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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장 사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여래장 사상(如來藏思想)은 여래장(如來藏)에 대한 교의와 여래장연기(如來藏緣起), 즉 진여연기(眞如緣起)의 교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승 불교 중기 이후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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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장 사상(如來藏思想)은 여래장(如來藏)에 대한 교의와 여래장연기(如來藏緣起), 즉 진여연기(眞如緣起)의 교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승 불교 중기 이후의 사상이다.[1] 여래상 사상에서는 모든 중생은 본래부터 여래(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으며, 이 가능성을 여래장이라고 하였다. 여래장은 본질적으로 불성(佛性) 또는 진여(眞如)와 동일한 개념이다.

여래장 사상은 인도에선 유식설보다 먼저 성립되어 대승 불교의 이대 조류인 중관파(中觀派)나 유식파(唯識派)의 사상과는 다른 계통을 이루었으며, 《능가경(楞伽經)》·밀엄경(密嚴經)》·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대성되었다.

 

 

 

www.youtube.com/watch?v=sdwC-KQ_qDo

 

이 <대반열반경>은 아래  동국대학교 한글대장경을 복사한 것입니다.  꾸밈없는 초기 경전의 소박한 담론에 이끌려 법보시에 동참해 보았습니다. 출판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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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 – 디지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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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해제

1. 성립과 한역(漢譯)

열반경은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娑羅雙樹)에서 열반에 들기 직전 하루 낮과 밤 동안에 설하신 최후의 설법이라고 한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열반경에는 북본(北本)과 남본(南本)의 두 가지 외에도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이 있다.
이 『대반니원경』은 동진(東晉)의 법현(法顯)이 418년에 남본과 북본 열반경의 앞 9권에 해당하는 부분을 6권 18품(品)으로 나누어 한역한 것이다.
북본 열반경은 421년 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이 한역한 것으로서 40권 13품으로 되어 있다. 이 북본 열반경이 번역된 지 오래지 않아 북량(北涼)이 망하자 열반경의 학자들은 강남으로 옮겼고, 이들을 중심으로 열반경 연구가 성행하면서 북본의 번역에 대한 결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동안사(東安寺)의 혜엄(慧嚴)과 도량사(道場寺)의 혜관(慧觀)은 사영운(謝靈運) 등과 함께 북본을 바탕으로 하고 법현(法顯)이 한역한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과 대교(對校)하여 36권 25품의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남쪽에서 이루어졌다 해서 남본이라고 불리며, 후세의 열반경 연구는 대개가 이 남본을 기초로 하고 있고 여기 번역한 열반경도 이 남본을 옮긴 것이다.
법현의 『대반니원경』을 비롯하여 북본과 남본의 열반경을 대승열반경(大乘涅槃經)이라고 부르며, 소승열반경(小乘涅槃經)으로부터 발달한 이 경은 또 여러 가지 대승경전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그 예로 열반경이 인용하고 있는 초기 대승경전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수릉엄경(首楞嚴經)』·『반야경(般若經)』·『법화경(法華經)』·『화엄경(華嚴經)』 등은 열반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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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경들이다.
대승열반경의 성립은 용수(龍樹 150∼250년 경) 이후라고 보지만 경의 태동(胎動)은 소승열반경에 속하는 경들이 성립된 시기로 거슬로 올라간다. 이 시기는 또 보살 집단에 의한 대승운동(大乘運動)의 초기를 지난 기원전후라고 보아지며, 이후 4세기 중반 경까지 내려가면서 몇 차례의 증보(增補) 과정을 거쳐 오늘의 열반경이 완성되었으리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2. 줄거리와 의도(意圖)

열반(涅槃)이란 범어 nirv a의 음사(音寫)로서 반열반(般涅槃)parin- iv a라고도 하며 멸도(滅度)라고 한역한다. 그러므로 열반에 든다고 하는 것을 멸도(滅度)에 든다고 하며, 줄여서 입멸(入滅)이라고도 한다. 열반경은 구시나성(拘尸那城, ku inagara) 가까이를 흐르는 아리라발제하(阿利羅跋提河 Ajitavat )의 강가에 서 있는 사라쌍수 사이에서 2월 15일, 입멸에 드시기 직전 석존(釋尊)께서 설하신 법이다. 그러므로 열반경은 부처님의 최후의 유교(遺敎)라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경은 부처님 입멸시의 슬픈 정경이 장엄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석가 부처님 입멸의 예고를 받고 슬퍼하는 대중이 모여들고, 사라수(娑羅樹)의 숲은 색이 변하여 백학(白鶴)과 같이 희어졌으며, 사방의 부처님 나라에서는 무변신(無邊身) 보살이 향반(香飯)을 가져와 공양하고자 모여들고, 그밖에도 독사나 악업(惡業)을 지은 자까지 모여 슬퍼한다. 그럼에도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아난(阿難)과 아사세왕(阿闍世王)과 일천제(一闡提)의 무리들은 오지 않고 있었다.
그 때 석가 세존은 재가신도(在家信徒)인 순타(純陀)가 바치는 공양을 최후의 공양으로 받으셨으며, 순타 이외의 대중이 바치는 공양은 화현(化現)한 부처와 비구들이 받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문수(文殊)보살에게 법을 부촉(付囑)하고 중생을 조복(調伏)하기 위하여 몸에 병을 나타내 보였다.
이어 경의 끝에 이르러서는 열의 외도(外道)를 꺾어 귀의하게 하고 악마의 무리에게 시달리고 있는 아난을 구출하신 다음 최후의 제자가 된 범지(梵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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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발타(須跋陀)를 도(道)에 들게 한 것으로 대단원을 맺고 있다.
이와 같이 열반경의 줄거리는 그 소재를 아함(阿含) 중의 「유교경(遺敎經)」 등에 전하는 석존의 입멸 당시의 광경에서 빌려왔으나 석존의 입멸 당시 광경을 역사적으로 바르게 기술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대승적인 수식이 현저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경이 부처님의 입열반(入涅槃)의 장면을 서술하지 않고 부처의 본질을 이루는 대열반을 보편화하여 불멸(不滅)함을 밝히고 있는 점은 곧 이 경의 뜻이다. 또한 부처의 불멸성과 함께 특히 이 경이 밝히고자 한 것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설한 점이다. 그러한 것은 다음에 말하는 열반경의 사상에서 살펴볼 수가 있다.

3. 열반경의 사상
(1) 상주(常住)하는 불신(佛身)
부처의 불멸성(不滅性)을 불신상주(佛身常住)라고 한다. 소승불교의 일반적인 이해에 따르면 신체의 유무(有無)를 따져 열반을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둘로 나누었다. 괴로움의 원인[苦因]인 정신상의 번뇌가 없어졌어도 괴로움의 결과[苦果]인 육체가 남아 있는 동안은 유여열반이며 육체까지 없어져 심신(心身)이 함께 공무(空無)로 돌아간 것을 무여열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승에 의하면 신체, 즉 물체와 마음은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다. 부처가 무여열반에 드는 것이 마치 장작이 다 타서 불이 꺼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처를 신체적으로만 파악하는 것이다. 부처를 업(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신체적 존재라고 보는 자에게 부처의 죽음은 무상(無常)하고 괴로운 것이며, 무아(無我)며 부정(不淨)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처는 육신(肉身)이 아니며 업에 속박되는 무명(無明)의 존재가 아니다. 부처로 하여금 부처이게 하는 것은 진실로 깨달음인 것이다. 열반경은 그 깨달음을 대열반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처의 본질인 그 깨달음을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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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경에 따르면 대열반이란 법신(法身)과 반야(般若)와 해탈(解脫)의 3법(法)으로써 이루어지며 이 셋을 열반의 3덕(德)이라고 한다. 법신이란 때와 장소라고 하는 제약을 넘어 보편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우주의 진실한 이법(理法)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지혜가 반야며 그것을 깨달았을 때 얻는 자유의 경지가 해탈이다. 이 3자는 상호 의지하여 존립함으로써 비로소 각각의 의의를 완성할 수 있으며 각각 떨어져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부처의 본질인 대열반이 이와 같은 법신과 반야와 해탈의 셋을 내용으로 한다고 하면 부처는 법신이므로 무상(無常)한 육신이 아닌 상주(常住)며 해탈이므로 고(苦)가 아니라 낙(樂)이며 반야이므로 무지(無知)와 무명(無明)에 속박되지 않는 절대 자유의 대아(大我)다. 결국 그것은 청정하며 번뇌가 없는 존재이다. 석가모니불의 무상을 나타낸 입멸을 계기로 열반경은 이 대아를 밝히며 진실한 부처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인 삼덕(三德)을 갖춘 열반으로서 본질을 삼기 때문에 불신(佛身)은 상주(常住)인 것이다.
그러나 석존이 80세에 입멸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대승의 입장에서 보면 80세에 입멸한 부처는 진실한 부처가 아니며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진실한 부처가 응현(應現)한 부처며, 그 응현의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과 한가지로 입멸을 보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석존의 성도(成道)와 마찬가지로 진실한 부처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진실한 부처에게는 성도라든가 병에 걸린다고 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성도와 병과 입멸의 그 모두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열반경은 「장수품(長壽品)」에서 입멸이 그러한 시현(示現)임을 설하고 「현병품(現病品)」에서 병 또한 시현임을 설하고 있다. 그래서 열반경은 “선남자야,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래의 몸은 곧 금강신(金剛身)이다. 그대는 오늘부터 항상 전심으로 이 뜻을 마땅히 사유해야 한다. 식신(食身)을 염하지 말라. 또한 사람을 위하여 여래의 몸은 곧 법신이라고 설하느니라” 한다.
열반경의 이와 같은 불신관(佛身觀)은 『반야경』이나 『유마경』에서 부처는 법신(法身)으로서 생신(生身)이 아니라고 하는 사상을 계승한 것이며, 『법화경』 「수량품(壽量品)」에서 설하고 있는 부처의 수명은 구원(久遠)하며 본지불(本地佛)은 구원의 옛날에 성불(成佛)하였다고 하는 『법화경(法華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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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설과도 서로 통한다. 열반경은 또 부처의 수명에 대해서 처음에는 장수(長壽)라고 설하고, 이어 장수란 진실 상주(常住)라고 하는 초시간적(超時間的)인 의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열반경은 불신(佛身)에 대해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이원적(二元的) 실재론(實在論)을 결정적으로 불식시켰다.

(2) 모든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佛性)은 부처의 성품이란 뜻으로서 부처의 본질을 말한다. 불성이란 3덕(德)을 내용으로 하며, 그 3덕은 보편(普遍)하며 상주(常住)하는 것이므로 모든 중생은 이 불성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로 하여금 부처이게 하는 본질은 성불할 때 처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입멸과 함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처가 되는 것은 중생이 불성 안에 있음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이며, 부처가 된다고 하는 것은 불성을 현현(顯現)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범부(凡夫)는 불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범부에게 있어서 불성은 번뇌에 덮여 있어 아직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번뇌에 덮이고 가리워진 상태에 있는 불성·여래성(如來性)을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불성·여래성이 그를 덮고 있는 번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 즉 자각한 불성을 법신(法身)이라고 한다. 범부가 자각한 불성을 법신이라고 함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사람이 특별히 정해졌거나 제한되지 않음을 뜻한다.
소승에 따르면 부처가 될 수 있는 자는 보살이라고 하는 특정한 사람에 한정되어 있고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3승(乘)의 차별론(差別論)이 있다. 그러나 대승에 따르면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자기와 같은 부처가 되게 하고자 법을 설하고 있으므로 부처가 되는 것은 선천적으로 제한된 소질이나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추구될 수 있는 이상인 것이다. 때문에 열반경은 이것을 ‘일체의 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고 강하게 주장한다.
열반경의 불성론(佛性論)은 처음부터 일정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품(品)을 거듭하면서 그 심도(深度)를 더하고 있다. 즉 처음에는 불성을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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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히 법성(法性)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사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에 이르면 불성이란 공(空)과 불공(不空)을 보는 제일의공(第一義空)이므로 중도(中道)라고 설하며, 또 12인연을 관조하는 지혜를 불성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서는 12인연 그 자체를 불성이라고 하기에 이르며, 12인연을 바탕으로 한 열반경의 불성사상(佛性思想)의 전개는 불성의 인(因)은 12인연이며 그 인(因)의 인은 지혜며, 불성의 과(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며 그 과의 과는 무상(無上)의 대반열반(大般涅槃)이라고 설한다. 이것은 석존이 12인연을 관하여 성도(成道)한 사실(史實)에 유래하는 것으로서 12인연을 보는 것은 법을 보는 것이며, 법을 보는 것은 부처를 보는 것이라는 논리다.
열반경은 또 불성(佛性)의 현현을 위해서는 지계(持戒)에 의지해야 하고 공(空)을 닦음으로써 불성을 본다고 설하면서 6바라밀(婆羅蜜)과 8정도(正道)에 의한 발심수행(發心修行)을 엄격하게 요구한다. 따라서 「가섭보살품(迦葉菩薩品)」에 이르면 발심과 수행으로 불성을 덮고 있는 무명과 번뇌를 걷고 불성을 현현해야 하므로 무명(無明)과 번뇌야말로 불성이라고 하기에까지 이른다. 그것은 무명과 번뇌에 의하여 선(善)의 5음(陰), 즉 심신(心身)이 생기고 그 선의 5음에 의하여 성도에 이르므로 결국 불성과 법성이라고 하여도 현실의 무명과 번뇌를 벗어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주장한 것이다.

(3) 일천제(一闡提)의 성불(成佛)
일천제(一闡提)는 범어 icchantica의 음사로서 천제(闡提)라고도 하며, 단선근(斷善根), 신불구족(信不具足)이라고 한역한다. 열반경에서는 시종 이 일천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가 문제되어 있고 그가 불성이 있다면 성불(成佛)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열반경에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설한 것은 중생으로 하여금 방일하지 않고 꾸준히 불성을 개발하는 노력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석존의 입멸 때 스승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비구들이 있었다. 열반경으로서는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한 것에 근거하여 만인(萬人)의 평등과 성불을 주장하였으나 현실적으로는 이 불성론을 믿지 않는 그러한 비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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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러한 부류의 성불에 관한 문제는 매우 심각하였을 것이다.
열반경은 여래성품(如來性品)에서 일천제에게 불성이 있음을 인정하였으나 그 성불에 대해서는, 일천제는 불성은 있으나 무량한 죄업(罪業)에 얽매여 있으므로 보리(菩提)의 인(因)을 낳을 수 없어 생사의 유전이 끊어지지 않고, 비록 4중죄(重罪)와 5역죄(逆罪)를 범한 자까지도 보리심(菩提心)을 내게 할 수는 있어도 생맹(生盲)과 같은 일천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에 이르면 일천제의 성불을 인정하게 된다. 그것은 일체 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열반경으로서는 비록 일천제라 하더라도 불성(佛性) 밖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일천제가 만약 불성을 믿는다면 그 믿음에 의해서 성불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믿음이 없는 상태로는 성불할 수 없다는 원칙을 그대로 두고, 실제로는 일천제의 성불을 주장하여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는 설과의 논리적 통합을 이룬다.
이러한 열반경의 주장은 실로 불교의 종교적 의의를 현실적인 것으로 정착시키는 기초가 되었으나 상당한 파란과 오랜 고심(苦心) 끝에 얻어진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든, 아무리 극악한 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믿음을 갖고 뉘우칠 때, 그의 갱생을 돕는 것이야말로 종교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열반경은 정법(正法)의 호지(護持)와 정법이 멸한 뒤에 일어날 여러 가지 악한 일과 상황에 대해서 설하고 올바른 계율관(戒律觀)을 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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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 1~1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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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대반열반경 제 1 권

송대(宋代) 사문(沙門) 혜엄(慧嚴) 등이
니원경(泥洹經)에 의거하여 덧붙임1)

