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李庸岳, 1914년 ~ 1971년)은 한국 시인이다. 함경북도 경성 출신으로 일본 도쿄에 있는 조치대학(上智大学)을 졸업했고 1939년 귀국하여 주로 잡지사 기자로 일하였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35년, 신인문학에 시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광복 후 서울에서 조선문학가동맹 소속으로 <노한 눈들>, <짓밟히는 거리에서>, <빛발 속에서> 등의 시를 발표하며 '미제와 이승만을 반대하는 문화인' 모임에서 활동하 체포되어 10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인민군의 서울 점령 때 출옥하여 자진 월북했다. 한국 전쟁 중에 <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 등의 시를 발표했으며 월북한 지 21년이 지난 1971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북국의 가을》, 《풀벌렛소리 가득차 잇섯다》, 《낡은 집》, 《슬픈 사람들끼리》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 등이 있다.

 

 

그리움

이용악(李庸岳, 1914년 ~ 1971년)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우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내는가

 

다리 위에서
 이용악

바람이 거센 밤이면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을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힐 때
누나는
별 많은 밤이 되려 무섭다고 했다

국숫집 찾아 가는 다리 위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숫집 아이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벌레 우는 가을철
단 하루
아버지의 제삿날만 일을 쉬고
어른처럼 곡을 했다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ㅡ 이용악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이 아무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낡은 집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 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에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족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 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라도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 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 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국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 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시집 ≪낡은 집≫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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