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이수(螭首)는 비신과 같은 돌인 것으로 전해오며, 귀부(龜趺)는 현지에서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현재 자연석으로 이를 대용하고 있다. 비는 조선 초기의 석비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이수의 중앙 아래쪽에 ‘世宗英陵之碑(세종영릉지비)’라는 전액(篆額)이 있다.
비문은 마멸이 심하여 판독하기 어려우나, 비문의 내용은 『열성지장통기(列聖誌狀通記)』와 『전주이씨선원보첩(全州李氏璿源譜牒)』에 실려 있다. 앞면의 비문은 당대의 명신 정인지(鄭麟趾)가, 뒷면은 김조(金銚)가 지었으며, 전액과 글씨는 안평대군이용(李瑢)이 썼다.
총 4,886자에 달하는 큰 비석으로, 비문의 내용은 세종대왕의 어진 업적을 찬양하고 왕후·빈(嬪) 및 그 소생들에 관한 약력 등을 적은 것이다.
‘조선왕릉’이 한국의 9번째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7일 새벽(한국시각)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33차 회의를 열어 한국이 신청한 ‘조선왕릉’(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최종 확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경주 석굴암ㆍ불국사,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서울 종묘·창덕궁, 수원 화성
(이상 1997년 지정),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년 지정)에 이어
조선왕릉을 8번째 세계 문화유산으로 추가했다.
2007년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까지 합쳐 한국의 세계유산 총수는 9건으로 늘었다. 또 2004년 문화유산에 등재된 북한·중국의 고구려 고분군을 포함하면 남북한의 세계유산은 모두 10건이 된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해 서울, 경기, 강원도 지역에 흩어진 조선시대 왕릉 42기 가운데 북한 개성 부근에 있는 제릉(1대 태조 원비 신의왕후의 능)과 후릉(2대 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을 제외한 40기를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바 있다.
뒤이어 지난 4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조선왕릉 40기를 사전 실사하고 제출한 평가결과 보고서에서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려 세계유산 등재가 유력시돼 왔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는 세계 각국에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포함해 30건을 등재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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