이라 하나니, 이것은 첫째 뒤바뀜이니라.
무상한데 항상하다는 생각과 항상한데 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뒤바뀜이라 하나니, 무상하다는 것은 공한 법을 닦지 않는 것이며, 공한 법을 닦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단명한 것이거늘, 만일 공적한 법을 닦지 아니하고 장수한다고 하면 이것이 뒤바뀜이라 하나니, 이것은 둘째 뒤바뀜이니라.
내가 없는데 나라 생각하고, 나에 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뒤바뀜이라하나니, 세간 사람도 내가 있다 말하고 부처님 법에서도 내가 있다 말하거니와, 세상 사람은 비록 내가 있다 말하나 불성은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내가 없는데 나라는 생각을 내는 것이므로 뒤바뀜이라 하느니라. 부처님 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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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다고 말하니, 이것은 나라는 데서 내가 없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만일 말하기를, 부처님 법에는 결정코 내가 없으므로 여래가 제자들에게 명령하여 내가 없는 것을 닦으라 하셨다고 하므로 뒤바뀜이라 하나니, 이것은 셋째 뒤바뀜이니라.
깨끗한데 부정하다고 생각하고 부정한데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뒤바뀜이라 하나니, 깨끗하다 함은 여래는 항상 머무는 것이어서 잡식하는 몸이 아니고 번뇌 있는 몸이 아니고, 육신의 몸이 아니고 힘줄과 뼈로 얽힌 몸이 아니거늘, 만일 말하되 여래는 무상하여 잡식하는 몸이요 내지 힘줄과 뼈로 얽힌 몸이며, 법보·승보와 해탈도 없어지는 법이라 하면, 그것을 뒤바뀜이라 하고, 부정한데 깨끗하다 생각함을 뒤바뀌었다 함은 만일 나의 몸에는 한 가지도 부정한 것이 없나니 부정한 것이 없으므로 결정코 닦으리라. 청정한 곳에 들어갈 수 있거늘, 여래는 부정관(不淨觀)을 하셨으니, 이 말은 허망한 말이라고 말하면 이것을 뒤바뀌었다 하나니, 이것은 넷째 뒤바뀜이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바른 소견을 얻었사오니, 세존이시여, 이전의 우리는 모두 잘못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 이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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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8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12. 여래의 성품[如來性品]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25유에 나[我]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나라는 것은 여래장이라는 뜻이니,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진 것이 곧 나란 것이니라. 이 나란 것이 본래부터 한량없는 번뇌에 덮였으므로 중생들이 보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가난한 여인의 집안에 순금 독이 묻혀 있었는데, 집안 식구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무도 몰랐었다. 수단 많은 한 이상한 사람이 가난한 여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대에게 삯을 주리니 나를 위하여 풀을 매어 달라’고 하였다. 여인이 대답하되 ‘그렇게 할 수 없으나, 나의 아들에게 순금 독을 보여주면 그대의 일을 해 주겠소’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다시 말하되 ‘내가 그대의 아들에게 순금 독을 보여줄 수 있다’라고 하였다. 여인이 대답하되 ‘우리집 식구는 한 사람도 알지 못하는데 그대가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다시 말하되 ‘내가 아는 방법이 있다’라고 하였다. 여인이 대답하되 ‘나도 보고 싶으니 내게도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 집에서 순금 독을 파내었더니, 여인이 보고 매우 기뻐서 이상하게 여기면서 그 사람을 숭배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은 볼 수 없는 것이, 마치 순금 독을 가난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내가 이제 모든 중생에게 있는 불성이 번뇌에 가리웠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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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집에 있는 순금 독을 보지 못한 것 같으니라. 여래가 오늘 중생에게 있는 본각(本覺) 광을 보여주나니, 그것은 불성이니라. 모든 중생들이 이것을 보고는 기쁜 마음으로 여래에게 귀의하리라. 수단이라 함은 곧 여래요, 가난한 여인은 온갖 중생들이요, 순금 독은 불성이니라.
또 선남자야, 어떤 여인이 한 아들을 낳아 기르는데, 어린 아기가 병이 들었다. 그 여인이 걱정하면서 의사를 찾았는데, 의사가 와서 생소와 우유와 석밀 세 가지로 약을 만들어 주고 먹이게 하면서, 여인에게 말하기를 ‘아기가 약을 먹은 뒤에는 젖을 주지 말았다가 약이 소화된 후에 젖을 주라’고 하였다. 여인이 ‘쓴 맛을 젖꼭지에 바르고, 아기에게 젖에 독약을 발랐으니 빨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아기가 목이 마르고 허기져서 어머니의 젖을 빨려다가 독한 냄새를 맡고 멀리 떠나고 말았다. 먹은 약이 소화된 뒤에 어머니가 젖꼭지를 씻고 아기를 불러 젖을 주려 하였으나 아기는 먼저 독한 냄새를 맡은 연고로 주림을 참고 오지 아니하였다. 어머니가 다시 달래기를 ‘먼저는 네가 약을 먹었으므로 독약을 발랐었으나 지금은 약이 소화되었기에 독약을 씻었으니 걱정 말고 와서 먹으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아기가 차츰차츰 다시 젖을 빨게 되었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도 그러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고 내가 없는 법을 닦으라 하였으며, 그렇게 닦고는 나라는 마음을 아주 끊어 버리고 열반에 들게 하는 것이니, 세간의 허망한 소견을 덜려는 것이며, 세간보다 뛰어나는 법을 보이려는 것이며, 세간에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허망하고 참이 아님을 보이려는 것이며, 내가 없는 청정한 몸을 닦게 하려는 까닭이니라. 마치 여인이 아들을 위하여서 젖에 쓴 것을 바른 것처럼, 여래도 그러하여 공한 법을 닦게 하기 위하여 모든 법이 나랄 것이 없다고 말하였으며, 어머니가 젖을 씻고 아들을 불러 젖을 빨게 하듯이, 나도 그러하여 여래장을 말하는 것이므로 비구들은 공포심을 내지 말아야 하며, 저 아기가 어머니의 부르는 말을 듣고 다시 와서 젖을 빨듯이, 비구도 그와 같이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 없지 아니한 것을 분별하여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실로 내가 없겠습니다. 왜냐 하면 어린아기가 갓날 적에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만일 내가 있다면 나던 날에도 앎이 있어야 할 터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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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그러므로 결정코 내가 없는 줄을 아나이다. 만일 결정코 내가 있다면 태어난 뒤에는 죽는 일이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이 다 불성이 있어 항상 머문다면 무너짐이 없을 것이며, 만일 무너짐이 없을진댄 어찌하여 찰제리·바라문·비사·수타·전다라·축생의 차별이 있겠나이까. 지금도 업의 인연이 가지가지 같지 않고 여러 갈래가 각각 다름을 보겠나이다. 결정코 내가 있을진댄 모든 중생이 낫고 못함이 없을 것이오매, 이런 이치로 불성이 항상한 법이 아님을 결정코 알겠나이다. 만일 불성이 결정코 항상하다면 무슨 인연으로 죽이는 일, 훔치는 일, 음행하는 일, 이간하는 말, 욕설하는 말, 거짓말, 번드르르한 말, 탐욕, 성내는 일, 삿된 소견이 있사오며, 만일 나라는 성품이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술취한 뒤에는 아득하고 허황하나이까. 나란 성품이 항상하다면 소경도 빛을 보고 귀머거리도 듣고 벙어리도 말하고 절름발이도 걸어야할 것이며, 나란 성품이 항상하다면 불구렁·큰물·독약·칼·검·나쁜 사람·나쁜 짐승을 피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내가 항상하다면 한번 지낸 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잊지 않았다면 무슨 인연으로 내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 하오리까. 만일 내가 항상하다면 늙고 젊고 성하고 쇠하던 지난 일을 기억함이 없어야 할 것이오며, 내가 항상하다면 어느 곳에 머무나이까. 콧물·침·푸른 빛·누른 빛·붉은 빛·흰 빛 따위에 있나이까. 만일 내가 항상하오면 몸에 두루하였을 것이니, 참기름이 빈 데가 없는 것 같아서 몸을 끊을 적에는 나도 끊어질 것입니다.”
“선남자야, 어떤 임금의 집에 기운 센 장사가 있었는데, 그의 양미간에 금강주가 있었다. 그가 다른 장사와 떠받는 내기를 하다가 그 장사에게 받치어서 양미간 구슬이 살 속으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고 구슬 있던 데는 부스럼이 생겼다. 곧 의사를 불러 치료하게 하였더니 의사가 방문과 약을 잘 아는 터이라, 이 부스럼은 구슬이 몸에 들어간 까닭인 줄을 알았다. 구슬이 살 속에 박힌 줄을 알고는 장사에게 ‘그대의 양미간 구슬이 어디 있는가’라고 물었다. 장사가 놀라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의사 선생이여, 나의 구슬이 없어졌는가. 그 구슬이 지금 어디 있는가, 요술처럼 없어졌는가?’하며 걱정하며 울었다.
그 때에 의사는 장사를 위로하였다.
‘그대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떠받힐 적에 구슬이 몸으로 들어가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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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속에 박혔으며 지금도 그 모양이 밖으로 보입니다. 그대들이 다툴 적에 너무 성이 나서 구슬이 살에 박힌 줄을 모른 것입니다.’
이에 장사는 의사의 말도 믿지 않고 ‘만일 가죽 속에 있다면 고름과 피가 어째서 나오지 않으며, 만일 살 속에 박혔으면 보이지 않을 것이거늘, 그대가 왜 나를 속이느냐’고 하였다. 의사가 거울을 들어 얼굴을 비치니 구슬이 분명하게 거울에 나타났다. 장사가 그것을 보고야 놀라 탄식하며 이상하게 생각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선지식을 친근하지 못하였으므로 불성이 있는 것도 보지 못하며, 음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에 가리워졌으므로 지옥·축생·아귀·아수라·전다라·찰제리·바라문·비사·수타에 떨어져서 가지가지 문중에 태어나며, 마음으로 지은 가지각색 업으로 인하여 사람의 몸을 받더라도 귀먹고 눈멀고 벙어리 되고 앉은뱅이·곱사등이가 되어 25유에서 온갖 과보를 받으며,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마음을 가리워서 불성을 알지 못하며, 장사가 구슬이 몸 속에 있는 것을 모르고 잃었다고 하듯이, 중생들도 그러하여 선지식을 친근히 할 줄을 모르는 연고로 여래의 비밀한 보배 광을 알지 못하고 내가 없는 것을 배우며, 성인 아닌 이들이 비록 내가 있다고 말하나 나의 참 성품을 알지 못함과 같이, 나의 제자도 그러하여 선지식을 친근하지 못하므로 내가 없는 것을 닦으면서도 내가 없는 데를 알지 못하나니, 내가 없다는 참 성품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내가 있다는 참 성품이야 어떻게 알겠는가. 선남자야, 여래가 이렇게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저 의사가 장사에게 금강 구슬을 보여주는 것과 같으니, 중생들이 한량없는 번뇌에 덮이어서 불성을 알지 못하다가, 번뇌가 없어지면 그 때에야 분명히 증득하게 됨이, 마치 저 장사가 거울 속에서 구슬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여래의 비밀한 법장도 이와 같이 한량이 없어 헤아릴 수 없느니라.
또 선남자야, 설산에 낙미(樂味)라는 약이 있으니 맛이 매우 달고 깊은 숲속에 있으므로 사람이 잘 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냄새를 맡고 그곳에 이 약이 있는 줄을 안다. 지나간 세상에 어떤 전륜왕이 이 약을 얻으려고 설산에서 군데군데 나무통을 만들어 놓고 이 약을 받게 하였더니, 약이 성숙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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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땅에서 흘러 나와 통에 모이는데 그 맛이 진짜 맛이었다. 그 전륜왕이 죽은 뒤에는 약이 변하여서 시기도 짜기도 달기도 쓰기도 맵기도 싱겁기도 하여 본래 한 맛이던 것이 흐르는 곳을 따라 여러 가지로 변하였으나, 이 약의 참 맛은 산에 머물러 있어 마치 보름달 같았다. 박복한 사람들이 약을 얻으려고 공을 들여 땅을 파도 얻지 못하더니, 다른 전륜왕이 세상에 나서는 그의 복력으로 약의 진정한 맛을 얻었느니라. 선남자야, 여래의 비밀한 법장의 맛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의 숲 속에 묻혀 있으므로 무명이 두터운 중생들이 맛좋은 약을 보지 못하느니라. 불성이 번뇌로 말미암아 가지가지 맛을 내나니 소위 지옥·축생·아귀·천상·인간·남자·여자·남자 아닌 이·여자 아닌 이·찰제리·바라문·비사·수타 따위가 되지만, 불성은 웅장하고 용맹하여 깨뜨릴 수 없으므로 살해하지 못하느니라. 만일 살해할 수 있다면 불성이 끊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므로 불성은 끊을 수 없나니, 성품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은 옳지 아니하니라. 나의 성품은 곧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니, 이렇게 비밀한 법장을 무엇으로도 깨뜨리거나 소멸할 수 없으며, 비록 깨뜨리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건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면 증득하여 아나니, 이런 인연으로 살해할 이가 없느니라.”
“세존이시여, 살해할 이가 없다면 나쁜 업이 없겠나이다.”
“가섭이여, 참으로 살생하는 일이 있느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야, 중생의 불성이 5음 속에 있나니, 5음을 깨뜨리면 살생이라 할 것이며, 살생하면 나쁜 갈래에 떨어지느니라.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찰제리·바라문·비사·수타·전다라·남자·여자·남자 아닌 이·여자 아닌 이 따위와 25유의 차별이 있어 나고 죽는 데 헤매는 것이거늘, 성인 아닌 사람이 나에 대하여 크고 작은 모양을 억측할 적에 돌피씨 같다, 쌀 같다, 콩 같다, 엄지손가락 같다 하여, 가지각색 허망한 생각을 내지만 허망하게 생각하는 모양은 참되지 아니하니라. 세상을 뛰어난 나의 모양을 불성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를 생각함이 가장 선한 일이니라. 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땅 속에 있는 보물 독을 잘 알고 괭이로 땅을 파는데 모래와 자갈과 반석은 무난하게 파고 내려갈 수 있지만, 금강륜(金剛輪)에 이르면 뚫을 수 없나니, 금강륜은 창이나 도끼로는 깨뜨릴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중생의 불성도 그러하여 모든 언론가(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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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家)나 천마 파순이나 천상 사람 세간 사람으로는 깨뜨릴 수 없으며, 5음 모양은 만들어진 것이니 만들어진 것은 모래나 돌과 같아서 뚫을 수 있고 깨뜨릴 수 있지만, 불성인 참 나는 금강륜과 같아서 깨뜨릴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5음을 깨뜨리는 것을 살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불성은 결정코 이러하여 헤아릴 수 없는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방등경은 감로와도 같고 독약과도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방등경이 감로와도 같고 독약과도 같다고 말씀하십니까?”
“선남자야, 그대는 여래의 비밀한 법장의 진실한 이치를 알고자 하는가?”
“저는 참으로 여래의 비밀한 법장의 이치를 알고자 하나이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떤 이는 감로 먹고 단명하였고
어떤 이는 감로 먹고 장수했으며
어떤 이는 독약 먹고 살았다 하고
어떤 이는 독약 먹고 죽었다 하네.

