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3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4. 오래 사는 이야기[長壽品]

부처님께서 또 비구들에게 말씀을 계속하셨다.
“너희들이 계율에 대하여 의심이 있으면 마음대로 물으라. 묻는 대로 대답하여 너희들을 기쁘게 하리라. 나는 이미 모든 법의 본 성품이 비고 고요한 줄을 닦고 배워서 분명히 통달하였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여래가 다만 모든 법의 본 성품이 비고 고요한 줄만을 닦았다고 말하지 말라. 비구들이여, 계율에 대하여 의심이 있거든 지금 모두 물으라.”
비구들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혜가 없어 여래·응공·정변지에게 묻지 못하겠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의 경계는 헤아릴 수 없으며, 가지신 선정도 헤아릴 수 없으며, 연설하시고 가르치심도 헤아릴 수 없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여래에게 물을 지혜가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이를테면 어떤 노인이 나이는 백스무 살인데 오랫동안 병들어 누워 마음대로 일어나지도 눕지도 못하며, 기력이 허약하여 남은 수명이 많지 않았는데, 한 부자가 볼일이 있어 타관으로 떠나가면서 황금 1백 근을 이 노인에게 맡기고 말하기를 ‘나는 볼일이 있어 타관으로 가게 되었기에 이 보물을 당신에게 맡기노니 10년이나 20년 후에 내가 다시 돌아오거든 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노인이 그 부탁을 받았으나 자손이 없었고, 그 뒤에 오래지 않아 병이 더하여 죽어 버렸고, 맡았던 재산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그 후에 부

[58 / 909] 쪽
자가 돌아왔으나 맡겼던 재산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이 재산을 맡겨도 무방할는지를 요량하지 못하였으므로, 다녀와서도 찾을 데가 없었고, 그 인연으로 재산을 잃었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 성문들도 그와 같아서 여래의 은근한 가르침을 들었으나 그것을 기억하여 오래도록 지니지 못하오니, 마치 저 노인이 부자의 부탁을 맡은 듯하옵니다. 저희들이 지혜가 없사오니, 계율에 대하여 어떻게 물으오리까?”
“너희 비구들이 지금 내게 물으면 모든 중생을 이익케 할 수 있겠기에 너희들에게 모든 의심을 마음대로 물으라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나이는 25세의 장정이요 인물도 잘생기고 금·은·보배를 많이 가졌으며, 부모 처자와 일가 권속이 넉넉하였는데, 다른 사람이 찾아와서 보물을 맡기면서 말하기를 ‘내가 볼일이 있어 타향으로 가게 되었는데 일을 본 후에는 돌아올 터이니 그 때에 내게 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장정은 부탁 받은 보물을 자기의 소유처럼 보관하다가 병이 나서 죽게 될 때에 집안 사람들에게 유언하기를 ‘이것은 아무가 맡긴 것이니, 만일 그 사람이 와서 찾거든 모두 돌려주라’고 하였습니다.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요량할 줄을 알았으므로 다녀와서는 맡겼던 보물을 하나도 실수 없이 모두 찾았습니다.
세존께서도 그와 같아서 만일 법보를 아난이나 여러 비구들에게 부촉하시면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못할 것이오니, 왜냐 하면 모든 성문이나 대가섭은 다 무상하여서 늙은 사람이 남의 보물을 맡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없는 불법을 보살들에게 부촉하시옵소서. 보살들은 문답도 잘하므로 부촉하신 법보가 오래도록 머물러 있어서 한량없이 오랜 세월을 내려가면서 더욱 성행하여 많은 중생을 안락케 함이 저 장정이 남의 재산을 맡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보살들이라야 물을 수 있으려니와, 저희들의 지혜는 모기나 등에[虻] 같사오니 여래의 깊은 법을 어떻게 묻겠습니까?”
이 때에 성문들은 모두 잠자코 있었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을 찬탄하셨다.
“좋다, 좋다. 너희들이 샘이 없는[無漏] 마음과 아라한의 마음을 잘 얻었

[59 / 909] 쪽
다. 나도 역시 이 두 가지 인연을 생각하였으니, 마땅히 대승법을 보살들에게 부촉하여 미묘한 법이 오래오래 세상에 머물게 하리라.”
이 때에 부처님께서 모든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선남자 선여인들이여, 나의 수명은 측량할 수 없고, 말 잘하는 변재도 끝이 없나니, 너희들은 마음대로 계율이나 귀의할 것을 물으라.”
두 번째 세 번째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다.
이 때에 대중 가운데 한 동자 보살마하살이 있으니, 다라 마을의 바라문인 대가섭이었다. 부처님의 신력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백천 번을 돌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여쭐 말씀이 있는데, 부처님께서 허락하시면 말하겠습니다.”
“가섭이여, 여래·응공·정변지는 너희에게 마음대로 물으라고 하였으니, 묻는 대로 대답하여 너의 의심을 끊어서 너를 기쁘게 하리라.”
그 때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허락하시니, 이제 묻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지혜는 모기같이 보잘것없고, 부처님께서는 도덕이 높으시며 순전한 전단 사자 같은 깨뜨릴 수 없는 대중으로 권속을 삼으셨으며, 여래의 몸은 금강 같으시고 빛은 유리 같으시어 진실하여 깨뜨리기 어려우며, 또 이러한 큰 지혜 있는 이들이 호위하였으며, 이 모인 가운데 있는 보살마하살들은 모두 한량없고 가없는 묘한 공덕을 성취함이 향상(香象)과 같사오니, 이러한 대중 앞에서 어떻게 말을 묻겠습니까. 그러하오나 이제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고 대중의 선근위덕(善根威德)으로 말미암아 조금 묻겠나이다.”
부처님께 게송으로 여쭈었다.

어찌하면 장수하고 금강과 같은
깨뜨릴 수 없는 몸을 얻겠사오며
그리고 어떠한 인연으로야
견고하고 큰 힘을 얻겠사오며

[60 / 909] 쪽
어찌하면 훌륭한 이 경전에서
끝까지 저 언덕에 이르오리까.
바라건대 부처님 비밀장을 여시어
중생들을 위하여 말씀하소서.

어찌하면 저렇게 크고 넓어서
중생들의 의지할 데 되겠사오며
실상은 아라한이 아니면서도
도량(度量)이 아라한과 같겠나이까.

감당하기 어려운 마군의 시험
어찌하면 그것을 알고 견디며
부처님 말씀인지 마(魔)의 말인지
어떻게 분별하여 아오리까.

어찌하면 부처님 기쁜 맘으로
참되고 바른 이치 말씀하오며
바르고 선한 일을 모두 이루어
네 가지 뒤바뀜을 연설하오며

어떻게 선한 업을 짓사올는지
부처님께서 이제 말씀해 주소서.
보살들은 어떻게 보기 어려운
참 성품을 무난하게 보옵는지요.

완전한 가르침과 반쪽 가르침
그런 것을 어떻게 분별하오며
어찌하면 성행(聖行)과 함께하기를
사라사(娑羅娑)새와 같이 나란히 하여

[61 / 909] 쪽
가린제(迦隣提)새와 해와 달과도
태백성(太白星) 세성(歲星)과도 같이 하리까.
보리심 내지 못한 그런 이들을
어떻게 보살이라 이름하리까.

어찌하면 여럿이 모인 가운데
조금도 두려움이 없게 되어서
비유컨댄 찬란한 염부단금을
나무랄 수 없는 것 같사오리까.

어쩌면 흐린 세상 있으면서도
물 안 묻는 연꽃과 같게 되오며
어쩌면 번뇌 속에 살아가면서
번뇌에 물들지 않게 되리까.

의사가 환자들을 주무르지만
그 병에 전염되지 아니함같이
나고 죽는 바다에 돌아다니며
어떻게 뱃사공이 될 수 있으며

어찌하면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뱀이 허물 벗듯 하게 되오며
어찌하면 삼보를 우러러봄을
천상의 여의수(如意樹)와 같이 하리까.

3승의 제 성품이 없사올진댄
어떻게 3승법을 말씀하리까.
즐거움이 생기지 아니하오면
쾌락을 받는다고 할 수 없듯이

[62 / 909] 쪽
어찌하면 저렇게 많은 보살이
깨뜨릴 수 없는 대중 얻게 되오며
어찌하면 배냇소경들에게
눈으로 보는 일을 일러 주리까.

어찌하면 여러 머리[多頭]를 뵈어 줄지
부처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어찌하면 법문을 말씀하는 이
초승달 자라나듯 점점 커지며

어찌하면 또다시 이 세상에서
열반에 끝날 것을 보이어 주며
어찌하면 용맹히 나아가는 이에게
천상·인간·마군의 길을 보이며

어찌하면 모든 법 성품을 알고
불법의 즐거움을 받게 하오며
어찌하면 저러한 보살들에게
온갖 병을 영원히 여의게 하며

어찌하면 많고 많은 중생들에게
넌지시 깊은 법을 연설하오며
어찌하면 구경(究竟)과 구경 아님을
모두 다 분명히 말하오리까.

중생의 얽힌 의심 끊어 준다면
어찌하여 결정하게 안 이르오며
어찌하면 가장 높은 위없는 도에
가깝게 접촉함을 얻사오리까.

[63 / 909] 쪽
제가 지금 여래께 청하옵나니
이 많은 보살들을 위하시어서
깊디깊고 미묘한 모든 행들을
분명히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일체의 여러 법 그 가운데는
안락한 성품들이 다 있으리니
바라건대 거룩한 부처님께서
저희에게 분별하여 말씀하소서.

중생들의 크나큰 의지되시는
양족존(兩足尊) 묘한 약인 부처님이시여,
5음의 모든 법을 묻고자 하나
저희들은 슬기로운 지혜가 없고

꾸준히 정진하는 보살들로도
이렇게 미묘하고 깊고 또 깊은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경계
그들도 사뭇 알지 못하옵니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아직 얻지 못한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나는 이미 얻었지만 그대가 지금 묻는 깊고 비밀한 법장은 온갖 지혜[一切智]를 가진 이의 묻는 것과 평등하여 다르지 아니하다. 선남자여, 내가 도량의 보리수 아래 앉아서 처음 정각을 이루었을 때에 한량없는 아승기 항하(恒河)의 모래 수처럼 많은 세계에 있는 보살들도 역시 나에게 이렇게 깊은 이치를 물었느니라. 그런데 그들의 물은 말이나 뜻이나 공덕도 모두 이와 같아서 다르지 아니하였으며, 이렇게 물음으로써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케 하였느니라.”