1. 서품(序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시성(拘尸城) 기운 센 장사들이 난 곳, 아이라발제(阿夷羅跋提) 강가에 있는 쌍으로 선 사라(娑羅)나무 사이에 계셨다.
그 때 세존(世尊)께서 큰 비구 80억백천 인이 앞뒤로 둘러싼 가운데에서, 2월 15일 마침내 열반에 드시려 하였다.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 큰 소리를 내시는데, 그 소리가 두루 퍼져 유정천(有頂天)에까지 이르고, 곳에 따라 여러 가지 음성으로 중생들에게 널리 외치는 것이었다.
“오늘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지(正遍知)로서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중생을 안아 주며, 중생들을 외아들 라후라(羅睺羅)처럼 평등하게 보고, 중생들을 위하여 귀의할 곳이 되어 주며, 세간의 집이 되어 온 대각(大覺) 세존이 곧 열반에 들려 하니, 모든 중생들은 의심나는 데가 있거든 사양 말고 모두 물을지어다. 이번이 마지막 물음이 되리라.”
그 때 세존께서 이른 새벽녘에 입으로부터 가지가지 광명을 놓으시니, 그 밝은 빛이 여러 빛깔이라, 푸르고 붉고 흰빛과 파리(頗璃)빛 등이요, 그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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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본(宋本)·원본(元本)에는 삼장(三藏) 담무참(曇無讖)이 범어를 번역했고, 사문 혜엄(慧嚴)·혜관(慧觀)이 사령운(謝靈運)과 함께 다시 정리했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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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은 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비치며, 시방세계에까지 이르러서도 또한 그와 같은데, 그 속에 있는 여섯 갈래의 중생으로서 이 광명에 비추인 이면 죄업과 번뇌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 모든 중생들이 이것을 보고 듣자, 크게 걱정하고 근심하여 한꺼번에 소리를 높여 슬피 울부짖으며 “아아, 어지신 아버지여, 애통하고 안타깝습니다” 하면서 손을 들어 머리를 쥐어박기도 하고 가슴을 치며 크게 외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온몸을 떨며 눈물짓고 흑흑 흐느끼기도 하였다.
이 때에 땅과 산과 바다가 모두 진동하는데, 중생들은 서로 붙들고 위로하며 저마다 슬픔을 억제하면서 말하였다.
“너무 슬퍼하지만 말고 어서들 구시성으로 가서 부처님을 뵈옵고, 열반에 드시지 말고 한 겁 동안이나, 아니면 한 겁이 조금 모자라는 동안만이라도 이 세상에 좀더 머물러 주시기를 청해 봅시다.”
그리고 서로 손을 이끌면서 이런 말도 하였다.
“세상이 텅 비고 중생들의 복이 다하여 착하지 못한 모든 업들이 자꾸만 세상에 나타나겠소. 여러분, 어서 갑시다. 부처님께서 오래잖아 열반에 드실 모양이오.”
다시 또 이런 말도 하는 것이었다.
“세상이 비었소. 세상이 비었소. 이제는 우리들을 구호해 줄 이도 없고 우러러 받들 어른도 없으니, 빈궁하고 외로울 것이오. 만일 부처님을 여의기만 하면 설령 의심나는 데가 있단들 다시 누구에게 묻겠소.”
그 때 한량없는 큰 제자들이 있었으니 존자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존자 박구라(薄俱羅)·존자 우파난다(優波難陀) 들이었다. 이 같은 여러 큰 비구들로서 부처님 광명에 비추인 이는 그 몸이 떨리다가 크게 흔들리며, 스스로 걷잡지 못하고 마음이 답답하여 소리를 내어 부르짖는 등 이런 여러 가지 고민을 일으키기도 했다.
거기 또 80백천 비구들이 있었는데, 모두 아라한(阿羅漢)으로서 마음이 자재하여지고 할 일을 이미 마치었으며, 모든 번뇌를 다 여의고 모든 근(根)을 조복(調伏)하였으며, 큰 용왕처럼 엄청난 위덕(威德)이 있고, 공한 이치를 아는 지혜를 이룩하여 자신의 이익을 얻었으므로, 전단나무 숲에 전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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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선 듯이, 사자왕을 사자들이 둘러 있듯이,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으므로 그들은 모두 다 부처님의 진정한 아들들이었다. 그들이 제각기 이른 아침 해가 뜨려 할 무렵, 자기들 있는 곳을 떠나서 양치질을 하려다가, 부처님의 광명에 비추이며 서로 이르되 “여러분, 세수를 빨리 합시다”라고 하자마자, 온몸에 털이 곤두서고 전신에 피가 번져 파라사(波羅奢)꽃과 같으며, 눈물이 눈에 넘쳐 큰 고통을 일으키면서도, 중생들을 이익하고 편안케 하기 위하여 대승(大乘)의 제일가는 공한 행을 성취하고, 여래의 방편(方便)인 밀교(密敎)를 나타내며 가지가지 설법을 끊어지지 않게 하고, 또 모든 중생을 위하여 조복하려고 인연으로 부처님 계신 데 빨리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백천 바퀴를 돌고서 합장하고 공경하며 한 곁에 물러가 앉는 것이었다.
그 때 또 구다라(狗陀羅) 여인과 선현(善賢) 비구니와 우파난다(優波難陀) 비구니와 해의(海意) 비구니가 60억 비구니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들도 모두 큰 아라한들로서 모든 누(漏)가 이미 다하여 마음이 자재하여지고 할 일을 이미 마치었으며 모든 번뇌를 다 여의고 모든 근(根)을 조복하였으며, 큰 용왕처럼 엄청난 위덕이 있고, 공한 이치를 아는 지혜를 이룩한 이들이었다. 그들도 역시 이른 아침해가 뜨려 할 무렵에 온몸에 털이 곤두서고 전신에 피가 번져 파라사꽃과 같으며, 눈에 눈물이 넘쳐 큰 고통을 일으키면서도 중생들을 이익하고 편안케 하기 위하여 대승의 제일가는 공한 행을 성취하고 여래의 방편인 밀교를 나타내며, 가지가지 설법을 끊어지지 않게 하고 모든 중생을 조복하려는 인연으로 부처님 계신 데 빨리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백천 바퀴를 돌고서 합장하고 공경하며 한 곁에 물러가 앉았다. 비구니 대중 가운데 다시 또 비구니들이 있었으니, 모두 보살로서 사람들 중에 용이요, 지위는 10지(地)에 이르고 편안히 있어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여자 몸으로 태어나 항상 4무량심(無量心)을 닦아 모으니 자재한 힘을 얻어 부처님으로 화현할 수 있었다.
그 때 또 한 항하(恒河)의 모래처럼 많은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사람들 중의 용이요, 지위는 10지(地)에 이르렀고 흔들림 없는 데 편안히 머물렀지만 방편으로 몸을 나타낸 이들로서, 그 이름은 해덕(海德)보살·무진의(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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盡意)보살들인데, 이런 보살마하살들이 우두머리였다. 그들은 모두 마음으로 대승을 존중하며 대승에 편안히 머물며 대승을 깊이 이해하며 대승을 좋아하며 대승을 잘 수호하며 온갖 세간을 잘 따르면서 늘 이런 서원을 세워 말했으니 “모든 제도를 얻지 못한 이로 하여금 제도를 얻게 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나간 세상 수없는 겁 동안에 깨끗한 계법(戒法)을 닦고, 행할 바를 잘 지켰으며 이해하지 못한 이를 이해케 하고, 삼보의 씨를 계속하여 끊이지 않게 하며, 오는 세상에서 항상 법수레를 운전하며, 큰 장엄으로써 스스로 장엄하여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고,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기를 외아들과 같이 하는 이들인데, 그들도 역시 이른 새벽 해가 뜨려 할 무렵 부처님의 광명에 비추어져 온몸에 털이 곤두서고 전신에 피가 번져 마치 파라사꽃과 같으며, 눈에 눈물이 넘쳐 큰 고통을 느끼면서도 중생들을 이익케 하고 편안케 하기 위하여 대승의 제일가는 공한 행을 성취하고 여래의 방편인 밀교를 나타내며, 가지가지 설법을 끊어지지 않게 하고 모든 중생을 조복하려는 인연으로 부처님 계신 데 빨리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며 백천 바퀴를 돌고서 합장하고 공경하며 한 곁에 물러가 앉는 것이었다.
그 때 또 두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우바새(優婆塞)들이 있었으니 5계를 받아 지니고 위의를 갖추었는데, 그 이름은 위덕무구칭왕(威德無垢稱王) 우바새·선덕(善德) 우바새들로서 그런 이들이 우두머리였다. 그들은 모든 대치(對治)하는 문을 관찰하기를 무척 즐기었으니, 이른바 괴롭고 즐거운 것, 항상하고 무상한 것, 깨끗하고 더러운 것, 나란 것과 나 없는 것, 참되고 참되지 못한 것, 돌아가 의지할 데와 돌아가 의지할 데 아닌 것, 중생과 중생 아닌 것, 늘 있고 늘 있지 않은 것, 편안하고 편안치 않은 것, 함이 있는 것과 함이 없는 것, 끊어지고 끊어지지 않는 것, 열반과 열반 아닌 것, 느는 것과 늘지 않는 것 등의 언제나 이런 상대되는 법문을 살펴보기를 즐겨하며, 또한 위없는 대승을 즐겨 들으려 하고 자기가 들은 것을 모두 남들에게 말하여 주며, 깨끗한 계행을 잘 가지고 대승을 목마른 듯 사모하여 스스로 만족하고는 다시 다른 사모하는 이들을 만족시켜 주며, 위없는 지혜를 잘 거두어 가지고 대승을 사랑하며 대승을 수호하며, 온갖 세간 사람을 잘 따르며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고 이해하지 못한 이를 이해케 하며, 삼보의 씨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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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며, 오는 세상에서 법수레를 운전하여 큰 장엄으로 자신을 장엄하고, 마음으로는 항상 깨끗한 계행을 맛들여서 이런 공덕을 모두 섭취하였고, 모든 중생들에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평등하게 외아들같이 보는 이들이었다.
그들도 역시 이른 새벽 해가 뜨려는 무렵에 부처님의 몸을 화장(火葬)하기 위하여 사람마다 향 나무 1만 뭇씩을 가졌으니, 전단과 침수향(沈水香)과 우두전단(牛頭栴檀)과 천목향(天木香) 등이었다. 이 나무들의 결과 붙은 것들에 모두 7보의 아름다운 광명이 있어 마치 여러 가지 채색으로 그린 듯하였으며, 부처님의 신력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푸른 빛·누른 빛·붉은 빛·흰빛 들이 있어 중생들이 보기를 좋아하며, 이런 나무에 가지가지 향으로 발랐으니 울금향(鬱金香)·침수향·교향(膠香) 등이며, 여러 가지 꽃을 흩어서 장엄하게 했으니 청련화·황련화·홍련화·백련화 등이요, 모든 향 나무 위에는 5색 깃발[幡]을 달았으니 보드랍고 미묘함이 마치 하늘사람의 옷, 교사야(憍奢耶) 옷, 추마(蒭摩) 비단들과 같았고, 이 향 나무들을 보배 수레에 실었는데 그 보배 수레들에서는 청·황·적·백 여러 가지 빛이 찬란하게 빛났으며, 수레바퀴나 수레채들은 모두 7보로 만들어졌고, 수레마다 네 필의 말을 메웠는데 그 말들은 바람같이 빨리 달리고, 수레의 앞에는 50개의 7보 짐대[幢]를 세웠고 순금으로 만든 그물로 그 위를 덮었으며, 보배 수레마다 또 50가지의 아름다운 일산이 있고, 수레 위마다 모두 화만(華鬘)을 드리웠는데 청련화·황련화·홍련화·백련화 등이며, 그 꽃들은 순금으로 잎이 되고 금강으로 꽃판이 되었으며, 꽃판 속에는 검은 벌들이 많이 모여들어 즐겁게 노닐며, 또 묘한 소리가 나는데 이른바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는 것이며, 이 소리 가운데서 다시 보살들의 본래 행하던 도를 말하는 소리도 울려 나왔다.
또 여러 가지 노래와 춤과 피리·저·공후(箜篌)·퉁소·비파·북소리 등이 울리는데, 그 음악 소리 속에서 “괴롭도다, 괴롭도다. 온 세상이 비었도다” 하는 소리가 나왔으며, 모든 수레 앞에는 우바새들이 있어 네 개의 소반을 받들었는데, 그 소반들 위에는 가지각색 꽃이 있어 청련화·황련화·홍련화·백련화 등이요, 울금향과 여러 가지 향이 아름답고 제일이며, 모든 우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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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부처님과 스님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마련했는데, 모두 다 공덕수를 붓고 전단향·침수향 나무로 불을 때어 익혀낸 그 음식은 여섯 가지 맛이 갖추었으니 쓴맛·신맛·단맛·매운 맛·짠맛·싱거운 맛 등이요, 또 세 가지 덕이 있으니 첫째는 보드랍고, 둘째는 깨끗하고, 셋째는 법다운 것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장엄하게 하여 가지고 기운센 장사들이 태어난 곳,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이르러, 다시 금모래를 땅에 깔고는, 또 가릉가(迦陵伽) 옷과 흠바라(欽婆羅) 옷과 비단 옷들을 금모래 위에 깔아 펴니 그 둘레가 12유순(由旬)에 가득 찼었다. 또 부처님과 스님들을 위하여 7보로 만든 사자좌를 둘러놓으니 높기가 수미산 같으며, 이 모든 좌석 위에는 훌륭한 휘장을 두르고 여러 가지 영락을 드리웠으며, 모든 사라나무에는 가지가지 아름다운 깃발과 일산을 달았고 가지가지 좋은 향을 나무에 바르고 온갖 유명한 꽃을 나무 사이에 흩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바새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하였다.
‘모든 중생이 아쉬워하는 것이 있으면 음식이나 의복이나 눈이나 몸뚱이나 달라는 대로 주리라. 그리고 이렇게 보시할 적에는 욕심이나 성내는 마음이나 더럽고 흐리고 악독한 마음은 모두 버리고 세간의 복락을 구하려는 마음조차 없이 오직 위없는 청정한 보리를 구하리라.’
이 우바새들은 모두 보살의 도에 편안히 머물러 있는 이들로서 또 이런 생각도 내었다.
‘부처님께서 지금 우리들의 공양을 받으시고는 열반에 드시리라.’
이런 생각을 하자, 온몸에 털이 곤두서고 전신에 피가 번져 파라사꽃과 같으며, 눈에 눈물이 넘쳐 큰 고통을 일으키면서 제각기 마련한 공양거리인 향목과 당(幢)과 번(幡)과 일산과 음식을 수레에 싣고 부처님 계신 데로 달려나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가지고 간 공양거리를 부처님께 올리면서 백천 바퀴를 돌고 소리를 높여 울부짖으니 애통하는 소리가 천지를 흔들고, 가슴들 두드리면서 크게 외치며 눈물이 비오듯 하는 것이었다.
서로 붙들고 “여러분, 안타깝소이다. 세상이 비었구려, 세상이 비었구려” 하면서 몸채 던져 부처님 앞에 엎드려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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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옵건대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의 마지막 공양을 받으시옵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받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세 번 청했으나 모두 허락하지 않으시므로 여러 우바새들은 소원을 이루지 못하여 마음에 슬픈 번뇌를 품은 채 잠자코 있기를 마치 아버지가 외아들이 병들어 죽은 것을 장사하고 돌아와 크게 애통해 하듯이 하였다. 모든 우바새들은 슬피 울고 걱정하기를 이같이 하면서 가지고 갔던 공양거리를 한 곳에 두고 한 곁에 물러가서 잠자코 앉는 것이었다.
그 때 또 세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우바이들로 5계를 받고 위의를 갖춘 이들이 있었는데, 이름은 수덕(壽德) 우바이·덕만(德鬘) 우바이·비사가(毘舍佉) 우바이 등 8만 4천 명이 우두머리가 되었었다. 그들은 모두 부처님의 바른 법을 두호하여 유지할 만하며, 한량없는 백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여인(女人)의 몸을 나타내어 집안의 법도를 자책하였다.
자기 몸 보기를 네 마리 독사와 같이 하여 이 몸이란 항상 한량없는 벌레에게 빨아 먹힘이 될 것이요, 이 몸이란 더럽고 탐욕으로 얽매였으며, 이 몸이란 나쁘기가 죽은 개와 같으며, 이 몸이란 부정하여 아홉 구멍으로 더러운 것이 흐르며, 이 몸이란 성곽과 같아 피와 살과 뼈와 가죽으로 그 위를 덮었고 손과 발은 적을 물리치는 망루가 되고 눈은 성가퀴의 총구가 되고 머리는 전당(殿堂)이 되어 마음의 왕이 있는 곳인데, 이러한 몸의 성곽을 부처님들은 내버리는 것이지만 보통 어리석은 자들은 언제나 맛을 붙여 탐욕, 성내는 일, 어리석음의 나찰(羅刹)들이 그 속에 살고 있으며, 그리고 이 몸이 든든하지 못하기는 갈대·이란(伊蘭)·물거품·파초와 같으며, 이 몸이 무상하여 잠깐도 머물러 있지 못한 것은 번갯불·세찬 물·아지랑이와 같고, 물을 베는 것 같아서 베는 대로 곧 합하는 것이며, 이 몸이 무너지기 쉬운 것은 강 가 절벽에 선 큰 나무와 같으며, 이 몸이 오래지 아니하여 여우·늑대·수리·올빼미·까치·까마귀와 주린 개 따위에게 뜯기어 먹힐 것이니, 지혜 있는 이라면 누가 이 몸을 즐거워할 것이겠는가. 차라리 소 발자국에 바닷물을 담을지언정 이 몸의 무상하고 부정하고 더러운 것을 갖추어 말할 수는 없으며, 또 차라리 땅덩이를 비벼서 대추만큼 만들고 점점 더 작게 하여 겨자씨같이 만들고 나중엔 티끌만큼 만든다 할지언정 이 몸의 허물과 걱정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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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 버리기를 침 뱉듯이 한 이들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모든 우바이들이 공(空)하고 모양 없고[無相] 소원이 없는[無願] 법으로 언제나 마음을 닦고, 대승 경전을 즐겨 배우고, 그것을 듣고는 남들을 위하여 연설하며, 본래의 서원을 지니고 여인의 몸을 꾸짖으며 매우 걱정하는 것이었다. 성질이 견고하지 못함을 알고, 마음으로 매양 올바른 관찰을 닦아 생사에서 끝없이 헤매던 것을 깨뜨리고, 대승법을 우러러 스스로 만족하고 다른 우러르는 이들까지 만족케 하며, 대승을 좋아하고 대승을 수호하며, 비록 여인의 몸을 가졌으나 실상은 보살이어서 온갖 세간을 잘 따르며,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고, 이해하지 못한 이를 이해케 하며, 삼보의 씨를 이어 끊어지지 않게 하며, 오는 세상에서 법수레를 운전하여 큰 장엄으로 자신을 장엄하고, 깨끗한 계행을 굳게 하여 큰 장엄으로 자신을 장엄하고, 깨끗한 계행을 굳게 지니어 이런 공덕을 모두 성취하였고, 모든 중생에게 자비한 마음을 일으켜 평등하기 외아들같이 보는 이들이었는데, 그들도 역시 이른 새벽 해가 뜨려 할 무렵에 서로 보고 말하기를, “오늘 우리들은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모든 우바이들이 마련한 공양거리는 앞의 사람들 것보다 더 훌륭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로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백천 바퀴를 돌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오늘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공양거리를 마련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공양을 받으시옵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허락하지 않으시니, 우바이들은 소원을 이루지 못하여 슬픈 마음을 품고 한 곁에 물러가 앉아 있었다.
그 때 또 네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비사리성(毘舍離城)에 사는 리차(離車) 족속들의 남녀 노소 처자 권속들과 또 염부제(閻浮提)에 있는 모든 왕과 권속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른 법을 구하기 위하여 계행을 닦으며 위의를 갖추었고 바른 법을 파괴하는 외도를 항복받는 이들인데, 서로들 말하였다.
“우리들은 마땅히 금과 은이 들어 있는 창고로서 감로(甘露) 같은 한량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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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바른 법을 쌓아 놓은 깊은 곳간이 세상에 오래 있도록 하겠으니 이제 우리들로 하여금 언제나 이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부처님의 바른 법을 훼방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그 혀를 끊어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또 원을 세워 말하였다.
“만일 출가한 사람으로서 계행을 깨뜨리는 이가 있으면 우리들은 반드시 그를 파하여 환속(還俗)시켜 채찍으로 부려 먹을 것이요, 바른 법을 좋아하여 지켜내면 우리들은 반드시 그를 부모와 같이 공경하여 섬길 것이요, 또 만일 스님으로서 능히 바른 법을 잘 닦는 이가 있다면 우리들은 반드시 따라서 기뻐하며 세력을 얻게 할 것이다.”
이들은 항상 대승 경전을 듣기를 좋아하고, 듣고는 다른 이를 위하여 연설하여 모두들 이런 공덕을 성취하였는데, 그들의 이름은 정무구장 리차자(淨無垢藏離車子)·정불방일(淨不放逸)리차자·항수무구정덕(恒水無垢淨德)이차자 들이었다.
이런 이들이 서로 말하되 “여러분, 지금 부처님 계신 데로 빨리 갑시다. 마련해야 할 온갖 공양거리가 모두 갖추어졌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여러 리차 족속들이 제각기 8만 4천 큰 코끼리, 8만 4천 말수레, 8만 4천 명월주(明月珠)들을 장엄하게 갖추고, 천목향·전단향·침수향의 장작 묶음이 각각 8만 4천이며, 8만 4천의 각각의 코끼리 앞에 보배 짐대와 깃발과 일산을 들었는데, 작은 것은 너비와 길이가 1유순이요, 깃발은 가장 짧은 것이 33유순이고, 짐대는 낮은 것의 높이가 1백 유순이었다. 이러한 공양거리를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백천 바퀴를 돌고 아뢰되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제 부처님과 스님들을 위하여 공양거리를 마련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이 공양을 받으시옵소서” 하였으나,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허락하지 아니하셨다. 그리하여 리차들은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수심을 품은 채 부처님의 신력으로 땅에서 일곱 다라(多羅)나무 높이나 떨어진 허공에 잠자코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 때 또 다섯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대신과 장자들도 대승을 존중하여, 만일 바른 법을 비방하는 외도가 있으면 이 여러 사람들이 힘으로 능히 그것을 꺾어 버리기를 마치 우박이 풀과 나무들을 꺾어 버리듯 하는 이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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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은 일광 장자(日光長者)·호세(護世) 장자·호법(護法) 장자 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우두머리가 되어 마련한 공양거리는 앞에 것들보다 5배나 되었는데, 그것들을 받들고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이르러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백천 바퀴를 돌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부처님과 스님들을 위하여 공양거리를 마련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이 공양을 받으시옵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 잠자코 받지 아니하시니, 모든 장자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에 수심을 품은 채, 부처님의 신력으로 땅에서 일곱 다라나무 높이나 떨어진 허공에 잠자코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 때 또 비사리왕과 그 후궁과 권속들과 염부제 안에 있는 여러 임금들, 다만 아사세왕(阿闍世王)과 그의 도성 촌락의 백성들을 빼고는 모두 모이니, 그 이름은 월무구왕(月無垢王)들인데, 그들도 제각기 네 가지 군대를 장엄하고 부처님 계신 데로 가려 했었다. 그 모든 임금들은 각각 1백80만억 백성 권속이 있고, 여러 수레에는 코끼리와 말을 맸는데 코끼리는 어금니가 여섯이요, 말은 바람같이 달리며, 장엄한 공양거리가 앞에 것보다 여섯 갑절이었고, 보배 일산은 가장 작은 것의 둘레와 길이 너비가 8유순에 차고, 깃발은 아주 짧은 것이 16유순이고, 짐대는 가장 낮은 것이 36유순이었다.
