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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의 능엄신주 범어독음과 국역

https://www.youtube.com/watch?v=Rc6Z0gLvp-Y https://kydong77.tistory.com/21628 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 국역 전10권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ube393&logNo=220020727513 능엄경 전문 正本首楞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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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卷 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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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道不在山野(도부재산야), 도는 승과 속인을 분별하지 않는다

제4장 道不在山野(도부재산야) 도는 승과 속인을 분별하지 않는다 13. 問曰:白衣有妻子,婬欲不除,憑何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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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道不在山野(도부재산야)

도는 승과 속인을 분별하지 않는다

13.

問曰:白衣有妻子,婬欲不除,憑何得成佛?

“세속인은 처자가 있고, 음욕도 없애지 않는데, 어떻게 성불할 수 있습니까?”

答曰:只言見性不言婬欲。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 음욕을 말하지는 않는다.

只為不見性;但得見性,婬欲本來空寂,自爾斷除,亦不樂著,

단지 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욕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견성하기만 하면 음욕은 본래 공적(空寂)하니, 끊어 없앨 필요도 없고, 즐겨 집착하지도 않는다.

縱有餘習,不能為害。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해가 되지 않는다.

何以故?性本清淨故。

雖處在五蘊色身中,其性本來清淨,染污不得。

무엇 때문인가? 본성이 본래 깨끗하기 때문이다.

비록 오온(五蘊)의 색신(色身) 속에 있지만, 그 본성은 본래 깨끗하여 오염될 수가 없다.

法身本來無受,無飢無渴,無寒熱,無病,無恩愛,無眷屬,無苦樂,無好惡,無短長,無強弱,

법신(法身)은 본래 감각을 받아들임이 없어서, 배고픔도 없고, 목마름도 없고, 추움도 없고, 더움도 없고,

병도 없고, 사랑도 없고, 딸린 권속도 없고, 고통과 즐거움도 없고, 좋아함과 싫어함도 없고,

장점과 단점도 없고, 강함과 약함도 없다.

本來無有一物可得;

본래 얻을 수 있는 한 물건도 없다.

只緣執有此色身,因即有飢渴寒熱瘴病等相,

다만 이 색신(色身)이라는 원인에 집착하기 때문에, 배고픔, 갈증, 추움, 더움, 질병 등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若不執,即一任作。

만약 집착하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자재하게 행위하여라.

若於生死中得自在,轉一切法,與聖人神通自在無礙,無處不安。

만약 생사 속에서 자재(自在)를 얻어 일체법을 굴린다면, 성인과 같이 신령스러이 통하고 자재하고 막힘이 없어서 불안한 곳이 없을 것이다.

若心有疑,決定透一切境界不過。不作最好,

만약 마음에 의심이 있다면, 결코 어떤 경계도 뛰어넘지 못한다. 조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作了不免輪迴生死。

조작하면 생사의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

若見性,旃陀羅亦得成佛。

만약 본성을 본다면, 찬드라(candala; 도살업 등에 종사하는 최하층의 천민)도 역시 성불할 수 있다.“

[1] 의심스러운 점을 질문함

 이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히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엄있고 덕 높으신 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여 여래의 제일의 제(第一義諦)를 잘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세존께서 항상 추천하시기를 '설법하는 사람들 가운데 제가 제일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여래의 미묘한 법음을 듣자오니 마치 귀먹은 사람이 백 걸음 밖에서 모기 소리를 듣는 것과 같으니

본래 볼 수도 없거든 더구나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록 분명하게 말씀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의혹 을 덜게 하였사오나

저는 아직도 그 뜻을 끝까지 추구하여 의혹이 없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 같은 무리들은 비록 깨달았다고는 하나

익혀온 습기와 번뇌가 아직 다 없어지지 못하였거니와

저희들은 모임 가운데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없는데까지 이른 자들이므로

비록 모든 새는 것을 다 끊어버렸다 하더라도

지금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음을 듣고서는 오히려 의혹과 회의에 얽혔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세간에 일체의 근(根), 진(塵), 음(陰), 처(處), 계(界)등이 다 여래장이어서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홀연히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리의 모든 물질들이 생겨나서 차례로 변천하여

끝마쳤다가는 다시 시작하곤 하는 것입니까?

또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은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루퍼져서 맑고 고요히 늘 머문다'고 하셨나니

세존이시여!

만약 흙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어떻게 물을 용납하며

물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불은 생기지 못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물과 불의 두 성분이 허공에 가득하여

서로 능멸(凌滅)하지 아니하는지 그 이치를 밝힐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흙의 성질은 가로막는 것이고 허공의 성질은 텅텅 빈 것이거니

어찌하여 두 가지가 다같이 법계에 두루 퍼진다고 하십니까?

저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어두운 구름을 벗겨 주소서."

모든 대중들과 이렇게 말하고서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

여래의 더없이 높은 자비로운 가르침을 흠모하여 목마르게 기다렸다.

 

[2] 여래께서 의혹을 풀어줌

그때에 세존께서 부루나와 모임 가운데에서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어진 무학(無學)인 모든 아라한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여래가 오늘 널리 이 모임을 위해서

수승한 이치 속에서도 참되고 수승한 이치의 성품을 설명하여

너희 모임 중에서 소승인 성문들과 일체의 두 가지 빈 것을 얻지 못한 이들과

상승(上乘)으로 회향하는 아라한 등으로 하여금

모두 일승의 열반의 자리[寂滅場地]인 참된 아련야(阿練惹)의 올바르게 수행할 방법을 얻게 하고자 하노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부루나 등이 부처님의 법음을 흠모하여 잠자코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루나야! 네가 말한 바와 같이 '청정한 본래 자연 그대로라면

어떻게 홀연히 산과 강과 대지가 생기겠느냐?'고 하는데

너는 여래가 늘 말하는 '성각(性覺)은 오묘하고 밝으며

본각(本覺)은 밝고 오묘하다'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그러한 이치를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늘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말한 깨달음이니 밝음이니 하는 것은 성품이 밝은 것을 깨달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냐

아니면 깨달음이 밝지 못한 것을 밝은 깨달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와 같이 밝지 못한 것을 이름하여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밝힐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밝힐 것이 없다면 밝혀야 할 깨달음이 없으리라.

밝힐 것이 있으면 깨달음이 아니고 밝힐 것이 없으면 밝은 것이 아니며

밝음이 없으면 깨달음의 맑고 밝은 성품이 아니리라.

성품의 깨달음이 반드시 밝은 것이어서 허망하게 밝혀야 할 깨달음이라고 하나니라.

깨달음은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건만 밝힘으로 인하여 밝혀야 할 것이 이루어졌으니

그 밝혀야 할 것 이미 망령되게 이루어지면

너의 허망한 작용의 능력을 생기게 해서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서 불꽃처럼 성하게 다름을 이루었나니라.

 

[3] 세계의 시초

저 다른 것을 다르다고 여겨서 그 다른 것으로 인해 같음이 성립되었고

같음과 다름을 분명히 구분하고 그로 인해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음이 성립되었다.

이렇게 흔들리고 어지러운 것이 서로 작용하면 피로가 생기고

그 피로가 오래되면 번뇌가 생겨서 자연 서로 혼탁하게 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오염과 번뇌[塵勞煩惱]가 일어나나니라.

움직여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 고요하게 있는 것은 허공이 되나니

허공은 같으나 세계는 다르니 그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이 참다운 현상계[有爲法]이니라.

깨달음의 밝음과 허공의 어두운 것이 서로 작용하여 동요하기 때문에

바람바퀴[風輪]가 있어 세계를 잡아 지탱[熱持]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공에 크게 소리쳐서 흔들림이 생겨나고 밝은 것을 굳혀서 막힘이 이루어지니

저 금은 보배는 밝은 깨달음이 굳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금륜(金輪)이 국토를 보전하여 지탱하는 것이며,

깨달음이 굳어져서 금은 보배가 되고 밝음이 흔들려서 바람이 일어나니

바람과 금이 서로 마찰하므로 불 빛이 생겨 변화하는 바퀴가 되었으며,

금보의 밝음이 윤택한 기운을 생기게 하고 불 빛은 위로 치솟기 때문에

물바퀴[水輪]가 생겨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불은 위로 오르고 물은 흘러 내려서 서로 발하여 굳어져서

젖은 곳은 큰 바다가 되고 마른 곳은 육지와 섬이 되었으니

이러한 이치로써 저 바다 가운데서는 불 빛이 늘 일어나고

육지와 섬 가운데서는 강물과 냇물이 늘 흐른다.

물의 힘은 불보다 열세이면 맺혀서 높은 산이된다.

그러므로 산에 돌이 부딪치면 불꽃이 일어나고 녹으면 이 되며

흙의  보다 열세이면 돋아나서 풀이나 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숲과 늪이 타버리면 흙이 되고 쥐어짜면 물이 된다.

서로 엉켜서 허망함이 발생하여 번갈아 서로 종자가 되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세계가 서로 계속되나니라.

 

[4] 중생의 시초

또다시 부루나야 밝은 것이 허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깨달음의 밝은 것이 허물이 되니

허망한 것이 이미 성립되면 밝은 이치가 이를 앞지르지 못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듣는 것이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보는 것이 색깔을 벗어나지 못하여

빛과 향기, 맛과 촉감 등 여섯 가지 허망함이 이루어지나니

그로 말미암아서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는 것이 나뉘어져서

같은 업장끼리 서로 얽히고 어울리고 떠나는 것이 변화를 이루나니라.

보는 것이 밝아서 빛이 발하고 밝게 봄으로 해서 생각이 이루어지나니

다르게 보면 미움이 생기고 같은 생각은 사랑이 생겨서 그 사랑이 흘러 종자가 되고

생각을 받아들여 태(胎)가 되어서 서로 어우러짐이 발생하고 같은 업장끼리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그 인연으로 해서 갈라람과 알포담등이 생기나니라.

태로 생하는 것과 알로 생하는 것, 습기에서 생하는 것과 화생으로 생하는 것이

제각기 응할 바를 따라서 알로 생하는 것은 오직 생각으로서만 생겨나고

태로 생하는 것은 (情)으로 인해 생겨나며,

습기로 생하는 것은 합하여 느낌으로서 생기고 화생은 떠나서 응함으로 생기니,

정, 생, 각, 합, 떠남으로 생기는 것들이 다시 서로 변하고 바뀌어서 업을 받는데

그 업장을 따라 혹은 날고 혹은 잠기고 하니 그러한 인연으로 중생이 서로 계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여러가지 욕심으로 말미암아서 그것이 애욕의 성품이 생김을 돕는데

그 애욕을 여읠 수가 없어서 갖가지 업장을 짓게 되나니

그 때문에 나고 죽는 윤회가 계속하게 되나니라.

모든 세간의 부부가 혼인하여 교합해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 낳아 끊이지 않나니

이러한 것들은 음욕을 탐냄으로 업장이 된 것이고,

또 모든 세간에 난생, 태생, 습생, 화생이

힘이 강하고 약함에 따라서 번갈아가며 서로 잡아 먹나니

이러한 것들은 살생을 탐하는 것으로 업장이 된 것이며,

또 다시 모든 세간에 다른 사람이 가진 재물과 돈을

크고 작은 요망한 도적들이 억지로 빼앗거나 몰래 가져가나니

이러한 것들은 도적질을 탐함으로 업장이 된 것이니

가령 세상에서 사람이 양을 잡아 먹었을 경우

그 양은 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되어

이러한 열 가지 생명을 지닌 무리들에 이르기까지

죽고 나고 나고 죽고하여 번갈아 와서 서로 잡아 먹으면서

악업이 함께 생겨 미래의 세계가 다하도록 계속되나니 나머지도 이와 같나니라.