[64 / 909] 쪽
그 때에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혜의 힘이 없어 그러한 깊은 이치를 부처님께 묻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모기나 등에가 큰 바다의 건너편까지 날아가지도 못하고 허공을 두루 돌지도 못하는 것처럼 저도 그와 같이 여래의 그러한 지혜 바다와 법 성품인 허공의 깊은 이치를 묻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국왕이 그 상투에 꽂는 진주 동곳을 별감에게 맡기면 별감이 받아서 머리 위에 올렸다가 조심하고 공경하여 각별히 수호하나니, 저도 그와 같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방등(方等)경의 깊은 이치를 머리 위에 올렸다가 공경하여 각별히 수호하나이다. 왜냐 하면 제가 깊디깊은 지혜를 널리 얻기 위함입니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자세히 들으라, 자세히 들으라. 그대에게 여래가 얻은 장수(長壽)의 업(業)을 말하리라. 보살이 이 업의 인연으로 장수함을 얻나니, 그러므로 지극한 마음으로 들어 받으라. 어떤 업이 보리의 인이 될 만한 것은 지성으로 그 이치를 들어야 하며, 듣고는 다른 이에게 말하여 줄 것이니라. 선남자여, 나는 이러한 업을 닦았으므로 야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며, 지금 그 이치를 여러 사람에게 연설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왕자가 죄를 짓고 옥에 갇혔을 때에 임금이 그 아들을 대단히 가엾게 여기며 염려하여 몸소 발걸음을 돌려 옥에까지 가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장수함을 얻으려거든, 마땅히 모든 중생을 아들처럼 보호하며, 대자·대비·대희·대사한 마음을 내어 살생하지 않는 계행을 일러 주고 선한 법을 가르치며, 모든 중생들을 5계(戒)와 10선(善)에 머물도록 할 것이며, 또 지옥·아귀·축생·아수라 등의 모든 갈래로 다니면서 그 속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케 하고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며 열반을 얻지 못한 이를 열반을 얻게 하여, 공포에 떠는 모든 중생들을 위로하나니, 이런 업을 짓는 인연으로 보살의 수명이 길고 지혜에 자재하여 목숨을 버리고는 천상에 나게 되느니라.”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중생 보기를 아들처럼 한다 함이 그 뜻이 깊고

[65 / 909] 쪽
은미하여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보살들이 모든 중생들에게 대하여 아들처럼 평등한 마음을 닦는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불법 중에는 계행을 파하는 이도 있고 역적죄를 짓는 이도 있고 불법을 훼방하는 이도 있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아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겠나이까?”
“그러하다, 가섭이여. 나는 중생을 실로 아들처럼 생각하여 라후라같이 여기노라.”
“세존이시여, 지난 보름날 스님들이 포살할 때에 어떤 동자가 몸과 말과 뜻의 3업을 깨끗이 닦지 못하고 으슥한 곳에 숨어서 몰래 계를 듣더니, 밀적금강(密跡金剛)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아 금강저로 쳐서 그를 티끌같이 부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금강신이 가장 포악하여 그 동자의 목숨을 끊었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중생을 보기를 아들 라후라와 같이 한다 하시옵니까?”
“가섭이여, 그대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그 동자는 화현으로 생기었고 참 사람이 아니니, 계행을 파하고 법을 허무는 이를 쫓아내어 대중에서 나가게 하기 위하여 밀적금강이 그런 것을 보였느니라. 가섭이여, 정법을 훼방하거나 일천제(一闡提)거나 혹 살생도 하고 나쁜 소견을 가지고 일부러 계율을 범하는 이라도 나는 그들에게 자비한 마음을 내어 아들인 생각으로 라후라처럼 여기느니라. 선남자여, 국왕은 신하들이 국법을 범하면 죄를 따라 형벌을 쓰고 그냥 두지 않지만,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법을 훼방한 이에게 구견갈마(驅遣羯磨)·가책(呵責)갈마·치(置)갈마·거죄(擧罪)갈마·불가견(不可見)갈마·멸(滅)갈마·미사악견(未捨惡見)갈마를 주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법을 훼방하는 이에게 이러한 항복받는 갈마들을 짓는 것은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게 과보가 있음을 보이려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이런 줄을 알라. 여래가 나쁜 중생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푸는 것은 한 줄기 광명이나 둘이나 다섯 광명을 놓음이니, 그 광명을 만나면 모든 나쁜 짓을 멀리 여의게 되나니, 여래는 지금 이렇게 한량없는 세력을 갖추었느니라. 선남자여, 볼 수 없는 법을 그대가 보려 한다면 이제 그대에게 그 모양을 말하리라. 내가 열반한 뒤에 어디서든지 계행을 가지는 비구로서 위의를 갖

[66 / 909] 쪽
추고 정법을 수호하는 이가 정법을 파괴하는 이를 보면 곧 구견갈마나 가책갈마로 다스리니, 이 사람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복을 받게 될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유컨대 어떤 임금이 포악한 짓만 하다가 중병에 걸렸을 때에 이웃 나라 임금이 그 소문을 듣고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치려 하면 이 병든 임금은 아무 세력이 없으므로 두려운 생각을 내고 마음을 고치어 선한 일을 하는 것과 같으니, 그 이웃 나라 임금은 한량없는 복을 얻으리라. 법을 수호하는 비구들도 그와 같아서 법을 파괴한 사람에게 구견갈마·가책갈마를 시키고 선한 일을 행하게 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으리라. 선남자여, 비유컨대 어떤 장자가 사는 곳의 밭이나 집에 독 나무가 난 것을 장자가 알고는 곧 도끼로 베어서 영원히 없어지게 함과 같으니라. 또 젊은 사람이 머리에 백발이 나면 부끄러운 마음으로 뽑아 버리어 나지 못하게 함과 같으니, 법을 수호하는 비구도 그와 같아서 계율을 범하거나 정법을 파괴하는 이를 보면 곧 구견·가책·거처(擧處) 등을 짓느니라. 만일 선한 비구가 법을 파괴하는 이를 보고도 그냥 두고 구견·가책·거처를 하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불법의 원수요, 만일 구견·가책·거처를 한다면 이들은 나의 제자요 진실한 성문이니라.”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 같사오면, 모든 중생들을 아들처럼 평등하게 보기를 라후라와 같이 하지 못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한 사람은 칼을 들어 부처님을 해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전단으로 부처님 몸에 발라 드리는데 부처님께서 두 사람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지신다면 어찌하여 계행 범한 이를 다스리라고 말씀하나이까? 만일 계행 범한 이를 다스린다면 그 말씀은 잘못된 것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임금이나 대신이나 재상이 여러 아들을 낳아 기를 적에 얼굴이 잘생기고 총명하고 민첩한 아들인 둘째, 셋째, 넷째까지 엄한 선생에게 보내어 맡기면서 하는 말이 ‘그대는 나의 자식들을 잘 가르쳐 행동과 예절과 기술과 글씨와 산수까지 모두 성취시켜 주시오. 내가 지금 자식 넷을 모두 그대에게 맡겨서 학문을 배우게 하는 것이니, 설사 세 아들이 종아리를

[67 / 909] 쪽
맞아 죽고 아들 하나만 남더라도 반드시 엄하게 가르쳐서 학업을 이루도록 하여 주시오. 비록 세 아들이 모두 죽더라도 나는 한탄하지 않겠노라’ 한다면, 가섭이여, 이 아버지와 선생은 살인죄를 짓는다 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취시키려는 것뿐이요, 나쁜 마음이 있음이 아니오니, 이렇게 가르친다면 한량없는 복을 얻겠나이다.”
“선남자여, 여래도 그러하여 법을 파괴한 이를 외아들처럼 평등하게 보느니라. 여래가 지금 위없는 바른 법을 왕과 대신과 재상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에게 부촉하였으니, 왕이나 사부대중들이 마땅히 모든 학인들을 권면하여 계율과 선정과 지혜로 하여금 점점 나아가게 할 것인데, 만일 이 세 가지 법을 배우지 아니하면서 게으르고 계행을 범하고 바른 법을 파괴하는 이가 있으면, 임금과 대신과 사부대중들이 마땅히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렇다면 그 임금과 사부대중이 죄가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그 임금과 사부대중들도 죄가 없을 것이거늘, 하물며 여래에 있어서랴. 선남자여, 여래는 이렇게 평등한 법을 잘 닦는 이를 일러 ‘보살이 평등한 마음을 닦아서 중생을 외아들처럼 생각한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이런 업을 그렇게 닦았으므로 장수함을 얻으며, 지난 세상의 일도 잘 아느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은 보살이 만일 평등한 마음을 닦아서 모든 중생을 아들처럼 생각하면 장수하게 된다고 하시거니와, 그런 말씀을 하시지 마옵소서. 왜냐 하면 법도를 안다는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로 효도하고 공순하여야 한다는 법을 말하다가 집에 가서는 돌멩이를 던져 부모를 때렸습니다. 부모는 좋은 복밭이어서 이익이 많은 것이며 만나기도 어려우므로 공양을 잘 하여야 할 것인데 도리어 시끄럽게 하고 해롭게 하였으니, 이런 사람은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나이다. 부처님의 말씀도 그러하여 보살이 평등한 마음을 닦아서 중생들을 아들같이 생각하므로 장수함을 얻고 지나간 세상 일을 잘 안다 할진댄 세상에 항상 머물러서 변함이 없어야 할 것이온데, 이제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으로 수명이 극히 짧아 세상 사람이나 다름없습니까. 여래

[68 / 909] 쪽
께서 중생들에게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낸 것이 아닙니까? 세존께서는 예전에 무슨 죄악을 지었으며, 얼마나 되는 생명을 살해하셨길래 이렇게 단명하여 백년도 향수하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여, 너는 지금 어찌하여 여래의 앞에서 이렇게 거친 말을 하느냐. 여래는 모든 수명 중에 장수하였음이 가장 승(勝)하며 얻은 항상한 법은 온갖 항상한 법 가운데서 가장 제일이니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여래께서 한량없는 장수를 얻는다 하십니까?”
“선남자여, 저 여덟 큰 강과 같으니, 첫째는 항하(恒河)요, 둘째는 염마라(閻摩羅)요, 셋째는 살라(薩羅)요, 넷째는 아이라발제(阿夷羅跋提)요, 다섯째는 마하(摩訶)요, 여섯째는 신두(辛頭)요, 일곱째는 박차(博叉)요, 여덟째는 실타(悉陀)이다. 이 여덟의 큰 강과 다른 모든 작은 강들이 다 바다로 들어가느니라. 가섭이여, 이와 같이 모든 인간이나 천상이나 땅이나 공중에 있는 생명의 강들이 모두 여래의 목숨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므로, 여래의 목숨이 한량없느니라. 또 가섭이여, 마치 아뇩달(阿耨達)못이 흘러서 네 개의 큰 강이 되듯이, 여래도 그러하여 온갖 목숨을 내느니라. 가섭이여, 온갖 항상한 것 가운데 허공이 제일이듯이, 여래도 그러하여 모든 항상한 것 중에 가장 제일이니라. 가섭이여, 모든 약 가운데 제호가 제일이듯이, 여래도 그러하여 여러 중생들 가운데 수명이 제일이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여래의 수명이 그러할진댄 한 겁 동안이나 조금 모자라는 한 겁 동안을 사시면서 미묘한 법문을 말씀하시기를 큰 장마비 내리듯 하여야 할 것입니다.”
“가섭이여, 그대는 여래에 대하여 없어진다는 생각을 내지 말라. 가섭이여,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나 내지 외도거나 5신통을 얻은 신선으로서 자재할 수 있는 이들도 한 겁이나 조금 모자라는 한 겁 동안을 머물면서 공중으로 걸어다니고 앉고 눕기를 마음대로 하되 왼쪽 옆구리로는 불을 내고 오른쪽 옆구리로는 물을 내며, 몸으로 불과 연기 내기를 화톳불같이 하고 오래 살려면 얼마든지 오래 살아서 장수하고 단명하기를 자재하게 하는 것쯤은 5신통을 얻은 이로도 그러한 신력은 있는 것이거늘, 하물며 온갖 법에 대하여 자재함을 얻은 여래로서 반겁이나 한 겁이나 백 겁·백천 겁·한량없는

[69 / 909] 쪽
겁 동안을 살지 못하겠느냐. 이러한 이치로 보아도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고 바뀌지 않는 법이며, 여래의 몸은 변화한 몸이요 잡식(雜食)하는 몸이 아니건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독 나무와 같이 보임을 알지니라. 그러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열반에 듦을 나타내노니, 가섭이여, 부처님께서는 항상한 법이며 바뀌지 않는 법이어서, 너희들은 이 가장 제일인 이치에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열심히 닦을 것이며, 닦고서는 남을 위하여 널리 연설하여야 하느니라.”
이 때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출세간법과 세간법과는 어떠한 차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기를, ‘부처님께서는 항상한 법이요 바뀌지 않는 법이라 하시며, 세간에서도 범천이 항상 있고 자재천이 항상 있어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고 나도 항상하고 성품도 항상하고 가는 티끌도 항상하다 하나이다. 만일 여래가 항상한 법일진댄, 여래께서 어찌하여 항상 나타나지 않습니까? 만일 항상 나타나지 아니한다면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왜냐 하면 범천이나 가는 티끌이나 세간 성품도 항상 나타나지 않나이다.”
“가섭이여, 어떤 장자가 소를 많이 가졌는데 빛은 여러 가지지만 한 떼를 만들어 목자에게 맡겨서 풀을 따라다니며 기르게 하였으니, 그 소원은 제호를 얻기 위함이었고, 젖이나 타락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목자가 짜서는 제가 먹었고, 장자가 죽은 뒤에는 그 많은 소가 뭇 도둑들에게 약탈되었다. 도둑들이 소를 약탈하였으나 여인이 없어서 제 손으로 젖을 짜서 먹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장자가 이 소를 기를 때에 젖이나 타락을 구한 것이 아니고 제호를 얻으려던 것인데, 우리는 지금 무슨 방법으로 제호를 얻을 수 있을까. 제호는 이 세상에 제일가는 좋은 약이라 하지 않는가. 우리에게 그릇이 없으니 젖을 짜서 담을 데가 없구나’ 하더니 다시 말하기를 ‘우리에게 가죽 부대가 있으니 담을 수는 있으나, 만들 줄을 모르지 않는가. 타락도 얻기 어려운데 생소(生酥)야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 도둑들은 제호를 만들어 보려고 물을 부었으나 물이 너무 많아서 젖도 타락도 제호도 모두 잃고 말았다. 범부도 그와 같아서 매우 선한 법이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 여래의 정법의 나머지니라. 왜냐 하면 여래 세존이 열반에 든 뒤에 여

