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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의 능엄신주 범어독음과 국역

https://www.youtube.com/watch?v=Rc6Z0gLvp-Y https://kydong77.tistory.com/21628 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 국역 전10권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ube393&logNo=220020727513 능엄경 전문 正本首楞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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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明不敬所以(명불경소이),공경치 말라는 이유를 밝히다

제3장 明不敬所以(명불경소이) 공경치 말라는 이유를 밝히다 8. 問曰:因何不得禮佛菩薩等? "무엇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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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卷 3

 

제3장 明不敬所以(명불경소이)

공경치 말라는 이유를 밝히다

8.

問曰:因何不得禮佛菩薩等?

"무엇 때문에 부처나 보살들에게 절하면 안됩니까?"

答曰:天魔波旬阿修羅示見神通,皆作得菩薩相貌。

“천마(天魔)와 파순(波旬)과 아수라(阿修羅)가 신통(神通)을 드러내어 모두 보살의 모습을 지을 수 있다.

種種變化,是外道,總不是佛。

여러 가지로 변화(變化)하는 것은 모두 외도(外道)이고, 결코 부처가 아니다.

佛是自心,莫錯禮拜。

부처는 자기 마음이니, 착각하여 절하지 말라.

佛是西國語,此土云覺性。覺者靈覺,

각(覺)이란 신령스럽게 깨어 있는 것이다.

應機接物,揚眉瞬目,運手動足,皆是自己靈覺之性。

기연(機緣)에 응하고, 사물을 대하며, 눈썹을 찡그리고, 눈을 깜빡이며,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는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신령스럽게 깨어 있는 본성이다.

性即是心,心即是佛,佛即是道,道即是禪。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도(道)이고, 도가 곧 선(禪)이다.

禪之一字,非凡聖所測。

선(禪)이라는 한 글자는 범부도 성인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又云:見本性為禪。若不見本性,即非禪也。假使說得千經萬論,若不見本性,只是凡夫,非是佛法。

“본성을 보는 것이 선(禪)이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선이 아니다.

설사 천 권의 경전과 만 권의 논서를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다만 범부일 뿐, 불법(佛法)은 아니다.

至道幽深,不可話會,典教憑何所及。

지극한 도는 그윽하고 깊어서 말로써는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

경전의 가르침이 어떻게 미치겠는가?

但見本性,一字不識亦得。

단지 본성을 보기만 하면, 한 글자도 몰라도 된다.

見性即是佛,

자기 본성을 보는 것이 바로 부처이다.

聖體本來清淨,無有雜穢。

성스런 본바탕은 본래 청정하여 잡스런 때가 없다.

所有言說,皆是聖人從心起用。

있는 말들은 모두가 성인(聖人)이 마음에서 일으켜 사용하는 것이다.

用體本來空,

작용이니 본체니 하는 것은 본래 헛된 이름이다.

名言猶不及,十二部經憑何得及。

말로 미치지도 못하는데, 12부 경전으로 어떻게 미칠 수 있겠는가?

道本圓成,不用修證。

도(道)는 본래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닦아서 증득(證得)할 필요가 없다.

9.

道非聲色,微妙難見。

도는 소리와 색이 아니니, 미묘하여 보기가 어렵다.

如人飲水,冷暖自知,不可向人說也。

마치 사람이 물을 마셔서 차갑고 따듯함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아서, 남에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唯有如來能知,餘人天等類,都不覺知。

오직 여래(如來)만이 알 수 있을 뿐, 나머지 사람이나 하늘사람 등의 부류는 전혀 깨달아 알지 못한다.

凡夫智不及,所以有執相。

범부의 지혜로는 미치지 못하니, 모습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不了自心本來空寂,妄執相及一切法即墮外道。

자기의 마음이 본래 텅 비고 고요한 줄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모습을 붙잡고, 일체법을 붙잡으면, 바로 외도(外道)에 떨어진다.

若知諸法從心生,不應有執,執即不知。

만약 모든 법이 마음으로부터 생겨남을 안다면, 붙잡지 말아야 하니, 붙잡으면 알지 못한다.

若見本性,十二部經總是閑文字。

만약 본성을 본다면, 12부 경전은 모두 부질없는 문자이다.

千經萬論只是明心,言下契會,教將何用?

천 가지 경전과 만 가지 논서가 다만 마음을 밝히는 것이니,

말끝에 계합(契合)하여 알아차리면, 가르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至理絕言;教是語詞,實不是道。

지극한 도리는 말을 벗어났지만, 가르침은 말이니, 사실은 도(道)가 아니다.

道本無言,言說是妄。

도는 본래 말이 없고, 말은 허망한 것이다.

若夜夢見樓閣宮殿象馬之屬,及樹木叢林池亭如是等相;不得起一念樂著,盡是托之處,切須在意。

만약 밤에 꿈속에서 누각, 궁전, 코끼리, 말 등을 보거나, 나무, 수풀, 연못, 정자 등과 같은

모습들을 보더라도, 이러한 모습들에는 좋아하여 집착하는 한 생각도 낼 수가 없으니,

모두가 의탁하여 생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臨終之時,不得取相,即得除障。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 모습을 붙잡지 않을 수 있다면, 의심을 제거할 수 있다.

疑心瞥起,即魔攝。

마음이 잠깐이라도 일어나면, 곧 마구니에게 사로잡힌다.

法身本來清淨無受,

법신(法身)은 본래 청정하여 받을 것이 없다.

只緣迷故,不覺不知,因茲故妄受報。所以有樂著,不得自在。

다만 인연을 따라서 헤매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알 지 못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망령되이 과보를 받는다.

그러므로 좋아하여 집착하게 되면, 자재할 수가 없다.

只今若悟得本來身心,即不染習。

지금 만약 깨닫는다면, 본래의 몸과 마음은 습기(習氣)에 물들지 않는다.

若從聖入凡,示見種種雜類,自為眾生,

만약 성인을 벗어나 범부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을 드러내 보인다면, 스스로 중생이 되는 것이다.

故聖人逆順皆得自在,一切業拘它不得。聖成久.

그러므로 성인은 거스르는 경계에서든 순탄한 경계에서든 모두 자재할 수 있으니,

어떤 업도 그를 구속할 수 없어서 성스러움이 영원하다.

有大威德,一切品類業,被它聖人轉,天堂地獄無奈何它。

큰 위덕(威德)이 있는 모든 종류의 업(業)을 저 성인이 부리니, 천당과 지옥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다.

凡夫神識昏昧,不同聖人,內外明徹。

범부는 정신과 의식이 어두우니, 성인이 안팎이 밝게 통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若有疑即不作,作即流浪生死,後悔無相救處。

만일 의심이 있으면 행하지 않지만, 행하게 되면 생사의 바다 위에서 떠다니게 되어, 뒤에 후회하더라도 구해 줄 수가 없다.

貧窮困苦皆從妄想生,

若了是心,遞相勸勉,但無作而作,即入如來知見。

가난과 고생이 모두 망상으로 말미암아 생기니,

만약 이 마음을 깨닫는다면, 서로서로 권고하여 다만 행함 없이 행한다면, 곧 여래의 지견으로 들어간다.

10.

初發心人,神識總不定;

처음 발심한 사람은 정신과 의식이 전혀 안정되어 있지 않다.

若夢中頻見異境,輒不用疑,皆是自心起故,不從外來。

만약 꿈속에서 흔히 이상한 경계를 보더라도, 바로 의심할 필요는 없으니, 모두 자기의 마음이 일으킨 것이고, 밖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夢若見光明出現,過於日輪,即餘習頓盡,法界性見。

꿈에서 만약 밝음이 나타남을 보았는데, 태양보다도 더 밝다면, 곧 남은 습이 문득 없어지고, 법계(法界)의 본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若有此事,即是成道之因。唯自知,不可向人說。

만약 이러한 일이 있다면, 바로 도를 이루는 원인이지만, 오직 스스로가 알 뿐, 남에게는 말할 수 없다.

或靜園林中行住坐臥,眼見光明,

或大或小,莫與人說,亦不得取,亦是自性光明。

혹시 고요한 숲 속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사이에 눈에서 밝음을 보는데,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다면, 남에게 말하지도 말고, 취하지도 말지니, 역시 자성(自性)의 밝음이다.

或夜靜暗中行住坐臥,眼睹光明,與晝無異,不得怪,並是自心欲明顯。

혹은 밤중에 조용한 어둠 속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누움에, 눈에서 밝음을 보아 낮과 다름이 없다면, 괴이하게 여기지 말 것이니, 모두가 자기 마음이 밝게 드러나고자 하는 것이다.

或夜夢中見星月分明,亦自心諸緣欲息,亦不得向人說。

혹은 밤에 꿈속에서, 별이나 달을 또렷이 보더라도, 자기 마음이 여러 인연을 쉬고자 하는 것이니, 역시 남에게 말해서는 안된다.

夢若昏昏,猶如陰暗中行,亦是自心煩惱障重,亦自知。

꿈이 만약 어둡고 어두워서 마치 어두운 그늘 속을 가는 것과 같다면,

자기 마음에 번뇌의 장애가 두꺼운 것이니, 역시 스스로 알 수 있다.

11.

若見本性,不用讀經念佛,

만약 본성을 본다면, 독경하고 염불할 필요가 없다.

廣學多知無益,神識轉昏。

널리 배우고 많이 알아보아야 이익될 것이 없고, 정신과 의식이 더욱 혼미하게 될 뿐이다.

設教只為標心;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다만 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若識心,何用看教?

만약 마음을 안다면, 가르침을 살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若從凡入聖,即須息業養神,隨分過日。

만약 범부를 빠져나와 성인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곧 업(業)을 쉬고 정신을 수양하면서 분수따라 시간을 보내야 한다.

若多瞋恚,令性轉與道相違,

만약 자주 성을 내거나 기뻐한다면, 본성을 돌려서 도와 서로 어긋나게 만들 것이다.

自賺無益。

스스로 이익을 보려 한다면, 이로울 것이 없다.

聖人於生死中,自在出沒,隱顯不定,

성인은 생사 속에서 자재하여, 나타나고 사라지고 숨고 드러남에 정해진 것이 없다.