이 임금들은 바른 법에 머물러 있으면서 사특한 법을 미워하고 대승을 존중하며 대승을 좋아하며, 중생 사랑하기를 외아들같이 하였고, 마련한 음식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4유순까지나 풍기었다. 그들도 또한 이른 아침 해가 뜨려 할 무렵에 가지가지 훌륭한 음식들을 받들고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를 찾아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을 위하여 공양을 마련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들의 마지막 공양을 받으시옵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때를 아시고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여러 임금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수심을 머금고 한 곁에 물러가 앉는 것이었다.
그 때 또 일곱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여러 왕들의 부인이 있어 아세사왕의 부인만 제외하고 모두 모였는데, 그들은 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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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받았으며, 항상 몸과 행을 살피면서 공하고 모양 없고 소원 없는 법으로 그 마음을 향기롭게 닦는 이들이었으니, 그 이름은 삼계묘(三界妙) 부인·애덕(愛德) 부인 들이었다. 이러한 여러 왕의 부인들은 모두 바른 법에 머물러 있으면서 계행을 잘 지니어 위의를 갖추고 중생들 사랑하기를 외아들처럼 하였다. 그들도 서로 말하되 “지금 곧 가서 부처님 계신 곳에 예배해야겠소” 하였다.
이 여러 왕의 부인들이 마련한 공양거리는 앞에 것보다 일곱 갑절 되는 향과 꽃과 보배 짐대와 비단 깃발과 일산과 훌륭한 음식들인데, 일산은 작은 것이 둘레와 길이 너비가 16유순이고, 깃발은 가장 짧은 것이 36유순이고 짐대는 낮은 것이 68유순이며, 음식 향기가 두루 퍼져 8유순에 가득 찼었다. 이러한 공양거리를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로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백천 바퀴를 돌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부처님과 비구승들을 위하여 이 공양거리를 마련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저희들의 마지막 공양을 받으시옵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받지 아니하시니 여러 부인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애가 타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기를 마치 어머니가 아들의 초상을 만난 듯이 하면서 한 곁에 물러가 잠자코 앉는 것이었다.
그 때 또 여덟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모든 천녀들이 있었는데 이름은 광목(廣目) 아씨였다. 그가 우두머리가 되어 말하였다.
“여러 언니들, 자세히 보시오, 자세히 보시오. 저 여러 사람들이 가지가지 훌륭한 공양거리를 마련하여 부처님과 비구승에 공양하려 하니, 우리들도 또한 그들과 같이 좋은 공양거리를 차려 가지고 부처님께 공양합시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받으시고는 열반에 드실 것입니다. 여러 언니들, 모든 부처님들이 세상에 나시기란 어려운 일이요, 또 마지막 공양을 받들기는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부처님께서 열반하신다면 세간은 텅 빌 것입니다.”
이 천녀들은 대승을 좋아하여 대승을 들으려 하고, 듣고는 남을 위하여 널리 전하여 주고 대승을 목마른 듯 우러러 스스로 만족하고는 법을 우러르는 다른 이에게까지 만족케 해주며, 대승을 수호하되 만일 대승을 질투하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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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있으면 마치 우박이 초목을 부러뜨리듯이 꺾어 버리며, 계행을 보호하여 지니며 위의를 갖추어 온갖 세간 사람들을 잘 따르면서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고 이해하지 못한 이를 이해케 하며, 오는 세상에서 법수레를 운전하여 삼보의 씨를 이어 끊어지지 않게 하며, 대승을 배우고 큰 장엄으로 자신을 장엄하여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으며, 중생들을 평등하게 사랑하기를 외아들처럼 하는 이들이었다.
그들도 역시 이른 아침 해가 뜨려 할 무렵에 저마다 가지가지 천목향들을 가졌는데, 인간들이 가진 향목보다는 갑절이나 많았으며, 그 나무의 향기는 사람들의 온갖 더러운 냄새를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흰 수레에 흰 일산을 받고 흰 말 네 필을 메웠으며, 수레 위마다 흰 휘장을 두르고 휘장의 사방에는 여러 금방울을 달았고, 가지가지 향과 꽃과 보배 짐대와 깃발과 일산과 좋은 음식과 여러 가지 풍류를 잡히고, 또 사자좌를 차렸는데 그 좌석의 네 다리는 짙푸른 유리로 만들고 사자좌 뒤에는 각각 7보로 만든 안석이 있고, 앞에는 금으로 만든 발받침이 있으며, 또 7보로 등대를 만들고 온갖 보배 구슬로 등불을 삼았으며, 땅에는 아름다운 하늘 꽃으로 펴 깔았다. 이 여러 천녀들이 이런 공양거리를 마련하고 슬픈 감격에 잠겨 눈물을 흘리면서 큰 고통을 일으켰지만 역시 중생들을 이익하고 편안케 하기 위하여 대승의 제일가는 공한 행을 이룩하고 부처님의 방편인 밀교를 나타내며, 또 가지가지 설법을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백천 바퀴를 돌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들의 마지막 공양을 받아 주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받지 않으시니, 천녀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근심을 품은 채 한 곁에 물러가 잠자코 앉는 것이었다.
그 때 또 아홉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여러 용왕들이 사방에 살았는데 그 이름은 화수길용왕·난다용왕·바난타용왕 들로서 그들이 우두머리였다. 이 여러 용왕들도 역시 이른 아침 해가 뜨려는 무렵에 공양거리를 인간들과 천녀 것들보다 갑절이나 더 차려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로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백천 바퀴를 돌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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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 마지막 공양을 받아 주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받지 아니하시니 여러 용왕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수심을 품고, 한 곁에 물러가 앉는 것이었다.
그 때 또 열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여러 귀신왕들이 있었는데 비사문(毘沙門)왕이 우두머리였다. 서로 일러 말하되 “여러분, 지금 빨리 부처님 계신 데로 가야 하오” 하면서 용왕들보다 더 훌륭한 공양거리를 차려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로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백천 바퀴를 돌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어 이 마지막 공양을 받아 주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귀신왕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수심을 품고서 한 곁에 물러가 앉는 것이었다.
그 때 또 스무 항하의 모래 수 같은 금시조왕(金翅鳥王)이 있었는데 항원왕(降怨王)이 우두머리였고, 또 서른 항하의 모래 수 같은 건달바왕(乾闥婆王)이 있었는데 나라달왕(那羅達王)이 우두머리였고, 또 마흔 항하의 모래 수 같은 긴나라왕(緊那羅王)이 있었는데 선견왕(善見王)이 우두머리였고, 또 쉰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마후라가왕(摩睺羅伽王)이 있었는데 대선견왕(大善見王)이 우두머리였고, 예순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아수라왕이 있었는데 섬바리왕(睒婆利王)이 우두머리였고, 또 일흔 항하의 모래 수 같은 타나바왕(陀那婆王)이 있었는데 무구하수왕(無垢河水王)과 발제달다왕(跋提達多王)들이 우두머리였고, 또 여든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나찰왕이 있었는데 가외왕(可畏王)이 우두머리였다. 그들은 악한 마음을 다 버리고 다시는 사람을 잡아먹지 아니하며 원수에게도 자비한 마음을 일으켰으므로, 모양이 매우 흉악하던 것이 부처님의 신력으로 단정하여졌다. 또 아흔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수림신왕(樹林神王)이 있었는데 낙향왕(樂香王)이 우두머리였고, 또 1천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지주왕(持呪王)이 있었는데, 대환(大幻) 지주왕이 우두머리였고, 또 1억 항하의 모래 수 같은 탐색(貪色) 도깨비가 있었는데 선견왕(善見王)이 우두머리였고, 또 백억 항하의 모래 수 같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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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의 여러 채녀(采女)들이 있었는데, 남바녀(藍婆女)·울바시녀(鬱婆尸女)·제로첨녀(帝路沾女)·비사가녀(毘舍佉女)들이 우두머리였고, 또 천억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모든 귀왕(鬼王)들이 있었는데 백습왕(白濕王)이 우두머리였고, 또 십만억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여러 천자와 여러 천왕들과 사천왕들이 있었고, 또 10만억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사방의 풍신(風神)들이 있어서 모든 나무에 불어 제철 꽃과 제철 아닌 꽃들을 날려서 쌍으로 선 나무 사이에 흩는 것이었다.
또 10만억 항하의 모래 수 같은 구름과 비를 맡은 신이 있어 이 같은 생각을 가졌었다. ‘여래께서 열반하시어 화장할 때에는 우리는 꼭 비를 내려 불을 꺼서 대중의 애타는 고민을 서늘케 하리라.’
또 스무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코끼리왕이 있었는데 라후(羅睺) 코끼리왕·금빛[金色] 코끼리왕·단맛[甘味] 코끼리왕·감후(紺睺) 코끼리왕·욕향(欲香) 코끼리왕들이 우두머리였다. 그들은 대승을 공경하고 대승을 좋아하고, 부처님께서 오래잖아 열반에 드실 줄 알고 제각기 한량없고 그지없는 여러 아름다운 꽃들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또 스무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사자왕이 있었는데 사자후왕(獅子吼王)이 우두머리가 되어 모든 중생에게 두려움 없는 보시를 하더니, 온갖 꽃과 과일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곁에 물러가 있었으며, 또 스무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모든 날짐승 왕이 있었는데 오리·기러기·원앙·공작 등 여러 새와 건달바새·가란타새·구욕새[鴝鵒鳥]·앵무새·구시라새[俱翅羅鳥]·바희가새[婆嘻伽鳥]·가릉빈가새[迦陵頻伽鳥]·기바기바새[耆婆耆婆鳥], 이 같은 여러 새들이 꽃과 과일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또 스무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물소와 소와 양들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젖을 흘려내니 그 젖이 구시나성에 있는 도랑과 웅덩이에 가득차 빛과 향기와 훌륭한 맛을 모두 갖추었으며, 이런 일을 이루고는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또 스무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사천하의 여러 신선들이 있었는데 인욕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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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忍辱仙人)이 우두머리가 되어 모든 향과 꽃과 여러 가지 맛나는 과일들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사 이 마지막 공양을 받아주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허락하시지 않으시니, 모든 신선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여 수심을 품고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염부제에 있는 모든 벌[蜂] 임금들 중에 묘음봉왕(妙音蜂王)이 우두머리가 되어 가지각색 꽃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로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바퀴를 돌고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그 때 염부제 중에 있는 비구·비구니들이 모두 모였는데 오직 존자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아난(阿難)이 빠졌으며, 또 한량없는 아승기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세계와 그 중간과 염부제에 있는 모든 산은 수미산왕이 우두머리인데, 그 산은 장엄하여 숲과 떨기가 우거지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햇빛을 가리웠으며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두루 퍼져 장식되었고, 맑은 샘과 흐르는 물은 향기롭고 깨끗하며, 모든 하늘과 용과 신과 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와 신선과 주술(呪術)하는 이들이 풍류와 놀이를 잡히며 이런 무리들이 그 속에 가득 찼는데, 이런 여러 산신들도 역시 부처님 계신 데로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또 아승기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사방 바다 맡은 신들과 강 맡은 여러 신들이 있어, 큰 위덕을 갖추고 신통력을 가졌었는데 그들이 마련한 공양거리는 앞에 것보다 갑절이나 더 훌륭하였다. 여러 신들의 몸에서 솟는 빛과 풍류의 등불 빛이 해와 달을 가리워 다시 나타나지 못하게 하며, 점바(占婆)꽃을 희련하(熙連河)에 흩으면서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그 때 구시나 성의 사라숲에서는 나무들이 모두 희어져서 마치 흰 학과 같았으며, 허공 중에 저절로 7보로 된 강당이 생겼는데, 아로새긴 무늬와 조각이 아름답고 분명하며, 둘러 있는 난간은 여러 가지 보배로 장식되었고, 강당 아래는 흐르는 샘과 목욕하는 못이 있는데, 훌륭한 연꽃이 그 속에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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찼으니, 마치 북방에 있는 울단월(鬱單越)과도 같고 도리천(忉利天)의 환희원(歡喜園)과도 같았다.
그 때 사라숲 사이에서도 가지가지 장엄이 매우 훌륭하기가 역시 그와 같았는데, 이 천상 사람들과 아수라들이 다 함께 부처님의 열반하시는 모양을 보고 모두 슬피 느끼며 근심하며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 때 사천왕과 제석천왕이 서로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 천상 사람, 세간 사람과 아수라들이 공양을 많이 차려 가지고 부처님께 마지막 공양을 드리려는 것을 보았는가. 우리들도 역시 그와 같이 공양해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마지막 공양을 올린다면 보시바라밀[檀波羅蜜]을 만족스럽게 성취하는 것도 어렵지 아니하리라.”
그 때 사천왕들이 마련한 공양거리는 앞에 것들보다 갑절이나 훌륭했으니, 만다라화(曼陀羅花)·큰 만다라화·가지루가화(迦枳樓伽花)·큰 가지루가화·만수사화(曼殊沙花)·큰 만수사화·큰 산다니가화(散多尼迦花)·애락화(愛樂花)·큰 애락화·보현화(普賢花)·큰 보현화·시화(時花)·큰 시화·향성화(香城花)·큰 향성화·환희화(歡喜花)·큰 환희화·발욕화(發欲花)·큰 발욕화·향취화(香醉花)·큰 향취화·보향화(普香花)·큰 보향화·천금엽화(天金葉花)·용화(龍花)·파리질다수화(波利質多樹花)·구비라수화(狗毘羅樹花) 들과 또 가지각색 아름답고 훌륭한 음식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부처님 발에 예배했는데, 이 모든 천상 사람들이 가진 광명은 능히 해와 달을 가리워 나타나지 못하게 했으며, 이러한 공양거리로 부처님께 공양하려 했으나 부처님께서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받지 아니하시니 그 천인(天人)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면서 한 곁에 물러가 앉는 것이었다.
그 때 제석천왕과 33천이 여러 가지 공양거리를 마련했는데 역시 앞에 것들보다 곱절이나 훌륭하고, 가지고 온 꽃들도 또한 그렇게 아름다우며, 미묘한 향기가 대단히 좋았고, 득승당(得勝堂)과 모든 작은 강당들을 받들고 부처님 계신 데로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대승을 좋아하고 애호하옵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의 공양을 기쁘게 받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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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래께서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받지 않으시니, 여러 제석천왕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여 수심을 품고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또 제6천이 베푼 공양은 앞에 것들보다 점점 더 훌륭했으니, 보배 깃발과 일산들은 작은 것이 사천하를 덮었고, 깃발은 가장 짧은 것도 사방 바다를 둘렀으며, 짐대는 가장 낮은 것이 자재천(自在天)까지 이르러서 실바람만 불어도, 깃발에서 아름다운 음성을 내는 것이었는데, 훌륭한 음식들을 받들고 부처님 계신 데로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희들의 마지막 공양을 받아 주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받지 아니하여 여러 하늘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가슴에 수심을 품고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위로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천 대중들이 모두 모여 왔는데 그 때 대범천왕과 다른 범천 대중들이 몸으로 광명을 놓아 사방 천하에 두루 퍼져 욕계(欲界)의 천상·인간의 해와 달빛은 다시 나타나지 못하며, 보배짐대와 비단 깃발과 일산들을 가졌는데, 깃발은 가장 짧은 것도 범천의 궁전에 단 것이 사라숲까지 드리웠다.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이 마지막 공양을 받으시옵소서.”
그러나 여래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받지 아니하시니, 범천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에 수심을 품은 채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그 때 비마질다(毘摩質多) 아수라왕이 한량없는 아수라 권속들과 함께 하였으니 그 몸들의 광명이 범천보다 더 훌륭하며, 보배 짐대와 비단 깃발과 일산들을 가졌는데, 일산은 작은 것이 천 세계를 덮었고, 가장 훌륭한 음식을 받들고 부처님 계신 데로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마지막 공양을 받아 주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받지 아니하시니, 아수라들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에 수심을 품고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그 때 욕계의 마왕 파순(波旬)이 그 권속과 하늘의 채녀(婇女)들과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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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고 그지없는 아승기 무리를 데리고 지옥문을 열어 놓고 서늘한 물을 뿌리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지금 할 만한 아무 일도 없다. 다만 여래·응공·정변지만을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따라 즐겨 하는[隨喜] 공양을 세우라. 반드시 너희들로 하여금 길고 긴 밤중에서 편안함을 얻게 하리라.”
그 때 파순이 지옥 속에서 창과 칼의 한량없는 고초를 모두 소멸시키고, 이글이글 타는 불길도 비를 내려 없애고,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좋은 마음을 내어 모든 권속들로 하여금 칼·활·갑옷·병장기·창·갈퀴·철퇴·도끼·바퀴·오랏줄을 버리게 했는데, 그들이 마련한 공양거리는 온갖 천상 인간에서 베푼 것보다 갑절이나 더 훌륭하여 작은 일산도 중천세계를 덮을 만하였다. 그런 것을 받들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저희들은 지금 대승을 좋아하고 대승을 수호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공양하기 위하거나 두려움을 위하거나 다른 이를 속이기 위하거나 재물을 위하거나 다른 이를 따르기 위하여 혹 참 마음이나 거짓 마음으로 대승을 받아 지닌다면 저희들은 그 때 그 사람들의 공포를 없애기 위하여 이러한 주문을 외우리다.