[70 / 909] 쪽
래가 끼친 선한 법에서 계율·선정·지혜를 훔쳐간 것이니, 마치 도둑들이 소 떼를 약탈한 것 같으니라. 모든 범부들이 계율·선정·지혜를 얻기는 하였으나 좋은 방편이 없어서 해탈을 얻지 못하고, 그리하여 항상한 계율, 항상한 선정, 항상한 지혜의 해탈을 얻지 못하나니, 마치 도둑들이 방편을 몰라서 제호를 잃은 것 같으니라.
또 도둑들이 제호를 얻으려고 물을 많이 탄 것처럼 범부들도 해탈을 얻으려고 나란 고집[我]·중생이란 고집[衆生]·오래 산다는 고집[壽命]·사람이라는 고집[士夫]과 범천·자재천·티끌·세간 성품·계율·선정·지혜라는 소견과 해탈과 비상비비상천이 곧 열반이라고 말하거니와 참말 해탈과 열반을 얻지 못하나니, 마치 도둑들이 제호를 얻지 못함과 같으니라. 범부들이 조그마한 범행과 부모에게 공양한 인연으로 천상에 태어나서 작은 복락을 받는 것은 도둑들의 물을 탄 우유와 같지만 범부들은 조그마한 범행과 부모에게 공양한 까닭으로 천상에 태어난 줄을 알지 못하고, 또 계율·선정·지혜와 삼보에 귀의할 줄을 알지 못하며, 알지 못하는 까닭으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또 말을 하면서도 참으로 알지도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세상에 나타난 뒤에야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뜻을 연설하는 것이니라. 마치 전륜왕(轉輪王)이 세상에 나면 그 복덕으로 말미암아 도둑들은 흩어지고 소 떼는 없어지지 않았는데, 전륜왕이 그 소 떼를 공교한 방편이 많은 목자에게 위탁하고, 목자는 좋은 방편으로 제호를 얻었으므로 모든 중생의 고통과 병이 없어지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인 전륜왕이 세상에 나타날 때에는 범부들이 계율이나 선정이나 지혜를 연설하지 못하고 버림이 마치 도둑이 흩어지는 것과 같나니, 그 때에 여래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말하며, 중생들을 위하여서 보살들로 하여금 사람을 만나는 대로 연설하라 하는데, 보살마하살들은 이미 제호를 얻었고 다시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위없는 감로법 맛을 얻게 하나니, 그것이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한 것이요 바뀌지 않는 법이라고 하는 것이니, 세상의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들이 범천 따위를 항상하다고 말하는 것

[71 / 909] 쪽
과는 같지 아니하니라. 항상한 법이란 것은 여래를 말함이요 다른 법이 아니니라. 가섭이여, 이렇게 여래의 몸을 알아야 하느니라. 가섭이여, 선남자 선여인들은 마음을 착실하게 가지고 이 두 글자를 닦을지니, 부처님만이 항상 머무는 것이니라.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이 두 글자를 닦으면 그런 사람은 나의 행함을 따라서 내가 이르는 데까지 이르리라. 선남자여, 만일 이 두 글자를 닦음으로써 열반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이가 있으면, 여래는 이 사람을 위하여 열반에 들 것이니, 열반이란 뜻은 곧 부처님 법의 성품이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 법의 성품은 그 뜻이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법의 성품의 뜻을 알고자 하오니 여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말씀하소서. 법의 성품이란 말은 곧 몸을 버리는 것이요, 몸을 버린다 함은 있는 바가 없다는 말이니, 만일 있는 바가 없다면 몸은 어떻게 존재하며, 몸이 만일 존재한다면 어떻게 몸에 법의 성품이 있다고 말하오며, 몸에 법의 성품이 있다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습니까? 제가 어떻게 하면 이런 뜻을 알겠습니까?”
“선남자여, 그대는 멸(滅)하는 것이 법의 성품이란 말을 하지 말라. 법의 성품은 멸이 있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마치 무상천(無想天)이 색음(色陰)을 성취하였지만 색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에 대하여 ‘이 하늘들은 어떻게 있어서 즐겁게 낙을 받으며 어떻게 생각을 가지며, 어떻게 보고 듣느냐’고 묻지 말 것이니, 선남자여, 여래의 경계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몸은 멸하는 법이다’라고 말하지 말라. 여래의 멸하는 법은 부처의 경계이므로 성문이나 연각들로는 미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생각하기를 여래는 어느 곳에 머물며 어느 곳에 다니며 어느 곳에서 보며 어느 곳에서 즐거워하느냐고 하지 말지니, 선남자여, 이러한 이치는 그대들의 알 바가 아니며, 부처님들의 법신과 가지가지 방편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불·법·승을 닦으며 항상하다는 생각을 가질지니, 이 세 가지 법은 다르다는 생각도 없고 무상하다는 생각도 없고 바뀐다는 생각도 없느니라. 만일 이 세 가지 법에 대하여 다르다는 생각을 닦는다면, 이런 이들의 청정한 삼귀의는 의지할 곳이 없으며, 금지하는 계행도 구족하지 못하며, 마침내는 성문·연각의 보리 과(果)도 증득하지 못하려니와, 만일 이러한

[72 / 909] 쪽
헤아릴 수 없는 데에 항상한 생각을 닦는 이는 곧 귀의할 곳이 있으리라. 선남자여, 마치 나무를 의지한다면 나무 그림자가 있을 것이니 여래도 그러하여 항상한 법이 있으므로 귀의할 데가 있는 것이고 무상한 것이 아니니, 만일 여래가 무상하다면 여래는 천상 사람·세간 사람의 귀의할 곳이 아니니라.”
“세존이시여, 어둠 속에서는 나무는 있어도 그 그림자는 없습니다.”
“가섭이여, 그대는 ‘나무는 있어도 그림자는 없다’고 말하지 말라. 단지 육안으로 볼 수 없을 뿐이니라. 선남자여, 여래도 그러하여 그 성품이 항상 있어서 변역하지 않건만, 지혜 없는 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이니, 마치 어둠 속에서 나무 그림자를 보지 못함과 같으니라. 범부들이 부처님 열반한 뒤에 여래가 무상한 법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만일 여래가 법보나 승보와 다르다고 말하면 삼귀의 할 곳이 되지 못하리니, 그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각기 다르므로 무상하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부터 불·법·승 세 가지가 항상 머문다는 것으로 부모에게 말하여 깨닫게 하고, 7대까지 이르도록 모두 받들어 지니게 하겠나이다. 매우 신기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여래와 법과 승가가 헤아릴 수 없음을 배우며, 스스로 배우고는 남들에게 널리 이런 이치를 말하겠는데, 만일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은 무상을 오래 닦은 사람일 것이니, 나는 그런 이들을 위하여 서리와 우박이 되겠나이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대가 지금 바른 법을 잘 수호하는 것이니, 이렇게 법을 수호하여 사람을 속이지 아니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지 아니하는 선업의 인연으로 장수할 것이며 지나간 세상 일을 알게 되리라.”

5. 금강 같은 몸[金剛身品]

이 때에 부처님께서 또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의 몸은 항상 머무는 몸이며 깨뜨릴 수 없는 몸이며 금강 같은 몸이며 잡식하지 않는 몸이니, 곧 법신(法身)이니라.”

[73 / 909] 쪽
가섭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몸을 저는 보지 못하옵고, 다만 무상하고 깨뜨릴 수 있고 티끌 같고 잡식하는 몸만을 보나니, 왜냐 하면 여래께서 지금 열반에 드시려는 연고입니다.”
“가섭이여, 그대는 지금 여래의 몸이 견고하지 못하여 깨뜨릴 수 있음이 범부의 몸과 같다고 말하지 말라. 선남자여, 그대는 이제 여래의 몸은 한량없는 억겁 동안에 견고하여 깨뜨릴 수 없으며 인간·천상의 몸이 아니며 두려워 떠는 몸이 아니며 잡식하는 몸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여래의 몸은 몸이 아니니 이 몸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익히지도 않고 닦지도 않으며, 한량도 없고 끝도 없고 자취가 없으며 앎도 없고 형상도 없고 끝까지 청정하여 동요함이 없으며, 받음도 없고 행함도 없고 머물지도 않고 짓지도 않고 맛도 없고 섞임도 없어 함이 있는 법이 아니며, 업도 아니고 과도 아니고 행도 아니고 멸(滅)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마음의 작용[心數]도 아니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항상하여 헤아릴 수 없으며, 인식함도 없고 마음을 여의기도 하고 마음을 여의지 않기도 하며, 마음이 평등하여 있지도 않으나 있기도 하며, 가고 옴이 없으나 가고 오기도 하며, 파하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끊지도 않고 끊기지도 않고,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주재도 아니나 주재이기도 하며,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고 관찰함도 아니며, 명자(名字)도 아니고 명자 아님도 아니며, 선정도 아니고 선정 아님도 아니며, 볼 수 없으나 분명히 보기도 하며, 곳이 없기도 하고 곳이기도 하며, 집이 없기도 하고 집이 있기도 하며,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으며, 고요함이 없으면서도 고요하기도 하며, 있는 데도 아니며 받지도 않고 베풀지도 않으며, 취(取)하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으며, 법도 아니고 법 아님도 아니며, 복밭도 아니고 복밭 아님도 아니며, 다함도 없고 다하지 않음도 없어 온갖 다함을 여의었으며, 공하기도 하고 공을 여의기도 하며, 항상 머물지도 않으나 잠깐 사이에 멸하는 것도 아니며, 흐림도 없고 글자가 없고 글자를 여의었으며, 소리도 아니고 말하는 것도 아니며, 닦아 익히는 것도 아니고 일컬어 요량함도 아니며,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형상도 아니고 모양도 아니면서 모든 모양으로 장엄하며, 용맹함도 아니고 두려움도

[74 / 909] 쪽
아니며, 고요함도 없고 고요하지 않음도 없으며, 뜨겁고 뜨겁지 않음이 없으며, 볼 수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여래가 모든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제도함이 없으므로 중생을 해탈케 하고, 해탈함이 없으므로 중생을 깨닫게 하고, 깨달음이 없으므로 실상과 같이 법문을 말하며, 두 가지가 아니므로 요량할 수 없으며, 같을 이 없되 같으며, 평하[平]하기 허공과 같아서 형상이 없으며, 생멸이 없는 성품과 같아서 끊임도 아니고 항상함도 아니며, 항상 1승(乘)을 행하나 중생은 3승(乘)을 보며 물러가지도 않고 옮아가지도 아니하여 온갖 결박을 끊으며, 싸우지도 아니하고 저촉하지도 아니하며, 성품이 아니면서 성품에 머물며, 모임도 아니고 흩어짐도 아니며,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고 둥근 것도 아니고 모난 것도 아니며, 5음(陰)·6입(入)·18계(界)가 아니면서 5음·6입·18계이기도 하며, 더함도 아니고 덜함도 아니고, 이기는 것도 아니고 지는 것도 아니어서, 여래의 몸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느니라.
아는 이도 없고 알지 못하는 이도 없으며, 보는 이도 없고 보지 못하는 이도 없으며, 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함이 없는 것도 아니며, 세간도 아니고 세간 아닌 것도 아니며,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의지함도 아니고 의지하지 않음도 아니며, 4대(大)도 아니고 4대 아님도 아니며, 인(因)도 아니고 인이 아님도 아니며, 중생도 아니고 중생 아님도 아니며, 사문도 아니고 바라문도 아니며, 사자이고 큰 사자이며, 몸도 아니고 몸 아님도 아니어서 말할 수 없으며, 1법상(法相)을 제하고는 셈으로 셀 수 없으며, 열반에 들 때에도 열반에 들지 아니하나니, 여래의 법신은 이렇게 한량없이 미묘한 공덕을 모두 성취하였느니라. 가섭이여, 오직 여래만이 이런 모양을 아는 것이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가섭이여, 이러한 공덕으로 여래의 몸이 되었으며 잡식으로 기른 몸이 아니니라. 가섭이여, 여래의 참된 몸의 공덕은 이러하거늘 어찌하여 병이 나고 걱정되고 위태하여 견고하지 못함이 굽지 않은 기와 같겠느냐. 가섭이여, 여래가 일부러 병의 고통을 나타내는 것은 중생들을 조복(調伏)하기 위함이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이런 줄을 알라. 여래의 몸은 금강 같은 몸이니, 그대는 오늘부터 전심으로 이 이치를 항상 생각하고 잡식하는 몸을 생각지 말며 남

