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TQqtUFGn7kM
즐거운 편지
ㅡ 황 동 규(黃東奎, 1938 ~ 1995, 소설가 황순원의 장남)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위 작품은 산문시입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9%A9%EB%8F%99%EA%B7%9C
황동규(黃東奎, 1938 ~ 1995 )는 대한민국의 시인, 영문학자이다. 본관은 제안(齊安)이다.[1] 소설가 황순원의 장남이다.[2]
생애
평안남도 숙천에서 출생하였고[2] 지난날 한때 평안남도 강동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훗날 평안남도 평양에서 잠시 자라다가 1946년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월남하였다. 서울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을 나왔다. 1958년 《현대문학》에 시 〈10월〉,〈동백나무〉,〈즐거운 편지〉 등을 추천받아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한밤으로〉,〈겨울의 노래〉,〈얼음의 비밀〉 등의 역작을 발표했으며, 이러한 초기 시들은 첫 번째 시집 《어떤 개인 날》에 수록되어 있다. 이어 두 번째 시집 《비가(悲歌)》, 3인 시집 《평균율》을 간행하였고 《사계(四季)》의 동인으로 활약했다. 그 밖의 시집으로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풍장(風葬)》 등이 있다. 1968년 현대문학신인상, 1980년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황동규의 시는 전통적인 한국 서정시의 강한 편향성과 서정성에서 벗어나 1950년대 이후의 현대시사 위에 독자적인 맥락을 형성한 것으로 보이며 독특한 양식적인 특성과 기법으로 인해 현대시의 방법적, 인식적 지평을 확대해 놓았다는 점에서 동시대 비평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평가를 받아오고 있다.[3]
가족 관계
- 아버지 황순원의 3남 1녀 중 장남
황동규 시인은 1938년 평남 숙천(肅川)에서 소설가 황순원의 맏아들로 태어나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서울에서 성장했다. 서울고 졸업 후 서울대 영어영문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따고 영국 에든버러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1968년부터 서울대 영문학 교수로 재임했다.
1958년 미당 서정주에 의해 시 ‘시월’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가 ‘현대문학’에 추천돼 시인으로 등단했다. ‘어떤 개인 날’ ‘풍장’ ‘외계인’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꽃의 고요’ ‘겨울밤 0시 5분’ ‘사는 기쁨’ ‘연옥의 봄’ 등의 시집을 펴냈다. 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미당문학상·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와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인은 아버지 황순원에 대해 말할 때 늘 ‘체험의 공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소나기>의 작가로 저명한 부친 황순원은 이글 하단에 소개하겠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byron037&logNo=220902082774
https://blog.daum.net/ss4818/582
풍장(風葬) 1
ㅡ 황동규(黃東奎 1938 ~ 1995 )
내 세상 뜨면 풍장(風葬)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 우고 옷 벗기 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 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시인 황동규, <풍장> 연작 완결…70편짜리 ‘생사의 교향악’
우리 시대 대표적 시인 황동규씨가 82년에 시작한 <풍장> 연작이 95년 가을 70편으로 완결되었다.
살아 있는 모든 자에게 죽음은 시시각각 다가온다. 산 자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공포이며, 심연을 알 수 없는 어둠이다. 그 공포와 어둠으로 인간을 몰아가는 것은 질병이나 자동차 사고가 아니라 시간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소멸로 인도하는 시간에 저항한다.
제의(祭衣), 종교 혹은 문명 전체가 시간에 대해 인간이 저항하는 형태이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시간에 대한 저항이 없다면 우리의 삶에서 어떤 형태의 완성도 찾아볼 수 없다.
영원한 암적(暗寂), 끝없는 무(無), 흐느적거리는 권태일 뿐이다.
죽음은 삶을 유한적 존재로 한정하지만, 그 한정으로 인해 삶은 권태를 벗어나 찬란한 완성이 된다.
어둠이 있음으로 해서 빛이 존재하듯이.
