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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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의 능엄신주 범어독음과 국역

https://www.youtube.com/watch?v=Rc6Z0gLvp-Y https://kydong77.tistory.com/21628 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 국역 전10권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ube393&logNo=220020727513 능엄경 전문 正本首楞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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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心外無佛性(심외무불성), 마음 밖에 불성이 따로 없다

달마대사혈맥론(達磨大師血脈論) 목차 제1장 心外無佛性(심외무불성) 마음밖에 불성이 따로 없다 제2장 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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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혈맥론(達磨大師血脈論)

목차

제1장

心外無佛性(심외무불성)

마음밖에 불성이 따로 없다

제2장

迷心萬行 未免輪回(미심만행 미면윤회)

미혹한 마음으로 만행을 해도 윤회는 면치 못한다

제3장

第三節 明不敬所以(명불경소이)

공경치 말라는 이유를 밝히다

제4장

第四節 道不在山野(도부재산야)

도는 승과 속인을 분별하지 않는다

제5장

第五節 屠漢亦得成道(도한역득성도)

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

제1장 心外無佛性(심외무불성)

마음 밖에 불성이 따로 없다

제2장

迷心萬行 未免輪回(미심만행 미면윤회)

미혹한 마음으로 만행을 해도 윤회는 면치 못한다

5.

問曰:若不見性,念佛誦經布施持戒精進,廣興福利,得成佛否?

“만약 본성을 보지 않더라도, 염불하고, 경을 외우고,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정진(精進)하고, 널리 복되고 이로운 일을 한다면, 성불(成佛)할 수 있습니까?“

答曰:不得。

“성불할 수 없다.“

又問:因何不得?

“어찌하여 성불할 수 없습니까?“

答曰:有少法可得,是有為法,是因果、是受報、是輪迴法

“얻을 수 있는 조그마한 법이라도 있다면,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고,

인과법(因果法)으로서, 과보(果報)를 받는 것이니, 곧 윤회(輪廻)하는 법이다.

不免生死,何時得成佛道。成佛須是見性。

생사(生死)를 벗어나지 못하고서, 어느 때에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겠는가?

성불이란 모름지기 본성을 보는 것이다.

若不見性,因果等語,是外道法。

만약 본성을 보지 않으면, 인과(因果) 등의 말들은 외도(外道)의 법이다.

若是佛不習外道法。

만약 부처라면, 외도법(外道法)을 익히지 않는다.

佛是無業人,無因果,

부처는 업을 짓는 사람이 아니니, 부처에게는 인과(因果)가 없다.

但有少法可得,盡是謗佛,憑何得成。

다만 얻을 수 있는 조그만 법이라도 있기만 하면, 모두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니, 어떻게 성불하겠는가?

但有住著一心一能一解一見,佛都不許。

하나의 마음(一心)에든, 하나의 능력(一能)에든, 하나의 이해(一解)에든, 하나의 견해(一見)에든, 머물기만 하면, 부처는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佛無持犯,

부처에게는 지키거나 범할 것이 없다.

心性本空,亦非垢淨。

마음의 본성은 본래 공(空)이니, 역시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諸法無修無證,無因無果。

모든 법은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고,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佛不持戒,佛不修善,佛不造惡,佛不精進,佛不懈怠,

부처는 계율을 지키지도 않고, 선(善)을 닦지도 않고, 악(惡)을 짓지도 않고, 정진(精進)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다.

佛是無作人。但有住著心,見佛即不許也。

부처는 만드는 일이 없는 사람이니, 마음에 머물러 부처를 본다면, 용납되지 않는다.

佛不是佛,莫作佛解。

부처는 부처가 아니니, 부처라는 견해를 만들지 말라.

若不見此義,一切時中,一切處處,皆是不了本心。

만약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한다면, 어느 때든 어느 곳에서든 결코 본래 마음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若不見性,一切時中擬作無作想,是大罪人,

만약 자성을 보지 못하고서, 언제나 ‘만드는 일이 없다’라는 생각을 만들려 한다면, 이것은 큰 죄인이고,

是癡人,落無記空中;昏昏如醉人,不辨好惡。

어리석은 사람이고, 무분별의 허공 속에 떨어져서 어둡기가 술취한 것과 같은 사람이어서 좋고 나쁨을 판별하지 못한다.

若擬修無作法,先須見性,然後息緣慮。

만약 만드는 일이 없는 법을 닦으려 한다면, 먼저 반드시 자기성품을 본 연후에야 반연하는 생각이 쉬어지는 것이다.

若不見性得成佛道,無有是處。

자성을 보지 못하고도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는 경우는 절대 없다.

有人撥無因果,熾然作惡業,妄言本空,作惡無過;

어떤 사람은 인과(因果)를 무시하고 마구 악업(惡業)을 짓고는, 망녕되이 말하기를,

‘본래 공(空)이니 악한 일을 해도 허물이 없다.’고 한다.

如此之人,墮無間黑暗地獄,永無出期。

이러한 사람은 무간흑암지옥(無間黑暗地獄)에 떨어져 영원토록 벗어날 기약이 없다.

若是智人,不應作如是見解。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안된다.

6.

問曰:既若施為運動,一切時中皆是本心;色身無常之時,云何不見本心?

“이미 움직이고 동작함이 언제나 모두 본래 마음이라면, 육체가 무상(無常)할 때에 어떻게 본래 마음을 보지 못합니까?“

答曰:本心常現前,汝自不見?

“본래 마음이 늘 앞에 드러나 있지만, 그대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問曰:心既見在,何故不見?

“마음이 이미 드러나 있는데, 무슨 까닭에 보지 못합니까?“

師曰:汝曾作夢否?

“그대는 꿈을 꾼 적이 없는가?“

答:曾作夢。

“꿈 꾼 적이 있습니다.“

問曰:汝作夢之時,是汝本身否?

“그대가 꿈을 꿀 때에, 그대의 본래 몸인가?“

答:是本身。 

“본래 몸입니다.“

又問:汝言語施為運動與汝別不別?

“그대의 말과 움직임과 동작은 그대와 따로 있는가, 따로 있지 않는가?“

答曰:不別。 

“따로 있지 않습니다.”

師曰:既若不別,即此身是汝本法身;即此法身是汝本心。

“이미 따로 있지 않다면, 곧 이 몸이 그대의 본래 법신(法身)이고, 이 법신이 그대의 본래 마음이다.

此心從無始曠大劫來,與如今不別;

이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과 다르지 않아서, 생기거나 사라진 적이 없다.

未曾有生死,不生不滅。不增不減,不垢不淨,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고,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好不惡,不來不去;亦無是非、亦無男女相、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옳고 그름도 없고, 남녀의 모습도 없고,

不亦無僧俗老少、無聖無凡;亦無佛、亦無眾生、

승속(僧俗)과 노소(老少)도 없고, 성인(聖人)도 없고, 범부도 없고,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亦無修證、亦無因果、亦無筋力、亦無相貌;

닦아서 깨달음도 없고, 원인도 결과도 없고, 근력(筋力)도 없고, 용모(容貌)도 없다.

猶如虛空,取不得、捨不得,山河石壁不能為礙;

마치 허공과 같아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산이나 강이나 석벽(石壁)이 가로 막을 수도 없다.

出沒往來,自在神通;

나타나고 사라지고 가고 옴에, 자재(自在)하고 신령스러이 통한다.

透五蘊山,渡生死河;一切業拘此法身不得。

오온(五蘊)의 산을 통과하고, 생사(生死)의 강을 건너니, 어떤 업(業)이라도 이 법신(法身)을 구속할 수 없다.

此心微妙難見,此心不同色心,

이 마음은 미묘(微妙)하여 보기가 어려우니, 이 마음은 색심(色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此心是人皆欲得見。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니, 사람들은 모두 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於此光明中運手動足者,如恆河沙,及乎問著,總道不得,猶如木人相似,

이 광명(光明) 속에서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물어 보면 전혀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나무로 만든 사람과 같다.

總是自己受用,因何不識?

모두가 스스로 받아서 사용하는데, 무슨 까닭에 알지 못하는가?

佛言一切眾生,盡是迷人,因此作業,墮生死河,欲出還沒,只為不見性。

부처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은 전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까닭에 업을 지어서

생사(生死)의 강에 떨어져 나오고자 하지만 도리어 잠겨 버리니, 단지 본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眾生若不迷,因何問著其中事,無有一人得會者,自家運手動足因何不識?

중생이 만약 어리석지 않다면, 무슨 까닭으로 물어 보면 그 가운데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으며, 스스로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면서도 무슨 까닭에 알지 못하는가?

故知聖人語不錯,迷人自不會曉。

그러므로 성인의 말은 잘못됨이 없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故知此難明,惟佛一人能會此法;餘人天及眾生等,盡不明了。

그러므로 이것은 밝히기가 어려워서 오직 부처 한 사람만이 이 마음을 잘 알아차릴 뿐,

나머지 사람들과 하늘사람과 중생들은 전혀 밝게 깨닫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若智慧明了,此心號名法性,亦名解脫。生死不拘,

만약 지혜가 이 마음을 밝게 깨달으면, 바야흐로 법성(法性)이라 이름하고, 또 해탈이라 이름 하니, 생사에 구속받지 않기 때문이다.

一切法拘它不得,是名大自在王如來;

모든 법이 그를 구속할 수 없으니, 일컬어 크게 자유로운 으뜸가는 여래[大自在王如來]라 하고,

亦名不思議,亦名聖體,

또 생각과 말로 하지 못한다[不思議, 부사의]고 하고, 또 성스러운 바탕[聖體, 성체]이라고 하고,

亦名長生不死,亦名大仙。

또 영원히 살아서 죽지 않는다[長生不死]고 하고, 또 큰 신선[大仙]이라 한다.

名雖不同,體即是一。聖人種種分別,皆不離自心。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바탕은 곧 하나이니, 성인(聖人)이 여러 가지로 분명한 것이 모두 자기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心量廣大,應用無窮,應眼見色,應耳聞聲,

마음의 크기는 광대하고, 응대하여 작용함은 끝이 없다. 눈에 응해서는 색을 보고, 귀에 응해서는 소리를 듣고,

應鼻嗅香,應舌知味,乃至施為運動,皆是自心。

코에 응해서는 냄새를 맡고, 혀에 응해서는 맛을 알고, 나아가 움직이고 동작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이다.

一切時中但有語言道斷,即是自心。

언제나 말길이 끊어지기만 하면, 곧 자기 마음이다.

故云如來色無盡,智慧亦復然。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래의 색(色)은 다함이 없고, 지혜 역시 그러하다.’라고 하였다.

色無盡是自心,心識善能分別一切,乃至施為運用,皆是智慧。

색에 다함 없음이 곧 자기 마음이고, 마음인 의식이 모든 것을 잘 분별함과 나아가 움직이고 동작함이 모두 지혜이다.

心無形相,智慧亦無盡。

마음은 모습이 없고, 지혜 역시 다함이 없다.

故云如來色無盡,智慧亦復然。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래의 색은 다함이 없고, 지혜 역시 그러하다.’고 한 것이다.