[75 / 909] 쪽
들을 위하여서도 여래의 몸은 곧 법신이라고 연설하여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이런 공덕을 성취하였사오니, 그러한 몸에 어찌 병의 고통이나 무상하고 파괴됨이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부터 여래의 몸이 항상한 법신이며 안락한 몸임을 생각하겠으며, 남들에게도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여래의 법신이 금강과 같아서 깨뜨릴 수 없는 그 원인을 알지 못하나이다.”
“가섭이여, 바른 법을 보호하여 유지한 인연으로 금강 같은 몸을 이루었나니 가섭이여, 내가 옛적에 법을 수호한 인연으로 지금에 이 금강 같은 몸이 항상 머물러 파괴되지 아니함을 얻었느니라. 선남자여, 바른 법을 수호하여 유지하는 이는 5계도 받지 않고 위의도 닦지 않고서도, 칼이나 활이나 창 같은 것을 들고 계행을 잘 가지는 청정한 비구를 보호할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수호하는 일을 떠나서 고요한 무덤 곁이나 나무 아래에 혼자 있으면 그런 사람은 진정한 비구라 하려니와, 만일 수호하는 이를 따라다닌다면 그 사람을 ‘머리 깎은 거사’라 하겠나이다.”
“가섭이여, 머리 깎은 거사라 하지 말라. 만일 비구가 가는 곳마다 몸을 이바지함을 만족히 여기며, 경전을 읽고 생각에 들어 좌선하다가, 법을 묻는 이에게 보시하고 계행 갖는 공덕과 탐욕을 없애고 만족한 줄 알라는 법문을 말하여 준다면, 그는 비록 이렇게 여러 가지 법을 말한다 하여도, 사자후를 하지 못하며 사자들에게 호위받지 못하며 법답지 않은 나쁜 사람을 굴복하지 못하리라. 이런 비구는 저를 이익케 하고 중생을 이익케 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런 무리는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으로서 비록 계행을 가지고 깨끗한 행을 수호한다 하여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비구로서 몸을 이바지할 것도 풍족하고 받은 계율을 잘 보호하며, 사자후로써 미묘한 법문을 자세히 말하여, 수다라·게송[祇夜]·수기(受記)·가타·무문자설(無問自說 : 優陀那)·본사(本事 : 伊帝目多伽)·본생(本生 : 闍陀伽)·방광(方廣 : 毗佛略)·미증유(未曾有 : 阿浮陀達磨) 등의 9부 경전을 남에게 연설하며, 중생들을 안락하고 이익케 하기 위하여 창도(唱導)하기를, 열반경에서는 비구들을 제어하여 종이나 소나 양 따위

[76 / 909] 쪽
법답지 못한 것을 기르지 못하게 하였으니, 만일 이런 부정한 것을 기르는 이는 계율에 의지하여 다스려야 하는 것이며, 여래께서 다른 경전에는 말씀하시기를 어떤 비구가 그런 법답지 못한 것을 기르는 일이 있으면 그 나라 임금이 법대로 다스리고 쫓아 보내어 속인이 되게 하라고 하였으며, 만일 비구가 이렇게 말할 적에 파계한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성을 내어 법사를 해쳐서 법을 말하던 이가 죽는다 하여도, 이것은 계행을 가져서 자기도 이익하고 남도 이익케 하는 이라고 말하리니, 이 인연으로 임금이나 대신이나 재상이나 우바새들에게 법을 말하는 사람을 보호하라고 내가 허락하였으니, 바른 법을 두호하려는 이는 이렇게 배울 것이니라. 가섭이여, 이렇게 계행을 파하고 법을 보호하지 않는 이를 머리 깎은 거사라 이름하거니와, 계행을 가지는 이가 그런 이름을 얻는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지나간 오랜 옛적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겁 전에 이 구시나 성에 부처님께서 나셨으니, 명호는 환희증익(歡喜增益)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고, 그 때의 세계는 넓고 깨끗하여 풍부하고 즐겁고 편안하며, 백성들이 번성하고 굶주린 이가 없어서 마치 극락세계의 보살들과 같았다. 그 부처님께서 오래오래 세상에 계시면서 중생을 교화하시다가, 나중에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열반에 드시고, 부처님 열반한 뒤에 남긴 불법이 한량없는 억년 동안 세상에 전할 적에 불법이 아주 없어지기 40여 년 전에 계행을 지니는 비구가 있었으니, 이름이 각덕(覺德)이었다. 많은 권속들에게 호위되어서 사자후로 9부 경전을 널리 연설하여 여러 비구들을 제어하여 종이나 소나 양과 같은 법답지 않은 것을 기르지 못하게 하리니, 그 때에 파계한 모든 비구들이 이런 말을 듣고 나쁜 마음을 내어 칼과 막대기를 가지고 이 법사를 위협하였다. 그 나라 임금의 이름은 유덕(有德)인데, 이런 사실을 알고 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법문하는 비구가 있는 곳에 가서 파계한 나쁜 비구들과 극심한 싸움을 하면서 법사로 하여금 위급함을 면케 하다가 전신에 창을 맞았다. 그 때에 각덕 비구가 왕에게 찬탄하기를 ‘대왕은 진실하게 바른 법을 수호하였습니다. 이 다음 세상에 그 몸으로 한량없는 법기(法器)가 되리이다’라고 하였다.

[77 / 909] 쪽
왕이 그 때에 이런 법문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으며, 목숨을 마친 뒤에는 아촉불국에 태어나서 아촉부처님의 첫째 제자가 되었고, 그 임금이 데리고 갔던 백성이나 권속들로서 싸움에 참여한 이나 따라 기뻐하던 사람들은 모두 아촉불국에 가서 났으며, 각덕 비구는 오래 살다가 나중에 역시 아촉불국에 태어나서 그 부처님의 성문들 중에 셋째 제자가 되었으니, 바른 법이 없어지려 할 때에는 마땅히 이렇게 받아 지니고 옹호하여야 하느니라. 가섭이여, 그 때의 임금이 지금의 내 몸이요, 법을 말하던 비구가 가섭불이니라. 가섭이여, 바른 법을 수호하는 이는 이렇게 한량없는 과보를 받는 것이니, 이 인연으로 오늘날 내가 가지가지 상호로 장엄하여 깨뜨릴 수 없는 법신을 성취하였느니라.”
가섭보살이 또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항상한 몸은 마치 돌에다 형상을 새긴 것 같겠나이다.”
“선남자여, 그러한 인연으로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바른 법을 수호할 것이니, 법을 수호한 과보는 한량없이 크고 넓으니라. 선남자여, 그러기에 법을 보호하려는 우바새들은 칼과 작대기를 들고 법을 지니는 비구를 옹호하여야 하느니라. 설령 5계를 갖추어 받아 가지었더라도 대승인이라고 말하지 못하려니와, 5계를 받지 않고도 바른 법을 수호하는 이는 대승인이라고 할 것이니, 법을 수호하는 이는 칼이나 병장기를 들고 법사를 호위할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칼과 작대기를 가진 우바새들과 벗이 된다면, 스승이 있다 하리이까, 스승이 없다 하리이까? 계행을 가짐입니까, 계행을 깨침입니까?”
“가섭이여, 이런 사람을 파계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말라. 선남자여, 내가 열반한 뒤 혼란하고 나쁜 시대에 세계가 어지럽고 서로 침략하며 사람들이 굶주린 때에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기 위하여 마음을 내어 출가하더라도 이런 사람은 ‘머리 깎은 사람’이라 할 것이니, 그런 무리들은 계행을 지키고 위의가 구족하며 청정한 비구들이 법을 수호함을 보면 쫓아내고 해치거나 죽이거나 하리라.”

[78 / 909] 쪽
“세존이시여, 그렇게 계행을 갖는 사람으로서 바른 법을 수호하려는 이가 어떻게 시골이나 도시로 다니면서 교화할 수 있겠습니까?”
“선남자여, 그래서 내가 지금 계행을 지니는 사람이 칼과 작대기를 가진 사람들과 벗이 되라고 허락한 것이다. 임금이나 대신이나 장자나 우바새들이 법을 수호하기 위하여서는 비록 칼이나 작대기를 가지더라도 그 사람은 계행을 갖는 이라고 말하느니라. 비록 칼과 작대기를 가졌더라도 생명을 끊지는 말아야 하나니, 그렇게 하는 이는 제일로 계행을 갖는다고 말할 것이니라.
가섭이여, 법을 수호하는 이는 바른 소견을 갖추고, 대승 경전을 널리 연설하며, 임금의 일산이나 기름 병이나 곡식이나 과일 따위를 손에 가지지 아니하며, 이양(利養)을 위하여서는 임금이나 대신이나 장자들을 가까이하지 아니하며, 시주들에게 아첨하는 마음을 가지지 아니하고, 위의를 갖추어서 파계한 나쁜 사람들을 항복받나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계행을 갖고 법을 수호하는 스님이라 할 것이다. 중생의 진정한 선지식이 되며, 마음이 넓고 너그러워 바다와 같으니라.
가섭이여, 어떤 비구가 이양(利養)을 위하여 다른 이에게 법을 말하고, 그의 무리들도 스승을 본받아 이양을 탐한다면, 그 사람은 이렇게 스스로 대중을 깨뜨리는 것이니라. 가섭이여, 대중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파계하는 잡승(雜僧)이요, 둘째는 어리석은 중[愚癡僧]이요, 셋째는 청정한 중이니라. 파계하는 잡승은 깨뜨리기 쉽거니와 계행을 갖는 청정한 대중을 이양하는 인연으로는 깨뜨릴 수 없느니라.
어떤 것을 파계하는 잡승이라 하는가. 만일 비구가 계행을 가지면서도 이양을 위하여서 파계한 이들과 함께 따라다니며 서로 어울리어 사업을 함께 하는 이는 파계한 이요, 잡승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어리석은 중인가. 만일 비구가 고요한 도량에 있으나 총명치 못하고 흐리멍텅하여 욕심이 적고 걸식을 행하며, 계를 말하는 날에나 자자(自恣)하는 때에는 제자들로 하여금 깨끗이 참회하게 하지만, 잘못된 제자가 계율을 범하는 이가 많아도 깨끗하게 참회하도록 가르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함께 계율을 말하고 자자한다면, 그런 이는 어리석은 중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청정한 중인가. 어떤 비구들이 있는데 백천억 마군들이 깨뜨릴 수 없고, 보살 중이어

[79 / 909] 쪽
서 성품이 청정하며, 위에 말한 두 종류의 중들을 조복하여 청정한 대중 가운데 있게 하면, 그들은 법을 수호하는 대사[護法無上大師]라 할 것이니라.
계율을 잘 지니는 이는 중생을 조복하여 이익케 하려는 연고로, 모든 계율의 모양이 경하고 중함을 알며, 옳은 계율이 아닌 것은 증명치 않고, 옳은 계율만을 증명하느니라. 어떤 것이 중생을 조복하려는 연고인가. 만일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항상 마을에 들어가는데, 시기를 가리지 않으며, 혹은 과부나 음녀의 집에 가서 여러 해를 함께 있는 일은 성문으로서는 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중생을 조복하여 이익케 함이니라. 어떤 것이 계율의 중함을 아는 것인가. 부처님께서 사실로 말미암아 계율을 제정한 것을 보고, ‘너는 오늘부터 조심하여 다시 범하지 말라. 네 가지 중대한 계율을 출가한 사람은 짓지 말아야 하나니, 짐짓 짓는 이는 사문이 아니며 석가의 제자가 아니다’ 하면, 이것은 중한 것이니라. 무엇을 가벼운 것이라 하느냐. 가벼운 계율을 범한 이에게 세 번 말려서 능히 버리게 하면 이것은 가벼운 것이니라. 옳은 계율이 아닌 것은 증명치 않는다 함은 어떤 이가 깨끗치 않은 것을 받아 사용함을 보고 칭찬하는 이와는 함께 머물지 않는 것이요, 옳은 계율을 증명한다는 것은 계율을 잘 배우고 파계한 이는 가까이하지 아니하며, 행하는 일이 계율에 합하는 이를 보고는 환희한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이리하여 불법에서 짓는 일을 잘 알고 잘 해석하는 이는 율사라 하나니, 한 글자를 잘 알고 경전을 잘 지니는 일도 그와 같으니라. 이와 같이 선남자여, 부처님 법이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 없나니, 여래도 그러하여 헤아릴 수 없느니라.”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거룩하신 말씀과 같이 부처님 법이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여래도 그와 같이 헤아릴 수 없나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있어 깨어지지 아니하면 변역하지 않는 줄을 알겠사오니, 저도 지금 잘 배우고 남에게도 이런 이치를 널리 연설하겠나이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이렇게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여래의 몸은 금강 같아서 깨뜨릴 수 없나니, 보살들은 이렇게 바른 소견과 바른 지혜를 잘 배워야 하느니라. 만일 이렇게 분명하게 알면, 부처님의 금강 같은 몸, 깨뜨릴 수 없는 몸을 보되 거울 속에서 여러 가지 모양을 보는 것 같으리라.”

