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0ntn3Q28BD4

 

아제 아제 바라아제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모지'는 '보리'의 변음.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 가, 깨달음에 뿌리를 내리자.)


*위 주문(呪文)의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스크리트어[범어] :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 억양을 부드럽게 했을 때

(한자 음역)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한국말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영   어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해   석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가라. 가라. 
피안으로 건너가라.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라. 
깨달음에 뿌리를 내려라.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533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www.youtube.com/watch?v=gcuhUl-Fy50 

초서체 蒼巖精舍(창암정사) - 해서체 鳴玉臺(명옥대)

(한문읽기 방향은 우에서 좌로)

鳳停寺 西樓

(봉정사서루)

이황(李滉 1501~1570)


梵宮西畔一樓橫 
범궁서반일루횡, 법당 서쪽에 누각하나 가로질러 있는데 

創自新羅幾毁成 
창자신라기훼성, 신라시대 때 창건됐으니 몇 번이나 세우고 무너지고 했을고? 

佛降天燈眞是幻 
불강천등진시환, 하늘에서 등불이 내려온 동굴에서 부처가 됐다는 말 참으로 허황하구나 

胎興王氣定非情 
태흥왕기정비정, 왕기가 흥해 태를 묻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구나 

山含欲雨濃陰色 
산함욕우롱비정, 산은 비를 머금어 그림자색 더 짙어지고 

鳥送芳春聲 
조함욕우롱음색, 향기로운 봄을 보내는 새는 애닳프게 우는구나 

漂到弱齡栖息處 
표도약령서식처, 어릴 때 깃들던 곳에 떠돌다 돌아와

白頭堪歎坐虛名 
백두감탄좌허명, 흰머리가 되고 보니 헛된 이름에 안주하던 때가 슬퍼진다 

[출처]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1785 

 

[정자] 81. 안동 명옥대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天燈山, 576m)이다. 이 산의 한 바위굴에서 의상대사의 제자능인대사가 득도했다. 능인대사가 바위굴에서 수도할 때 하늘에서 천녀가 내려와 불을 밝히며 득도를 도

www.kyongbuk.co.kr

 

 

 

https://www.youtube.com/watch?v=51gmvjjhv14 

 

전서체여서 모르는 한자도 있었는데, 주련 수집의 권위자이신 권영한님 덕분에 출처와 의미까지 알게 되었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kaZ2ML_ngm0 

 

 

권영한, 鳳停寺 柱聯(봉정사주련) 

http://www.andongkwon.pe.kr/coding/sub4/sub4.asp?bseq=12&cat=-1&sk=&sv=&yy=all&page=6&mode=view&aseq=7908#.YvPorHZByUk 

 

청남 권영한 홈페이지입니다

[일반 ] 鳳停寺 柱聯(봉정사주련) 청남 鳳停寺 柱聯(봉정사 주련) 天燈山鳳停寺 柱聯(천등산봉정사 주련)  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대한불교조계종 19교구 고운사의 말사) 천등산 중턱

www.andongkwon.pe.kr

 

https://m.blog.naver.com/mycael/221229563224

 

봉정사 주련[鳳停寺柱聯]안동 천등산

[봉정사주련- 고금당 주련. 무량해회 주련. 범종각 주련] * 소재지: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천등산...

blog.naver.com

 

 

영산암/ * 지장전 중앙에 세 분 불상을 둔 것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 때 사용한 것인 듯하다.

https://m.anewsa.com/article_sub3.php?number=2249836#_enliple

경북 안동에 있는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가진 이곳은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봉정사에서는 주로 부속 암자인 영산암에서 영화가 촬영됐다. 천만 배우 송강호와 박해일이 주연한 영화 '나랏말싸미(2019)'에서 신미스님으로 분한 박해일이 영산암 마루에서 한글을 떠올리는 장면이 촬영됐으며, 이외에도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 '동승(2003)', MBC드라마 '직지(2005)' 등이 촬영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llMnz7VvRmU 

 

 

https://www.youtube.com/watch?v=oyioYboWGq4 

 

 

 

 

 

 

 

https://www.yna.co.kr/view/AKR20180515163500805

 

[연합이매진] 안동 천등산 봉정사 | 연합뉴스

(안동=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경상북도 안동시 천등산 아래 자리한 봉정사(鳳停寺)는 '한국의 건축박물관'으로도 불린다.

www.yna.co.kr

 

[참고] 충북 제천의 박달재

울고 넘는 박달재〉는 1948년 박재홍이 부른 트로트 곡이다.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의 곡으로, 발표했을 때부터 인기를 끌며 박재홍은 대스타가 되었고 노래에 담긴 서민적인 정서가 공감을 얻어 이후로도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다. 반야월이 악극단 지방순회 공연 중 충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길에 농부 내외인 듯한 남녀의 이별 장면을 목격하고 작사했다는 일화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A8fdZi24wQ 