네가 나의 목숨을 저버리면 나는 너의 빚을 갚고 내가 너의 목숨을 저버리면

네가 나의 빚을 갚아서,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보응(報應)하게 되며,

너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거든 나는 너의 얼굴을 어여삐 여기고 내가 너의 마음을 사랑하면

너는 나의 얼굴을 어여삐 여겨 이러한 인연으로 백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얽매이게 되나니라.

오직 음욕과 살생 그리고 도적질, 이 세 가지가 모든 악의 근본이 된다.

그러한 인연으로 업장과 과보가 서로 연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이러한 세가지의 뒤바뀜이 서로 계속되는 것은

모두 밝은 깨달음인 밝고 또렷한 의식이 분별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인하여

허망함을 따라 보는 것이 생기나니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차례로 변하여 흘러도

이 허망으로 인하여 끝나면 다시 시작하곤 하느니라."

 

[5] 오묘한 공은 습기가 없다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 오묘한 깨달음과 본래 오묘한 각명(覺明)은

여래의 마음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이거늘

까닭없이 산과 강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생기는데

여래께서는 지금 오묘하고 빈 명각(明覺)을 얻었사온데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리의 작용이 있는 익혀온 번뇌가 언제 다시 생기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마치 혼미한 사람이 어떤 취락(聚落)에서

남쪽을 북으로 의혹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 미혹은 미혹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냐 깨달음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이렇게 혼미한 사람은 미혹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또한 깨달음으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미혹은 본래 뿌리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미혹으로 인했다고 하겠으며

깨달음이 미혹으로 생긴 것이 아닌데 어떻게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미혹한 사람이 정히 미혹하여 있을 때에

어떤 깨달은 사람이 옳게 지시하여 깨닫게 한다면

부루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비록 미혹하였으나 그 마을 시장에서 다시 미혹이 생기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루나야! 시방의 여래도 역시 그러하니라.

그 미혹은 근본이 없어서 성품이 필경에는 빈 것이니

옛날에는 본래 미혹함이 없었으나

미혹이 있는 듯 한데서 깨닫나니

미혹을 깨달아 미혹이 없어지면 깨달음이 있어 미혹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눈병이 난 사람이 허공의 꽃을 보는 것과 같아서

눈병이 없어질 것 같으면 그 꽃은 허공에서 없어지나니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저 허공의 꽃이 없어진 빈 자리에서

그 꽃이 다시 생기기를 기다린다면

너는 그러한 사람을 볼 적에 어리석다고 하겠느냐 지혜롭다고 하겠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거늘 허망으로 인하여 생기고 없어짐을 보는 것이니

그 꽃이 허공에서 없어짐을 보는 것도 이미 뒤 바뀐 것이거늘

명령하여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게 한다면 이는 실로 미친 바보짓입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미친 바보짓하는 사람을 이름하여 어리석다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다면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의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허공에서 어느 때에 다시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가 나옵니까하고 묻느냐?"

또 마치 금광에 순금이 섞여 있다가 그 금이 완전하게 순금이 되고나면

다시는 섞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마치 나무가 불에 타서 재가 되면

다시는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열반도 역시 그와 같나니라.

 

[6] 네 가지 원소는 서로서로 용납함

부루나야! 또 네가 묻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의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어째서 물의 성품과 불의 성품이 서로 능멸하지 않습니까?"하였고,

또 묻기를 "허공과 땅덩어리가 다 함께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니

부루나야! 비유하면 허공의 본체가 여러가지 모양이 아니지만

그러나 저 여러가지 모양이 나타남을 막지 않는 것과 같나니라.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부루나야!

저 커다란 허공이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두우며,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개이면 맑으며,

기운이 엉키면 탁하고 흙먼지가 쌓이면 흙비가 되며,

물이 맑으면 밝게 비치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러한 여러 방면에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들이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느냐 허공을 따라 있는 것이냐?

만약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부루나야!

장차 해가 비칠 적에는 이미 그것은 해의 밝음이므로

시방세계가 다같은 햇빛이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공중에서 다시 둥근 해를 보게 되느냐?

만약 허공을 따라서 생긴 밝음이라면 허공이 응당 스스로 비칠 것인데

어찌하여 밤중이나 구름이 끼었을 적에는 빛을 내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밝음은 해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허공이나 해와 다른 것도 아니니라.

그 현상을 살펴보건대 본래가 허망해서 가리켜서 말할 수가 없음이

마치 허공의 꽃에서 헛된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떻게 서로 능멸하는 이치를 따지겠느냐?

성품을 살펴보건대 본래 참된 것이라서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일 뿐이다.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의 마음이 본래 물이나 불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서로 용납하지 못하느냐고 묻느냐?

참되고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네가 허공으로서 밝히면 허공이 나타나고

흙과 물, 불과 바람으로 각각 밝히면 곧 그것들도 각각 나타나며

만약 다 함께 밝히면 곧 다 함께 나타나나니라.

어떤 것을 함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부루나야!

마치 물 속에 해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두 사람이 함께 물 속의 해를 보다가 동쪽과 서쪽으로 제각기 가면

물 속의 해도 제각기 두 사람을 따라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가서

본래부터 표준한 곳이 없으니 따져 말하기를,

"저 해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제각기 가느냐?"고 하며

"각자 가는 해가 이미 둘인데 어찌하여 하나로 나타나느냐?"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완연히 허망하여 의지할 수가 없나니라.

 

[7] 허망한 것을 좇아 나타남

부루나야! 너는 물질과 허공으로서 여래장에서 서로 밀어내고 서로 빼앗으므로

여래장도 따라서 물질과 허공이 되어 우주에 두루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바람은 움직이고 허공은 맑으며 해는 밝고 구름은 어두운 것인데

중생들은 어리석고 미련해서 깨달음을 저바리고 허망한 티끌과 어울리므로

번뇌가 일어나서 세간의 현상이 있게 되나니라.

나는 오묘하고 밝은 것이 생겨나거나 없어지지도 않는 것으로서 여래장과 합하였는데

여래장이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이므로 우주에 원만하게 비춘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하나가 한량없는 것이 되고 한량없는 것이 하나가 되며,

적은 가운데 큰 것을 나타내고 큰 가운데 적은 것을 나타내며,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방의 세계에 두루 퍼지며,

몸으로 시방의 끝 없는 허공을 머금으며,

한 털끝에서 보왕(寶王)의 세계를 나타내며,

작은 먼지 속에 앉아서 큰 법륜(法輪)을 굴리나니라.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에 합하므로 진여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을 발하니

여래장의 본래 오묘하고 원만한 마음은 마음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흙도 아니요 물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요 불도 아니며,

눈도 아니요 귀, 코, 혀, 몸, 생각도 아니며,

빛도 아니요 소리, 향기, 맛, 촉감, 법도 아니며,

안식계(眼識界)도 아니요 이렇게 의식계(意識界)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밝음도 밝음이 없음도 아니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마져 다함도 아니며,

이와같이 늙음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며, 늙음과 죽음이 다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괴로움도 아니요 괴로움의 원인도 아니며, 괴로움을 없는 자리도 아니요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증득함도 아니며, 보시도 아니요 계율도 아니며, 인욕도 아니요 정진도 아니며,

선정도 아니요 반야도 아니며, 바라밀다도 아니니라.

이와 같아서 여래도 아니요 응공도 아니며, 정변지도 아니요 대열반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며, 주체도 아니요 청정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나니

이렇게 세간과 출세간도 모두 아니기 때문이요.

곧 여래장의 원 밝은 마음인 오묘함은

곧 마음이요 허공이며, 흙, 물, 바람, 불이요 곧 눈, 코, 혀, 몸, 생각이며,

곧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법(法)이요 곧 눈으로 보아 의식하는 경계이며,

이렇게 뜻으로 생각하여 의식하는 경계에까지 이르며,

곧 밝음과 밝음이 없음이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까지 다 끊음이며

이렇게 곧 늙음이요 죽음이며, 곧 늙음과 죽음이 다함이요

곧 괴로움(苦),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을 없애는 자리[滅], 괴로움을 없애는 길[道], 지혜, 증득함이며,

곧 보시, 계율,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바라밀다이고 이렇게 곧 여래, 응공, 정변지이며, 곧 대열반이요,

곧 항상함(常), 즐거움(樂), 주체(我), 청정(淨)이니 이것이 모두가 곧 세간법과 출세간법이므로

곧 여래장인 오묘하고 밝은 마음의 근본은 그런 것도 아니요 그렇지 아니함도 아니며,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이니라.

어찌하여 세간의 삼유(三有)의 중생들과 출세간의 성문 연각들이 알고 있는 마음으로

여래의 위없는 보리를 추측하여 헤아려서 세간의 언어로써 부처님의 지견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거문고, 비파. 공후가 비록 묘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손가락이 없으면 끝끝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너와 중생들도 역시 이와같아서 보배로운 깨달음의 참 마음이 각각 원만하건만

만일 내가 손가락을 놀리면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거늘

너는 잠시만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가 먼저 일어나나니

이는 위없는 깨달음의 길을 부지런히 구하지 않고

소승을 좋아하여 적은 것을 얻고 만족하게 여기는 탓이니라."

 

[8] 허망함이 일어나는 원인

부루나가 말하기를,

"저와 여래는 보배의 깨달음이 원만하게 밝아서

진실하고 오묘하고 청정한 마음이 다를 것이 없이 원만한 것입니다만

저는 옛날 시작도 없는 과거로부터 허망한 생각을 내어서 오랫동안 윤회 속에 있었으므로

지금 성인의 과업을 이루었으나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모든 허망함이 모두 다 없어져서 홀로 오묘하게 참되고 항상하시니

감히 여래께 묻습니다만 일체 중생들은 무슨 원인으로 허망한 생각이 있어서

스스로 오묘하게 밝은 것을 가리우고 이렇게 윤회에 빠져 허덕이나이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비록 의심은 없앴으나 나머지 의혹이 다 없어지지 못하였으니

내가 세상에서 현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지고 지금 다시 네게 묻겠다.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시라벌성 안에 연야달다(演若達多)가 홀연히 이른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 있는 눈썹과 눈은 볼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의 얼굴과 눈은 보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다하니

너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무슨 원인으로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겠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 사람은 마음이 미친 것일 뿐 다른 까닭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은 본래 원만하고 밝고 오묘한 것이니

이미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였던들 어떻게 원인이 있다고 하겠으며

만약 원인이 있으면 어떻게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겠느냐?

스스로 일으킨 모든 망상들이 전전하며 서로 원인이되어

미혹을 좇아 미혹이 쌓여서 끝없는 세월을 지내왔으므로

비록 부처님께서 발명해주었어도 오히려 돌이키지 못하나니라.

이와 같이 미혹한 원인은 미혹으로 인하여 저절로 생긴 것이니

미혹함이 원인이 없다는 것을 알면 허망한 생각이 의지할 데가 없나니

오히려 생기는 것도 없는데 무엇을 없애려느냐?

보리를 얻은 자는 잠을 깬 사람이 꿈 속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마음에는 비록 꿈 속의 일이 분명하지만 무슨 수로 꿈 속에 물건들을 취할 수 있겠느냐?

더구나 원인이 없어서 본래 있지도 않은 것이랴.

저 시라벌성의 연야달다와 같은 경우는

어찌 인연이 있어서 자기의 머리를 무서워하면서 달아났겠느냐?

홀연히 미친 증세가 없어지면 그 머리는 밖에서 얻어진 것이 이니며

비록 미친 중세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어찌 잃어버린 것이겠느냐?