四大色身,即是煩惱,色身即有生滅,

사대색신(四大色身)이 곧 번뇌이니, 색신에는 생멸(生滅)이 있기 때문이다.

法身常住無所住,

법신은 언제나 머물러 있으니, 다시 머물 것은 없다.

如來法身常不變異故。

래의 법신은 한결같아서 다르게 변하지 않는다.

經云:眾生應知,佛性本自有之。

그러므로 경(經)에서 말하기를, ‘중생은 불성이 본래 스스로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라고 하였다.

7.

迦葉只是悟得本性,

가섭(迦葉)은 다만 본성(本性)을 깨달았을 뿐이다.

本性即是心,心即是性,性即此同諸佛心。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본성이다. 바로 이것이 모든 부처의 마음과 같다.

前佛後佛只傳此心,除此心外,無佛可得。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이 마음을 전하였을 뿐이다. 이 마음을 제외하고는 얻을 부처가 없다.

顛倒眾生不知自心是佛,向外馳求,終日忙忙;

뒤집힌 중생은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치달려 찾아서 하루 종일 바쁘다.

念佛禮佛,佛在何處?

염불(念佛)하고 예불(禮佛)하지만, 부처가 어디에 있는가?

不應作如是等見,但知自心,心外更無別佛。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안된다. 단지 자기 마음만 알면, 마음 밖에 다시 다른 부처가 없다.

經云:凡所有相,皆是虛妄。又云:所在之處,即為有佛。

경(經)에서 말하기를 ‘무릇 모습 있는 것은 모두 허망(虛妄)하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있는 그곳에 곧 부처가 있다.’ 고 하였다.

自心是佛,不應將佛禮佛;

但是有佛及菩薩相貌,忽爾見前,切不用禮敬。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이니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해서는 안된다.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문득 앞에 나타나더라도, 결코 절하고 공경할 필요가 없다.

我心空寂,本無如是相貌,

若取相即是魔,盡落邪道。

나의 마음은 텅 비고 고요하니, 본래 그런 모습은 없다.

만약 모습을 취한다면 곧 마구니에게 포섭되니, 모두 사도(邪道)에 떨어진다.

若是幻從心起,即不用禮。

만약 (불상과 보살상이라는) 환상(幻想)이 마음에서 생긴다면, 절할 필요가 없다.

禮者不知,知者不禮,禮被魔攝。

절하는 자는 (진실을) 알지 못하고, (진실을) 아는 자는 절하지 않는다.

절 하는 것은 마구니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恐學人不知,故作是辨。

학인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할까봐 염려되어, 그 때문에 이렇게 판별하는 것이다.

諸佛如來本性體上,都無如是相貌,切須在意。

모든 부처와 여래와 본성(本性)의 바탕 위에는 전혀 이러한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但有異境界切不用採括,亦莫生怕怖,不要疑惑,

다른 경계가 있더라도, 결코 붙잡아 취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我心本來清淨,何處有如許相貌。

나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니, 어느 곳에 이와 같은 모습이 있겠는가?

乃至天龍夜叉鬼神帝釋梵王等相,亦不用心生敬重,亦莫怕懼;

나아가 천룡(天龍), 야차(夜叉), 귀신(鬼神), 제석천(帝釋天), 범천(梵天) 등의 모습에 대해서도, 또한 마음을 써서 공경하거나 귀중하게 여기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我心本來空寂,一切相貌皆是妄見,但莫取相。

나의 마음은 본래 텅 비고 고요하니, 모든 모습은 전부 허망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결코 모습을 붙잡지는 말라.

若起佛見法見,及佛菩薩等相貌,而生敬重,自墮眾生位中。

만약 부처라는 견해, 법이라는 견해를 내고, 부처라는 모습, 보살이라는 모습을 내어서,

공경하고 귀중하게 여긴다면, 스스로 중생의 처지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若欲直會,但莫取一切相即得,更無別語。

만약 진실로 알아차리고자 한다면, 다만 어떤 모습도 취하지 않으면 될 뿐, 달리 할 말은 없다.

故經云:凡所有相,皆是虛妄。都無定實,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무릇 있는 모습들은 모두 허망하다.'고 하였으니, 전혀 정해진 진실은 없는 것이다.

幻無定相。是無常法,

환상(幻相)에는 정해진 모습이 없으니, 이것이 곧 무상(無常)한 법이다.

但不取相,合它聖意。

단지 모습을 취하지 않기만 하면, 저 성인의 뜻과 합할 것이다.

故經云:離一切相,即名諸佛。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모습을 떠난 것을 모든 부처라고 일컫는다.’라 한 것이다.

1.

三界混起,同歸一心,前佛後佛,以心傳心,不立文字。

삼계(三界)가 뒤섞여 일어나지만, 함께 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마음을 가지고, 마음에 전하고, 문자(文字)를 세우지 않는다.

問曰:若不立文字,以何為心?

“만약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삼습니까?“

答曰:汝問吾即是汝心,吾答汝即是吾心。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고,

내가 그대에게 답하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다.

吾若無心因何解答汝?汝若無心因何解問吾?

나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대에게 답할 수 있겠으며,

그대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나에게 물을 수 있겠는가?

問吾即是汝心,從無始曠大劫以來,

乃至施為運動一切時中,一切處所,

皆是汝本心,皆是汝本佛。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니, 시작 없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모두가 그대의 본래 마음이고, 모두가 그대의 본래 부처이다.

即心是佛,亦復如是。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말 역시 그와 같다.

除此心外,終無別佛可得;

離此心外覓菩提涅槃無有是處。

이 마음을 제외하고 얻을 수 있는 다른 부처는 결코 없으며,

이 마음을 떠나 밖에서 깨달음과 열반을 찾을 수는 절대로 없다.

自性真實非因非果。法即是心義,

스스로의 본성(本性)은 진실하여,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다.

법(法)은 곧 마음이라는 뜻이다.

自心是涅槃。若言心外有佛及菩提可得,無有是處。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깨달음이며,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열반이니,

마음 밖에서 부처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佛及菩提皆在何處?

부처와 깨달음이 모두 어디에 있는가?

譬如有人以手提虛空得否?

비유하자면 사람이 손으로 허공을 붙잡으려는 것과 같으니, 붙잡을 수가 있겠는가?

虛空但有名,亦無相貌;取不得、捨不得,

허공은 다만 이름일 뿐이고, 모양은 없어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是捉空不得。除此心外,見佛終不得也。

허공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이 마음을 없애고 밖에서 부처를 찾을 수는 결코 없다.

佛是自心作得,因何離此心外覓佛?

부처란 스스로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어떻게 이 마음을 떠나 따로 부처를 찾을 것인가?

前佛後佛只言其心,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그 마음을 말할 뿐이다.

心即是佛,佛即是心;

心外無佛,佛外無心。

若言心外有佛,佛在何處?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이다.

마음 밖에 부처 없고, 부처 밖에 마음 없다.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한다면,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心外既無佛,何起佛見?遞相誑惑,

마음 밖에 이미 부처가 없는데, 왜 부처라는 견해를 일으켜서 서로 속이고 속는가?

不能了本心,被它無情物攝,無自由。

본래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저 무정물(無情物, 불상)에게 사로 잡혀서 자유로울 수 없다.

若也不信,自誑無益。

만약 믿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속일 뿐 이익이 없다.

佛無過患,眾生顛倒,不覺不知自心是佛。

부처에게는 허물이나 근심이 없는데, 중생이 거꾸로 되어 있다.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해도,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

2.

若知自心是佛,不應心外覓佛。

佛不度佛,將心覓佛不識佛。

만약 자기의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안다면,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않을 것이니,

부처가 부처를 헤아리지는 않는다.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는다면, 부처를 알지 못한다.

但是外覓佛者,盡是不識自心是佛。

밖에서 부처를 찾기만 하면, 모두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亦不得將佛禮佛,不得將心念佛。

또한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할 수는 없으며,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생각할 수는 없다.

佛不誦經,佛不持戒,佛不犯戒,

부처는 경(經)을 외우지도 않고, 부처는 계(戒)를 지키지도 않고, 부처는 계를 범하지도 않는다.

佛無持犯,亦不造善惡。

부처는 지키고, 범함이 없으며, 선(善)도 악(惡)도 짓지 않는다.

若欲覓佛,須是見性,見性即是佛。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본성을 보아야 하니, 본성이 곧 부처이다.

若不見性,念佛誦經持齋持戒亦無益處。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염불(念佛)하고 경을 외우고, 재(齋)를 지내고, 계(戒)를 지킨다고 하여도 이익될 것이 없다.

念佛得因果,誦經得聰明,持戒得生天,

布施得福報,覓佛終不得也。

염불하면 인과(因果)를 얻고, 경을 외우면 총명(聰明)을 얻고,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날 수 있고,

보시(布施)하면 복된 과보(果報)를 얻지만, 끝내 부처를 찾지는 못한다.

3.

若自己不明了,須參善知識,了卻生死根本。若不見性,即不名善知識。

만약 스스로 밝게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생사(生死)의 근본을 밝혀내어야 한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 한다면, 선지식이라고 할 수가 없다.

若不如此縱說得十二部經,亦不免生死輪迴,

三界受苦,無出期時。

만약 이와 같지 못하면, 비록 12부경을 설명할 수 있더라도, 역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면하지 못할 것이고,

삼계(三界)에서 받는 고통을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昔有善星比丘,誦得十二部經,猶自不免輪迴,緣為不見性。

善星既如此,今時人講得三五本經論以為佛法者,愚人也。

옛날 선성(善星) 비구는 12부경을 외울 줄 알았지만, 도리어 스스로는 윤회를 면하지 못했으니, 본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성(善星)이 이미 그와 같았는데,

오늘날 사람들이 서너권의 경론(經論)을 강의할 수 있는 것으로 불법(佛法)이라고 여긴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若不識得自心,誦得閑文書,都無用處。

만약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글들만 외운다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4.

若要覓佛,直須見性。

性即是佛,佛即是自在人,無事無作人。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바로 본성을 보아야만 한다.

본성이 곧 부처이고, 부처는 곧 자재(自在)한 사람이며, 할 일이 없는 사람이고, 조작함이 없는 사람이다.

若不見性,終日茫茫,向外馳求,覓佛元來不得。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종일 아득하고 어두워서 밖으로 쫓아 다니며 찾겠지만,

부처를 찾아 보아야 원래 부처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雖無一物可得,若求會亦須參善知識,切須苦求,令心會解。

비록 얻을 수 있는 한 물건도 없지만, 아직 깨닫지를 못했다면,

역시 선지식 (善知識, 일체 이치를 요달한 불조<佛祖>의 혜명을 상속받은 분)을 찾아가

반드시 끈기 있게 공부해서 마음이 알아차리도록 해야 한다.

生死事大,不得空過,

살고 죽는 일이 크니, 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아니된다.

自誑無益。

스스로를 속여 보아야 이로울 것이 없다.

縱有珍饈如山,眷屬如恆河沙,

開眼即見,合眼還見麼?