* 동영상 화면의 노래 가사 표기의  '천둥산'은 '천등산(天燈山)'의 잘못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P0_xUfPM58 

 

 

https://www.youtube.com/watch?v=MWmt2Oz5TZk&list=RDQTpNUhP9TFI&index=7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D%99%A9

 

이황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이황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황(李滉, 1502년 1월 3일(1501년 음력 11월 25일) ~ 1571년 1월 3일(1570년 음력 12월 8

ko.wikipedia.org

사상과 신념

 
이황의 저서 《퇴계문집

그는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불교와 양명학은 이단이자 화(禍)로 간주하고, 임금에서부터 동료,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불교 배척, 양명학 배척을 한결같이 말하였다.

이기 이원론

이이와 더불어 한국의 성리학(유학)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로 주자의 이기이원론적 사상 및 영남학파의 창시자인 이언적의 주리설을 계승하여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는 철저한 철학적 사색을 학문의 출발점으로 하여 연역적 방법을 채택,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학문에 임하여 어디까지나 독단과 경솔을 배격하였다. 그는 우주 만물은 이와 기의 이원적 요소로 구성되어 그 중에 하나라도 결핍되면 우주의 만상을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기의 도덕적 가치를 말함에 이는 순선무악한 것이고 기는 가선가악한 것이니, 즉 이는 절대적 가치를 가졌고 기는 상대적 가치를 가진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심성 문제를 해석함에도 역시 이러한 절대·상대의 가치를 가진 이기이원으로 분석하였다. 이것이 뒤에 기대승과의 논쟁이 벌어진 유명한 ‘사단칠정론’으로 이후 한국 유학자로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을 만큼 중요한 주제를 던진 것이다.[9]

그의 학문은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쳐, 에도 시대에는 기몬 학파와 구마모토 학파가 있었고, 메이지 시대의 교육 이념의 기본 정신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황의 학문적 근본 입장은 진리를 이론에서 찾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진리는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으로 지와 행의 일치를 주장, 그 기본이 되는 것이 성이요, 그에 대한 노력으로서 ‘경’이 있을 뿐이라 하였다. 실로 그의 학문·인생관의 최후 결정은 이 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이 경을 70여 생애를 통하여 실천한 것이 이황이었다. 그는 문학·고증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그 사상·학풍이 후세에 계승되어 영남학파를 형성, 유학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조식과의 논쟁

이황은 조식에 대해 "오만하여 중용의 도를 기대하기 어렵고, 노장에 물든 병통이 있다"고 비판[10]했다.

그러자 조식은 선비들이 공부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부모의 고혈을 짜고,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고 응수했다. 남명은 "요즘 학자들은 물 뿌리고 청소하는 절차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天理, 하늘의 진리)를 담론하며 허명(虛名)을 훔친다"고 맞대응 하는 등의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11] 그러나 이황의 조식 비판은 후일 정인홍이 조식을 옹호하는 글을 올림으로서 다시한번 재현된다.

 

후일 조식의 제자와 이황의 제자들은 율곡 이이와 성혼의 제자들과 대립하며 동인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황의 제자와 조식의 제자 간 사상의 차이는 다시 동인을 양분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같은 해에 태어난 두 거유의 상이한 출세관과 학문관은 결국 남인과 북인의 분화로 이어졌고, 당쟁을 격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11]

기대승과의 논쟁 ; 47 논쟁

추만 정지운이 [천명도설]을 지었고, 이를 우연히 본 이황이 몇 구절을 고쳤다. 정지운이 "4단 = 發於理, 7정 = 發於氣" (4단은 리에서 드러나고, 7정은 기에서 드러난다"고 한 것을 이황이 "4단 = 理之發, 7정 = 氣之發" (4단은 리의 드러남이고, 7정은 기의 드러남)이라고 고쳤다. 우연히 이것을 본 기대승이 이의를 제기하는 편지를 이황에게 보내면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황은 당시에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이황에게 편지로 문의했다. 기대승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황과 논쟁을 했다. 기대승은 리와 기가 '함께 있음, 붙음'(不相離; 서로 떨어지지 않음)을 주장했다. 이황의 명제는 리와 기를 서로 갈라놓는다.