부루나야! 허망한 성품이 이러하니 원인이 어찌 있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만 세간의 업장과 과보 그리고 중생,

이 세 종류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따라 분별하지 아니하면

세 가지 인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곧 너의 마음 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은 자연 없어질 것이다.

무명이 없어지면 곧 보리의 뛰어나게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우주에 두루퍼져서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니 어찌하여 애써가며 수고롭게 닦아서 증득하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속에 여의주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알지 못해서 타향에서 곤궁하게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것과 같아서

비록 실제는 빈궁하지만 여의주는 잃은 것이 아니니

홀연히 지혜있는 사람이 그 여의주를 가르켜주면

원하던 것이 마음을 따라서 큰 부자가 되리니

그때에야 바야흐로 그 신비로운 여의주가 밖에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으리라."

 

[9] 자연으로 인연을 깨뜨림

그때에 아난이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일어나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께서 지금 말씀하시기를,

음욕, 살생, 도적질의 세 가지 업연이 끊어지므로해서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마음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이 자연 없어지리니

미친 성품이 없어지면 이는 곧 보리인지라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인(因)과 연(緣)이 분명한 것이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완전히 버렸습니까?

저도 인연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열리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이치는 어찌 나이 어린 저희들 유학인 성문들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있는 대목견련과 사리불과 수보리 등도

늙은 범지(梵志)를 추종하다가 부처님의 인연법을 듣고서 발심하여 깨달아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끊어지는 도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리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왕사성의 구사리 등이 말하는 자연이라야 제일의(第一義)가 되리니

바라옵건데 큰 자비를 베푸시어 혼미하고 답답한 것을 열어 밝혀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치 성 가운데 있는 연야달다가 만약 미친 성품의 인연을 제거하여 없앨 수만 있다면

미친 성품이 아닌 것이 자연히 나오는 것과 같아서 인연과 자연의 이치가 여기에서 끝나나니라.

아난아! 연야달다의 머리가 본래 자연 그대로일진댄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자연 아닌 것이 없거늘

무슨 인연 때문에 머리를 두려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약 자연의 머리가 인연 때문에 미쳤다면

어찌하여 자연이 인연 때문에 잃어지지 않는냐?

본래의 머리는 잃은 것이 아니거늘,

미쳐 두려워함이 허망하게 생겼다면 이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느냐?

본래 미친 것이 자연이라면 미친 두려움이 본래부터 있는 것이겠지만

미치지 않았을 적에는 미친 증상이 어디에 숨었었으며

미치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면 머리는 본래 미쳐 날뜀이 없을 것이어늘

어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일 본래의 머리라는 것을 깨닫고나서 미쳐서 달아났던 것을 알면

인연과 자연이 모두 장난같은 논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세 가지 연(緣)이 끊어지므로 곧 보리심이다'고 한 것이다.

 

[10] 잘못을 경책하고 수행을 권유함

보리의 마음이 생기고 나서 없어지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모두 다하여 공부의 작용이 없는 길에 만약 자연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것은 자연의 마음이 생기며 나고 없어지고 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분명하니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세간의 모든 현상이 섞여서 한 몸이 되는 것을 화합의 성품이라 하고

화합하지 않은 것을 본연의 성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본래 자연과 본래 자연이 아닌 것,

화합과 화합이 아닌 것, 자연과 합해진 것을

모두 여의며 따라서 벗어나고 화합함이 모두 아니라야

이 구절이 바야흐로 장난같은 논란이 없는 진리라고 할 수 있나니라.

보리와 열반이 아직도 아득하고 멀어서 네가 여러 겁동안 애써서 닦는 것으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비록 다시 시방여래의 십이부경(十二部經)에 청정하고 오묘한 이치를 기억해 가짐이

항하의 모래와 같더라도 장난같은 논리만 더할 뿐이다.

네가 비록 인연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함에 있어서 결정코 분명하고 또렷하므로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많이 들은 것으로는 제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렇게 여러 겁을 많이 들음을 쌓아 익혔건만 마등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거늘

어찌하여 나의 불정신주(佛頂神呪)를 기다려서 마등가의 마음에 음욕의 불꽃이 다 없어지게 하고

아나함을 증득하여 나의 법 가운데에 정진의 숲을 이루고 애욕의 강을 말려서 너로 하여금 해탈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비록 여러 겁을 여래의 비밀스럽고 오묘하고 장엄한 것을 기억해 가졌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를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도를 닦아서

세간에서미워하고 사랑하는 두 가지 고통을 멀리 여의는 것만 같지 못하나니라.

마등가와 같은 경우는 전세에 음란한 여자였으나

신주(神呪)의 힘으로 인하여 그 애욕을 소멸하고

지금은 나의 법 가운데 들어와서 성비구니(性比丘尼)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나후라의 어미인 야수다라와 함께 과거세의 인연을 깨달아

많은 세상을 지내오면서 맺어온 인연이 탐욕과 애욕으로 괴로움이 된 것임을 깨닫고서

일념으로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감이 없는 선행을 닦았으므로 혹은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혹은 수기(授記)를 받기도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속아서 아직도 보고 듣는데 머물러 있느냐?"

 

[11] 아난이 간청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의혹이 사라져 없어지고 마음의 참 모습을 깨달아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져서 일찌기 있기 않았던 것을 얻고는 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없이 크고 자비하신 청정한 보배의 왕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잘 열어주셔서

이러한 여러가지 인연을 방편으로 이끌어주시고 권장해주시는 한편

캄캄한데 빠진 자를 인도하여 괴로움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비록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서

여래장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 퍼져서

여래께서 시방국토의 청정한 보엄묘각왕찰(寶嚴竗覺王刹)을 함유(含有)하였음을 알았습니다만

여래께서 다시 꾸짖으시기를,

'많이 듣기만 하는 것은 공이 없어 닦아 익히는데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시니

저는 지금 마치 나그네 생활을 하던 사람이 홀연히 천왕(天王)이 주신 호화로운 집을 받은 것과 같아서

비록 큰 집을 얻었으나 문을 찾아 들어감이 요긴한 것과 같사오니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와 저희 이 모임에 있는 여러 몽매(夢昧)한 자들을 깨우쳐 주시어

소승을 버리고 마침내 여래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본디 발심했던 길을 얻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배울 것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지난날 반연하던 마음을 항복받고

다라니(陀羅尼)를 얻어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서 모임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기다렸다.

 

[12] 뜻을 펴 종지를 표함

그때에 세존께서 모임 가운데 있는 연각과 성문들이 보리의 마음에 자재하지 못한 자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앞으로 닥칠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 말법의 중생들이 보리의 마음을 발할 자들을 위하여

무상승(無上乘)의 오묘한 수행의 길을 열어주려고 하시어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결정코 보리의 마음을 내어 여래의 오묘한 삼마지에 피로하고 게으름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응당 먼저 깨달음을 발하려는 첫 마음을 일으킨 때에 두 가지 결정의 의미를 밝혀야 하나니라.

무엇을 '처음 발심한 때에 두 가지 결정의 뜻'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첫번째 뜻은 너희들이 만약 성문을 버리고 보살승(菩薩乘)을 닦아서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가고자 할진댄

응당 인지(因地)의 발심이 과지(果地)의 깨달음과 같은가 다른가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아난아! 만약 인지에서 나고 없어지는 마음으로 본래 수행할 원인으로 삼아서

불승(佛乘)의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구할진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나니라.

그러한 뜻으로 너는 마땅히 모든 기세간(器世間)의 만들 수 있는 법을 비추어 밝혀 보아라.

다 변하여 없어지나니라. 아난아! 너는 세상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법을 보아라.

어느 것이 무너지지 않더냐?

그러나 끝끝내 허공이 허물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을 터이니 무엇 때문인가?

허공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허물어져 없어지지 않나니라.

너의 몸 속에서 굳은 모양은 흙이 되고 축축한 것은 물이 되며,

따뜻한 촉감은 불이 되고 움직이고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되나니

이 네 가지 원소가 얽혀서 너의 맑고 원만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나뉘어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살피는 것이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겹의 혼탁함이 생기나니라.

 

[13] 다섯 가지 혼탁의 현상을 밝힘

어떤 것을 혼탁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맑은 물은 청결함이 본래부터 그러한 것이고

저 흙과 뿌연 모래의 종류는 본 바탕이 엉키는 것이니

두 가지의 본체는 자연의 법칙이라서 그 성품이 서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이 그 흙과 모래를 가져다가 맑은 물에 넣으면 흙은 엉키는 것을 잃어버리고

물은 맑음을 잃어버려서 형태가 흐릿하게 되는 것을 혼탁[濁]이라고 이름하나니

너의 다섯 겹으로 쌓인 혼탁한 것도 역시 이와 같나니라.

아난아! 네가 허공이 시방에 두루한 것을 볼 적에 허공과 보는 놈이 구분되지 아니하여

허공은 있고 실체는 없으며 보는 놈은 있고 깨달음은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첫번째 둘러싼 것으로 그 이름이 '겁탁'이니라.

네 몸이 현재 네 가지 원소가 뭉쳐서 몸이 되었으므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막혀서 장애가 되며

물과 불, 바람과 흙이 돌아가며 깨달아 알게 하여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니

이는 두번 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견탁'이니라.

또 너의 마음 속에 기억하고 의식하고 외우고 익히고 하여

성품에서 깨닫고 보고 하는 것을 발하고 모양은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을 나타내니

대상인 물질을 여의면 현상이 없고 깨달음을 여의면 성품이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세번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번뇌탁'이니라.

또 네가 아침 저녁으로 생기고 없어짐이 멈추지 아니하여

느끼고 보는 놈은 늘 세간에 머물고자 하며

업장을 지어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항상 국토에 옳겨져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네 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중생탁'이니라.

너희들의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원래 다른 성품이 아니거늘

모든 대상 물질이 가로 막아서 형상도 없이 다른 것이 생기나니라.

성품 가운데 서로 알고 작용 가운데 서로 배반하여 같고 다름이 기준을 잃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것은 다섯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명탁'이다.

 

[14] 상근기가 유익함을 획득함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지금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으로 하여금 멀리 여래의 상(常), 낙(樂),아(我),정(淨)과 계합하기를 바라거든

먼저 마땅히 나고 죽는 근본부터 골라 버리고, 나고 죽지 않는 맑고 원만한 성품에 의해서 이룩해야 하리니

맑음으로써 허망하게 났다 죽었다 하는 것을 돌이켜서 이를 항복받아 본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명각(命覺)인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얻어 인지(因地)의 마음을 삼은 다음에야

과지(果地)를 닦아 증득함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마치 흐린 물을 맑게 할 적에 고요한 그릇에 담아서 흔들리지 않게 오래 두면

모래와 흙은 저절로 가라앉고 맑은물만이 앞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은

처음으로 객진번뇌(客塵煩惱)를 항복 받았다고 이름할 것이요,

앙금을 버리고 순수한 물만 남게 한 것과 같은 것은 근본무명(根本無明)을 영원히 끊었다고 이름할 수 있으니

밝은 모양이 정밀하고 순수하면 일체가 변하여 나타나도 번뇌가 되지 않아서

모두가 열반의 청정하고 오묘한 덕과 부합하나니라.

또 다시 아난아! 너는 지금 알고 있느냐?

아미타불이 저기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니 너는 일어나 합장하고서 서쪽을 향해 이마로 예를 올려라.