걸림없는 지혜 감로 대승의 경전
대승경을 독약이라고도 하나니
타락·생소·제호 등 사탕까지도
잘 삭이면 약이고 못 삭이면 독이네.

방등경도 그러하여 지혜 있는 이는
감로라고 하지만 어리석은 이는
불성 알지 못해 독약이 되고
성문·연각·대승에겐 감로되나니.

말하자면 여러 가지 음식들 중에
우유가 제일 좋은 맛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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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정진하면 대승을 인해
대열반에 이르러서 상왕(象王) 되나니.

중생들로 불성 분명히 아는
가섭보살 같은 이는 위없는 감로
나지도 아니하고 죽지 않나니
가섭이여, 삼귀의를 잘 분별하라.

이와 같이 삼보에게 귀의하면
그 성품이 틀림없는 내 성품이니
내 성품에 불성 있는 이치를
그대들 분명하게 살펴본다면

그런 이는 부처님의 비밀법장에
들어가게 되는 줄을 마땅히 알라.
나와 내 것들을 모두 다 알고
곧 세상에서 뛰어나리라.

부처님과 법과 승가의 성품
제일이요 위없는 높은 이시니
내가 지금 연설하는 이런 게송은
그 성품과 그 이치가 이러하니라.

그 때에 가섭보살도 역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지금 삼보에 귀의할 데를
그런 법을 도무지 모르옵니다.
어떻게 하면 위없고 두려움 없는
그 경계에 나아가게 되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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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에 귀의할 줄 모르옵나니
어떻게 하면 내가 없게 되겠으며
어떻게 하면 부처님께 귀의하는 이
편안하게 위로함을 얻겠나이까.

어떻게 하면 대법보에 귀의할 수 있는지
바라건대 저를 위해 말씀하소서.
어떻게 하면 자재함을 얻게 되오며
어떻게 하면 자재하지 못하옵니까.

어떻게 하면 승가에 귀의하여서
위없는 큰 이익을 얻게 되오며
어떻게 하면 오는 세상 부처 이룰지
진실하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오는 세상 부처님을 못 이룬다면
어떻게 하여 삼보에 귀의할 수 있는지
저는 지금 아는 일이 전혀 없으나
차례차례 귀의하여 볼까 합니다.