一切業拘它不得。聖人破邪魔,

모든 업이 그를 구속할 수가 없으니, 성인은 삿된 마구니를 부순다.

一切眾生但見本性,餘習頓滅。神識不昧,須是直下便會,只在如今。

모든 중생이 본성을 보기만 하면, 남은 습이 문득 소멸하고, 정신과 의식이 어둡지 않아서, 바로 그 자리에서 즉각 알아차린다.

欲真會道,莫執一切法;

다만 지금 진실로 도를 알아차리고자 한다면, 어떠한 법에도 집착하지 말라.

息業養神,餘習亦盡。自然明白,不假用功。

업을 쉬고 정신을 수양하면, 남은 습도 역시 사라져서, 저절로 명백할 것이니, 힘써 공부할 필요가 없다.

外道不會佛意,用功最多;違背聖意,

외도(外道)는 부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힘써 공부하는 것을 최고로 삼으니, 성인의 뜻과는 어긋난다.

終日驅驅念佛轉經,昏於神性,不免輪迴,

하루 종일 바쁘게 염불하고, 경전을 뒤져 보아야, 정신의 본성에는 어두워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

佛是閑人,何用驅驅廣求名利,後時何用?

부처는 한가한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바삐 두루 명성과 이익을 찾겠는가? 나중에 어디에다 쓰겠는가?

但不見性人,讀經念佛,長學精進;六時行道,長坐不臥;廣學多聞,以為佛法。此等眾生,盡是謗佛法人。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은, 경을 읽고, 염불하고, 늘 배움에 열심히 공부하고, 하루 종일 도를 행하고,

늘 배움에 앉아서 눕지 않고, 두루 배우고 많이 듣는 것을 불법으로 삼는다.

이러한 중생들은 모두가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들이다.

12.

前佛後佛,只言見性。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이다.

諸行無常。若不見性,妄言我得阿耨菩提,此是大罪人。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니,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서

망령되이 ‘나는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큰 죄인이다.

十大弟子阿難多聞中得第一,於佛無識只學多聞,

10인의 큰 제자 가운데, 아난(阿難)은 다문(多聞) 가운데 첫째였지만, 부처를 알지는 못하고, 다만 배워서 많이 알 뿐이었다.

二乘外道皆無識佛,識數修證,墮在因果中。

이승(二乘)과 외도(外道)는 모두 부처를 알지 못하고, 하나하나 닦아서 깨닫는다고 알고 있으니, 인과에 떨어져 중생의 업보를 받고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

是眾生業報,不免生死,遠背佛意,即是謗佛眾生,殺卻無罪過。

부처의 뜻에 위배되면 곧 부처를 비방하는 중생이니, 죽여도 도리어 죄나 허물이 없다.

經云:闡提人不生信心,殺卻無罪過。

경에서 말하기를 ‘천제인(闡提人)은 믿는 마음을 내지 않으니, 죽여도 도리어 죄나 허물이 없다.’라고 하였다.

若有信心,此人是佛位人。

만약 믿는 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부처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若不見性,即不用取次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순서대로 나아가도 소용없다.

謗它良善,自賺無益。 善惡歷然,因果分明。

저 선량한 성인을 비방하고 스스로 이익을 보려 해도 이로울 것이 없으니, 선과 악이 또렷하고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天堂地獄只在眼前,愚人不信,現墮黑暗地獄中;亦不覺不知,只緣業重故,所以不信。

천당과 지옥이 다만 눈앞에 있는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믿지 않고,

지금 깜깜한 지옥 속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만 업이 무겁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이다.

譬如無目人,不信道有光明,縱向伊說亦不信,只緣盲故,憑何辨得日光;愚人亦復如是。現今墮畜生雜類,誕在貧窮下賤,求生不得,求死不得。

마치 눈 없는 사람이 빛이 밝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그에게 말해 주어도 믿지 못하는 것은,

다만 맹인(盲人)이기 때문이니, 어떻게 햇빛을 알 수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아서, 지금 축생의 잡류에 떨어져 있고, 빈궁하고, 하천(下賤)하게 태어나 있어서,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雖受是苦,直問著亦言我今快樂,不異天堂。

비록 이러한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바로 물으면 또한 말하기를

‘나는 지금 즐거워서 천당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故知一切眾生,生處為樂,亦不覺不知。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살아 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면서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겠다.

如斯惡人,只緣業障重故,所以不能發信心者,不自由它也。

이와 같이 악(惡)한 사람은 다만 업장이 무겁기 때문에, 신심(信心)을 낼 수가 없는 것이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다.

若見自心是佛,不在剃除鬚髮,白衣亦是佛。若不見性,剃除鬚髮,亦是外道。

만약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보면, 머리를 깎을 필요가 없으니, 세속인 또한 부처이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머리를 깎아도 역시 외도이다.”

<< 卷三 끝 >>

 

http://buddhism.lib.ntu.edu.tw/BDLM/sutra/chi_pdf/sutra10/T19n0945.pdf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第三

(一名中印度那蘭 陀大道場經,於灌頂部錄出別行)