82년,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풍장1>)
로 첫 걸음을 내디딘 <풍장> 연작은 바로 관념의 죽음에서 벗어나 죽음을 길들이기 위한, 삶과 죽음의 내밀한 교접을 통해 삶의 유한성을 찬란하게 만들기 위한, 시인 황동규의 긴 여정이다.
풍장(風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비바람에 시신이 육탈하기를 기다린 후에 매장하는 우리나라 서남해 도서 지방의 독특한 장례법이 아니던가. 그 풍장이 시인에게 ‘삶 자체의 알레고리’로 보였던 것이다.
삶이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면, 풍장은 구체적으로 죽음의 경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풍장은 죽음에 이르는 우리의 삶으로 시인에게 은유된 것이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풍장1>)에서 보는 것처럼 초기 <풍장> 연작은 대체로 죽음을 찾아나서서 죽음과 맞대결하려는 시인의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이 때가 40대 중반, 일반적으로 의식 속에서 죽음이 만져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아니던가.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죽음을 찾아나서서 그놈의 실체를 보자는 것.
그것은 죽음과의 대결이지만 ‘죽음 길들이기’‘죽음과의 친화’이기도 하다.
이 죽음과의 친화는 <풍장> 연작 중기로 오면 삶과의 친화, 생명에 대한 환희로 변주된다.
이 질적 변화는 죽음과의 대결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풍장37
땅 속에 발목뼈 채 묻히지 못해
한없이 떠도는 원혼(寃混)이 된들 어떠리.
원혼 가운데서도
새처럼 가벼운 원혼,
슬피 울지도 못하고
잠투정하듯
초저녁에 잠시 우는,
울다 문득 고막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풍장37> 전문)
원혼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뜻이다. 이처럼 <풍장> 연작 중기에 오면 시인 황동규는 죽음 길들이기와 죽음 긍정을 통해 삶의 유한성을 극복하여 삶의 정신적 자재(自在)에 이른다.
후반기 <풍장>에는 삶과 죽음의 이원론이 완전히 지양되고 삶과 죽음의 동시적 긍정이, 그 둘의 경계 없음이, 그 무화(無化)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그것은 세속적 시간의 초월이 아니라 끌어안기다. 그리하여 시인에게 끌어안긴 죽음과 삶은, 그것을 구분하는 시간은 ‘꿈도 없이’ 편안하게 졸 수 있다.
황동규의 <풍장> 연작 70편은 죽음과 삶의 쟁투에서 그것들의 화평에 이르는 드라마틱한 여정이다. 이 화평이 우리에게 영생 (永生)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사술(邪術)일 뿐이다. 황동규의 시집 <풍장>(문학과지성사)은 우리 삶의 유한함의 아름다움과, 죽음을 감싸안으면서도 우리의 존재를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의식의 자재(自在)를 보여준다.
그래서 세상을 ‘군침 돌게’ 해 준다.
하응백 (문학 평론가·경희대 국문과 교수) 시사저널 1995. 10. 19
The time we have left
How does it matter the time we have left,
We'll have the chance to grow old together :
My tenderness will live in the deep of your eyes,
Your youth will live in the deep of my heart.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우리가 함께 늙어가는 건 행운이야
당신의 눈동자에 나의 사랑이 담겨있고
내 마음 깊은 곳에 당신의 청춘이 살아 있으니
Like a prayer from childhood,
these words on your lips give me faith.
I can imagine us, your hand in mine,
our smallest smiles will mean I love you.
어린 시절의 기도처럼
당신의 입술에 감도는 말은 나에게 믿음을 주고
난 당신이 내 손을 잡는 상상을 하고
우리의 엷은 미소조차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듯.
But one of us will leave first,
And close his eyes forever
With a final smile.
And the other, losing half his life,
Will remain in the night every day.
His heart of course will beat,
But for whom ? But why ?
하지만 우리 중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마지막 미소를 머금은채
영원히 눈을 감는다면
남은 사람은 남은 인생의 반절은 잃어 버린 채
매일 어둠속에서 지내게 될거야.
그의 가슴은 뛰겠지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뛰는가
Your step sounds, the door opens,
My heart beats faster and I find you again.