타기 타타라타기 로가례 마하로가례 아라 자라 다라 사바하
侘枳 咤咤羅侘枳 盧呵隷 摩訶盧訶隷 阿羅 遮羅 多羅 莎 呵

이 주문은 모든 마음을 잃은 이, 무서워하는 이, 법문을 말하는 이, 바른 법을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이들로 하여금 외도를 항복받게 하기 위하여, 또 자기의 몸을 보호하게 하기 위하여 또 바른 법을 수호하게 하기 위하여, 또 대승을 수호하게 하기 위하여, 이 주문을 외우는 것이니, 만일 이 주문을 받아 지니는 이는 나쁜 코끼리도 두렵지 않고 거친 벌판과 빈 구렁과 험난한 곳에 가더라도 무서움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또 물이나 불이나 사자나 호랑이나 도둑이나 국법의 어려움도 없으리이다. 세존이시여, 이 주문을 지니는 사람은 이러한 공포가 없어지오리다. 세존이시여, 이 주문을 지니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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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를 보호하기를 거북이 여섯 군데를 감추듯 하오리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아첨하느라고 이런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오며, 이 주문을 가지는 이는 제가 지성으로 그 세력을 더하게 하겠사오니,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저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이 마지막 공양을 받으시옵소서.”
그 때 부처님께서는 마왕 파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음식 공양은 받지 않겠으나 네가 말한 신기한 주문은 이미 받았으니 그것은 모든 중생과 사부대중을 편안케 하기 위함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잠자코 받지 아니하셨다. 그렇게 세 번이나 청했으나 모두 받지 아니하시니, 마왕 파순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수심을 품고 한 곁에 물러가 있었다.
그 때 대자재천왕(大自在天王)과 그 권속인 한량없는 하늘 무리들이 마련한 공양거리는 범천왕·제석천왕·사천왕과 인간 천상과 8부신중과 사람인 듯 아닌 듯한 이[人非人]들이 마련한 공양보다 훨씬 훌륭하였으니, 범천왕·제석천왕의 마련한 것은 마치 먹덩이가 흰 옥 옆에 있는 듯 나타나지 못하였으며, 보배 일산은 작은 것이 삼천대천세계를 덮을 만하였다.
이러한 공양거리를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수없이 돌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받드옵는 보잘것없는 공양거리는 마치 모기가 우리에게 공양하는 듯하오며, 어떤 사람이 한 움큼의 물을 바다에 던지는 듯하오며, 조그만 등불 하나를 켜서 백천의 해를 돕는 듯하오며, 봄·여름철에 온갖 꽃이 한창 필 적에 어디서 꽃 한 송이를 쥐고 와서 그 많은 꽃에 보태는 듯하오며, 또 겨자씨로써 수미산에 더하는 듯하오니, 어찌 큰 바다나 밝은 햇빛이나 많은 꽃이나 수미산에 보탬이 되오리이까.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받드옵는 변변치 못한 공양거리도 그와 같습니다. 설사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향과 꽃과 음악과 깃발과 일산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한다 하여도 오히려 말할 것이 되지 못하오리니,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위하여 항상 지옥·아귀·축생의 나쁜 갈래에서 그지없는 고통을 받으시는 까닭이옵니다. 그러하오나 그러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 마지막 공양을 받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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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동쪽으로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 항하의 모래 수 세계를 지나가서 부처님 세계가 있는데 이름은 의락미음(意樂美音)이요, 부처님 이름은 허공등(虛空等)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지(正遍知)·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이었다.
그 때 그 부처님께서 제일 큰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서쪽으로 사바세계로 가라. 그 땅에 부처님이 계신데 이름은 석가모니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다. 그 부처님이 오래잖아 열반에 드실 것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이 세계의 청정한 밥[香飯]을 가지고 가서 저 부처님 세존께 드려라. 이 맛있는 음식을 자시면 편안하실 것이다. 저 세존께서 잡수시고는 열반에 드시리라. 선남자여, 그대는 아울러 예배하고 의심나는 것을 물을지어다.”
그 때 무변신(無邊身)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을 돌고 한량없는 아승기 보살 대중과 함께 그 나라를 떠나서 이 사바세계로 왔다.
마침 이 때 이 삼천대천세계는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이 대중 가운데서 범천왕·제석천왕·사천왕과 마왕 파순과 마혜수라(摩醯首羅), 이런 대중들이 땅이 진동함을 보고, 몸에 소름이 끼치며 목구멍과 혀가 마르고 놀래어 떨면서 사방으로 헤어지려 하는데, 제 몸을 보니 광명이 없어지고 가졌던 위엄과 공덕조차 모두 사라져 아무것도 없었다. 이 때 문수사리법왕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모든 대중에게 말하였다.
“모든 선남자들아, 그대들은 놀라지 말지어다. 왜냐 하면 여기서 동방으로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세계를 지나가서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은 의락미음이고, 부처님 명호는 허공등(虛空等) 여래·응공·정변지 등 열 가지 이름이 구족하시고, 또 거기 보살이 있는데 이름은 무변신으로 한량없는 보살들과 함께 여기 와서 부처님께 공양하려 하나니, 그 보살의 위엄과 신력으로 말미암아 그대들의 몸에 있는 광명이 나타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기쁜 마음을 가질 뿐, 두려운 마음은 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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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지어다.”
그 때 대중들이 모두 멀리서 그 부처님의 대중을 바라보니 마치 거울 속에 자기의 몸을 보는 듯하였다. 그 때 문수사리가 다시 대중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이 지금 바라보는 저 부처님과 대중들이 마치 이 부처님을 뵈옵는 것 같음은 모두 부처님의 신력인 연고니라. 그와 같이 다시 9방에 계시는 한량없는 부처님을 뵈올 수 있으리라.”
대중들은 서로 말하였다.
“애달프다, 애달프다. 세간이 비었도다. 여래께서 오래잖아 열반에 드시리라.”
이 때 대중은 모두 저 무변신보살과 그 권속들을 보았다. 그 보살의 몸에는 털구멍마다 큰 연꽃이 솟아나고, 연꽃마다 7만 8천 고을[城邑]들이 있는데 길이와 너비가 비사리성과 같고, 담벼락과 해자들은 7보로 섞어 쌓았고 보배로 된 다라나무가 일곱 겹으로 줄지어 섰으며, 백성들이 번성하여 편안하고 즐거우며, 염부단금으로 망루가 되었는데 망루마다 7보로 된 숲이 있어 꽃과 열매가 무성하고, 실바람이 불 때마다 아름다운 음성을 내니 그 소리가 화평하여 마치 하늘 음악을 잡히는 듯 성안에 사는 백성들이 이 음성을 듣고는 곧 가장 좋은 쾌락을 얻으며, 여러 해자 안에는 맑은 물이 가득하여 향기롭고 깨끗함이 진주 유리와 같으며, 이 물 위에는 7보 배가 있어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타고 다니면서 목욕도 하고 유희도 하며 서로 즐기니 그 쾌락이 그지없었다.
또 한량없는 가지각색 연꽃이 있는데 우발라화·구물두화·파두마화·분타리화들로서 그 꽃의 크기가 수레바퀴만하며, 해자의 언덕 위에는 숲동산들이 있고, 동산마다 못 다섯씩 있고, 이 여러 못 가운데는 또 우발라화·구물두화·파두마화·분타리화가 있어 크기가 역시 수레바퀴만하고, 향기가 아름다워 참으로 즐길 만하며, 그 물은 깨끗하고 맑아 부드럽기가 제일이며, 오리·기러기·원앙새 등이 그 속에서 헤엄치며 다니고 그 동산 안에는 각각 여러 가지 보배로 만든 궁전이 있고, 그 궁전 뜰마다 길이와 너비는 사방이 반듯하게 4유순씩이며, 그 담벽은 모두 네 가지 보배로 되었으니 금·은·유리·파리며, 진금으로 만든 창호에는 난간이 둘러 있고 매괴로 된 땅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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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금모래를 깔았으며, 그 궁전에는 7보로 된 못과 내가 많고 낱낱 못가마다 열 여덟개의 황금 사다리가 있고 염부단금으로 파초나무가 되었으니, 마치 도리천의 환희원(歡喜園)과 같았다.
이 성곽마다 8만 4천 임금이 있고 임금마다 한량없는 부인과 궁녀가 있어 서로 즐기고 쾌락을 누리며, 다른 백성들도 또한 그와 같이 제각기 사는 곳에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있는 중생들은 다른 이름은 듣지 못하고 위없는 대승의 법만 들으며, 여러 가지 꽃 가운데는 각각 사자좌가 있으니 사자좌의 다리는 모두 감색 유리로 되었으며, 부드럽고 흰 옷으로 자리 위에 깔았으니 그 옷이 아름답기란 삼계(三界)에 뛰어나고, 사자좌마다 한 임금이 앉아서 대승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어떤 중생들은 받아 지니고 쓰고 읽고 외우며 말씀한 대로 수행하여 대승 경전을 펴는 것이다. 그 때 무변신보살이 한량없는 중생들을 자기의 몸에 편안히 머물게 하여 세간의 즐거움을 버리게 하니, 모두 말하였다.
“애달프다, 애달프다. 세간이 비는도다. 부처님이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드시리라.”
그 때 무변신보살이 한량없는 보살에게 겹겹으로 호위되어 이러한 신통력을 나타내고 나서 한량없는 가지각색 공양거리와 훌륭하고 아름다운 음식을 올렸는데, 만일 그 음식의 향기를 맡기만 하면 모든 번뇌의 때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 보살의 신통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대중이 이렇게 변화하는 것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변신보살의 몸뚱이 크기가 가이없어 허공과 같아, 여러 부처님을 제하고는 아무도 이 보살의 몸이 가이없음을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때 무변신보살과 그 권속들이 마련한 공양거리는 앞에 것들보다도 곱절이나 훌륭하였다. 그것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합장하고 공경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 공양을 받아 주소서.”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때를 아시고 잠자코 받지 아니하시며, 이렇게 세 번 청하였으나 모두 받지 아니하였다. 그 때 무변신보살과 권속들은 한 곁에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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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가 앉았으며, 남방·서방·북방의 여러 부처님 세계에서도 한량없는 무변신보살들이 앞에 것보다 더 훌륭한 공양거리를 가지고 부처님 계신 데로 와서 공양을 청하다 여의치 못하고, 한 곁에 물러가 앉기를 역시 이와 같이 했다.
그 때 쌍으로 선 사라나무 숲 복된 땅은 가로 세로가 32유순인데 대중들이 가득 차 빈틈이 없어, 사방에서 모여 온 무변신보살과 그 권속들이 앉을 곳은 송곳 끝이나 바늘 끝, 티끌만하였다. 시방의 티끌 같은 부처님의 세계에서 모든 큰 보살들이 모여 왔고 염부제의 모든 대중들도 모여왔는데, 오직 마하가섭 존자와 아난 존자 두 분과 아사세왕과 그 권속들만을 빼고는, 보기만 하여도 사람이 죽는 독사·전갈·말똥구리와 열여섯 가지 나쁜 짓을 행하는 것들까지 모두 모여왔으며, 타나바신(陀那婆神)과 아수라들은 모두 나쁜 마음을 버리고 자비한 마음을 내어 아버지 같고 어머니 같고 누나 같고 동생 같이 되었으며,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이 자비한 마음으로 서로 대함도 그와 같았는데, 다만 영원히 성불할 수 없는 일천제(一闡提)만은 거기에 들지 않았다.
그 때 삼천대천세계가 부처님 신력으로써 땅이 부드럽고 언덕과 구렁과 모래와 자갈과 가시밭과 독한 풀들이 없으며, 여러 가지 보배로 장엄한 것이 마치 서방 무량수불(無量壽佛)의 극락세계와 같았다. 이 때 대중들이 시방의 티끌 같은 부처님의 세계를 보는 것이, 거울 속에 자기의 몸을 보는 것 같았고, 여러 부처님의 국토를 보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았다. 그 때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나왔던 오색 광명은 모여온 대중을 찬란하게 비치어 그들 자신의 몸 광명은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일을 마치고는 입으로 도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모든 천인과 여러 대중과 아수라들은 부처님의 광명이 도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모두 크게 두려워 전신에 털이 곤두서며 이런 말을 했다.
“여래의 광명이 나왔다가 도로 들어가는 것은 인연이 없지 않으리니, 반드시 시방세계에서 하실 일을 마치시고 곧 마지막 열반에 드시는 모습이시다. 어찌 이리 애달프고, 어찌 이리 애달픈가. 어쩌다 세존께서 하루아침에 4무량심을 버리시고, 또 천상·인간이 받드는 모든 공양을 받지 않으시는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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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한 지혜의 햇빛이 이제부터 아주 없어질 것이며, 위없는 법의 배가 이제 가라앉으리니 아, 애통하도다. 세상이란 큰 고통이다.”
손을 들어 가슴을 치고 슬피 울부짖으며 팔 다리가 떨리어 진정할 수 없고 온몸의 털구멍으로부터 피가 흘러나와 땅을 적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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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 순타 이야기[純陀品]

