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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의 능엄신주 범어독음과 국역

https://www.youtube.com/watch?v=Rc6Z0gLvp-Y https://kydong77.tistory.com/21628 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 국역 전10권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ube393&logNo=220020727513 능엄경 전문 正本首楞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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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迷心萬行 未免輪回(미심만행 미면윤회)

제2장 迷心萬行 未免輪回(미심만행 미면윤회) 미혹한 마음으로 만행을 해도 윤회는 면치 못한다 5. 問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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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二卷

제2장

迷心萬行 未免輪回(미심만행 미면윤회)

미혹한 마음으로 만행을 해도 윤회는 면치 못한다

5.

問曰:若不見性,念佛誦經布施持戒精進,廣興福利,得成佛否?

“만약 본성을 보지 않더라도,

염불하고, 경을 외우고,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정진(精進)하고, 널리 복되고 이로운 일을 한다면,

성불(成佛)할 수 있습니까?“

答曰:不得。

“성불할 수 없다.“

又問:因何不得?

“어찌하여 성불할 수 없습니까?“

答曰:有少法可得,是有為法,是因果、是受報、是輪迴法

“얻을 수 있는 조그마한 법이라도 있다면,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고,

인과법(因果法)으로서, 과보(果報)를 받는 것이니, 곧 윤회(輪廻)하는 법이다.

不免生死,何時得成佛道。成佛須是見性。

생사(生死)를 벗어나지 못하고서, 어느 때에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겠는가?

성불이란 모름지기 본성을 보는 것이다.

若不見性,因果等語,是外道法。

만약 본성을 보지 않으면, 인과(因果) 등의 말들은 외도(外道)의 법이다.

若是佛不習外道法。

만약 부처라면, 외도법(外道法)을 익히지 않는다.

佛是無業人,無因果,

부처는 업을 짓는 사람이 아니니, 부처에게는 인과(因果)가 없다.

但有少法可得,盡是謗佛,憑何得成。

다만 얻을 수 있는 조그만 법이라도 있기만 하면, 모두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니, 어떻게 성불하겠는가?

但有住著一心一能一解一見,佛都不許。

하나의 마음(一心)에든, 하나의 능력(一能)에든, 하나의 이해(一解)에든, 하나의 견해(一見)에든, 머물기만 하면, 부처는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佛無持犯,

부처에게는 지키거나 범할 것이 없다.

心性本空,亦非垢淨。

마음의 본성은 본래 공(空)이니, 역시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諸法無修無證,無因無果。

모든 법은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고,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佛不持戒,佛不修善,佛不造惡,佛不精進,佛不懈怠,

부처는 계율을 지키지도 않고, 선(善)을 닦지도 않고, 악(惡)을 짓지도 않고, 정진(精進)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다.

佛是無作人。但有住著心,見佛即不許也。

부처는 만드는 일이 없는 사람이니, 마음에 머물러 부처를 본다면, 용납되지 않는다.

佛不是佛,莫作佛解。

부처는 부처가 아니니, 부처라는 견해를 만들지 말라.

若不見此義,一切時中,一切處處,皆是不了本心。

만약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한다면, 어느 때든 어느 곳에서든 결코 본래 마음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若不見性,一切時中擬作無作想,是大罪人,

만약 자성을 보지 못하고서, 언제나 ‘만드는 일이 없다’라는 생각을 만들려 한다면, 이것은 큰 죄인이고,

是癡人,落無記空中;昏昏如醉人,不辨好惡。

어리석은 사람이고, 무분별의 허공 속에 떨어져서 어둡기가 술취한 것과 같은 사람이어서 좋고 나쁨을 판별하지 못한다.

若擬修無作法,先須見性,然後息緣慮。

만약 만드는 일이 없는 법을 닦으려 한다면, 먼저 반드시 자기성품을 본 연후에야 반연하는 생각이 쉬어지는 것이다.

若不見性得成佛道,無有是處。

자성을 보지 못하고도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는 경우는 절대 없다.

有人撥無因果,熾然作惡業,妄言本空,作惡無過;

어떤 사람은 인과(因果)를 무시하고 마구 악업(惡業)을 짓고는, 망녕되이 말하기를,

‘본래 공(空)이니 악한 일을 해도 허물이 없다.’고 한다.

如此之人,墮無間黑暗地獄,永無出期。

이러한 사람은 무간흑암지옥(無間黑暗地獄)에 떨어져 영원토록 벗어날 기약이 없다.

若是智人,不應作如是見解。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안된다.

6.

問曰:既若施為運動,一切時中皆是本心;色身無常之時,云何不見本心?

“이미 움직이고 동작함이 언제나 모두 본래 마음이라면, 육체가 무상(無常)할 때에 어떻게 본래 마음을 보지 못합니까?“

答曰:本心常現前,汝自不見?

“본래 마음이 늘 앞에 드러나 있지만, 그대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問曰:心既見在,何故不見?

“마음이 이미 드러나 있는데, 무슨 까닭에 보지 못합니까?“

師曰:汝曾作夢否?

“그대는 꿈을 꾼 적이 없는가?“

答:曾作夢。

“꿈 꾼 적이 있습니다.“

問曰:汝作夢之時,是汝本身否?

“그대가 꿈을 꿀 때에, 그대의 본래 몸인가?“

答:是本身。 

“본래 몸입니다.“

又問:汝言語施為運動與汝別不別?

“그대의 말과 움직임과 동작은 그대와 따로 있는가, 따로 있지 않는가?“

答曰:不別。 

“따로 있지 않습니다.”

師曰:既若不別,即此身是汝本法身;即此法身是汝本心。

“이미 따로 있지 않다면, 곧 이 몸이 그대의 본래 법신(法身)이고, 이 법신이 그대의 본래 마음이다.

此心從無始曠大劫來,與如今不別;

이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과 다르지 않아서, 생기거나 사라진 적이 없다.

未曾有生死,不生不滅。不增不減,不垢不淨,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고,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好不惡,不來不去;亦無是非、亦無男女相、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옳고 그름도 없고, 남녀의 모습도 없고,

不亦無僧俗老少、無聖無凡;亦無佛、亦無眾生、

승속(僧俗)과 노소(老少)도 없고, 성인(聖人)도 없고, 범부도 없고,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亦無修證、亦無因果、亦無筋力、亦無相貌;

닦아서 깨달음도 없고, 원인도 결과도 없고, 근력(筋力)도 없고, 용모(容貌)도 없다.

猶如虛空,取不得、捨不得,山河石壁不能為礙;

마치 허공과 같아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산이나 강이나 석벽(石壁)이 가로 막을 수도 없다.

出沒往來,自在神通;

나타나고 사라지고 가고 옴에, 자재(自在)하고 신령스러이 통한다.

透五蘊山,渡生死河;一切業拘此法身不得。

오온(五蘊)의 산을 통과하고, 생사(生死)의 강을 건너니, 어떤 업(業)이라도 이 법신(法身)을 구속할 수 없다.

此心微妙難見,此心不同色心,

이 마음은 미묘(微妙)하여 보기가 어려우니, 이 마음은 색심(色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此心是人皆欲得見。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니, 사람들은 모두 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於此光明中運手動足者,如恆河沙,及乎問著,總道不得,猶如木人相似,

이 광명(光明) 속에서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물어 보면 전혀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나무로 만든 사람과 같다.

總是自己受用,因何不識?

모두가 스스로 받아서 사용하는데, 무슨 까닭에 알지 못하는가?

佛言一切眾生,盡是迷人,因此作業,墮生死河,欲出還沒,只為不見性。

부처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은 전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까닭에 업을 지어서

생사(生死)의 강에 떨어져 나오고자 하지만 도리어 잠겨 버리니, 단지 본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眾生若不迷,因何問著其中事,無有一人得會者,自家運手動足因何不識?

중생이 만약 어리석지 않다면, 무슨 까닭으로 물어 보면 그 가운데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으며, 스스로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면서도 무슨 까닭에 알지 못하는가?

故知聖人語不錯,迷人自不會曉。

그러므로 성인의 말은 잘못됨이 없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故知此難明,惟佛一人能會此法;餘人天及眾生等,盡不明了。

그러므로 이것은 밝히기가 어려워서 오직 부처 한 사람만이 이 마음을 잘 알아차릴 뿐,

나머지 사람들과 하늘사람과 중생들은 전혀 밝게 깨닫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若智慧明了,此心號名法性,亦名解脫。生死不拘,

만약 지혜가 이 마음을 밝게 깨달으면, 바야흐로 법성(法性)이라 이름하고, 또 해탈이라 이름 하니, 생사에 구속받지 않기 때문이다.

一切法拘它不得,是名大自在王如來;

모든 법이 그를 구속할 수 없으니, 일컬어 크게 자유로운 으뜸가는 여래[大自在王如來]라 하고,

亦名不思議,亦名聖體,

또 생각과 말로 하지 못한다[不思議, 부사의]고 하고, 또 성스러운 바탕[聖體, 성체]이라고 하고,

亦名長生不死,亦名大仙。

또 영원히 살아서 죽지 않는다[長生不死]고 하고, 또 큰 신선[大仙]이라 한다.

名雖不同,體即是一。聖人種種分別,皆不離自心。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바탕은 곧 하나이니, 성인(聖人)이 여러 가지로 분명한 것이 모두 자기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心量廣大,應用無窮,應眼見色,應耳聞聲,

마음의 크기는 광대하고, 응대하여 작용함은 끝이 없다. 눈에 응해서는 색을 보고, 귀에 응해서는 소리를 듣고,

應鼻嗅香,應舌知味,乃至施為運動,皆是自心。

코에 응해서는 냄새를 맡고, 혀에 응해서는 맛을 알고, 나아가 움직이고 동작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이다.

一切時中但有語言道斷,即是自心。

언제나 말길이 끊어지기만 하면, 곧 자기 마음이다.

故云如來色無盡,智慧亦復然。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래의 색(色)은 다함이 없고, 지혜 역시 그러하다.’라고 하였다.

色無盡是自心,心識善能分別一切,乃至施為運用,皆是智慧。

색에 다함 없음이 곧 자기 마음이고, 마음인 의식이 모든 것을 잘 분별함과 나아가 움직이고 동작함이 모두 지혜이다.

