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해도

ㅡ 노향림

섬진강을 지나 영산강 지나서 가자
친구여 西海바다 그 푸른꿈 지나
언제나 그리운 섬
압해도 압해도로 가자 가자
언제나 그리운 압해도로 가자
창밖엔 밤새도록 우리를 부르는 소리
친구여 바다가 몹시도 그리운 날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섬
압해도 압해도로 가자 가자
언제나 그리운 압해도로 가자

(간주)

하이얀 뭉게구름 저멀리 흐르고
외로움 짙어가면 친구여 바다소나물 사잇길로 가자
늘리보다 더 외로운 섬
압해도 압해도로 가자 가자
언제나 그리운 압해도로 가자

 

https://www.youtube.com/watch?v=3oRTVHY9Lcg 

 

압해도 8

ㅡ노향림

압해도 사람들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이마받이을 하고
문득 눈을 들면
사람보다 더 놀란 압해도
귀가 없는 압해도
반 고호의 마을로 가는지
뿔테 안경의 아이들이 부는
휘파람 소리
일렬로 늘어선 풀들이
깨금발로 돌아다니고
집집의 지붕마다 귀가 잘려
사시사철 한쪽 귀로만 풀들이 피는
나지막한 마을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압해도를 듣지 못하네.

 

https://m.cafe.daum.net/s-poem/PSp8/5758

 

가난한 가을 (외 2편)/ 노향림

가난한 가을(외 2편) 노향림가난한 새들은 더 추운 겨울로 가기 위해새끼들에게 먼저 배고픔을 가르친다.제 품속에 품고 날마다 물어다 주던 먹이를 끊고대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킨다.누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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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가을 

ㅡ  노향림

 

가난한 새들은 더 추운 겨울로 가기 위해

새끼들에게 먼저 배고픔을 가르친다.

제 품속에 품고 날마다 물어다 주던 먹이를 끊고

대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킨다.

누렇게 풀들이 마른 고수부지엔 지친

새들이 오종종 모여들고 머뭇대는데

어미 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음울한 울음소리만이

높은 빌딩 유리창에 부딪쳐 아찔하게

떨어지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행여 무리를 빠져나온 무녀리들 방향 없이

빈터에서라도 낙오되어 길 잃을까

드문드문

따듯한 입김 어린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그 지시등 따라 창 밑까지 선회하다가

있는 힘 다해 지상에서 가장 멀리 치솟아 뜬

허공에 무수히 박힌 까만 충치 자국 같은 비행체들

캄캄한 하늘을 날며 멀리로 이사 가는

철새들이 보이는 가을날의 연속이다.

 

 

시인의 본적지

ㅡ  노향림

 

나는 다른 하늘을 꿈꾼다.

전생은 어느 인디언 마을의 원주민

본적은 움막을 틀었던 이억만년 전의

그 나무 화석이 있는 곳

얼음과 눈 덮인 언덕은 나의 요새였다.

뽀얀 어금니만한 나뭇잎이 늦겨울부터 얼굴을 내미는

그 마을은 시인의 마을이라 해도 좋다.

한번도 먼 마을에는 여행 간 적 없이

오로지 야성의 본능대로 도자기에 무늬를 새기듯

그것이 시인 줄 모르고 시를 새겼다.

추위와 혹독한 얼음 바위를 뚫어

내가 만든 요새엔 한땀 한땀 혈흔처럼

시의 무늬 새겨져 있다.

이따금 나는 둘레를 돌며 도자기에 새길

천연 글감 얻으러 나귀 타고 마실 간다.

동면에서 마악 깨어나 튕겨져 오른

오소리의 통통 튀는 울음소리

눈 위의 얼음새꽃

얼음장 속 집을 짓는 벌새 날갯짓 소리

눈꽃 속 가녀린 흰 잎 흔드는 은방울꽃 찾아간다.

이억만년 전의 둥지에서

도자기에 새길 천연 이미지 얻으러 나왔다가

사시사철 흰 어금니만한 잎새들

눈처럼 반짝이는 본적지 언덕에서

잠깐잠깐 나는 꿈꾸곤 한다.

 

푸른 편지

ㅡ  노향림

   작은 창문을 돋보기처럼 매단 늙은 우체국을 지나가면 청마가 생각난다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창유리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청마 고층 빌딩들이 라면 상자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는 머나먼 하늘나라 우체국에서 그는 오늘도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고 있을까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라고 우체국 옆 기찻길로 화물열차가 납작하게 기어간다 푯말도 없는 단선 철길이 인생이라는 경적을 울리며 온몸으로 굴러간다 덜커덩거리며 제 갈 길 가는 바퀴 소리에 너는 가슴 아리다고 했지 명도 낮은 누런 햇살 든 반지하에서 너는 통점 문자 박힌 그리움을 시집처럼 펼쳐놓고 있겠다 미처 부치지 못한 푸른 편지를 들고 별들은 창문에 밤늦도록 찰랑이며 떠 있겠다

 

 

K읍기행(K邑紀行)

ㅡ 노향림

 

오랜만에 만나는 분위기.

하나의 선(線)이 되어 평야(平野)가 드러눕는다.

일대(一帶)는 무우밭이 되어

회색집들을 드문 드문

햇볕 속에 묻어 놓고

몇 트럭씩

논밭으로 실려나가는

묶인 고뇌(苦惱)와

고장난 시간(時間)들

지나다 보면

낯이 선 사투리들이

발길에 툭 툭 채였다.

길가 사람들 속에서

구부정한 말채나무가

혼자 목을 쳐들고.

할 일 없이 혼자 쳐들고 있다.

[시인의 말]

시인이란 바꾸어 말하면 꿈꾸는 사람이다. 그들은 아름답고 바른 삶을 꿈꾸며, 향기가 우러나는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그 꿈꾸기를 뒤집어보면 우리의 삶이 아름답지도 못하고 바르지도 못하다는 어두운 실상이 나타난다.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떨어져 있는 슬픔이며 서로 알지 못하는 낯설음임을 깨우치게 된다.

 

자연(自然)

ㅡ 노향림 

  

전남 해남군

산이면(山二面)에 가면

산과 바다가 맞물려 있습니다.

 

어린 날 숨죽여 묻어 둔

울음 소리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삭지 않고

더욱 짙푸르게 울리는 울음 소리.

 

산과 바다엔 밤이

오고 있었습니다.

 

미처 고백하지 못한 내 죄(罪) 몇 벌

벗어 걸어 둔 생소나무 숲 사이로

관절 풀린 길 하나

저절로 꼬여 있습니다.

 

갈밭 머리엔

어린 날 놓아 버린 하늘이

한 구덩이 빠져 아직도 허우적입니다.

 

날 선 갈대들이 서로 살을 베어

피 흘리는 사이로 아득히

비명 소리가 살아 있습니다.

 

어딜 가나 스며드는 바다

그 푸른 빛만이 내 몸속에

느릿느릿 가지 않는 시간처럼

살아 있습니다.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문학사상사, 1992]

 

http://www.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49 

 

근원적 슬픔·고통 그린 모더니스트 - 해남신문 해남방송

해남 산이면 출신의 시인 노향림(68)은 1970년대 이후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스물아홉 나이에 시인이 돼 4...

www.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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