故知有為之法,如夢幻等。

비록 값진 보배가 산처럼 쌓여 있고, 일가 권속이 강의 모래알처럼 많더라도,

눈을 뜨면 보이지만, 눈을 감아도 보이는가 ?

그러므로 유위(有爲)의 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若不急尋師,空過一生。

만약 급히 스승을 찾지 않는다면, 헛되이 일생을 보낼 것이다.

然即佛性自有,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그러므로 불성(佛性)은 자신에게 있지만, 스승을 말미암지 않는다면, 끝내 밝혀낼 수가 없다. 스승을 말미암지 않고 깨닫는 자는 매우 희귀하다.

若自己以緣會合,得聖人意,即不用參善知識。

此即是生而知之,勝學也。

만약 자기 스스로 인연을 깨달아 성인(聖人)의 뜻을 얻는다면,

선지식을 찾을 필요가 없으니,

이런 사람은 곧 태어날 때부터 자질이 남다른 뛰어난 공부꾼이다.

若未悟解,須勤苦參學,因教方得悟。

만약 아직 깨달아 알지 못했다면, 반드시 부지런히 끈기 있게 선지식을 찾아 배워야 하니,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若未悟了,不學亦得。不同迷人,

만약 스스로 밝게 깨닫는다면, 배우지 않아도 될 것이니, 어리석은 사람과는 같지가 않다.

不能分別皂白,妄言宣佛敕,謗佛忌法。

흑백을 분별하지도 못하면서 망령된 말로써 불교를알린다면, 부처를 비방하고, 법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如斯等類,說法如雨,盡是魔說,即非佛說。

이와 같은 무리는 법을 말하는 것이 내리는 빗물처럼 유창하더라도 모두가 마구니의 말일 뿐, 부처의 말은 아니다.

師是魔王,弟子是魔民,

迷人任它指揮,不覺墮生死海。

스승은 마구니의 왕이고, 제자는 마구니의 백성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저 백성을 떠맡아 이끌어 모르는 사이에 생사(生死)의 바다에 떨어진다.

但是不見性人,妄稱是佛。

此等眾生,是大罪人,

誑它一切眾生,令入魔界。

그저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이면서 망령되이 부처라고 자칭한다면,

이러한 중생은 죄가 큰 사람이니,

저 일체 중생을 속여서 마구니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若不見性,說得十二部經教,

盡是魔說。魔家眷屬,不是佛家弟子。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서도 12부 경전의 가르침을 말한다면,

이것은 모두 마구니의 말이며, 마구니 집안의 권속이지, 불법의 제자는 아니다.

既不辨皂白,憑何免生死。

이미 흑백을 구분히 못하는데, 무엇에 의지하여 생사를 면할 것인가?

若見性即是佛,不見性即是眾生。

만약 본성을 본다면 곧 부처이고, 본성을 보지 못하면 곧 중생이다.

若離眾生性,別有佛性可得者,佛今在何處?

만약 중생의 본성을 떠나서 따로 얻을 불성(佛性)이 있다면, 부처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即眾生性,即是佛性也。性外無佛,佛即是性;

중생의 본성이 곧 불성이다. 본성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가 곧 본성이다.

除此性外,無佛可得,佛外無性可得。

본성을 제외하고는 얻을 부처가 없고, 부처를 제외하고는 얻을 본성이 없다.

達摩大師血脈論序

右朝奉郎通判建昌軍事賜緋魚袋任哲作

 

原人之心,皆具佛性。泛觀諸家禪說一切經文,原其至當之理,未有不言自己性中本來真佛。達磨西來,直指人心,見性成佛;蓋謂自己真佛,不出一性之中。人人不自委信,所以向外馳求。將謂自性真佛外更有別佛,故諸佛諸祖師說法要人省悟自己本來真佛,不假外求。又緣種種法語泛濫不一,轉使學人惑亂本性,無悟入處。惟有達磨血脈論,並黃檗傳心法要二說,最為至論。可以即證自己佛性,使人易曉。比之求師訪道,鑽尋故紙,坐禪行腳,狂費工夫,相去萬倍,此非小補。紹興癸酉見獨老人任哲序。

 

達摩血脈論

渝州華嚴寺沙門釋宗鏡 校刻

 

三界混起,同歸一心,前佛後佛,以心傳心,不立文字。問曰:若不立文字,以何為心?答曰:汝問吾即是汝心,吾答汝即是吾心。吾若無心因何解答汝?汝若無心因何解問吾?問吾即是汝心,從無始曠大劫以來,乃至施為運動一切時中,一切處所,皆是汝本心,皆是汝本佛。即心是佛,亦復如是。除此心外,終無別佛可得;離此心外覓菩提涅槃無有是處。自性真實非因非果。法即是心義,自心是涅槃。若言心外有佛及菩提可得,無有是處。佛及菩提皆在何處?譬如有人以手提虛空得否?虛空但有名,亦無相貌;取不得、捨不得,是捉空不得。除此心外,見佛終不得也。佛是自心作得,因何離此心外覓佛?前佛後佛只言其心,心即是佛,佛即是心;心外無佛,佛外無心。若言心外有佛,佛在何處?心外既無佛,何起佛見?遞相誑惑,不能了本心,被它無情物攝,無自由。若也不信,自誑無益。佛無過患,眾生顛倒,不覺不知自心是佛。若知自心是佛,不應心外覓佛。佛不度佛,將心覓佛不識佛。但是外覓佛者,盡是不識自心是佛。亦不得將佛禮佛,不得將心念佛。佛不誦經,佛不持戒,佛不犯戒,佛無持犯,亦不造善惡。若欲覓佛,須是見性,見性即是佛。若不見性,念佛誦經持齋持戒亦無益處。念佛得因果,誦經得聰明,持戒得生天,布施得福報,覓佛終不得也。若自己不明了,須參善知識,了卻生死根本。若不見性,即不名善知識。若不如此縱說得十二部經,亦不免生死輪迴,三界受苦,無出期時。昔有善星比丘,誦得十二部經,猶自不免輪迴,緣為不見性。善星既如此,今時人講得三五本經論以為佛法者,愚人也。若不識得自心,誦得閑文書,都無用處。若要覓佛,直須見性。性即是佛,佛即是自在人,無事無作人。若不見性,終日茫茫,向外馳求,覓佛元來不得。雖無一物可得,若求會亦須參善知識,切須苦求,令心會解。生死事大,不得空過,自誑無益。縱有珍饈如山,眷屬如恆河沙,開眼即見,合眼還見麼?故知有為之法,如夢幻等。若不急尋師,空過一生。然即佛性自有,若不因師,終不明了。不因師悟者,萬中希有。若自己以緣會合,得聖人意,即不用參善知識。此即是生而知之,勝學也。若未悟解,須勤苦參學,因教方得悟。若未悟了,不學亦得。不同迷人,不能分別皂白,妄言宣佛敕,謗佛忌法。如斯等類,說法如雨,盡是魔說,即非佛說。師是魔王,弟子是魔民,迷人任它指揮,不覺墮生死海。但是不見性人,妄稱是佛。此等眾生,是大罪人,誑它一切眾生,令入魔界。若不見性,說得十二部經教,盡是魔說。魔家眷屬,不是佛家弟子。既不辨皂白,憑何免生死。若見性即是佛,不見性即是眾生。若離眾生性,別有佛性可得者,佛今在何處?即眾生性,即是佛性也。性外無佛,佛即是性;除此性外,無佛可得,佛外無性可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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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uddhism.lib.ntu.edu.tw/BDLM/sutra/chi_pdf/sutra10/T19n0945.pdf

 