어찌하여 아기를 배지도 않고
아들 낳을 생각을 가지랴만
반드시 태 가운데 아기 있으면
자식이 있는 이라 이름하리니.

아기가 태 가운데 만일 있다면
결정코 오래잖아 낳게 되오며
이를 일러 자식이라 이름하나니
중생들의 업보도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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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말씀하신 바와도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고
그 이치를 모르는 인연으로써
나고 죽는 지옥에서 헤매입니다.

이름만 빌려 가진 우바새들이
진실한 그런 이치 알지 못하니
바라건대 자세하게 분별하시어
저희들의 의심 그물 벗겨 주소서.

부처님의 대자비와 크신 지혜로
슬피 여겨 분별하심 드리우시어
여래의 비밀하신 보배 법장을
원하오니 저희들에게 말씀하소서.

가섭보살 그대들아, 마땅히 알라.
내가 지금 그대들을 모두 위하여
비밀한 큰 법장을 열어 보이어
얽혀 있는 의심 그물 끊게 하노니.

잘 들으라, 그대는 보살 중에서
일곱째 부처님과 이름 같나니
지성으로 부처님께 귀의하는 이는
진정한 우바새의 이름 얻으리.

여러 가지 천신에게 귀의치 말라.
법보에 귀의하면 살해 여의고
승보에 귀의하면 외도 멀리해
삼보에 귀의하면 공포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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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네.
저는 이미 삼보에 귀의했으니
이를 일러 보리로 가는 바른 길
여러 부처님들의 경계입니다.

삼보의 평등하신 그 모양에는
넓고 큰 지혜 성품 항상 있으며
우리들의 성품과 부처님 성품
둘도 없고 차별도 없다 합니다.

이런 길은 부처님의 찬탄하신 길
올바르게 나아가 있게 될 곳
옳게 알고 두루 아는 지견이오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칭찬하셨네.