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復次,阿難!云何六入本如來藏妙真如性?阿難!即彼目精瞪發 勞者,兼目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于明暗二種妄塵,發見居中 吸此塵象,名為見性,此見離彼明暗二塵,畢竟無體。如是,阿 難!當知是見非明暗來,非於根出,不於空生。何以故?若從明 來,暗即隨滅,應非見暗。若從暗來,明即隨滅,應無見明。若從 根生,必無明暗。如是見精,本無自性。若於空出,前矚塵象歸當 見根;又空自觀,何關汝入。是故當知眼入虛妄,本非因緣、非自 然性。 「阿難!譬如有人以兩手指急塞其耳,耳根勞故頭中作聲,兼耳與 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于動靜二種妄塵,發聞居中吸此塵象,名 聽聞性,此聞離彼動靜二塵,畢竟無體。如是,阿難!當知是聞非 動靜來,非於根出,不於空生。何以故?若從靜來,動即隨滅,應 非聞動。若從動來,靜即隨滅,應無覺靜。若從根生,必無動靜。 如是聞體,本無自性。若於空出,有聞成性即非虛空;又空自聞, 何關汝入。是故當知耳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急畜其鼻畜久成勞,則於鼻中聞有冷觸,因觸分 別通塞虛實,如是乃至諸香臭氣,兼鼻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 于通塞二種妄塵,發聞居中吸此塵象,名嗅聞性,此聞離彼通塞二 塵,畢竟無體。當知是聞非通塞來,非於根出,不於空生。何以 故?若從通來,塞自隨滅,云何知塞?如因塞有,通則無聞,云何 發明香臭等觸?若從根生,必無通塞。如是聞體,本無自性。若從 30 空出,是聞自當迴嗅汝鼻,空自有聞,何關汝入。是故當知鼻入虛 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以舌舐吻熟舐令勞,其人若病則有苦味,無病之 人微有甜觸,由甜與苦顯此舌根,不動之時淡性常在。兼舌與勞同 是菩提,瞪發勞相因甜苦淡二種妄塵,發知居中吸此塵象,名知味 性,此知味性離彼甜苦及淡二塵,畢竟無體。如是,阿難!當知如 是嘗苦淡知,非甜苦來,非因淡有,又非根出,不於空生。何以 故?若甜苦來,淡即知滅,云何知淡?若從淡出,甜即知亡,復云 何知甜苦二相?若從舌生,必無甜淡及與苦塵。斯知味根本無自 性。若於空出,虛空自味非汝口知,又空自知,何關汝入。是故當 知舌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以一冷手觸於熱手,若冷勢多熱者從冷,若熱功 勝冷者成熱,如是以此合覺之觸顯於離知,涉勢若成因于勞觸。兼 身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于離合二種妄塵,發覺居中吸此塵 象,名知覺性。此知覺體,離彼離合違順二塵,畢竟無體。如是, 阿難!當知是覺,非離合來,非違順有,不於根出,又非空生。何 以故?若合時來,離當已滅,云何覺離?違順二相,亦復如是。若 從根出,必無離合違順四相。則汝身知,元無自性。必於空出,空 自知覺,何關汝入。是故當知身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勞倦則眠睡熟便寤,覽塵斯憶失憶為妄,是其顛 倒生住異滅,吸習中歸不相踰越,稱意知根。兼意與勞同是菩提, 瞪發勞相因于生滅二種妄塵,集知居中吸撮內塵,見聞逆流流不及 地,名覺知性。此覺知性,離彼寤寐生滅二塵,畢竟無體。如是, 阿難!當知如是覺知之根,非寤寐來,非生滅有,不於根出,亦非 空生。何以故?若從寤來,寐即隨滅,將何為寐?必生時有,滅即 同無,令誰受滅?若從滅有,生即滅無,孰知生者?若從根出,寤 寐二相隨身開合,離斯二體,此覺知者同於空花,畢竟無性。若從 31 空生,自是空知,何關汝入。是故當知意入虛妄,本非因緣、非自 然性。 「復次,阿難!云何十二處本如來藏妙真如性?阿難!汝且觀此祇 陀樹林及諸泉池。於意云何,此等為是色生眼見?眼生色相?阿 難!若復眼根生色相者,見空非色,色性應銷,銷則顯發一切都 無,色相既無,誰明空質?空亦如是。若復色塵生眼見者,觀空非 色,見即銷亡,亡則都無,誰明空色?是故當知,見與色空俱無處 所,即色與見二處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汝更聽此祇陀園中,食辦擊鼓、眾集撞鐘,鐘鼓音聲前後 相續。於意云何,此等為是聲來耳邊?耳往聲處?阿難!若復此聲 來於耳邊,如我乞食室羅筏城,在祇陀林則無有我;此聲必來阿難 耳處,目連、迦葉應不俱聞,何況其中一千二百五十沙門,一聞鐘 聲同來食處。若復汝耳往彼聲邊,如我歸住祇陀林中,在室羅城則 無有我;汝聞鼓聲,其耳已往擊鼓之處,鐘聲齊出應不俱聞,何況 其中象馬牛羊種種音響。若無來往,亦復無聞。是故當知聽與音聲 俱無處所,即聽與聲二處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汝又嗅此鑪中栴檀,此香若復然於一銖,室羅筏城四十里 內同時聞氣。於意云何,此香為復生栴檀木?生於汝鼻?為生於 空?阿難!若復此香生於汝鼻,稱鼻所生當從鼻出,鼻非栴檀,云 何鼻中有栴檀氣?稱汝聞香當於鼻入,鼻中出香說聞非義。若生於 空,空性常恒,香應常在,何藉鑪中爇此枯木?若生於木,則此香 質因爇成煙,若鼻得聞合蒙煙氣,其煙騰空未及遙遠,四十里內云 何已聞?是故當知香鼻與聞俱無處所,即嗅與香二處虛妄,本非因 緣、非自然性。 「阿難!汝常二時眾中持鉢,其間或遇酥酪醍醐名為上味。於意云 何,此味為復生於空中?生於舌中?為生食中?阿難!若復此味生 32 於汝舌,在汝口中秖有一舌,其舌爾時已成酥味,遇黑石蜜應不推 移,若不變移不名知味,若變移者舌非多體,云何多味一舌之知? 若生於食,食非有識,云何自知?又食自知,即同他食,何預於 汝,名味之知?若生於空,汝噉虛空當作何味?必其虛空若作鹹 味,既鹹汝舌亦鹹汝面,則此界人同於海魚;既常受鹹了不知淡, 若不識淡亦不覺鹹,必無所知,云何名味?是故當知味舌與甞俱無 處所,即甞與味二俱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汝常晨朝以手摩頭。於意云何,此摩所知,唯為能觸。能 為在手?為復在頭?若在於手,頭則無知,云何成觸?若在於頭, 手則無用,云何名觸?若各各有,則汝阿難應有二身。若頭與手一 觸所生,則手與頭當為一體,若一體者觸則無成;若二體者,觸誰 為在?在能非所,在所非能。不應虛空與汝成觸。是故當知覺觸與 身俱無處所,即身與觸二俱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汝常意中所緣善、惡、無記三性,生成法則。此法為復即 心所生?為當離心別有方所? 「阿難!若即心者,法則非塵,非心所緣,云何成處?若離於心別 有方所,則法自性為知?非知?知則名心,異汝非塵,同他心量即 汝即心,云何汝心更二於汝?若非知者,此塵既非色、聲、香、 味、離合冷煖及虛空相,當於何在?今於色空都無表示,不應人間 更有空外,心非所緣,處從誰立。是故當知法則與心俱無處所,則 意與法二俱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復次,阿難!云何十八界本如來藏妙真如性?阿難!如汝所明, 眼色為緣生於眼識,此識為復因眼所生,以眼為界?因色所生,以 色為界?阿難!若因眼生,既無色空無可分別,縱有汝識欲將何 用?汝見又非青黃赤白,無所表示從何立界?若因色生,空無色時 汝識應滅,云何識知是虛空性?若色變時,汝亦識其色相遷變,汝 33 識不遷,界從何立?從變則變,界相自無;不變則恒。既從色生, 應不識知虛空所在。若兼二種眼色共生,合則中離,離則兩合,體 性雜亂云何成界?是故當知眼色為緣生眼識界,三處都無,則眼與 色及色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又汝所明,耳聲為緣生於耳識。此識為復因耳所生,以耳 為界?因聲所生,以聲為界? 「阿難!若因耳生,動靜二相既不現前,根不成知,必無所知;知 尚無成,識何形貌?若取耳聞,無動靜故,聞無所成。云何耳形雜 色觸塵,名為識界,則耳識界復從誰立?若生於聲,識因聲有,則 不關聞,無聞則亡聲相所在;識從聲生,許聲因聞而有聲相,聞應 聞識不聞非界,聞則同聲,識已被聞誰知聞識,若無知者終如草 木。不應聲聞雜成中界,界無中位,則內外相復從何成?是故當知 耳聲為緣生耳識界,三處都無,則耳與聲及聲界三,本非因緣、非 自然性。 「阿難!又汝所明,鼻香為緣生於鼻識。此識為復因鼻所生,以鼻 為界?因香所生,以香為界? 「阿難!若因鼻生,則汝心中以何為鼻?為取肉形雙爪之相?為取 嗅知動搖之性?若取肉形,肉質乃身,身知即觸,名身非鼻,名觸 即塵,鼻尚無名云何立界?若取嗅知,又汝心中以何為知?以肉為 知,則肉之知元觸非鼻;以空為知,空則自知肉應非覺,如是則應 虛空是汝,汝身非知,今日阿難應無所在;以香為知,知自屬香, 何預於汝?若香臭氣必生汝鼻,則彼香臭二種流氣,不生伊蘭及栴 檀木,二物不來,汝自嗅鼻為香為臭。臭則非香,香應非臭,若香 臭二俱能聞者,則汝一人應有兩鼻,對我問道有二阿難,誰為汝 體?若鼻是一,香臭無二,臭既為香香復成臭,二性不有,界從誰 立?若因香生識因香有,如眼有見不能觀眼,因香有故應不知香, 34 知則非生,不知非識。香非知有,香界不成;識不知香,因界則非 從香建立,既無中間不成內外,彼諸聞性畢竟虛妄。是故當知鼻香 為緣生鼻識界,三處都無,則鼻與香及香界三,本非因緣、非自然 性。 「阿難!又汝所明,舌味為緣生於舌識。此識為復因舌所生,以舌 為界?因味所生,以味為界? 「阿難!若因舌生,則諸世間甘蔗、烏梅、黃連、石鹽、細辛、薑 桂都無有味。汝自嘗舌為甜為苦?若舌性苦,誰來嘗舌?舌不自 嘗,孰為知覺?舌性非苦,味自不生,云何立界?若因味生,識自 為味,同於舌根應不自嘗,云何識知是味非味?又一切味非一物 生,味既多生識應多體,識體若一體必味生。鹹淡甘辛和合俱生, 諸變異相同為一味應無分別,分別既無則不名識,云何復名舌味識 界?不應虛空生汝心識。舌味和合,即於是中元無自性,云何界 生?是故當知舌味為緣生舌識界,三處都無,則舌與味及舌界三, 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又汝所明,身觸為緣生於身識。此識為復因身所生,以身 為界?因觸所生,以觸為界? 「阿難!若因身生必無合離,二覺觀緣身何所識。