No. 945

新印大佛頂首楞嚴經序

前雄武軍節度推官許洞撰 楞嚴經者,括諸佛萬行之樞紐也。通幽洞微,非二乘所賾;開物成 務,乃十地攸宗。其文曲而達,其旨隱而暢,入於至妙之域,出於 無生之表,鏗鏘磅礴群彙率化,窮玄絕聖其在茲乎。是知大和無私 雖幽必煦,至神無迹雖微必貫,玄功無宰雖遐必達,率由心絕有為 而大千同照,道躋無作而至感必通。 如來謂斯經可以鼓吹乎群心、開決乎佛性,爰集大眾會于室羅筏 城,天龍鬼神共覃斯教。嗚呼!三界以五欲而成,故摩登伽以宣淫 為發題之始也;眾生以愛纏而起,故阿難以破惑為成道之基也。是 以論有心則以無心為攝,悲有生則以無生為誘,談有相則破一切色 境為主,示有作則脫一切煩惱為樂,此蓋覺虛妄而歸真實也。至若 舉三十六地獄之因果、十鬼十類之緣業,此蓋昧真實而起虛妄也。 不明實相無以煥菩提之心,不破妄塵無以悟眾生之性,是法微妙, 知之者亦已鮮矣;能深究於此復廣其利於天下,余見其。 大佛頂如來萬行首楞嚴經序 趙宋泉南沙門釋祖派述 至心歸命禮南謨無見頂相首楞嚴王。圓如來之密因,具菩薩之萬 行,真修行路,妙證悟門,大乘義以了明,一切事而究竟。爰自祇 園休夏聖王延齋,紫金光聚耀十方,迦陵仙音流法界,恒沙薩埵咸 來咨決心疑,闔國王臣畢集願聞法要。教由緣起,阿難被溺於婬 坊,道假人弘,師利承宣於祕呪。由是七處徵心,全是妄性淨元 明;八還顯見,本來真覺圓常住。標迷悟之根本,令諸闡提而墮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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戾車;示同別之狂勞,俾一顛迦而摧惡叉聚。富樓那執相難性,四 緣本紀於異同;波斯匿惑斷為常,一念元無於生滅。妙明覺體,非 因非緣非自然;精真見元,不合不和不離即。以至六根虛妄無非菩 提妙心,七大遍周盡是如來藏性。三緣永斷,不迷鏡裏之頭;二義 斯明,頓悟衣中之寶;金鐘擊處,聲滅而聞自不消。華㲲綰時,六 忘而一不可得。譬夫天王賜屋,二十五聖而各陳悟入之門;遠客遊 方,十河沙眾而盡識歸還之路。勅文殊之揀選,誰當其根;指觀音 之圓通,實從中入。而況三無漏學,真為修習之要機,四淨律儀, 實號秉持之明誨。欲誦祕密之章句,須嚴清淨之壇場,無邊積業悉 氷消,一切所求皆果遂。復乃開三門之漸次,是先佛之規模;立五 品之名題,作將來之眼目。良由兩種之顛倒,遂成十二之類生,歷 七趣之輪迴,織五重之渾濁。於是迴千光相攬七寶床,深憐恣客迷 主人,痛念認賊為己子。洗心非正,五十重之魔境現前;覺際入 交,四十四之聖心超越。而後慶喜欽承於妙誨,能仁宣發於真慈, 窮五陰之妄源,勝十方之獻寶。貧人七錢而布施,尚獲輪王;行者 一念以流通,定登佛果。真乘奧典,祕字靈文,《大佛頂如來密因 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甚深法藏。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第一(一名中印度那蘭 陀大道場經,於灌頂部錄出別行) 大唐神龍元年龍集乙巳五月己卯朔二十三日辛丑中天竺沙門般剌蜜 帝於廣州制止道場譯出 菩薩戒弟子前正諫大夫同中書門下平章事清河房融筆授 烏長國沙門彌伽釋迦譯語 如是我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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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時,佛在室羅筏城祇桓精舍,與大比丘眾千二百五十人俱,皆是 無漏大阿羅漢。佛子住持善超諸有,能於國土成就威儀,從佛轉輪 妙堪遺囑,嚴淨毘尼弘範三界,應身無量度脫眾生,拔濟未來越諸 塵累。其名曰:大智舍利弗、摩訶目乾連、摩訶拘絺羅、富樓那彌 多羅尼子、須菩提、優波尼沙陀等而為上首。復有無量辟支無學并 其初心同來佛所,屬諸比丘休夏自恣。十方菩薩諮決心疑,欽奉慈 嚴將求密義。即時如來敷座宴安,為諸會中宣示深奧,法筵清眾得 未曾有,迦陵仙音遍十方界,恒沙菩薩來聚道場,文殊師利而為上 首。 時,波斯匿王為其父王諱日營齋,請佛宮掖自迎如來,廣設珍羞無 上妙味,兼復親延諸大菩薩;城中復有長者居士,同時飯僧佇佛來 應。佛勅文殊分領菩薩及阿羅漢應諸齋主;唯有阿難先受別請,遠 遊未還不遑僧次,既無上座及阿闍黎,途中獨歸其日無供。即時阿 難執持應器,於所遊城次第循乞,心中初求最後檀越以為齋主,無 問淨穢、剎利尊姓及旃陀羅,方行等慈,不擇微賤,發意圓成一切 眾生無量功德。阿難已知如來世尊訶須菩提及大迦葉,為阿羅漢心 不均平。欽仰如來開闡無遮,度諸疑謗。經彼城隍,徐步郭門,嚴 整威儀,肅恭齋法。 爾時,阿難因乞食次經歷婬室,遭大幻術摩登伽女以娑毘迦羅先梵 天呪攝入婬席,婬躬撫摩將毀戒體。如來知彼婬術所加,齋畢旋 歸;王及大臣長者居士,俱來隨佛願聞法要。于時,世尊頂放百寶 無畏光明,光中出生千葉寶蓮,有佛化身結跏趺坐,宣說神呪,勅 文殊師利將呪往護,惡呪銷滅,提㢡阿難及摩登伽歸來佛所。阿難 見佛頂禮悲泣,恨無始來一向多聞未全道力,殷勤啟請十方如來得 成菩提妙奢摩他、三摩禪那最初方便。於時,復有恒沙菩薩及諸十 方大阿羅漢、辟支佛等,俱願樂聞,退坐默然承受聖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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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告阿難:「汝我同氣情均天倫,當初發心,於我法中見何勝相, 頓捨世間深重恩愛?」 阿難白佛:「我見如來三十二相勝妙殊絕,形體映徹猶如瑠璃。常 自思惟:『此相非是欲愛所生。何以故?欲氣麁濁,腥臊交遘膿血 雜亂,不能發生勝淨妙明紫金光聚。』是以渴仰從佛剃落。」 佛言:「善哉,阿難!汝等當知,一切眾生從無始來生死相續,皆 由不知常住真心性淨明體,用諸妄想,此想不真故有輪轉。汝今欲 研無上菩提真發明性,應當直心詶我所問。十方如來同一道故,出 離生死皆以直心,心言直故,如是乃至終始地位,中間永無諸委曲 相。阿難!我今問汝,當汝發心緣於如來三十二相,將何所見誰為 愛樂?」 阿難白佛言:「世尊!如是愛樂用我心目。由目觀見如來勝相心生 愛樂,故我發心願捨生死。」 佛告阿難:「如汝所說,真所愛樂因于心目,若不識知心目所在, 則不能得降伏塵勞。譬如國王為賊所侵,發兵討除,是兵要當知賊 所在。使汝流轉心目為咎。吾今問汝,唯心與目今何所在?」 阿難白佛言:「世尊!一切世間十種異生,同將識心居在身內;縱 觀如來青蓮花眼亦在佛面,我今觀此浮根四塵秖在我面,如是識心 實居身內。」 佛告阿難:「汝今現坐如來講堂,觀祇陀林今何所在?」 「世尊!此大重閣清淨講堂在給孤園,今祇陀林實在堂外。」 「阿難!汝今堂中先何所見?」 「世尊!我在堂中,先見如來,次觀大眾,如是外望方矚林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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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汝矚林園因何有見?」 「世尊!此大講堂戶牖開豁,故我在堂得遠瞻見。」 爾時,世尊在大眾中,舒金色臂摩阿難頂,告示阿難及諸大眾: 「有三摩提名大佛頂首楞嚴王,具足萬行,十方如來一門超出妙莊 嚴路。汝今諦聽!」阿難頂禮,伏受慈旨。 佛告阿難:「如汝所言身在講堂,戶牖開豁遠矚林園,亦有眾生在 此堂中,不見如來見堂外者。」 阿難答言:「世尊!在堂不見如來能見林泉,無有是處。」 「阿難!汝亦如是!汝之心靈一切明了。若汝現前所明了心實在身 內,爾時先合了知內身;頗有眾生先見身中後觀外物,縱不能見 心、肝、脾、胃,爪生、髮長、筋轉、脈搖,誠合明了,如何不 知?必不內知,云何知外?是故應知汝言:『覺了能知之心住在身 內。』無有是處。」 阿難稽首而白佛言:「我聞如來如是法音,悟知我心實居身外。所 以者何?譬如燈光然於室中,是燈必能先照室內,從其室門後及庭 際,一切眾生不見身中獨見身外,亦如燈光居在室外不能照室。是 義必明將無所惑,同佛了義得無妄耶?」 佛告阿難:「是諸比丘適來從我室羅筏城,循乞摶食歸祇陀林,我 已宿齋,汝觀比丘一人食時諸人飽不?」 阿難答言:「不也。世尊!何以故?是諸比丘雖阿羅漢,軀命不 同,云何一人能令眾飽?」 佛告阿難:「若汝覺了知見之心實在身外,身心相外自不相干,則 心所知身不能覺,覺在身際心不能知。我今示汝兜羅綿手,汝眼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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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心分別不?」 阿難答言:「如是,世尊!」 佛告阿難:「若相知者,云何在外?是故應知汝言:『覺了能知之 心住在身外。』無有是處。」 阿難白佛言:「世尊!如佛所言,不見內故不居身內;身心相知不 相離故,不在身外。我今思惟,知在一處。」 佛言:「處今何在?」 阿難言:「此了知心,既不知內而能見外,如我思忖潛伏根裏,猶 如有人取瑠璃椀合其兩眼,雖有物合而不留礙,彼根隨見隨即分 別,然我覺了能知之心,不見內者為在根故,分明矚外無障礙者潛 根內故。」 佛告阿難:「如汝所言,潛根內者猶如瑠璃。彼人當以瑠璃籠眼, 當見山河見瑠璃不?」 「如是,世尊!是人當以瑠璃籠眼,實見瑠璃。」 佛告阿難:「汝心若同瑠璃合者,當見山河何不見眼?若見眼者, 眼即同境不得成隨;若不能見,云何說言此了知心,潛在根內如瑠 璃合?是故應知汝言:『覺了能知之心潛伏根裏如瑠璃合。』無有 是處。」 阿難白佛言:「世尊!我今又作如是思惟:『是眾生身,府藏在中 竅穴居外,有藏則暗有竅則明。』今我對佛,開眼見明名為見外, 閉眼見暗名為見內,是義云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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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告阿難:「汝當閉眼見暗之時,此暗境界為與眼對?為不對眼? 若與眼對,暗在眼前云何成內?若成內者,居暗室中無日月燈,此 室暗中皆汝焦府?若不對者,云何成見?若離外見內對所成,合眼 見暗名為身中,開眼見明何不見面?若不見面,內對不成。見面若 成,此了知心及與眼根乃在虛空,何成在內?若在虛空,自非汝 體。即應如來今見汝面亦是汝身,汝眼已知身合非覺,必汝執言身 眼兩覺應有二知,即汝一身應成兩佛。是故應知汝言:『見暗名見 內者。』無有是處。」 阿難言:「我常聞佛開示四眾:『由心生故,種種法生;由法生 故,種種心生。』我今思惟,即思惟體實我心性,隨所合處心則隨 有,亦非內、外、中間三處。」 佛告阿難:「汝今說言:『由法生故種種心生,隨所合處心隨有』 者,是心無體則無所合。若無有體而能合者,則十九界因七塵合。 是義不然!若有體者,如汝以手自挃其體,汝所知心為復內出?為 從外入?若復內出還見身中;若從外來先合見面。」 阿難言:「見是其眼,心知非眼,為見非義。」 佛言:「若眼能見,汝在室中門能見不?則諸已死尚有眼存應皆見 物。若見物者,云何名死?阿難!又汝覺了能知之心若必有體,為 復一體?為有多體?今在汝身,為復遍體?為不遍體?若一體者, 則汝以手挃一肢時,四肢應覺,若咸覺者,挃應無在。若挃有所, 則汝一體自不能成。若多體者,則成多人。何體為汝?若遍體者, 同前所挃。若不遍者,當汝觸頭,亦觸其足,頭有所覺,足應無 知。今汝不然,是故應知,隨所合處心則隨有,無有是處。」 阿難白佛言:「世尊!我亦聞佛與文殊等諸法王子談實相時,世尊 亦言:『心不在內亦不在外。』如我思惟,內無所見外不相知,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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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知故在內不成;身心相知在外非義。今相知故,復內無見,當在 中間。」 佛言:「汝言中間,中必不迷,非無所在。今汝推中,中何為在? 為復在處?為當在身?若在身者,在邊非中,在中同內。若在處 者,為有所表?為無所表?無表同無,表則無定。何以故?如人以 表表為中時,東看則西,南觀成北。表體既混,心應雜亂。」 阿難言:「我所說中,非此二種。如世尊言:『眼色為緣,生於眼 識。』眼有分別,色塵無知,識生其中,則為心在。」 佛言:「汝心若在根、塵之中,此之心體為復兼二?為不兼二?若 兼二者,物體雜亂,物非體知,成敵兩立云何為中?兼二不成,非 知不知即無體性,中何為相?是故應知,當在中間,無有是處。」 阿難白佛言:「世尊!我昔見佛與大目連、須菩提、富樓那、舍利 弗四大弟子共轉法輪,常言:『覺知分別心性,既不在內,亦不在 外,不在中間,俱無所在。一切無著名之為心。』則我無著名為心 不?」 佛告阿難:「汝言覺知分別心性俱無在者,世間虛空水陸飛行,諸 所物象名為一切。汝不著者,為在為無?無則同於龜毛兔角,云何 不著?有不著者不可名無,無相則無,非無則相,相有則在,云何 無著?是故應知,一切無著名覺知心,無有是處。」 爾時,阿難在大眾中即從座起,偏袒右肩右膝著地,合掌恭敬而白 佛言:「我是如來最小之弟,蒙佛慈愛,雖今出家猶恃憍憐,所以 多聞未得無漏,不能折伏娑毘羅呪,為彼所轉溺於婬舍,當由不知 真際所指。唯願世尊大慈哀愍,開示我等奢摩他路,令諸闡提隳彌 戾車。」作是語已,五體投地。及諸大眾傾渴翹佇,欽聞示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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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世尊從其面門放種種光,其光晃耀如百千日,普佛世界六種 震動,如是十方微塵國土一時開現;佛之威神令諸世界合成一界, 其世界中所有一切諸大菩薩,皆住本國合掌承聽。 佛告阿難:「一切眾生從無始來種種顛倒,業種自然如惡叉聚,諸 修行人不能得成無上菩提,乃至別成聲聞、緣覺,及成外道、諸天 魔王及魔眷屬,皆由不知二種根本,錯亂修習,猶如煮沙欲成嘉 饌,縱經塵劫終不能得。云何二種?阿難!一者無始生死根本,則 汝今者與諸眾生,用攀緣心為自性者;二者無始菩提涅槃元清淨 體,則汝今者識精元明,能生諸緣緣所遺者。由諸眾生遺此本明, 雖終日行而不自覺,枉入諸趣。 「阿難!汝今欲知奢摩他路願出生死,今復問汝。」 即時,如來舉金色臂屈五輪指,語阿難言:「汝今見不?」 阿難言:「見。」 佛言:「汝何所見?」 阿難言:「我見如來舉臂屈指,為光明拳,曜我心目。」 佛言:「汝將誰見?」 阿難言:「我與大眾同將眼見。」 佛告阿難:「汝今答我。如來屈指為光明拳,耀汝心目,汝目可 見。以何為心,當我拳耀?」 阿難言:「如來現今徵心所在,而我以心推窮尋逐,即能推者,我 將為心。」 佛言:「咄!阿難!此非汝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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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矍然避座合掌,起立白佛:「此非我心,當名何等?」 佛告阿難:「此是前塵虛妄相想惑汝真性。由汝無始至于今生認賊 為子,失汝元常故受輪轉。」 阿難白佛言:「世尊!我佛寵弟,心愛佛故令我出家,我心何獨供 養如來,乃至遍歷恒沙國土,承事諸佛及善知識,發大勇猛,行諸 一切難行法事皆用此心;縱令謗法永退善根亦因此心。若此發明不 是心者,我乃無心同諸土木,離此覺知更無所有。云何如來說此非 心?我實驚怖,兼此大眾無不疑惑,唯垂大悲開示未悟!」 爾時,世尊開示阿難及諸大眾,欲令心入無生法忍,於師子座摩阿 難頂而告之言:「如來常說諸法所生唯心所現,一切因果世界微塵 因心成體。阿難!若諸世界一切所有,其中乃至草葉縷結,詰其根 元咸有體性,縱令虛空亦有名貌,何況清淨妙淨明心性一切心而自 無體?若汝執悋分別覺觀,所了知性必為心者,此心即應離諸一切 色、香、味、觸,諸塵事業別有全性,如汝今者承聽我法,此則因 聲而有分別,縱滅一切見聞覺知,內守幽閑猶為法塵分別影事,我 非勅汝執為非心,但汝於心微細揣摩,若離前塵有分別性即真汝 心;若分別性離塵無體,斯則前塵分別影事,塵非常住若變滅時, 此心則同龜毛兔角,則汝法身同於斷滅,其誰修證無生法忍?」即 時阿難與諸大眾默然自失。 佛告阿難:「世間一切諸修學人,現前雖成九次第定,不得漏盡成 阿羅漢,皆由執此生死妄想誤為真實。是故汝今雖得多聞不成聖 果。」 阿難聞已,重復悲淚五體投地,長跪合掌而白佛言:「自我從佛發 心出家,恃佛威神,常自思惟無勞我修,將謂如來惠我三昧,不知 身心本不相代,失我本心,雖身出家心不入道,譬如窮子捨父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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逝,今日乃知雖有多聞,若不修行與不聞等,如人說食終不能飽。 世尊!我等今者二障所纏,良由不知寂常心性。唯願如來哀愍窮露 發妙明心,開我道眼。」 即時如來從胸卍字涌出寶光,其光晃昱有百千色,十方微塵普佛世 界一時周遍,遍灌十方所有寶剎諸如來頂,旋至阿難及諸大眾。告 阿難言:「吾今為汝建大法幢,亦令十方一切眾生,獲妙微密性淨 明心得清淨眼。阿難!汝先答我見光明拳,此拳光明因何所有?云 何成拳汝將誰見?」 阿難言:「由佛全體閻浮檀金赩如寶山,清淨所生故有光明,我實 眼觀五輪指端屈握示人,故有拳相。」 佛告阿難:「如來今日實言告汝,諸有智者要以譬喻而得開悟。阿 難!譬如我拳,若無我手不成我拳;若無汝眼不成汝見。以汝眼根 例我拳理,其義均不?」 阿難言:「唯然,世尊!既無我眼不成我見,以我眼根例如來拳, 事義相類。」 佛告阿難:「汝言相類,是義不然。何以故?如無手人拳畢竟滅; 彼無眼者非見全無。所以者何?汝試於途詢問盲人:『汝何所 見?』彼諸盲人必來答汝:『我今眼前唯見黑暗,更無他矚。』以 是義觀,前塵自暗,見何虧損?」 阿難言:「諸盲眼前唯覩黑暗,云何成見?」 佛告阿難:「諸盲無眼唯觀黑暗,與有眼人處於暗室,二黑有別? 為無有別?」 「如是,世尊!此暗中人與彼群盲,二黑校量曾無有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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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若無眼人全見前黑,忽得眼光還於前塵,見種種色名眼見 者;彼暗中人全見前黑,忽獲燈光,亦於前塵見種種色,應名燈 見。若燈見者,燈能有見自不名燈,又則燈觀何關汝事?是故當知 燈能顯色。如是見者是眼非燈,眼能顯色,如是見性是心非眼。」 阿難雖復得聞是言,與諸大眾口已默然心未開悟,猶冀如來慈音宣 示,合掌清心佇佛悲誨。 爾時,世尊舒兜羅綿網相光手,開五輪指,誨勅阿難及諸大眾: 「我初成道於鹿園中,為阿若多五比丘等及汝四眾言:『一切眾生 不成菩提及阿羅漢,皆由客塵煩惱所誤。』汝等當時因何開悟今成 聖果?」 時,憍陳那起立白佛:「我今長老於大眾中獨得解名,因悟客塵二 字成果。世尊!譬如行客投寄旅亭,或宿或食,食宿事畢,俶裝前 途不遑安住;若實主人自無攸往。如是思惟不住名客、住名主人, 以不住者名為客義。又如新霽清暘昇天光入隙中,發明空中諸有塵 相,塵質搖動虛空寂然。如是思惟澄寂名空,搖動名塵,以搖動者 名為塵義。」 佛言:「如是。」 即時,如來於大眾中屈五輪指,屈已復開,開已又屈,謂阿難言: 「汝今何見?」 阿難言:「我見如來百寶輪掌眾中開合。」 佛告阿難:「汝見我手眾中開合,為是我手有開有合?為復汝見有 開有合?」 阿難言:「世尊!寶手眾中開合,我見如來手自開合,非我見性自 開自合。」 15 佛言:「誰動誰靜?」 阿難言:「佛手不住,而我見性尚無有靜,誰為無住。」 佛言:「如是。」 如來於是從輪掌中飛一寶光在阿難右,即時阿難迴首右[辦-力 +目],又放一光在阿難左,阿難又則迴首左[辦-力+目]。佛告阿 難:「汝頭今日何因搖動?」 阿難言:「我見如來出妙寶光來我左右,故左右觀,頭自搖動。」 「阿難!汝[辦-力+目]佛光左右動頭,為汝頭動?為復見動?」 「世尊!我頭自動,而我見性尚無有止,誰為搖動。」 佛言:「如是。」 於是如來普告大眾:「若復眾生,以搖動者名之為塵,以不住者名 之為客,汝觀阿難頭自動搖見無所動,又汝觀我手自開合見無舒 卷,云何汝今以動為身、以動為境,從始洎終念念生滅,遺失真性 顛倒行事,性心失真認物為己,輪迴是中自取流轉?」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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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권1