아난이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는 동안에 아미타불이 큰 광명을 발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비추시니

수없이 많은 천지와 수없이 많은 해와 달이 모두 다 빛을 잃어버리고

오직 한줄기 부처님의 광명만이 힘차고 환하게 빛나거늘

이 모임의 사부대중 가운데 모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은

저 아미타불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장엄함을 통해 보고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고서

곧 차등이 있을 수 없는 아뇩다라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

<< 券四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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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산스끄리뜨어 아누따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사한 것으로 ‘위없는 올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 또는 지혜’라 번역된다.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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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끄리뜨어 아누따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사한 것으로

‘위없는 올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 또는 지혜’라 번역된다.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한역되며,

빠알리 원어(anuttara sammasambodhid)도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번역된다.

한문의 음사표기는 아누다라삼막삼보제(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지만,

속화된 발음의 변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읽는다.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을 가리킨다.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第四

(一名中印度那蘭 陀大道場經,於灌頂部錄出別行)

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爾時,富樓那彌多羅尼子在大眾中即從座起,偏袒右肩右膝著地, 合掌恭敬而白佛言:「大威德世尊!善為眾生敷演如來第一義諦。 世尊常推說法人中我為第一,今聞如來微妙法音,猶如聾人逾百步 外聆於蚊蚋,本所不見,何況得聞?佛雖宣明令我除惑,今猶未詳 斯義究竟無疑惑地。世尊!如阿難輩,雖則開悟習漏未除;我等會 中登無漏者,雖盡諸漏,今聞如來所說法音尚紆疑悔。世尊!若復 世間一切根、塵、陰、處、界等,皆如來藏清淨本然,云何忽生山 河大地諸有為相,次第遷流終而復始?又如來說地、水、火、風本 性圓融,周遍法界湛然常住。世尊!若地性遍,云何容水?水性周 遍火則不生,復云何明水火二性俱遍虛空,不相[夌*欠]滅?世 尊!地性障礙,空性虛通,云何二俱周遍法界?而我不知是義攸 往,惟願如來宣流大慈,開我迷雲及諸大眾。」作是語已,五體投 地,欽渴如來無上慈誨。 爾時,世尊告富樓那及諸會中漏盡無學諸阿羅漢:「如來今日普為 此會宣勝義中真勝義性,令汝會中定性聲聞、及諸一切未得二空迴 向上乘阿羅漢等,皆獲一乘寂滅場地,真阿練若正修行處。汝今諦 聽,當為汝說。」富樓那等欽佛法音默然承聽。 佛言:「富樓那!如汝所言,清淨本然云何忽生山河大地?汝常不 聞如來宣說性覺妙明、本覺明妙?」 富樓那言:「唯然,世尊!我常聞佛宣說斯義。」 佛言:「汝稱覺明,為復性明稱名為覺?為覺不明稱為明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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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樓那言:「若此不明名為覺者,則無所明。」 佛言:「若無所明則無明覺,有所非覺無所非明,無明又非覺湛明 性。性覺必明,妄為明覺;覺非所明,因明立所。所既妄立,生汝 妄能;無同異中熾然成異,異彼所異因異立同,同異發明,因此復 立無同無異。如是擾亂相待生勞,勞久發塵自相渾濁,由是引起塵 勞煩惱起為世界。靜成虛空,虛空為同,世界為異,彼無同異真有 為法。覺明空昧相待成搖,故有風輪執持世界;因空生搖,堅明立 礙彼金寶者,明覺立堅,故有金輪保持國土;堅覺寶成,搖明風 出,風金相摩故有火光為變化性,寶明生潤,火光上蒸,故有水輪 含十方界;火騰水降交發立堅,濕為巨海乾為洲潬,以是義故,彼 大海中火光常起,彼洲潬中江河常注,水勢劣火,結為高山,是故 山石擊則成炎、融則成水,土勢劣水,抽為草木,是故林藪遇燒成 土、因絞成水。交妄發生遞相為種,以是因緣世界相續。 「復次,富樓那!明妄非他,覺明為咎。所妄既立,明理不踰,以 是因緣,聽不出聲見不超色,色香味觸六妄成就,由是分開見覺聞 知,同業相纏合離成化,見明色發明見想成,異見成憎同想成愛, 流愛為種納想為胎,交遘發生吸引同業,故有因緣生羯囉藍、遏蒱 曇等,胎卵濕化隨其所應,卵唯想生、胎因情有、濕以合感、化以 離應,情想合離更相變易,所有受業逐其飛沈,以是因緣眾生相 續。 「富樓那!想愛同結,愛不能離,則諸世間父母子孫相生不斷,是 等則以欲貪為本;貪愛同滋,貪不能止,則諸世間卵化濕胎隨力強 弱遞相吞食,是等則以殺貪為本;以人食羊,羊死為人,人死為 羊,如是乃至十生之類,死死生生互來相噉,惡業俱生窮未來際, 是等則以盜貪為本。汝負我命,我還汝債,以是因緣經百千劫常在 生死;汝愛我心,我憐汝色,以是因緣經百千劫常在纏縛,唯殺盜 婬三為根本,以是因緣業果相續。富樓那!如是三種顛倒相續,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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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覺明明了知性,因了發相,從妄見生山河大地,諸有為相次第遷 流,因此虛妄終而復始。」 富樓那言:「若此妙覺本妙覺明與如來心不增不減,無狀忽生山河 大地諸有為相;如來今得妙空明覺,山河大地有為習漏何當復 生?」 佛告富樓那:「譬如迷人於一聚落惑南為北,此迷為復因迷而有? 因悟所出?」 富樓那言:「如是迷人,亦不因迷,又不因悟。何以故?迷本無 根,云何因迷?悟非生迷,云何因悟?」 佛言:「彼之迷人正在迷時,倐有悟人指示令悟。富樓那!於意云 何,此人縱迷,於此聚落更生迷不?」 「不也,世尊!」 「富樓那!十方如來亦復如是。此迷無本,性畢竟空,昔本無迷, 似有迷覺,覺迷迷滅,覺不生迷。亦如瞖人見空中花,瞖病若除華 於空滅;忽有愚人,於彼空花所滅空地待花更生。汝觀是人為愚? 為慧?」 富樓那言:「空元無花,妄見生滅,見花滅空,已是顛倒;勅令更 出,斯實狂癡。云何更名如是狂人為愚?為慧?」 佛言:「如汝所解,云何問言:『諸佛如來妙覺明空,何當更出山 河大地?』又如金鑛雜於精金,其金一純更不成雜,如木成灰不重 為木,諸佛如來菩提涅槃亦復如是。 「富樓那!又汝問言:『地水火風本性圓融周遍法界,疑水火性不 相[夌*欠]滅;又徵虛空及諸大地,俱遍法界不合相容。』富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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那!譬如虛空體非群相,而不拒彼諸相發揮。所以者何?富樓那! 彼太虛空,日照則明、雲屯則暗、風搖則動、霽澄則清、氣凝則 濁、土積成霾、水澄成映。於意云何,如是殊方諸有為相,為因彼 生?為復空有?若彼所生,富樓那!且日照時既是日明,十方世界 同為日色,云何空中更見圓日?若是空明,空應自照,云何中宵、 雲霧之時不生光耀?當知是明非日非空不異空日。觀相元妄無可指 陳,猶邀空花結為空果,云何詰其相[夌*欠]滅義?觀性元真唯妙 覺明,妙覺明心先非水火,云何復問不相容者?真妙覺明亦復如 是。汝以空明則有空現,地水火風各各發明則各各現,若俱發明則 有俱現,云何俱現?富樓那!如一水中現於日影,兩人同觀水中之 日,東西各行則各有日,隨二人去一東一西,先無准的不應難言: 『此日是一,云何各行?各日既雙,云何現一?』宛轉虛妄,無可 憑據。 「富樓那!汝以色空相傾相奪於如來藏,而如來藏隨為色空周遍法 界,是故於中風動、空澄、日明、雲暗,眾生迷悶背覺合塵,故發 塵勞有世間相;我以妙明不滅不生合如來藏,而如來藏唯妙覺明圓 照法界,是故於中一為無量、無量為一,小中現大、大中現小,不 動道場遍十方界,身含十方無盡虛空,於一毛端現寶王剎,坐微塵 裏轉大法輪,滅塵合覺故發真如妙覺明性。而如來藏本妙圓心,非 心非空;非地非水非風非火;非眼非耳鼻舌身意;非色非聲香味觸 法;非眼識界如是乃至非意識界;非明無明、明無明盡,如是乃至 非老非死,非老死盡;非苦非集非滅非道;非智非得;非檀那、非 尸羅、非毘梨耶、非羼提、非禪那、非鉢剌若、非波羅蜜多;如是 乃至非怛闥阿竭、非阿羅訶、三耶三菩;非大涅槃,非常非樂非我 非淨,以是俱非世出世故。即如來藏元明心妙,即心即空;即地即 水即風即火;即眼即耳鼻舌身意;即色即聲香味觸法;即眼識界如 是乃至即意識界;即明無明、明無明盡,如是乃至即老即死,即老 死盡;即苦即集即滅即道;即智即得;即檀那、即尸羅、即毘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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耶、即羼提、即禪那、即鉢剌若、即波羅蜜多;如是乃至即怛闥阿 竭、即阿羅訶、三耶三菩;即大涅槃,即常、即樂、即我、即淨, 以是即俱世出世故。即如來藏妙明心元,離即離非,是即非即,如 何世間三有眾生及出世間聲聞、緣覺,以所知心測度如來無上菩 提,用世語言入佛知見?譬如琴瑟箜篌琵琶雖有妙音,若無妙指終 不能發,汝與眾生亦復如是,寶覺真心各各圓滿,如我按指海印發 光。汝暫舉心塵勞先起,由不勤求無上覺道,愛念小乘得少為 足。」 富樓那言:「我與如來寶覺圓明、真妙淨心無二圓滿,而我昔遭無 始妄想久在輪迴,今得聖乘猶未究竟。世尊!諸妄一切圓滅獨妙真 常,敢問如來一切眾生何因有妄,自蔽妙明受此淪溺?」 佛告富樓那:「汝雖除疑,餘惑未盡。吾以世間現前諸事今復問 汝。汝豈不聞,室羅城中演若達多,忽於晨朝以鏡照面,愛鏡中頭 眉目可見,瞋責己頭不見面目,以為魑魅無狀狂走。於意云何,此 人何因無故狂走?」 富樓那言:「是人心狂,更無他故。」 佛言:「妙覺明圓本圓明妙,既稱為妄云何有因?若有所因云何名 妄?自諸妄想展轉相因,從迷積迷以歷塵劫,雖佛發明猶不能返, 如是迷因因迷自有,識迷無因妄無所依,尚無有生欲何為滅。得菩 提者,如寤時人說夢中事,心縱精明,欲何因緣取夢中物,況復無 因本無所有。如彼城中演若達多,豈有因緣自怖頭走,忽然狂歇頭 非外得,縱未歇狂亦何遺失。富樓那!妄性如是,因何為在?