若因觸生必無汝 身,誰有非身知合離者?阿難!物不觸知,身知有觸;知身即觸, 知觸即身。即觸非身,即身非觸,身觸二相元無處所,合身即為身 自體性,離身即是虛空等相,內外不成中云何立?中不復立內外性 空,即汝識生從誰立界?是故當知身觸為緣生身識界,三處都無, 則身與觸及身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又汝所明,意法為緣生於意識。此識為復因意所生,以意 為界?因法所生,以法為界? 35 「阿難!若因意生,於汝意中必有所思,發明汝意。若無前法,意 無所生,離緣無形,識將何用?又汝識心與諸思量,兼了別性,為 同為異?同意即意,云何所生?異意不同,應無所識。若無所識, 云何意生?若有所識,云何識意?唯同與異,二性無成,界云何 立?若因法生,世間諸法不離五塵。汝觀色法,及諸聲法、香法、 味法,及與觸法,相狀分明以對五根,非意所攝。汝識決定依於法 生,汝今諦觀法法何狀?若離色空、動靜、通塞、合離、生滅,越 此諸相終無所得。生則色空諸法等生,滅則色空諸法等滅,所因既 無,因生有識作何形相?相狀不有界云何生?是故當知意法為緣生 意識界,三處都無,則意與法及意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白佛言:「世尊!如來常說和合因緣,一切世間種種變化,皆 因四大和合發明。云何如來因緣、自然二俱排擯?我今不知斯義所 屬,惟垂哀愍,開示眾生中道了義無戲論法。」 爾時,世尊告阿難言:「汝先厭離聲聞、緣覺諸小乘法,發心勤求 無上菩提,故我今時為汝開示第一義諦。如何復將世間戲論、妄想 因緣而自纏繞?汝雖多聞如說藥人,真藥現前不能分別,如來說為 真可憐愍。汝今諦聽,吾當為汝分別開示,亦令當來修大乘者通達 實相。」阿難默然,承佛聖旨。 「阿難!如汝所言,四大和合,發明世間種種變化。阿難!若彼大 性體非和合,則不能與諸大雜和,猶如虛空不和諸色;若和合者, 同於變化,始終相成生滅相續,生死死生生生死死,如旋火輪未有 休息。阿難!如水成氷氷還成水。汝觀地性,麁為大地細為微塵, 至隣虛塵析彼極微,色邊際相七分所成,更析隣虛即實空性。阿 難!若此隣虛析成虛空,當知虛空出生色相。汝今問言:『由和合 故,出生世間諸變化相。』汝且觀此一隣虛塵,用幾虛空和合而 有?不應隣虛合成隣虛。又隣虛塵析入空者,用幾色相合成虛空? 若色合時,合色非空;若空合時,合空非色。色猶可析,空云何 36 合?汝元不知如來藏中,性色真空性空真色,清淨本然周遍法界; 隨眾生心應所知量,循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性,皆 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阿難!火性無我,寄於諸緣。汝觀城中未食之家欲炊爨時,手執 陽燧日前求火。阿難!名和合者,如我與汝一千二百五十比丘今為 一眾,眾雖為一,詰其根本各各有身,皆有所生氏族名字,如舍利 弗婆羅門種、優盧頻螺迦葉波種,乃至阿難瞿曇種姓。阿難!若此 火性因和合有,彼手執鏡於日求火,此火為從鏡中而出?為從艾 出?為於日來?阿難!若日來者,自能燒汝手中之艾,來處林木皆 應受焚。若鏡中出,自能於鏡出然于艾,鏡何不鎔。紆汝手執尚無 熱相,云何融泮。若生於艾,何藉日鏡、光明相接,然後火生。汝 又諦觀鏡因手執、日從天來、艾本地生,火從何方遊歷於此?日鏡 相遠非和非合,不應火光無從自有。汝猶不知如來藏中,性火真空 性空真火,清淨本然周遍法界;隨眾生心應所知量。阿難當知!世 人一處執鏡一處火生,遍法界執滿世間起,起遍世間寧有方所,循 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 言說,都無實義。 「阿難!水性不定,流息無恒。如室羅城迦毘羅仙、斫迦羅仙及鉢 頭摩訶薩多等諸大幻師,求太陰精用和幻藥,是諸師等,於白月晝 手執方諸承月中水。此水為復從珠中出?空中自有?為從月來?阿 難!若從月來,尚能遠方令珠出水,所經林木皆應吐流。流,則何 待方珠所出;不流,明水非從月降。若從珠出,則此珠中常應流 水,何待中宵承白月晝。若從空生,空性無邊水當無際,從人洎天 皆同陷溺,云何復有水陸空行?汝更諦觀,月從天陟,珠因手持, 承珠水盤本人敷設,水從何方流注於此?月珠相遠非和非合,不應 水精無從自有。汝尚不知如來藏中,性水真空性空真水,清淨本然 周遍法界;隨眾生心應所知量,一處執珠一處水出,遍法界執滿法 37 界生,生滿世間寧有方所,循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 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阿難!風性無體,動靜不常。汝常整衣入於大眾,僧伽梨角動及 傍人,則有微風拂彼人面。此風為復出袈裟角?發於虛空?生彼人 面?阿難!此風若復出袈裟角,汝乃披風,其衣飛搖應離汝體;我 今說法,會中垂衣,汝看我衣風何所在?不應衣中有藏風地。若生 虛空,汝衣不動,何因無拂?空性常住,風應常生;若無風時,虛 空當滅。滅風可見,滅空何狀?若有生滅,不名虛空;名為虛空, 云何風出?若風自生彼拂之面,從彼面生當應拂汝,自汝整衣云何 倒拂?汝審諦觀,整衣在汝,面屬彼人,虛空寂然不參流動,風自 誰方鼓動來此?風空性隔非和非合,不應風性無從自有。汝宛不知 如來藏中,性風真空性空真風,清淨本然周遍法界;隨眾生心應所 知量。阿難!如汝一人微動服衣有微風出,遍法界拂滿國土生,周 遍世間寧有方所,循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性,皆是 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阿難!空性無形,因色顯發。如室羅城去河遙處,諸剎利種及婆 羅門、毘舍、首陀兼頗羅墮、旃陀羅等,新立安居鑿井求水,出土 一尺於中則有一尺虛空,如是乃至出土一丈中間還得一丈虛空,空 虛淺深隨出多少。此空為當因土所出?因鑿所有?無因自生?阿 難!若復此空無因自生,未鑿土前何不無礙,唯見大地逈無通達? 若因土出,則土出時應見空入,若土先出無空入者,云何虛空因土 而出?若無出入,則應空土元無異因,無異則同,則土出時空何不 出?若因鑿出,則鑿出空,應非出土?不因鑿出,鑿自出土,云何 見空?汝更審諦諦審諦觀,鑿從人手隨方運轉,土因地移,如是虛 空因何所出?鑿空虛實不相為用、非和非合,不應虛空無從自出。 若此虛空,性圓周遍本不動搖,當知現前地水火風均名五大性真圓 融,皆如來藏本無生滅。阿難!汝心昏迷,不悟四大元如來藏,當 38 觀虛空為出為入,為非出入。汝全不知如來藏中,性覺真空性空真 覺,清淨本然周遍法界,隨眾生心應所知量。 「阿難!如一井空空生一井,十方虛空亦復如是,圓滿十方寧有方 所,循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 度,但有言說,都無實義。 「阿難!見覺無知,因色空有。如汝今者在祇陀林,朝明夕昏;設 居中宵,白月則光黑月便暗,則明暗等因見分析。此見為復與明暗 相并太虛空,為同一體、為非一體?或同、非同?或異、非異?阿 難!此見若復與明與暗及與虛空元一體者,則明與暗二體相亡。暗 時無明,明時非暗,若與暗一,明則見亡;必一於明,暗時當滅, 滅則云何見明見暗?若暗明殊,見無生滅,一云何成?若此見精與 暗與明非一體者,汝離明暗及與虛空,分析見元作何形相?離明離 暗及離虛空,是見元同龜毛兔角。明暗虛空三事俱異,從何立見? 明暗相背,云何或同?離三元無,云何或異?分空分見本無邊畔, 云何非同?見暗見明性非遷改,云何非異?汝更細審、微細審、詳 審、諦審,觀明從太陽、暗隨黑月、通屬虛空、壅歸大地,如是見 精因何所出?見覺空頑非和非合,不應見精無從自出。若見聞知, 性圓周遍本不動搖,當知無邊不動虛空并其動搖,地水火風均名六 大性真圓融,皆如來藏本無生滅。阿難!汝性沈淪,不悟汝之見聞 覺知本如來藏,汝當觀此見聞覺知,為生為滅?為同為異?為非生 滅?為非同異?汝曾不知如來藏中,性見覺明覺精明見,清淨本然 周遍法界,隨眾生心應所知量。如一見根見周法界,聽嗅嘗觸覺觸 覺知,妙德瑩然遍周法界,圓滿十虛寧有方所,循業發現。世間無 知,惑為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 義。 「阿難!識性無源,因於六種根塵妄出。汝今遍觀此會聖眾,用目 循歷,其目周視但如鏡中,無別分析,汝識於中次第標指,此是文 39 殊、此富樓那、此目乾連、此須菩提、此舍利弗。此識了知為生於 見?為生於相?為生虛空?為無所因突然而出?阿難!若汝識性生 於見中,如無明暗及與色空,四種必無元無汝見,見性尚無從何發 識?若汝識性生於相中,不從見生,既不見明亦不見暗,明暗不矚 即無色空,彼相尚無識從何發?若生於空,非相非見,非見無辯, 自不能知明暗色空,非相滅緣,見聞覺知無處安立;處此二非,空 非同無,有非同物,縱發汝識欲何分別?若無所因突然而出,何不 日中別識明月。汝更細、詳、微細詳審,見託汝睛,相推前境,可 狀成有,不相成無,如是識緣因何所出?識動見澄非和非合,聞聽 覺知亦復如是,不應識緣無從自出。若此識心本無所從,當知了別 見聞覺知圓滿湛然性非從所,兼彼虛空地水火風均名七大性真圓 融,皆如來藏本無生滅。阿難!汝心麁浮,不悟見聞發明了知本如 來藏。汝應觀此六處識心,為同為異?為空為有?為非同異?為非 空有?汝元不知如來藏中,性識明知覺明真識,妙覺湛然遍周法 界,含吐十虛寧有方所,循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 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爾時,阿難及諸大眾蒙佛如來微妙開示,身心蕩然得無罣礙。是諸 大眾,各各自知心遍十方,見十方空如觀掌中所持葉物,一切世間 諸所有物皆即菩提妙明元心,心精遍圓含裹十方;反觀父母所生之 身,猶彼十方虛空之中吹一微塵,若存若亡,如湛巨海流一浮漚, 起滅無從。了然自知獲本妙心常住不滅,禮佛合掌得未曾有,於如 來前說偈讚佛: 「妙湛總持不動尊, 首楞嚴王世希有, 銷我億劫顛倒想, 不歷僧祇獲法身; 願今得果成寶王, 還度如是恒沙眾, 將此深心奉塵剎, 是則名為報佛恩。 伏請世尊為證明, 五濁惡世誓先入, 如一眾生未成佛, 終不於此取泥洹; 大雄大力大慈悲, 希更審除微細惑, 40 令我早登無上覺, 於十方界坐道場, 舜若多性可銷亡, 爍迦囉心無動轉。」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三