그 때 모인 대중 가운데 한 우바새가 있었는데 구시나성에 사는 장인[工巧]의 아들로서 이름은 순타(純陀)였다. 그 동류 15인과 함께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과보를 얻게 하려고, 몸의 위의를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슬프게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이렇게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비구 대중이시여, 저희들의 마지막 공양을 불쌍히 여겨 받아 주십시오. 한량없는 중생을 건지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제부터 주인도 없고 어버이도 없고 구원해 줄 이도 없고 보호해 줄 이도 없고 돌아갈 데도 없고 나아갈 데도 없습니다. 가난하고 궁하고 굶주리고 곤고할 것이옵기에 여래에게서 장래의 먹이를 구하려 하나이다. 바라옵건대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이 작은 공양을 받으신 뒤에 열반에 드시옵소서.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찰리·바라문·비사·수타가 가난하고 곤궁하여 다른 나라에 가서 농사를 지을 적에, 길 잘든 소를 얻고 반듯한 좋은 밭에 모래와 소금기가 없고 나쁜 풀이 자라지 않고 다만 하늘에서 비 오기만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길 잘든 소는 몸과 입으로 짓는 일곱 가지 업에 비유하고, 반듯한 좋은 밭은 지혜에 비유하고, 모래 소금기와 나쁜 풀을 덜어내는 것은 번뇌를 끊는 데 비유한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저의 몸에는 길 잘든 소와 좋은 밭이 있고 나쁜 풀을 매어 버렸고 다만 여래의 감로 같은 법의 비만을 바랄 따름이옵니다. 가난한 네 가지 종성[四姓]은 곧 저의 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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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위없는 법의 재물에 가난함이오니 바라옵건대 가엾이 여기시어 저희들의 가난하고 곤궁함을 없애 주시고, 고통받는 한량없는 중생을 건져 주소서. 저희의 이 공양이 보잘것없사오나 부처님과 대중에게 만족함이 되시옵소서. 저는 지금 주인도 없고 어버이도 없고 돌아갈 데도 없사오니, 아드님 라후라처럼 어여삐 여기시옵소서.”
그 때 온갖 지혜를 갖추시고 위없는 조어장부(調御丈夫)이신 세존께서 순타에게 말씀하셨다.
“착하도다, 착하도다. 내가 지금 너의 가난하고 곤궁함을 끊어 주고, 위없는 법비를 너의 몸밭에 내려 법의 싹이 트게 하리라. 네가 지금 나에게서 수명과 모습과 힘과 안락과 걸림없는 변재를 얻으려 하니, 내 이제 너에게 변치 않는 수명과 훌륭한 모습과 힘과 안락과 변재를 베풀어 주리라. 왜냐 하면 순타여, 음식을 보시하면 두 가지 과보가 차별이 없기 때문이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받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요, 두 번째는 받고서 열반에 드는 것이니라. 나는 지금 너의 마지막 공양을 받고 너로 하여금 보시(布施)바라밀을 구족하게 하리라.”
그 때 순타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차별이 없다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앞에 보시를 받은 이는 번뇌가 다하지 못하였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루지 못하였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바라밀을 구족케 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 보시 받은 이는 번뇌가 이미 다하였고 일체종지를 또한 이룩하였으며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널리 보시바라밀을 구족케 할 수 있습니다. 앞에 보시 받은 이는 아직 중생이옵고 나중 보시 받은 이는 하늘 중의 하늘이겠으며, 또 앞에 보시 받은 이는 잡식하는 몸이고 번뇌 있는 몸이고 뒤의 가가 있는 몸[後邊身]이고 무상한 몸이온데, 나중 보시를 받은 이는 번뇌 없는 몸이고 금강 같은 몸이고 법신이고 늘 있는 몸이고 가이없는 몸이옵거늘, 어찌하여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하십니까.
앞에 보시 받은 이는 보시바라밀과 내지 지혜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였으며, 오직 육신의 눈만 얻고 부처님의 눈이나 내지 지혜의 눈을 얻지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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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나중 보시 받은 이는 보시바라밀과 내지 지혜바라밀을 구족하였으며, 부처님의 눈과 내지 지혜의 눈을 구족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두 가지 보시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앞에 보시 받은 이는 받아 먹어 배에 들어가 소화되어 수명을 얻고, 모습을 얻고 힘을 얻고, 안락을 얻고 걸림없는 변재를 얻을 것이지만 나중 보시 받은 이는 먹는 것도 아니고 소화되는 것도 아니라 다섯 가지 과보가 없을 것이거늘, 어찌하여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는 이미 한량없고 가이없는 아승기겁 전부터 잡식하는 몸, 번뇌 있는 몸이 아니고, 또 뒤의 가가 있는 몸이 아니고, 늘 있는 몸이며 법신이며 금강 같은 몸이니라. 선남자여, 불성(佛性)을 보지 못한 이는 번뇌의 몸이고 잡식하는 몸이니 이는 뒤의 가가 있는 몸이거니와, 보살이 그 때 음식을 받고는 금강삼매에 들었고, 이 음식이 소화된 뒤에는 곧 불성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이니라. 보살이 그 때에도 네 가지 마군을 깨뜨리었고 지금 열반에 들어서도 네 가지 마군을 깨뜨리므로, 내가 말하기를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한 것이니라. 보살이 그 때 비록 12부 경전을 널리 말하지 아니하였으나 이미 통달하였고, 지금 열반에 들어서는 중생들을 위하여 분별하여 연설하는 것이므로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고 내가 말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몸은 이미 한량없는 아승기겁부터 음식을 받지 않는다. 모든 성문(聲聞)들을 위하여 ‘전에 난타(難陀)와 난타바라(難陀波羅)라는 소 기르는 두 여자가 받드는 우유죽을 받고 그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실로 먹지 않은 것이며, 지금도 내가 여기 모인 대중을 위하여서 너의 마지막 공양을 받기는 하되 실상은 먹지 않은 것이니라.”
그 때 대중들은 부처님께서 널리 모인 이들을 위하여 순타의 마지막 공양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기뻐 뛰며 같은 소리로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희유하다. 순타여, 그대의 이름이 헛되지 아니하도다. 순타란 말은 ‘묘하게 안다’는 뜻이니, 그대가 지금 이러한 뜻을 세웠으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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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실제를 따르고 뜻을 의지하여 순타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로다. 그대는 이제 이 세상에서 큰 이름을 얻고 공덕과 소원이 만족하였으니, 기특하도다. 순타여, 사람의 세상에 나서 얻기 어려운 다시없는 이익을 얻었으니, 훌륭하도다. 순타여, 마치 우담바라꽃이 세간에 희유한 것처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심이 어려운 일이고, 부처님 세상을 만나 신심을 내고 법문을 들음이 더욱 어렵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에 마지막 공양을 마련하는 것은 이보다도 더욱 어려우니라.
나무 순타, 나무 순타! 그대 이제 보시바라밀을 구족하였으니, 마치 가을달이 보름밤에 깨끗하고 원만하며 한 점 구름도 없어 모든 중생들이 우러러보지 않는 이가 없는 것처럼, 그대도 그와 같아서 우리들의 우러름이 되었으며, 부처님께서 그대의 마지막 공양을 받으시어 그대의 보시바라밀을 구족케 하시었도다. 나무 순타, 그러므로 그대는 뚜렷한 가을달과 같아서 모든 중생이 쳐다보지 않는 이가 없다는 것이니라. 나무 순타, 비록 사람의 몸을 받았지만, 마음은 부처님 같으니, 지금 순타는 참으로 부처님의 아들이며 라후라와 같아서 조금도 다르지 아니하니라.”
그 때 대중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대 비록 인간에 태어났으나
욕계의 제6천을 뛰어났기로
나와 모든 중생들이 이제 여기서
머리를 숙여서 청하옵나니

인간에서 가장 높은 부처님께서
오늘에 열반에 드시려는데
그대는 우리들을 가엾이 여겨
한시바삐 부처님께 권청하기를

오래도록 이 세상에 머무르시며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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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다시없는 감로 법문을
연설하여 주십사고 권청해 주오.

그대 만일 부처님께 청하지 않으면
우리 목숨 보전할 길 가이없거니
그래서 부처님께 머리 조아려
간절히 청하는 것 보여 주게나.

그 때 순타는 기뻐 뛰는 것이, 마치 어떤 사람의 죽었던 부모가 다시 살아나듯이, 순타도 이와 같이 즐거워하며 다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게송을 읊었다.

좋을시고, 이내 몸 이익을 얻어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났거니
탐욕과 성내는 것 모두 버리고
세 가지 나쁜 길을 아주 떠났네.

좋을시고, 이내 몸 이익을 얻어
금덩어리 보배를 이미 얻었고
조어장부 부처님 만났었거니
축생에 떨어질까 두렵지 않네.

부처님은 우담바라꽃과 같구나.
만나도 신심 내기 어렵다지만
만나자 선근조차 심었으므로
아귀의 쓰린 고통 길이 없으리.

아수라 종류까지 줄였다네.
부처님 나시는 일 겨자씨 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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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끝 마침보다 더 어려운데
나는 이미 보시로 생사 건넜네.

부처님 세상 법에 물들지 않아
연꽃에는 물방울도 묻지 않듯이
삼계에 태어나는 종자를 끊어
나고 죽는 물결을 길이 건넜네.

사람으로 태어남도 어렵거니와
부처님 만나기는 더욱 어려워
바다 속에 살고 있는 눈먼 거북이
나무 구멍 만나기보다 어렵네.

내가 지금 받드옵는 이 공양으로
더 없는 좋은 과보 얻어지이다.
이 세상 온갖 번뇌 끊어 버릴 때
못 끊을 것 하나도 없어지이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이 공덕으로
천상 인간 태어나기 바라지 않고
어쩌다가 그런 몸 받는다 해도
마음 달게 여기지 아니하오리.

여래께서 나의 공양 받으시오니
기쁘고 황송하기 한량없어라.
마치 보기 흉한 이란(伊蘭)꽃에서
아름다운 전단 향기 풍김 같으니

이내 몸 더럽기가 이란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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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나의 공양 받아 주시니
전단 향기 풍기는 것 같아서
즐겁고 황송한 맘 비길 데 없어.

내가 지금 훌륭한 과보를 받아
가장 좋고 묘한 곳에 태어나면
제석천왕 범천왕 모든 하늘이
모두 다 내게 와서 공양하오리.

오늘날 모든 세간 많은 중생이
모두들 큰 걱정을 느끼는 것은
삼계의 길잡이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 함을 아는 까닭.

한꺼번에 소리 높여 외치는 말씀
이 세간에 지도할 이 안 계시오니
원컨대 중생들을 버리지 말고
외아들 보듯이 하시옵소서.

부처님 대중 속에 항상 계시어
더없는 좋은 법문 연설하소서.
마치 저 보배덩이 높은 수미산
바다 위에 우뚝하심 같으옵소서.

부처님 좋은 방편 크신 지혜로
우리의 어둔 무명 끊어 주시니
떠오르는 아침 햇빛 구름을 뚫고
찬란하게 온 세계 비치시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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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좋은 방편 크신 힘으로
우리의 모든 번뇌 없애 주시니
허공에서 한 조각 구름 일어나
온 세상을 서늘케 하여 주는 듯.

이 세상 크고 작은 많은 중생들
우러러 사모하며 비통하옴은
끝없이 나고 죽는 고통의 바다
거친 물결에서 헤매는 까닭.

그러므로 바라건대 세존이시여,
중생의 믿는 마음 길러 주시며
나고 죽는 그 고통 끊기 위하시어
오래오래 세상에 머무옵소서.

부처님께서 순타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네가 말한 것처럼 부처님이 세상에 나는 것은 우담바라꽃과 같고, 부처님 세상에 함께 나서 신심을 내기는 더욱 어렵고, 열반에 들려 할 때에 마지막 공양을 받들어 보시바라밀을 구족하기는 그보다도 더 한층 어려운 일이니라. 그대 순타여, 이제 너무 근심하지 말고 스스로 기뻐하며 다행하게 생각할지어다. 마지막 공양을 여래에게 받들어 보시바라밀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니, 부처님께 세상에 오래 머물도록 청하지 말지어다. 너도 보거니와 부처님들의 모든 경계는 모두 무상한 것이고, 여러 가지 변천하는 성품과 모양도 그러한 것이니라.”
순타에게 게송을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난 것이란 죽고야 말고
목숨이 길다 해도 끝이 있나니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하여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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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인 것은 마침내 헤어진다네.