이에 이황은 기대승의 비판을 받아들여서 "4단 = 理發而氣隨之, 7정 = 氣發而理乘之" (4단은 리가 드러나면 기가 그것을 따르고, 7정은 기가 드러나면 리가 그것을 올라탄다)고 명제를 바꾸었다. 이 명제는 '而' 이하의 뒷부분을 빼면 "4단-리발, 7정-기발"이고, 이황의 원래 명제와 다를 것이 없다. 이황은 리와 기의 '떨어짐, 분리됨, 구별됨'(不相雜; 서로 섞이지 않음)을 주장했다. 붙음과 떨어짐, 이것은 기대승과 이황의 기본적 차이이다.

기대승은 붙음을 주장해서 리와 기를 하나로 만든다. 그 결과 리가 드러남을 부정하고 기만 드러남을 주장한다. 이황의 두 명제 가운데 氣發만 인정한다. 반면 이황은 리와 기를 분리시킨다. 따라서 리발과 기발을 다 인정한다. 2원론이다. 이렇게 되면 논쟁은 리발을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나간다.

이황은 주희의 강의록 모음인 [주자어류]를 읽다가, 주희가 "4단 = 理之發, 7정 = 氣之發" 이라 한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견해가 틀리지 않았으며, 주희의 말을 따르자고 기대승에게 제안한다. 기대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 기대승의 입장은 뒤에 율곡 이이가 그대로 이어받는다. 이이 성혼과 논쟁하면서 기대승의 입장을 반복한다. 성혼은 약간 양자 절충을 한 이황의 입장에 선다. 이후 이이가 창시한 서인들은 기발 하나만 인정하는, 리와 기의 붙음을 당로로 정한다. 나아가 한원진은 {주자 언론 동이고}를 써서, 주희가 "4단 = 理之發, 7정 = 氣之發" 이라 한 것은 제자들이 잘못 기록한 말이라 부정한다. 호승심에 사로잡혀 이기려고 집착하다 보니 원문까지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 이이는 너무 어려서 이황과 논쟁한 적이 없다. 이황이 죽기 전에 도산서원으로 이황을 방문해서 며칠 머물며 가르침을 받았다. 돌아가서 편지를 몇통 주고 받는다. 60대 대학자에게 20대 학생이 묻는 것 이상이 아니다.

臣(鄭仁弘)이 젊어서 조식(曺植)을 섬겨 열어주고 이끌어주는 은혜를 중하게 입었으니 그를 섬김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体)의 의리가 있고, 늦게 성운(成運)의 인정을 받아 마음을 열고 허여하여 후배로 보지 않았는데, 의리는 비록 경중이 있으나, 두 분 모두 스승이라 하겠읍니다. 신이 일찍이 故 찬성 이황(李滉)이 조식(曺植)을 비방한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상대에게 오만하고 세상을 경멸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높고 뻗뻗한 선비는 中道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老莊을 숭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운에 대해서는 淸隱이라 지목하여 한 조각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신이 일찍이 원통하고 분하여 한 번 변론하여 밝히려고 마음먹은 지가 여러 해입니다.(중략) 曺植과 成運은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뜻이 같고 도가 같았읍니다. 태산교옥(泰山喬嶽) 같은 기와 정금미옥(精金美玉)과 같은 자질에 학문의 공부를 독실히 하였으니 ...(중략)... 이황은 두 사람과 한 나라에 태어났고 또 같은 道에 살았읍니다만 평생에 한 번도 얼굴을 대면한 적이 없었고 또한 자리를 함께 한 적도 없었읍니다. 그런데도 한결같이 이토록 심하게 비방하였는데, 신이 시험삼아 그를 위해 변론하겠읍니다. 이황은 과거(科擧)로 출신하여 완전히 나아가지 않고 완전히 물러나지도 않은 채 서성대며 세상을 기롱하면서 스스로 중도(中道)라 여겼습니다. 조식과 성운은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고 산림(山林)에서 빛을 감추었고 도를 지켜 흔들리지 않아 부름을 받아도 나서지 않았읍니다. 그런데 滉이 대번에 괴이한 행실과 老莊의 道라고 인식하였으니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중략) 더구나 조식과 성운은 비록 세상을 피해 은거하였다고 하지만 선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달려가서 한 번 임금을 존중하는 뜻을 폈고, 누차 상소를 올려 정성을 다해 치안과 시무를 발씀드렸는데, 이것이 과연 괴벽의 도리이며 이상한 행실입니까. 그때 나이 이미 70이었습니다. 어찌 벼슬을 그만두어야 할 나이인데 出仕하려고 하겠습니까. 수레를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 자신의 행실을 닦고 삶을 마친 것이 과연 중도(中道)에 지나치고 괴이한 행실을 한 것이며 세상을 경멸하는 老莊의 학문이란 말입니까 신은 의혹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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