나도 역시 부처님의 찬탄하옵신
위없는 그 길로 나아가리니
이것이 가장 좋은 감로이며
온 세상에 다시 없는 큰 길입니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 지금 성문이나 범부들처럼 삼보를 분별하지 말라. 이 대승경전에는 삼귀의의 차별한 모양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불성 가운데 법과 승이 있지만 성문과 범부들을 교화 제도하기 위하여 삼보가 모양이 다름을 분별하여 말한 것이니, 선남자야, 만일 세간법을 따르려면 삼귀의가 있다고 분별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나의 이 몸이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였으니 만일 이 몸이 불도를 이룬다면 이룬 뒤에는 다른 세존에게 공경하고 예배하고 공양하지 아니할지니, 왜냐 하면 부처님들이 평등하여 다 같이 중생의 귀의할 바가 되는 까닭이며, 법신 사리를 존중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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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처님의 탑에 예경할 것이니, 왜냐 하면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함이며, 중생들로 하여금 나의 몸 가운데 탑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예배하고 공양하게 하였으니, 이런 중생들이 나의 법신으로 귀의할 곳을 삼음이니라.
모든 중생들이 참되지 아니한 거짓 법에 귀의하므로 내가 차례로 참 법을 말하는 것이며, 또 참된 스님이 아닌 이에게 귀의하는 이가 있으면 내가 참 스님에게 귀의할 곳을 지을 것이며, 만일 삼귀의를 분별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마땅히 한 귀의할 곳을 지어 세 가지 차별이 없게 할 것이며, 배냇소경들의 눈이 되며, 또 성문과 연각들을 위하여 참말 귀의할 곳을 지을 것이니, 선남자야, 보살이 이렇게 한량없는 나쁜 중생들과 지혜 있는 이들을 위하여 부처님 일을 짓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전장에 나아가 싸울 때에 생각하기를 ‘내가 이 가운데 가장 제일이 되었으니 모든 병사들이 나를 의지한다’ 하며, 또 태자가 생각하기를 ‘내가 다른 왕자들을 모두 조복하고 대왕의 자리를 이어서 자재할 것이며, 모든 왕자들로 하여금 내게 귀의케 할 것이므로 못난이의 마음을 내지 아니하리라’ 하며, 왕과 왕자와 같이 대신들도 또한 그러하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생각하기를 ‘어떻게 하면 세 가지 일을 나와 한 몸처럼 만들 것인가’ 한다. 선남자야, 내가 보여준 세 가지 일은 곧 열반이요, 여래는 위가 없는 이다. 비유컨대 사람의 몸에는 머리가 가장 위가 되고 다른 팔다리나 손발은 위가 아닌 것처럼,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가장 높은 것이요, 법이나 스님은 아니다. 세간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가지가지로 차별한 모양을 나타낸 것이 사다리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그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는 것같이 삼귀의가 다르다는 모양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니, 그대는 대승에 대하여 용맹하게 결단하기를 강철로 만든 칼과 같이 하라.”
“세존이시여, 제가 알면서 일부러 물은 것이옵고 몰라서가 아니옵니다. 저는 매우 용맹한 보살들을 위하여 때가 없고 깨끗하게 행동할 것을 묻사와 여래로 하여금 보살들을 위하여 기특한 일을 널리 분별케 하오며 대승 방등경전을 말씀하게 하였던 것이온데, 여래께서 지금 대자대비로 말씀하였사오니, 저도 그 가운데 말씀하신 보살의 깨끗이 행동할 곳에 편안하게 머무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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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대열반경을 연설함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역시 중생들을 위하여 그러한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선양하겠사오며, 또한 참으로 삼귀의할 곳을 증득하여 알겠나이다. 어떤 중생이 이러한 대열반경을 믿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은 저절로 삼귀의할 곳을 분명하게 알 것이오니, 왜냐 하면 여래의 비밀한 법장에는 불성이 있는 터이므로 이런 경전을 선양하여 말하는 이는 모두 몸 가운데 불성이 있다고 말하나이다. 이런 사람은 삼귀의할 곳을 먼 데서 구하지 아니할 것이오니, 왜냐 하면 오는 세상에는 내 몸도 삼보를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문·연각과 다른 중생들이 모두 저에게 귀의하여 공경하고 예배하여야 하며, 선남자들이 이런 뜻으로 대승경전을 배워야 하나이다.”
가섭보살이 또 말하였다.
“불성이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으니 32상과 80종호도 헤아릴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그대가 깊고 훌륭한 지혜를 성취하였으니, 내가 이제 그대에게 여래장에 들어가도록 말하리라. 만일 내가 머문다면 그것은 항상한 법이니 괴로움을 여의지 못하고, 만일 내가 없다면 깨끗한 행을 닦아도 이익이 없으리라. 모든 법이 내가 없다고 말하면, 그것은 아주 없다는 소견[斷見]이요, 내가 머문다면 그것은 항상하다는 소견이며, 모든 변천하는 법이 무상하다고 말하면 그것은 아주 없다는 소견이요, 모든 행법이 항상하다는 것은 곧 항상한 소견이며, 만일 괴롭다고 말하면 곧 아주 없다는 소견이요, 즐겁다고 말하면 그것은 항상한 소견이니라. 온갖 법이 항상하다는 것을 닦는 이는 항상하다는 소견에 떨어지리니, 마치 자벌레가 앞발로 인하여 뒷발을 옮기듯이, 항상하다는 소견과 아주 없다는 소견을 닦는 이도 그와 같아서, 반드시 아주 없다는 소견이나 항상하다는 소견을 말미암아 되느니라. 그런 이치로 다른 법이 괴롭다고 닦는 이는 선하지 못하다 하고, 다른 법이 즐겁다고 닦는 이는 선하다 하며, 다른 법이 내가 없다고 닦는 이는 번뇌의 장본이요, 다른 법이 항상하다고 닦는 이는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라 하나니, 열반은 굴택(窟宅)이 없다는 것이니라. 다른 무상한 법을 닦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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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이요, 다른 항상한 법을 닦는 것은 불·법·승 삼보와 바른 해탈이니, 이러하여 불법의 중도(中道)는 두 가지 극단[二邊]을 여의고 진정한 법을 말하는 것이므로,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도 여기에는 의심이 없는 것이, 마치 병에 걸린 사람이 생소를 먹고 기운이 상쾌하여지는 것과 같으니라.
있다 없다 하는 법의 성품이 일정치 아니함이 마치 4대(大)의 성품이 같지 아니하여 제각기 어긋나거든, 용한 의사는 그것을 잘 알고 그의 치우쳐 일어남을 따라 다스림 같으니라. 선남자야, 여래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용한 의사가 되어 모든 번뇌의 자체와 모양이 다른 것을 알아 끊어 버리고, 여래의 비밀한 법장에 청정한 불성이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음을 보이느니라. 만일 있다고 말하여도 지혜가 물들지 않아야 하며, 없다고 말하면 곧 허망한 말이니라. 있다고 말하거든 잠잠하지도 말며 희롱거리로 다투지도 말고, 법의 참된 성품을 알아야 할 것이니 범부들이 희롱거리로 다투는 것은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연고니라.
만일 괴롭다고 말하면 어리석은 이는 이 몸이 무상하다 하여 모든 것이 괴롭다고 생각하고 몸에 즐거운 성품이 있음을 알지 못하며, 무상하다고 말하면 범부들은 모든 몸이 모두 무상하여 날기와 같은 줄로 알거니와,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잘 분별하여 모든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말하지 말지니, 왜냐 하면 나의 몸에 불성의 종자가 있는 까닭이니라. 만일 내가 없다고 말하면 범부들은 모든 불법이 모두 내가 없다고 생각하려니와, 지혜로운 이는 내가 없다는 것이 일부러 하는 말이요 실답지 아니함을 분별할 것이며, 그렇게 알고는 의심하지 말지니라. 만일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 고요하다[空寂]고 말하면 범부들이 듣고는 아주 없다는 소견을 내려니와, 지혜로운 이는 잘 분별하여 여래는 항상하여 변함이 없음을 알며, 해탈이 마치 환술과 같다고 말하면 범부들은 참 해탈을 얻더라도 곧 소멸하리라 여기거니와, 지혜로운 이는 잘 분별하여 사람 중의 사자(師子)는 비록 가고 옴이 있더라도 항상 머물고 변함이 없음을 아느니라.
만일 무명의 인연으로 모든 행(行)이 있다 하면 범부들이 듣고는 분별을 일으키어 명(明)과 무명이 두 가지라는 생각을 내려니와, 지혜로운 사람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닌 줄을 통달하여 둘이 아닌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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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며, 모든 행의 인연으로 식(識)이 있다 하면 범부들은 행과 식이 둘이라고 생각하려니와,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없는 줄을 알고서 둘이 없는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이라 하리라. 만일 10선(善), 10악(惡)·하여서 쓸 것, 하여서는 못쓸 것, 좋은 갈래, 나쁜 갈래, 흰 법[白法], 검은 법[黑法]을 말하면 범부는 둘이라 말하려니와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없음을 알고 둘 없는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이라 할 것이며, 만일 온갖 법이 괴로운 것임을 닦으라고 말하면 범부는 둘이라 하려니와,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없음을 알고, 둘 없는 성품이 실다운 성품이라 할 것이며, 만일 모든 행법이 무상하고 여래의 비밀한 법장도 무상하다 말하면 범부는 둘이라 하려니와,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없음을 알고, 둘 없는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이라 할 것이며, 만일 온갖 법이 내가 없고 여래의 비밀한 법장도 내가 없다고 말하면 범부들은 둘이라 하려니와, 지혜로운 이는 그 성품이 둘이 없고 둘 없는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임을 아느니라. 나와 내가 없음은 성품이 둘이 아니니,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 이치가 그러하여 말할 수 없고 한량없고 가없는 부처님들이 칭찬한 것이며, 나도 지금 온갖 공덕을 성취한 경에서 모두 말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나와 내가 없음의 성품과 모양이 둘이 없으니, 그대는 마땅히 이렇게 받아 지닐지니라.
선남자야, 그대도 마땅히 이런 경전을 굳게 지키고 기억하려니와, 내가 먼저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 말하기를 ‘나와 내가 없음이 둘이 아니니, 마치 젖으로 말미암아 타락이 생기고 타락에서 생소가 생기고 생소에서 숙소가 생기고 숙소로부터 제호를 얻는 것과 같으니라’ 하였다.
이러한 타락의 성질이 젖에서 생기는가, 스스로 나는가, 다른 데서 나는가. 내지 제호의 성질도 그와 같으니라. 만일 다른 데서 난다면, 곧 다른 것으로 만드는 것이므로 젖에서 생긴 것이 아니요, 젖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면 젖은 소용이 없을 것이며, 만일 스스로 난다면 비슷한 것이 계속되어서[相似相續] 나는 것이 아닐 것이며, 만일 서로 계속되어서 난다면 한꺼번에 나지 아니할 것이니, 한꺼번에 나지 않는다면 다섯 가지 맛이 한 때에 나지 아니할 것이니라. 비록 한 때에 나지 않더라도 다른 데서 오는 것은 아니니, 그러므로 알아라. 젖 속에 본래 타락의 거리[資料]가 있지만, 단맛이 많아서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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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로 변하지 못하는 것이며, 내지 제호도 그와 같으니라. 소가 물과 풀을 먹는 인연으로 혈맥이 점점 변화하여져서 젖이 되는 것이니, 단 풀을 먹으면 젖이 달아지고 쓴 풀을 먹으면 젖맛이 써지느니라. 설산에 비이(肥膩)라는 풀이 있는데, 소가 그 풀을 먹으면 순전한 제호가 생기어서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고 검은 빛이 없나니, 곡식이나 풀의 인연으로 젖의 빛깔과 맛이 다르니라. 모든 중생들이 명(明)과 무명의 업인 인연으로 두 가지 모양이 생기는 것이니, 만일 무명이 달라지면 변하여서 명이 되는 것이며, 모든 법의 선한 것과 선하지 아니한 것도 그와 같아서 두 가지 모양이 없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에 젖 속에 타락이 있다는 이치는 어떠하오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젖 속에 타락거리가 있지만, 너무 미세하여서 보지 못한다면, 어찌 젖의 인연으로 타락이 난다고 말하오리까? 무슨 법이든지 본래 없던 것을 난다고 말하는데, 이미 있는 것이면 어찌 난다고 말하오리까? 만일 젖 가운데 결정코 타락거리가 있다고 말할진댄 온갖 풀 가운데도 젖이 있어야 하고 그와 같이 젖 가운데도 풀이 있어야 할 것이며, 만일 젖 가운데 결정코 타락이 없다면 어찌하여 젖으로 인하여서 타락이 생기나이까? 법이 본래 없었는데 뒤에 생긴다 하오면 젖 가운데서 왜 풀은 나지 않나이까?”
“선남자야, 젖 가운데 결정코 타락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고, 다른 데서 난다고도 말할 수 없느니라. 만일 젖 가운데 결정코 타락이 있을진댄 어찌하여 그 자체와 맛이 각각 다르냐.