 

正本首楞嚴經 卷 3

[1] 육입에 나아가 여래장을 밝힘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육입이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지면 곧 허공에서 또다른 헛보이는 꽃이 보일 것이니 그 눈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보는 것이 생겨 그 중간에 있으면서 이 물질의 현상[色像]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보고 깨닫는 성품[見覺性]'이라고 하니 그 보는 놈의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본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보아 깨닫는 성품은 밝고 어두운 데에서 온 것이 아니며 눈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부터 왔다면 어두워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어두운 데로부터 왔다면 밝아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눈에서 생긴 것일진댄 반드시 밝음과 어두움이 없으면 이렇게 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다. 또 허공이 스스로 볼 것이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으로 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眼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갑자기 귀를 막아서 그것이 오래되어 피로해지면 머리 속에서 또다른 허망한 소리가 들릴 것이니 귀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 생긴 현상이니라.

움직이는 것과 고요한 것, 이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듣는 것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소리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들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듣는 놈이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듣는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2] 허망한 것은 실제가 없음을 밝힘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들어 깨닫은 성품은 움직임과 고요함에서 온 것이 아니며 귀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움직임에서 왔다면 고요해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고요함을 듣지 할 것이고, 만약 고요한 데서 왔다면 움직이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움직임을 듣지 못할 것이고, 만약 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움직임과 고요함이 없으면 이러한 듣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고, 만약 허공을 좇아 나온 것이라면 듣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거든 또 허공이 스스로 들을 것인데 너희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로 들어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耳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코로 숨을 급하게 들이쉬어서 오래 들이쉬고 있으면 피로가 생겨서 코 속에 찬 촉감이 있음을 느낄 것이니, 그 촉감으로 인하여 트이고 막힘과 허하고 실한 것을 분별하며, 그와 같이 모든 향기와 구린내까지도 맡는 것이니 코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트인 것과 막힌 것, 이 두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냄새 맡음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모든 냄새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맡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냄새를 맡는 놈이 트이고 막힘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냄새라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맡아 깨닫는 성품은 트이고 막힌데서 온 것이 아니며 코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트인데서 왔을진대 막히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막힘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만일 막힌데서 왔을진대 트이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트임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만약 코에서 생긴 것일진대 반드시 트임과 막힘이 없으면 그와같이 맡는 정기가 본래자성이 없을 것이고,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일진댄 냄새를 맡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루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냄새를 맡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핥아서 오래오래 핥다가 피로가 생기면 그 사람이 만약 병이 있으면 쓴 맛을 느낄 것이고, 병이 없는 사람이면 약간 단 촉감을 느낄 것이다. 그 달고 쓴 것으로 인하여 저 혀의 의식이 드러날 것이고, 핥지 않을 적에는 담담한 성품이 항상 있으리니 혀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의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맛을 봄이 생겨 그것이 중간에 있으면서 이 맛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맛보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맛을 보는 놈이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맛이라는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3] 참된 것에 의해 허망함을 일으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맛보아 깨닫는 성품은 달고 쓴데서 온 것이 아니며 담담한 맛에서 온 것도 아니며 혀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달고 쓴데서 왔을진대 담담하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담담한 맛을 알 것이며, 만약 담담한데서 왔을진대 달거나 쓰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그 달고 쓴 맛을 알 것이며, 만약 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달거나 쓰거나 담담함이 없으면 이렇게 맛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맛을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이 이루어지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맛볼 것이니 그것이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로 맛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舌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찬 손으로 뜨거운 손을 잡았을 적에 만약 찬 기운이 많으면 뜨거운 손이 차가워질 것이고 만약 더운 기운이 많으면 찬 손이 뜨거워지리니, 이와 같이 합했을 때 깨닫는 촉감은 서로 떨어져도 느낌이 남아 있나니 교섭하는 세력이 만일 이루어진다면 접촉으로 인한 피로 때문일 것이니 몸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떨어지고 합하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촉감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촉감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느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이 느낌이 떨어지고 합하는 것과 배반하고 따르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는 느끼는 그 자체가 없으리나.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느껴 깨닫는 성품은 본래 떨어지거나 합해진데서 온 것이 아니고 어긋나거나 따르는데서 온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떨어지는 데서 온 것이라면 합하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합하는 것을 느끼며, 만약 합하는 데서 온 것이라면 떨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떨어짐을 느끼겠느냐? 어긋남과 따르는 두 가지 현상도 역시 그러한 것이며, 만약 몸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떨어짐과 합함과 어긋남과 따르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느끼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느낌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의 접촉으로 인식하는 것[身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4] 십이처에 나가 여래장을 나타냄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피로하면 잠자고 실컷 자고는 문득 깨어서 대상을 보면 기억하며, 그 기억이 사라지면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뒤바뀐 생겨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것이니, 습관을 흡수하여 들여서 그것이 가운데로 돌아가되 서로 뛰어넘지 아니함을 '생각으로 인식하는 근원'이라고 하나니 생각과 피로는 모두다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생기고 없어지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모아진 앎이 중간에 있으면서 내진(內塵)을 흡수해 들여서 그 보고 들음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흐름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거꾸로 흐름을 '알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앎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깨고 잠자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알아 깨닫는 성품은 생기거나 없어지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깨거나 잠자는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생기는데서 온 것이라면 없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누구로 하여금 없어짐을 알게 하며, 만약 없어지는데서 온 것이라면 생기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생기는 것을 알겠느냐? 깨고 잠자고 하는 두 가지 형상도 역시 그러하다. 만약 생각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생기고 없어지고 깨고 잠자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아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지각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지각하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으로 생각하여 인식하는 것[意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십이처(十二處)가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眞如)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네가 다시 기타림 숲과 모든 샘물과 못들을 보아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런 것들은 물질의 모양이 눈으로 보는 작용을 생기게 한다고 여기느냐 눈이 물질의 모양을 생겨나게 한다고 여기느냐?

아난아! 만약 눈이 색질의 모양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색질의 모양이 아니므로 색질의 성품이 응당 사라질 것이다. 색질의 성품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모든 것이 없어진다. 색질의 모양이 이미 없어지면 누가 허공의 본질(本質)을 밝히겠느냐? 허공도 역시 그러하니라.

 

[5] 감각기관에 의거하여 밝힘

만약 물질이 눈으로 보는 데서 생기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물질의 모양이 아니므로 눈으로 보는 것이 곧 사라져 버리리니 사라져 없어지면 모두가 없어질 것인데 무엇이 허공인지 물질인지 밝히겠느냐?

아난아! 너는 다시 이 기타원 가운데서 밥이 마련되면 북을 치고 대중을 모을 적엔 종을 쳐서 그 북과 종소리가 앞뒤로 서로 연속됨을 들어 보아라.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런 것들은 소리가 귀가에 온다고 생각되느냐? 아니면 귀가 소리 있는 곳으로 간다고 생각되느냐?

아난아! 만약 그 소리가 귀 가에서 오는 것이라면 내가 시라벌성에서 걸식을 할 적에 기타림에는 내가 없는 것처럼 그 소리가 반드시 아난의 귀 가에 온 것이라면 목련과 가섭은 응당 함께 듣지 못해야 할 것이어늘 어찌 그 가운데 千二백 五十명의 사문들이 한꺼번에 종소리를 듣고 밥 먹는 곳으로 모두 모이느냐?

만약 네 귀가 소리나는 곳으로 갔다면 내가 기타림에 왔을 적에는 시라벌성엔 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네가 북소리를 들을 적엔 그 귀가 이미 북치는 곳으로 갔으면 종소리가 함께 나더라도 응당 모두 듣지 못할 것이거든 더구나 어떻게 그 가운데 코끼리, 말, 소, 염소 등 갖가지 소리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다더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듣는 것과 소리는 모두 처소가 없으므로 듣는 곳과 소리나는 곳의 두 처소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너는 다시 이 향로에서 나는 전단향 냄새를 맡아 보아라. 그 향을 만약 한 수(銖)만 태우면 시라벌성 四十리 안에서 동시에 그 향기를 맡을 것이다. 네 생각엔 어떠하냐? 그 향기는 전단향 나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코에서 생겼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허공에서 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그 향기가 너의 코에서 생긴 것이라서 코에서 나온 것이라 하면 마땅히 코에서 나와야 할 것인데 코가 전단이 아니거늘 어떻게 코 속에 전단의 향기가 있다고 하겠느냐? 네가 향기를 맡는다고 한다면 마땅히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코 속에서 향기가 나온다면 냄새를 맡는다는 말은 옳지 못하니라.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허공의 성품은 항상한 것이므로 향기도 항상 있어야 할 것인데 어째서 향로에다 이 나무를 태워야만 향기가 생긴다더냐?

만약 나무에서 생긴 것이라면 그 향기의 본질은 태우므로 인하여 연기가 되었으므로 코가 냄새를 맡을 적에는 응당 연기가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그 연기가 공중으로 올라가 멀리 퍼지기도 전에 四十리 안에서 어떻게 그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이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향기와 코와 냄새를 맡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냄새 맡는 곳과 향기나는 곳의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6] 처소는 실제가 없음을 밝힘

아난아! 네가 매일 두 때씩 대중 가운데서 발우를 가지고서 이따금 유병(油餠)이나 밀반(蜜飯)을 만나게 되면 최고의 맛이라고 하나니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맛은 허공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음식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이 맛이 너의 혀에서 나온 것이라면 너의 입 속에는 혀가 하나 뿐이니 그 혀는 조금전에 이미 단 맛이 되었으므로 흑석밀(黑石蜜)을 먹게 되더라도 응당 달라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달라지지 않는다면 맛을 안다고 할 수 없고 만약 달라진다면 혀가 여러 개가 아닌데 어떻게 여러가지 맛을 한 개의 혀로서 알겠느냐?

만약 음식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음식은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스스로 알겠느냐? 또 음식이 스스로 안다면 곧 다른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을 것이니 너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맛을 안다고 하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네가 허공을 씹어보아라. 무슨 맛이더냐? 만약 허공이 짠 맛이라면 이미 너의 혀를 짜게 하였으므로 네 얼굴도 짜야 하리니 그렇다면 이 세계의 사람들은 바다의 고기와 같아서 늘 짠 것을 받아왔으므로 담담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담담함을 알지 못한다면 역시 짠 것도 느끼지 못해서 반드시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니 어떻게 맛을 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이 알아야 한다. 맛과 혀와 맛을 보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 맛보는 것과 맛,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네가 항상 새벽마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 만져서 느끼는 것은 어느 것이 감촉을 느낀다고 생각하느냐? 느끼는 것이 손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머리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만약 손에 있는 것이라면 머리는 느낌이 없어야 하리니 어떻게 감촉을 느낀다더냐?

만약 머리에 있을 것 같으면 손은 쓸모가 없으리니 어떻게 접촉한다고 하겠느냐? 만약 각각 있는 것이라면 너 아난은 응당 두 몸둥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머리와 손이 한 번의 접촉으로 생기는 것이라면 곧 손과 머리가 한 몸이 되어야 할 것이고, 만약 한 몸 이라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만약 두 몸이라면 감촉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손에 있다면 머리는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고, 머리에 있다면 손은 몰라야 할 것이니 허공이 너와 더불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촉감을 느끼는 것과 몸은 모두가 처소가 없어서 몸과 감촉,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7] 십팔계에 의하여 여래장을 밝힘

아난아! 네가 항상 생각속에 반연하는 착한 성품과 악한 성품, 그리고 무기성(無記性)의 세 가지 성품이 법칙(法則)을 생성(生成)하나니, 이 법칙은 마음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냐 아니면 마음을 떠나서 별도로 처소가 있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마음에 의한 것이라면 법(法)은 대상이 아니므로 마음의 반연하는 바가 아니거니 어떻게 처소를 이루겠느냐?

만약 마음을 떠나서 따로이 방소가 있는 것이라면 법칙의 자성이 앎이 있느냐 없느냐? 만약 앎이 있다면 마음이라고 이름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너와는 상관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대상도 아니므로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같은 것이니 너에 의한 것이며, 마음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네 마음이 네게 있어서 다시 둘이 되겠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그 대상은 빛, 소리, 향기, 맛과 떠나거나 합해지는 것과 차거나 따뜻한 것과 허공의 모양도 아닐 것이니 어디에 있다고 하겠느냐? 지금 물질과 허공에 모두 표시할 수 없으니 응당 인간이 다시 허공 밖에 있지 아니하니라. 마음이 반연하는 것이 아니면 법의 처소가 어디로부터 이루어지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법칙과 마음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마음과 법칙,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十八계(界)가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눈과 빛이 인연이 되어서 안식(眼識)이 생긴다'고 하나니, 그 인식은 눈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므로 눈으로 경계(界)를 삼아야 한다고 하겠느냐? 아니면 물질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물질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눈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이미 빛과 허공이 없으면 분별할 수가 없을것이어니 비록 너의 의식이 있은들 어디에 쓰려하느냐? 네가 보는 것이 또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이 아니라서 표시할 수가 없는데 무엇으로 경계를 성립하려느냐?