汝但 不隨分別世間、業果、眾生三種相續,三緣斷故三因不生,則汝心 中演若達多狂性自歇,歇即菩提,勝淨明心本周法界,不從人得, 何藉劬勞肯綮修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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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譬如有人於自衣中繫如意珠不自覺知,窮露他方乞食馳走,雖實 貧窮珠不曾失,忽有智者指示其珠,所願從心致大饒富,方悟神珠 非從外得。」 即時,阿難在大眾中,頂禮佛足起立白佛:「世尊!現說殺盜婬 業,三緣斷故三因不生,心中達多狂性自歇,歇即菩提,不從人 得。斯則因緣皎然明白,云何如來頓棄因緣?我從因緣心得開悟, 世尊此義何獨我等年少有學聲聞,今此會中大目犍連及舍利弗、須 菩提等,從老梵志聞佛因緣,發心開悟得成無漏。今說菩提不從因 緣,則王舍城拘舍梨等所說自然成第一義。惟垂大悲,開發迷 悶。」 佛告阿難:「即如城中演若達多,狂性因緣若得滅除,則不狂性自 然而出,因緣自然理窮於是。阿難!演若達多頭本自然,本自其然 無然非自,何因緣故怖頭狂走?若自然頭因緣故狂,何不自然因緣 故失?本頭不失狂怖妄出,曾無變易何藉因緣?本狂自然,本有狂 怖,未狂之際狂何所潛?不狂自然,頭本無妄,何為狂走?若悟本 頭,識知狂走,因緣自然俱為戲論。是故我言三緣斷故即菩提心。 菩提心生生滅心滅,此但生滅,滅生俱盡無功用道。若有自然,如 是則明自然心生,生滅心滅此亦生滅,無生滅者名為自然。猶如世 間諸相雜和成一體者,名和合性,非和合者稱本然性。本然非然, 和合非合,合然俱離,離合俱非,此句方名無戲論法。菩提涅槃尚 在遙遠,非汝歷劫辛勤修證,雖復憶持十方如來、十二部經,清淨 妙理如恒河沙,秖益戲論。汝雖談說因緣自然決定明了,人間稱汝 多聞第一,以此積劫多聞熏習,不能免離摩登伽難,何因待我佛頂 神呪,摩登伽心婬火頓歇得阿那含,於我法中成精進林,愛河乾枯 令汝解脫。是故阿難!汝雖歷劫憶持如來祕密妙嚴,不如一日修無 漏業,遠離世間憎愛二苦;如摩登伽宿為婬女,由神呪力銷其愛 欲,法中今名性比丘尼,與羅睺羅母耶輸陀羅同悟宿因,知歷世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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貪愛為苦,一念薰修無漏善故,或得出纏、或蒙授記。如何自欺, 尚留觀聽?」 阿難及諸大眾聞佛示誨,疑惑銷除心悟實相,身意輕安得未曾有, 重復悲淚頂禮佛足,長跪合掌而白佛言:「無上大悲清淨寶王善開 我心,能以如是種種因緣方便提獎,引諸沈冥出於苦海。世尊!我 今雖承如是法音,知如來藏妙覺明心遍十方界,含育如來十方國 土,清淨寶嚴妙覺王剎;如來復責多聞無功,不逮修習。我今猶如 旅泊之人,忽蒙天王賜以華屋,雖獲大宅要因門入。唯願如來不捨 大悲,示我在會諸蒙暗者捐捨小乘,畢獲如來無餘涅槃本發心路, 令有學者從何攝伏疇昔攀緣,得陀羅尼入佛知見。」作是語已,五 體投地,在會一心佇佛慈旨。 爾時,世尊哀愍會中緣覺、聲聞,於菩提心未自在者,及為當來佛 滅度後末法眾生發菩提心,開無上乘妙修行路,宣示阿難及諸大 眾:「汝等決定發菩提心,於佛如來妙三摩提不生疲惓,應當先明 發覺初心二決定義。云何初心二義決定? 「阿難!第一義者,汝等若欲捐捨聲聞,修菩薩乘入佛知見,應當 審觀因地發心與果地覺為同?為異?阿難!若於因地,以生滅心為 本修因,而求佛乘不生不滅,無有是處。以是義故,汝當照明諸器 世間,可作之法皆從變滅。阿難!汝觀世間,可作之法誰為不壞, 然終不聞爛壞虛空。何以故?空非可作,由是始終無壞滅故。則汝 身中堅相為地、潤濕為水、煖觸為火、動搖為風,由此四纏分汝湛 圓妙覺明心,為視、為聽、為覺、為察,從始入終五疊渾濁。云何 為濁?阿難!譬如清水,清潔本然,即彼塵土灰沙之倫,本質留 礙,二體法爾性不相循,有世間人取彼土塵投於淨水,土失留礙水 亡清潔,容貌汩然明之為濁,汝濁五重亦復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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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汝見虛空遍十方界,空見不分;有空無體、有見無覺,相 織妄成,是第一重名為劫濁。汝身現摶四大為體,見聞覺知壅令留 礙,水火風土旋令覺知,相織妄成,是第二重名為見濁。又汝心中 憶識誦習,性發知見容現六塵,離塵無相離覺無性,相織妄成,是 第三重名煩惱濁。又汝朝夕生滅不停,知見每欲留於世間,業運每 常遷於國土,相織妄成,是第四重名眾生濁。汝等見聞元無異性, 眾塵隔越無狀異生,性中相知、用中相背,同異失準,相織妄成, 是第五重名為命濁。 「阿難!汝今欲令見聞覺知遠契如來常樂我淨,應當先擇死生根 本,依不生滅圓湛性成,以湛旋其虛妄滅生,伏還元覺得元明覺, 無生滅性為因地心,然後圓成果地修證。如澄濁水貯於淨器,靜深 不動,沙土自沈清水現前,名為初伏客塵煩惱;去泥純水,名為永 斷根本無明。明相精純,一切變現不為煩惱,皆合涅槃清淨妙德。 「第二義者,汝等必欲發菩提心,於菩薩乘生大勇猛,決定棄捐諸 有為相,應當審詳煩惱根本,此無始來發業潤生誰作?誰受?阿 難!汝修菩提,若不審觀煩惱根本,則不能知虛妄根塵;何處顛倒 處尚不知,云何降伏取如來位?阿難!汝觀世間解結之人,不見所 結,云何知解?不聞虛空被汝隳裂。何以故?空無相形,無結解 故。則汝現前眼耳鼻舌及與身心,六為賊媒自劫家寶,由此無始眾 生世界生纏縛故,於器世間不能超越。 「阿難!云何名為眾生世界?世為遷流,界為方位。汝今當知東西 南北東南西南東北西北上下為界,過去未來現在為世;位方有十, 流數有三。一切眾生織妄相成,身中貿遷,世界相涉;而此界性, 設雖十方定位可明,世間秖目東西南北,上下無位中無定方,四數 必明與世相涉,三四四三宛轉十二,流變三疊一十百千,總括始終 六根之中,各各功德有千二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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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汝復於中克定優劣,如眼觀見後暗前明,前方全明後方全 暗,左右傍觀三分之二,統論所作功德不全,三分言功一分無德, 當知眼唯八百功德;如耳周聽十方無遺,動若邇遙諍無邊際,當知 耳根圓滿一千二百功德;如鼻嗅聞通出入息,有出有入而闕中交, 驗於鼻根三分闕一,當知鼻唯八百功德;如舌宣揚盡諸世間出世間 智,言有方分理無窮盡,當知舌根圓滿一千二百功德;如身覺觸識 於違順,合時能覺離中不知,離一合雙,驗於身根三分闕一,當知 身唯八百功德;如意默容十方三世一切世間出世間法,惟聖與凡無 不苞容盡其涯際,當知意根圓滿一千二百功德。 「阿難!汝今欲逆生死欲流,返窮流根至不生滅,當驗此等六受用 根,誰合?誰離?誰深?誰淺?誰為圓通?誰不圓滿?若能於此悟 圓通根,逆彼無始織妄業流,得循圓通,與不圓根日劫相倍,我今 備顯六湛圓明,本所功德數量如是,隨汝詳擇其可入者,吾當發明 令汝增進。十方如來於十八界,一一修行皆得圓滿無上菩提,於其 中間亦無優劣;但汝下劣未能於中圓自在慧,故我宣揚,令汝但於 一門深入,入一無妄,彼六知根一時清淨。」 阿難白佛言:「世尊!云何逆流深入一門,能令六根一時清淨?」 佛告阿難:「汝今已得須陀洹果,已滅三界眾生世間見所斷惑,然 猶未知根中積生無始虛習,彼習要因修所斷得,何況此中生住異滅 分劑頭數?今汝且觀現前六根,為一?為六? 「阿難!若言一者,耳何不見、目何不聞、頭奚不履、足奚無語? 若此六根決定成六,如我今會與汝宣揚微妙法門,汝之六根誰來領 受?」 阿難言:「我用耳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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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言:「汝耳自聞,何關身口?口來問義,身起欽承,是故應知非 一終六,非六終一,終不汝根元一元六。阿難!當知是根非一非 六,由無始來顛倒淪替,故於圓湛一六義生,汝須陀洹雖得六銷猶 未亡一,如太虛空參合群器,由器形異名之異空,除器觀空說空為 一,彼太虛空云何為汝成同不同?何況更名是一非一?則汝了知六 受用根亦復如是。由明暗等二種相形,於妙圓中粘湛發見,見精映 色結色成根,根元目為清淨四大,因名眼體如蒲萄朵,浮根四塵流 逸奔色;由動靜等二種相擊,於妙圓中粘湛發聽,聽精映聲卷聲成 根,根元目為清淨四大,因名耳體如新卷葉,浮根四塵流逸奔聲; 由通塞等二種相發,於妙圓中粘湛發嗅,嗅精映香納香成根,根元 目為清淨四大,因名鼻體如雙垂爪,浮根四塵流逸奔香;由恬變等 二種相參,於妙圓中粘湛發嘗,嘗精映味絞味成根,根元目為清淨 四大,因名舌體如初偃月,浮根四塵流逸奔味;由離合等二種相 摩,於妙圓中粘湛發覺,覺精映觸搏觸成根,根元目為清淨四大, 因名身體如腰鼓顙,浮根四塵流逸奔觸;由生滅等二種相續,於妙 圓中粘湛發知,知精映法覽法成根,根元目為清淨四大,因名意思 如幽室見,浮根四塵流逸奔法。 「阿難!如是六根,由彼覺明有明明覺,失彼精了粘妄發光,是以 汝今離暗離明無有見體,離動離靜元無聽質,無通無塞嗅性不生, 非變非恬嘗無所出,不離不合覺觸本無,無滅無生了知安寄。汝但 不循動靜、合離、恬變、通塞、生滅、暗明,如是十二諸有為相, 隨拔一根脫粘內伏,伏歸元真發本明耀;耀性發明,諸餘五粘應拔 圓脫,不由前塵所起知見,明不循根寄根明發,由是六根互相為 用。 「阿難!汝豈不知,今此會中阿那律陀無目而見;跋難陀龍無耳而 聽;殑伽神女非鼻聞香;驕梵鉢提異舌知味;舜若多神無身有觸, 如來光中映令暫現,既為風質其體元無;諸滅盡定得寂聲聞,如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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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中摩訶迦葉,久滅意根圓明了知不因心念。阿難!今汝諸根若圓 拔已內瑩發光,如是浮塵及器世間諸變化相如湯銷氷,應念化成無 上知覺。阿難!如彼世人聚見於眼,若令急合,暗相現前,六根黯 然頭足相類,彼人以手循體外繞,彼雖不見,頭足一辯知覺是同, 緣見因明暗成無見,不明自發則諸暗相永不能昏,根塵既銷,云何 覺明不成圓妙。」

阿難白佛言:「世尊!如佛說言,因地覺心欲求常住,要與果位名 目相應。世尊!如果位中,菩提、涅槃、真如、佛性、菴摩羅識、 空如來藏、大圓鏡智,是七種名稱謂雖別,清淨圓滿體性堅凝,如 金剛王常住不壞;若此見聽離於暗明、動靜、通塞,畢竟無體,猶 如念心離於前塵本無所有,云何將此畢竟斷滅以為修因,欲獲如來 七常住果?世尊!若離明暗見畢竟空,如無前塵念自性滅,進退循 環微細推求,本無我心及我心所,將誰立因求無上覺?如來先說湛 精圓常,違越誠言終成戲論。云何如來真實語者?惟垂大慈開我蒙 悋。」

佛告阿難:

「汝學多聞未盡諸漏,心中徒知顛倒所因,真倒現前實 未能識,恐汝誠心猶未信伏,吾今試將塵俗諸事當除汝疑。」

即時,如來勅羅睺羅擊鍾一聲,問阿難言:「汝今聞不?」

阿難大眾俱言:「我聞。」

鍾歇無聲,佛又問言:「汝今聞不?」

阿難大眾俱言:「不聞。」

時,羅睺羅又擊一聲,

佛又問言:「汝今聞不?」

阿難大眾又言:「俱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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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問阿難:「汝云何聞?云何不聞?」

阿難大眾俱白佛言:「鍾聲若擊則我得聞,擊久聲銷音響雙絕,則 名無聞。」

如來又勅羅睺擊鍾,問阿難言:「爾今聲不?」

阿難言:「聲。」

少選聲銷,佛又問言:「爾今聲不?」

阿難大眾答言:「無聲。」

有頃,羅睺更來撞鍾,

佛又問言:「爾今聲不?」

阿難大眾俱言:「有聲。」

佛問阿難:「汝云何聲?云何無聲?」

阿難大眾俱白佛言:「鍾聲若擊,則名有聲,擊久聲銷音響雙絕, 則名無聲。」

佛語阿難及諸大眾:「汝今云何自語矯亂。」

大眾阿難俱時問佛:「我今云何名為矯亂?」

佛言:「我問汝聞,汝則言聞;又問汝聲,汝則言聲。惟聞與聲報 答無定,如是云何不名矯亂?