心無形相,智慧亦無盡。

마음은 모습이 없고, 지혜 역시 다함이 없다.

故云如來色無盡,智慧亦復然。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래의 색은 다함이 없고, 지혜 역시 그러하다.’고 한 것이다.

四大色身,即是煩惱,色身即有生滅,

사대색신(四大色身)이 곧 번뇌이니, 색신에는 생멸(生滅)이 있기 때문이다.

法身常住無所住,

법신은 언제나 머물러 있으니, 다시 머물 것은 없다.

如來法身常不變異故。

래의 법신은 한결같아서 다르게 변하지 않는다.

經云:眾生應知,佛性本自有之。

그러므로 경(經)에서 말하기를, ‘중생은 불성이 본래 스스로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라고 하였다.

7.

迦葉只是悟得本性,

가섭(迦葉)은 다만 본성(本性)을 깨달았을 뿐이다.

本性即是心,心即是性,性即此同諸佛心。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본성이다. 바로 이것이 모든 부처의 마음과 같다.

前佛後佛只傳此心,除此心外,無佛可得。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이 마음을 전하였을 뿐이다. 이 마음을 제외하고는 얻을 부처가 없다.

顛倒眾生不知自心是佛,向外馳求,終日忙忙;

뒤집힌 중생은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치달려 찾아서 하루 종일 바쁘다.

念佛禮佛,佛在何處?

염불(念佛)하고 예불(禮佛)하지만, 부처가 어디에 있는가?

不應作如是等見,但知自心,心外更無別佛。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안된다. 단지 자기 마음만 알면, 마음 밖에 다시 다른 부처가 없다.

經云:凡所有相,皆是虛妄。又云:所在之處,即為有佛。

경(經)에서 말하기를 ‘무릇 모습 있는 것은 모두 허망(虛妄)하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있는 그곳에 곧 부처가 있다.’ 고 하였다.

自心是佛,不應將佛禮佛;

但是有佛及菩薩相貌,忽爾見前,切不用禮敬。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이니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해서는 안된다.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문득 앞에 나타나더라도, 결코 절하고 공경할 필요가 없다.

我心空寂,本無如是相貌,

若取相即是魔,盡落邪道。

나의 마음은 텅 비고 고요하니, 본래 그런 모습은 없다.

만약 모습을 취한다면 곧 마구니에게 포섭되니, 모두 사도(邪道)에 떨어진다.

若是幻從心起,即不用禮。

만약 (불상과 보살상이라는) 환상(幻想)이 마음에서 생긴다면, 절할 필요가 없다.

禮者不知,知者不禮,禮被魔攝。

절하는 자는 (진실을) 알지 못하고, (진실을) 아는 자는 절하지 않는다.

절 하는 것은 마구니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恐學人不知,故作是辨。

학인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할까봐 염려되어, 그 때문에 이렇게 판별하는 것이다.

諸佛如來本性體上,都無如是相貌,切須在意。

모든 부처와 여래와 본성(本性)의 바탕 위에는 전혀 이러한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但有異境界切不用採括,亦莫生怕怖,不要疑惑,

다른 경계가 있더라도, 결코 붙잡아 취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我心本來清淨,何處有如許相貌。

나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니, 어느 곳에 이와 같은 모습이 있겠는가?

乃至天龍夜叉鬼神帝釋梵王等相,亦不用心生敬重,亦莫怕懼;

나아가 천룡(天龍), 야차(夜叉), 귀신(鬼神), 제석천(帝釋天), 범천(梵天) 등의 모습에 대해서도, 또한 마음을 써서 공경하거나 귀중하게 여기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我心本來空寂,一切相貌皆是妄見,但莫取相。

나의 마음은 본래 텅 비고 고요하니, 모든 모습은 전부 허망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결코 모습을 붙잡지는 말라.

若起佛見法見,及佛菩薩等相貌,而生敬重,自墮眾生位中。

만약 부처라는 견해, 법이라는 견해를 내고, 부처라는 모습, 보살이라는 모습을 내어서,

공경하고 귀중하게 여긴다면, 스스로 중생의 처지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若欲直會,但莫取一切相即得,更無別語。

만약 진실로 알아차리고자 한다면, 다만 어떤 모습도 취하지 않으면 될 뿐, 달리 할 말은 없다.

故經云:凡所有相,皆是虛妄。都無定實,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무릇 있는 모습들은 모두 허망하다.'고 하였으니, 전혀 정해진 진실은 없는 것이다.

幻無定相。是無常法,

환상(幻相)에는 정해진 모습이 없으니, 이것이 곧 무상(無常)한 법이다.

但不取相,合它聖意。

단지 모습을 취하지 않기만 하면, 저 성인의 뜻과 합할 것이다.

故經云:離一切相,即名諸佛。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모습을 떠난 것을 모든 부처라고 일컫는다.’라 한 것이다.

<< 卷2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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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第二

(一名中印度那蘭 陀大道場經,於灌頂部錄出別行)

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爾時,阿難及諸大眾聞佛示誨身心泰然,念無始來失却本心,妄認 緣塵分別影事,今日開悟如失乳兒忽遇慈母,合掌禮佛,願聞如來 顯出身心真妄虛實現前生滅與不生滅二發明性。

波斯匿王起立白佛:「我昔未承諸佛誨勅,見迦旃延毘羅胝子,

咸 言:『此身死後斷滅,名為涅槃。』

我雖值佛今猶狐疑,云何發揮 證知此心不生滅地?令此大眾諸有漏者咸皆願聞。」

佛告大王:「汝身現存,今復問汝,汝此肉身為同金剛常住不朽? 為復變壞?」

「世尊!我今此身終從變滅。」

佛言:「大王!汝未曾滅,云何知滅?」

「世尊!我此無常變壞之身雖未曾滅,我觀現前念念遷謝新新不 住,如火成灰漸漸銷殞殞亡不息,決知此身當從滅盡。」

佛言:「如是,大王!汝今生齡已從衰老,顏貌何如童子之時?」

「世尊!我昔孩孺膚腠潤澤,年至長成血氣充滿,而今頹齡迫於衰 耄,形色枯悴精神昏昧,髮白面皺逮將不久,如何見比充盛之 時。」

佛言:「大王!汝之形容應不頓朽。」

17

王言:「世尊!變化密移我誠不覺,寒暑遷流漸至於此。何以故? 我年二十雖號年少,顏貌已老初十年時;三十之年又衰二十;于今 六十又過于二;觀五十時宛然強壯。世尊!我見密移雖此殂落,其 間流易且限十年,若復令我微細思惟,其變寧唯一紀二紀,實為年 變;豈唯年變,亦兼月化;何直月化,兼又日遷;沈思諦觀剎那剎 那,念念之間不得停住,故知我身終從變滅。」

佛言:「大王!汝見變化遷改不停,悟知汝滅;亦於滅時,知汝身 中有不滅耶?」

波斯匿王合掌白佛:「我實不知!」

佛言:「我今示汝不生滅性。大王!汝年幾時見恒河水?」

王言:「我生三歲,慈母携我謁耆婆天,經過此流。爾時即知是恒 河水。」

佛言:「大王!如汝所說,二十之時衰於十歲,乃至六十,日月歲 時念念遷變,則汝三歲見此河時,至年十三其水云何?」

王言:「如三歲時,宛然無異,乃至于今年六十二,亦無有異。」

佛言:「汝今自傷髮白面皺,其面必定皺於童年,則汝今時觀此恒 河,與昔童時觀河之見有童耄不?」

王言:「不也,世尊!」

佛言:「大王!汝面雖皺,而此見精性未曾皺,皺者為變、不皺非 變,變者受滅、彼不變者元無生滅,云何於中受汝生死,而猶引彼 末伽梨等都言此身死後全滅?」

王聞是言,信知身後捨生趣生,與諸大眾踊躍歡喜得未曾有。

18

阿難即從座起禮佛,合掌長跪白佛:「世尊!若此見聞必不生滅, 云何世尊名我等輩遺失真性顛倒行事?願興慈悲洗我塵垢。」

即時,如來垂金色臂,輪手下指示阿難言:「汝今見我母陀羅手為 正為倒?」

阿難言:「世間眾生以此為倒,而我不知誰正誰倒。」

佛告阿難:「若世間人以此為倒,即世間人將何為正?」

阿難言:「如來竪臂,兜羅綿手上指於空,則名為正。」

佛即竪臂,告阿難言:「若此顛倒首尾相換,諸世間人一倍瞻視, 則知汝身與諸如來清淨法身比類發明,如來之身名正遍知,汝等之 身號性顛倒,隨汝諦觀汝身佛身,稱顛倒者名字何處號為顛倒?」

于時,阿難與諸大眾瞪矒瞻佛目精不瞬,不知身心顛倒所在。佛興 慈悲哀愍阿難及諸大眾,發海潮音遍告同會:

「諸善男子!我常說 言:『色心諸緣及心所使諸所緣法,唯心所現。』汝身汝心皆是妙 明真精妙心中所現物,云何汝等遺失本妙圓妙明心寶明妙性,認悟 中迷晦昧為空,空晦暗中結暗為色,色雜妄想想相為身,聚緣內搖 趣外奔逸,昏擾擾相以為心性。一迷為心,決定惑為色身之內,不 知色身外洎山河虛空大地,咸是妙明真心中物。譬如澄清百千大 海,棄之,唯認一浮漚體,目為全潮窮盡瀛渤。汝等即是迷中倍 人,如我垂手等無差別,如來說為可憐愍者。」

阿難承佛悲救深誨,垂泣叉手而白佛言:「我雖承佛如是妙音,悟 妙明心元所圓滿常住心地;而我悟佛現說法音,現以緣心允所瞻 仰,徒獲此心未敢認為本元心地。願佛哀愍宣示圓音,拔我疑根歸 無上道。」