젊었던 나이라도 오래 못가고
건강에는 병고가 침노하나니
이 목숨은 죽음이 빼앗아 가서
항상 있는 법이라곤 하나도 없네.

나라의 임금들은 멋대로 하고
서슬 푸른 세력이 짝이 없지만
온갖 것 무상하여 옮아가나니
알뜰한 이 목숨도 그러하니라.

돌아가는 고통 바퀴 끝날 새 없고
나고 죽고 헤매는 일 쉬지 아니해
욕계·색계·무색계 덧없는 세상
모든 것이 하나도 즐겁지 않네.

도(道)라는 것 애초에 성품과 모양
온갖 것이 모두 다 공한 것이니
견고하지 못한 법 바뀌고 흘러
근심과 걱정이 항상 있는 것.

두려울새 모든 허물 늙고 병들고
시달리고 죽고 하는 여러 가지 일
이런 것이 뒤를 이어 가이없어서
부서지기 잘하고 원수가 침노.

시끄러운 번뇌에 얽혀지는 일
누에가 고치 속에 들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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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지혜 있는 사람으로야
이것이 즐겁다고 애착하리요.

이 몸은 온갖 고통 모여서 된 것
하나하나 모든 것 더러울 따름
눌리고 얽매이고 헌데 투성이
근본부터 보잘것없는 일이니라.

인간에나 천상에 태어나는 몸
누구나 한결같이 다 그리하여
온갖 탐욕 모두가 무상하거니
그러기에 이내 몸 애착 않노라.

모든 욕심 여의고 삼매를 닦아
진실한 바른 법을 증득하였고
마침내 모든 생사 끊어 버린 이
오늘날 큰 열반에 들려 하노라.

생사 없는 저 언덕 나는 건너가
이 세상 온갖 고통 뛰어났으니
그러므로 오늘날 항상 즐거운
위없이 묘한 낙을 받을 뿐이네.

그 때 순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오이다. 그러하오이다. 참으로 부처님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진 지혜는 보잘것없어 마치 모기나 등에와 같으니 어찌 부처님께서 열반하시는 깊고 묘한 이치를 알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여러 큰 코끼리[龍象]인 보살마하살과 모든 번뇌를 끊어 버린 문수사리법왕자와 같습니다. 비유하면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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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더라도 스님들 중에 참여하는 것처럼, 저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과 보살들의 신통력으로써 이런 큰 보살 축에 들어 있나이다. 그래서 저는 지금 부처님께서 오래도록 세상에 계시고 열반에 들지 마옵소서 하는 것이오니, 마치 굶주린 사람이 변할 것도 토할 것도 없는 듯이,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도 그와 같이 항상 세상에 계시어서 열반에 들지 마옵소서.”
그 때 문수사리법왕자가 순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그런 일로써 부처님으로 하여금 세상에 항상 계시고 열반에 들지 말기를 마치 굶주린 사람이 변하지도 토하지도 않는 것같이 하시라고 말하지 말고, 마땅히 모든 행법의 성품과 모양을 관찰하며, 이렇게 관찰하고 수행하여 공한 삼매를 갖출 것이니, 바른 법을 구하려거든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순타는 이렇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여래께서는 천상·인간에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시니 이러한 여래가 어찌 행법이겠습니까. 행법이란 것은 났다 없어졌다 하는 법이니, 마치 물거품이 금방 생겼다 금방 꺼지며, 굴러가고 굴러오기를 수레바퀴와 같이 하는 것이니 모든 행법은 이런 것이 아닙니까. 내가 듣기에는 하늘들의 수명이 매우 길다는데, 하늘 중에 하늘이신 세존의 수명이 이렇게 짧아서 백년도 차지 못하겠습니까. 한 고을의 주인이 되어도 그 세력이 자재하고, 그 자재한 세력으로 다른 사람을 다스리다가, 그의 복이 다하여 빈천하여지면, 다른 이의 경멸을 사고 남의 다스림을 받는다 하니, 그것은 세력을 잃은 탓입니다. 부처님도 그러하여 모든 행법과 같을진댄 행법과 같은 이를 어떻게 하늘 중의 하늘이라 하오리까. 행법은 나고 죽는 법인 탓이오니, 문수사리여, 여래가 행법과 같다고 하지 마십시오.
또 문수사리여, 여래가 행법과 같다는 것은 알고 하는 말입니까, 모르고 하는 말입니까? 만일 여래가 행법과 같다면 이 삼계 가운데서 하늘 중의 하늘로 자재하신 법왕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마치 어떤 임금에게 큰 역사가 있어 힘이 천 사람을 대적할 수 있다면, 그를 당할 사람이 다시 없으므로 천 명을 대적하는 역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역사는 임금이 사랑하고 벼슬을 높이어 녹과 상품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천 명을 대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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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역사란 말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반드시 천 명을 대적할 힘이 없더라도 그의 여러 가지 기술이 천 사람을 이길 수 있으므로 천 명을 대적한다 하나이다. 세존도 그와 같아서 번뇌의 마군, 5음의 마군, 하늘 마군, 죽음의 마군을 항복받으므로 여래를 삼계의 가장 높은 이라 일컫나니, 저 역사가 천 명을 당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가지가지 한량없는 진실한 공덕을 구족히 성취하였으므로 여래·응공·정변지라 합니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억지 생각으로써 여래가 행법과 같다고 분별하지 말지니, 마치 큰 부자 어른이 아들을 낳았을 적에 관상쟁이가 상을 보고 단명하리라 하면, 부모가 듣고는 가문을 계승하지 못할 줄 알고 더는 귀여워하지 않고 초개같이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단명한 사람은 사문·바라문 등 남녀 노소의 공경을 받지 못하는 것이온데 만일 여래가 행법과 같다면 어떻게 천상 인간 모든 중생의 공경을 받겠습니까. 여래의 말씀하신 변치 않고 달라지지 않는 진실한 법문도 받을 이가 없을 것이오니, 문수사리여, 여래가 행법과 같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또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어떤 가난한 여인이 집도 없고 구원할 이도 없는데, 병까지 걸리고 기갈에 못 견디어 거지로 다니다가, 어느 객점에서 아기를 해산했으나 객점 주인에게 쫓겨나서, 아기를 안고 다른 데로 떠나가다가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옷이 젖고 떨리는 고통이 막심한 가운데, 모기·등에·벌 따위에게 뜯기웠습니다. 항하를 지나게 되자 아기를 안고 건너는데 그 물흐름이 세찼으나 아기를 놓지 않아 모자가 함께 물에 빠져 죽어 이 여인이 아기를 사랑한 공덕으로 죽어서 범천에 태어남과 같습니다.
문수사리여, 만일 어떤 선남자가 바른 법을 보호하려거든 여래가 행법과 같다고도 같지 않다고도 말하지 말고, 다만 스스로 책망하기를 ‘내가 어리석어 지혜의 눈이 없으니 여래의 바른 법을 헤아릴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를 가리켜 함이 있다 함이 없다고도 말하지 말지니, 만일 바른 소견을 가진 어떤 이면 여래는 결정코 함이 없는 법이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중생들에게 선한 법을 내게 하며,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이오니 저 가난한 여인이 항하를 건너다가 아기를 사랑하여 생명을 버림과 같은 까닭입니다. 선남자여, 법을 보호하는 보살도 그와 같아서 생명을 버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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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정, 여래가 함이 있는 법[有爲法]과 같다고 말하지 말고, 함이 없는 법과 같다고 말할 것이니, 여래가 함이 없는 법과 같다고 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 마치 저 여인이 범천에 태어남과 같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말하건대 법을 두호한 까닭입니다. 어떻게 법을 두호하였는가. 여래가 함이 없는 법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선남자여, 이런 사람은 해탈을 구하지 아니하여도 해탈을 저절로 이룰 것이니, 저 여인이 범천에 나기를 구하지 않았지만 범천에 나게 된 것과 같습니다.
문수사리여, 어떤 사람이 먼길을 가다가 도중에 피곤하여 남의 집에 들어 잠이 들었을 적에, 그 집에 불이 일어나므로 깜짝 놀라 깨어보니 뛰어 나갈 기운도 없고 죽을 것이 틀림없으나 부끄러운 생각을 머금고 옷으로 알몸을 둘렀더니, 목숨을 마치고는 도리천에 태어나고, 그 뒤부터 여든 번이나 대범천왕이 되었으며, 백천 대가 되도록 인간에 태어나서 전륜왕이 되었고, 이 사람이 다시는 나쁜 갈래에 나지 아니하고 항상 안락한 곳에 난 것과 같습니다. 문수사리여, 이러한 인연으로 부끄러움이 있는 선남자는 부처님이 행법과 같다고 보지 말아야 합니다. 문수사리여, 외도들의 나쁜 소견으로는 여래가 함이 있는 법과 같다고 하려니와, 계행을 가지는 비구로는 부처님께 대하여 함이 있다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여래가 함이 있는 법이라 말하면 이것은 허망한 말이니, 이런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기를 제집에 들어가듯 할 것입니다.
문수사리여, 여래는 진실로 함이 없는 법이오니 다시는 여래가 함이 있는 법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나고 죽는 속에서 무지한 생각을 버리고 바른 지혜를 구하여 여래가 함이 없는 법인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렇게 여래를 관찰하면 32상을 구족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이다.”
그 때 문수사리법왕자는 순타의 말에 감탄하여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장수할 인연을 짓고 여래가 항상 머무는 법이며 변하지 않는 법이며 함이 없는 법임을 자세하게 알았으며, 이제 또 이와 같이 여래의 함이 있는 모양을 덮어 가리웠으니, 마치 불에 타서 죽을 사람이 부끄러운 생각으로 옷으로 몸을 덮어 가리우고, 그 공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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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도리천에 나서 범천왕이 되고 또 전륜왕이 되며,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쾌락을 받듯이, 그대도 여래의 함이 있는 모양을 덮어 가리운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서 32상과 80종호를 얻을 것이고, 보살·2승으로는 따를 수 없는 18불공법(不共法)을 구족할 것이며, 한량없는 수명으로 생사에 들어가지 않고, 항상 안락을 받다가 오래잖아 응공·정변지를 이루리라. 부처님께서 이 다음에 널리 연설하거니와, 나와 그대는 함께 여래의 함이 있는 모양을 덮어 가리울 것이며, 함이 있고 함이 없는 이야기는 아직 그냥 두고, 그대는 이 때에 빨리 공양을 올려라. 이렇게 보시함이 모든 보시 중에 가장 으뜸이 되느니라. 만일 비구나 비구니나 우바새나 우바이가 먼길을 가다가 피곤하여서 요구하는 물건이 있거든, 때를 놓치지 말고 깨끗하게 베풀어 줄지니, 이렇게 빨리 보시하는 것은 보시바라밀의 근본 종자를 구족하는 것이니라. 순타여, 마지막 공양을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올리려거든, 많거나 적거나 만족하거나 만족치 못하거나 간에 시기를 놓치지 말고 빨리 베풀 것이니, 부처님께서는 지금 곧 열반에 드실 것이다.”
순타는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어찌하여 이 음식을 탐내어서 많거나 적거나 만족하거나 만족치 못하거나 간에 빨리 보시하라 합니까? 옛날 부처님께서 6년 동안 고행하시면서도 스스로 견디었거늘, 하물며 오늘날 잠깐 동안이오리까. 문수사리여, 당신은 바로 깨달으신 여래께서 참으로 이 음식을 받으시리라 생각합니까? 나의 생각으로는 여래의 몸은 곧 법신인지라, 음식을 먹는 몸이 아닌 줄 압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순타의 말과 같으니라. 순타는 이미 미묘한 큰 지혜를 이루었으며 깊고 깊은 대승 경전에 잘 들어갔느니라.”
문수사리는 순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여래께서는 함이 없는 법이며 여래의 몸이 장수한다고 하니, 그러한 지견을 부처님께서 좋아하시느니라.”
“여래께서는 나만 좋아하실 뿐 아니라 모든 중생들까지 좋아하십니다.”
“여래께서는 그대와 우리 모든 중생들을 두루 좋아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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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여래께서 좋아하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좋아하는 것은 뒤바뀐 생각이니, 뒤바뀐 생각이 있으면 그것은 나고 죽는 것이요, 나고 죽음이 있으면 곧 함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문수사리여, 여래가 함이 있는 법이라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여래가 함이 있는 법이라 말하면 나와 당신이 모두 뒤바뀜을 행함이 됩니다. 문수사리여, 여래는 사랑하여 염려함은 없나니, 사랑하여 염려한다 함은 저 어미 소가 새끼를 사랑하여 염려하므로 비록 돌아다니면서 꼴과 물을 찾다가도 넉넉하건 못하건 간에 홀연히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들은 이런 생각이 없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라후라와 같이 평등하게 생각하시나니, 이렇게 생각하심은 곧 부처님들의 지혜의 경계입니다. 문수사리여, 마치 임금이 사마(駟馬) 메운 수레로 달릴 때에 나귀 수레로 따를 수 없는 것같이 나와 당신께서도 그와 같아서 여래의 비밀하고 깊은 이치를 다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여, 마치 금시조(金翅鳥)가 한량없이 높은 허공으로 날아다니면서 바다를 내려다보아도 물 속에 있는 고기·자라·거북·용 따위를 분명히 보며, 자기의 그림자 비친 것은 거울을 들고 얼굴을 보듯 하지만, 지혜가 없는 범부들은 그 이치를 헤아릴 수 없는 것 같아 나와 당신께서도 그와 같아서 여래의 지혜를 헤아리지 못하나이다.”
“그렇다. 그대의 말과 같으니라. 나도 이 일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에게 보살의 경계를 시험하려 한 것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 입으로 가지가지 광명을 놓으니 그 광명이 찬란하게 문수의 몸을 비치었다. 문수사리는 이 광명을 받고는 그 이유를 알고서 이윽고 순타에게 말하였다.
“순타여, 부처님께서 지금 이 상서로운 일을 나타내심은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드시려는 것이다. 그대가 마련한 마지막 공양을 이 때에 부처님과 대중에게 베풀지어다. 순타여, 부처님께서 이런 광명을 놓으심은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니라.”
순타는 이 말을 듣고 슬픔을 참으며 잠자코 있었다.
부처님께서 순타에게 말씀하셨다.
“순타여, 네가 여래와 대중에게 보시하려는 공양은 지금이 바로 그 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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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나는 이제 열반에 들겠노라.”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도 이와 같이 하였다.
그 때 순타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소리를 높여 통곡하면서 흐느껴 말하였다.
“우리들은 지금 한꺼번에 몸을 던져 땅에 엎드려 같은 목소리로 부처님께 열반에 들지 마시기를 권청합시다.”
그 때 세존께서는 다시 순타에게 말씀하였다.
“너무 울어서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고, 이 몸이 파초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물거품·요술·건달바성·굽지 않은 기와·번갯불 같으며, 물에 그림 그리기, 사형에 임한 죄수, 익은 과일, 고깃덩이, 다 짜고 남은 베틀, 방앗공이의 오르내림과 같은 줄로 관찰하라. 모든 행법은 독약 섞인 음식과 같으며, 함이 있는 법은 걱정이 많은 것을 관찰하라.”
이에 순타는 부처님께 다시 여쭈었다.
“여래께서 세상에 오래 계시지 않으려 하시니, 제가 어떻게 울지 않겠나이까. 안타깝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세간이 텅 비려 하오니,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저희들과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시어 오래오래 세상에 머무르시고 열반에 들지 마십시오.”
“순타여, 너는 그와 같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이 세상에 오래 머물라’는 말을 하지 말지어다. 나는 너와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오늘 열반에 들려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부처님들이 으레 그렇고, 함이 있는 법도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부처님들은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느니라.

함이 있는 법이란
그 성품이 무상하여
나고서는 머물잖아
없어짐이 낙이니라.