阿難!聲銷無響,汝說無聞,若實無 聞,聞性已滅同于枯木,鍾聲更擊汝云何知?

知有知無,自是聲塵 或無或有,豈彼聞性為汝有無?聞實云無,誰知無者?

是故,阿難!聲於聞中自有生滅,非為汝聞聲生聲滅,令汝聞性為有為無。 汝尚顛倒惑聲為聞,何怪昏迷以常為斷。終不應言,離諸動靜、閉 塞、開通說聞無性。如重睡人眠熟床枕,其家有人於彼睡時擣練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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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其人夢中聞舂擣聲,別作他物,或為擊鼓、或復撞鍾,即於夢 時自怪其鍾為木石響,於時忽寤遄知杵音,自告家人:『我正夢 時,惑此舂音將為鼓響。』

阿難!是人夢中豈憶靜搖、開閉、通 塞,其形雖寐聞性不昏,縱汝形銷命光遷謝,此性云何為汝銷滅?

以諸眾生從無始來,循諸色聲逐念流轉,曾不開悟性淨妙常,不循 所常逐諸生滅,

由是生生雜染流轉;若棄生滅守於真常,常光現 前,塵根識心應時銷落,想相為塵、識情為垢二俱遠離,則汝法眼 應時清明,云何不成無上知覺?」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四

 

正本首楞嚴經 卷 四

 

[1] 의심스러운 점을 질문함

 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히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엄있고 덕 높으신 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여 여래의 제일의 제(第一義諦)를 잘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세존께서 항상 추천하시기를 '설법하는 사람들 가운데 제가 제일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여래의 미묘한 법음을 듣자오니 마치 귀먹은 사람이 백 걸음 밖에서 모기 소리를 듣는 것과 같으니 본래 볼 수도 없거든 더구나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록 분명하게 말씀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의혹 을 덜게 하였사오나 저는 아직도 그 뜻을 끝까지 추구하여 의혹이 없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 같은 무리들은 비록 깨달았다고는 하나 익혀온 습기와 번뇌가 아직 다 없어지지 못하였거니와 저희들은 모임 가운데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없는데까지 이른 자들이므로 비록 모든 새는 것을 다 끊어버렸다 하더라도 지금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음을 듣고서는 오히려 의혹과 회의에 얽혔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세간에 일체의 근(根), 진(塵), 음(陰), 처(處), 계(界)등이 다 여래장이어서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홀연히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리의 모든 물질들이 생겨나서 차례로 변천하여 끝마쳤다가는 다시 시작하곤 하는 것입니까?

또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은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루퍼져서 맑고 고요히 늘 머문다'고 하셨나니 세존이시여! 만약 흙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어떻게 물을 용납하며 물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불은 생기지 못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물과 불의 두 성분이 허공에 가득하여 서로 능멸(凌滅)하지 아니하는지 그 이치를 밝힐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흙의 성질은 가로막는 것이고 허공의 성질은 텅텅 빈 것이거니 어찌하여 두 가지가 다같이 법계에 두루 퍼진다고 하십니까? 저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어두운 구름을 벗겨 주소서."

모든 대중들과 이렇게 말하고서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 여래의 더없이 높은 자비로운 가르침을 흠모하여 목마르게 기다렸다.

 

[2] 여래께서 의혹을 풀어줌

그때에 세존께서 부루나와 모임 가운데에서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어진 무학(無學)인 모든 아라한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여래가 오늘 널리 이 모임을 위해서 수승한 이치 속에서도 참되고 수승한 이치의 성품을 설명하여 너희 모임 중에서 소승인 성문들과 일체의 두 가지 빈 것을 얻지 못한 이들과 상승(上乘)으로 회향하는 아라한 등으로 하여금 모두 일승의 열반의 자리[寂滅場地]인 참된 아련야(阿練惹)의 올바르게 수행할 방법을 얻게 하고자 하노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부루나 등이 부처님의 법음을 흠모하여 잠자코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부루나야! 네가 말한 바와 같이 '청정한 본래 자연 그대로라면 어떻게 홀연히 산과 강과 대지가 생기겠느냐?'고 하는데 너는 여래가 늘 말하는 '성각(性覺)은 오묘하고 밝으며 본각(本覺)은 밝고 오묘하다'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그러한 이치를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늘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말한 깨달음이니 밝음이니 하는 것은 성품이 밝은 것을 깨달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냐 아니면 깨달음이 밝지 못한 것을 밝은 깨달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와 같이 밝지 못한 것을 이름하여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밝힐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밝힐 것이 없다면 밝혀야 할 깨달음이 없으리라. 밝힐 것이 있으면 깨달음이 아니고 밝힐 것이 없으면 밝은 것이 아니며 밝음이 없으면 깨달음의 맑고 밝은 성품이 아니리라.

성품의 깨달음이 반드시 밝은 것이어서 허망하게 밝혀야 할 깨달음이라고 하나니라. 깨달음은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건만 밝힘으로 인하여 밝혀야 할 것이 이루어졌으니 그 밝혀야 할 것 이미 망령되게 이루어지면 너의 허망한 작용의 능력을 생기게 해서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서 불꽃처럼 성하게 다름을 이루었나니라.

 

[3] 세계의 시초

저 다른 것을 다르다고 여겨서 그 다른 것으로 인해 같음이 성립되었고 같음과 다름을 분명히 구분하고 그로 인해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음이 성립되었다. 이렇게 흔들리고 어지러운 것이 서로 작용하면 피로가 생기고 그 피로가 오래되면 번뇌가 생겨서 자연 서로 혼탁하게 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오염과 번뇌[塵勞煩惱]가 일어나나니라. 움직여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 고요하게 있는 것은 허공이 되나니 허공은 같으나 세계는 다르니 그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이 참다운 현상계[有爲法]이니라.

깨달음의 밝음과 허공의 어두운 것이 서로 작용하여 동요하기 때문에 바람바퀴[風輪]가 있어 세계를 잡아 지탱[熱持]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공에 크게 소리쳐서 흔들림이 생겨나고 밝은 것을 굳혀서 막힘이 이루어지니 저 금은 보배는 밝은 깨달음이 굳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금륜(金輪)이 국토를 보전하여 지탱하는 것이며, 깨달음이 굳어져서 금은 보배가 되고 밝음이 흔들려서 바람이 일어나니 바람과 금이 서로 마찰하므로 불 빛이 생겨 변화하는 바퀴가 되었으며, 금보의 밝음이 윤택한 기운을 생기게 하고 불 빛은 위로 치솟기 때문에 물바퀴[水輪]가 생겨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불은 위로 오르고 물은 흘러 내려서 서로 발하여 굳어져서 젖은 곳은 큰 바다가 되고 마른 곳은 육지와 섬이 되었으니 이러한 이치로써 저 바다 가운데서는 불 빛이 늘 일어나고 육지와 섬 가운데서는 강물과 냇물이 늘 흐른다. 물의 힘은 불보다 열세이면 맺혀서 높은 산이된다. 이면 돋아나서 풀이나 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숲과 늪이 타버리면 흙이 되고 쥐어짜면 물이 된다. 서로 엉켜서 허망함이 발생하여 번갈아 서로 종자가 되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세계가 서로 계속되나니라.

 

[4] 중생의 시초

또다시 부루나야 밝은 것이 허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깨달음의 밝은 것이 허물이 되니 허망한 것이 이미 성립되면 밝은 이치가 이를 앞지르지 못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듣는 것이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보는 것이 색깔을 벗어나지 못하여 빛과 향기, 맛과 촉감 등 여섯 가지 허망함이 이루어지나니 그로 말미암아서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는 것이 나뉘어져서 같은업장끼리 서로 얽히고 어울리고 떠나는 것이 변화를 이루나니라.

보는 것이 밝아서 빛이 발하고 밝게 봄으로 해서 생각이 이루어지나니 다르게 보면 미움이 생기고 같은 생각은 사랑이 생겨서 그 사랑이 흘러 종자가 되고 생각을 받아들여 태(胎)가 되어서 서로 어우러짐이 발생하고 같은 업장끼리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그 인연으로 해서 갈라람과 알포담등이 생기나니라. 태로 생하는 것과 알로 생하는 것, 습기에서 생하는 것과 화생으로 생하는 것이 제각기 응할 바를 따라서 알로 생하는 것은 오직 생각으로서만 생겨나고 태로 생하는 것은 (情)으로 인해 생겨나며, 습기로 생하는 것은 합하여 느낌으로서 생기고 화생은 떠나서 응함으로 생기니, 정, 생, 각, 합, 떠남으로 생기는 것들이 다시 서로 변하고 바뀌어서 업을 받는데 그 업장을 따라 혹은 날고 혹은 잠기고 하니 그러한 인연으로 중생이 서로 계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여러가지 욕심으로 말미암아서 그것이 애욕의 성품이 생김을 돕는데 그 애욕을 여읠 수가 없어서 갖가지 업장을 짓게 되나니 그 때문에 나고 죽는 윤회가 계속하게 되나니라.

모든 세간의 부부가 혼인하여 교합해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 낳아 끊이지 않나니 이러한 것들은 음욕을 탐냄으로 업장이 된 것이고, 또 모든 세간에 난생, 태생, 습생, 화생이 힘이 강하고 약함에 따라서 번갈아가며 서로 잡아 먹나니 이러한 것들은 살생을 탐하는 것으로 업장이 된 것이며, 또 다시 모든 세간에 다른 사람이 가진 재물과 돈을 크고 작은 요망한 도적들이 억지로 빼앗거나 몰래 가져가나니 이러한 것들은 도적질을 탐함으로 업장이 된 것이니 가령 세상에서 사람이 양을 잡아 먹었을 경우 그 양은 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되어 이러한 열 가지 생명을 지닌 무리들에 이르기까지 죽고 나고 나고 죽고하여 번갈아 와서 서로 잡아 먹으면서 악업이 함께 생겨 미래의 세계가 다하도록 계속되나니 나머지도 이와 같나니라.