19

佛告阿難:「汝等尚以緣心聽法,此法亦緣非得法性。如人以手指 月示人,彼人因指當應看月;若復觀指以為月體,此人豈唯亡失月 輪,亦亡其指。何以故?以所標指為明月故。豈唯亡指,亦復不識 明之與暗。何以故?即以指體為月明性,明暗二性無所了故。汝亦 如是,若以分別我說法音為汝心者,此心自應離分別音有分別性。 譬如有客寄宿旅亭,暫止便去終不常住,而掌亭人都無所去名為亭 主;此亦如是,若真汝心則無所去。云何離聲無分別性?斯則豈唯 聲分別心,分別我容離諸色相無分別性,如是乃至分別都無非色非 空。拘舍離等昧為冥諦,離諸法緣無分別性,則汝心性各有所還, 云何為主?」

阿難言:「若我心性各有所還,則如來說妙明元心云何無還?惟垂 哀愍為我宣說。」

佛告阿難:「且汝見我見精明元,此見雖非妙精明心,如第二月非 是月影,汝應諦聽,今當示汝無所還地。

阿難!此大講堂洞開東 方,日輪昇天則有明耀,中夜黑月雲霧晦暝則復昏暗,戶牖之隙則 復見通,牆宇之間則復觀擁,分別之處則復見緣,頑虛之中遍是空 性,欝[土*孛]之象則紆昏塵,澄霽斂氛又觀清淨。

阿難!汝咸看 此諸變化相,吾今各還本所因處。云何本因?阿難!此諸變化明還 日輪。何以故?無日不明,明因屬日,是故還日;暗還黑月;通還 戶牖;擁還牆宇;緣還分別;頑虛還空;欝[土*孛]還塵;清明還 霽。則諸世間一切所有,不出斯類。汝見八種,見精明性當欲誰 還?何以故?若還於明,則不明時無復見暗,雖明暗等種種差別, 見無差別;諸可還者自然非汝,不汝還者非汝而誰?則知汝心本妙 明淨。汝自迷悶喪本受輪,於生死中常被漂溺,是故如來名可憐 愍。」

阿難言:「我雖識此見性無還,云何得知是我真性?」

20

佛告阿難:「吾今問汝,今汝未得無漏清淨,承佛神力,見於初禪 得無障礙;而阿那律見閻浮提,如觀掌中菴摩羅果;諸菩薩等見百 千界;十方如來窮盡微塵清淨國土無所不矚。眾生洞視不過分寸。

阿難!且吾與汝觀四天王所住宮殿,中間遍覽水陸空行,雖有昏明 種種形像,無非前塵分別留礙,汝應於此分別自他。今吾將汝擇於 見中,誰是我體?誰為物象?阿難!極汝見源,從日月宮,是物非 汝;至七金山周遍諦觀,雖種種光亦物非汝;漸漸更觀雲騰、鳥 飛、風動塵起、樹木山川、草芥人畜,咸物非汝。

阿難!是諸近遠 諸有物性,雖復差殊,同汝見精清淨所矚,則諸物類自有差別,見 性無殊,此精妙明誠汝見性。若見是物,則汝亦可見吾之見?若同 見者名為見吾;吾不見時,何不見吾不見之處?若見不見,自然非 彼不見之相;若不見吾不見之地,自然非物,云何非汝?又則汝今 見物之時,汝既見物物亦見汝,體性紛雜,則汝與我并諸世間不成 安立。

阿難!若汝見時是汝非我,見性周遍非汝而誰?云何自疑汝 之真性,性汝不真取我求實。」

阿難白佛言:「世尊!若此見性必我非餘,我與如來觀四天王勝藏 寶殿居日月宮,此見周圓遍娑婆國;退歸精舍只見伽藍,清心戶堂 但瞻簷廡。世尊!此見如是,其體本來周遍一界,今在室中唯滿一 室,為復此見縮大為小?為當牆宇夾令斷絕?我今不知斯義所在, 願垂弘慈為我敷演。」

佛告阿難:「一切世間大小內外諸所事業各屬前塵,不應說言見有 舒縮。譬如方器,中見方空,吾復問汝,此方器中所見方空,為復 定方?為不定方?若定方者,別安圓器空應不圓;若不定者,在方 器中應無方空。汝言不知斯義所在,義性如是云何為在。

阿難!若 復欲令入無方圓,但除器方空體無方,不應說言更除虛空方相所 在。若如汝問,入室之時縮見令小,仰觀日時汝豈挽見齊於日面? 若築牆宇能夾見斷,穿為小竇寧無續迹?是義不然。一切眾生從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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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來迷己為物,失於本心為物所轉,故於是中觀大觀小;若能轉物 則同如來,身心圓明不動道場,於一毛端遍能含受十方國土。」

阿難白佛言:「世尊!若此見精必我妙性,今此妙性現在我前,見 必我真,我今身心復是何物?而今身心分別有實,彼見無別分辨我 身,若實我心令我今見,見性實我,而身非我,何殊如來先所難 言:『物能見我?』惟垂大慈開發未悟。」

佛告阿難:「今汝所言:『見在汝前』是義非實。若實汝前,汝實 見者,則此見精既有方所非無指示。且今與汝坐祇陀林,遍觀林渠 及與殿堂,上至日月前對恒河,汝今於我師子座前,舉手指陳是種 種相,陰者是林,明者是日,礙者是壁,通者是空,如是乃至草樹 纖毫大小雖殊,但可有形無不指著。若必有見現在汝前,汝應以手 確實指陳何者是見。阿難!當知若空是見,既已成見,何者是空? 若物是見,既已是見,何者為物?汝可微細披剝萬象,析出精明淨 妙見元,指陳示我,同彼諸物分明無惑。」

阿難言:「我今於此重閣講堂,遠洎恒河上觀日月,舉手所指縱目 所觀,指皆是物無是見者。

世尊!如佛所說,況我有漏初學聲聞, 乃至菩薩亦不能於萬物象前剖出精見,離一切物別有自性。」

佛言:「如是,如是!」

佛復告阿難:「如汝所言,無有精見,離一切物別有自性,則汝所 指是物之中無是見者。今復告汝!汝與如來坐祇陀林更觀林苑,乃 至日月種種象殊,必無見精受汝所指;汝又發明此諸物中何者非 見?」

阿難言:「我實遍見此祇陀林,不知是中何者非見?何以故?若樹 非見,云何見樹?若樹即見,復云何樹?如是乃至若空非見,云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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為空?若空即見,復云何空?我又思惟是萬象中,微細發明無非見 者。」

佛言:「如是,如是!」

於是大眾非無學者,聞佛此言茫然不知是義終始,一時惶悚失其所 守。如來知其魂慮變慴,心生憐愍,安慰阿難及諸大眾:

「諸善男 子!無上法王是真實語,如所如說不誑不妄,非末伽梨四種不死矯 亂論議,汝諦思惟無忝哀慕。」

是時,文殊師利法王子愍諸四眾,在大眾中即從座起,頂禮佛足合 掌恭敬而白佛言:

「世尊!此諸大眾,不悟如來發明二種精見色 空,是非是義。

世尊!若此前緣色空等象,若是見者應有所指;若 非見者應無所矚。而今不知是義所歸故有驚怖,非是疇昔善根輕 尠,唯願如來大慈,發明此諸物象與此見精元是何物,於其中間無 是非是。」

佛告文殊及諸大眾:「十方如來及大菩薩,於其自住三摩地中,見 與見緣并所想相,如虛空花本無所有。此見及緣元是菩提妙淨明 體,云何於中有是非是?文殊!吾今問汝,如汝文殊,更有文殊是 文殊者?為無文殊?」

「如是,世尊!我真文殊,無是文殊。何以故?若有是者,則二文 殊。然我今日非無文殊,於中實無是非二相。」

佛言:「此見妙明與諸空塵亦復如是,本是妙明無上菩提淨圓真 心,妄為色空及與聞見,如第二月,誰為是月?又誰非月?

文殊! 但一月真,中間自無是月非月。是以汝今觀見與塵,種種發明名為 妄想,不能於中出是非是,由是精真妙覺明性,故能令汝出指非 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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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白佛言:「世尊!誠如法王所說,覺緣遍十方界,湛然常住性 非生滅,與先梵志裟毘迦羅所談冥諦,及投灰等諸外道種說有真我 遍滿十方,有何差別?世尊亦曾於楞伽山,為大慧等敷演斯義,彼 外道等常說自然,我說因緣非彼境界。我今觀此覺性自然非生非 滅,遠離一切虛妄顛倒,似非因緣與彼自然,云何開示不入群邪, 獲真實心妙覺明性?」

佛告阿難:「我今如是開示方便,真實告汝,汝猶未悟,惑為自 然。阿難!若必自然,自須甄明有自然體。汝且觀此妙明見中,以 何為自?此見為復以明為自?以暗為自?以空為自?以塞為自?阿 難!若明為自,應不見暗;若復以空為自體者,應不見塞。如是乃 至諸暗等相以為自者,則於明時見性斷滅,云何見明?」

阿難言:「必此妙見性非自然。我今發明是因緣性,心猶未明,諮 詢如來是義云何合因緣性?」

佛言:「汝言因緣,吾復問汝。汝今同見,見性現前,此見為復因 明有見?因暗有見?因空有見?因塞有見?

阿難!若因明有,應不 見暗;如因暗有,應不見明。如是乃至因空、因塞,同於明暗。復 次,

阿難!此見又復緣明有見?緣暗有見?緣空有見?緣塞有見?

阿難!若緣空有,應不見塞;若緣塞有,應不見空。如是乃至緣 明、緣暗,同於空塞。當知如是精覺妙明非因非緣,亦非自然非不 自然,無非不非無是非是,離一切相即一切法。汝今云何於中措 心,以諸世間戲論名相而得分別?如以手掌撮摩虛空,只益自勞! 虛空云何隨汝執捉?」

阿難白佛言:「世尊!必妙覺性非因非緣。世尊云何常與比丘,宣 說見性具四種緣,所謂因空、因明、因心、因眼。是義云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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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言:「阿難!我說世間諸因緣相,非第一義。

阿難!吾復問汝。 諸世間人說我能見,云何名見?云何不見?」

阿難言:「世人因於日、月、燈光見種種相,名之為見;若復無此 三種光明,則不能見。」

「阿難!若無明時名不見者,應不見暗;若必見暗,此但無明云何 無見?

阿難!若在暗時,不見明故名為不見;今在明時不見暗相, 還名不見。如是二相俱名不見。若復二相自相[夌*欠]奪,非汝見 性於中暫無,如是則知二俱名見,云何不見?