그러므로 젖 가운데 결정코 타락이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젖 가운데 결정코 타락이 없을진댄 젖 속에 어찌하여 토끼의 뿔은 나지 않으며 젖 속에 독약을 넣으면 타락이 사람을 죽게 하나니, 그러므로 젖 가운데 결정코 타락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만일 타락이 다른 데서 난다면, 어찌하여 물에서는 타락이 생기지 않느냐. 그러므로 타락이 다른 데서 난다고도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이 소가 풀을 먹은 인연으로 피가 변하여 희어지고, 풀과 피가 없어지고는 중생의 복력으로 변하여서 젖이 되나니, 젖이 비록 풀과 피로 좇아 나지만 두 가지에서 난다고 말할 수 없고, 인연으로 좇아서 난다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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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며, 타락으로부터 제호에 이르는 것도 그와 같나니, 이러한 이치로 소의 맛[牛味]이라 하느니라. 젖이 없어지는 인연으로 타락이 되나니, 어떠한 인연인가. 괴는[酢] 것과 가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으로 생긴다는 것이며, 내지 제호가 되는 것도 그와 같으니, 그러므로 젖 가운데 결정코 타락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다른 데서 난다면 젖을 여의고 있게 되는 것이니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명과 무명도 그와 같아서 만일 번뇌의 결박과 함께하면 무명이라 하고, 모든 선한 법과 함께하면 명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두 가지 모양이 없다고 내가 말하느니라. 이런 인연으로 내가 먼저 말하기를 설산에 비이라는 풀이 있는데 소가 먹으면 제호가 된다고 한 것이니,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중생이 박복하여 그 풀을 보지 못하듯이, 불성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덮이어서 중생들이 보지 못하느니라. 마치 바닷물이 비록 한결같이 짜지만 그 속에도 젖과 같이 훌륭한 물이 있으며, 설산이 비록 여러 가지 공덕으로 많은 약초가 나지만 독한 풀도 있듯이, 중생의 몸도 그러하여 비록 독사 같은 4대의 종자가 있지만 그 가운데도 묘한 약이 있으니, 곧 불성이며, 이는 만들어 되는 것이 아니요, 다만 번뇌에 덮였으므로 찰리·바라문·비사·수타들이 누구나 번뇌를 끊기만 하면 불성을 보아 위없는 보리를 이루느니라. 마치 허공에서 번개와 우레가 구름을 일으키면 모든 코끼리의 어금니에 꽃이 생기고 우레가 없으면 꽃이 생기지도 않고 이름도 없듯이,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에 덮였으므로 보지 못하나니, 그래서 중생은 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만일 이 대반열반이란 미묘한 경전을 듣기만하면 불성을 보게 되는 것이 코끼리 어금니의 꽃과 같거니와, 비록 다른 경전의 온갖 삼매를 듣더라도 이 경을 듣지 못하면 여래의 미묘한 모양을 알지 못하나니, 마치 우레가 없을 적에는 코끼리 어금니의 꽃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으며 이 경을 들으면 모든 부처님의 비밀한 법장의 불성을 아느니라. 우레가 있을 적에는 코끼리 어금니의 꽃을 보게 되듯이, 이 경을 들으면 한량없는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음을 알지니라. 이러한 이치로 대반열반경이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라 말하며, 법신을 기르는 것이, 우레가 있을 때에 코끼리의 어금니 위에 꽃과 같나니, 이러한 큰 이치를 기르는 것이므로 대반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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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이름하느니라. 만일 선남자·선여인으로서 이 미묘한 대반열반경을 익히는 이는 능히 부처님 은혜를 갚을 것이며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가 되리라.”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시는 불성은 깊고 깊어서 보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사오니,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나이다.”
“선남자야, 참으로 그러하니라. 그대의 찬탄함이 나의 말에 어기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불성은 어찌하여 깊고 깊어서 보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습니까?”
“선남자야, 여러 소경들이 눈을 치료하려고 용한 의사에게 찾아갔는데, 의사가 쇠 젓가락[金錍]로 눈의 막을 째고 한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보이느냐고 물었다. 소경이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다시 두 가락 또 세 가락을 들어 보이니, 그 때서야 조금 보인다고 대답하는 것같이 선남자야,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도 여래가 아직 말씀하시지 않았을 때는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보살들이 모든 바라밀과 내지 10주(住)를 구족하게 행하더라도 불성을 보지 못하다가, 여래가 이 경을 말한 뒤에야 조금 보았으며, 보고는 모두 말하기를 ‘이상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우리가 한량없는 생사에 헤매면서 항상 내가 없다는 소견에 의혹되었나이다’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와 같이 보살이 지위가 10지에 올라서도 불성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거늘, 하물며 성문·연각들이 어떻게 볼 수 있겠느냐.
또 선남자야, 마치 허공에 기러기를 쳐다볼 적에 허공인지 기러기인지 모르다가 자세하게 보고야 어렴풋이 보이듯이, 10주 보살이 여래의 성품을 조금만 보는 것도 그와 같거늘, 하물며 성문·연각들이 볼 수 있겠느냐. 선남자야, 술취한 사람이 먼 길을 떠나려 할 적에 어렴풋이 길을 짐작할 수 있듯이, 10주 보살이 여래의 성품을 조금만 보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목마른 사람이 넓은 벌판에 여행할 적에, 목마름이 급하여 물을 찾다가 나무 숲에 흰 학이 있는 것을 보았으나,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가 나무인지 물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자세히 보고서야 흰 학과 나무 숲을 알아보듯이, 선남자야, 10주 보살이 여래의 성품을 조금만 보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백천 유순쯤 먼 큰 바다 가운데 있으면서, 멀리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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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의 망루[樓櫓]집을 바라보고 망루인가 허공인가 의심하다가, 오래오래 보고야 비로소 결정한 마음이 생기어 망루인 줄을 알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 속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어떤 왕자가 허약한 몸으로 밤이 새도록 놀다가 이튿날 새벽에 모든 것을 보아도 분명하지 못하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매우 분명하지 못하리라. 또 선남자야, 마치 벼슬하는 신하가 나랏 일에 골몰하다가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올 적에 번갯빛이 잠깐 번쩍 하는데 소의 떼를 보고 소의 떼인지 구름인지 집인지 망설이다가 오랫동안 보고서야 소인 줄을 짐작하나 오히려 분명히 결정하지 못하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면서도 분명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또 선남자야, 계행을 가지는 비구가 벌레 없는 물을 보면서도 벌레 비슷한 모양을 보고 꾸물 꾸물하는 것이 벌레인가 티끌인가 망설이다가 오래오래 보고서 비록 티끌인 줄을 짐작하지만 오히려 분명하지 못하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분명하지 못하니라. 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어스름한 밤에 멀리 있는 아이를 보고 소인지 사람인지 새인지 망설이다가 오래오래 보고는 어린 아이인 줄을 짐작하지만, 오히려 분명하지 못하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분명하지 못하니라. 또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어스름한 밤에 보살의 화상을 보고 보살의 화상인가 자재천의 화상인가 대범천의 화상으로서 옷이 퇴색되었는가 생각하다가 오래오래 보고는 비록 보살의 화상인 줄 짐작하지만, 그래도 분명하지 못하듯이, 10주 보살이 자기의 몸에서 여래의 성품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그리 분명하지 못하니라. 선남자야, 불성이 이렇게 깊고 아득하여 보기 어려운 것이니, 부처님만이 보는 것이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미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지혜로운 이가 이렇게 분별하여서 여래의 성품을 알지니라.”
“세존이시여, 부처의 성품이 이렇게 미세하여 알기 어렵사오면, 어떻게 육안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선남자야,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도 2승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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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만, 경전을 따라서 믿음으로 아는 것같이, 선남자야, 성문과 연각이 이런 대반열반경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몸에 여래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아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그러므로 대반열반경을 부지런히 익혀야 하나니, 선남자야, 이러한 불성은 부처님만이 아는 것이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미칠 수 없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성인이 아닌 범부들은 중생의 성품이 있으니 모두 내가 있다고 말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어떤 두 사람이 서로 친구가 되었는데, 하나는 왕자요 하나는 빈천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왕래하였는데, 그 때 왕자에게 훌륭하고 기묘한 칼이 있는 것을 보고, 빈천한 사람이 탐을 내었다. 그 뒤에 왕자는 그 칼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도망하여 가고, 빈천한 사람이 다른 집에서 자다가 ‘칼 칼’ 하면서 잠꼬대하는 것을 곁에 사람이 듣고 그 사람을 끌고 임금에게 갔더니, 왕이 묻기를 ‘네가 칼 칼 하였으니 그 칼을 내게 보여라’ 하니, 그 사람이 전후 사실을 갖추어 말하고, ‘대왕께서 지금 신의 몸을 도륙하고 손발을 찢더라도 칼은 얻을 수 없나이다. 신이 왕자와 친하였으므로 함께 다니면서 눈으로 칼을 보았사오나, 감히 손으로 만지지도 못하였사온데 어찌 가졌을 리가 있겠나이까’ 하였다. 왕이 또 묻기를 ‘그대가 본 칼은 모양이 어떠하였는가’라고 하자, 빈천한 사람이 ‘양[羖羊]의 뿔과 같다’라고 대답하였더니, 왕이 듣고는 흔연히 웃고 말하기를 ‘너는 지금 가고 싶은 데로 가고 무서워하지 말라. 나의 광에는 그런 칼이 없거니, 하물며 왕자에게서 보았겠느냐’ 하고는, 여러 신하들에게 묻기를 ‘그대들은 그런 칼을 본 일이 있느냐’ 하며, 말을 마치고는 얼마 후 죽었다. 이윽고 다른 아들을 세워 왕위를 잇게 하였더니, 그 왕이 또 신하들에게 묻기를 ‘그대들은 궐내의 광에서 그 칼을 본 일이 있는가’라고 하자 신하들이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고, 다시 그 모양이 어떻더냐고 물으니 신하들이 양의 뿔과 같더라고 대답하였다. 왕은 나의 광에 그런 칼이 있을 리가 있느냐고 하였다. 이렇게 차례차례로 네 임금이 모두 검사하여 보았으나 그런 칼을 찾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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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지 얼마 후에 도망하였던 왕자가 다른 나라로부터 다시 본국에 돌아와서 왕이 되었고, 왕이 된 뒤에 다시 신하들에게 그 칼을 보았느냐고 물으니, 모두 보았노라 대답하였고, 또 그 모양이 어떻더냐고 물었더니, ‘대왕이시여, 빛이 깨끗하여 우발라꽃 같습니다’ 하고, 어떤 이는 모양이 양의 뿔 같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빛이 붉어서 불더미 같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검은 뱀 같다고 대답하였다. 그 때에 임금이 크게 웃으며’그대들은 모두 내 칼의 참 모양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세상에 나서 나의 진실한 모양을 설명하고 말하고는 곧 떠나간 것은 마치 왕자가 훌륭한 칼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도망한 것과 같고, 어리석은 범부들이 ‘모든 것이 내가 있다, 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빈천한 사람이 다른 집에서 자다가 ‘칼 칼’ 하고 잠꼬대하던 것과 같고, 성문·연각이 중생들에게 묻기를 내가 어떤 모양인가 하니 어떤 이는 나의 모양이 엄지손가락 같다 하고, 혹은 쌀 같다 하고, 혹은 피의씨[稗子] 같다고 하며, 어떤 이는 나의 모양이 마음 속에 있는데 해처럼 찬란하다고 하니, 이와 같이 중생들이 나의 모양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신하들이 칼의 모양을 모르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이 이렇게 나를 말하는 것을, 범부들이 알지 못하고 가지각색으로 분별을 내어 나라는 모양을 짐작하여 보는 것은 마치 칼의 모양이 양의 뿔 같다고 대답함과 같나니, 범부들이 차례차례로 계속하여 가면서 잘못된 소견을 일으키므로, 그런 소견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여래가 일부러 내가 없다고 말하였으니, 마치 왕자가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광에는 그런 칼이 없었다’고 한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오늘 여래가 말하는 참 나는 이름이 불성이니, 이러한 불성은 나의 불법 중에서 훌륭한 칼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만일 범부로서 옳게 말하는 이는 곧 위없는 불법을 따르는 이요, 잘 분별하여 이것을 따라서 말하는 이는 곧 보살의 모양인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13. 문자에 대해서(文字品)