만약 물질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허공이 색깔이 없을 적에는 너의 의식도 응당 없어져야 하± 어떻게 그것이 허공의 성품인 줄을 알 것이며, 만약 색깔이 변할 적엔 너도 그 색깔의 모양이 변함을 안다면 너의 의식은 변하지 않는 것인데 경계가 어디를 좇아 성립되겠느냐? 따라서 변하는 것이라면 곧 변하므로 경계의 모양이 스스로 없을 것이며 변하지 않는다면 곧 항상하더라도 이미 빛을 따라 생겼으므로 응당 허공의 소재를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두 가지를 겸해서 눈과 빛이 함께 생기게 했을진댄 합 하였다면 가운데가 나뉘어지고 서로 나뉘어진 것이라면 둘이 합하여진다. 그 체성(體性)이 섞이어 혼란할 것이니 어떻게 경계를 이루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과 빛이 인연이 되어서 눈으로 보아 아는 경계를 생기게 한다고 하는 그 세 가지가 모두 없는 것이어서, 눈과 빛 그리고 빛의 경계, 이 세가지가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8] 귀와 소리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이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로 들어 아는 것이 생긴다'고 하나 그 의식은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소리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소리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현상이 이미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귀가 앎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반드시 아는 것이 없다면 안다는 것도 오히려 성립됨이 없을 터이니 인식이 어떤 모양이겠느냐? 만약 귀로 듣는 것을 취한다면 움직이고 고요함이 없으므로 듣는 것이 성립될 수 없으리니 어떻게 귀와 형상이 물질과 감촉이 섞인 것을 가지고 인식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귀로 인식하는 경계가 다시 어디를 따라 성립되겠느냐?

만약 소리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귀가 인식하는 것은 소리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듣는 것과는 직접 연관이 없을 것이니 듣는 그 자체가 없다면 소리의 소재가 없을 것이다. 저 인식하는 것이 소리를 좇아 생기고 소리는 듣는 것으로 인하여 소리의 모양이 생긴다고 인정한다면 들을 적에 응당 그 인식하는 것을 들어야 하며 듣지 못한다면 귀가 인식하는 경계가 아니리라.

듣는 것은 소리와 같아서 의식이 이미 들음을 당하였거니, 또다시 무엇이 의식을 듣는 것인 줄 알겠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마침내 풀이나 나무와 같을 것이다.

소리와 듣는 것이 섞이어서 중간의 경계를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니 귀가 인식하는 경계가 중간 위치가 없으면 안과 밖의 모양이 다시 어디로부터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가 인식하는 경계를 생기게 한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귀와 소리 그리고 소리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9] 코와 향기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 의식은 코로 인하여 생긴 것 이므로 코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향기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향기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코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마음 속에 그 무엇을 코라고 하겠느냐? 살로 된 한 쌍의 오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느냐? 냄새를 맡아 아는 움직이는 성품이라고 생각하느냐? 만약 살로된 모양이라고 여긴다면 살로 된 바탕은 곧 몸이고 몸이 느끼는 것은 곧 감촉이니 몸이라고 하면 코는 아니고 감촉이라고 하면 이는 곧 감촉의 대상이다. 코도 오히려 이름할 수 없거니 어떻게 경계를 이루겠느냐?

만약 냄새를 맡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할진댄 또 네 마음 속에 무엇으로 안다고 생각하느냐? 살이 안다고 한다면 살이 아는 것은 본래가 감촉이지 코가 아니며 허공이 안다고 한다면 허공은 스스로 아는 것이라서 살은 응당 깨닫지 못할 것이니 그렇다면 이는 허공이 곧 너이고 네 몸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의 아난은 응당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향기가 안다고 생각한다면 아는 그 자체가 향기에 속하는데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만약 향기와 구린 냄새가 반드시 네 코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그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 냄새가 이란(伊蘭)이나 전단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 물질이 오지 않을 적에 네가 네 코를 맡아 보아라. 향기로우냐 구리냐?

구린 냄새는 향기가 아니며 향기는 응당 구리지 않으리니 만약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를 다 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너 한 사람이 응당 두 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도 물을 적에도 두 아난이 있으리니 어느 것이 너의 몸이더냐?

만약 코가 하나라면 향기와 구린내 두 가지가 아니라 구린내가 이미 향기가 되며 향기가 다시 구린내가 되어서 두 성분이 있지 아니하리니 경계가 무엇으로 인하여 성립되겠느냐? 만약 향기에 인하여 생긴다면 그 인식은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니 이는 마치 눈이 다른 것은 볼 수 있으면서도 눈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응당 향기를 알지 못하리니 안다면 향기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알지 못한다면 이는 코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향기가 앎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니며 향기의 경계가 성립되지 못하고 인식하는 것이 향기를 느끼지 못하면 인식하는 경계가 향기로 해서 이루어짐이 아니리라.

이미 중간이 없으면 안팎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저 냄새맡는 성품이 마침내 허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코와 향기 그리고 향기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0] 혀와 맛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아서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니 그 혀의 인식은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맛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모든 세간의 감자와 오매와 황연과 소금과 세신과 생강, 계피가 모두 맛이 없을 것이다. 네가 네 혀를 맛보아라. 달더냐 쓰더냐?

만약 혀의 성품이 쓰다면 누가 와서 혀를 맛보겠느냐? 혀가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이어니 무엇이 알아 깨닫겠느냐? 혀의 성품이 쓴 것이 아니라면 맛이 저절로 생기지 않을 터이니 어떻게 경계가 이루어지겠느냐?

만약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인식하는 걋 스스로 맛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는 곧 혀와 같아서 응당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맛인지 맛이 아닌지를 알겠느냐? 또 온갖 맛이 한 물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맛이 여러 가지에서 생기므로 그 인식하는 것도 응당 여러 개의 몸이 될 것이며, 인식하는 본체가 만약 하나이고 그 체는 반드시 맛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맛의 화합된 것이거나 함께 생기는 것과 여러 가지로 변하여 달라진 것이 함께 동일 맛이 되어서 응당 분별이 없을 것이다. 분별이 이미 없으면 인식한다고 할 수 없거니 어떻게 혀가 맛보아서 인식하는 경계라고 하겠느냐? 허공이 너의 마음에 인식을 생기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혀와 맛이 화합하면 곧 그 가운데는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경계가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 처소는 모두 없어서 혀와 맛 그리고 혀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1] 몸과 접촉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몸과 접촉이 인연이 되어서 몸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나니 그 인식은 몸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몸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접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접촉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몸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반드시 합해지고 나눠지는 두 가지를 깨닫게[覺觀]할 인연이 없으리니 몸이 무엇을 알겠느냐?

만약 접촉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너의 몸이 없어야 하리니 어찌 몸도 아닌 것이 합하고 나뉘어짐을 알겠느냐?

아난아! 물질이 접촉하여도 알지 못하고 몸이라야 접촉이 있음을 아나니 몸을 안다면 곧 그것은 접촉하는 놈이고 접촉함을 안다면 곧 그것이 몸이니, 그렇다면 곧 접촉하는 놈이라면 몸이 아니고 몸이라면 접촉하는 놈은 아니다. 몸과 접촉하는 놈이 두 가지는 본래 처소가 없는 것이다. 몸에 합하면 곧 몸 자체의 성품이 되고 몸에서 떠나면 곧 허공과 같은 모양이므로 안과 밖이 이루어지지 않거니 중간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중간이 성립되지 아니하면 안과 밖의 성격이 빌 것인데 너에게 인식하는 것이 생긴다고 한들 어데를 좇아 경계가 성립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과 접촉하는 것이 인연이 되어서 몸과 인식의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어서 몸과 접촉하는 것 그리고 몸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이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2] 생각과 법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아서 '뜻과 법진(法塵)이 인연이 되어서 의식(意識)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 의식은 뜻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서 뜻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법진(法塵)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서 법진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뜻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의중(意中)에는 반드시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너의 뜻을 나타나게 하리니 만약 앞의 법진(法塵)이 없으면 뜻이 생길 곳이 없을 것이다. 대상을 여의고서는 형상이 없는 것이거니 의식을 어디다 쓰겠느냐?

또 너는 의식하는 마음과 모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과 겸하여 분명하게 분별하는 성품이 같다고 생각하느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뜻과 같으면 그것이 곧 뜻일 터이니 어떻게 생긴 것이며 뜻과 다르면 같지 아니하므로 응당 인식하는 것이 없어야 하리니, 만약 인식할 것이 없으면 어떻게 뜻이 생긴다고 하겠으며, 만약 인식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 의식(意識)이라고 하겠느냐? 같거나 다르거나 한 두 성품이 성립됨이 없으니 경계가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법진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세간의 모든 법이 다섯 가지 대상을 벗어나지 못하나니 너는 빛, 소리, 향기, 맛, 접촉을 살펴 보아라. 모양이 분명하여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상대할지언정 뜻의 간섭을 받는 것은 아니니 너의 의식이 결정코 법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면 너는 지금 자세히 보아라. '법진'이라는 그 법은 어떤 모양이더냐? 만약 밝고 어둡거나 움직이고 고요하거나 통하고 막혔거니 그대로 있고 변하거나 합하고 떠나거나 함을 벗어나면 이 여러 가지 모양을 뛰어 넘고서는 마침내 얻을 것이 없으리니 생긴다면 물질이나 허공 등의 모든 법(法)이 생겨날 것이고 없어진다면 물질이나 허공 등의 모든 법이 없어지느니라.