네가 나의 목숨을 저버리면 나는 너의 빚을 갚고 내가 너의 목숨을 저버리면 네가 나의 빚을 갚아서,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보응(報應)하게 되며, 너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거든 나는 너의 얼굴을 어여삐 여기고 내가 너의 마음을 사랑하면 너는 나의 얼굴을 어여삐 여겨 이러한 인연으로 백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얽매이게 되나니라.

오직 음욕과 살생 그리고 도적질, 이 세 가지가 모든 악의 근본이 된다. 그러한 인연으로 업장과 과보가 서로 연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이러한 세가지의 뒤바뀜이 서로 계속되는 것은 모두 밝은 깨달음인 밝고 또렷한 의식이 분별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인하여 허망함을 따라 보는 것이 생기나니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차례로 변하여 흘러도 이 허망으로 인하여 끝나면 다시 시작하곤 하느니라."

 

[5] 오묘한 공은 습기가 없다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 오묘한 깨달음과 본래 오묘한 각명(覺明)은 여래의 마음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이거늘 까닭없이 산과 강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생기는데 여래께서는 지금 오묘하고 빈 명각(明覺)을 얻었사온데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리의 작용이 있는 익혀온 번뇌가 언제 다시 생기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마치 혼미한 사람이 어떤 취락(聚落)에서 남쪽을 북으로 의혹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 미혹은 미혹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냐 깨달음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이렇게 혼미한 사람은 미혹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또한 깨달음으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미혹은 본래 뿌리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미혹으로 인했다고 하겠으며 깨달음이 미혹으로 생긴 것이 아닌데 어떻게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미혹한 사람이 정히 미혹하여 있을 때에 어떤 깨달은 사람이 옳게 지시하여 깨닫게 한다면 부루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비록 미혹하였으나 그 마을 시장에서 다시 미혹이 생기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루나야! 시방의 여래도 역시 그러하니라. 그 미혹은 근본이 없어서 성품이 필경에는 빈 것이니 옛날에는 본래 미혹함이 없었으나 미혹이 있는 듯 한데서 깨닫나니 미혹을 깨달아 미혹이 없어지면 깨달음이 있어 미혹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눈병이 난 사람이 허공의 꽃을 보는 것과 같아서 눈병이 없어질 것 같으면 그 꽃은 허공에서 없어지나니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저 허공의 꽃이 없어진 빈 자리에서 그 꽃이 다시 생기기를 기다린다면 너는 그러한 사람을 볼 적에 어리석다고 하겠느냐 지혜롭다고 하겠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거늘 허망으로 인하여 생기고 없어짐을 보는 것이니 그 꽃이 허공에서 없어짐을 보는 것도 이미 뒤 바뀐 것이거늘 명령하여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게 한다면 이는 실로 미친 바보짓입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미친 바보짓하는 사람을 이름하여 어리석다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다면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의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허공에서 어느 때에 다시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가 나옵니까하고 묻느냐?" 또 마치 금광에 순금이 섞여 있다가 그 금이 완전하게 순금이 되고나면 다시는 섞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마치 나무가 불에 타서 재가 되면 다시는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열반도 역시 그와 같나니라.

 

[6] 네 가지 원소는 서로서로 용납함

부루나야! 또 네가 묻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의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어째서 물의 성품과 불의 성품이 서로 능멸하지 않습니까?"하였고, 또 묻기를 "허공과 땅덩어리가 다 함께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니 부루나야! 비유하면 허공의 본체가 여러가지 모양이 아니지만 그러나 저 여러가지 모양이 나타남을 막지 않는 것과 같나니라.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부루나야! 저 커다란 허공이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두우며,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개이면 맑으며, 기운이 엉키면 탁하고 흙먼지가 쌓이면 흙비가 되며, 물이 맑으면 밝게 비치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러한 여러 방면에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들이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느냐 허공을 따라 있는 것이냐? 만약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부루나야! 장차 해가 비칠 적에는 이미 그것은 해의 밝음이므로 시방세계가 다같은 햇빛이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공중에서 다시 둥근 해를 보게 되느냐? 만약 허공을 따라서 생긴 밝음이라면 허공이 응당 스스로 비칠 것인데 어찌하여 밤중이나 구름이 끼었을 적에는 빛을 내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밝음은 해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허공이나 해와 다른 것도 아니니라. 그 현상을 살펴보건대 본래가 허망해서 가리켜서 말할 수가 없음이 마치 허공의 꽃에서 헛된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떻게 서로 능멸하는 이치를 따지겠느냐? 성품을 살펴보건대 본래 참된 것이라서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일 뿐이다.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의 마음이 본래 물이나 불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서로 용납하지 못하느냐고 묻느냐?

참되고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네가 허공으로서 밝히면 허공이 나타나고 흙과 물, 불과 바람으로 각각 밝히면 곧 그것들도 각각 나타나며 만약 다 함께 밝히면 곧 다 함께 나타나나니라.

어떤 것을 함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부루나야! 마치 물 속에 해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두 사람이 함께 물 속의 해를 보다가 동쪽과 서쪽으로 제각기 가면 물 속의 해도 제각기 두 사람을 따라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가서 본래부터 표준한 곳이 없으니 따져 말하기를 "저 해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제각기 가느냐?"고 하며 "각자 가는 해가 이미 둘인데 어찌하여 하나로 나타나느냐?"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완연히 허망하여 의지할 수가 없나니라.

 

[7] 허망한 것을 좇아 나타남

부루나야! 너는 물질과 허공으로서 여래장에서 서로 밀어내고 서로 빼앗으므로 여래장도 따라서 물질과 허공이 되어 우주에 두루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바람은 움직이고 허공은 맑으며 해는 밝고 구름은 어두운 것인데 중생들은 어리석고 미련해서 깨달음을 저바리고 허망한 티끌과 어울리므로 번뇌가 일어나서 세간의 현상이 있게 되나니라.

나는 오묘하고 밝은 것이 생겨나거나 없어지지도 않는 것으로서 여래장과 합하였는데 여래장이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이므로 우주에 원만하게 비춘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하나가 한량없는 것이 되고 한량없는 것이 하나가 되며, 적은 가운데 큰 것을 나타내고 큰 가운데 적은 것을 나타내며,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방의 세계에 두루 퍼지며, 몸으로 시방의 끝 없는 허공을 머금으며, 한 털끝에서 보왕(寶王)의 세계를 나타내며, 작은 먼지 속에 앉아서 큰 법륜(法輪)을 굴리나니라.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에 합하므로 진여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을 발하니 여래장의 본래 오묘하고 원만한 마음은 마음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흙도 아니요 물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요 불도 아니며, 눈도 아니요 귀, 코, 혀, 몸, 생각도 아니며, 빛도 아니요 소리, 향기, 맛, 촉감, 법도 아니며, 안식계(眼識界)도 아니요 이렇게 의식계(意識界)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밝음도 밝음이 없음도 아니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마져 다함도 아니며, 이와같이 늙음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며, 늙음과 죽음이 다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괴로움도 아니요 괴로움의 원인도 아니며, 괴로움을 없는 자리도 아니요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증득함도 아니며, 보시도 아니요 계율도 아니며, 인욕도 아니요 정진도 아니며, 선정도 아니요 반야도 아니며, 바라밀다도 아니니라.

이와 같아서 여래도 아니요 응공도 아니며, 정변지도 아니요 대열반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며, 주체도 아니요 청정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나니 이렇게 세간과 출세간도 모두 아니기 때문이요.

곧 여래장의 원 밝은 마음인 오묘함은 곧 마음이요 허공이며, 흙, 물, 바람, 불이요 곧 눈, 코, 혀, 몸, 생각이며, 곧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법(法)이요 곧 눈으로 보아 의식하는 경계이며, 이렇게 뜻으로 생각하여 의식하는 경계에까지 이르며, 곧 밝음과 밝음이 없음이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까지 다 끊음이며 이렇게 곧 늙음이요 죽음이며, 곧 늙음과 죽음이 다함이요 곧 괴로움(苦),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을 없애는 자리[滅], 괴로움을 없애는 길[道], 지혜, 증득함이며, 곧 보시, 계율,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바라밀다이고 이렇게 곧 여래, 응공, 정변지이며, 곧 대열반이요, 곧 항상함(常), 즐거움(樂), 주체(我), 청정(淨)이니 이것이 모두가 곧 세간법과 출세간법이므로 곧 여래장인 오묘하고 밝은 마음의 근본은 그런 것도 아니요 그렇지 아니함도 아니며,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이니라.

어찌하여 세간의 삼유(三有)의 중생들과 출세간의 성문 연각들이 알고 있는 마음으로 여래의 위없는 보리를 추측하여 헤아려서 세간의 언어로써 부처님의 지견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거문고, 비파. 공후가 비록 묘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손가락이 없으면 끝끝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너와 중생들도 역시 이와같아서 보배로운 깨달음의 참 마음이 각각 원만하건만 만일 내가 손가락을 놀리면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거늘 너는 잠시만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가 먼저 일어나나니 이는 위없는 깨달음의 길을 부지런히 구하지 않고 소승을 좋아하여 적은 것을 얻고 만족하게 여기는 탓이니라."

 

[8] 허망함이 일어나는 원인

부루나가 말하기를 "저와 여래는 보배의 깨달음이 원만하게 밝아서 진실하고 오묘하고 청정한 마음이 다를 것이 없이 원만한 것입니다만 저는 옛날 시작도 없는 과거로부터 허망한 생각을 내어서 오랫동안 윤회 속에 있었으므로 지금 성인의 과업을 이루었으나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모든 허망함이 모두 다 없어져서 홀로 오묘하게 참되고 항상하시니 감히 여래께 묻습니다만 일체 중생들은 무슨 원인으로 허망한 생각이 있어서 스스로 오묘하게 밝은 것을 가리우고 이렇게 윤회에 빠져 허덕이나이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비록 의심은 없앴으나 나머지 의혹이 다 없어지지 못하였으니 내가 세상에서 현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지고 지금 다시 네게 묻겠다.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시라벌성 안에 연야달다(演若達多)가 홀연히 이른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 있는 눈썹과 눈은 볼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의 얼굴과 눈은 보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다하니 너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무슨 원인으로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겠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 사람은 마음이 미친 것일 뿐 다른 까닭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은 본래 원만하고 밝고 오묘한 것이니 이미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였던들 어떻게 원인이 있다고 하겠으며 만약 원인이 있으면 어떻게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겠느냐? 스스로 일으킨 모든 망상들이 전전하며 서로 원인이되어 미혹을 좇아 미혹이 쌓여서 끝없는 세월을 지내왔으므로 비록 부처님께서 발명해주었어도 오히려 돌이키지 못하나니라.

이와 같이 미혹한 원인은 미혹으로 인하여 저절로 생긴 것이니 미혹함이 원인이 없다는 것을 알면 허망한 생각이 의지할 데가 없나니 오히려 생기는 것도 없는데 무엇을 없애려느냐? 보리를 얻은 자는 잠을 깬 사람이 꿈 속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마음에는 비록 꿈 속의 일이 분명하지만 무슨 수로 꿈 속에 물건들을 취할 수 있겠느냐? 더구나 원인이 없어서 본래 있지도 않은 것이랴.

저 시라벌성의 연야달다와 같은 경우는 어찌 인연이 있어서 자기의 머리를 무서워하면서 달아났겠느냐? 홀연히 미친 증세가 없어지면 그 머리는 밖에서 얻어진 것이 이니며 비록 미친 중세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어찌 잃어버린 것이겠느냐? 부루나야! 허망한 성품이 이러하니 원인이 어찌 있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만 세간의 업장과 과보 그리고 중생, 이 세 종류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따라 분별하지 아니하면 세 가지 인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곧 너의 마음 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은 자연 없어질 것이다.