[80 / 909] 쪽

6. 경 이름의 공덕[名字功品]

그 때 부처님께서 또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이 경의 글자와 구절이 지니는 공덕을 잘 알아라.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의 이름을 들으면 네 가지 나쁜 갈래에는 나지 아니하리라. 왜냐 하면 이 경전은 한량없고 가없는 부처님들이 닦아 익힌 것이니, 그 공덕을 내가 이제 말하리라.”
가섭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은 무엇이라 이름하오며, 보살마하살들이 어떻게 받아 가지옵니까?”
“가섭이여, 이 경의 이름은 대반열반(大般涅槃)이니 윗말도 선하고 가운데 말도 선하고 아래 말도 선하며, 의미가 매우 깊고 글도 좋으며 순일하게 청정한 범행(梵行)을 갖추었으며, 금강의 보배광이 가득하여 모자라는 일이 없으니, 그대는 자세히 들으라. 내가 이제 말하리라. 선남자여, ‘대(大)’라는 것은 항상하다는 뜻이니, 마치 여덟 개의 큰 강이 큰 바다에 들어가는 것처럼, 이 경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와 마의 성품을 항복받고 그런 뒤에 대반열반에서 몸과 목숨을 버리는 것이므로 대반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의사가 좋은 비방(秘方)이 있는데, 그것이 모든 의술을 모두 포함하는 것같이 여래도 그와 같아서 말한 바 가지가지 묘한 법의 비밀하고 깊은 이치의 문이 모두 이 대반열반에 들었나니, 그러므로 이름을 대반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유컨대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항상 풍년들기를 희망하다가 가을에 열매를 거두면 모든 희망이 모두 쉬듯이, 선남자여,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다른 경전을 배울 적에는 항상 좋은 자미(滋味)를 희망하지만, 이 대반열반을 듣고 나서는 다른 경에서 희망하던 재미가 영원히 멈추나니, 이 대반열반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나고 죽는 물결에서 벗어나게 하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모든 자국 중에는 코끼리의 자국이 제일이듯이, 이 경도 그와 같아서 모든 경전의 삼매 중에 제일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밭을 가는 데는

[81 / 909] 쪽
가을에 가는 것이 가장 좋듯이, 이 경도 그러하여 모든 경전 중에 가장 좋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약 가운데 제호(醍醐)가 제일이듯이 중생들의 번뇌와 산란한 마음을 다스림에도 이 대반열반이 제일이니라. 선남자여, 좋은 타락에는 여덟 가지 맛이 구족하였듯이, 대반열반에도 여덟 가지 맛이 구족하였으니, 첫째는 항상한 것, 둘째는 변치 않는 것, 셋째는 편안한 것, 넷째는 서늘한 것, 다섯째는 늙지 않는 것, 여섯째는 죽지 않는 것, 일곱째는 때가 없는 것, 여덟째는 쾌락한 것이다. 이것이 여덟 가지 맛이니, 여덟 가지 맛을 구족하였으므로 대반열반이라 하느니라.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이 속에 편안히 머물면 간 데마다 열반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이름을 대반열반이라 하느니라.
가섭이여, 선남자·선여인으로서 이 대반열반에서 열반하고자 하면 모두 이렇게 배울 것이니, 여래는 항상 머무는 것이며, 법과 승가도 그러하니라.”
“세존이시여, 매우 신기하옵니다. 여래의 공덕을 헤아릴 수 없으며, 법보·승보도 헤아릴 수 없으며, 이 대열반도 헤아릴 수 없사오니, 이 경전을 배우는 이는 바른 법의 문을 얻어서 유명한 의사가 될 것이오며, 배우지 못한 이는 소경과 같이 지혜의 눈이 없으며 무명에 가리운 줄을 알겠나이다.”

[82 / 909] 쪽

대반열반경 제 4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7. 네 가지 모양[四相品] ①

부처님께서 또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을 분별하여 보임에 네 가지 모양이 있으니, 첫째는 스스로 바르게 함이요, 둘째는 다른 이를 바르게 함이요, 셋째는 물음을 따라 대답함이요, 넷째는 인연의 뜻을 잘 해석함이니라.
가섭이여, 어떤 것이 스스로 바르게 함인가. 여래께서 모든 인연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이니, 마치 비구가 큰 불더미를 보고 말하기를 ‘나는 차라리 이 이글이글하는 불더미를 안을지언정, 여래께서 말씀하신 12부(部) 경전이나 비밀한 법장에 대하여 이 경은 마군이 말한 것이라고 비방하지 않겠다. 만약 불·법·승 3보가 무상하다고 말한다면, 이렇게 말하는 이는 자기를 속이고 다른 이까지 속이는 것이니, 차라리 예리한 칼로 혀를 끊을지언정, 마침내 불·법·승이 무상하다고 말하지 아니할 것이며, 다른 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더라도 믿지 아니하고, 이렇게 말하는 이에게 가엾은 생각을 낼 것이니, 여래와 교법과 승가는 헤아릴 수 없느니라’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의 몸을 볼 적에 불더미와 같이하면 이것이 스스로 바르게 함이니라.
가섭이여, 어떤 것이 다른 이를 바르게 함인가. 여래가 법을 말할 때에 어떤 여인이 어린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서 부처님 있는 데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염원함이 있었으나 마음으로만 생각하면서 한 곁에 물러가서 앉았

[83 / 909] 쪽
다. 그 때에 여래는 알고도 짐짓 물었다.
‘네가 아기를 어여삐 여겨서 타락을 많이 먹이면서도 소화가 잘 되고 안 될 것은 요량하지 못하는구나.’
여인은 곧 여래에게 말하였다.
‘매우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까지 잘 아시오니, 바라옵건대 얼마나 먹여야 할지를 여래께서 가르쳐 주옵소서. 세존이시여, 제가 오늘 아침에 아기에게 타락을 주었더니 잘 소화하지 못하였는데 수명이 감하지 않겠습니까? 원컨대 저에게 해설하여 주소서.’
‘너의 아기가 먹은 것이 즉시 소화되어 수명을 늘게 할 것이다.’
여인이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진실하게 말씀하시므로 제가 기뻐하나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중생들을 조복하기 위하여 소화되고 소화되지 않음을 분별하여 말씀하셨고, 역시 모든 법이 내가 없고 무상함도 말씀하십니다. 만일 세존께서 먼저 항상하다고 말씀하셨으면 교화를 받는 이들이 이 법을 외도의 말과 같다고 말하면서 문득 버리고 갔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아이가 자라서 제 발로 다니게 되면 그가 먹는 것은 소화하기 어려운 것도 넉넉히 소화시킬 터이니, 본래 주던 타락은 줄 필요가 없느니라. 나의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으니, 너의 어린 아기처럼 항상 머무는 법을 소화하지 못하므로 내가 먼저 괴롭고 무상하다고 말하였거니와 만일 내 성문들이 공적이 갖추어져서 대승 경전을 닦을 만하였으면 내가 이 경에서 여섯 가지 맛을 말할 것이니라. 무엇이 여섯 가지 맛인가. 괴로움은 신맛, 무상함은 짠맛, 내가 없음은 쓴맛이며, 즐거움은 단맛, 나라 함은 매운맛, 항상함은 싱거운 맛이라 하느니라. 세간에 세 가지 맛이 있으니, 이른바 무상과 나가 없음과 즐거움이 없음인데, 번뇌를 땔나무로 삼고 지혜를 불로 삼아 그 인연으로 열반이란 음식을 만들면, 항상하고 즐겁고 내가 되어 모든 제자들로 하여금 모두 맛있게 먹게 하리라.’
또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인연이 되어 다른 곳에 가려거든 나쁜 아들은 몰아내어 그 집

[84 / 909] 쪽
에서 나가게 하고 보배 광을 선한 아들에게 주도록 하라.’
여인은 말하였다.
‘진실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이 보배 광은 선한 아들에게만 보이고 나쁜 아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습니다.’
여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대여, 나도 그와 같아서 열반에 들 때에 여래의 비밀하고 위없는 법장은 성문 제자들에게는 주지 아니하나니, 네가 보배 광을 나쁜 아들에게는 보이지 않음과 같고, 여러 보살에게 부촉할 것이니, 네가 보배 광을 선한 아들에게 맡김과 같으니라. 왜냐 하면 성문 제자들은 변동한다는 생각으로 여래가 참으로 멸도한다 하지만, 나는 참으로 멸도함이 아니니, 마치 네가 먼 길을 가서 돌아오지 않았을 적에 나쁜 아들은 네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네가 실상 죽지 않은 것과 같고, 보살들은 말하기를 여래는 항상 변역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선한 아들은 네가 죽지 않았다고 말함과 같으니라. 이런 이치로 나는 위없고 비밀한 법장을 보살들에게 부촉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항상 계시고 변동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 집에는 부처님께서 계시는 것임을 알지니, 이것이 다른 이를 바르게 한다는 것이니라.
가섭이여, 어떤 것이 묻는 대로 대답함인가. 어떤 사람이 여래에게 묻기를 ‘어떻게 하면 재물을 허비하지 않고도 큰 시주라는 이름을 얻겠습니까?’ 하여, 여래께서 대답하시기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들이나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서 부정한 물건을 받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는 이에게는 종이나 하인을 보시하고, 범행을 닦는 이에게는 여자를 보시하고, 술과 고기를 끊은 이에게는 술과 고기를 보시하고, 오후에 먹지 않는 이에게는 오후에 음식을 대접하고, 꽃과 향을 찾지 않는 이에게는 꽃과 향을 공급하여, 그렇게 보시하면 큰 시주라는 소문이 천하에 자자하면서도 자기의 재물은 조금도 줄지 아니할 것이니라’ 한다면, 이것이 묻는 대로 대답하는 것이니라.”
그 때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도 고기를 보시하지 않아야 할 것이오니, 왜냐 하면 제가 보기엔 고기를 먹지 않는 이가 큰 공덕이 있습니다.”

