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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陽不得已與蘭陽, 詣丞相寢所留堂上,
영양부득이여란양 예승상침소류당상
영양이 부득이 난양과 더불어
승상의 침소로 나아가 당상堂上에 머무르고,
先使蘭陽及秦氏入見, 丞相見蘭陽 或搖雙手,
선사란양급진씨입견 승상견란양 혹요쌍수
먼저 난양과 진씨가 들어가 보게 하였는데,
승상이 난양을 보자 혹은 두 손을 휘두르고
或瞋兩瞳初若不相識者, 始作喉間之聲曰:
혹진양동초약불상식자 시작후간지성왈
혹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처음에는 서로 알지 못하는 듯 하드니
비로소 목안엣소리로 말하기를,
“吾命將盡矣, 要與英陽相訣,
오명장진의 요여영양상결
“내 명이 장차 다하겠기로
영양과 더불어 서로 영원히 이별하려 하거늘,
英陽何往而不來乎?”
영양하왕이불래호
영양은 어찌 가서 오지도 않는고?”
蘭陽曰:“相公何爲此言乎?”
란양왈 상공하위차언호
난양이 말하기를,
“상공께서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느뇨?”
丞相曰:“去夜似夢非夢間, 鄭氏來我而言曰:
승상왈 거야사몽비몽간 정씨래아이언왈
승상이 말하기를,
“간밤에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정녀가 내게 와서 말하되
相公何負約耶? 仍盛怒呵責,
상공하부약야 잉성로가책
‘상공은 어찌 언약을 저버리시나이까?’ 하고
무척 노하여 심히 꾸짖으며
以眞珠一掬與我, 我受而呑之, 此實凶徵也,
이진주일국여아 아수이탄지 차실흉징야
내게 진주眞珠 한 웅큼을 내려주거늘
내가 그것을 받아 삼켰는데, 이는 실로 흉한 징조요,
閉目則鄭女壓我之身, 開眸則鄭女立我之前,
폐목즉정녀압아지신 개모즉정녀립아지전
눈을 감은즉 정녀가 내 몸을 누르고
눈을 뜬즉 정녀가 내 앞에 서서,
此鄭女怨我之無信, 而奪我之脩期也,
차정녀원아지무신 이탈아지수기야
이는 정녀가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노하여
나의 원천적인 기운을 빼앗아 버렸으니,
我何能生乎? 命在喣刻間矣,
아하능생호 명재후각간의
어찌 내가 살 수 있으리오?
내 명이 후각喣刻 사이에 있으니
欲見英陽者盖以此也.”
욕견영양자개이차야
영양을 보고자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니라.”
言未已又作昏困斷盡之形, 回面向壁又發胡亂之說,
언미이우작혼곤단진지형 회면향벽우발호란지설
말을 마치지 못하여 또한 혼곤昏困한 시늉을 지으며
낯을 돌려 벽을 향하더니
다시 횡설수설橫說竪說하기에,
蘭陽見此擧止, 不得不動而憂慮大起,
란양견차거지 부득부동이우려대기
난양이 그 모습을 살펴보매
움직이지도 아니하므로
놀랍고 염려스런 마음이 활짝 일어나.
出言於英陽曰:
출언어영양왈
“丞相之病似出於憂疑, 非姐姐不可醫矣.”
승상지병사출어우의 비저저불가의의
밖으로 나와서 영양에게 이르기를,
“승상의 병은 아무래도 걱정과 의심에서 나온 것 같은데,
저저가 아니면 고칠 수가 없겠나이다.”
仍言病狀 英陽且信且疑, 踟躕不入 蘭陽携手同入,
잉언병상 영양차신차의 지주불입 란양휴수동입
이에 승상의 병 증세를 말하였지만,
영양이 반신반의하고 주저하여 들어가지 않으니
난양이 손을 끌고 함께 들어가매,
丞相猶作譫語, 而無非向鄭氏之說也.
승상유작섬어 이무비향정씨지설야
승상이 아직도 헛소리를 하는데
모두가 정씨를 향한 말이었다.
蘭陽高聲曰:
란양고성왈
“相公相公 英陽姐姐來矣, 開目而見之.”
상공상공 영양저저래의 개목이견지
난양이 소리를 높여 말하기를,
“상공, 상공! 영양 저저 왔으니 눈을 떠 보소서.”
丞相乍擧頭頻揮手, 有欲起之狀,
승상사거두빈휘수 유욕기지상
승상이 잠깐 머리를 들고 손을 저으며
일어나고자 하는 시늉을 하기에
秦氏就身扶起坐於床上, 丞相向兩公主而言曰:
진씨취신부기좌어상상 승상향양공주이언왈
진씨가 나아가서 몸을 부축하여 일으켜 평상위에 앉히니,
승상이 두 공주를 향하여 말하기를,
“少游偏蒙異數, 與兩位貴主結親,
소유편몽리수 여양위귀주결친
“소유가 편벽되게 황은皇恩을 입어
양위 공주兩位公主와 함께 혼인을 맺어,
方欲同室而同穴矣, 有若拉我而去者, 將不得久留矣.”
방욕동실이동혈의 유약랍아이거자 장부득구류의
같은 방과 같은 굴에서 같이 지내고자 하였는데,
나를 잡아 가려는 듯한 자가 있어서
세상에 오래 머무르지 못할 것 같나이다.”