부처님께서 또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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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있는 가지각색 다른 언론과 주술과 말과 글자는 모두 부처님이 말씀한 것이요, 외도가 말한 것이 아니니라.”
가섭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글자의 근본입니까?”
“선남자야, 처음에 반쪽 글자[半字]를 말하여 근본을 삼아 가지고 모든 언론과 주술과 문장과 5음의 실제 법을 기록하게 하였으므로, 범부들은 이 글자의 근본을 배운 뒤에야 바른 법인지 잘못된 법인지를 알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글자라는 것은 그 뜻이 어떠합니까?”
“선남자야, 열네 가지 음을 글자의 뜻이라 이름하고, 글자의 뜻을 열반이라 하며, 항상한 것이므로 흘러 변하지 않느니라. 만일 흐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함이 없는 것이요, 다함이 없는 것은 곧 여래의 금강 같은 몸이니라. 이 열네 가지 음을 글자의 근본이라 하느니라.
짧은 아(阿, a)는 파괴하지 못함이요,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삼보니 마치 금강과 같으니라. 또 아는 흐르지 않음이요, 흐르지 않는 것은 여래니, 여래의 아홉 구멍에는 흐를 것이 없으므로 흐르지 않으며, 또 아홉 구멍이 없으므로 흐르지 않나니, 흐르지 않는 것은 항상하고 항상함은 곧 여래니, 여래는 짓는 것이 없으므로 흐르지 않느니라. 또 아는 공덕이라 하나니, 공덕은 곧 삼보라, 그러므로 아(a)라 하느니라.
다음에 긴 아(阿, )는 이름이 아사리(阿闍梨)니 아사리란 뜻은 무엇인가? 세간에서 성인이라 하니, 어째서 성인이라 하는가? 성인은 집착이 없음이니, 욕심이 없어 만족한 줄을 알므로 청정이라고도 하느니라. 3유(有)에서 흐르는 나고 죽는 바다에서 중생들을 제도하므로 성인이라 하느니라. 또 아( )는 제도(制度)라고 하나니, 깨끗한 계행을 지키고 위의를 잘 차리느니라. 또 아( )는 성인을 의지함이라 하나니, 위의와 거동을 배우고 삼보를 공양하고 공경하여 예배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대승을 배우는 것이니라. 선남자·선녀인으로 계율을 잘 지키는 이와 보살마하살을 성인이라 하느니라. 또 아( )는 가르침이라 이름하나니, ‘너희들은 이런 일은 하고 이런 일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위의답지 못한 일을 못하게 하는 이를 성인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아( )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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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伊, i)는 곧 부처님 법이니, 범행(梵行)이 넓고 크고 깨끗하여 때가 없음이 보름달 같으며, 너희들은 이런 일은 하고 이런 일은 하지 말며, 이것은 옳은 것이요 이것은 옳지 않은 것이며,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요 이것은 마군의 말이라 하므로 이(i)라 이름하느니라.
긴 이(伊, )는 부처님 법이 미묘하고 깊어서 얻기 어려움이니, 마치 자재천과 대범천왕의 법을 자재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만일 이것을 보호하면 법을 보호한다고 하는 것이며, 또 자재라 함은 세상을 보호하는 사천왕[四護世]이라 하나니, 이 네 가지 자재하는 이는 대반열반경을 거두어 보호하며, 또 자재하게 선전하고 연설하느니라. 또 이( )는 자재하기 위하여 말하나니, 그것은 방등경전을 닦아 익히는 것이니라. 또 이( )는 질투를 끊으려는 것이니, 돌피를 뽑는 것 같아서 모두 길상한 일로 변하는 것이므로 이( )라 하느니라.
짧은 우(憂, u)는 모든 경전 중에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자꾸 늘어나는 것이니 곧 대열반이니라. 또 우(u)는 여래의 성품이어서 성문이나 연각은 듣지 못하는 것이니 모든 곳에서 북쪽의 울단월이 가장 훌륭하듯이, 보살이 이 경을 들어 가지면 모든 중생에게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므로 우(u)라 하느니라.
긴 우(憂, )는 마치 우유가 모든 맛 가운데 상품이 되듯이, 여래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모든 경전 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 되며, 만일 비방한다면 이 사람은 소와 다를 것이 없느니라. 또 우( )는 이 사람을 지혜와 바른 생각이 없는[無慧正念]이라 이름하며,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비방하면 이 사람은 매우 불쌍한 것이니,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여의고 내가 없다는 법을 말하므로 우( )라 하느니라.
열(·, e)은 부처님들 법의 성품인 열반이므로 열(e)이라 하느니라.
야(野, ai)는 여래란 뜻이며, 또 야(ai)는 여래의 나아가고 멈추고 굽히고 펴는 동작이 중생을 이익케 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야(ai)라 하느니라.
오(烏, o)는 번뇌란 뜻이니, 번뇌는 루(漏)라고 하거니와, 여래는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었으므로 오(o)라 하느니라.
포(炮, au)는 대승이란 뜻이니, 14음에서 이것이 나중이 되듯이, 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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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도 이와 같아서, 모든 경과 논에서 가장 나중이므로 포(au)라 하느니라.
암(菴, am)은 모든 부정한 것을 막음이니, 부처님 법에서는 온갖 금과 은과 보물을 버리므로 암(am)이라 하느니라.
아(痾, ah)는 훌륭한 법이란 뜻이니, 왜냐 하면 이 대승경전인 대열반경은 모든 경 가운데 가장 훌륭하므로 아(ah)라 하느니라.
가(迦, ka)는 모든 중생들에게 대자대비를 일으키는 것이니, 아들이란 생각 내기를 라후라와 같이하여, 묘하고 선한 뜻을 지으므로 가(ka)라 하느니라.
가(呿, kha)는 착하지 아니한 벗이라 하나니, 착하지 아니한 벗은 잡되고 더러움을 이름하며,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믿지 아니하므로 가(kha)라 하느니라.
가(伽, ga)는 장(藏)이라 이름하니, 장은 여래의 비밀한 장을 말함이며,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으므로 가(ga)라 하느니라.
무거운 음 가(伽, gha)는 여래의 항상한 음이니, 무엇을 여래의 항상한 음이라 하는가. 여래는 항상 머물고 변역하지 않으므로 가(gha)라 하느니라.
아(我, na)는 온갖 행을 파괴하는 모양이니 그러므로 아(na)라 하느니라.
차(遮, ca)는 곧 닦는다는 뜻이니 모든 중생들을 조복하는 것을 닦는다 하며, 그러므로 차(ca)라 하느니라.
차(車, cha)는 여래가 모든 중생들을 가리워 주는 것이니 마치 큰 일산과 같으므로 차(cha)라 하느니라.
자(闍, ja)는 곧 바른 해탈로서 늙는 모양이 없으므로 자(ja)라 하느니라.
무거운 음 자(闍, jha)는 번뇌가 성한 것이니, 빽빽한 숲과 같으므로 자(jha)라 하느니라.
약(若, na)은 지혜란 뜻이니, 참된 법의 성품을 알므로 약(na)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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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吒, ta)는 염부제에서 몸을 반쯤 나타내고 법을 연설하는 것이니, 반달과 같으므로 타(ta)라 하느니라.
타(佗, tha)는 법신이 구족함이니, 보름달과 같으므로 타(tha)라 하느니라.
다(茶, da)는 어리석은 중이니, 항상함과 무상함을 알지 못함이 어린아이와 같으므로 다(da)라 하느니라.
무거운 음 다(茶, dha)는 스승의 은혜를 알지 못함이니 마치 숫양[羝羊]과 같으므로 다(dha)라 하느니라.
나(拏, na)는 성인이 아니라는 뜻이니, 마치 외도와 같으므로 나(na)라 하느니라.
타(多, ta)는 여래가 저기에서 비구들에게 말하기를 ‘놀라고 두려움을 여의라, 너희들에게 미묘한 법을 말하리라’ 하므로 타(ta)라 하느니라.
타(他, tha)는 어리석다는 뜻이니, 중생들이 생사에서 헤매기를 자기의 실로 몸을 얽는 누에와 같으므로 타(tha)라 하느니라.
다(陀, da)는 크게 베풂이니 이른바 대승이라, 그러므로 다(da)라 하느니라.
무거운 음 다(陀, dha)는 공덕을 칭찬함이니, 이른바 삼보가 수미산처럼 높고 가파르고 커서 뒤바뀌지 않으므로 다(dha)라 하느니라.
나(那, na)는 삼보가 편안히 머물러 기울어지지 않음이 문지방과 같으므로 나(na)라 하느니라.
파(波, pa)는 뒤바뀌었다는 뜻이니, 만일 삼보가 모두 없어졌다고 말하면, 이 사람은 스스로 의혹하는 것이므로 파(pa)라 하느니라.
파(頗, pha)는 세간의 재앙이니, 만일 세간의 재앙이 일어날 때에는 삼보도 끝난다고 말하면, 이 사람은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성인의 뜻을 어기는 것이므로 파(pha)라 하느니라.
바(婆, ba)는 부처님의 10력(力)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바(ba)라 하느니라.
무거운 음 바(婆, bha)는 무거운 짐이라 하나니, 위없는 바른 법을 짊어질 수 있으며 이 사람이 대보살임을 알지니, 그러므로 바(bha)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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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마(摩, ma)는 보살들의 엄숙한 제도(制度)니, 대승의 대반열반이므로 마(ma)라 하느니라.
야(耶, ya)는 보살들이 간 데마다 중생들을 위하여 대승법을 말하는 것이므로 야(ya)라 하느니라.
라(囉, ra)는 탐욕·성냄·어리석음을 깨뜨리고, 진실한 법을 말하므로 라(ra)라 하느니라.
가벼운 음 라(羅, la)는 성문승은 흔들리고 머물러 있지 않으며, 대승은 편안하여 흔들리지 않음이라 하나니, 성문승을 버리고 위없는 대승을 부지런히 닦으므로 라(la)라 하느니라.
화(和, va)는 여래 세존께서 중생들에게 큰 법비를 내림이라 하나니, 세간의 주문·술법의 경전이라, 그러므로 화(va)라 하느니라.
사(賖, a)는 세 가지 화살을 멀리 떠남이니, 그러므로 사( a)라 하느니라.
사(沙, sa)는 구족하다는 뜻이니 이 대열반경을 들으면 곧 온갖 대승 경전을 듣고 지니는 것이므로 사(sa)라 하느니라.
사(娑, sa)는 중생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며 마음을 즐겁게 함이니, 그러므로 사(sa)라 하느니라.
하(呵, ha)는 마음이 즐거움이라 하나니, 신기하게 세존은 온갖 행을 여의었고, 이상하게 여래께서 반열반에 드시므로 하(ha)라 하느니라.
라(羅, lam)는 마군이란 뜻이니, 한량없는 마군들도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깨뜨리지 못하므로 라(lam)라 하며, 또 라(lam)는 내지 일부러 세상을 따라서 부모와 처자를 두는 것이므로 라(lam)라 하느니라.
로(魯, r)·류(流, r)·로(廬, )·루(樓, ) 이 네 글자는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교법·승가와 대법(對法)이니라. 대법이라 함은 제바달(提婆達)이 일부러 승단을 파괴하며 가지가지 형상을 변화시킴과 같은 것이니 계율을 제정하기 위한 것이므로 지혜 있는 이는 그렇게 알고 두려운 생각을 내지 말 것이며, 이것은 세상을 따르는 행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로(r)·류(r)·로( )·루( )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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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들이키는 소리는 혀가 코를 따르는 소리이다. 긴 소리, 짧은 소리, 뛰어나는 소리 따위로 음에 따라서 뜻을 해석함이, 모두 혀와 이로 인하여 차별이 있나니, 이런 글자들이 중생의 구업(口業)을 깨끗하게 한다. 중생의 불성은 그렇지 않아서 문자를 빌린 뒤에야 깨끗하여지는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성품이 본래 깨끗한 것이므로 비록 5음·6입·18계에 있더라도 5음·6입·18계와 같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중생들은 모두 귀의하여야 하며, 보살들도 불성인 인연으로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고 차별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반쪽 글자가 모든 경서(經書)와 기론(記論)과 문장의 근본이 되느니라. 또 반쪽 글자의 뜻은 모든 번뇌를 말하는 근본이므로 반쪽 글자라 하고, 완전한 글자는 모든 선한 법을 말하는 근본이니, 마치 세상에서 나쁜짓 하는 이를 반쪽 사람이라 하고, 선한 일하는 이를 완전한 사람이라 하는 것 같으니라. 이와 같이 모든 경서와 기론은 다 반쪽 글자로 근본을 삼거니와, 만일 여래와 바른 해탈도 반쪽 글자에 들어간다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문자를 여읜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온갖 법에 거리끼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서 참으로 해탈을 얻었느니라.
어떤 것을 가리켜 글자의 뜻을 안다고 하는가.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서 반쪽 글자를 없앨 줄을 안다면 이는 글자의 뜻을 안다고 할 것이요, 만일 반쪽 글자만을 따르는 이는 여래의 성품을 모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글자가 없는 뜻이라 하는가. 선하지 못한 법을 친근하여 닦는 이는 글자가 없다고 하는 것이며, 또 글자가 없는 것은 비록 선한 법을 친근하여 닦으면서도 여래의 항상하고 무상함과, 늘 있고 늘 있지 않음과, 법보·승보와 계율과 잘못된 계율과, 경전과, 잘못된 경전과, 마군의 말과 부처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이렇게 분별할 줄을 모르는 이는 글자가 없는 뜻을 따른다 하느니라. 내가 지금 글자가 없는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하였으니, 선남자야, 그대들은 지금 반쪽 글자를 여의고 완전한 글자를 잘 알아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마땅히 글자의 수를 잘 배우겠나이다. 저희들이 지금 위없는 스승을 만나서 여래의 은근한 가르침을 받았나이다.”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칭찬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바른 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배워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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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14. 새 비유[鳥喩品]