When our hands are holding I forget about everything else,
I feel like time itself has stopped.
당신의 발걸음 소리가 문틈으로 들려오면
내 심장은 더 빨리 뛰고 당신을 되찾겠지
우리가 서로 손을 잡는 순간 나는 다른 모든 것을 망각한채
시간이 멈추었다 느끼겠지
But one of us will leave first,
And close his eyes forever
With a final smile.
One day one of us will be too tired,
And, almost happy, will leave first
And the other, without delay, will follow.
하지만 우리 중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마지막 미소를 머금은채 영원히 눈을 감는다면
어느날 남은 한 사람이 매우 피곤해져서
행복하게 세상을 떠나서
남은 사람은 이 세상에 지체하다가 그를 찾아 떠나겠지.
I can imagine us, your hand in mine,
our smallest smiles will mean I love you.
나는 내 손에 쥐어져 있던 당신 손을 기억하지
우리의 엷은 미소는 서로 사랑한다는 의미라네
[가사출처] 아름다운미술관cafe
그의 가슴은 뛰겠지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뛰는가 ’ ☜ 이건 무슨 뜻일까?
풍장(風葬) 2
ㅡ 黃東奎 (1938 ~ 1995 )
아 색깔의 장마비!
바람 속에 판자 휘듯
목이 뒤틀려 퀭하니 눈뜨고 바라보는
저 옷벗는 색깔들
흙과 담싼 모래 그 너머
바다빛 바다!
그 위에 떠다니는 가을 햇빛의 알갱이들
소주가 소주에 취해 술의 숨길 되듯
바싹 마른 몸이 마름에 취해 색깔의 바람 속에 둥실 떠……
3
희미한 길 하나
골목에 들어가 길 잃었다가
환한 한길로 열리듯
아픈 이 하나
턱 속에 사라졌다가 바람 불 때
확하고 뇌 속으로 타오르듯이
세상이 세워지다 말고
헐리다 말고
외롭다 말고, 세상이
우리 모여 떠들던 광교의 술집과
잠 못 들다 홀로 몸 붙이고 잠든 방 사이
어디선가 타오른다
인왕산일까 남산쯤 혹은 낙산 그 너머일까
낙산 밑에 밀주 팔던 그 술집일까
안방에 담요 뒤집어 쓰고 화끈 달던
술항아리일까
혹은 우리들보다 더 뜨거운 우리의 골목일까
그런 골목, 우리 코트 버리고
웃옷 벗어 머리에 쓰고 허리 낮추고
타는 마루를 빠져나와 마당을 빠져나와
대문턱에 걸려 넘어져 엎어진 채로
세상이 마르고, 세상을 태우고, 세상에 물뿌리는 소리를 듣는다
4
쓸쓸한 화령길
어려운 길 석천(石川)길
반야사(般若寺)는 초행길
황간(黃澗)지나 막눈길
돌다리 위에 뜬 어리숙한 달
(그 달?)
등지고
난간 위에 눈을 조금 쓸고
목숨 내려놓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루카치 만나면 루카칠
바슐라르 만나면 바슐라를
놀부를 만나면 흥부를……
이번엔 달을 내려놓고.
7
풍란(風蘭)이 터진다
손가락을 넣으면
빵꾸난 주머니 시원 너덜너덜 너덜
옷꿰맨 곳 터져
살 드러나고
살 꿰맨 곳 터져
뼈 드러나는가
가만,
말 꿰맨 곳 터질 때
드러나는 말의 뼈
실과 바람사이
바람과 난(蘭)사이
풍란(風蘭)과 향기 사이
에서 흰 빛깔과 초록빛깔이 알록달록 가벼이 춤추는
뼈들이 골수속에 코를 박고 벌름대는
이 향기.