인연하는 것이 이미 없거니 인연으로 해서 의식이 생기는 것이 어떤 형상이 되겠느냐? 모양이 없으면 경계가 어떻게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과 법진이 인연이 되어서 뜻이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어서 뜻과 법진 그리고 뜻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이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3] 아난이 발하여 일으키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늘 화합과 인연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일체 세간에 갖가지 변화가 모두 네 가지 원소의 화합으로 인하여 드러난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과 자연 두 가지 다 아니라고 배척하셨습니까? 제가 지금 그 뜻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가엾게 여기시어 중생들에게 중도의 또렷한 이치를 보이시와 장난같은 논리에 빠짐이 없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 때에 세존이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앞에서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모든 소승법(小乘法)을 싫어해서 발심하여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성실하게 탐구하므로 내가 지금 너에게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열어 보였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세간의 장난같은 논리인 망상의 인연에 스스로 얽매이느냐? 네가 비록 많이 들었다고는 하나 마치 약을 말하는 하는 사람이 참다운 약이 앞에 있는데도 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여래가 진실로 너를 가련하다고 하신 것이니라."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하여 분별해서 열어 보이며 또한 장래에 대승을 닦을 자들로 하여금 실상을 통달하게 하겠다.

아난이 잠자코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들었다. 아난아! 네 말과 같아서 '네 가지 원소[四大]가 화합하여 세간의 갖가지 변화를 일으킨다'고 하니, 아난아! 만약 저 원소[大]의 성품 자체가 화합이 아니라면 모든 원소와 섞일 수 없음이 마치 허공의 모든 물질이 화합할 수 없는 것과 같고, 만약 화합할 수 있다면 변화함과 같아서 처음과 끝이 서로 이루어지며 나고 없어짐이 서로 이어져서 났다가는 죽고 죽었다가는 나며 나고 죽고 죽음이 마치 화륜(火輪)이 도는 것과 같아서 쉼이 없으리라.

아난아! 마치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얼음이 다시 물이 되는 것과 같나니라.

 

[14] 흙이라는 원소

네가 땅의 성품을 살펴 보아라. 큰 것은 큰 땅덩이가 되고 작은 것은 미세한 먼지가 되나니, 인허진(隣虛塵)에 이르러서는 아주 지극히 작은 색변제상(色邊際相 : 지금의 분자)을 일곱 등분으로 쪼개어서 이루어진 것이니 다시 인허진을 쪼갠다고 한들 어찌 참다운 허공의 성품이야 되겠느냐? 아난아! 만약 저 지극히 작은 먼지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허공도 물질의 모양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네가 지금 '화합으로 말미암아 세간에 모든 변화하는 현상이 생기지 않느냐'고 물었으니 너는 우선 이 하나의 지극히 작은 먼지를 보아라. 몇 개의 허공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이냐?

응당 지극히 작은 먼지가 합해져서 지극히 작은 먼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지극히 작은 먼지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얼마나 되는 물질이 합해서 허공이 되었겠느냐?

만약 물질이 합해졌을 경우 물질이 합해진 것이지 허공은 아니며 만약 허공이 합해졌을 경우 허공이 합해진 것이지 물질은 아니니, 물질은 오히려 쪼갤 수가 있지만 허공이야 어떻게 합할 수가 있겠느냐?

너는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질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물좇 청정하고 본래의 자연 그대로여서 이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바 정도에 응하여 업보대로 나타나거늘 세간 사람들은 지식이 없어서 인연과 자연의 성품이라고 픽ㅗ構 있으니 이는 다 식심(識心)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므로 다만 말이 있을 뿐이지 실제 이치는 전연 없는 것이니라.

 

[15] 불이라는 원소

아난아! 불이라는 원소[火大]의 성품은 실체가 없어서 모든 인연에 붙어야만 하나니 너는 이 성 안에 밥을 먹지 아니한 집을 보아라. 밥을 지으려고 할 적에 손에 양수(陽燧)를 들고 햇볕 앞에서 불을 구하나니 아난아! 화합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내가 너희들 一千二百 五十비구들과 지금 한 무리가 된 것과 마찬가지니 그 무리는 비록 하나이나 그 근본을 따지면 각각 몸이 다르며 모두 태어난 씨족과 그 이름이 따로 있으니 사리불은 바라문 종족이고 우루빈나는 가섭바(迦葉波)종족이고 그리고 아난은 구담(瞿曇)의 종성인 것과 같나니라.

아난아! 만약 불의 성품이 화합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라면 저 손이 거울을 잡고 햇빛에서 불을 구할 적에 그 불은 거울 속에서 나오는 것이냐 쑥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니면 해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해에서 나왔다면 자연 네 손에 있는 쑥을 태울 적에 거쳐 오는 곳의 숲과 나무가 모두 타야 할 것이며, 만약 거울에서 나온 것이라면 거울에서 나와 쑥을 태울 수 있는 것인데 거울은 어찌하여 녹지 않느냐? 네 손에 들려 있으면서도 오히려 뜨겁지도 아니하니 어떻게 녹겠느냐? 만약 쑥에서 생긴 것이라면 어째서 해와 거울의 빛이 서로 닿은 다음에야 불이 생기느냐?

너는 또 자세히 보아라. 거울은 손에 들려 있고 해는 하늘에서 오며 쑥은 땅에서 난 것인데 불은 어느 곳으로부터 여기에 온 것이냐? 해와 거울이 거리가 멀어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그렇다고 불꽃이 나는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니라.

네가 오히려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속에 성품이 불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불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 퍼져 있으면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는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한 곳에서 거울을 들면 한 곳에 불이 생기고 우주에 골고루 들고 있으면 온 세상에 가득하게 일어날 것이다. 온 세상에 골고루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생각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16] 물이라는 원소

아난아! 물의 성품은 일정하지 않아서 흐르고 그치는 것이 항상함이 없나니라. 시라벌성에 가비라(迦毘羅)신선과 작가라(斫迦羅)신선과 발두마(鉢頭摩)와 하살다(訶薩多)등의 환술사 들이 달[太陰]의 정기를 구하여 그것으로 환술의 약을 화합할 적에 그 환술사들의 달밝은 밤중에 손에 방저(方諸)를 들고 달 속의 물을 받는데 그 물은 구슬 속에서 나온 것이냐 공중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냐 아니면 달에서 온 것이냐?

아난아! 만약 달에서 온 것이라면 오히려 먼 곳에 구슬로 하여금 물이 생기게 할 수 있는 것이거니 그렇다면 경과하는 곳의 숲과 나무가 다 물이 흘러야 하리니 물이 흐른다면 어찌하여 방저(方諸)에서 생기기를 기다릴 것이며 흐르지 않는다면 물이 달에서 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만약 구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 구슬 속에 항상 물이 흐르리니 어찌하여 밤중에 밝은 달빛을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허공의 성품이 변두리가 없으므로 물도 마땅히 한계가 없어서 인간으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다함께 물에 잠길것인데 어찌하여 다시 물과 육지와 허공의 구별이 있겠느냐?

너는 다시 자세히 보아라. 달은 하늘에 떠 있고 구슬은 손에 들려 있고 구슬의 물을 받는 쟁반은 본래 사람이 설치해 놓은 것이니 물은 어디로부터 여기에 흐르느냐? 달과 구슬은 거리가 서로 멀어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물의 정기가 오는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기지는 아니할 것이다.

너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물이 청정한 본래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한 곳에서 구슬을 잡으면 한 곳에 물이 나오고 온 우주에서 두루 잡으면 우주에 가득하게 생긴다. 세상에 가득하게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 말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는 것이다.

 

[17] 바람이라는 원소

아난아! 바람의 성품은 실체가 없어서 움직이고 고요함이 일정하지 아니하다. 네가 옷깃을 여미고 대중에게 들어갈 적에 가사 자락이 펄럭여서 곁에 있던 사람에게 미치면 곧 가벼운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 스치리니 그 바람은 가사에서 나오느냐 허공에서 생겼느냐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겼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네 옷이 펄럭이지 아니하였을 적에는 어떤 연고로 바람이 스치지 않느냐? 허공의 성품은 항상 있는 것이므로 바람도 마땅히 항상 있어야 할 것이며 바람이 없을 적에는 허공이 마땅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없는 것은 알 수가 있지만 허공이 없어지는 것은 어떤 모양일까? 만약 생기거나 없어짐이 있다면 허공이라고 이름하지 못할 것이고 허공이라고 이름한다면 어찌하여 바람이 나오겠느냐?

만약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마땅히 네게로 불어와야 할 것인데 네가 옷을 여밀적에 어찌하여 바람이 꺼꾸로 부느냐?

너는 자세히 보아라. 옷을 여미는 것은 너에게 있고 얼굴은 저 사람에 속해 있으며 허공은 고요하여 요동하지 않는데 바람은 어느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것이냐? 바람과 허공은 성품이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화합이 아니니 바람이 어디서부터 온 데가 없는데 저절로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니라.

>너는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속에 성품이 바람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바람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해서 중생들의 마음으로부터 아는 바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아난아! 만일 너 한 사람이 의복을 약간 펄럭이면 가벼운 바람이 나오고 우주에 골고루 펄럭거리면 우주에 가득하게 생기나니 세상에 골고루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 나타나거늘 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克건構 헤아림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는 것이다.

 

[18] 보는 원소

아난아! 보고 깨닫는 것이 앎이 없어서 물질과 허공으로 인하여 생기나니 네가 지금 기타림에 있을 적에 아침에는 밝고 저녁에는 어두우며 설사 밤중이라도 보름달이 비출 적에 환하고 그믐에는 어두운데 그 밝고 어두운 것들을 보는 것으로 인하여 분석하나니, 보는 것이 밝고 어두운 형상과 아울러 큰 허공과 똑같이 한 덩어리이냐 한 덩어리가 아니냐? 혹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며 혹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느냐?

아난아! 그 보는 것이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큰 허공으로 더불어 본래 한 덩어리라면 밝고 어두운 두 가지 실체가 서로 없어서 어두울 적엔 밝음이 없어지고 밝을 적엔 어두움이 없어지리라.