순타여, 너는 지금 이렇게 관찰할지어다. 온갖 행법은 잡란하고, 모든 법은 나라고 할 것이 없고 무상하고 머물지 않으며, 이 몸에는 한량없는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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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어서 마치 물거품 같으니라. 그러니까 너는 울지 말지어다.”
그 때 순타는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하오이다. 그러하오이다. 참으로 부처님 말씀과 같습니다. 여래께서 방편으로 열반에 드심을 보이는 줄 아나이다. 저는 근심을 품지 아니할 수 없사오나, 한편 스스로 생각하면 다시 기쁨을 내게 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순타를 칭찬하시었다.
“순타여, 훌륭하고 훌륭하다. 여래가 중생들과 같음을 보이기 위하여 방편으로 열반하는 줄을 네가 아는구나. 순타여, 너는 지금 들을지어다. 사라사(娑羅娑)새가 봄철이 되면 저 아누달(阿耨達) 못에 모이듯이 부처님들도 그와 같이 모두 이곳에 이르느니라. 순타여, 너는 지금 부처님이 장수하거나 단명한다고 생각하지 말지어다. 모든 법이 모두 곡두[幻] 모양과 같은 것인데, 여래는 그 속에 있으면서도 방편의 힘으로 물들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부처님들은 으레 그렇기 때문이니라. 순타여, 내가 이제 너의 받드는 공양을 받으려 함은 너로 하여금 나고 죽는 모든 무리들을 건지어 해탈하도록 하려 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인간이나 천상 사람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공양하는 이는 모두 변동 없는 과보를 얻어 항상 안락을 받으리니, 그 까닭은 내가 중생들의 좋은 복전인 연고니라. 네가 만일 중생들의 복전이 되려거든 빨리 공양을 마련하고 오래 지체하지 말지어다.”
그 때 순타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기 위하여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복전이 되는 것을 감당하게 될 때라면 여래의 열반하심과 열반하지 않으심을 분명히 알 수 있겠사오나, 우리들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의 지혜는 마치 모기나 하루살이 같으니, 진실로 여래의 열반하심과 열반하지 않으심을 헤아릴 수 없나이다.”
그 때 순타와 그의 권속들은 수심에 잠겨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을 에워 돌면서, 향을 태우고 꽃을 흩어 마음껏 공경하여 받들다가 이윽고 문수사리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나 공양거리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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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슬픈 탄식[哀歎品]

순타가 물러간 지 오래지 않아 이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범천에까지 그러하였다. 땅이 진동하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지동(地動)과 대지동(大地動)이다. 조금 동하는 것을 지동이라 하고, 크게 동하는 것을 대지동이라 하며, 조금 소리 나는 것을 지동, 크게 소리 나는 것을 대지동이라 하며, 땅만 동하는 것은 지동, 산과 바다와 숲들이 모두 동하는 것은 대지동이라 하며, 한쪽으로만 동하기만 하는 것은 지동, 두루 도는 것을 대지동이라 하며, 진동만 하는 것은 지동, 진동할 적에 중생의 마음까지 동하는 것을 대지동이라 한다. 보살이 처음 도솔천에서 염부제로 내려올 때는 대지동이라 하고, 처음 나서 출가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 법수레를 운전하고 열반에 드는 것도 대지동이라 하나니, 오늘 여래께서 열반에 들려 하시기 때문에 이 땅이 그같이 크게 진동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하늘과 용과 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사람과 사람 아닌 이들이 이 소리를 듣고 털이 곤두서고 같은 소리로 슬피 울면서 게송을 읊었다.

머리 조아려 부처님께 예배합니다.
저희들이 오늘날 간청하오니
인간의 신선님을 멀리 여의면
영원히 구호할 이 없겠나이다.

부처님의 열반하심 이제 뵈오면
저희들은 고통 바다 빠져 헤매며
슬프고 연모하며 수심에 잠겨
어미 잃은 송아지가 되오리이다.

가난하고 곤궁하고 돌볼 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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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시달리던 병난 사람이
지켜보는 의사 없어 제 마음대로
못 먹을 것 먹은 것과 같사오리다.

중생들의 번뇌 병도 그와 같아서
잘못된 소견들의 해를 받나니
바른 법의 의사를 멀리 여의면
나쁘고 독한 약을 먹게 되오리.

그러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선
버리고 떠나시지 마시옵소서.
임금 없는 나라에 백성 굶듯이
저희들도 보호를 잃으리이다.

부처님 열반한다는 말씀 듣고
저희들의 가슴이 답답하올 뿐
그 같은 큰 지동이 일어나오면
방향을 살필 정신 없으리이다.

세존께서 열반에 들게 되시면
지혜 해가 땅속에 꺼질 것이고
불법 물이 한꺼번에 말라 버리어
저희들은 결정코 죽게 되리라.

여래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중생들이 한없이 고통하옴은
비유컨대 장자네 어떤 아들이
부모를 잃어버림 같사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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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께서 열반에 한번 드시고
다시는 이 세상에 안 오신다면
우리와 천상 인간 모든 중생들
뉘라서 구원하고 보호하오리.

여래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사람은 말도 말고 축생들까지
너도 나도 수심에 가득 잠기어
괴로움이 모든 마음 태우옵나니

하물며 오늘날에 저희 중생들
어찌 애닯지 않사오리까.
여래께서 저희들 버리시기를
예사로 침 뱉듯이 하시옵니까.

동녘 하늘 떠오르는 아침 햇빛이
밝은 광명 한없이 찬란하여서
그 자체를 스스로 환히 비치고
온 세상의 어둠을 없애 버리듯

부처님 신통 광명 그와 같아서
우리들의 괴로움을 없애 주시고
의젓하게 대중 속에 계시는 것은
수미산이 우뚝하게 솟아 있는 듯하네.

“세존이시여, 마치 임금이 여러 아들을 두었는데 용모가 단정하여 항상 사랑하면서, 먼저 기술을 가르쳐 잘 통달케 하고, 그 뒤에 내버려 천한 전다라(旃陀羅)가 되게 한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오늘 법왕의 아들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자와 바른 소견을 갖추었사오니, 바라옵건대 버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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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옵소서. 만일 버리신다면 저 버림받은 임금의 아들과 같습니다. 바라옵건대 오래 세상에 머무르시고 열반에 드시지 마옵소서.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논리를 배우고 도리어 그 논리에 공포를 내듯이, 부처님도 그와 같아 모든 법을 통달하고 도리어 모든 법에 공포를 내는 듯하오니, 만일 여래께서 세상에 오래 계시면서 감로 같은 법을 말씀하시어 모든 이 같은 중생들을 만족케 하시면 다시는 지옥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할 일을 배우다가 법관에게 붙들려 옥에 갇혔을 적에 누가 묻기를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느냐 하면 ‘내가 지금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만일 이 일을 벗어나면 안락을 얻겠노라’ 하듯이, 세존도 그러하여 저희들을 위하여 괴로운 행을 닦으셨는데, 저희들이 아직도 나고 죽는 고통을 면하지 못하였거늘, 여래께서 어찌 안락하시리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의사가 약과 방문을 잘 알고서 비밀한 방문으로 그 아들에게만 가르쳐 주고, 다른 데서 온 제자들에게는 가르치지 아니하듯이, 여래도 그러하여 깊고 깊은 비밀한 법장으로 문수사리만 가르치시고, 우리들은 버려 두시고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나이까. 여래께서는 법에 대하여 감추심이 없을 것이온데, 저 의사가 그 아들에게만 가르치고 밖에서 온 다른 제자에게는 가르치지 않는 것은, 낫고 못하다는 관념이 있어 널리 가르치지 못하므로 아끼는 것이오나, 여래의 마음으로서는 낫고 못하다는 것이 없으실 것이거늘, 어찌하여 이같이 가르치지 않으시나이까. 바라옵건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르시고 열반에 들지 마시옵소서. 세존이시여, 마치 늙은이·어린이·병든 이들이 평탄한 길은 버려 두고 험난한 길을 가면서 갖은 고초를 당할 적에, 어떤 다른 이가 보고 딱하게 여겨 곧 평탄한 길을 가리켜 줌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우리도 그와 같으니, 어린이란 것은 아직 법신이 자라지 못한 사람에 비유하고, 늙은이란 것은 번뇌가 많은 데 비유하고, 병든 이란 것은 생사를 해탈하지 못한 데 비유하고, 험난한 길은 생사의 과보가 있는 25유(有)에 비유한 것이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우리에게 감로의 바른 길을 지도하시며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르고 열반에 들지 마시옵소서.”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비구여, 다른 범부나 천상과 세간 사람들처럼 근심하며 울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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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음을 바른 생각에 매어 둘지어다.”
그 때 모든 하늘과 인간들과 아수라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울음을 그치는 것이, 마치 아들 죽은 사람이 장사를 치르고 나서는 억지로 울음을 참는 듯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대중을 위해 이런 게송을 말씀하였다.

너희들은 마음을 활짝 풀고서
그렇게 수심하고 괴로워 말라.
부처님의 모든 법 그런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잠잠하여라.

방일하지 않는 행을 좋아하면서
마음을 잘 지키고 바로 생각해
잘못된 모든 법을 멀리 여의면
저절로 즐거움을 받게 되리라.