2
이 세상 가볍게 떠돌기란
양말 몇 켤레면 족한 것을
헤어지면
기워신고
귀찮아지면
해어지고
(소금장이처럼 가볍게
길 위에 떠서)
아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콘크리트 터진 틈새로
노란 꽃대를 단 푸른 싹이
간질간질 비집고 나온다
공중에선
조그만 동작을 하면서
기쁨에 떠는 새들
호랑나비 바람이 달려와
마음의 바탕에
호랑무늬를 찍는다
찍어라, 삶의 무늬를,
어느날 누워 깊은 잠 들 때
머릿속을 꽉 채울 숨결의 무늬를,
그 무늬 밖에서 숨죽인 가을비 내릴 때.
4
오늘 낮에 새들한테 당했다
섬 밖 사방에서 날아와
떼지어 맴돌다
한꺼번에 나에게 달려든
저 갈매기표(標) 칼새표(標) 심장들
두둥 두둥둥
마싹 마른 다리로 벌떡 일어나
뒤를 보며 달리다
바닷가에 널어논 그물에 걸려
벌렁 나자빠져 춤추듯 누웠다
온통 맥박 투성이의 하늘.
15
숲에서 나와
가까이,
땅의 얼굴에 얼굴 가까이,
그 얼굴에 볼에 가볍게 볼 비비고
그 얼굴에 입에 입 가까이
혀 가까이,
목구멍 가까이,
가볍게
몸이 가벼워져 거꾸로 빙빙 돌며 떠오르는 곳
회오리 바람이는 곳 내 죽음 통하지 않고 고장 승천하는 곳.
16
어젯밤에는
흐르는 별을 세 채나 만났다
서로 다른 하늘에서
세 편(篇)의 생(生)이 시작되다가
확 타며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오늘 오후 만조(滿潮) 때는
좁은 포구에 봄물이 밀어오고
죽었던 나무토막들이 되살아나
이리저리 헤엄쳐 다녔다
허리께 해파리를 띠로 두른 놈도 있었다
맥을 놓고 있는 사이
밤비 뿌리는 소리가 왜 이리 편안한가?
17
땅에 떨어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물방울
사진으로 잡으면 얼마나 황홀한가?
(마음으로 잡으면!)
순간 튀어올라
왕관을 만들기도 하고
꽃밭에 물안개로 흩어져
꽃 호흡기의 목마름이 되기도 한다.
땅에 닿는 순간
내려온 것은 황홀하다.
익은 사과는 낙하하여
무아경(無我境)으로 한번 튀었다가
천천히 굴러
편안히 눕는다.
20
바다는 젖어 있었다.
바다와 해가 맞물려 출렁거려
그 속에서 해당화가
왕보석처럼 빛났다.
색의 창을 슬쩍 여닫는 색의 눈,
해당화를 보다 말고
인간을 향해
그냥 인간의 눈 속으로!
21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속에 사는,
미물(微物) 속에서도 쉬지 않고 숨쉬는,
혹은 채 살아 있지 않은 신소재(新素材)도
날카로이 깎아놓으면
원래의 편안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저 본능!
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무, 저 꽃, 저 풀,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의 오르내리는 저 목젖이
동식물도감의 정밀한 사진들 속에 숨지 않으려는
바로 그것!
22
무작정 떠 있다
멍텅구리배.
오늘은 흔들리지도 않는다.
허리 근질거림 참다보면
바다에 떴는지 하는에 떴는지
열(熱)에 떴는지.
처음으로 나무에서 내려와
땅 위에 정신없이 발디딘 원숭이처럼
땅 위에 떴는지.
인간으로 그냥 낡기 싫어
뒤로 돌아
생명의 최초로 되밟아가려다
생명 속에 떴는지.
24
베란다에 함박꽃 필 때
멀리 있는 친구에게
친구 하나 죽었다는 편지 쓰고
편지 속에 죽은 친구 욕 좀 쓰려다
대신 함박꽃 피었다는 얘기를 자세히 적었다.
밤세수하고 머리 새로 씻으니
달이 막 지고 지구가 떠오른다.
25
희양산 봉암사에 다가갔다.
늦가을 저녁
발목이 깊은 낙엽에 빠지고
시냇물 소리도 낙엽에빠지고
바람 소리까지 낙엽에 빠지는
늦가을 저녁.