만약 어둠과 한 덩어리라면 밝은 적에는 마땅히 보는 놈이 없어질 것이며 반드시 밝음과 한 덩어리라면 어두울 적에는 마땅히 보는 놈이 없어질 것이다. 없어지면 어떻게 밝음과 어두움을 보겠느냐? 만약 밝음과 어두움은 다르다고 할지언정 보는 놈은 생기고 없어짐이 없을 것인데 한 덩어리가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이와 같이 보는 정기가 밝음과 어둠으로 한 덩어리가 아니라면 너는 밝음과 어둠 그리고 큰 허공을 여의고서 보는 놈의 근원을 분석해 보아라. 어떤 모양이겠느냐? 밝음을 여의고 어두움을 여의며 그리고 허공을 여의면 보는 놈은 본래 거북의 털이나 토끼 뿔과 같을 것이니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허공, 이 세 가지가 다 다르다면 무엇으로 인하여 보는 놈이 성립되겠느냐?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배치되는데 어떻게 같다고 하겠으며 세 가지를 다 여의면 본래 없는데 원래 없는 것은 어떻게 다르다고 하겠으며, 허공을 보는 놈을 나눈다면 본래 한계가 없는데 어떻게 같지 않다고 하겠으며, 어두움도 보고 밝음도 보아서 보는 성품이 변하여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시 자세하게 살펴 보아라. 밝음은 태양으로부터 오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데서 오며 통함은 허공에 속하고 막힘은 대지(大地)로 돌아간다. 이와 같아서 보는 정기는 어디로 인하여 생기느냐?

보는 것은 깨달음이고 허공은 완고한 것이어서 화합이 아니니 보는 정기가 어디서부터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니라. 오묘하게 보고 듣고 아는 것이 그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동요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변두리가 없고 동요하지 않는 허공과 동요하는 흙, 물, 불, 바람을 아울러 여섯 가지 원소라고 이름하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기고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너의 성품이 잠겨 빠져서 네가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이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마땅히 이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 생기더냐 없어지더냐 같더냐 다르더냐 생기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냐 같음도 다름도 아니냐?

너는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보는 것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봄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이는 마치 하나의 보는 놈이 우주를 두루보는 것처럼 듣는 놈, 냄새맡는 놈, 맛보는 놈, 접촉하는 놈, 그리고 깨달아 아는 놈이 오묘한 덕이 밝아서 우주에 두루하고 시방에 원만하거니 어찌 장소가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의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19] 의식이라는 원소

아난아! 의식의 성품은 근원이 없어서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과 그 대상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생기나니라.

네가 지금 이 모임의 성스러운 대중들을 두루 살필 적에 눈으로써 차례로 둘러보는데 그 눈이 둘러보는 것은 다만 맑은 거울과 같아서 별달리 분석할 것이 없겠지만 너의 의식은 속에서 차례로 지목하기를 이는 문수이고 부루나이며, 이는 목건련이고 수보리이며, 이는 사리불이라고 할 것이니라.

그렇게 아는 의식이 보는 놈에서 생기는 것이냐 대상에서 생기는 것이냐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냐 까닭없이 돌연히 나오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너의 의식의 성품이 보는 가운데에서 생긴다면 밝고 어두운 것과 물질과 허공은 없을 것이다. 이 네 가지가 반드시 없으면 따라서 너의 보는 것도 없어지리니 보는 성품도 오히려 없거니 무엇으로부터 의식이 발생하느냐? 만약 너의 의식하는 성품이 대상 속에서 생기고 보는 것을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밝음도 보지 못하며 어두움도 보지 못해서 밝고 어두움을 보지 못하면 곧 허공과 물질이 없으리니 그 대상도 오히려 없거니 의식이 무엇으로부터 발생하겠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겼다면 대상도 아니고 보는 놈도 아닐지니 보는 놈이 아니라면 분별함이 없어서 자연 밝음도 어두움도 허공도 물질도 알지 못할 것이며, 대상이 아니라면 인연이 없어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편안하게 성립할 곳이 없을 것이다. 대상도 아니고 보는 것도 아닌 데에 있다고 한다면 허공은 없는 것과 같을 것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물질의 형상과는 같지 않을 것이니 비록 너의 의식이 발생한다한들 무엇을 분별하겠느냐?

만약 원인도 없이 돌연히 나온 것이라면 어찌하여 한낮에는 밝은 달을 인식하지 못하느냐?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보는 놈은 네 눈에 의지하였고 대상은 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미루어 말하는 것이니, 형상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형상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 되나니 이와 같은 의식의 인연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의식은 움직이고 보는 놈은 맑아서 화(和)도 아니고 합(合)도 아니며 듣고 냄새 맡고 깨닫고 아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의식의 인연이 좇아서 온 데가 없이 스스로 생기지는 아니하니라.

만약 이 의식하는 마음이 본래 좇아온 데가 없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확실하게 분별하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원만하고 고요하고 맑아서 그 성품이 좇아온 데가 없는 것이니, 저 허공과 흙, 물, 불, 바람을 겸하여 균등하게 일곱가지 원소라고 하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기거나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네 마음이 거칠고 허망해서 보고 듣고 밝음을 발하여 확실하게 아는 것이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마땅히 이 여섯 가지 처소에서 의식하는 마음을 관찰하여 보아라. 같으냐 다르냐 빈 것이냐 있는 것이냐? 아니면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더냐 빈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더냐?

너는 일찌기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의식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의식은 오묘한 깨달음이 맑고 고요하여 우주에 두루해서 시방세계를 삼켰다 뱉었다 하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장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림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20] 허공이라는 원소

아난아! 허공의 성품은 형상이 없으므로 색깔로 인하여 나타나나니 이는 마치 시라벌성처럼 강이 먼 곳에 모든 찰제리 종족과 그리고 바라문과 비사와 수타와 또는 바라타와 전다라 등이 편안히 살 곳을 새로 세우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구할 적에 흙을 한 자[尺]쯤 파내면 그 속에 한 자의 허공이 생기고 이와 같이 흙을 한 길[丈]쯤 파내면 그 속에 다시 한 길의 허공이 생기게 되어 허공의 얕고 깊음이 흙을 많이 파내고 적게 파내는 것에 따라 생기나니 허공은 흙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파내는 도구로 인하여 생기느냐 까닭도 없이 저절로 생기느냐?

아난아! 만약 또 혀공이 까닭도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흙을 파내기 전에는 어찌하여 걸림이 없지 아니해서 오직 아득한 대지(大地)만 보이고 멀리 통달하지 못하더냐? 만약 흙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흙을 파낼 적에 응당 허공이 줄어들어감을 보아야 할 것인데 만약 흙이 먼저 나오는데도 허공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허공이 흙으로 인하여 생긴다고 하겠느냐? 만약 나오거나 줄어들어감이 없다면 허공과 흙이 본래 다른 원인이 없을 것이니 다른 원인이 없으면 같은 것이거늘 그렇다면 흙이 나올 적에 허공은 어찌하여 나오지 않느냐?

만약 파내는 것으로 인하여 허공이 생긴다면 마땅히 파내는 데에 따라 허공이 생기는 것이므로 흙은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며 파내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파냄으로해서 흙이 나오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허공을 보게 되느냐?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파내는 도구는 사람의 손으로부터 방향을 따라 움직이고 흙은 땅으로 인하여 옮겨지니 이와 같이 허공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파내서 허공이 되게 함은 허(虛)와 실(實)이 서로 작용하지 못해서 화합함이 아니니 응당 허공도 어느 곳으로부터 온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니라.

만약 이 허공의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요동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앞에서 밝힌 흙, 물, 불, 바람과 보는 것, 의식, 그리고 허공과 함께 균등하게 일곱 가지 원소[七大]라고 하니 그 성품은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나고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너의 마음이 혼미해서 네 가지 원소가 본래 여래장임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허공을 살펴 보아라. 나오느냐 들어 가느냐 나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

너는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깨달음과 성품이 깨달음인 참다운 허공은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느니라. 아난아! 만약 하나의 우물을 파서 공간이 생기면 허공이 한 우물만치 생기는 것과 같아서 시방의 허공도 그와 같이 시방에 원만한 것이거니 어찌 방향과 장소가 있겠느냐? 업장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어늘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여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인양 의혹하나니 이는 모두가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기 때문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니라.

 

[21] 아난이 게송으로 찬탄함

그때에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오묘한 가르치심을 받고서 몸과 마음이 환하게 열려서 걸림이 없어지고 모든 대중들이 각각 스스로 마음이 시방에 가득함을 깨달아서 시방의 허공 보기를 마치 손에 가지고 있는 나뭇잎을 보듯하며, 모든 세상의 사물들이 모두 보리의 오묘하고 밝은 원래의 마음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음의 정기가 두루하고 원만해서 시방을 둘러싸고 있어 부모가 낳아준 몸을 돌이켜 보되 이는 마치 저 시방의 허공 속에 나부끼는 한 작은 먼지가 있는 듯 없는 듯한 것과 같고, 마치 큰 바다에 떠가는 한조각 물거품이 생기고 없어짐이 좇아 온 데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겨 분명히 스스로 깨달아서 본래 오묘한 마음이 항상 머물러서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을 증득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합장하여 일찍기 없었던 초유의 일을 얻고서는 여래의 앞에서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미묘하고 청정한 덕을 모두 지니신 흔들림이 없으신 세존께서는 수능엄왕으로서 세상에 드문 존재이십니다. 저의 억겁 동안 뒤바뀌었던 허망한 생각을 없애 주셔서 아승지겁을 거치지 않고서도 법신을 얻게 하였습니다. 지금 저희들도 성과(聖果)를 얻어 보왕(寶王)이 되어서 이렇게 항하사 같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깊은 마음으로 티끌 같은 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받들 것이오니 이것은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증명하여 주소서. 맹세코 오탁(五濁)의 악세에 먼저 들어가서 단 하나의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위하여 열반에 들지 않겠습니다. 큰 자비와 큰 힘을 지니신 거룩하신 분이시여 다시금 저희들의 미세한 의혹을 없애게 하사 저로 하여금 하루 바삐 위 없는 깨달음에 올라 시방 세계의 도량에 앉게 하여 주소서.

허공[舜若多]의 성품은 없앨 수 있을지언정 굳고 굳은 이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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