[1] 법회에 모인 대중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시라벌성의 기환정사(祇桓精舍)에 계실 적에

큰 비구들 1천 2백 50명과 함께 계셨으니

이는 모두 정기가 밖으로 샘이 없는 큰 아라한들이니

부처님의 제자로 불법을 잘 보호해 나가면서 모든 유(有)에서 훌륭하게 초월하였으며

토에서 위의(威儀)를 갖추었으며 부처님을 따라 법륜(法輪)을 굴리어

부처님이 유촉하신 것을 충분히 감당할 만하며 계율을 엄숙하고 청정하게 지켜서

삼계의 큰 모범이 되었고, 응신(應身)이 한량 없어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며,

미래의 모든 중생까지 고난에서 구제하여 진루(塵累)에서 벗어나게 하는 분들이다.


그 이름은 큰 지혜를 지닌 사리불과 마하 목건련과

마하 구치라와 부루나미다라니자와

수보리와 우바니사타 등이 우두머리가 되어

이 세계와 또 다른 세계에 한량 없는 벽지불과 무학(無學)과 아울러 처음 발심한 사람(初心)들까지 여름 결제(夏安居)를 마치고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공손하게 이마를 대어 절하고,

그동안에 잘못이 있는 사람은 모든 대중에게 알리고 참회하였으며,

의심이 있으면 부처님께 여쭈어 의심을 풀고,

자비로우면서도 엄숙하신 부처님을 흠모하여 비밀한 이치를 들으려고 하였는데

그 때에 여래께서 자리를 펴고 편안히 앉으시어

거기 모인 여러 대중을 위하여 깊고 오묘한 진리를 말씀해 주시니,

설법하는 자리에 참석한 청정한 대중들이 아직까지 없었던 법문을 듣게 되었으며

가릉빈가(迦陵頻伽)의 소리와 같은 선음(仙音)이 시방세계에 가득하였다.

 

항하강 모래(恒河沙)수와 같이 많은 보살들이 도량에 모여 들었는데 문수사리가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 때에 바사닉왕이 그의 부왕을 위하여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 재(齋)를 열고

부처님을 궁중으로 초청하여 자신이 직접 여래를 영접하며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놓고 아울러 여러 큰 보살들도 직접 맞이하였다. 성중에서는 또 다시 장자(長者)와 거사(居士)가 같은 때에 스님들을 공양하게 되었는데 부처님께서 오셔서 공양에 응해 주기를 바라는 이가 있으므로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명하시어 보살과 아라한들을 나누어 거느리고 가서

여러 재주(齋主)들의 공양에 응하게 하셨다.