英陽曰: “相公識理之人也, 何爲浮誕之言也?
영양왈 상공식리지인야 하위부탄지언야
영양이 말하기를,
“상공은 이치를 아는 분이거늘
어찌 덧없고 쓸데없는 말씀을 하시나이까?
鄭氏設有殘魂餘魄, 九重嚴邃百神護衛, 渠何能入乎?”
정씨설유잔혼여백 구중엄수백신호위 거하능입호
정씨의 흩어진 넋과 혼이 남아 있을지라도,
백신百神이 호위하는 구중의 깊은 곳에
그가 어떻게 들어올 수 있으리까?”
丞相曰:
승상왈
“鄭女方在吾傍, 何以曰不敢入乎?”
정녀방재오방 하이왈불감입호
승상이 말하기를,
“정녀가 바로 내 곁에 있거늘
어찌 감히 들어오지 못한다 이르시오?”
蘭陽曰:“古人見盃中弓影 而有成疑疾者,
란양왈 고인견배중궁영 이유성의질자
난양이 말하기를,
“옛 사람이 ‘잔 속의 활 그림자를 보고
의질疑疾을 얻었다’ 고 하더니,
恐丞相之病, 亦以弓而爲蛇也.”
공승상지병 역이궁이위사야
생각건대 승상의 병 또한 활이 뱀이 된 것 같나이다.”
丞相不答 但搖手而已, 英陽見其病勢轉劇,
승상부답 단요수이이 영양견기병세전극
승상이 대답하지 아니하며
다만 손만 놀릴 따름이기에,
영양이 병세가 점차 위중한 줄 알고
不敢終諱乃進坐曰:
불감종휘내진좌왈
감히 끝내 어길 수가 없어서
다가앉으며 이르기를,
“丞相只念死鄭氏 而不欲見生鄭氏乎?
승상지념사정씨 이불욕견생정씨호
“승상은 다만 죽은 정씨만 생각하고,
산 정씨는 보고자 아니하시나이까?
相公苟欲見之 妾卽鄭氏瓊貝也.”
상공구욕견지 첩즉정씨경패야
상공이 만일 그를 보고자 하실진대
첩이 바로 정씨 경패瓊貝로소이다.”
丞相佯若不信曰:“是何言也?
승상양약불신왈 시하언야
승상은 거짓으로 믿지 못하는 체하며 말하기를,
“이 무슨 말이뇨?
鄭司徒只有一女而死已久矣,
정사도지유일녀이사이구의
정사도에게 다만 딸 하나가 있다가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死鄭女旣在吾之身邊, 則死鄭女之外 豈有生鄭女乎?
사정녀기재오지신변 즉사정녀지외 기유생정녀호
죽은 정녀는 이미 내 몸 곁에 있은즉,
죽은 정녀 외에 어찌 산 정녀가 있으리오?
不死則生 不生則死人之常也,
불사즉생 불생즉사인지상야
죽지 않은즉 살고,
살지 않은즉 죽는 것이 사람에게 흔히 있는 일이요,
一人之身 或謂之死 或謂之生,
일인지신 혹위지사 혹위지생
한 사람의 몸이 혹은 죽었다고도 이르고
혹은 살았다고도 한즉,
則死者爲眞鄭氏乎? 生固眞也死則妄也,
즉사자위진정씨호 생고진야사즉망야
죽은 자가 정말 정씨이리요,
산 자가 정말 정씨이리요?
산 것이 굳이 진실이라면 죽은 것은 망령된 것이요,
死固眞也生則誕也, 貴主之言吾不信也.”
사고진야생즉탄야 귀주지언오불신야
죽은 것이 굳이 진실이라면 산 것이 거짓된 것이니,
귀주의 말씀은 내 믿지 못하겠나이다.”
蘭陽曰:“吾太后娘娘, 以鄭氏爲養女,
란양왈 오태후낭낭 이정씨위양녀
이에 난양이 말하기를,
“우리 태후마마가 정씨를 양녀로 삼으시고
封爲英陽公主, 與妾同事相公
봉위영양공주 여첩동사상공
영양공주로 봉하사
첩과 한가지로 상공을 섬기게 하였으니,
英陽姐姐 卽當日聽琴之鄭小姐也.
영양저저 즉당일청금지정소저야
영양 저저가 곧 당일의 거문고를 듣던 정소저이니이다.
不然姐姐何以與鄭氏, 無毫髮爽也?”
불연저저하이여정씨 무호발상야
그렇지 않다면 저저가 어찌 정씨와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을 수 있사오리까?”
丞相不答微作呻吟之聲, 忽昻首作氣而言:
승상부답미작신음지성 홀앙수작기이언
승상이 대답지 아니하고
적이 신음하는 소리를 내더니,
홀연히 머리를 쳐들고 숨을 크게 쉬며 말하기를,
“我在鄭家之時, 鄭小姐婢子春雲使喚於我矣,
아재정가지시 정소저비자춘운사환어아의
“내 정씨 집에 있을 적에
정소저의 비자婢子 춘운이 내게 와 사환使喚노릇을 하였는데,
今有一言欲問於春雲, 春雲亦何在乎?
금유일언욕문어춘운 춘운역하재호
이제 춘운한테 한 마디 말을 물어보고자 하는데,
춘운 또한 어디에 있느뇨?
吾欲見之耳.”
오욕견지이
내 그를 보고 싶노라.”