이 때에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새에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가린제(迦隣提)요 다른 하나는 원앙이다. 함께 다니면서 서로 떠나지 아니하나니, 괴롭고 무상하고 내[我]가 없는 법도 그와 같아서 서로 여의지 못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괴롭고 무상하고 내가 없는 법이 저 원앙과 가린제새 같다 하나이까?”
“선남자야, 다른 법이 괴로움이요, 다른 법이 낙이요, 다른 법이 항상함이요, 다른 법이 무상이요, 다른 법이 나요, 다른 법이 내가 없음이니, 마치 벼가 삼이나 보리와 다르고, 삼과 보리는 또 콩·조·감자와 다른 것 같으니라. 이런 여러 가지가 움 트고 싹 나고 내지 꽃과 잎이 모두 무상하거니와, 열매가 익어 사람이 사용할 적에는 항상하다 하나니, 왜냐 하면 성품이 진실한 까닭이니라.”
“세존이시여, 이런 것들이 만일 항상하다면 여래와 같나이까?”
“선남자야, 그대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만일 여래가 수미산과 같다 하더라도, 겁이 무너질 때[懷劫]에 수미산은 무너지지만, 여래가 어찌 무너지겠느냐. 선남자야, 그대는 이런 생각을 가지지 말라. 모든 법이 열반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항상한 것이 없나니, 세간 법으로 말하므로 열매가 항상하다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나이다.”
“그러하니라. 선남자야,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내지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면 온갖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말할 것이며, 이 경을 듣기만 하면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 같아서 모든 인간 사람 천상 사람을 이익케 하느니라. 왜냐 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분명히 앎으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암마라 나무가 꽃이 처음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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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는 무상하다 하지만 열매가 익어서 이익함이 많으면 항상하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선남자야,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였을 적에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하거니와, 이 경을 듣고는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곧 모든 세간 사람 천상 사람을 이익케 하나니, 왜냐 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알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금의 광석이 녹을 적에는 무상한 것이요, 녹아서 순금이 되면 이로움이 많으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그와 같이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였을 적에는 온갖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하지만 이 경을 듣고 나서는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모든 세간사람 천상사람을 이익케 하느니라. 왜냐 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아는 것이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참깨가 기름을 짜기 전에는 무상하다 하지만, 짜서 기름이 되면 이익함이 많으므로 항상하다 함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비록 모든 경전의 선정을 닦더라도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였을 적에는 온갖 것이 모두 무상하다고 말하지만 이 경을 듣고 나서는 비록 번뇌가 있더라도 번뇌가 없는 것과 같아서 모든 인간 사람 천상 사람을 이익케 하나니, 왜냐 하면 자기의 몸에 불성이 있는 줄을 분명히 아는 것이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여러 가지 흐르는 물이 모두 바다로 가는 것같이, 모든 경전의 선정 삼매를 닦으면 모두 대승 대열반경으로 돌아가나니, 왜냐 하면 끝까지 불성이 있음을 잘 말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다른 법이 항상하고 다른 법이 무상하며 내지 내가 없는 것도 그와 같다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근심하고 슬퍼하는 독한 살을 이미 여의었나이다. 근심하고 슬퍼함을 하늘이라 하지만 여래는 하늘이 아니며, 근심하고 슬퍼함을 사람이라 하지만 여래는 사람이 아니며, 근심하고 슬퍼함을 25유라 하지만 여래는 25유가 아니어서, 여래는 근심이나 슬퍼함이 없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근심과 슬픔이 있다고 하오리까?”
“선남자야, 무상천(無想天)은 생각이 없다 하지만 만일 생각이 없다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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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없을 것이요, 수명이 없으면 어찌하여 5음·6입·18계가 있으리요. 이러한 이치로 무상천의 수명이 머무는 데가 있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나무의 신[樹神]이 나무를 의지하여 있거니와, 결정코 가지에 의지하거나 마디에 의지하거나 줄기에 의지하거나 잎에 의지하였다고 말할 수 없으며, 비록 일정한 곳이 없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말할 수도 없나니, 무상천의 수명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부처님 법도 그와 같아서 깊고 깊어 알기 어려운 것이니, 여래가 진실로 근심·슬픔·괴로움·번뇌가 없지만, 중생에게 대자비심을 일으키어 근심·슬픔이 있는 듯이 나타내어 중생들 보기를 라후라처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무상천들이 가진 수명은 부처님만이 아는 것이요, 다른 이는 미칠 수 없으며, 내지 비상비비상천도 그와 같으니라. 가섭이여, 여래의 성품은 청정하고 물들지 않음이 화신(化身)과 같거늘, 어찌하여 근심·슬픔·괴로움·시끄러움이 있겠느냐. 만일 여래에게 근심·슬픔이 있다면 어떻게 모든 중생을 이익하고 부처님 법을 널리 선포하며, 없다고 하면 어떻게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기를 라후라와 같이한다 하겠느냐. 만일 라후라처럼 평등하게 보지 않는다면 이런 말은 곧 허망한 것이니라. 이러한 뜻으로 선남자야, 부처님께서는 헤아릴 수 없으며 법도 헤아릴 수 없으며 중생의 불성도 헤아릴 수 없으며 무상천의 수명도 헤아릴 수 없나니, 여래가 근심이 있는지 근심이 없는지는 부처님의 경계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야, 허공에는 집이나 티끌이 머물러 있을 수 없지만, 만일 집이 허공을 인하여 머물지 않는다 하면 옳지 않느니라. 이런 이치로 집이 허공에 머물렀다 허공에 머물지 않았다 할 수 없나니, 범부들은 집이 허공에 머물렀다 하지만, 허공은 실로 머물 데가 없느니라. 왜냐 하면 성품이 머물 수 없는 연고니라. 선남자야, 마음도 그와 같아서 5음·6입·18계에 머물렀다거나 머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무상천의 수명도 그러하고, 여래의 근심 슬픔도 그러하니, 만일 근심 슬픔이 없다면 어떻게 중생을 평등하게 보기를 라후라와 같이 한다고 말하며, 만일 근심 슬픔이 있다면 어떻게 성품이 허공과 같다고 말하겠느냐. 선남자야, 마치 환술쟁이가 가지각색 궁전을 변화시켜 만들고 죽이고 기르고 얽매고 놓아주며, 또 금·은·폐유리·보물과 숲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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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을 만들어도 모두 참된 성품이 없나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세상을 따라서 근심 슬픔을 나타내지만, 진실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이미 대반열반에 들었거늘 어찌하여 근심·슬픔·괴로움·시끄러움이 있겠느냐. 만일 여래가 열반에 들었으니 이것이 무상하다 하면 이 사람은 근심 슬픔이 있는 것이요, 만일 여래가 열반에 들지 않고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다 하면 이 사람은 근심 슬픔이 없는 줄을 알겠거니와, 여래가 근심이 있고 없는 것은 알 사람이 없느니라.
또 선남자야, 마치 하품 사람은 하품 법만 알고 중품·상품 법은 모르며, 중품 사람은 중품만 알고 상품은 알지 못하거니와, 상품 사람은 상품도 알고 중품·하품도 아는 것같이 성문·연각도 그와 같아서 자기의 처지만 알고 있다.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자기의 처지와 다른 이의 처지까지 알므로 여래를 걸림없는 지혜라 하는 것이며, 환술 같은 변화를 나타내어 세상을 따르는 것을 범부의 육안으로는 진실하다 하지만, 여래의 걸림없고 위가 없는 지혜를 알고자 함은 옳지 아니하며, 근심이 있고 없는 것은 부처님만이 아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으로 다른 법은 내가 있고 다른 법은 내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원앙과 가린제의 성품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 법은 마치 원앙이 함께 행하는 것과 같나니, 가린제와 원앙은 여름에 물이 불으면 높은 곳을 가리어서 새끼를 두고 기르며, 그런 뒤에 본래대로 편안히 노니나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바른 법에 머물게 함은, 저 원앙이나 가린제가 높은 곳을 가리어 새끼를 두는 것 같나니, 여래도 그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할 일을 마치고는 대반열반에 들어가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다른 법은 괴롭고 다른 법은 즐거움이라 하느니라. 모든 행은 괴로움이요 열반은 즐거움이니 제일 미묘하여 모든 행을 무너뜨리는 까닭이니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으로서 열반을 얻는 이를 제일 즐거움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야, 내가 말한 것 같이 모든 행이 화합한 것을 늙고 죽음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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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하고 놀지 말라.
이런 것이 감로니라.
방일하고 안 삼가면
이를 일러 죽음이라 하느니라.