오직 아난만은 이보다 앞서 따로 초청을 받고 멀리 갔다가 미처 돌아오지 못해서 승차(僧次)에 참여할 겨를이 없었더니 이미 상좌(上座)와 아사리도 없이 혼자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날 따라 공양이 없었으므로 그때 아난은 바리대를 들고 지나오던 성안에서 차례로

밥을 빌게 되었는데 마음 속으로는 최후의 단월(檀越)을 구하여 재주를 삼으리라 생각하고

깨끗함과 더러움을 묻지 않고 존성(尊姓:귀족)인 찰제리(刹帝利)와 전다라(최하층 계급)에게도

평등한 자비를 베풀어 미천함을 가리지 않았으니,

그 뜻은 일체 중생에게 한량 없는 공덕을 원만히 이루게 하려 함이었다.

 

[2] 악한 인연을 만나게 된 아난

아난이 이미 세존께서 수보리와 대가섭을 꾸중하실 적에 "아라한이 되고서도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다"고 하신 것을 알았으며, 여래께서는 마음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거절함이 없으므로 의심과 비방에서 벗어났음을 흠앙(欽仰)하였다. 그래서 성을 지나 성곽의 문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위의(威儀)를 엄숙하고 단정하게 하여 재법(齋法)을 공경하고 신중하게 지키었다.

그때에 아난이 걸식을 하기 위하여 음란한 집을 지나가다가 큰 환술을 하는 마등가라는 여자를 만났는데 그는 사비가라(娑毘迦羅)의 선범천주(先梵天呪)를 외우면서 아난을 음란한 집안으로 끌어들여서 음란한 몸으로 비비고 만지면서 계행을 지키는 아난의 몸을 훼손(毁損)하려 하였다.

여래께서 아난이 음란한 마술에 걸려든 것을 아시고 공양을 마치고는 즉시 돌아오니, 왕과 대신 그리고 장자와 거사가 모두 부처님을 따라와서 법문 듣기를 원하였는데 그 때에 세존께서 정수리에서 백 가지 보배롭고 두려움 없는 광명을 뿜어 내시고, 광명 속에서는 천 개의 잎새로 된 보배로운 연꽃이 생기면서 부처님의 화신(化身)이 가부좌를 하고서 신주(神呪)를 설하셨다.

그리고 문수사리에게 명하여 그 신주를 가지로 가서 아난을 구호하게 하시니 악주(惡呪)가 소멸하므로 아난과 마등가를 데리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난이 부처님을 뵈옵고 이마를 땅에 대어 예를 올리며 슬피울면서 무시(無始)이후로 한결같이 많이 듣는 것만 일삼았고 아직 도력이 온전하지 못한 것이 안스러웠던 것이다.


은근하게 시방의 여래께서 보리를 이루신 오묘한 사마타와 삼마바리, 그리고 선나(禪那)의 최초 방편을 간절히 청하였다. 그때에 또 다시 항하강 모래와 같이 많은 보살과 시방(十方)의 큰 아라한과 벽지불 들이 다 즐겨 듣기를 원하여 물러가 앉아서 묵묵히 거룩한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에 세존이 대중 가운데에 계시다가 황금빛 팔을 펴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삼마지(三摩地)가 있으니 그 이름이 대불정수능엄왕(大佛頂首楞嚴王)이니 만행(萬行)이 다 갖추어졌나니라. 시방의 여래가 이 유일한 문으로 초출(超出)하신 오묘하고 장엄(莊嚴)한 길이니 너는 명심하여 들으라."

아난과 대중들이 공경하게 이미를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땅에 엎드린 채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자옵드니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기를 "너와 나는 동기(同氣)이니 정이 같은 천륜이다. 네가 처음 발심할 적에 나의 법 가운데에서 어떤 거룩한 모양을 보았기에 세상의 깊고 중한 은애를 미련없이 버렸는가?"

 

[3] 마음이 있는 곳을 말씀드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여래의 서른 두 가지 상(相)이 뛰어나게 미묘함은 아주 특이하며 형체가 마치 맑은 유리처럼 밝게 비침을 보고서 늘 스스로 이러한 모양은 욕애로 생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사오니 왜냐하면 욕기는 더럽고 흐려서 비린내 누린내가 풍겨나고 고름과 피가 뒤섞여서, 그와 같이 뛰어나게 깨끗하고 미묘하게 밝은 자금광(紫金光)의 덩어리를 발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목마른 때에 물을 찾듯이 우러러보고 부처님을 따라 머리를 깍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아난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고 죽음이 서로 계속됨은 다 항상 머무르는 참 마음의 맑고 밝은 본체는 알지 못하고 허망한 생각만 작용한 탓이니, 이 허망한 생각이 참되지 못하므로 나고 죽는 세계에 윤회하나니라."

네가 지금 더할 수 없는 보리(菩提)의 참되고 밝은 성품을 연구하려거든 마땅히 정직한 마음으로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라. 시방의 여래가 동일한 도로 생사(生死)에서 벗어난 것이니 이는 모두 정직한 마음 때문이었느니라. 마음과 말이 곧았으므 로 이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지위든 중간에 모든 왜곡된 형상이 영원히 없었나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마땅히 네가 발심한 것이 여래의 서른 두 가지 상호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니 그것을 무엇으로 보았으며 누가 좋아하였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제 마음과 눈 으로 하였습니다. 눈으로 여래의 거룩한 모습을 보옵고 마음에 좋아함이 생겼기 때문에 제가 발심하여 나고 죽는 세계를 버리고자 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과 같아서 참으로 사랑하고 좋아한 것은 마음과 눈으로 인한 것이니 만약 마음과 눈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번뇌를 항복받을 수 없을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국왕이 적으로부터 침략을 받고서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討伐)할 적에 그 군대가 마땅히 적병이 있는 곳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과 같나니라. 너로 하여금 생사의 세계를 윤전케 하는 것은 마음과 눈의 허물이니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마음과 눈이 어느 곳에 있는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세간에 열 가지 다른 중생들이 다같이 식

별하는 마음을 지녔사온데 그것이 몸 속에 있습니다. 비록 여래의 푸른 연꽃 같은 눈을 보아도 부처님의 얼굴에 있으며, 제가 지금 부근(浮根)과 네 가지 대상 물질을 관찰해 보아도 부처님의 얼굴에 있으므로 이와 같이 인식하는 마음은 실로 몸 속에 있다고 여깁니다."

[4] 안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뜨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기를 "네가 지금 여래의 강당에 앉아서 기타림(祇陀林)을 보고 있는데 지금 어디에 있느냐?"

"세존이시여! 이 여러 층으로 된 전각 중에 청정한 큰 강당은 급고독원(給孤獨園)에 있고 기타림은 강당 밖에 있습니다." "아난아! 네가 지금 강당 안에서 먼저 무엇이 보이느냐?" "세존이시여! 제가 강당 안에 있으면서 먼저 여래를 보옵고 다음에 대중을 보오며, 이와 같이 밖을 바라보아야 비로소 숲과 동산이 보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과 같이 몸은 강당 안에 있으나 문과 창이 활짝 열렸기 때문에 멀리 수풀과 동산을 본다고 하니, 그렇다면 어떤 중생이 이 강당 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못하고 강당 바깥만 보는 자가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존이시여! 강당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못하고 숲과 동산만을 본다고 함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난아! 너도 이와 같나니라. 너의 신령스런 마음이 일체를 분명하게 아나니, 만약 너의 그 분명하게 아는 마음이 사실 몸안에 있다면 그때에 먼저 마땅히 몸 속의 것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중생이 먼저 몸 속을 보고난 다음에 밖의 물건을 본다더냐? 비록 손톱이 자라고 털이 자라며 힘줄이 움직이고 맥박이 뛰는 것을 볼 수 없으나 오장 육부(五臟六腑)쯤은 진실로 밝게 알아야 된텐데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반드시 몸 속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밖을 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 말대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제가 여래의 이러한 법음(法音)을 듣자옵고 제 마음이 실로 밖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오면 비유하건대 마치 방안에 등불을 켜 놓으면 그 등불이 반드시 방 안을 먼저 비추고 난 뒤에 방문을 통하여 뜰과 마당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일체의 중생들이 몸 속은 보지 못하고 몸 밖만 보는 것은 마치 등불이 방 밖에 있어서 방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이치가 너무도 분명하여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어 부처님의 뚜렷한 이치와 같으리니 잘못된 생각은 아니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이 모든 비구들이 마침 나를 따라 시라벌성에서 단식(團食)을 차례로 빌어 가지고 기타림으로 돌아왔는데 나는 이미 공양을 마쳤지만[宿劑] 너는 비구들을 보아라. 한 사람이 먹을 때에 여러 사람의 배를 부르게 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오면 이 모든 비구들이 비록 아라한이오나 몸과 생명이 같지 아니한데 어떻게 한 사람이 여럿을 배부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5] 밖에 있지 않음을 깨뜨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만약 너의 깨닫고 알고 보고 하는 마음이 정말로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달라서 자연히 서로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은 깨닫지 못할 것이며 깨달음이 몸에 있다면 마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도라면같은 손을 너에게 보이노니 너의 눈으로 볼 때에 마음이 분별하느냐 못하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분별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만약 안다면 어떻게 몸 밖에 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 밖에 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아서 안을 보지 못하기 때

문에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옵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아서 서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니 제가 지금 생각해 보건대 숨어있는 한 곳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한 곳이라는 것이 어디냐?" 아난이 말하기를 "이 또렷하게 아는 마음이 이미 안은 알지 못하고 능히 밖은 볼 수 있으니 저의 생각 같아서는 눈 속에 숨어 있는 듯 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유리 그릇을 가져다가 눈에 댄 것과 같아서 비록 물건에 가리워 졌더라도 장애가 되지 않고 그 눈이 보는대로 따라서 곧 분별하나니 그렇다면 저의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안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눈 속에 있기 때문이고 분명하게 밖을 보는데도 장애가 없는 것은 눈이 맑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처럼 눈 속에 숨어있는 것이 마치 유리를 댄것과 같다면 저 유리를 눈에 댄 사람이 마땅히 유리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산과 강을 볼 적에 유리를 보느냐 못 보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이 유리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진실로 유리가 보일 것입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 마음이 만약 눈에 유리를 댄 것과 같다면 마땅히 산과 강을 볼 적에 어찌하여 눈을 보지 못하느냐? 만일 눈을 본다면 눈이 곧 대상이 되는 물체와 같아서 눈이 보는 대를 따라서 분별한다는 말이 성립될 수 없고, 만약 눈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속에 숨어있는 것이 마치 유리 를 댄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속에 숨어 있음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고 함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6] 깨뜨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중생들의 몸이 장부(臟腑)는 속에 있고 구멍은 밖에 있으니 장부는 어둡고 구멍은 밝습니다. 지금 제가 부처님을 대하여 눈을 뜨고 밝음을 보는 것은 밖을 본다고 하고, 눈을 감고 어두움을 보는것은 안을 보는 것이라고 하고 싶은데 그 생각은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눈을 감고 어두운 것을 볼 적에 그 어두운 경계가 눈과 서로 대하였느냐 눈과 대하지 아니하였느냐? 만일 눈과 대하였다면 어두움이 눈 앞에 있는데 어떻게 안이 된다고 하겠느냐? 만약 안이 된다고 한다면 어두운 방 안에 있을 적에 해나 달이나 등불이 없으면 그 어두운 방 속에 전부 너의 삼초(三焦)나 육부(六腑)일 것이며, 만일 어두운 세계가 눈과 대하지 않는다면 본다고 하는 말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밖으로 보는 것을 떠나고 안으로 대하는 것이 성립된다 하여 눈을 감고 본 어두움을 몸 속이라고 한다면 눈을 뜨고 밝음을 볼 적에 어째서 얼굴을 보지 못하느냐? 만약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안을 대한다는 것도 성립되지 않으리라.