是故阿難!汝今當 知,見明之時,見非是明;見暗之時,見非是暗;見空之時,見非 是空;見塞之時,見非是塞,四義成就。汝復應知,見見之時,見 非是見;見猶離見,見不能及。云何復說因緣、自然及和合相?汝 等聲聞狹劣無識,不能通達清淨實相,吾今誨汝,當善思惟,無得 疲怠妙菩提路。」

阿難白佛言:「世尊!如佛世尊為我等輩宣說因緣及與自然,諸和 合相與不和合,心猶未開;而今更聞見見非見,重增迷悶。伏願弘 慈施大慧目,開示我等覺心明淨。」

作是語已,悲淚頂禮,承受聖 旨。 爾時,世尊憐愍阿難及諸大眾,將欲敷演大陀羅尼諸三摩提妙修行 路,告阿難言:

「汝雖強記,但益多聞;於奢摩他微密觀照心猶未 了。汝今諦聽,吾今為汝分別開示,亦令將來諸有漏者獲菩提果。

阿難!一切眾生輪迴世間,由二顛倒分別見妄,當處發生當業輪 轉。云何二見?一者眾生別業妄見;二者眾生同分妄見。 「云何名為別業妄見?

阿難!如世間人目有赤眚,夜見燈光別有圓 影五色重疊。於意云何?此夜燈明所現圓光,為是燈色為當見色?

阿難!此若燈色,則非眚人何不同見,而此圓影唯眚之觀?若是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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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見已成色,則彼眚人見圓影者名為何等?復次,阿難!若此圓 影離燈別有,則合傍觀屏帳几筵有圓影出;離見別有,應非眼矚, 云何眚人目見圓影?是故當知色實在燈,見病為影,影見俱眚,見 眚非病。終不應言是燈是見,於是中有非燈非見。如第二月,非體 非影。何以故?第二之觀,揑所成故。諸有智者不應說言,此揑根 元是形非形離見非見;此亦如是,目眚所成,今欲名誰是燈是見, 何況分別非燈非見。 「云何名為同分妄見?阿難!此閻浮提除大海水,中間平陸有三千 洲,正中大洲東西括量,大國凡有二千三百,其餘小洲在諸海中, 其間或有三兩百國,或一或二,至于三十、四十、五十。阿難!若 復此中有一小洲只有兩國,唯一國人同感惡緣,則彼小洲當土眾 生,覩諸一切不祥境界。或見二日或見兩月,其中乃至暈蝕珮玦彗 勃飛流,負耳虹蜺種種惡相,但此國見;彼國眾生,本所不見亦復 不聞。阿難!吾今為汝以此二事進退合明。 「阿難!如彼眾生別業妄見,矚燈光中所現圓影雖現似境,終彼見 者目眚所成,眚即見勞非色所造,然見眚者終無見咎。例汝今日以 目觀見山河國土及諸眾生,皆是無始見病所成,見與見緣似現前 境,元我覺明見所緣眚,覺見即眚本覺明心,覺緣非眚覺所覺眚, 覺非眚中此實見見。云何復名覺聞知見?是故汝今見我及汝并諸世 間十類眾生,皆即見眚;非見眚者,彼見真精,性非眚者故不名 見。 「阿難!如彼眾生同分妄見,例彼妄見別業一人,一病目人同彼一 國,彼見圓影眚妄所生,此眾同分所現不祥,同見業中瘴惡所起, 俱是無始見妄所生。例閻浮提三千洲中,兼四大海娑婆世界,并洎 十方諸有漏國及諸眾生,同是覺明無漏妙心,見聞覺知虛妄病緣, 和合妄生、和合妄死。若能遠離諸和合緣及不和合,則復滅除諸生 死因,圓滿菩提不生滅性清淨本心本覺常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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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汝雖先悟本覺妙明,性非因緣、非自然性,而猶未明如是 覺元,非和合生及不和合。阿難!吾今復以前塵問汝。汝今猶以一 切世間妄想,和合諸因緣性,而自疑惑。證菩提心和合起者,則汝 今者妙淨見精,為與明和?為與闇和?為與通和?為與塞和?若明 和者,且汝觀明,當明現前,何處雜見?見相可辨,雜何形像?若 非見者,云何見明?若即見者,云何見見?必見圓滿,何處和明。 若明圓滿,不合見和,見必異明;雜則失彼性明名字。雜失明性, 和明非義,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復次,阿難!又汝今者妙淨見精,為與明合?為與暗合?為與通 合?為與塞合?若明合者,至於暗時明相已滅,此見即不與諸暗 合。云何見暗?若見暗時不與暗合,與明合者應非見明,既不見明 云何明合?了明非暗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阿難白佛言:「世尊!如我思惟,此妙覺元與諸緣塵及心念慮非和 合耶?」 佛言:「汝今又言覺非和合。吾復問汝。此妙見精非和合者,為非 明和?為非暗和?為非通和?為非塞和?若非明和,則見與明必有 邊畔。汝且諦觀,何處是明?何處是見?在見在明自何為畔?阿 難!若明際中必無見者,則不相及,自不知其明相所在,畔云何 成?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又妙見精非和合者,為非明合?為非暗合?為非通合?為非塞 合?若非明合,則見與明性相乖角,如耳與明了不相觸,見且不知 明相所在,云何甄明合非合理?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阿 難!汝猶未明一切浮塵諸幻化相,當處出生隨處滅盡,幻妄稱相, 其性真為妙覺明體,如是乃至五陰、六入,從十二處至十八界,因 緣和合虛妄有生,因緣別離虛妄名滅,殊不能知生滅去來,本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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藏常住妙明,不動周圓妙真如性,性真常中求於去來、迷悟、死 生,了無所得。

「阿難!云何五陰本如來藏妙真如性?阿難!譬如有人以清淨目觀 晴明空,唯一精虛逈無所有,其人無故不動目睛瞪以發勞,則於虛 空別見狂花,復有一切狂亂非相;色陰當知亦復如是。阿難!是諸 狂花,非從空來,非從目出。如是,

阿難!若空來者,既從空來還 從空入,若有出入即非虛空,空若非空,自不容其花相起滅,如阿 難體,不容阿難。若目出者,既從目出還從目入,即此花性從目出 故,當合有見。若有見者,去既花空旋合見眼;若無見者,出既翳 空,旋當翳眼。又見花時,目應無翳,云何晴空號清明眼?是故當 知色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手足宴安百骸調適,忽如忘生性無違順,其人無 故以二手掌於空相摩,於二手中妄生澁滑冷熱諸相;受陰當知亦復 如是。阿難!是諸幻觸,不從空來,不從掌出。如是,

阿難!若空 來者,既能觸掌,何不觸身?不應虛空選擇來觸。若從掌出,應非 待合。又掌出故,合則掌知,離即觸入,臂腕骨髓應亦覺知入時蹤 跡,必有覺心知出知入,自有一物身中往來,何待合知要名為觸? 是故當知受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談說醋梅口中水出,思踏懸崖足心酸澁;想陰當 知亦復如是。

阿難!如是醋說,不從梅生,非從口入。如是,

阿 難!若梅生者,梅合自談,何待人說?若從口入,自合口聞,何須 待耳?若獨耳聞,此水何不耳中而出?想踏懸崖與說相類。是故當 知想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暴流波浪相續,前際後際不相踰越;行陰當知亦復如 是。

阿難!如是流性,不因空生,不因水有;亦非水性,非離空 水。如是,

阿難!若因空生,則諸十方無盡虛空成無盡流,世界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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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俱受淪溺。若因水有,則此暴流性應非水,有所有相今應現在。 若即水性,則澄清時應非水體。若離空水,空非有外水外無流。是 故當知行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取頻伽瓶,塞其兩孔滿中擎空,千里遠行用餉他 國;識陰當知亦復如是。阿難!如是虛空,非彼方來,非此方入。

如是,阿難!若彼方來,則本瓶中既貯空去,於本瓶地應少虛空。 若此方入,開孔倒瓶應見空出。是故當知識陰虛妄,本非因緣、非 自然性。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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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卷 2

 

[1] 깨달음에 나아가도록 함

그 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몸과 마음이 평안해져서 생각하기를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본심을 잃어버리고 앞에 나타나는 물질만을 분별하는 그림자같은 일들을 헛되게 인정해오다가 오늘에야 깨달은 것이 마치 어머니를 잃었던 젖먹이가 홀연히 어머니를 찾은 것과 같아서 합장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여래께서 몸과 마음의 진실하고 거짓된 것과 허망하고 실한 것을 나타낸 현재 눈앞에 일어나는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는 것의 두 가지 성품에 대하여 분명하게 들려주기를 원하였다.

그 때에 바사닉왕이 일어서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을 적에 가전연과 비라지자를 만났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이 몸이 죽은 뒤에 아주 끊겨 없어지는 것[斷滅]을 열반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록 부처님을 만났사오나 아직도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사오니, 어떻게 설명해 주셔야 이 마음의 나고 멸함이 없는 경지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대중들 속에 정기가 새는 자 있어서 그들도 모두 정기가 새는 것을 끊지 못한 자들도 모두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이르시기를 "그대의 몸이 현재 살아 있으므로 지금 그대에게 묻겠는데, 그대의 이 육신이 금강(金剛)과 같아서 항상 머물러 있어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여기느냐? 아니면 언젠가는 변하여 없어지리라고 여기느냐?"

세존이시여! 저의 지금 이 육신은 마침내 변하여 없어질 것입니다."