방일하지 않은 이는
안 죽을 데 얻게 되고
방일하게 노는 이는
죽을 길만 가게 되리.

방일함은 함이 없는 법이요, 함이 있는 법은 제일 괴로운 것이며, 방일하지 아니함은 열반이니 열반은 감로라 하여 제일 즐거움이니라. 모든 행을 따라감은 죽는 것이니 제일 괴로움을 받고, 열반에 나아가면 죽지 않는 것이니 가장 훌륭한 낙을 받느니라. 만일 방일하지 아니하면 비록 모든 행을 모으더라도 이것은 항상하고 즐겁고 죽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 몸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방일이요 어떤 것이 방일하지 않음인가. 성인 아닌 범부는 방일이라 하나니, 항상 죽는 법이요, 세상에서 뛰어난 성인은 방일하지 않으므로 늙고 죽음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제일가는 항상하고 즐거운 열반에 드는 까닭이니, 이런 이치로 다른 법이 괴로움이요 다른 법이 즐거움이며, 다른 법이 나이고 다른 법이 내가 없음이라 하였느니라.
사람이 땅에서 공중을 쳐다볼 때 새가 날아간 자리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선남자야, 중생도 그러하여 하늘눈이 없고 번뇌 속에 있어서 스스로 여래의 성품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무아의 비밀을 말하였다. 왜냐 하면 하늘눈이 없는 자는 참 나를 알지 못하여 제멋대로 나라는 것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번뇌들로 인하여 짓는 함이 있는 것은 무상하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법은 항상되고 다른 법은 항상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정진하는 날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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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 있게 되면
평지나 넓은 들에 있는
범부들을 항상 보게 되리.

위가 없이 훌륭한
지혜 궁전 올라가면
제 근심을 소멸하고
중생 근심도 마냥 보리.

여래는 한량없는 번뇌를 모두 끊고 지혜의 산에 있으면서, 중생들이 한량없는 번뇌 속에 항상 있는 것을 보느니라.”
“세존이시여, 게송으로 말씀하신 이치가 그렇지 않으니, 왜냐 하면 열반에 들어가면 근심도 기쁨도 없거늘, 어찌하여 지혜의 궁전에 올라가며, 또 어떻게 산 위에 있으면서 중생을 보리까?”
“선남자야, 지혜의 궁전이라 함은 열반을 말함이요, 근심이 없는 이는 여래요, 근심이 있는 이는 범부니, 범부는 근심하는 것이므로 여래는 근심이 없느니라. 수미산 꼭대기는 바른 해탈을 말함이요, 정진함은 수미산이 흔들림이 없음에 비유하고, 평지는 함이 있는 행이니, 모든 범부들이 평지에 머물러 있으면서 모든 행을 짓느니라. 지혜란 것은 바른 깨달음을 말함이니, 유(有)를 여의고 항상 머물기 때문에 여래라 하느니라. 여래는 한량없는 중생들이 항상 모든 유의 독한 살에 맞았음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므로 여래는 근심이 있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여래께서 근심과 슬픔이 있다 하오면 등정각(等正覺)이라 할 수 없겠나이다.”
“가섭보살이여, 모두 인연이 있는 것이니, 교화를 받을 만한 중생이 있는 곳을 따라서 그 가운데 여래가 태어나는 것이며, 비록 태어나더라도 실로는 나는 일이 없으므로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어서 가린제나 원앙 등의 새와 같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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