“또 비구들이여, 만일 의혹이 있거든 이제 모두 물을지어다. 공(空)한가 공하지 않은가, 항상한가 무상한가, 고통인가 고통이 아닌가, 의지할 덴가 의지할 데 아닌가, 간 것인가 가지 않은 것인가, 늘 있는 것인가 늘 있는 것 아닌가, 아주 없는 것인가 항상 있는 것인가, 중생인가 중생 아닌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진실한가 진실하지 않은가, 참인가 참이 아닌가, 멸(滅)인가 멸이 아닌가, 비밀한가 비밀하지 않은가, 둘인가 둘이 아닌가, 이러한 가지가지 법에 대하여 의심이 있으면 지금 모두 물을지어다.
내 마땅히 묻는 대로 대답하여 줄 것이며, 또는 너희에게 먼저 감로 같은 법을 말하고 그런 뒤에 열반에 들리라.
모든 비구들이여, 부처님이 세상에 나기 어려운 것이고 사람 되기도 어려우며, 부처님을 만나 믿는 마음을 내기는 더욱 어렵고, 참기 어려운 일을 참기가 또 어려우며, 계행을 빠짐없이 성취하고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기는 더구나 어려운 것이어서 금싸라기나 우담바라를 구하기와 같은 것이거늘 너희들 모든 비구들이 여덟 가지 어려운 것을 여의고 사람의 몸을 얻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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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너희들이 나를 만났으니 속절없이 지내가지 말아야 할지니라. 내가 지나간 옛적에 가지가지 고행을 하고서야 지금 이같이 더할 수 없는 방편을 얻은 것이다. 너희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세월에 몸과 손발과 머리와 눈과 골수까지 버리었으니 그러므로 너희들은 방일하지 말지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법보의 성곽을 어떻게 장엄할 것인가. 가지가지 공덕 보배를 갖추고 계행과 선정과 지혜로써 성벽과 해자를 삼을 것이니라. 너희가 지금 불법의 보배 성을 만났으니, 이 헛된 가짜 것을 가져서는 안 되리라. 마치 장사꾼이 진짜 보배의 성을 만나고도 기왓장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듯이, 너희들도 그와 같이 불법 보배 성을 만나고서 헛된 가짜 것을 가지는도다. 너희 모든 비구들은 용렬한 마음으로 넉넉하다는 생각을 내지 말지어다. 너희가 지금 비록 출가는 하였지만 이 대승에는 사모하는 마음을 내지 못하였으며, 너희 모든 비구들이 몸에는 물든 가사를 입었으나 마음은 대승의 깨끗한 법에 물들지 못하였으며, 너희 모든 비구들이 비록 걸식하느라고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되 대승의 법식은 아직 구하지 못하였으며, 너희 모든 비구들이 비록 머리카락과 수염은 깎았으나 바른 법으로 번뇌의 맺힌 것을 끊지 못하였으니, 너희 모든 비구들아, 이제 참으로 너희를 가르치노라. 내가 지금 대중에 화합하여 있으매 여래의 법의 성품이 진실하고 뒤바뀌지 아니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정진하여 용맹한 마음으로 모든 번뇌를 꺾어 버릴지어다. 10력을 가진 지혜의 해가 꺼져 버리면 너희들은 무명에 가리워지고 말 것이니라.
모든 비구들이여, 마치 땅과 모든 산의 약초가 중생을 위하여 쓰이듯 나의 법도 그러하여 묘하고 좋은 감로의 법맛을 내어 중생들의 가지각색 번뇌병을 고치는 약이 되느니라. 내가 이제 모든 중생과 나의 제자인 사부대중으로 하여금 모두 비밀장(秘密藏) 속에 머물게 하며, 나도 역시 그 가운데 머물러서 열반에 들려 하노라. 어떤 것을 비밀장이라 하는가. 마치 이자(伊字 : )의 세 점이 나란히 있어도 ‘이’자가 되지 못하고, 세로로 있어도 ‘이’자가 되지 못하거니와 마혜수라(摩醯首羅)의 얼굴에 있는 세 눈과 같아야 ‘이’자가 되는 것이고, 세 점이 따로 있어도 ‘이’자가 되지 못하느니라. 나도 그와 같아 해탈법도 열반이 아니고 여래의 몸도 열반이 아니고 마하반야도 열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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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며, 세 가지 법이 제각기 달라도 열반이 아니니, 나는 지금 이러한 세 가지 법에 있으면서 중생을 위하여 열반에 든다 하는 것도 세상의 ‘이’자와 같은 것이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결정코 열반에 드실 줄을 알고는 모두들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수없는 바퀴를 돌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음을 통쾌하게 말씀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온갖 중생의 발자취 중에 코끼리의 발자취가 가장 으뜸이듯이, 무상하다는 생각도 그러하여 여러 생각 중에 가장 제일이어서, 만일 부지런히 닦는 이가 있으면 온갖 욕계의 탐애(貪愛)와 색계·무색계의 탐애와 무명(無明)과 교만과 무상하다는 생각을 제할 수 있으리이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만일 무상하다는 생각을 여의었사오면 지금 열반에 들지 않으실 것이옵고, 만일 여의지 못하였을진댄 어찌하여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으면 삼계의 탐애와 무명과 교만과 무상하다는 생각을 여의리라 말씀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농사꾼이 가을에 땅을 깊이 갈면 여러 가지 풀을 제할 수 있듯이, 무상하다는 생각도 그러하여 온갖 욕계의 탐애와 색계·무색계의 탐애와 무명과 교만과 무상하다는 생각을 제할 수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밭을 가는 데는 가을에 가는 것이 으뜸이요, 발자취 중에는 코끼리 발자취가 가장 승하고, 모든 생각 중에는 무상하다는 생각이 제일이 되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제왕이 목숨이 다한 줄 알고 천하에 은사(恩赦)를 내려 옥에 갇힌 죄수들을 모두 놓아 주고 그 뒤에 목숨을 마치듯이, 여래께서도 그와 같이 중생들을 제도하여 모든 무지(無知)와 무명의 속박에서 해탈케 한 뒤에 열반하실 것이온데, 저희들이 아직 제도를 얻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저희들을 버리옵고 열반에 들려 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귀신에게 들린 사람이 주문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주문의 신력으로 말미암아 귀신을 떼어 버릴 수 있듯이, 여래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성문들에게 무명의 귀신을 떼어 버리고 마하반야와 해탈과 법신의 법에 머무르게 하기를 ‘이’자의 세 점과 같게 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향상(香象)이 사람에게 잡혔을 적에 비록 길 잘 들이는 사람이 있더라도 억누를 수 없고 필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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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나 사슬을 끊고 제 뜻대로 달아나듯이, 저희는 쉰일곱 가지 번뇌의 얽힘을 벗어나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저희를 버리시고 열반에 들려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학질에 걸렸을 적에 좋은 의사를 만나면 학질을 뗄 수 있듯이, 우리는 그와 같아서 모든 고통과 근심과 나쁜 열병에 걸렸는데, 비록 여래를 만났으나 병이 낫지 못하고 위없는 편안과 즐거움을 얻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저희를 버리시고 열반에 들려 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술취한 사람이 자기도 알지 못하고, 친척인지 남인지 어미인지 딸인지 누나인지 동생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면서, 혼미하고 황당하게 음탕한 말을 함부로 지껄이며 방자하게 부정한 속에 누웠을 적에, 어떤 의사가 좋은 약을 주어 먹고 토하고는 본 정신이 돌아와서 지난일을 생각하고 부끄럽게 여기고 후회하옵나니, 술이란 물건이 본래 좋지 못하여 여러 가지 나쁜 죄의 근본이므로, 만일 영원히 끊을 수 있다면 모든 죄악을 멀리 여읠 수 있으리이다.
세존이시여, 우리도 그와 같아서 오랜 옛적부터 생사에 헤매면서 색정에 취하고 5욕을 탐하여, 어미가 아닌 이에게 어미란 생각을 내고, 누나가 아닌 이에게 누나란 생각을 내며, 중생이 아닌 데에 중생이란 생각을 가지었으므로 여러 갈래로 돌아다니면서 나고 죽는 고통을 받는 것이, 저 술취한 사람이 부정한 속에 누운 듯하옵거늘, 여래께서 지금 법의 약을 주시어 번뇌의 나쁜 술을 토하게 하시오나 아직 깨닫는 마음을 얻지 못하였사온데, 여래께서 어찌하여 문득 저희를 버리고 열반에 들려 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이가 파초를 속이 단단하다고 찬양한다면 옳지 못한 것처럼, 중생이 만일 칭찬하기를 나란 고집, 사람이란 고집, 중생이란 고집, 오래 산다는 고집, 양육하는 것, 알음알이 소견, 짓는 이 받는 이가 진실하다는 것도 옳지 못하거늘, 저희들은 이와 같이 내가 없다는 생각[無我想]을 닦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거른 찌꺼기는 다시 소용이 없는 것처럼, 이 몸도 그와 같아서 나도 없고 주재(主宰)도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칠엽수(七葉樹)의 꽃이 향기가 없듯이, 이 몸도 그러하여 나도 없고 주재도 없나이다. 저희들도 그와 같이 마음으로 내가 없다는 생각을 항상 닦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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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온갖 법이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니, 너희 비구들은 그렇게 닦으라. 그렇게 닦으면 나라는 교만이 없어지고, 나라는 교만을 여의면 문득 열반에 들리라’고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새의 발자취가 공중에 나타날 수 없듯이, 내가 없다는 생각을 닦는 이에게는 모든 소견이 있을 수 없나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들이 내가 없다는 생각을 잘 닦는도다.”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내가 없다는 생각을 닦을 뿐 아니라 그 밖에 다른 생각도 닦으니, 괴롭다는 생각, 무상하는 생각 등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사람이 술 취하면 마음이 현란하여 산이나 강물이나 성곽·궁전·해·달·별 따위를 볼 적에 그것들이 모두 빙빙 돌 듯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괴로운 생각·무상한 생각·내가 없다는 생각 등을 닦지 않는 이런 사람은 거룩한 이[聖者]라 할 수 없나니, 항상 방일하여 생사에 헤매는 탓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므로 저희들은 이런 생각들을 잘 닦나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을지어다. 너희가 말한 술 취한 사람의 비유는 글만 알고 이치를 모르는 것이다. 이치는 어떠한가. 그 취한 사람이 해와 달 따위를 볼 적에 돌지 않는 것을 도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니, 중생도 그러하여 모든 번뇌와 무명에 가리워져서 뒤바뀐 마음을 낼 적에, 나에게 대하여 내가 없다 생각하고,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생각하고, 깨끗한 것을 부정하다 생각하고, 즐거운 것을 괴롭다 생각하는 것이니, 번뇌에 가리웠으므로 그러한 생각을 내거니와, 마치 술 취한 사람이 돌지 않는 것을 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라. 나란 것은 곧 부처란 뜻이고, 항상하다는 것은 법신이란 뜻이고, 즐겁다는 것은 열반이란 뜻이고, 깨끗하다는 것은 법이란 뜻이니라. 너희 비구들은 어찌하여 나란 생각이 있으면 교만하고 잘난 체하여 생사에 해맨다고 하느냐. 너희들이 말하기를 우리도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다는 생각들을 닦는다 하지만, 그 세 가지 닦는 법을 말하리라. 괴로운 것에 즐겁다는 생각을 내고 즐거운 것에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 뒤바뀐 법이요, 무상한 것에 항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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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생각을 내고 항상한 것에 무상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뀐 법이요, 내가 없는 것에 나라는 생각을 내고 나에게 내가 없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뀐 법이요, 부정한 것에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고 깨끗한 것에 부정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뀐 법이니, 이렇게 네 가지 뒤바뀐 법이 있으므로 사람이 법을 옳게 닦을 줄 모르느니라. 너희 모든 비구들이 괴로운 법 속에서 즐겁다는 생각을 내고 무상한 속에서 항상한 생각을 내고 내가 없는 속에서 나라는 생각을 내고 부정한 속에서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세간에도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고, 출세간에도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거니와 세간법은 글자만 있고 뜻이 없는 것이요, 출세간법은 글자도 있고 뜻도 있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세간법에는 네 가지 뒤바뀜이 있으므로 뜻을 알지 못한다 함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뀜이 있는 탓이니, 세 가지가 뒤바뀐 연고로 세간 사람들은 즐거운 데서 괴로움을 보고 항상한 데서 무상을 보고, 나에 대하여 내가 없음을 보고, 깨끗한 데서 부정함을 보는 것이므로 뒤바뀌었다 이름하고, 뒤바뀐 연고로 세간 사람은 글자만 알고 이치를 알지 못한다 함이니라. 무엇을 이치라 하느냐. 내가 없는 것은 생사요 나라는 것은 여래며, 무상이라는 것은 성문·연각이요, 항상한 것은 여래의 법신(法身)이며, 괴로운 것은 모든 외도들이요 즐거운 것은 열반이며, 부정한 것은 함이 있는 법이요 깨끗한 것은 부처님과 보살이 가지는 바른 법이니라. 이것은 뒤바뀌지 아니한 것이니, 뒤바뀌지 아니하였으므로 글자도 알고 이치도 안다 함이니라. 만일 네 가지 뒤바뀜을 멀리 여의려거든 마땅히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때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네 가지 뒤바뀜을 벗어난 이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오면, 여래는 지금 네 가지 뒤바뀜이 없사오니 이미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아셨을 것입니다. 이미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알았사오면 어찌하여 한 겁이나 반겁을 머무르시면서 저희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네 가지 뒤바뀜을 여의게 하지 아니하시고 저희를 버리고 열반에 들려 하시나이까? 여래께서 만일 불쌍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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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겨 가르쳐 주시면 우리도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어 익힐 것이오나,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다면 저희들이 어떻게 이 3독의 몸과 함께 있으면서 범행(梵行)을 닦사오리까. 저희들도 역시 세존을 따라 열반에 들겠나이다.”
“너희들은 그런 말을 하지 말지어다. 내가 가진 위없는 바른 법을 이제 모두 마하가섭에게 부촉(付囑)하였으니, 이 가섭은 너희들의 큰 의지가 되리라. 마치 여래가 모든 중생의 의지할 데가 되듯이, 마하가섭도 너희들의 의지할 데가 되리라. 마치 저 임금이 통할하는 일이 많지만 여러 곳으로 순행할 때에는 국가의 온갖 일을 대신에게 부촉하듯이, 여래도 그러하여 있던 법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였느니라. 너희들은 먼저 익히던 무상하고 괴롭다는 생각은 진실하지 아니하니, 마치 봄철에 여러 사람이 큰 연못에서 목욕하기도 하고 배를 타고 놀기도 하다가 유리 보배를 깊은 물 속에 빠뜨려 잃어버리고 여러 사람이 물에 들어가서 그 보배를 찾을 적에 제각기 돌이나 기왓장이나 나무나 자갈을 집어들고 유리 보배를 찾은 줄 여기면서, 기쁜 마음으로 가지고 나와서 보고야 참 보배가 아닌 줄을 아나니, 보배는 아직도 물 속에 있어서 보배의 힘으로 물이 맑아지므로 여러 사람들이 물 속에 있는 유리 보배 보기를 공중에 밝은 달을 우러러보는 듯하는데 이 때 대중 가운데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있다가 방편으로써 천천히 물에 들어가 보배를 찾아냄과 같으니라. 너희들 비구도 그렇게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고 부정하다는 생각을 닦으면서 참된 이치라고 생각하기를 ‘저 여러 사람이 돌이나 기왓장이나 나무나 자갈을 가지고 진짜 보배라고 생각하듯이 하지 말고, 마땅히 좋은 방편을 배우되, 가는 곳마다 나란 생각·항상하다는 생각·즐겁다는 생각·깨끗하다는 생각을 항상 닦을 것이며, 또 먼저 익히던 네 가지 법은 모두 뒤바뀐 것임을 알아야 하며, 진실한 생각을 닦으려 하거든 저 지혜 있는 사람이 보배를 집어내듯이 나이고 항상하고 즐겁고 깨끗하다는 생각을 닦을 것이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되, 모든 법은 나랄 것이 없는 줄을 너희들이 닦을지니 이것을 닦으면 나란 생각을 여의게 되고 나란 생각을 여의면 교만을 여의고 교만을 여의면 열반에 든다고 하셨는데, 이 이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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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네가 지금 이런 이치를 물어서 의심을 끊으려 하는구나. 마치 어떤 임금이 어리석어 지혜가 없었고, 또 어떤 의사도 성품이 미련하였는데, 임금은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녹을 후하게 주면서 모든 병을 다스리게 하였더니, 그 의사는 한 가지 우유약만 쓰면서 병이 생긴 원인을 알지 못하며, 우유약을 쓰면서도 풍으로 생긴 병인지 냉기나 열기로 생긴 병인지도 알지 못하고 무슨 병이든지 우유약을 먹게 하건만 임금은 그 의사가 우유의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할 줄 모르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한 명의가 있어 여덟 가지 의술을 통달하여 가지각색 병을 분명하게 치료하면서 여러 가지 방문과 약을 잘 아는데 먼 나라로부터 오게 되었다. 이 때 예전 의사는 이 손님에게 물으려고는 하지도 않고 제가 잘난 듯이 업신여기는 마음만 내었으나 그 명의는 일부러 예전 의사에게 청하여 스승이 되어 달라 하면서 의술과 방문의 비법을 묻고 말하였다.
‘나는 지금 당신을 선생으로 섬기려 하오니 나에게 잘 가르쳐 주소서.’
옛 의사가 말하기를 ‘그대가 나를 위하여 48년 동안만 섬기면 그 뒤에 가르쳐 주리라’ 하므로 그 명의는 ‘그러하오리다. 나의 능력을 다하여 심부름하려 하옵니다’ 하였다. 그런 뒤에 예전 의사는 손님 의사를 데리고 임금께 가서 보이었다. 그 때 손님 의사는 임금에게 여러 가지 의술과 방문을 말하고 다른 기술도 설명하면서 ‘대왕은 잘 살피십시오. 이 법은 이러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요, 저 법은 저러하게 병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 때 임금이 그 말을 듣고는 비로소 예전 의사가 미련하여 지혜가 없음을 알고 곧 국경 밖으로 쫓아내어 버렸다. 그런 뒤에 손님 의사를 갑절이나 더 공경하였더니, 손님 의사는 생각하기를 이 때야말로 임금을 잘 지도할 시기라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참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면 한 가지 소원을 청하려 하나이다.’
임금은 대답하였다.
‘내 오른팔로부터 몸의 어떤 부분이라도 경의 요구하는 대로 주려 하노라.’
손님 의사는 다시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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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께서는 모든 몸의 어떤 부분이라도 주신다 허락하시오나, 저는 구하는 일이 많지 아니하옵고 원하는 바는 대왕께서 나라 안에 명령을 내리시어 이제부터는 예전 의사가 쓰던 우유약을 먹지 말도록 하십시오. 그 이유를 말하면 그 약이 독하여서 해가 많은 까닭이오니, 만일 다시 먹는 사람은 머리를 벤다고 하시어서 우유약을 아주 금하면 다시는 횡사하는 사람이 없고 항상 태평하겠기에 이런 원을 청하옵니다.’
임금은 ‘경의 소원은 대단한 것도 아니다’ 하면서, 곧 나라 안에 조칙을 내려서 ‘무릇 병자는 누구든지 우유약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다시 우유약을 쓰는 자는 머리를 베리라’고 하였다.
그 때 손님 의사는 맵고 쓰고 짜고 달고 신 여러 가지 재료로 약을 지어서 모든 병을 다스리니 온갖 병이 낫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 임금이 병이 나서 손님 의사를 불러서 진찰하게 하였더니, 의사는 임금의 병을 살피어 우유를 써야 할 것을 알고 이렇게 여쭈었다.
‘대왕의 병환에는 우유약을 써야 하겠습니다. 제가 앞서 우유약을 금하게 한 것은 참말이 아니었으며, 이제 대왕께서 우유약을 쓰시면 병환이 곧 쾌차할 것이오니, 대왕의 병환은 열기로 생긴 것이므로 우유를 잡수셔야 합니다.’
임금은 손님 의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경은 지금 머리가 돌았는가, 염병이 들렸는가. 어찌하여 우유를 먹으면 이 병이 낫겠다 하는가. 앞서는 우유약이 독하다고 했다가, 이제는 먹으라 하니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예전 의사가 시키던 우유약이 해롭다고 하여서 쫓아내게 하더니, 이제는 병에 가장 적당한 좋은 약이라 하니, 경의 말과 같을진댄 예전 의사가 경보다 나은 것 아닌가.’
이 때에 손님 의사는 다시 여쭈었다.
‘대왕은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 아닙니다. 마치 어떤 벌레가 나뭇잎을 먹어서 글자를 이루었다 할지라도 이 벌레는 글자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합니다. 지혜 있는 이는 이 벌레가 글자를 안다고 하지도 않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예전 의사도 그와 같아서 병의 증세는 알지도 못하면서 일률적으로 우유약을 쓰라 한 것은 마치 저 벌레가 우연히 글자를 이룬 것같이 예전 의사는 우유약의 성질도 모르고 쓰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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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어찌하여 우유의 성질을 모른다 하는가’라고 물었다.
손님 의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유약은 독한 것도 있고 감로 같은 것도 있나이다. 우유약이 감로 같다는 것은 젖소가 술찌끼나 미끄러운 풀이나 깨어진 보리 따위를 먹지 않고 송아지가 유순하고 놓아먹이는 데가 높은 데도 아니고 낮은 데도 아니며 맑은 물만 먹이고 뛰어 달리지도 아니하고, 황소와 함께 있지도 아니하며, 먹는 것이 알맞고 다니고 머무는 데가 적당하면, 그런 소의 젖은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므로 감로 같은 좋은 약이라 하거니와, 그 외에는 모두 독하고 해로운 것입니다.’
그 때 임금은 이 말을 듣고 찬탄하였다.
‘큰 의사여, 참으로 좋은 말이로다. 나는 오늘에야 우유에도 좋은 것 나쁜 것이 있는 줄 알았노라.’
그리고는 우유를 먹고 병이 나았고, 다시 나라에 명령을 내려서 지금부터는 우유약을 먹으라고 하였다. 백성들은 이 명령을 듣고 모두 원망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임금은 지금 귀신에게 휘둘리는가, 머리가 돌았는가, 어찌하여 우리를 속이어 우유를 먹으라 하는가’ 하면서 모두들 원망을 품고 임금 있는 데로 모여왔다. 임금은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나를 원망하지 말지어다. 이 우유를 먹지 말라고 하였다가 또 먹으라고 하는 것은 모두 의사가 시키는 것이고 나의 허물이 아니니라.’
그리하여 임금과 백성들이 모두 즐거워서 손님 의사를 공경하며 공양하면서 모든 병자들이 우유약을 먹고 병이 쾌차함과 같으니라.
너희 비구들이여,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도 그와 같아, 훌륭한 의사로서 세간에 나서 모든 외도인 나쁜 의사를 항복받는 것이며, 사부대중에게 말하기를 ‘나는 유명한 의사인지라, 외도들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나란 고집도 없고, 사람이란 고집·중생이란 고집·오래 산다는 고집도 없고, 양육과 지견과 짓는 이 받는 이가 모두 없다고 하였느니라.
비구들이여, 외도들이 나라고 말하는 것은 벌레가 나뭇잎을 먹어 글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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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룬 것 같으니라. 그래서 여래가 불법에는 내가 없다고 말하였으니 중생을 조복하기 위한 것이며, 시기를 아는 까닭이니라. 그래서 나랄 것이 없다고 하다가, 인연이 있어서 또 내가 있다고 하였으니, 저 명의가 우유의 약 되는 일과 약 되지 않는 일을 잘 아는 것과 같은 것이고, 범부들이 억측하는 나라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니라.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이 나라고 억측하는 이는 혹은 크기가 엄지손가락 같다 하고 혹은 겨자씨 같다 하고 혹은 티끌 같다고 하거니와, 여래가 말하는 나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모든 법이 내가 없다고 하지만 진실로 내가 없는 것도 아니니, 어떤 것이 나인가. 만일 어떤 법이 진실하고 참되고 항상하고 주재가 있고 의지가 있어서 성품이 변하지 아니하면 이것을 나라고 할 것이니, 저 명의가 우유약을 잘 아는 것 같으니라. 여래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위하는 까닭으로 모든 법 가운데 진실로 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너희 사부대중은 이렇게 이 법을 닦아 익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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