부처님이 대왕에게 이르시기를 "그대가 아직 죽지 않았거늘 어떻게 죽을 것을 아느냐? "세존이시여! 저의 이 무상하게 변하여 없어지는 몸이 비록 아직은 죽은 것이 아니오나 제가 지금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생각마다 변해가고 새록새록 달라져서 마치 불에 타 재가 되는 것과 같아서 점점 쉬지 않고 늙어져가고 있으므로 결단코 이 몸이 언젠가는 다 없어질 것임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다. 대왕아! 그대의 나이는 지금 이미 늙었는데도 얼굴 모습은 동자때와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어렸을 적에는 피부와 살결이 윤택하였었고, 점점 성장함에 따라 혈기가 충만하더니 이제는 나이가 먹어 쇠모함이 임박해지니 형색은 초췌하고 정신은 혼미하며 머리털을 희어지고 얼굴은 쭈그러져서 오래가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한창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2] 참된 것이 있음을 밝힘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얼굴이 갑자기 늙은 것이 아니리라." 대왕이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해 가므로 제가 진실로 깨닫지 못합니다만 추위와 더위가 흘러감에 따라 점점 이 지경에 이르렀나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저의 나이 20세 적에는 비록 젊었다고는 하나 얼굴은 이미 10세 때보다 늙었고, 30세에는 또 20세 때보다 늙었으며, 지금 60에 또 둘을 더 하고 보니 50세 때를 돌이켜 보면 지금보다 훨씬 강장(强壯)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점차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서 비록 이렇게 저락함에 있어 그 사이에 세월이 흘러 변함을 10년씩 한정하여 말하였습니다만, 만약 다시 저로 하여금 자세히 생각하게 하오면 그 변해감이 어찌 일기(一紀), 이기(二紀)뿐이겠습니까? 실은 해마다 변한 것입니다. 어찌 해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역시 달마다 변한 것이며 어찌 달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또한 날마다 변한 것이니, 곰곰히 생각하면 찰나(刹那)마다 생각마다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몸이 마침내 변화해 없어질 줄을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대왕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변천하여 머물지 않는 변화를 보고 그대가 줄어 없어질 것을 알았다고 하는데 또한 죽어 없어질 때에 그대의 몸 속에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아십니까?"

바사닉왕이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사실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그대에게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보여 주리라! 대왕아! 그대의 나이 몇 살 때에 황하강 물을 보았더냐?" 대왕이 말하기를 "제가 난 지 세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기바천에 참배하러 갈 적에 그 강을 건넜는데 그 때에 항하강임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말과 같아서 스무 살 때엔 열 살 때보다 늙었으며, 예순이 되도록까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한 생각마다 변천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대가 세 살 적에 보던 그 물과 열 세 살 때 보던 그 물이 어떠하더냐?"

대왕이 말하기를 "세살 때와 같아서 조금도 달라짐이 없었으며, 지금 예순 두살이 되었사오나 역시 달라짐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지금 머리털이 희어지고 얼굴이 쭈그러짐을 애달파하나니, 그 얼굴은 반드시 어렸을 적보다 쭈그러졌겠지만, 그대가 지금 항하강 물을 보는 것과 지난날 어렸을 적에 항하강물을 보던 것이 어리고 늙음의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왕이 말하기를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얼굴이 비록 쭈그러졌으나 그 보는 정기만은 본래의 성품 그대로 쭈그러진 것이 아니다. 쭈그러지는 것은 변하겠지만 쭈그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없어지게 되겠지만 저 변하지 않는 것은 본래 나고 멸함이 없거늘 어떻게 그 가운데에서 그대의 나고 죽음을 받았는데 오히려 저 말가리(末伽梨)등의 말을 인용하여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아주 없어진다고 하는고."


대왕이 그 말을 듣고는 진실로 이 몸이 죽은 뒤에 이 생을 버리고 다른 생에 태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대중들과 함께 기뻐 날뛰면서 아직까지 없었던 법문을 들었다고 하였다.


[3] 부처님께서 열어 보이심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일 이 보고 듣는 놈이 정말로 나고 죽음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에게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행동을 한다고 하셨습니까? 원컨대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어 우리의 찌든 때를 씻어 주시옵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금빛의 팔을 드리우시고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시며 아난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나의 모타라(母陀羅)손을 보아라. 바로 되었느냐, 거꾸로 되었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상의 중생들은 이것을 거꾸로라고 하겠지만 저는 어느 것이 바로이고 어느 것이 거꾸로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만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라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것을 바로라고 하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여래께서 팔을 세우시고 도라면같은 손이 위로 허공을 가리키시면 바로라고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팔을 세우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뒤바뀜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한 배(倍)나 더 거꾸로 보는구나." "그러나 알아야 한다. 너의 몸을 모든 여래의 청정한 법신과 비슷한 종류로 비교해서 밝혀 본다면, 여래의 몸은 '바르게 두루 앎[正偏知]'이라 이름하고 너희들의 몸은 '성품이 뒤바뀜[性顚倒]'이라 부른다.

따라서 너는 자세히 살펴 보아라. 네 몸을 부처님의 몸에 비교하여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어느 곳을 이름하여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이냐?"

그 때에 아난이 모든 대중들과 더불어 눈을 크게 뜨고 부처님을 보면서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은 채 몸과 마음의 뒤바뀐 곳을 알지 못하였다.

[4] 반연하는 것은 성품이 없음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사 모든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바다 조수와 같은 음성[海潮音]을 내시어 같은 회상에 모인 대중들에게 널리 이르시기를 "선남자들아! 내가 항상 말하기를 '물질과 마음의 모든 인연과 마음에 끌려다니는 것과 반연되는 모든 현상들이 오직 마음에 나타난 것이라'고 하였다. 너의 몸과 마음이 모두 오묘하게 밝은 참되고 정밀한 마음속에서 나타난 물건인데 어찌하여 너희들은 본래부터 오묘한 원만하고 밝은 마음과 보배롭고 밝고 오묘한 성품을 잃어버리고 깨달음 속에 혼미한 것만을 인정하는구나?

어두워서 허공이 되어서는 그 허공과 어두움속에서 어두움이 뭉쳐져 물질이 되나니 그 물질이 허망한 생각과 뒤섞여서 생각과 모양을 지닌 것은 몸이 되고, 연(緣)이 모여 안에서 흔들리며 밖으로 달려나가는 혼미하고 어지러운 모양을 심성(心性)이라고 하니, 일단 혼미한 것을 마음이라고 생각함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거기에 현혹되어 그것이 이 몸둥이 속에 있다고 여기고 그 색신과 밖에 있는 산과 강, 허공과 대지(大地)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묘하게 밝고 참된 마음속의 물건임을 알지 못하나니, 비유하면 맑고 깨끗한 百千의 큰 바다는 버리고 오직 하나의 들뜬 물거품을 바다 전체인 양 잘못 인식하여 눈앞의 조수를 보고 바다라 하며 바다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너희들은 곧 미혹한 속에서도 배나 더 미혹한 사람이니 마치 내가 손을 드리운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여래께서 가엾은 사람 이라고 말씀하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서 자비로 구원해 주시는 깊은 가르침을 받자옵고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고서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와 같이 오묘한 음성을 듣자옵고 오묘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원만하게 항상 머무는 마음 자리를 깨달았으나 제가 현재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음성을 깨달은 것도 현재의 반연하는 마음이며, 진실로 우러러보는 것도 다만 이 마음에서 생긴 것이기에 감히 본래의 마음 자리라고 인정하지 못하겠사오니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가엾게 여기시와 원만한 법음을 베푸시어 저의 의혹의 뿌리를 뽑아서 위없는 최고의 도에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이 아직까지도 반연으로 생긴 마음으로 법을 듣나니 그 법도 역시 반연일 뿐이라서 법성(法性)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에게 보일 경우 그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보아야 마땅할 것인데,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다만 달을 잃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까지도 잃어버릴 것이니, 어째서 그런가 하면 이는 가리키는 손가락을 가지고 밝은 달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어찌 손가락만 잃을 뿐이리요? 또한 밝은 것과 어두운 것도 알지 못하리니, 어째서 그런가 하면 곧 손가락을 달의 밝은 성품이라고 생각하여 밝고 어두운 두 성품에서 깨달을 것이 없기 때문이니 너 또한 그러하니라.

약 나의 설법하는 음성을 분별하는 것으로 네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이 마땅히 음성을 분별하는 것을 떠나서도 따로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나그네가 여정(旅亭)에 기숙하기 위하여 잠시 머물렀다가 문득 떠나버리면 이는 마침내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지만, 여정을 맡은 사람은 갈 곳이 없으므로 여정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그와 같아서 만약 진실한 너의 마음이라면 갈 곳이 없을 터이니 어찌 소리를 여의었다고 해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리요?

이것이 어찌 소리로 분별하는 마음 뿐이리요. 내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모든 물질의 모양을 여의고서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리니, 이와 같이 분별함이 전연 없는 데에까지 이르러서는 물질도 아니고 허공도 아니므로 구사리(拘舍離)등이 이에 어두워서 명제(冥諦)라 하나리라. 법의 반연을 떠나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다면 곧 너의 심성(心性)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을 터이니 어찌 주인이라고 하겠느냐?"

 

[5] 보는 성품이 돌아갈 데가 없음을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만약 저의 심성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다고 한다면 여래께 서 말씀하시는 오묘하고 밝은 본래의 마음은 어찌하여 돌아갈 곳이 없습니까? 가엾게 여기셔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또 네가 나를 보는 그 정기의 밝은 근원은 이 보는 놈이 비록 오묘하고 정밀하게 밝은 마음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는 마치 제 二의 달인지라 달 그림자가 아닌 것과 같으니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지금 너에게 돌아갈 곳이 없음을 보여주리라.

아난아! 이 큰 강당의 동쪽이 환하게 틔여서 둥근 해가 하늘에 떠오르면 곧 밝게 빛나고, 달도 없는 한 밤중에 구름과 안개마져 자욱하면 더욱 어두우며, 문 틈으로 다시 통함을 보고 담장 사이는 막힘을 보며, 분별하는 곳에 반연함을 보고 완벽한 허공속은 모두가 비었으며, 흙비의 현상은 티끌이 얽힌 것이라고 맑게 개여 우내가 걷히면 또 다시 맑음을 보게 되나니라. 아난아! 네가 이 여러가지 변화하는 모양을 살펴 보아라. 내가 지금 각각 본래의 원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무엇을 '본래의 원인이 있는 곳'이라 하는가. 아난아! 이 모든 변화 중에서 밝은 것은 둥근 해로 돌아가나니, 왜냐하면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니 밝은 것의 근본을 해에 속한다. 그러므로 해로 돌아가는 것이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 데로 돌아가며, 통함은 문으로 돌아가고 막힘은 담장으로 돌아가며, 반연은 분별로 돌아가고 완벽한 허공은 허공으로 돌아가며, 흙비는 티끌로 돌아가고 맑음은 개인 데로 돌아가나니,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이러한 종류에 지나지 않나니라. 그런데 네가 이 여덟 가지를 보는 정기의 밝은 성품은 어디로 돌아가게 하려느냐?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 돌아간다면 밝지 아니할 적에는 어두움을 보지 못하리니, 비록 밝음과 어두운 것들이야 여러 가지로 차별한다 하더라도 보는 것은 차별이 없나니라. 모든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자연 네가 아니거니와 네게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네가 아니고 그 누구이겠느냐?