[85 / 909] 쪽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대가 이제야 나의 뜻을 옳게 알았으니, 법을 수호하는 보살은 마땅히 그래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오늘부터는 성문 제자가 고기 먹는 일을 허락하지 아니하리니, 만일 단월의 보시를 받게 되거든, 그 음식을 볼 적에 아들의 살과 같이 생각할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십니까?”
“선남자여, 고기를 먹음은 큰 자비의 종자를 끊음이니라.”
“부처님께서 어찌하여 먼저는 비구에게 세 가지 깨끗한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셨습니까?”
“가섭이여, 그 세 가지 깨끗한 고기는 그 때마다 형편을 따라서 점차로 제정하였던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열 가지 부정한 고기로부터 아홉 가지 깨끗한 고기에 이르기까지도 허락치 아니하십니까?”
“가섭이여, 그것도 형편을 따라 점차로 제정한 것이어니와 이것은 곧 고기를 먹지 말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니라.”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생선과 고기가 아름다운 음식이라고 칭찬하셨습니까?”
“선남자여, 나는 생선이나 고기가 아름다운 음식이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사탕수수·멥쌀·석밀(石蜜)·보리·모든 곡식·검은 석밀·타락·젖과 기름을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였느니라. 비록 가지가지 의복을 저축함을 말하였으나, 저축하는 것은 모두 색(色)을 없애라 하였거늘, 하물며 생선과 고기를 탐내서야 쓰겠느냐.”
“부처님께서 만일 고기를 먹지 말게 하셨을진대 저 다섯 가지 맛, 우유·타락·생소·숙소·호마유(胡麻油) 따위와, 명주 옷·구슬·자개·가죽·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 따위도 받아 사용하지 말아야 하겠나이다.”
“선남자여, 니건자(尼乾子)들과 같은 소견을 품지 말라. 여래가 제정한 여러 가지 금하는 계율은 제각기 다른 뜻이 있느니라. 다른 뜻으로 세 가지

[86 / 909] 쪽
깨끗한 고기를 허락하였고, 다른 생각으로 열 가지 고기를 금하였고, 다른 생각으로 여러 가지를 금하며 절로 죽은 것까지를 금하느니라. 가섭이여, 나는 오늘부터 제자들에게 모든 고기를 먹지 말라고 제한한다. 가섭이여, 고기를 먹는 이가 가든가 앉았든가 섰든가 누웠든가 간에 모든 중생들이 고기 냄새를 맡고는 모두 두려워하나니, 마치 사람이 사자에게 가까이 가면 여러 사람들이 보고 사자의 냄새를 맡아 또한 두려운 마음을 내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마늘을 먹으면 고약한 냄새가 나서 다른 이가 냄새를 맡고는 버리고 가는 것과 같으니, 먼 데서 보는 이도 보기를 싫어하거늘, 하물며 가까이함이겠는가. 고기를 먹는 이도 그와 같으니, 모든 중생들이 고기 냄새를 맡고는 모두 두려워하여 죽을 줄 생각하며, 물에 살고 육지에 살고 허공에 사는 중생들이 모두 달아나면서 ‘저 사람은 우리의 원수다’라고 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고기를 먹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고기를 먹기도 하나 보기에는 먹는 것 같되 실상은 먹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은 깨끗한 음식도 먹지 않거늘 하물며 고기를 먹겠는가.
선남자여, 내가 열반한 뒤 여러 백년 동안에 네 종류 성인[四道聖人]이 모두 다시 열반하여 정법이 없어진 뒤 상법(像法) 시대에 비구들이 겉으로는 계율을 지니는 듯하면서도 경전을 읽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즐겨 호사롭게 지내면서, 몸에 입은 옷은 추악하고 얼굴이 여위고 위의가 초라하며, 소와 양을 기르고 땔나무를 지고 다니며, 머리카락·수염·손톱을 길게 기르고, 가사를 입었으나 사냥꾼 같으며, 자세하게 보고 천천히 걷기를 마치 쥐를 엿보는 고양이같이 하면서 항상 말하기를 ‘나는 아라한도를 얻었노라’ 하고, 여러 가지 병고로 더러운 데서 누워 자며, 겉으로는 점잖은 체하나 속으로는 탐욕과 질투가 가득하여 벙어리 모양을 하는 바라문 같아서, 실제로는 사문이 아니지만 사문 행세를 하며 나쁜 소견이 치성하고 바른 법을 비방하나니, 이런 무리는 여래가 제정한 계율과 옳은 행동과 위의를 파괴하고, 해탈의 과를 말하면서도 청정한 법을 여의고, 깊고 비밀한 교법을 깨뜨리며 제멋대로 경과 율에 어기는 말을 지어내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우리들이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셨다’ 하며, 제가 만든 이야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 하

[87 / 909] 쪽
여 서로 다투면서 제각기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리라.
선남자여, 그 때에 또 모든 사문들이 곡식을 모아 두고 생선과 고기를 가져다가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기름병을 들고 다니며, 일산을 받고 가죽신을 신고, 임금이나 대신이나 장자를 따라다니며, 관상 보고 천문을 말하고 의술을 배우고 종들을 두고, 금·은·폐유리·차거(車▩)·마노·파리·진주·산호·호박·벽옥(璧玉)·가패(珂貝)와 가지각색의 과실을 쌓아 두며, 그림을 그리고 불상을 조성하고 글자를 만들고 글을 가르치고 초목을 심고 가꾸고 방자하는 방법과 주문(呪文)과 환술 따위며 약을 만들고 풍류를 배우며, 꽃과 향수로 몸을 단장하고, 바둑과 놀음과 여러 가지 야릇한 기술을 배울 것이니라. 그런 때에 어떤 비구가 이러한 나쁜 일들에서 벗어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제자라 이름할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이 다른 이를 의지하여 생활하나니, 걸식하다가 고기 섞인 음식을 받게 되면 어떻게 먹어야 청정한 법에 맞겠습니까?”
“가섭이여, 물로 씻어서 고기를 가려 놓고 먹어야 하며, 식기에 고기가 묻었더라도 거기에 맛이 배지 아니하였으면 사용하여도 죄가 없으며, 음식 가운데 고기가 많이 섞였으면 받지 말아야 하며, 고기가 드러난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하나니, 먹으면 죄가 되느니라. 내가 지금 고기를 끊으라는 제도를 말하였지만, 이것을 자세히 말하려면 다할 수가 없느니라. 열반할 때가 다가오므로 대강만 말하나니, 이런 것을 묻는 대로 대답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가섭이여, 어떤 것을 가지고 인연의 뜻을 잘 안다 하느냐. 어떤 사부대중이 와서 나에게 묻기를 ‘세존이시여, 이러한 이치를 여래가 처음 나셨을 적에 어찌하여 바사닉왕에게 이런 깊고 묘한 법문을 말씀하시지 아니하고, 어떤 때는 깊다고 말하고 어떤 때는 얕다고 말하며, 혹은 범한 것이라 말하고 혹은 범하지 않는다 말하며, 무엇을 타락이라 말하고, 무엇을 계율이라 말하고, 무엇을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라 말하였습니까?’ 하여, 여래가 말하되 ‘바라제목차는 만족함을 앎이니 위의를 성취하고 받아 쌓음이 없는 것이며, 깨끗이 사는 것[淨命]이라고 하느니라. 타락이라 함은 네 가지 나쁜 갈래요, 또는 지옥이나 아비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니, 빠르기로 말하면 소낙비

[88 / 909] 쪽
보다 더한 것이니, 듣고 놀라서 계행을 꼭 지키고 위의를 범하지 아니하며, 만족한 줄 앎을 닦고 모든 부정한 물건을 받지 않는 것이니라. 또 타락이라 함은 지옥·축생·아귀를 길러 자라게 함이니, 이런 뜻으로서 떨어진다’고 하느니라.
바라제목차는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선하지 아니한 삿된 업을 여의는 것이요, 계율은 계율의 위의와 깊은 경과 좋은 이치에 들어가서 모두 부정한 인연을 받지 않는 것이며, 역시 4중(重)·13승잔(僧殘)·2부정법(不定法)·30사타(捨墮)·91타(墮)·4회과법(悔過法)·100중학(衆學)·7멸쟁(滅諍) 들이며, 또 어떤 이는 온갖 계율을 파하나니, 온갖 계율이란 것은 4중으로부터 7멸쟁법까지며, 혹 어떤 이는 바른 법과 깊은 경전을 비방하며, 일천제(一闡提)를 구족하게 성취하고 온갖 모양이 다 없어져서 구제할 인연이 없나니, 이런 무리들이 ‘나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다’ 하면서 가볍고 중한 죄를 모두 덮어 두며, 나쁜 짓 감추기를 거북이 여섯 군데 감추듯 하면서 이런 죄를 밤낮으로 뉘우치지 아니하느니라. 뉘우치지 아니하므로 늘어만 가며, 이 비구들은 범한 죄를 드러내어 참회하지 아니하고 점점 많아만 지느니라. 그래서 여래는 이런 일을 알고는 점점 제정하게 되었고, 한꺼번에 막지 아니하였느니라.”
그 때에 선남자 선여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아셨을 터인데, 어찌하여 미리 막지 않으셨습니까? 세존께서 중생들로 하여금 아비지옥에 들어가게 하려 한 것이 아닙니까? 마치 여러 사람이 다른 지방으로 가려 하면서 바른 길을 모르고 잘못된 길로 가는 듯합니다. 이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모르므로 바른 길인 줄만 알았고, 바르고 잘못된 것을 물을 사람을 만나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중생도 그와 같이 불법을 알지 못하고 바른 것을 보지 못하오니, 여래께서 먼저 바른 도를 말씀하시어 비구들에게, 이것은 계율을 범함이요, 이것은 계율을 가짐이라고 가르쳐서 그렇게 제정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여래의 정각은 진실하여서 바른 도를 아는 터이니, 여래만이 하늘 중의 하늘이므로 10선(善)이 점점 늘어가는 공덕과 그런 의미를 말씀할 수 있사올세, 먼저 계율을 제정하여야 한다고 여쭈어 청하는 바입니다.”

[89 / 909] 쪽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가 10선의 늘어가는 공덕을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여래가 여러 중생들을 라후라처럼 평등하게 본다는 것이어늘, 어찌하여 세존이 장차 중생으로 하여금 지옥에 들어가게 하려 함이 아니냐고 말하느냐. 나는 한 사람이라도 아비지옥에 떨어질 만한 인연을 보면, 그 사람을 위하여 한 겁이나 한 겁이 조금 못 되는 세월을 이 세상에 있으면서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베푸는 것인데, 무슨 일로 아들처럼 생각하는 이를 속여서 지옥에 들어가게 하겠느냐. 선남자여, 마치 임금이 그 나라 안에 누더기 입은 이가 있으면 그 옷에 구멍이 뚫린 것을 보고서야 깁게 하는 것과 같나니, 여래도 그러하여 중생들이 아비지옥에 들어갈 인연이 있음을 보게 되면 곧 계율의 선한 것으로 깁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유컨대 전륜왕이 먼저 중생들을 위하여 10선법(善法)을 말하고, 그런 뒤에 점차로 나쁜 짓을 하는 이가 있으면 왕이 그런 일이 있을 적마다 끊게 하며, 나쁜 짓을 끊은 뒤에는 스스로 임금의 법을 행하게 되나니, 선남자여, 나도 그러하여 비록 말할 것이 있으나 먼저 제정하지 아니하고, 비구들이 법답지 아니한 일을 행함을 인하여 일을 따라 제정하거든, 법을 좋아하는 중생들이 가르친 대로 닦아 행하며, 그런 중생이라야 여래의 법신을 보느니라. 전륜왕이 가진 보배 바퀴[輪寶]를 헤아릴 수 없는 것같이 여래도 헤아릴 수 없으며, 법보와 승보도 헤아릴 수 없으며, 법을 말하는 이와 법을 듣는 이도 모두 헤아릴 수 없나니, 이것이 인연의 뜻을 잘 안다고 함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네 가지 모양의 뜻을 분별하여 보이나니, 이것이 대승 대열반 중의 인연이란 이치니라.
또 스스로 바르게 한다 함은 이 대반열반을 얻음이요, 다른 이를 바르게 한다 함은 내가 비구들에게 여래가 항상 있어서 변역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요, 묻는 대로 대답한다 함은, 가섭이여, 그대가 물은 인연으로 보살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을 위하여 깊고 미묘한 이치를 말하게 되는 것이요, 인연의 이치라 함은 성문이나 연각은 이와 같은 깊은 이치를 알지 못하며, 이자(伊字 : )의 세 점이 해탈·열반·마하반야를 이루며 비밀장을 이루는 것을 듣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여기서 열어 보이며 분별하여 성문들로 하여금 지혜 눈을 뜨게 함이니라. 가령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 네 가지

[90 / 909] 쪽
일이 어떻게 하나가 되겠는가, 허망하지 아니한가?’ 하면, 곧 반문하되 ‘허공과 있는 것이 없다는 것과 움직이지 않음과 막힐 것 없다는 네 가지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다면, 이 말을 허망하다 하겠는가?’ 하라.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여러 가지 말이 곧 한 가지 뜻이니, 공하다는 것뿐입니다’ 하리니, 스스로 바르게 함과 다른 이를 바르게 함과 묻는 대로 대답함과 인연의 뜻을 해설한다는 뜻도 그와 같아서 대열반과 평등하여 다름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하자.
‘여래가 무상하다 하나니, 어떻게 무상한 줄을 알겠습니까?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모든 번뇌를 멸한 것을 열반이라 하나니, 마치 불이 꺼지면 아무것도 없는 것같이 번뇌를 멸한 것도 그와 같으므로 열반이라 한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어서 변역하지 않는다 합니까?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여러 유를 여읜 것을 열반이라 하나니, 열반에는 여러 유가 없다고 하였거늘 어찌하여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어서 변역하지 않는다 합니까?
마치 옷이 모두 해어지면 물건이라 하지 않나니, 열반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가 멸하였으므로 물건이라 하지 않는다 하였거늘, 어찌하여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어서 변역하지 않는다 합니까?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욕심을 여의고 적멸한 것을 열반이라 하였으니, 마치 사람의 머리를 베면 머리가 없는 것같이 욕심을 여의고 적멸한 것도 그와 같아서 공하여 아무것도 없으므로 열반이라 한다고 하였거늘, 어찌하여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어서 변역하지 않는다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유컨대 빨갛게 단 무쇠를
쇠망치로 두드리면 불똥이 튀어
흩어지곤 금새 간 곳 없어서
있는 데를 찾아도 알 수 없듯이

[91 / 909] 쪽
올바르게 해탈을 얻은 사람도
음욕이란 진창을 벗어나고서
흔들리지 않는 데 이른 뒤에는
이른 곳을 찾아도 알 수 없나니.