검음 멈추면
소리내던 모든 것의 소리 소멸,
움직이던 모든 것의 기척 소멸,
문득 얼굴 들면
하얗게 타는 희양산 봉우리,
소리없이 환한.
주위엔 저 옥보라색.
빛들이 몸 가벼운 쪽으로 쏠리다 맑아져
分光 그만두고 스펙트럼 벗어나 우주 속에 사라졌다가
지구의 하늘이 그리워 돌아온
저 색!
때맞춰 하얗게 타는 산봉우리.
26
달마는 면벽(面壁) 구 년에 왜 마르지 않았는가?
달마는 마르는 대신 왜 사지(四肢)의 퇴화를 택했는가?
사지는 말없이 그의 고통과 법열(法悅) 속에
(저 소리없는 신음소리, 아악 소리,
내장(內臟)의 웃음소리, 생명의 폭발소리)
그 모두를 참으며 세포 하나하나에
미소 보내며 기다렸을까?
기다림이란 무엇인가? 퇴화란 무엇인가?
혹시 진화란 퇴화로부터 뒷걸음질치는 것?
발 헛디디며 계속 뒷걸음질치다
벽에 등대고 선 나의 머리와 사지.
27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이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28
내 마지막 길 떠날 때
모든 것 버리고 가도.
혀끝에 남은 물기까지 말리고 가도.
마지막으로 양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리.
가슴 좀 갑갑하겠지만
그냥 담고 가리.
가다가 잠시 발목 주무르며 세상 뒤돌아볼 때
도시마다 사람들 가득 담겨 시시덕거리는 것 내려다보며
한번 웃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배 잡고 낄길대며 위해
지니고 가리.
30
함박꽃 가지에서
사마귀가 성교 도중 암컷에게 먹히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머리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이 쾌감!
하늘과 땅 사이에 기댈 마른 풀 한 가닥 없이
몸뚱어리 몽땅 꺼내놓고
우주의 공간 전부와 한번 몸 부비는
저 경련!
31
마른 국화를 비벼서
향내를 낸다
꽃의 체취가 그토록 가벼울 수 있을지
손바닥을 들여다 보다가
마음이 쏟아진다
나비나 하루살이 몸에
식물의 마음 심은 가벼운 것이 되어
떠돌리라
비벼진 꽃 냄새 살짝 띠고
34
옷을 벗어버린 눈송이들이
지구의 하늘에서보다 더 살아 춤추는
우주의 변두리,
혹은 서울의 변두리 밖으로,
가고 싶다.
확대경 속에서처럼
큰 눈송이들이
공해에 찌든 몸의 옷 벗어버리고
속옷도 모두 벗어버리고
속살 그대로 날으며 춤추는
춤추다 춤추다 몸째 춤이 되는 그곳으로,
여섯 개의 수정(水晶)깃만 단 눈송이들이.
35
친구 사진 앞에서 두 번 절을 한다.
친구 사진이 웃는다,
달라진 게 없다고.
몸 속 원자들 자리 좀 바꿨을 뿐,
영안실 밖에 내리는 빗소리도
옆방에서 술 마시고 화투치는 조객들의 소리도
화장실 가기 위해 슬리퍼 끄는 소리까지도
다 그대로 있다고.
36
내 마지막 기쁨은
시(詩)의 액셀러레이터 밟고 또 밟아
시계(視界) 좁아질 만큼 내리 밟아
한 무리 환한 참단풍에 눈이 열려
벨트 맨 채 한계령 절벽 너머로
다이빙.
몸과 허공 0밀리 간격 만남.
아 내 눈!
속에서 타는
단풍.
37
땅속에 발목뼈 채 묻히지 못해
한없이 떠도는 원혼(寃魂)이 된들 어떠리.
원혼 가운데서도
새처럼 가벼운 원혼,
슬피 울지도 못하고
잠투정하듯
초저녁에 잠시 우는,
울다 문득 고막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38
아침에 커피 끓여 마실 때
내 입은 위(胃)와 통화한다,
"지금 커피 한잔 발송한다."
조금 있다가 위는 창자와 통화할 것이다.