그러니 깨달을 지어다. 너의 마음이 본래 오묘하고 밝고 깨끗한 것인데, 네가 스스로 혼미하여 근본을 잃고 윤회하면서 생사 속에서 항상 표류하기 때문에 여래가 가련하다고 한 것이다."


[6] 물질에 나아가 결정 선택함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비록 보는 성품이 돌아갈 데가 없음은 알겠습니다만 어떻게 그것이 저의 참 성품이라는 것을 알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노니, 지금 네가 정기가 새는 것이 없어진 청정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부처님의 신비한 힘을 받들어 저 초선천(初禪天)을 보는데 장애가 없었으며, 아나율은 염부제(閻孚提) 보기를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라 열매를 보듯 하였으며, 모든 보살들은 百, 千의 세계를 보며, 시방의 여래는 티끌처럼 많은 천정한 국토를 통틀어서 보지 못하는 곳이 없지만 중생들이 보는 것은 푼촌(分寸)에 지나지 않나니라.

아난아! 장차 내가 너와 함께 사천왕이 거주하는 궁전을 볼적에 중간에 물과 육지와 허공에 다니는 것을 두루 보겠는데, 비록 어둡고 밝은 갖가지 형상들이 있으나 모두가 앞에 나타난 물질을 분별하는 마음을 가리지 않음이 없으니 너는 마땅히 여기에서 나와 남을 분별하라. 지금 내가 너를 데리고 보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너의 몸이고 어느 것이 다른 물체인지를 가려 주리라.

아난아! 네가 보는 것의 근원을 끝까지 추구하여 보아라. 해와 달의 궁전까지도 모두가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칠금산(七金山)에 이르도록 두루두루 자세히 관찰하여 보아라. 비록 갖가지 빛이 있어도 역시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그 밖에 점점 다시 관찰해 보아라. 구름이 뜨고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먼지가 날리는 것과 나무와 산, 냇물과 풀, 사람과 축생이 모두 물상이지 너는 아니니라.

아난아! 이 가깝고 먼데 있는 모든 물질의 성질이 비록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똑같이 너의 청정하게 보는 정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니, 여러 가지 물상은 자연 차별이 있을지언정 보는 성품은 다름이 없으니, 이 보는 정기의 오묘하고 밝음이 진실로 너의 보는 성품이니라.

만약 보는 그 자체가 물상이라면 네가 또한 나의 보는 성품을 보아야 하리라. 만일 함께 보는 것을 가지고 내가 보는 성품을 본다고 할진대 내가 보지 못할 때에는 어찌하여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너는 보지 못하느냐?

만약 보지 아니하는 것을 본다면 자연 저것은 볼 수 없는 모양이 아니니라. 만약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자연 물질이 아닌데 어찌 네가 아니라고 하겠느냐? 또한 네가 지금 물질을 볼 적에 네가 이미 물질을 보았거든 물질도 너를 보아서 실체와 그 성품이 어지럽게 섞여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세간이 편안하게 정립되지 못할 것이다.

아난아! 만약 네가 볼 때엔, 이것이 네가 보는 것이지 내가 아닐진대 보는 성품이 골고루 있는데 네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어찌하여 너의 참다운 성품이 너에게서는 참되지 못한 성품인 양 의심해서 나에게 물어 진실을 구하려고 하느냐?"

 

[7] 결론지어 나타냄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성품이 반드시 저이지 남이 아닐진대 제가 여래와 함께 사천왕의 수승하고 장엄한 보배의 궁전과 일월궁(日月宮)을 볼 적에는 그 보는 것이 두루 원만해서 사바국(娑婆國)에 골고루 퍼졌다가 정사에 돌아오면 다만 가람(伽藍)만 보이고 청심호당(淸心戶堂)에서는 다만 처마만 보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보는 것이 이와 같아서 그 본체가 본래는 온 세계에 고루 퍼졌다가 지금 방안에 있을 적에는 오직 온 방에만 가득하게 되는데, 그럴 적에는 그 보는 것이 큰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입니까? 아니면 담과 지붕에 막혀서 좁아지고 끊어진 것입니까? 지금 저는 그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큰 자비를 베푸셔서 저를 위해 설명하여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일체의 세상과 크고 작은 것과 안이나 밖, 그리고 여러 가지 사업이 각각 앞에 나타나는 물질에 속하는 것이니, 보는 것이 퍼지거나 움츠러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나니라.

비유하면 그것은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하늘을 보는 것과 같나니라. 내가 다시 너에게 묻겠는데 이 모난 그릇 속에서 보이는 모난 하늘이 모나게 정해진 것이냐 아니면 모나게 정해진 것이 아니냐? 만약 모나게 정해진 것이라면 따로이 둥근 그릇 속에서도 그 하늘은 둥글게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약 정 해진 것이 아니라면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하늘이 아니어야 할 것이니, 네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한 그 이치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따질 수 있겠느냐?

아난아! 만약 모나고 둥근 것이 없는 데에 이르고자 한다면 다만 모난 그릇을 없앨지언정 하늘 그 자체는 모난 것이 아니니 또다시 허공의 모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네가 물은 것처럼 방에 들어갔을 적에 보는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이라면 해를 쳐다볼 적에는 네가 어찌 보는 것을 늘려서 해에 닿게 한 것이겠으며, 만약 담과 지붕이 막혀서 보는 것이 끊어진 것이라면 작은 구멍을 뚫었을 적에는 어찌 이은 흔적이 없느냐? 그 이치는 그런게 아니니라.

일체의 중생이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지금까지 혼미한 자신을 물질로 생각해서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물질에 지배를 받는 바가 되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 크고 작은 것을 보지만, 만약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면 여래와 같아서 곧 마음이 원만 하게 밝아서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 한 개의 털 끝에 시방의 국토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8] 꾸짖으셔서 깨닫게 함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정기가 반드시 나의 오묘한 성품이라면 지금 이 오묘한 성품이 현재 제 앞에 있어야 하리니, 보는 것이 반드시 저의 참다운 마음이라면 지금 저의 몸과 마음은 또다시 어떤 물건입니까? 지금 이 몸과 마음은 분별함이 실제가 있거니와 저 보는 것은 분별함이 없어서 저의 몸과 나뉘어져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참으로 내 마음이어서 나로 하여금 지금 보게 한다면 보는 성품은 진정한 나이겠지만 몸은 내가 아닐 것이니, 여래께서 앞에서 힐난하여 말씀하신 '물질이 나를 보리라'고 하신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바라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우쳐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지금 네가 말한 '보는 것이 내 앞에 있습니다'라고 한 것은 그 이치가 옳지 않나니라.

만약 참으로 네 앞에 있기 때문에 네가 진정 보는 것이라면 이 보는 정기가 이미 장소가 있을 것이니 가리켜 보이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또 지금 너와 함께 기타림(祇陀林)데 앉아서 숲과 냇물과 전당(殿堂)을 두루 보며,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고 앞에는 항하를 대하였으니, 지금 네가 나의 사자좌 앞에서 손을 들어 가리켜 보아라. 이 갖가지 모양들이 그늘진 것은 숲이고 밝은 것은 태양이며, 막힌 것은 벽이고 통한 것은 허공이니, 이렇게 형상이 있는 것들은 가리키지 못할 것이 없으니, 만일 그 보는 것이 반드시 현재 네 앞에 있는 것이라면 네가 마땅히 손으로 확실하게 가리켜 보아라. 어느 것이 보는 것이냐?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라면 이미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느 것이 허공이며, 만약 물체가 보는 것이라면 이미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느 것이 물체이겠느냐? 너는 미세하게 온갖 물상을 구분하여 정밀하고 밝으며 맑고 오묘하게 보는 근원을 가려내어 나에게 지적하여 보여주되 저 물질과 같이 분명하여 의혹이 없게 하여 보아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지금 이곳의 여러 층으로 된 강당에서 멀리는 황하강에까지 이르며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지만 손을 들어 가리키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에 있어서 가리키는 것은 모두가 물질이라서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아직 정기가 새는 것을 끊어버리지 못한 처음으로 배움의 길에 들어선 성문(聲聞)이거니와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 나야만 별도로 자성이 있음이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렇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처럼 정밀하게 보는 놈을 가려낼 수 없고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나야만 별도로 정밀하게 보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네가 가리키는 이 물상 속에는 보는 것이 없겠구나. 지금 다시 너에게 말하겠는데 네가 여래와 함께 기타림에 앉아서 다시 숲과 동산, 그리고 해와 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을 보아라. 갖가지 물상이 각기 다르지만 반드시 보는 정기가 네가 가리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너는 다시 밝혀 보아라. 이 모든 물상 중에 어느 것이 보는 것이 아니더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사실 이 기타림을 두루 보았으나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보는 것이 아닌지를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본다고 하겠으며,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나무라고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허공을 보며,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허공이라고 하겠습니까? 제가 또 생각하니 이 온갖 물상 중에서 정밀하고 자세하게 밝혀 보건대 보는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러하니라."

 

[9] 본체는 하나라는 것을 밝힘

그때에 대중 가운데에서 배울 것이 없지 아니한 자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자옵고 멍청하게 이 이치의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하며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마치 간직하고 있던 것을 잃은 듯하였다.