얼굴을 보는 것이 만약 성립된다면 이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과 눈이 곧 허공에 있어야 하리니 어떻게 안에 있다고 하겠느냐? 만약 허공에 있다면 그것은 너의 몸이 아니므로 그럴경우 지금 너의 얼굴을 보고 있는 여래까지도 너의 몸이라고 하겠구나. 그러니 너의 눈은 이미 알고 있더라도 몸은 깨닫지 못할 것인데 너는 굳이 고집하여 말하기를 몸과 눈이 다같이 안다고 한다면 이는 마땅이 두 알음알이가 있는 것이니 그렇다 면 곧 너의 한 몸이 응당 두 보처를 이루겠구나.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을 안을 보는 것이라고 함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늘 부처님께서 사부대중(四衆)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법이 생기며,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하심을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생각하니 곧 생각하는 그 실체가 바로 저의 심성(心性)입니다.

어울리는 곳에 따라서 마음도 있는 것이니 역시 안과 밖과 중간 세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지금 말하기를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마음이 생겨나서 어울리는 곳에 따라 마음도 있다고 하지만 이 마음은 본체가 없는 것이어서 어울릴 곳도 없을 것이다. 만약 본체가 없으면서도 어울릴 수 있다면 이는 십구계(十九界)가 칠진(七塵)으로 인하여 어울리는 것이니 그럴 이치가 없나니라. 만약 본체가 있다면 가령 네가 손으로 네 몸을 찌를 적에 너의 아는 마음이 다시 안에서 나오느냐 밖에서 들어오느냐? 만약 안에서 나온다면 몸 속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고 만약 밖에서 들어 온다면 먼저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다."

 

[7] 합하는 곳에 마음이 있음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보는 것은 눈이고 마음은 아는 것이지 눈이 아니거늘 본다고 하심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만약 눈이 볼 수 있다면 네가 방 안에 있을 적에 문이 볼 수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죽은 사람도 아직 눈은 있는 터이니 마땅히 물건을 본다고 해야 되겠구나. 만약 물건을 본다면 어찌 죽었다고 말하겠느냐?"

아난아! 또 너의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만약 반드시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한 몸이냐 여러 몸이냐? 지금 네 몸에 있어서 온 몸에 가득하냐 온 몸에 가득하지 아니하냐? 만약 한 개의 몸이라면 네가 손으로 한 활개를 찌를 적에 네 활개가 다 깨달아야 할 것이며, 만약 모두가 함께 깨닫는다면 찌를 데가 따로 없어야 하거늘 만약 찌를 데가 따로 있다면 너의 몸이 하나라는 것은 자연 성립될 수 없느니라.

만약 온 몸에 두루하다면 앞에서 찌르는 경우와 같을 것이다. 만약 온 몸에 가득한 것이 아니라면 네 머리를 부딛히고 다시 발을 부딛혔을 적에 머리에 느끼는 것이 있으면 발은 몰라야 할 것인데 지금 너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울리는 곳에 따라서 마음도 있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도 들었사온데 부처님께서 문수 등 여러 법왕자(法王子)와 더불어 실상에 대해 말씀하실 적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생각엔 안이라고 하자니 안을 보는 것이 없고 밖이라고 하면 서로 알지 못해야 하는데 안에 것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에 있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아는 것으로 보아서는 밖에 있는 것도 옳지 않으니 이는 서로 알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안으로 보는 것도 아니니 마땅히 중간에 있는 것인 듯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중간이라고 말하는데 그 중간이 반드시 희미한 것이아니어서 있는 데가 없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 네가 중간을 추구하여 보아라. 중간이 어디에 있느냐? 따로 장소가 있느냐 몸에 있느냐?

만약 몸에 있을 경우 변두리에 있다면 중간이 아니요 중간에 있다면 안과 같나니라. 만약 어떤 장소가 있다면 표시할 곳이 있느냐 없느냐? 표시 할 곳이 없다면 이는 없는 것과 같고 표시할 곳이 있다면 이는 일정하지 못하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사람이 표시할 수 있는것을 가지고 중간이라고 표시했을 때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 되도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 된다. 표시한 그 자체가 이미 혼란하니 마음도 따라서 혼란해지리라."

 

[8] 집착함이 없음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말씀드린 중간이란 것은 그러한 두 가지 종류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눈과 색진(色塵)이 인연이 되어 안식(眼識)이 생긴다'고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눈은 분별이 있고 색진은 느낌이 없는 것인데 의식이 그 중간에서 생기니 그렇다면 그곳이 마음이 있는 곳이라고 여깁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이 만약 눈과 물질의 중간에 있는 것이라면 이 마음자체가 두 가지를 겸하셨느냐 아니하였느냐?

만약 두 가지를 겸한 것이라면 눈과 물질이 섞여서 혼란하리니 물질은 눈처럼 앎이 없으므로 적이 되어 둘로 갈라설 것이니 어떻게 중간이라고 하겠느냐? 두 가지를 겸하지 아니하였다면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이는 곧 자체에 성품이 없는 것이거니 어떤 모양이 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중간에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아난이 부처님께 말씀하시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에 보았는데 부처님께서 대목련, 수보리, 부루나, 사리불의 네 분 제자들과 함께 법륜(法輪)을 굴리실 적에 늘 말씀하시기를 '알고 느끼고 분별하는 마음이 이미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곳에도 있는 데가 없어서 일체의 집착함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고 한다'고 하셨으니 지금 제가 집착함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깨닫고 느끼고 분별하는 마음이 어느 곳에도 있는 곳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 세상과 허공이나 물 속 또는 육지에서 날아다니거나 걸어다니는 모든 물상(物像)을 이름하여 '일체(一切)'라고 하니, 네가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있다는 것이냐 없다는 것이냐? 없다면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나니 어떻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느냐? 모든 것이 있는데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형상이 없으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아니면 그것이 곧 형상이다. 형상이 있으면 존재하는 것인데 어떻게 집착이 없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의 집착이 없는 것을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라고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9] 혼미한 이유를 전체적으로 밝힘

그때에 아난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여 공경을 다하여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본래 여래의 가장 어린 아우로서 부처님의 사랑을 받자와 비록 지금 출가하게 되었으나 오히려 귀여워 해주시는 것만 믿고서 많이 듣기만 하였고 샘이 없는 도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비가라의 주문을 꺽어 항복시키지 못하고 저들에게 홀린 바가 되어 음실에 빠지게 되었으니 이는 참다운 마음이 있는 데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건데 세존께서는 큰 자비로 가엾게 여기시어 저희들에게 사마타의 길을 열어 보이시어 모든 천제(闡提)로 하여금 추악한 소견을 깨뜨리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온 몸을 땅에 던지듯이 엎드려서 여러 대중들과 목마를 때에 물을 찾듯이 정성을 다하여 가르침을 들으려고 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 그 얼굴에서 갖가지의 광명을 발하시니 그 빛의 찬란하기가 마치 百千개의 해와 같았다. 넓은 부처의 세계가 여섯 가지 진동이 생기고 이와 같이 새방의 티끌 같이 많은 국토가 일시에 나타나더니 부처님의 위신(威神)이 모든 세계로 하여금 한 세계가 되게 하시니 그 세계 가운데 있는 여러 큰 보살들이 모두 제 나라에 있으면서 합장하고 공경스레 들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모든 중생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갖가지로 뒤바뀌어서 그 업의 씨앗이 자연 악차의 열매(惡叉)와 같이 한데 모여 있으며,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이 위 없는 보리를 이루지 못하고 이에 별도로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을 이루며, 외도와 하늘과 마왕과 마구니의 권속이 되기도 하니 이 모두가 두 가지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뒤섞여 어지럽게 닦아 익혀왔기 때문인데, 이는 마치 모래를 삶아서 좋은 음식을 만들려는 것과 같아서 비록 티끌 같이 많은 겁(塵劫)의 세월을 지낸다 하더라도 마침내 이룰 수 없나니라.

그 두 가지 근본이란 무엇인가? 아난아! 하나는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의 근본이니 네가 지금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반연(攀緣)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요, 둘째는 시작이 없는 보리와 열반의 원래 청정한 본체이니 이는 지금 너의 원래부터 밝은 식정(識精)이 모든 인연을 만드는데 그 인연으로 인하여 본래의 참다운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러 중생을 이렇게 본래부터 밝았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비록 종일토록 행하여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잘못 여러 갈래의 중생 세계로 빠져들게 되나니라.

아난아! 네가 지금 사마타의 길을 알아서 생사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지금 다시 너에게 묻겠노라."

 

[10] 주먹을 들어 질문을 하심

그렇게 말씀하시고 즉시 여래께서 황금색깔의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고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것이 보이느냐 안 보이는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보입니다."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엇을 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여래께서팔을 들고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서 저의 마음과 눈에 비추임을 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슴하시기를 "네가 무엇으로 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저와 대중들은 다같이 눈으로 보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지금 나에게 대답하기를 '여래가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서 네 마음과 눈에 비춘다'고 하니 네 눈은 보겠다마는 무엇을 마음이라 하여 나의 주먹이 비추임을 받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여래께서 지금 마음이 있는 곳을 물으시므로 제가 마음을 미루어 찾아 보았사오니 이렇게 추궁하는 놈을 저는 마음이라고 생각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아난아! 그것은 네 마음이 아니니라." 아난이 흠칫 놀라면서 자리를 비키고 합장하며 일어서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이것이 저의 마음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해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앞에 나타난 허망한 모양의 생각이다. 너의 참다운 성품을 현혹시키는 것이니 이는 네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적을 아들로 인정하고 있어서 너의 본래 떳떳한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나고 죽고 세계를 윤회하고 있나니라."

 

[11] 허망한 집착을 분별하여 물리침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사랑하는 아우입니다. 마음으로부처님을 사랑하였으므로 저를 출가하게 하였으나 저의 마음이 어찌 여래만을 공양하오릿까?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국토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여러 부처님과 훌륭하신 스승님을 섬기는 것과 큰 용맹을 발해서 모든 행하기 어려운 일들을 행하는 것도 모두가 이 마음으로 할 것이며, 비록 법을 비방하고 훌륭한 근기에서 영원히 물러난다 하더라도 역시 이 마음일 따름인데 만약 이렇게 발생하는 분명한 것을 마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마음이 없음이 마치 토목(土木)과 같을 것입니다.