"점막질에 약간 유해한 액체 바로 통과했음."
저녁쯤 항문은 입에게 팩시를 보낼 것이다.
"숙주(宿主)에 불면증 있음."
40
선암사 매화 처음 만나 수인사 나누고
그 향기 가슴으로 마시고
피부로 마시고
내장(內臟)으로 마시고
꿀에 취한 벌처럼 흐늘흐늘대다
진짜 꿀벌들을 만났다.
벌들이 별안간 공중에 떠서
배들을 내밀고 웃었다.
벌들의 배들이 하나씩 뒤집히며
매화의 내장으로 피어……
나는 매화의 내장 밖에 있는가,
선암사가 온통 매화,
안에 있는가?
44
바람 소리.
저 마을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산,
낯익어 고향 같다.
개울 간신히 건너는 돌다리
낯익어 돌다리 같다.
눈 반쯤 감고 보면 모두 낯익다.
바람 소리에 흔들릴까 말까 주저하는
저 나무의 몸짓도.
언젠가 하루 구름 갠 날
눈 한번 아주 감으면
모든 게 몸서리치게 낯익어지지 않을까?
아 환한 사람 소리.
눈 지긋 감아라.
46
며칠 병(病)없이 앓았다.
책장문들이 모두 열렸고
책들은 길 떠날 채비하고 줄 서 있었다.
더러 외투 껴입고 있는 놈도 있었다.
문밖을 나서니 시야의 초점 계속 녹이는 가을 햇빛.
간판들이 선명해라
지나치는 사람들도 선명해라
책을 들고 걷는 저 여자의 긴 손.
차도(車道)에 바싹 나와 아슬아슬 서 있는
저 흙덩이의 어깨까지 선명해라.
눈이 밝아졌구나,
아 눈이.
47
내 관악산 보이는 곳에 살며
때로는 산이 안개 속에 숨는 것을 보았다.
이슬비가 안개를 벗기기도
안개가 이슬비를 다시 감싸기도 했다.
언젠가 마음 속 간직해온 것과 헤어져야 할 때,
마음의 것들 책상 위에 벌여 놓을 때,
서가에 꽂힌 책 위에도 얹어 놓을 때,
눈앞에서 금방 사라질 것들!
꺼내 놓으라면,
관악산부터 내어 놓으리.
다녀온 암자들도 암자의 약수그릇도 내어 놓고,
가을 저녁 어둡기 직전 남 보지 않을 때 땅을 더듬다 말던
가랑비도.
49
늦가을 저녁 아우라지강을 혼자 만나노니
나의 유해 예까지 끌고 와 부릴 만하이.
앞산 한가운덴 잎갈이나무들 위통 벗고 모여
마지막 햇빛 쪼이고 있고,
주위로 침엽수들 침착히 서서
두 강이 약속 없이 만나는 것을 내려다 보고 있다
껄끄러운 두 강 만나
고요한 강 하나 이룬다
빈 배 하나 흔들리며 떠 있다
시간이 고이지 않는다
50
오늘 서가의 지도(地圖)를 모두 버렸다.
바닷가를 방황하다가
우연히 눈부신 눈을 맞으리.
건너편 섬이 은색 익명(匿名)으로 바뀌다가
내리는 눈발 사이로 넌지시 사라지는 것을 보리.
사라진 섬을 두고,
마음에 박혔던 섬도 몇 뽑고
마음에 들던 섬부터 뽑고
섬처럼 박혀 있던 시간들도 모두 뽑아버리고
돌아오리.
오늘 지도를 모두 버렸다.
59
그대는 상자 속을 들여다 보았는가?
낡은 티셔츠, 벙어리장갑 한 짝,
흑백 사진 몇 장,
몽당연필 한 자루,
붉은 연필로 겉장에 X표 친 노우트,
벙어리장갑 또 한 짝,
을 들치고 속을 보면
어느날 들어간 인사동 골목길
연탄 난로 위에 우동이 끓고 있는 조그만 노점 앞에서
키 큰 소녀 하나가 떡볶이를 먹고 있다.