여래께서 그들의 정신이 변하여 어리둥절함을 아시고 가엾은 마음을 내시어 아난과 여러 대중을 위안하시기를 "모든 선남자들아! 위없는 법왕의 진실한 말씀이며 여여(如如)한 말씀이기에 속이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니, 말가리(末伽梨)들이 죽지 않는다고 하는 네 가지 거짓으로 혼란하게 하는 논의와는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자세히 생각하여 애모(哀慕)함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

그때에 문수사리 법왕자보살이 여러 사부대중을 가엾게 여기사 대중 가운데 계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공손히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기 모인 모든 대중들은 여래께서 밝혀주신 두 가지 정밀하게 보는 것과 물질이나 허공에 대하여 이것인지 이것이 아닌지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허공과 물질의 형상이 보는 것이라면 응당 가리킬 것이 있어야 하며, 만약 보는 것이 아니라면 응당 볼 것도 없어야 할 터이니, 지금 그 이치의 본 뜻을 알지 못하여 놀랍고 두렵기는 할지언정 그렇다고 이것이 옛날보다 선근(善根)이 적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이를 밝혀주시옵소서. 이 모든 물상과 보는 정기가 본래 무엇이길래 그 중간에 이것과 이것이 아님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와 여러 대중들에게 이르시기를 "시방의 여래와 큰 보살들이 그 스스로 머무는 삼마지 가운데 보는 것과 보이는 대상과 그리고 생각하는 모양은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보는 것과 그 대상은 본래가 보리의 오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실체인데 어찌 그 가운데 '이것이다, 저것이다' 할 것이 있겠느냐?

문수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문수인 것과 같아서 또 다른 문수가 문수이냐? 문수가 아니냐?" 문수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진실한 문수이므로 그러한 또다른 문수는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이것은 두 문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문수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실제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라고 할 두가지 모양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보는 성품의 오묘하고 밝은 것과 허공과 물질도 역시 이와 같아서 본래 오묘하고 밝은 위없는 보리의 깨끗하고 원만한 참 마음이거늘 이것이 허망하게 허공과 물질과 듣고 보는 것이라 여겨서 마치 제二의 달과 같으니 어느 것이 달이고 어느 것이 달이 아니라고 하겠느냐?

문수야! 하나의 달만이 참된 것이라면 그 중간에는 자연 '달이다, 달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보는 것과 그 대상을 보고서 여러 가지로 밝혀냄을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 그 가운데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하는 것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참되고 순수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너로 하여금 가리키고 가리키지 않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겠다."

 

[10] 거듭 떨쳐버리고 곧바로 보이심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진실로 법왕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각연(覺緣)이 시방 세계에 가득하여 맑고 고요하게 늘 머물러서 그 성품이 생기고 없어짐이 아닐진대 선범지(先梵志)인 사비가라가 말한 명제(冥諦)와 투회(投灰)등 모든 외도종자가 말하는 참 나라는 것이 시방 세계에 고루 가득히 있다는 것과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세존께서도 일찌기 능가산에서 대혜보살(大慧菩薩)등을 위하여 이 이치를 말씀하실 적에 '저 외도들은 항상 자연이라고 말하였나니 내가 말한 인연은 저들의 경계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관찰해 보건댄 깨닫는 성품이 자연 그대로여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체의 허망하게 뒤바뀐 것을 멀리 벗어나니 아마도 인연이 아닌 것 같고 마치 저들이 주장하는 자연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설명하셔야만 우리들로 하여금 모든 삿된 소견에 빠지지 않고 진실한 마음의 오묘하게 깨닫는 밝은 성품을 얻을 수 있게 하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이렇게 방편을 보여서 진실하게 말하였는데도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자연인가 하고 의혹을 품느냐? 아난아! 만약 자연이라고 기필한다면 그 자연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서 자연의 본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너는 또 이를 관찰해 보아라. 오묘하고 밝게 보는 것 가운데 무엇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이 보는 놈은 밝음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어두움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아니면 허공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막힌 것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밝은 것을 자(自)라고 한다면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허공을 자연의 본체라 한다면 응당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다른 어두운 현상에 이르는 것으로 자연이라 생각한다면 밝을 때에는 보는 성품이 아주 없어질 것인데 어떻게 밝음을 보겠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반드시 이 오묘하게 보는 성품이 자연이 아니라면 제가 지금 이것은 인연의 성품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만 마음에 아직까지 분명하지 못하여 여래께 묻습니다. 이 이치가 어찌하여야 인연의 성품에 맞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인연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지금 보는 것으로 인하여 보는 성품이 앞에 나타나나니 이렇게 보는 놈은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응당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고,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밝은 것은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허공과 막힘에 이르기까지도 밝음이나 어두움과 같을 것이다.

아난아! 이 보는 것이 밝은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운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만약 허공을 따 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허공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밝음으로 인해서와 어두움으로 인해서도 허공이나 막힘과 같나니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정밀한 깨달음의 오묘하고 밝음이 인(因)도 아니며 연(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며 자연이 아닌 것도 아니며, 아닌 것과 아님이 아닌 것도 없으며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도 없어서 일체의 모양에서 벗어나 일체의 법에 나아가나니라.

네가 지금 그 가운데 어떤 마음을 가지길래 모든 세간에서 장난삼아 논란하는 명상(名相)으로 분별하려 하느냐? 이는 마치 손바닥으로 허공을 만지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애만 쓸 뿐이지 허공이야 어떻게 네게 잡히겠느냐?"

 

[11] 모양을 여의어야 함을 밝힘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기필코 이 오묘한 깨닫는 성품이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라면 세존께서 어찌하여 늘 비구에게 말씀 하시기를 보는 성품이 네 가지 연을 갖추어야 하니, 이른 바 허공을 원인으로 삼고 밝음을 원인으로 삼으며, 마음을 원인으로 삼고 눈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무엇을 뜻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그것은 내가 세간에 인연의 모양을 말한 것이지 제일의(第一義)를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니라.

아난아! 내가 다시 네게 묻겠는데 모든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본다고 말하나니 어떤 것을 본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상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등불의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는 것을 본다고 하고 만약 이 세 가지 빛이 없으면 곧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난아! 만약 밝음이 없을 때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어두움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약 반드시 어두움을 본다고 한다면 이는 다만 밝음이 없는 것이지 어떻게 봄이 없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어두울 때에는 밝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금 밝을 때에 어두운 모양을 보지 못하는 것을 또다시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렇다면 두 모양을 모두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두 모양이 서로 빼앗는다고 할지언정 너의 보는 성품이 그 가운데 잠시라도 없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본다고 해야지 어찌하여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밝음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밝음이 아니며, 어두움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어두움은 아니며, 허공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허공은 아니며, 막힌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막힌 것은 아니니라.

네 가지 이치가 성취되었으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는 놈을 볼 적에 보는 놈은 보는 것이 아니니라.

보는 성품은 오묘하여 그것이 오히려 보는 것을 벗어나서 보는 것으로도 미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인연이다 자연이다 어울려 조화된 모양이다라고 말하겠는가? 너희 성문(聲聞)들이 용렬하고 지식이 없어서 청정한 실상(實相)을 통달하지 못하니, 내가 지금 너에게 가르쳐 주겠으니 마땅히 잘 생각해서 오묘한 보리의 길에서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말아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오직 부처님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서로 어울려 조화된 현상과 어울려 조화되지 못함을 설명해 주셨으나 마음은 아직 열리지 아니하였는데 이번에 다시 보는 놈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심을 듣고서는 더욱 의혹이 짙어집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서 큰 지혜의 눈을베푸시어 저희들에게 깨닫는 마음이 밝고 맑음을 보여주소서."

말을 마치고는 슬피 울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성인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였다.

 

[12] 허망한 모양을 따로따로 풀이함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엽게 여기시사 큰 총지문(總持門)과 모든 삼매의 오묘한 수행 방법[길]을 다시 말씀하시기 위하여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비록 기억력은 강하나 다만 많이 듣는 것만 힘썼고 사마타의 미묘하고 정밀하게 비추어 봄에 대해서는 마음에 아직까지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나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내가 너를 위하여 이를 분별하여 보여줄 것이며, 또한 장래에 정기가 새는 것이 있는 자들도 보리의 과업을 얻게 하리라.

아난아! 모든 중생이 세간을 윤회하는 것은 두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분별하여 보는 것이 허망하여 그것이 장소에 따라 발생하며 업보에 따라 흘러 전전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두 가지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첫째는 중생의 별업(別業)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의 동분(同分)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별업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세상 사람들이 눈이 붉어지는 눈병이 생기면 밤에 등불을 볼 적에 또다른 둥근 그림자가 생겨서 다섯 가지 색깔이 중첩으로 보이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밤에 등불을 밝힘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그림자는 이것이 등불의 빛이냐 아니면 보는 것의 빛이냐?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 빛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째서 그와 같은 것을 보지 못하고 그 둥근 그림자는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만 보느냐? 만약 그것이 보는 것의 빛이라면 보는 것이 이미 빛을 이루었거니 저 눈병이 있는 사람만이 둥근 그림자를 보는 것은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또 아난아! 만약 이 둥근 그림자가 등불을 여의고서도 또다른 것이 있다면 마땅히 곁에 있는 병풍과 휘장과 의자와 자리를 볼 적에도 둥근 그림자가 생겨야 하며, 보는 것을 떠나서도 또다른 것이 있다면 응당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만 둥근 그림자가 보이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빛깔은 사실 등불에 있는 것인데, 보는 것의 병으로 인하여 그림자가 되었나니라. 그림자와 보는 것이 모두가 눈병으로 생긴 것이지만 눈병을보는 것은 병이 아니다. 그러니 이것을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고 할 것이 못되며, 또 그 가운데에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라고도 할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제二의 달은 본체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다. 왜 그런가 하면 제二의 달을 보는 것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들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을 가리켜 '달의 형체다 달의 형체가 아니다 한다거나, 보는 것이니 보는 것이 아니니'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나니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병으로 생긴 것이어니 지금 무엇을 이름하여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고 하려느냐? 더구나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겠느냐?

 

[13] 매듭지어 말씀하심

어떤 것을 '같은 분수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느냐 하면, 아난아! 이 염부제에서 큰 바닷물을 제외하고 중간의 육지에 三千개의 섬이 있으니 한 복판에 있는 큰 섬을 동쪽과 서쪽으로 헤아려보면 큰 나라가 二千 三백이 있고, 그 나머지 작은 섬이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가운데 혹은 삼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혹은 이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며, 혹은 한 두 나라에서 三十, 四十, 五十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니라.