어찌하여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어서 변역하지 않는다 합니까?’
가섭이여, 이렇게 따지는 사람을 잘못된 힐난을 한다고 하느니라. 가섭이여, 그대도 여래의 성품이 소멸해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가섭이여, 번뇌를 멸한 이는 물건이라 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영원히 끝나는 것이므로 항상한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런 글은 고요하여 위가 없는 것이며, 모든 형상을 멸하여 버리면 남는 것이 없느니라. 이런 글은 새롭고 깨끗하며 항상 머물러 물러가지 않으므로, 열반을 항상 머무는 것이라 하나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항상 머물고 변역하지 않느니라. 쇠똥을 뿌린다[星流] 함은 번뇌를 말함이요, 흩어지고는 간 곳이 없어서 있는 데를 알 수 없다 함은 여래가 번뇌를 없애고는 5취(趣)에 있지 않다 함이니,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어서 변역함이 없다고 하느니라.
또 가섭이여, 부처님들이 스승되는 것을 법이라 한다. 그러므로 여래가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이며, 법이 항상하므로 부처님이 항상하니라.”
“만일 번뇌의 불이 꺼지면 여래도 멸할 것이니 그렇다면 여래는 항상 머물 곳이 없겠나이다. 저 쇠똥을 뿌리며 흩어지는 무쇠가 빨간빛이 없어지면 이르른 곳을 알 수 없나니, 여래의 번뇌도 그와 같아서 멸하면 이른 곳이 없을 것이며, 또 무쇠의 빨갛게 단 것과 붉은 빛이 꺼지면 없어지듯이 여래도 그와 같아서 멸하면 무상하리니, 번뇌의 불을 멸하고 열반에 든다면 여래도 무상할 줄을 알겠나이다.”
“선남자여, 무쇠는 범부를 말하는 것이니, 범부들은 번뇌를 멸한다 하더라도 멸한 뒤에 다시 생기므로 무상하다 하고,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멸하고는 다시 생기지 아니하므로 항상하다 하는 것이니라.”
“무쇠의 빨간 빛이 없어진 뒤에 불에 넣으면 도로 빨갛게 되나니, 여래도 그렇다면 번뇌가 도로 생길 것이요, 번뇌가 도로 생기면 그것은 무상이라 하

[92 / 909] 쪽
겠나이다.”
“가섭이여, 그대는 여래가 무상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여래는 항상한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나무가 타서 없어지면 재가 되듯이 번뇌가 멸하면 열반이 되느니라. 옷이 해어지고, 머리를 베고, 병이 깨어지는 비유도 그와 같나니, 이런 것들도 각각 이름이 있어 해어진 옷, 베인 머리, 깨어진 병이라 하느니라. 가섭이여, 무쇠는 식은 것을 다시 빨갛게 하지만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불이 다시 생기지 않느니라. 가섭이여, 한량없는 중생들이 무쇠와 같은 것을, 내가 무루(無漏) 지혜의 불로 중생들의 번뇌를 태우느니라.”
“참으로 그러하겠나이다. 제가 지금에야 부처님들은 항상하시다는 여래의 말씀을 자세히 알겠나이다.”
“가섭이여, 마치 임금이 내전에 있다가 구경하기 위하여 후원에 나갔을 적에 임금이 없지만, 궁녀들은 임금이 죽었다고 말하지 않음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여래도 그와 같아서 비록 염부제에 나타나지 않고 열반에 들었더라도 무상하다고 이름하지 않나니, 여래는 한량없는 번뇌에서 뛰어나 안락한 열반에 들어서 깨달음의 꽃에서 놀면서 환희하게 즐기느니라.”
가섭이 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미 번뇌의 바다를 건넜노라’ 하셨으나, 부처님께서 만일 번뇌의 바다를 건너셨으면 무슨 인연으로 야수다라를 맞아 라후라를 낳으셨습니까? 이 인연으로 보아 여래께서는 번뇌의 바다를 건너지 못한 듯합니다. 바라옵건대 그 인연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그대는 ‘여래께서 이미 번뇌의 바다를 건너셨으면 무슨 인연으로 야수다라를 맞아 라후라를 낳으셨습니까? 이 인연으로 보아 여래께서는 번뇌의 바다를 건너지 못한 듯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말라. 선남자여, 이 대열반은 큰 뜻을 세우는 것이니, 그대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고 의심을 내지 말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에 머물면 수미산이 그렇게 높고 넓더라도 모두 가져다 겨자씨 속에 넣되, 수미산을 의지하여 있던 중생들은 비좁지도 아니하고 가고 오는 줄도 몰라서 전과 같이

[93 / 909] 쪽
변동이 없는 줄 여기거니와, 제도를 받을 만한 이는 보살이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기도 하고 도로 본고장에 가져다 두기도 하는 줄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에 머물면 삼천대천세계를 겨자씨 속에 넣되, 그 세계에 사는 중생들은 비좁지도 아니하고 가고 오는 줄도 몰라서 변동이 없는 줄로 여기거니와, 제도를 받을 만한 이는 보살이 삼천대천세계를 겨자씨 속에 넣기도 하고, 도로 본고장에 가져다 두는 줄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에 머물면 삼천대천세계를 털구멍 속에 넣기도 하며 도로 본고장에 두는 일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에 머물면 시방의 삼천대천세계를 몽땅 들어서 바늘에 꿰기를 대추잎같이 하여 다른 곳 불세계에 던지더라도 그 속에 사는 중생들은 가고 오는 줄도 모르고 어디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거니와, 제도를 받을 만한 이는 보기도 하고, 본고장에 도로 가져다 두는 줄도 아느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에 머물면 시방의 삼천대천세계를 몽땅 들어서 오른 손바닥에 놓기를 옹기장이의 물레같이 하여 다른 지방의 티끌 같은 세계에 던지더라도 한 중생도 가고 오는 줄을 모르거니와, 제도를 받을 만한 중생들은 보기도 하고, 본고장에 두는 것도 아느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에 머물면 온갖 시방의 한량없는 불세계를 자기의 몸에 넣더라도, 그 속에 사는 중생들은 비좁지도 아니하고 가고 오는 것이나 어디 있다는 생각도 없거니와, 제도를 받을 만한 중생은 보기도 하고, 본고장에 두는 것도 아느니라.
선남자여, 또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에 머물면 시방세계를 티끌 속에 넣더라도 그 속에 있는 중생들은 비좁지도 아니하고 가고 온다는 생각도 없거니와, 제도를 받을 만한 이는 보기도 하고 본고장에 두는 줄도 아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에 머물면 이렇게 가지각색 한량없는 신통 변화를 나타내나니, 그러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의 나타내어 보이는 한량없는 신통 변화는 모든 중생들이 측량할 수 없는 것이어늘, 그대가, 여래께서 애욕을 가까이하여 라후라 낳는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
선남자여, 나는 벌써부터 이 대열반에 머물러서 가지가지로 신통 변화를 나타내며, 이 삼천대천세계의 백억 일월 백억 염부제에서 가지각색 신통 보

[94 / 909] 쪽
이기를 『능엄경』에서 말한 것같이 하며, 나는 삼천대천세계에서나 혹은 염부제에서 열반에 듦을 보이지만 끝까지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며, 혹은 염부제에서 어머니의 태중에 들어 부모들은 아들을 낳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몸은 언제나 애욕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니, 나는 한량없는 옛적부터 애욕을 여의었으며, 나의 이 몸은 즉시 법신이지만 세상을 따르느라고 태중에 드는 것을 보였느니라. 선남자여, 이 염부제 림미니원(林微尼園 :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태로부터 나고, 나서는 동쪽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말하기를 ‘인간이나 천상이나 아수라 중에서 내가 가장 높다’ 하니, 부모나 천상 사람, 세간 사람들이 보고 기뻐하여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고, 그 사람들이 나를 아기라 하였지만, 나의 몸은 한량없는 옛적부터 이런 몸을 여의었으니, 이 몸은 곧 법신이요 살이나 피나 뼈로 된 몸이 아니지만, 세간의 중생들을 따르느라고 아기인 듯이 보인 것이며, 남쪽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것은 한량없는 중생에게 가장 좋은 복밭임을 보인 것이며, 서쪽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것은은 나는 일이 끝나고 늙고 죽음이 없는 나중 몸임을 보인 것이며,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것은 모든 생사에서 뛰어남을 보인 것이며, 동쪽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것은 중생의 길잡이가 됨을 보인 것이며, 네 간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은 것은 가지가지 번뇌와 네 가지 마군의 성품을 끊어 없애고 여래·응공·정변지 이름을 보인 것이며, 위쪽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것은 부정한 물건에 물들지 않은 것이 허공과 같음을 보인 것이며, 아래쪽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것은 법비[法雨]로써 지옥의 불을 끄고 중생들로 하여금 편안한 낙을 받게 하며, 계행을 파한 이에게 서리와 우박을 지어 보인 것이니라.
염부제에서 난 지 7일 만에 머리카락을 깎자, 사람들은 내가 어린아이로서 처음 머리를 깎았다 하지만, 온갖 천상·인간의 사람이나 마왕 파순이나 사문 바라문들이 나의 정수리를 볼 이가 없거늘, 하물며 칼을 잡고 머리를 깎을 수가 있겠는가. 칼을 잡고 나의 정수리에 이를 수가 없느니라. 나는 한량없는 옛적부터 머리나 수염을 깎았건만 세상 법을 따르느라고 머리를 깎은 것이며, 내가 난 뒤에는 부모가 나를 데리고 천신의 사당에 들어가서 나를 마혜수라천에 보였더니, 마혜수라가 나를 보고 합장하고 공경하여 한 곁에