단발머리 위로
담장 위로
벌겋게 녹슬고 있는 철조망 끝으로
타고 오른
끝이 살짝 말려 있는 나팔꽃 한 줄기
그 위론 예쁘달 것도 귀엽달 것도 없는
낮달 하나
구역질
소녀는 계속 먹고 있다.
시간이 새어나가고
아무런 부피도 무게도 자리 뜬
한줌의 느낌.
70
냇물 위로 뻗은 마른 나뭇가지 끝
저녁 햇빛 속에
조그만 물새 하나 앉아 있다
수척한 물새 하나
생각에 잠겼는가
냇물을 굽어보는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가
조으는가
조으는가
꿈도 없이
https://blog.daum.net/ss4818/582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61209/81748657/1
황동규 시인(78)의 ‘연옥의 봄’(사진) 연작은 자연스럽게 ‘풍장(風葬)’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이 40대에 쓴 ‘풍장’ 연작도 ‘연옥의 봄’처럼 죽음에 대한 시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손목에 달아 놓고/아주 춥지는 않게/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전자시계보다 진보한, 휴대전화와 함께하겠다는 변화 외에도 70대의 시인이 쓴 ‘연옥의 봄’은 ‘풍장’보다 명랑하다.
죽음이 이렇게 밝을 수 있을까. 그가 처한 나이는 가까운 벗들을 하나둘 떠나보내는, 소멸을 피부로 느끼는 때다. 실제로 새 시집엔 시인이 직접 부대낀 죽음의 장면들이 눈에 띈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문우(文友) 김치수 평론가의 병상을 찾은 시간을 회고하며 쓴 ‘발’, 여행 중에 아끼던 제자의 부고를 듣고 쓴 ‘그믐밤’ 등이 그렇다. 그런데 그 시편들이 슬프거나 쓸쓸하지 않고 쾌활하다.
5일 서울대 명예교수연구동에서 만난 시인은 “‘풍장’을 쓸 때부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을 많이 한 셈”이라며 “예전보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더라. 죽음에 대해 관대해졌다”고 말했다.
‘연옥의 봄’은 열여섯 번째 시집이다. 그는 3, 4년마다 새 시집을 펴냈다. 시의 활력이 늘 넘쳤을 것 같은 그이지만, 오랫동안 강단에 섰던 시인은 교수로 일하면서 시를 쓰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예술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기에 가르치는 것과 예술 하는 것은 싸울 수밖에 없어서”였다.
그는 “오히려 은퇴하고 쓴 시가 더 좋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고 했다. “전에는 시어(詩語)가 탁탁 나왔는데 이제는 시어를 찾고 고민해서 써야 한다”며 변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닳고 닳은 문지방 너머로 나이 든 삽살이 하나가 다가와/’어떻게 오셨습니까?’/ 목에 줄만 없었다면 머리 쓰다듬고 같이 들어가/주인과 인사 나누고 잠시 툇마루에 걸터앉아/오가는 생각들을 하나씩 둘씩 뭉개고 싶은 곳./모르는 새 너와 나가 사라지고/ 마당과 가을빛만 남는다’(‘북촌’)
https://www.youtube.com/watch?v=_WWs_0bkJd0
[참조]
https://namu.wiki/w/%ED%99%A9%EC%88%9C%EC%9B%90
4. 대표 작품
-
너와 나만의 시간: 1958년
-
나무들 비탈에 서다: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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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주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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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성: 1973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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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후예: 1954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동안 '단편만 잘 쓴다'고 알려진 황순원이 장편도 잘 쓸 수 있음을 보여준 명작이다.
-
학: 1956년 이를 표제작으로 하여 단편집으로 출간되었다. <학>을 비롯하여 <왕모래>, <소나기>, <맹아원에서>, <청산가리>, <참외>, <부끄러움>, <몰이꾼>, <매>, <여인들>, <사나이>, <두메>, <필묵장수>, <과부> 등 14편이 수록되어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9%A9%EC%88%9C%EC%9B%90
https://www.youtube.com/watch?v=X38w9cFA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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