이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을 여의면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으리니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저의 마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까? 저는 사실 놀랐사오며 아울러 여기 모인 대중들도 의혹하지 않을수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시옵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열어 보여서 그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게 하려고 하여 사자좌(獅子座)에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며 말씀하시길 "여래가 항상 말씀하시되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 오직 마음에 나타나는 것이며 일체의 원인과 결과와 세계의 작은 티끌이 마음으로 인하여 실체를 이룬다'고 하나니, 아난아! 만약 모든 세계의 온갖 것 가운데 풀잎이나 실오라기까지라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모두 본체의 성질이 있으며, 비록 허공까지라도 이름과 모양이 있거 더구나 청정하고 오묘한 밝은 마음은 모든 마음에 본성(本性)이 되거니 어찌 실체가 없겠느냐?

만약 네가 분별하고 깨닫고 관찰하여 분명하게 아는 성품을 고집하여 반드시 마음이라고 한다면 이 마음이 마땅히 온갖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의 접촉과 법 등 모든 상대되는 대상을 여의고서도 따로히 온전한 성품이 있겠느냐?

마치 네가 지금 나의 법문을 듣는 것도 이것이 소리로 인하여 분별함이 있는 것이니 비록 일체의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을 없애고 안으로 그윽히 한가함을 지키더라도 오히려 법진(法塵)을 상대로 한 분별하는 그림자가 되나니라.

내가 네게 명령하여 마음이 아니라고 고집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네가 마음에 대하여 세밀하고 자세하게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만약 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여의고도 분별하는 심성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너의 마음이겠지만, 만약 분별하는 심성이 앞에 나타난 대상을 여의고서는 실체가 없다면 이는 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분별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그런데 앞에 나타나는 대상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만약 변하여 없어질 때에는 이 마음이 곧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이니 곧 너의 법신도 함께 끊어져 없어지는 것과 같으리니 그러면 그 무엇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닦아서 증득하겠느냐?" 그때 아난이 대중들과 더불어 묵묵히 넋이 나간 듯 하였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세간에서 모든 수학(修學)하는 사람들이 현재 눈앞에서 비록 아홉 차례나 결정을 하였다 하더라도 정기가 새어나가는 것을 다 끊어 아라한이 되지 못한 것은 모두 저 나고 죽고 하는 허망한 생각에 집착해서 진실한 것인 양 오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지금 비록 많이 듣기는 하였으나 성인의 과업을 성취하지 못했나니라."

 

[12] 묻고 대답하여 의의를 정립함

아난이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온몸을 땅에 던지고 꿇어 앉아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부처님을 따라 발심하여 출가하였사오나 부처님의 위엄있고 신령한 것만 믿고서 늘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애써 닦지 아니하여도 여래께서 나에게 삼매(三昧)를 얻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여겼습니다. 몸과 마음은 본래 서로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저의 본심을 잃었으니 몸은 비록 출가하였으나 마음은 도에 들어가지 못함이 비유하면 마치 가난한 아이가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한 것과 같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아무리 많이 들었더라도 수행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듣지 아니한 것과 같음을 알았사오니 이는 마치 사람이 음식을 말로만 이야기해서는 결코 배부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두 가지 장애에 얽매인 것은 진실로 고요하고 항상한[寂常] 심성(心性)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궁하고 외로운 것을 불쌍하게 여기셔서 오묘하고 밝은 마음을 발하여 저의 도안(道眼))을 열어 주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가슴의 만(卍)자에서 보배의 빛을 뿜어 내시니 백천의 색깔이 어울렸으며, 시방의 티끌 같이 많고 많은 넓은 부처님의 세계에 일시에 두루 퍼져서 시방에 있는 보배로운 사찰의 모든 부처님의 정수리에 닿게 하셨다가 다시 되돌려서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이르게 하셨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큰 법의 깃발을 세우며 시방의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오묘하고 은미하고 비밀스런 깨끗하고 밝은 성품을 얻어 청정한 눈을 뜨게 하리라.

아난아! 네가 아까 내게 대답하기를 '빛나는 주먹을 봅니다' 하였는데 이 주먹의 광명은 무엇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며 어떻게 주먹이 되었으며 네가 무엇으로 보았는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부처님의 온 몸이 염부단금(閻浮壇金)으로써 보배의 산처럼 빛나사 청정하게 생긴 것이므로 광명이 있는 것이고 제가 이것을 눈으로 보았으며 수레바퀴 같은 무늬가 있는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 쥐고서 사람에게 보여 주셨으므로 주먹이 되었더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여래가 오늘날 진실한 말로 네게 말해 주리니 지혜가 있는 모든 사람은 비유로써 깨닫게 할 수 있나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그 주먹을 만약 내 손이 없으면 내 주먹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만약 네 눈이 없으면 네가 보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으리니 네 눈을 내 주먹과 같은 이치에 비유하면 그 의미가 서로 비슷하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미 저의 눈이 없으면 제가 보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으리니 여래의 주먹에 비유하면 사실과 이치가 서로 비슷할 듯 하옵니다."


[13] 참되게 보는 놈을 바로 선택함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서로 비슷하다고 말하였으나 그 이치가 그렇지 않나니라. 왜냐하면 만약 내 손이 없으면 주먹이 반드시 없겠지마는 저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이 전여 없지 아니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네가 시험삼아 길에 나아가서 소경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면 그 소경이 대답하기를 '지금 내 눈에는 오직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 이치로 보건댄 앞에 대상이 어두울지언정 보는 것이야 무슨 결함이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모든 소경들이 눈 앞에 오직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는 것을 어떻게 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모든 소경들이 눈이 멀어서 오직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는 것과 저 눈을 가진 사람이 깜깜한 방에 있는 것과 그 두 가지 깜깜한 현상이 다르냐 다르지 않느냐?" 아난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깜깜한 방에 있는 사람과 저 소경들과의 두가지 캄캄함을 비교하면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아난아! 만일 눈이 없는 사람이 대상이 컴컴한 것만 보다가 홀연히 눈의 광명을 되찾게 되면 도리어 그 대상의 갖가지 빛깔을 보게 되리니 이것을 눈이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저 어두운 방 안에 있던 사람이 대상이 캄캄한 것만 보다가 홀연히 등불을 켜면 역시 대상의 갖가지 빛깔을 볼 것이니 이것은 응당 등불이 보는 것이라고 하겠구나. 만약 등불이 보는 것일진대 이는 등불이 볼 수 있는 것이므로 등불이라고 이름하지 못할 것이며 또 등불이 보는 것인데 네 일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등불은 빛을 나타낼 수 있을지언정 이렇게 보는 것은 눈이지 등불이 아니며 눈은 빛깔을 나타낼 수 있을지언정 이렇게 보는 성품은 마음이지 눈이 아니다."

아난이 비록 다시 이 말을 듣고서 여러 대중들과 함께 아무 말이 없이 잠자코 있었으나 마음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여래께서 자비한 음성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원하며 합장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기다렸다.ㅤ

 

[14] 경계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맺음

그때 세존께서 도라면처럼 부드러운 그물 모양의 빛나는 손을 들어 수레바퀴 같은 무늬가 있는 다섯 손가락을 펴고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처음 도를 이루고 녹야원(鹿野園)에서 교진여 등 다섯 비구와 거의 사부대중을 위하여 말하기를 '일체 중생이 보리와 아라한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모두 객진번뇌(客塵煩惱)로 인하여 그르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너희들은 그때에 무엇을 깨달아서 지금 성인의 과업을 이루었느냐?"

그때 교진여가 일어나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지금 장로(長老)로서 대중 가운데에서 유독 저만이 '알았다'는 이름을 얻은 것은 객진(客塵)이란 두 글자를 깨닫고 부처님의 과업을 이룩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길 가는 사람이 여정에 들어 잠을 자거나 밥을 먹다가 밥먹고 잠 자는 일을 마치고는 행장을 꾸려서 머물 여가가 없이 길을 떠나지만 만약 참다운 주인이라면 갈 곳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머물지 않는 것은 나그네이고 머무는 것은 주인이니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나그네'라고 이름하겠습니다. 또 비가 개이고 맑은 태양이 하늘에 떠 올라서 햇빛이 틈으로 들어와 밝게 비치면 허공에 있는 모든 먼지가 보이는데 티끌은 요동하지만 허공은 고요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생각하면 맑고 고요한 것은 허공이고 요동하는 것은 티끌이니 요동하는 것을 '티끌'이라고 정의를 내리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니라."

그때에 여래께서 대중 가운데에서 다섯 손가락을 구부렸다간 펴고 폈다간 다시 구부리시며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무엇을 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저는 여래께서 백 가지 보배로운 수레바퀴 같은 손바닥을 대중 앞에서 폈다 쥐었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내 손이 대중 앞에서 폈다 쥐었다 함을 보았다고 하니 그것은 내 손이 폈다 쥐었다 한 것이냐 아니면 네가 보는 것이 폈다 쥐었다 한 것이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존께서 대중 앞에서 보배의 손을 폈다 쥐었다 하시므로 제가 여래의 손이 스스로 폈다 주었다 하심을 본 것이지 저의 보는 것이 폈다 쥐었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어느 것이 움직였고 어느 것이 가만히 있었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부처님의 손도 가만히 있지 아니하였습니다만 제가 보는 것도 오히려 고요하다고 할 것이 없는데 어느 것을 가만히 있지 않았다고 고집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러하니라." 여래가 손바닥으로부터 한 줄기 보배의 광명을 날려 아난의 오른쪽에 있게 하니 그때에 아난이 머리를 돌려 오른쪽을 보았다. 또 한 줄기 빛을 내어 아난의 왼쪽에 있게 하니 아난이 또 머리를 돌려 왼쪽을 보거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 머리가 지금 무엇 때문에 움직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여래께서 보배의 빛을 내시어 저의 왼쪽, 오른쪽에 보내셨기 때문에 왼쪽과 오른쪽을 차례로 보느라고 머리가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아난아! 네가 부처님 보배의 빛을 보느라고 머리가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였다고 하니 그것은 네 머리가 움직인 것이냐 아니면 보는 것이 움직인 것이냐?"

"세존이시여! 저의 머리가 저절로 움직인 것이지 저의 보는 성품은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조차 없으니 어찌 움직였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니라."

그때에 여래께서 널리 대중에게 이르시기를 "만약 중생들이 동요하는 것을 대상 물질[塵]이라 하고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나그네라 한다면 너희들이 아난의 머리가 스스로 움직였을 뿐 보는 것은 움직이지 않았음을 관찰하고, 또 너희가 나의 손은 스스로 폈다 쥐었다 하였으되 보는 것은 폈다 쥐었다 함이 없는 것임을 깨달으라. 어찌하여 지금 너희는 동요하는 것을 몸으로 여기고 동요하는 것으로 대상인 물질이라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마다 생겼다 없어졌다 하면서 참다운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짓을 하느냐? 성품에 참 마음은 잃어버리고 물건을 몸인 줄 알고 있으면서 그 속을 돌고 돌아 스스로 끌려 다님을 취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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