[95 / 909] 쪽
서 있었다. 나는 벌써 한량없는 겁 동안에 천신의 사당에 들어가는 일을 여의었건만, 세상 법을 따르느라고 이런 일을 보인 것이며, 내가 염부제에서 귀를 꿴 것은 모든 중생으로서 나의 귀를 꿸 이가 없지만, 세간 중생의 법을 따르느라고 이런 일을 보인 것이며, 또 여러 가지 보배로 사자 귀고리를 만들어 귀를 장엄하였으나, 나는 벌써 한량없는 옛적부터 장엄하는 일을 여의었으면서도, 세상 법을 따르느라고 이런 일을 보인 것이며, 내가 글방에 들어가 글을 배우고 글씨를 익힌 것은, 내가 벌써 한량없는 옛적부터 구족히 성취하여 이 삼계에서 어느 중생이나 나의 스승될 이가 없지만, 세상 법을 따르느라고 글방에 들어간 것이니, 그러므로 여래·응공·정변지라 이름하며, 코끼리를 타고 말을 달리고 씨름을 하고 여러 가지 기예를 배운 것도 그와 같으니라.
또 염부제에서 일부러 태자로 태어나매, 중생들은 내가 태자가 되어 5욕락으로 즐겁게 낙을 받는 줄로 보지만, 나는 벌써 한량없는 옛적부터 5욕락을 여의었으나 세상 법을 따르느라고 이런 일을 보인 것이며, 관상쟁이가 나의 상을 보고 출가하지 않으면 전륜왕이 되어 염부제의 임금이 되리라 하며 모든 중생이 그렇게 믿었지만, 한량없는 옛적부터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법륜왕(法輪王)이 되어 염부제에서 궁녀와 5욕락을 여의었으며, 늙은이·병든 이·죽은 이와 사문을 보고 출가하여 도를 닦으니, 중생들은 실달타 태자가 처음 출가하였다 하거니와, 나는 벌써 한량없는 옛적부터 출가하여 도를 배웠지만 세상 법을 따르느라고 이런 일을 보인 것이며, 내가 염부제에서 일부러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지런히 도를 닦아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과를 얻으니, 모든 사람은 모두 말하기를, 아라한과가 얻기 쉽고 어려운 것 아니라 하거니와, 나는 벌써 한량없는 옛적부터 아라한을 이루었으며,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도량의 보리나무 아래에서 풀자리에 앉아서 마군을 항복받으니, 사람들은 내가 처음으로 도량의 보리나무 아래서 마군을 항복받았다 하거니와, 나는 벌써 한량없는 옛적부터 항복받았지만, 억센 중생들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이런 일을 나타낸 것이니라.
또 내가 대변·소변 보고 숨쉬는 일을 보이매, 사람들은 내가 참으로 그런 일이 있는 줄 알지만, 내가 얻은 과보로는 이런 일이 없건만 세상을 따르느

[96 / 909] 쪽
라고 이런 일을 보이는 것이며, 내가 일부러 시주의 공양을 받거니와 내 몸에는 조금도 기갈이 없지만 세상 법을 따르느라고 이런 일을 보이는 것이며, 나는 중생들과 같이 하느라고 잠을 자지만, 나는 벌써 한량없는 옛적부터 위없이 깊고 묘한 지혜를 구족하여 삼계의 행동 위의를 여의었으며, 머리·눈·배·등·몸이 아프고 목창(木槍)으로 갚고 손발 씻고 얼굴 씻고 양치하여 깨끗이 하거든, 사람들은 내게 이런 일이 있는 줄 알지만 내 몸에는 이런 일이 없노라. 손발이 깨끗하기 연꽃 같고 입김이 아름답기 우발라향 같거든, 중생들은 나를 사람인 줄 알지만 나는 실로 사람이 아니며, 내가 일부러 넝마를 주워 빨고 기워서 옷을 만들지만, 나는 벌써부터 이런 옷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라후라는 나의 아들이고 수두단왕(輸頭檀王)은 나의 아버지고 마야부인은 나의 어머니이니, 세간에 있으면 모든 쾌락을 받을 것인데 이런 것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는다 하며, 여러 사람들은 또 말하기를, 임금의 태자인 구담(瞿曇)이 세간의 낙을 떠나서 출세간법을 구한다 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세간의 애욕을 여의었으니, 이런 일은 모두 일부러 하는 일이며, 모든 중생들이 모두 사람인 줄 여기지만 나는 참말 사람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내가 비록 이 염부제에서 가끔가끔 열반에 드는 듯이 보이거니와 나는 실로 끝까지 열반하는 것이 아니며, 중생들은 여래가 참으로 열반한다고 하지만, 여래의 성품은 진실로 아주 열반하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머무는 법이며 변역하지 않는 법이니라. 선남자여, 대열반은 부처님들의 법계니라.
내가 또 염부제에서 세간에 난 것을, 중생들은 내가 처음으로 성불하였다 하지만, 나는 벌써 한량없는 옛적에 할 일을 모두 마치고서도 세상 법을 따르느라고 염부제에서 처음 성불함을 보였으며, 내가 또 염부제에서 일부러 계행을 가지지 않고 네 가지 중대한 죄[四重罪]를 범한 것을 중생들이 보고는 내가 참으로 범하였다 하지만, 나는 벌써 한량없는 옛적부터 계행을 굳게 가지고 깨뜨리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또 염부제에서 일천제(一闡提)가 되었거든, 사람들이 보고 일천제라 하지만, 나는 실로 일천제가 아니니, 만일 일천제였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겠느냐. 내가 또 염부제에서 일부러 화합승(和合僧)을 파괴하거든, 중생들은 내가 참으로 화합승을 파괴

[97 / 909] 쪽
한 줄 알지만, 내가 보기에는 천상과 인간에서 화합승을 파괴할 이가 없으며, 내가 또 염부제에서 바른 법을 수호하거든, 사람들은 내가 법을 수호한다고 이상하게 여기지만, 부처님들이 으레 그러는 것이어서 이상하게 여길 것이 아니며, 내가 또 염부제에서 마왕 파순으로 나타나거든, 여러 사람들이 나를 파순이라 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오래도록 마군의 일을 여의어서 깨끗하기 연꽃과 같으며, 내가 또 염부제에서 여인의 몸으로 성불하거든, 사람들이 보고 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다고 신기하게 여기지만, 여래는 끝까지 여인의 몸을 받지 않았고 많은 중생들을 조복하기 위하여 여인의 모양새를 나타낸 것이며,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어서 여러 가지 모양을 보이는 것이니라.
내가 또 염부제에서 일부러 4취(趣)에 태어나거니와 나는 오래전부터 모든 갈래의 인을 끊었으므로 인연과 업으로 4취에 나는 것이 아니고,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그 가운데 나느니라. 내가 또 염부제에서 범천왕(梵王天)이 되는 것은 범천을 섬기는 이들로 하여금 바른 법에 머물게 함이요, 참이 아니거늘, 중생들은 모두 내가 참말 범천왕이라 하나니, 하늘의 모양을 나타내고 천신의 사당에 두루함도 그와 같으니라. 나는 또 염부제에서 기생 집에 들어가거니와, 나는 실로 탐욕이 없고 깨끗하기가 연꽃과 같았으며, 음욕을 탐하고 여색에 반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네 길거리에서 묘한 법을 말할 적에 나는 더러운 애욕이 없었건만 사람들은 내가 여인을 두호한다고 생각하며, 내가 또 염부제에서 일부러 계집종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그들을 교화하여 바른 법에 머물게 하려는 뜻이요, 참으로 나쁜 업을 하여서 계집종이 되는 것이 아니며, 내가 또 염부제에서 가르치는 스승이 되는 것은 아이들을 교화하여 바른 법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며, 내가 또 염부제에서 술 마시고 노름하는 장소에 들어가서 가지각색으로 내기하고 다투는 일을 보이는 것은 그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뜻이고, 실로 이러한 나쁜 업을 짓는 것들을 제도하려는 뜻이고, 실로 이러한 나쁜 업을 짓는 것이 아니건만 중생들은 내가 참으로 그러한 짓을 짓는 줄 알며, 내가 또 오래오래 무덤 사이에 있으면서 큰 수리가 되어 모든 새들을 제도하거든, 중생들은 내가 참으로 수리라 하지만 나는 벌써 이런 업을 여의었으나 수리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런 일

[98 / 909] 쪽
을 보이는 것이니라. 내가 또 염부제에서 큰 장자가 되는 것은 한량없는 중생들을 안정시켜 바른 법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며, 또 모든 왕과 대신과 왕자와 재상이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 중에 제일이 되어 바른 법을 수행하기 위하여 임금의 지위에 있는 것이니라.
내가 또 염부제에서 질병겁(疾病劫)이 일어날 적에 많은 중생들이 병에 걸렸으면, 먼저 약을 주고 뒤에 법을 말하여 위없는 보리에 머물게 하거든, 사람들은 모두 질병겁이 일어난 줄로 알며, 일부러 흉년겁[饑饉劫]이 일어나거든, 요구함을 따라 음식을 공급하고, 그런 뒤에 미묘한 법을 말하여 그로 하여금 위없는 보리에 머물게 하며, 또 염부제에서 도병겁(刀兵劫)이 일어나거든 법문을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원수와 해(害)를 여의고 위없는 보리에 머물게 하며, 또 일부러 나타나서 항상하다고 억측하는 이에게는 무상한 생각을 말하고, 낙이라고 억측하는 이에게는 괴롭다는 생각을 말하고, 나라고 억측하는 이에게는 내가 없다는 생각을 말하고, 깨끗하다고 억측하는 이에게는 부정한 생각을 말하며, 어떤 중생이 삼계를 탐내거든 법을 말하여 그곳을 여의게 하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위없이 미묘한 법약을 말하며, 온갖 번뇌의 나무를 끊기 위하여 위없는 법약의 나무를 심으며, 모든 외도를 제도하기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며 비록 중생들의 스승됨을 나타내나 마음에 중생의 스승이란 생각이 없으며, 하천한 무리를 제도하기 위하여 그 속에 들어가서 법을 말하지만, 나쁜 업으로 그런 몸을 받는 것이 아니니라.
여래인 정각은 이렇게 대열반에 편안히 머무는 것이므로 항상 머물고 변역하지 않는다고 이름하느니라. 염부제에서와 같이 동 불우체(弗于逮), 서 구야니(瞿耶尼), 북 울단월(鬱單越)에서도 역시 그러하며, 이 사천하에서와 같이 삼천대천세계에서도 그러하며, 25유(有)에 대해서는 『수릉엄경』에서 자세히 말한 것 같나니, 이러하므로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대열반에 머물면 이와 같은 신통 변화를 나타내어 두려움이 없느니라. 가섭이여, 그러므로 그대는 라후라가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말라. 왜냐 하면 나는 벌써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겁 동안에 욕계의 번뇌를 여의었으므로 여래는 항상 머물고 변역하는 일이 없다고 하느니라.”
“여래를 어찌하여 항상 머문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등불이

[99 / 909] 쪽
꺼지면 간 곳이 없다 하시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한 번 멸도(滅度)하면 간 곳이 없으리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등불이 꺼지면 간 곳이 없으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한 번 멸도하면 간 곳이 없으리라’라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선남자여, 마치 남자나 여인이 등을 켤 적에는 등잔에 가득히 기름을 부었으므로 기름이 있을 때까지 밝은 빛이 있다가 기름이 다하면 밝은 빛도 꺼지는 것과 같나니, 밝은 빛이 꺼짐은 번뇌가 없어짐 같으며 밝은 빛은 꺼지나 등잔은 남은 것같이 여래도 그러하여 번뇌가 없어져도 법신은 남느니라. 선남자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밝은 빛과 등잔이 함께 없어지느냐?”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함께 없어지지는 않으나 모두 무상인 것이오니, 법신을 등잔에 견준다면 등잔이 무상한 것이고 법신도 역시 무상하겠나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세간에서 말하는 그릇과 같다고 말하지 말라. 세존은 위없는 법그릇[法器]이어서 저 무상한 그릇은 여래가 아니니, 온갖 법 가운데 열반이 항상한 것이며, 여래는 그것을 체달하였으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또 등불이 꺼진다는 말은 아라한의 증득하는 열반이니, 탐애의 번뇌를 멸하였으므로 등불이 꺼지는 데 비유한 것이니라. 아나함(阿那含)이란 뜻은 탐애가 있다는 것이니, 탐애가 있으므로 등불이 꺼지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옛적에 한 겹을 덮어 두고 말하여서 등불이 꺼지는 것 같다고 하였거니와, 대열반이 등불 꺼짐과 같다는 것이 아니니라. 아나함이란 것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25유(有)에 다시 돌아오지도 않아서 냄새나는 몸, 벌레 있는 몸, 밥 먹는 몸, 독한 몸을 다시 받지 아니하므로 아나함이라 하느니라. 다시 몸을 받는 것은 나함(那含)이요, 몸을 받지 않는 것은 아나함(阿那含)이며, 가고 옴이 있으면 나함이요, 가고 옴이 없어야 아나함이라 이름하느니라.”

[100 / 909] 쪽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