무명이 없어지면 곧 보리의 뛰어나게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우주에 두루퍼져서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니 어찌하여 애써가며 수고롭게 닦아서 증득하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속에 여의주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알지 못해서 타향에서 곤궁하게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것과 같아서 비록 실제는 빈궁하지만 여의주는 잃은 것이 아니니 홀연히 지혜있는 사람이 그 여의주를 가르켜주면 원하던 것이 마음을 따라서 큰 부자가 되리니 그때에야 바야흐로 그 신비로운 여의주가 밖에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으리라."

 

[9] 자연으로 인연을 깨뜨림

그때에 아난이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일어나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께서 지금 말씀하시기를 음욕, 살생, 도적질의 세 가지 업연이 끊어지므로해서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마음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이 자연 없어지리니 미친 성품이 없어지면 이는 곧 보리인지라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인(因)과 연(緣)이 분명한 것이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완전히 버렸습니까? 저도 인연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열리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이치는 어찌 나이 어린 저희들 유학인 성문들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있는 대목견련과 사리불과 수보리 등도 늙은 범지(梵志)를 추종하다가 부처님의 인연법을 듣고서 발심하여 깨달아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끊어지는 도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리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왕사성의 구사리 등이 말하는 자연이라야 제일의(第一義)가 되리니 바라옵건데 큰 자비를 베푸시어 혼미하고 답답한 것을 열어 밝혀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치 성 가운데 있는 연야달다가 만약 미친 성품의 인연을 제거하여 없앨 수만 있다면 미친 성품이 아닌 것이 자연히 나오는 것과 같아서 인연과 자연의 이치가 여기에서 끝나나니라.

아난아! 연야달다의 머리가 본래 자연 그대로인진댄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자연 아닌 것이 없거늘 무슨 인연 때문에 머리를 두려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약 자연의 머리가 인연 때문에 미쳤다면 어찌하여 자연이 인연 때문에 잃어지지 않는냐? 본래의 머리는 잃은 것이 아니거늘, 미쳐 두려워함이 허망하게 생겼다면 이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느냐?

본래 미친 것이 자연이라면 미친 두려움이 본래부터 있는 것이겠지만 미치지 않았을 적에는 미친 증상이 어디에 숨었었으며 미치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면 머리는 본래 미쳐 날뜀이 없을 것이어늘 어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일 본래의 머리라는 것을 깨닫고나서 미쳐서 달아났던 것을 알면 인연과 자연이 모두 장난같은 논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세 가지 연(緣)이 끊어지므로 곧 보리심이다'고 한 것이다.

 

[10] 잘못을 경책하고 수행을 권유함

보리의 마음이 생기고 나서 없어지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모두 다하여 공부의 작용이 없는 길에 만약 자연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것은 자연의 마음이 생기며 나고 없어지고 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분명하니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세간의 모든 현상이 섞여서 한 몸이 되는 것을 화합의 성품이라 하고 화합하지 않은 것을 본연의 성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본래 자연과 본래 자연이 아닌 것, 화합과 화합이 아닌 것, 자연과 합해진 것을 모두 여의며 따라서 벗어나고 화합함이 모두 아니라야 이 구절이 바야흐로 장난같은 논란이 없는 진리라고 할 수 있나니라.

보리와 열반이 아직도 아득하고 멀어서 네가 여러 겁동안 애써서 닦는 것으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비록 다시 시방여래의 십이부경(十二部經)에 청정하고 오묘한 이치를 기억해 가짐이 항하의 모래와 같더라도 장난같은 논리만 더할 뿐이다.

네가 비록 인연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함에 있어서 결정코 분명하고 또렷하므로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많이 들은 것으로는 제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렇게 여러 겁을 많이 들음을 쌓아 익혔건만 마등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거늘 어찌하여 나의 불정신주(佛頂神呪)를 기다려서 마등가의 마음에 음욕의 불꽃이 다 없어지게 하고 아나함을 증득하여 나의 법 가운데에 정진의 숲을 이루고 애욕의 강을 말려서 너로 하여금 해탈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비록 여러 겁을 여래의 비밀스럽고 오묘하고 장엄한 것을 기억해 가졌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를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도를 닦아서 세간에서미워하고 사랑하는 두 가지 고통을 멀리 여의는 것만 같지 못하나니라.

마등가와 같은 경우는 전세에 음란한 여자였으나 신주(神呪)의 힘으로 인하여 그 애욕을 소멸하고 지금은 나의 법 가운데 들어와서 성비구니(性比丘尼)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나후라의 어미인 야수다라와 함께 과거세의 인연을 깨달아 많은 세상을 지내오면서 맺어온 인연이 탐욕과 애욕으로 괴로움이 된 것임을 깨닫고서 일념으로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감이 없는 선행을 닦았으므로 혹은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혹은 수기(授記)를 받기도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속아서 아직도 보고 듣는데 머물러 있느냐?"

 

[11] 아난이 간청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의혹이 사라져 없어지고 마음의 참 모습을 깨달아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져서 일찌기 있기 않았던 것을 얻고는 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없이 크고 자비하신 청정한 보배의 왕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잘 열어주셔서 이러한 여러가지 인연을 방편으로 이끌어주시고 권장해주시는 한편 캄캄한데 빠진 자를 인도하여 괴로움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비록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서 여래장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 퍼져서 여래께서 시방국토의 청정한 보엄묘각왕찰(寶嚴竗覺王刹)을 함유(含有)하였음을 알았습니다만 여래께서 다시 꾸짖으시기를 '많이 듣기만 하는 것은 공이 없어 닦아 익히는데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시니 저는 지금 마치 나그네 생활을 하던 사람이 홀연히 천왕(天王)이 주신 호화로운 집을 받은 것과 같아서 비록 큰 집을 얻었으나 문을 찾아 들어감이 요긴한 것과 같사오니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와 저희 이 모임에 있는 여러 몽매(夢昧)한 자들을 깨우쳐 주시어 소승을 버리고 마침내 여래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본디 발심했던 길을 얻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배울 것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지난날 반연하던 마음을 항복받고 다라니(陀羅尼)를 얻어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서 모임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기다렸다.

 

[12] 뜻을 펴 종지를 표함

그때에 세존께서 모임 가운데 있는 연각과 성문들이 보리의 마음에 자재하지 못한 자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앞으로 닥칠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 말법의 중생들이 보리의 마음을 발할 자들을 위하여 무상승(無上乘)의 오묘한 수행의 길을 열어주려고 하시어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결정코 보리의 마음을 내어 여래의 오묘한 삼마지에 피로하고 게으름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응당 먼저 깨달음을 발하려는 첫 마음을 일으킨 때에 두 가지 결정의 의미를 밝혀야 하나니라.

무엇을 '처음 발심한 때에 두 가지 결정의 뜻'이라고 하는가하면 아난아! 첫번째 뜻은 너희들이 만약 성문을 버리고 보살승(菩薩乘)을 닦아서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가고자 할진댄 응당 인지(因地)의 발심이 과지(果地)의 깨달음과 같은가 다른가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아난아! 만약 인지에서 나고 없어지는 마음으로 본래 수행할 원인으로 삼아서 불승(佛乘)의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구할진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나니라.

그러한 뜻으로 너는 마땅히 모든 기세간(器世間)의 만들 수 있는 법을 비추어 밝혀 보아라. 다 변하여 없어지나니라. 아난아! 너는 세상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법을 보아라. 어느 것이 무너지지 않더냐? 그러나 끝끝내 허공이 허물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을 터이니 무엇 때문인가? 허공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허물어져 없어지지 않나니라.

너의 몸 속에서 굳은 모양은 흙이 되고 축축한 것은 물이 되며, 따뜻한 촉감은 불이 되고 움직이고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되나니 이 네 가지 원소가 얽혀서 너의 맑고 원만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나뉘어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살피는 것이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겹의 혼탁함이 생기나니라.

 

[13] 다섯 가지 혼탁의 현상을 밝힘

어떤 것을 혼탁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맑은 물은 청결함이 본래부터 그러한 것이고 저 흙과 뿌연 모래의 종류는 본 바탕이 엉키는 것이니 두 가지의 본체는 자연의 법칙이라서 그 성품이 서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이 그 흙과 모래를 가져다가 맑은 물에 넣으면 흙은 엉키는 것을 잃어버리고 물은 맑음을 잃어버려서 형태가 흐릿하게 되는 것을 혼탁[濁]이라고 이름하나니 너의 다섯 겹으로 쌓인 혼탁한 것도 역시 이와 같나니라.

아난아! 네가 허공이 시방에 두루한 것을 볼 적에 허공과 보는 놈이 구분되지 아니하여 허공은 있고 실체는 없으며 보는 놈은 있고 깨달음은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첫번째 둘러싼 것으로 그 이름이 '겁탁'이니라.

네 몸이 현재 네 가지 원소가 뭉쳐서 몸이 되었으므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막혀서 장애가 되며 물과 불, 바람과 흙이 돌아가며 깨달아 알게 하여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니 이는 두번 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견탁'이니라.

또 너의 마음 속에 기억하고 의식하고 외우고 익히고 하여 성품에서 깨닫고 보고 하는 것을 발하고 모양은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을 나타내니 대상인 물질을 여의면 현상이 없고 깨달음을 여의면 성품이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세번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번뇌탁'이니라.

또 네가 아침 저녁으로 생기고 없어짐이 멈추지 아니하여 느끼고 보는 놈은 늘 세간에 머물고자 하며 업장을 지어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항상 국토에 옳겨져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네 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중생탁'이니라.

너희들의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원래 다른 성품이 아니거늘 모든 대상 물질이 가로 막아서 형상도 없이 다른 것이 생기나니라. 성품 가운데 서로 알고 작용 가운데 서로 배반하여 같고 다름이 기준을 잃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것은 다섯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명탁'이다.

 

[14] 상근기가 유익함을 획득함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지금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으로 하여금 멀리 여래의 상(常), 낙(樂),아(我),정(淨)과 계합하기를 바라거든 먼저 마땅히 나고 죽는 근본부터 골라 버리고, 나고 죽지 않는 맑고 원만한 성품에 의해서 이룩해야 하리니 맑음으로써 허망하게 났다 죽었다 하는 것을 돌이켜서 이를 항복받아 본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명각(命覺)인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얻어 인지(因地)의 마음을 삼은 다음에야 과지(果地)를 닦아 증득함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마치 흐린 물을 맑게 할 적에 고요한 그릇에 담아서 흔들리지 않게 오래 두면 모래와 흙은 저절로 가라앉고 맑은물만이 앞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은 처음으로 객진번뇌(客塵煩惱)를 항복 받았다고 이름할 것이요, 앙금을 버리고 순수한 물만 남게 한 것과 같은 것은 근본무명(根本無明)을 영원히 끊었다고 이름할 수 있으니 밝은 모양이 정밀하고 순수하면 일체가 변하여 나타나도 번뇌가 되지 않아서 모두가 열반의 청정하고 오묘한 덕과 부합하나니라.

또 다시 아난아! 너는 지금 알고 있느냐? 아미타불이 저기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니 너는 일어나 합장하고서 서쪽을 향해 이마로 예를 올려라. 아난이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는 동안에 아미타불이 큰 광명을 발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비추시니 수없이 많은 천지와 수없이 많은 해와 달이 모두 다 빛을 잃어버리고 오직 한줄기 부처님의 광명만이 힘차고 환하게 빛나거늘 이 모임의 사부대중 가운데 모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은 저 아미타불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장엄함을 통해 보고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고서 곧 차등이 있을 수 없는 아뇩다라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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