아난아! 그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두 나라가 있으니 오직 한 나라 사람만이 악한 인연을 함께 만나게 되어 그 작은 섬에서 사는 중생은 일체의 상서롭지 못한 세계를 봄에 있어 더러는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 달무리나 해무리[暈適], 해의 귀걸이, 혜성[彗], 패성, 흐르는 별똥[飛流], 부이(負珥),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나쁜 모양을 오직 이 나라의 사람들만 볼지언정 저쪽 나라의 중생들은 본래 보지 못하고 또한 듣지도 못하나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앞뒤로 맞춰가면서 밝혀 주리라.

아난아! 저 중생들이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등불주위에 둥근 그림자가 비록 대상의 물체처럼 나타나지만 마침내 보는 자의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눈병은 곧 보는 것의 피로로 생긴 것이지 빛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눈병을 보는 자는 마침내 보는 잘못은 없나니라.

예컨댄 네가 오늘 눈으로 산과 강, 그리고 국토와 여러 중생들을 보는 것이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놈이 병들므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보는 놈과 보이는 대상은 마치 눈 앞의 대상처럼 나타나지만 본래는 나의 깨닫고 분별하는 것으로 대상인 물체를 보는 눈병이다. 그러니 깨닫고 보는 것은 눈병이겠지만 본래부터 있어온 깨달음의 밝은 마음으로 대상인 물체를 깨닫는 것은 눈병이 아니리라.

분별할 대상을 분별하는 것은 눈병이고, 분별하는 본각[性覺]의 밝은 근본은 눈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사실 보는 놈을 보는 것인데 어찌하여 또다시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지금 나와 너와 그리고 모든 세상의 열 가지 중생을 보는데 그것은 모두 보는 놈의 눈병이지 눈병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저 보는 놈이 정밀하고 참된 이유는 성품이 병들지 않았기 때문이니 보는 놈이라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아난아! 저 중생의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한 사람을 예로 들어 비유하면 눈병이 생긴 한 사람은 한 나라와 같으며 그가 보는 둥근 그림자가 눈병으로 생긴 것과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상서롭지 못한 것이 보는 것이 같은 업장 가운데 장악으로 생긴 것이니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놈이 허망함에 의하여 생긴 것이다.

염부제(閻浮提) 三千 개의 섬과 사방의 큰 바다와 사바세계와 그리고 시방의 정기가 새는 것이 있는 모든 나라들[有漏國]과 모든 중생들을 예로 들면 이 모두가 깨닫고 분별하는 새는 것이 끊어진 오묘한 마음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여 허망한 병으로 인하여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서 허망하게 나고 죽나니라.

 

[14] 요체를 들어 결론지어 대답함

만약 화합하는 것과 화합하지 않는 모든 인연을 멀리 여의면 곧 여러 가지 나고 죽는 원인을 없앨 수 있어서 원만한 보리의 나고 죽지 아니하는 성품을 이루어 청정한 본래의 마음에 본래의 깨달음이 늘 머무르게 되리라.

아난아! 네가 비록 본각(本覺)의 오묘하고 밝은 성품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깨달음의 근원은 서로 어울려 조화되어 생긴것도 아니며 서로 어울려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생긴 것도 아닌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나타나는 경계로서 네게 묻겠는데, 너는 지금 오히려 일체 세간의 허망한 생각으로 화합하는 모든 인연의 성품으로 인하여 스스로 의혹하기를 보리를 증득하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긴다고 여기는구나.

만약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적에는 마땅히 밝은 것이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곳에 보는 것이 섞였느냐? 보는 것과 물질은 분별할 수 있지만 섞인 것은 어떠한 형상이냐?

만약 보는 놈이 아니라면 어떻게 밝은 것을 보며, 만약 보는 놈이라면 어떻게 보는 놈을 본다고 하겠느냐? 보는 놈은 반드시 밝은 것과는 다르므로 섞이었다면 저 성품이 밝다는 이름을 잃으리니 섞임으로 해서 밝은 성품을 잃어버린 것이라서 밝음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또 다시 아난아! 네가 지금 오묘하고 청정하게 보는 정기는 밝은 것과 어울린 것이냐, 어두운 것과 어울린 것이냐, 통한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막힌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만약 밝음과 합한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맑은 모양이 이미 없어질 것이니, 저 보는 놈이 어두움과는 어울리지 못할 터이니 어떻게 어두움을 본다고 하겠느냐?

만약 어두움을 볼 때에 어두움과 합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음과 합했을 적에도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밝음을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밝음과 합하였다고 할 것이며 밝은 것은 어두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도 역시 이러하니라.

 

[15] 다른 것들도 같음을 밝힘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희 생각 같아서는 이 오묘한 깨달음의 근본이 모든 상대되는 물질과 그리고 마음과 생각으로 화합한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또 말하기를 깨달음이 화합한 것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다시 네게 묻겠다. 이 오묘하게 보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음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보는 놈과 밝은 것이 반드시 경계선이 있어야 하리니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밝은 것이며 어디까지가 보는 놈이냐? 보는 놈과 밝은 것이 어디로부터 경계가 되는냐?

아난아! 만일 밝은 것 중에 반드시 보는 놈이 없다면 서로 미칠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 밝은 모양이 있는데를 알지 못할 것인데 경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또 오묘하게 보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 아니라면 곧 보는 놈과 밝음의 성격이 서로 어긋남이 마치 귀와 눈이 서로 닿지 않는 것과 같아서 보아도 밝은 모양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것의 이치를 밝게 분별하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너는 아직도 일체의 부질없는 물질인 모든 허깨비 같이 변화하는 모양이 곳을 따라 생기며 곳을 따라 없어짐을 알지 못하는구나. 허망한 허깨비 같은 것을 물질이라고 하지만 그 성품은 참으로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본체이다. 이와 같이 오음(五陰)과 육입(六入)과 십이처(什二處)와 십팔계(十八界)도 인연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기는 것이며 인연이 흩어져서허망하게 없어지나니, 진실로 생기고 없어지고 가고 오고 하는 것이 본래는 여래장(如來藏)이어서 항상 머무르는 것이며 오묘하고 밝은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며 두루 원만한 오묘하고 참다웁고 변함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성품의 참되고 항상한 가운데서는 가고 옴과 미혹하고 깨달음과 나고 죽고 함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나니라.

아난아! 어찌하여 오음(五陰)이 본래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맑은 하늘을 볼 적엔 오직 하나의 맑은 하늘일 뿐이어서 멀리 아무 것도 없거늘 그 사람이 까닭없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가 생기면 곧 허공에서 또다른 광화(狂華)가 보이며 또다시 몹시 어지러워 모양이 없는 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색음(色陰)도 그러하니라.

 

[16] 허망한 것인 줄 깨달으면 곧 참됨

아난아! 이 헛보이는 꽃은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미 허공에서 생겼으니 다시 허공으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가령 나오고 들어감이 있다면 곧 허공이 아니며 허공이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 그 꽃 모양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함이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을 쫓아 나왔으므로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니 이 헛보이는 꽃의 성품이 눈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마땅히 볼 수 있을 것인데, 만약 보는 것이 있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에 꽃이 있으므로 돌아올 적에 마땅히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약 보는 것이 없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을 가리웠으므로 돌아올 적에 마땅히 눈을 가려야 할 것이다. 또 헛 꽃을 볼 적에 눈이 응당 가리움이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맑은 허공이라야 청정하고 밝은 눈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색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손발이 편안하고 모든 뼈마디가 적절히 조화되었을 때는 홀연히 살아있음을 잊은 듯하여 성품이 어긋나거나 순함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없이 두 손바닥을 허공에서 서로 비비면 두 손바닥에서 허망하게 껄그럽거나 미끄럽거나 차거나 뜨거운 여러가지 모양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라. 수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 여러가지 허깨비같은 허망한 접촉이 허공에서 부터 온 것도 아니며 손바닥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왔다면 이미 손바닥에 접촉 하였는데 어찌 몸에는 접촉하지 아니하였느냐? 응당 허공이 이를 선택하여 와서 접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손바닥으로부터 나왔다면 손바닥이 합하기를 기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손바닥에서 나왔으므로 합할 적에 손바닥이 느낀다면 뗄 적에는 접촉이 들어가서 팔과 손목과 골수들이 응당 들어갈 때의 자취를 느껴야 할 것이니라. 반드시 느끼는 마음이 있어서 들어가고 나감을 안다면 자연 한 물건이 몸 가운데 오갈 것인데 어찌 손바닥과 합해져야만 느끼는 것을 접촉이라고 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수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신 매화 열매를 말하면 입 안에서 침이 생기고, 까마득한 벼랑에 있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지는 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상(想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러한 신 이야기가 매실에서 생긴 것도 아뉨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 것이라면 매실이 마땅히 스스로 말을 해야 할 것이어늘 어찌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며, 만약 입을 쫓아 들어갔다면 마땅히 입으로 들어야 하리니 어찌 귀를 기다리겠느냐? 만약 유독 귀만이 듣는다면 이 침이 어째서 귀속에서 나오지 않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상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흐르는 성품이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며, 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물의 성품도 아니며,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곧 시방의 끝없는 허공에 끝없는 흐름이 생겨서 세계가 자연히 모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며, 만약 물로 인해 있는 것이라면 이급히 흐르는 물의 성품은 마땅히 물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능유(能有)와 소유(所有)의 모양이 지금 마땅히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이며, 만약 곧 물의 성품이라면 맑은 때에는 응당 물의 본체가 아닐 것이며, 만약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이라면 허공은 밖이 있는 것이 아니며 물 밖에는 흐름이 없어야 할지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행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빈가병의 두 구멍을 막고 가운데는 허공을 가득히 채워가지고 천리나 되는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사용하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라. 식음(識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러한 허공은 저쪽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이쪽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니라. 아난아! 만약 저쪽에서 오는 것이라면 본래 병 가운데에 이미 허공을 담아가지고 갔으므로 본래의 병이 있던 곳에는 마땅히 허공이 조금 줄었어야 할 것이며, 만약 이곳으로 들어갔다면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일 적에는 마땅히 허공이 나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식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 卷2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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